소설리스트

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566화 (539/2,000)

< 548. 거자필반-8- >

일견 평범해 보이는 사진이었다.

아까처럼 위에서 쿼터뷰로 내려찍은 얼짱 각도도 아니고, 딱히 가슴이 강조되지도 않았다. 그러나 착용한 바지가 이목을 끌었다.

몸매가 여실히 드러나는 쫄쫄이.

끝내주는 각선미를 따라 시선을 올리면 가운데 떡하니 포춘쿠키가 자리 잡고 있다.

"헉!"

나도 모르게 헉 소리가 절로 나왔다.

[아, 아니 이건 좀···.]

흔히 도끼 자국이라고도 불리는 봊두덩이가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다. 바지를 먹을 것처럼 안으로 말려 들어간 모습은, 나체로 헐벗은 것보다 더 음험한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나는 혹시라도 누가 볼까 두려워 재빨리 폰을 덮었다. 그리고는 자연스럽게 벤치 프레스 옆에 있던 스쿼트 머신으로 자릴 옮겼다.

‘미친!’

[과격한 표현이긴 하지만 딱히 틀린 말은 아니네요.]

‘솔직히 이 정도면 민주 못지않은 변녀 아니냐?’

이제껏 만나 여자 중에서도 손꼽히는 변태다.

아니, 최소한 초면부터 이렇게 노골적으로 자신의 성향을 드러내는 여자는 처음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아무리 밝히는 여자라도 야하게 변하는 순간은, 밀폐된 공간에 단둘이 있을 때였다. 보통 사람이라면 사회적 체면이나 위신 때문에 저런 과감한 노출을 선호하지 않는다. 최소한 숨기는 미덕이라도 있다. 하지만 그녀는 지나치게 도발적이었다.

설수지.

그녀의 이름을 되새기며 스쿼트를 시작했다.

하체에 부하가 걸리며 허벅지가 터질 것처럼 부풀었다. 실은 방금 본 사진 덕에 대물이 반응할까 강제로 힘을 빼서라도 가라앉히려는 속셈도 있었다.

"쓰읍- 후."

"쓰읍- 후."

잡념을 지우며 힘차게 운동을 하고 있는데, 다시금 남자 트레이너가 다가왔다.

"오늘따라 엄청 열심히 신데요? 컨디션 엄청 좋으신가 봐요?"

"아, 예."

"도훈씬 진짜 골격 좋네요. 혹시 대회 같은 거 준비해볼 생각 없어요?"

한 세트가 끝나고 바벨을 지지대에 고정하며 대답했다.

"대회요?"

"네, 보디빌더 대회요. 물론 지금도 충분히 좋으신데, 조금만 더 벌크업 시킨 다음 깎아 내면 작품 하나 나올 것 같아서요."

남자 트레이너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유심히 내 몸을 훓었다. 남자에게 시선을 받는 것은 전혀 기쁘지 않았다.

"······."

내가 말없이 2세트에 돌입하자, 트레이너는 아차 하는 표정으로 물러섰다.

"운동 중이시니 나중에 이야기해요. 아무튼 굉장히 좋은 자질을 갖고 계세요, 도훈씨는."

‘좋은 자질 갖고 있는 게 틀린 말은 아니지.’

[왜 저렇게 귀찮게 구는 걸까요?]

‘영업이겠지.’

[영업요?]

‘자기 헬스장 출신이 대회 나가서 입상하면 가게 홍보도 되니 좋으니까.’

[아, 그런 이유가···. 혹시 도전하실 생각이라도?]

‘굳이. 얼굴 팔리고 싶은 생각 없어. 혹시라도 인터넷에 기사라도 나갔다가 누가 알아보기라도 하면 어떡해?’

[누가 주인님을 알아본다고요?]

‘일본 가서 야동 찍을 때 몸을 노출했잖아. 눈썰미가 좋은 사람이라면 두 개를 놓고 비교할지도 모를 일이지.’

[역시 매사에 신중하시군요.]

‘암, 조심해야지. 일찍 죽고 싶은 마음은 없거든.’

[그나저나 설수지 양은 어떻게 공략하실 생각입니까?]

‘맞다! 답장.’

나는 바벨을 내려놓은 뒤 다시 깨톡에 답장을 남겼다.

