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565화 (538/2,000)

< 547. 거자필반-7- >

설수지 : 아!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이모티콘)

노출증 변태지만, 수줍은 처녀 코스프레를 하는 수지가 귀여운 고양이 이모티콘과 함께 답장을 보내왔다.

이도훈 : 주말 잘 보내고 계세요?

설수지 : 네. 아침에 교회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에요.

교회? 아, 오늘 일요일이었지.

한가지 정보가 더 업데이트되었다.

노출증 변태에 처녀 코스프레를 하면서 교회를 다니는 여자.

설수지 : 도훈 오빠는 혹시 종교가 있으신가요?

이도훈 : 아니요.

한동안 읽음표시가 지워지지 않았다. 의도적인 것인지 아니면 뭔가 바쁜 일이 생긴 것인지 그녀의 침묵은 10분이 넘도록 이어졌다.

‘뭐야? 대화를 하다 말고 갑자기.’

[급한 일이 있나 보지요.]

‘왠지 뜸 들이는 기분인데.’

[뜸을 들이다뇨?]

‘재깍재깍 답장하면 없어 보일까 봐 비싼 척 구는 거란 소리야.’

[오늘 처음 대화하는 사람에게 굳이요?]

‘그러니까 더 가능성이 크지. 내가 비싼 여자다, 라는 걸 시작부터 심어주는 거야. 예쁘면 대체로 얼굴값 하기 마련이거든.’

[호오. 과연 그럴지.]

지하철에서 내릴 때가 다 돼서야 다시 답장이 왔다.

설수지 : 미안해요. 잠시 전화 좀 하느라.

팝업창에 떠오른 글귀를 보고 살짝 망설였다.

저 말이 사실이건 아니건 곧바로 답장을 보내자니 내 쪽에서 지나치게 매달리는 인상을 남길 것 같았다.

‘네가 비싼 여자면, 나도 비싼 몸이야. 왜 이래?’

나는 핸드폰을 덮은 후 지하철을 빠져나왔다.

[답장 안 하십니까?]

‘상대가 비싸게 굴면, 나도 가격을 흥정해야지.’

[몸값을 올리겠다는 말씀인가요?]

‘아쉬운 쪽이 다시 연락하게 되어 있거든.’

[설수지 양이 아쉬울 거란 근거는요?]

‘성수 여친에게 먼저 소개팅을 부탁했다잖아. 그것만 봐도 그쪽이 나에게 흥미를 가지고 있다는 소리지. 굳이 내가 숙이고 들어갈 필요는 없다는 말씀이야.’

[쓸데없이 자존심을 챙기는 것으로 보입니다만···.]

‘아니, 전혀 쓸데없지 않아.’

[어째서요?]

‘당분간 톡으로 연락을 주고받아야 할 텐데 이런 식으로 질질 끄는 여자애에게 휘둘리고 싶은 생각은 터럭만큼도 없어. 이런건 초장에 버릇을 잡아야지.’

[정말 통화를 했을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더 다행이지. 이유가 있어서 답장이 늦어진 거니까. 말 나온 김에 나도 통화나 해볼까?’

나는 어제 만난 한지연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전히 깨톡은 읽지도 않은 채였다.

한참 신호가 걸린 뒤에야 지연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야! 나 근무중이라고!

"근데, 뭐?"

-일할때 사적인 통화는 금지란 말이야.

"내 알 바 아니고. 내가 말한 건 어떻게 됐어?"

-아유, 정말···.

지연의 목소리가 살짝 울리는 것으로 보아 회장실인 것 같았다. 아마 내 전화를 받기 위해 급히 여자 화장실로 뛰어 들어간 것 같다.

-일단 팀장님한테 부탁해 놨어.

"무슨 부탁?"

-경호 대상을 은성 아가씨로 옮겨 달라고.

"너무 티나는 거 아냐? 갑자기 그런 요청을 하면."

-괜찮아. 어차피 고성민 성격 개차반인 거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고, 얼마 전에 은성 아가씨 쪽 전담팀에서 경호 인력을 늘려달라는 요청이 있었거든. 경호팀에 여자가 몇 없으니 내가 유력한 후보긴 해.

"그런거라면 다행이네."

-일단 은성 아가씨 경호팀에 배속된 다음에야 네 부탁을 전할 수 있을 거야. 그러니까 조급해 말고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

"조급한 적 없는데?"

-웃기시네. 이제껏 나한테 연락 한 번도 없다가 은성 아가씨랑 다리 놔달라고···.

"너랑 어제 좋아서 그랬지."

-으, 응?

"너와 함께한 시간이 너무 즐거워서 문득 생각나더라고."

-왜, 왜 이리 갑자기? 안 어울리게.

지연은 당황했는지 말을 더듬거렸다.

은근 순진하다니까 얘도.

"참, 혹시 너네 정보력을 좀 이용할 수 있을까?"

-무슨?

"별건 아니고 사람 하나만 검색해 달라고. 대형 로펌에 다니는 변호사라는데 성이 설씨야. 또 다른 형제는 현직 지검장이고. 역시 설씨겠지?"

-변호사? 지검장? 너 무슨 사고쳤니?

"아니 좀 개인적으로 알아보고 싶은 게 있어서."

-똑바로 말해. 갑자기 왜 변호사를 찾는데?

"그