-이도훈 : 요가복 잘 어울리시네요.

-설수지 : 감사해요. 운동하시는 데 괜히 방해되겠네요. 그럼 나중에 또 연락해요.

그것으로 수지와의 짧은 카톡은 끝났다.

단순히 문자와 사진 몇 개를 주고받았는데도 구미가 당기는 여자였다.

‘대체 무슨 속셈인지 속을 모르겠군. 이건 정보창 안 되나?’

[네. 도달 거리가 닿지 않습니다.]

‘일단 만나야 알 수 있다는 말인가.’

[그렇죠.]

‘흐음. 근데 이 변녀가 왜 나를 찍었을까?’

현재 드는 가장 큰 의문은 그것이다.

성수에 따르면 수지는 체육과 MT 사진 중 나를 콕 찝어 소개팅을 부탁했다고 했다. 그 사진은 단톡방에 올라와서 나도 기억하는데, 폰카로 대충 찍은 거라 딱히 용모가 자세히 보이는 사진은 아니었다.

[주인님이 잘생겨서요?]

‘글쎄? 체육과에 잘생긴 사람이 나만 있는 건 아니잖아?’

무려 단체사진이다.

새내기 1학년부터 4학년 졸업반까지 모두 사진에 담았다.

내가 제법 잘생긴 얼굴이긴 하지만, 2학년 동기나 3학년 애들 중에도 훈남이라 불릴 애들은 제법 있다.

[아님 키가 커서?]

‘내가 제일 큰 것도 아니고.’

다들 운동을 배운 학생들이라 그런지 몸은 좋다.

특히 배구 클럽에 속한 아이들은 나보다 큰 애들도 있다. 즉, 외모로 나를 찍었다고 보기엔 조금 미심쩍은 부분이 있다는 소리다.

‘혹시.’

[뭔가 짚이는 게 있으신가요?]

‘내가 나온 야동을 봤을까?’

[에이, 가면 쓴 얼굴을 무슨 수로 알아본다고요?]

‘하긴··· 그건 말이 안 되지.’

아니면 남은 가능성은 딱 하나.

변녀가 찾는 것이 누구겠는가?

‘내가 변탠 줄 알고 있다는 의밀까?’

[무슨 수로요?]

‘왜 없겠어? 내가 대학에서 관계한 여자들이 몇 명인데.’

가정이지만, 나와 관계를 나누었던 여자들 가운데 그녀와 친분이 있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즉, 성수 여친의 친구면서 동시에 우리과 다른 여학생과 연결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소리다.

우연히 나의 대물과 테크닉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듣고, 일부러 접근하는 것닐까 근데 대체 그게 누구지?

나는 깨톡에 떠오른 이름들을 하나씩 살폈다.

소거법을 이용해 가장 가능성이 낮은 인물들부터 제외해 본다.

육정음.

체육과 8선녀 중에서도 원탑으로 불리는 존재.

내가 가장 아끼는 후배며, 교생 실습을 간다고 알바비를 모아 정장까지 사준 지고지순한 녀석이다.

정음이 나에 대한 이야기를 떠벌였을 거라곤 믿기지 않는다.

연두나 나연이는 어떨까?

두 사람은 자췻방에서 쓰리썸을 한 이력이 있다.

특히 바이섹슈얼이 연두는 나와 나연이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중이다. 여기서 한 명을 더 끌어들인다? 역시 말이 안된다.

양희주.

얼굴은 빻은 주제에 절정의 몸매를 자랑하는 발랑 까진 후배.

남자 친구가 있든 말든 나에게 안기고 싶어 하는 욕심 많은 계집애다. 아랫도리는 헤프지만, 입을 가볍게 놀릴 것 같진 않다. 보통 바람기가 많은 여자일수록 자신의 과오를 떠벌이고 다니진 않으니까.

또 누가 있지?

강경희? 이효민? 김희수? 박서현?

경희와 효민은 스치듯 인연을 맺었다. 접점이 많지 않은 만큼, 딱히 소문을 낼 처지는 아니다. 김희수의 경우엔 8선녀 중 유일하게 못 따먹은 여자애고.

남은 것은 하나.

"설마 박서현?"

한동안 나를 쫓아다니던 스토커.

귀찮을 정도로 성가시게 굴더니만, 민주에게 한 번 크게 혼난 뒤로는 잠잠해졌다. 일본 여행과 이어진 교생 실습으로 한 달여 가까이 얼굴을 보진 못했다.

나의 여성 편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계집애기도 하다.

혹시 서현이가 앙심을 품은 걸까? 일단 후보에 넣어보자.

[주인님과 관계한 사람이 1학년만 있는 것은 아니지 않나요?]

‘남은 학년은 몇 안 되거든.’

내가 속한 2학년엔 여자 동기가 거의 없다.

메갈이던 우현미는 참교육(?)을 시켜준 뒤 인연의 끊을 잘라 방생했으니 딱히 나에 대한 감정이 남아있진 않을 것이다.  패스.

3학년 마유미.

학회장이자 여자 배구팀 주장이기도 한 그녀는 무척 바쁘다.최근 대학 리그가 시작된 뒤로는 제대로 수업 참여도 못 하고 있다. 더욱이 여자들 중에선 보기드문 사디스트로, 다른 여자에게 자기 먹잇감(?)을 넘길 스타일도 아니다.

4학년에 오수정.

나의 섹스 파트너.

마지막 실습을 마치고 시험 준비에 한창인 그녀는 집과 도서관만 왕복하는 임고생이다. 공부에 몰입하는 상황인 만큼 다른과 여학생을 만나 나에 대한 소문을 냈을거라곤 믿기지 않는다.

하나둘 후보들을 제하고 나니 여전히 남은 사람은 박서현밖에 없었다.

‘나와 관계한 사람 중에서 가장 미심쩍은 건 박서현이군.’

[장담할 순 없는 일입니다. 어쩌면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히기도 하니까요.]

‘그건 그래. 모든 가능성을 열어둔 상태로 조사를 해봐야 겠어.’

[어떻게요? 직접 물어보시게요?]

‘아니. 당연히 발뺌하겠지. 유선상으론 마인드 리딩도 못 쓰니 진실을 알수도 없을 거고.’

[그럼 만나시게요?]

‘아니, 귀찮아. 만약 정말로 서현이라면 별로 얽히고 싶은 생각 없거든. 걔는 너무 집착이 심해서 감당이 안 될 것 같단 말이지.’

[그럼요?]

‘박서현과 설수지가 정말 아는 사이라면 바로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있지.’

나는 핸드폰을 들어 어플을 뒤졌다.

‘바로 페니스 북이야.’

[페니스 북요? 엄청 음탕한 이름이네요.]

‘창립자가 이태리 베니스 출신이라던가? 원래 베니스북으로 하려다 페이스+베니스를 합쳐서 페니스북이라고 했데.’

[오, 그렇군요.]

페니스북을 한참 뒤진 후에야 국성대에 재학 중인 박서현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혔다.

‘젠장. 친구 목록 비공개잖아?’

[그럼 확인이 안되나요?]

‘당연하지. 강제로 열어볼 수도 없고.’

[반대로 설수지 양의 페니스 북을 뒤지면 되지 않습니까?]

‘오, 역발상!’

로시 말이 맞다.

페니스 북을 이용할 거라면, 처음부터 설수지 쪽에서 타고 들어가는 쪽이 현명한 방법이었다. 지금껏 괜히 뻘짓을 한 셈이다. 젠장, 빠가야로!

설수지의 경우 성이 독특해서 그런지 찾기가 수월했다.

그녀의 페니스 북을 타고 들어가자 게시글이 보였다. 그러나 활동 이력이 거의 없었다.

‘가장 최근 글이 3년 전이네?’

[가입은 해놓고 활동을 안 했나 보군요.]

‘이럼 완전히 나가린데···.’

결국 뒷조사는 실패.

그때 깨톡창에 메시지가 왔다.

‘뭐야? 나중에 연락 하자더니 그새를 못 참고···.’

무심코 대화창을 클릭하는데 설수지가 아니었다.

-김태영 : 형! 실습은 잘 하셨어요?

1학년 후배 태영이었다.

나 참, 얘는 귀찮게 또 무슨 일이람?

-이도훈 : 어. 그럭저럭. 무슨 일이야?

-김태영 : 무슨 일은요. 내일부터 또 학교서 뵈니까 안부차 연락드렸죠 하하.

하여간 넉살도 좋다. 답장을 하려는데 태영이 연이어 메시지를 날렸다.

-김태영 : 형, 근데 접때 말한 건 그냥 없던 일로 해주세요.

-이도훈 : 무슨?

-김태영 : 현미 누나랑 소개팅요.

아, 그렇지? 지난번 놈이 내 정체를 까발리려다 엉겹결에 우현미를 소개해 주기로 했던 기억이 났다. 내일 학교서 만나서 그 얘길 꺼낼까 봐 미리 선수 치는 것이군.

-이도훈 : 왜? 안 그래도 곧 말하려고 했는데. 실습이 생각보다 빡새서 그땐 말을 못 꺼냈어.

-김태영 : 아니에요.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사실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아서요.

크크. 현미가 호감인 외모는 아니긴 하지.

그래도 빽보는 먹을만 한데···.

-이도훈 : 그래? 미리 말 다 해놨는데?

골탕을 먹이기 위해 일부러 농을 걸자 태영이 화들짝 놀라 대답했다.

-김태영 : 진짜요?

-김태영 : 형 진짜 현미누나한테 말했어요?

-김태영 : 뻥이죠?

-김태영 : 그죠?

순식간에 휘리릭 스크롤이 올라가는 것으로 보아 태영이 얼마나 당황했는지 여기까지 전해졌다. 그러게 맘에도 없는 소리는 왜 해?

-이도훈 : 맞아 뻥이야. ㅋㅋ

-김태영 : 아, 형. 진짜 놀랬잖아요.

그 뒤로 쓸데없는 잡담 몇 마디를 주고받다 문득 태영이라면 알 것 같은 예감에 한가지 질문을 던졌다.

-이도훈 : 근데, 태영아.

-김태영 : 네?

-이도훈 : 요새 애들은 페니스 북 잘 안 하니?

-김태영 : 페니스북요? 그거 진작 한물갔잖아요.

-이도훈 : 응?

-김태영 : 요새 인싸들은 다 인스타해요.

-이도훈 : 인스타가 뭐야?

-김태영 : 페니스북이랑 비슷한데, 암튼 좀 달라요. 더 쿨 하달까? 인싸, 인스타. 어감도 좋잖아요.

뭐가 좋은건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새로운 정보다.

-이도훈 : 그럼 너도 해?

-김태영 : 아뇨. 전 아싸라서.

-이도훈 : 니가 무슨 아싸야. 말도 잘하고 인기도 많으면서.

-김태영 : 암튼 전 와꾸가 빻아서 사진 올리는 거 별로 안 좋아해요. 근데 형 SNS 하시려고요?

-이도훈 : 아니 그냥, 심심해서.

-김태영 : ㅎㅎ 사실 전 눈팅용으로만 쓰거든요. 인스타 또 다른 별명이 뭔 줄 아세요?

-이도훈 : 뭔데?

-김태영 : 섹스타그람요.

-이도훈 : 응?

-김태영 : 거기 수위 제한이 없어서 은근 야한 사진도 많이 올라오거든요. 얼굴 가리고 익명으로 활동하는 사람도 많아요. 형 가입하면 제가 친추할 사람 추천해 드릴게요. 진짜 대박.

태영과의 대화 속에서 뭔가 힌트를 발견한 기분이었다.

익명.

섹스타.

노출증.

몇 개의 단어들이 머릿속에서 소용돌이치며 한가지 그림이 그려졌다.

‘···어쩌면 설수지도?’

누구나 볼 수 있는 깨톡 프로필에서 조차 본성을 숨기지 못한 설수지. 그녀라면 인스타에서 활동할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나는 서둘러 태영과의 대화를 종료했다.

-이도훈 : 됐어 인마. 아무튼 형 지금 헬스장에서 운동 중이니까 내일 만나서 얘기하자.

-김태영 : 네, 형.

[누군지 감을 잡으셨나요?]

‘아니. 그건 아직 모르겠고, 잘하면 설수지의 약점을 찾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약점이라뇨?]

‘있어 봐. 일단 어플부터 깔고.’

나는 플레이 스토어에서 해당 어플을 내려받았다.

< 548. 거자필반-8- > 끝

ⓒ 성난불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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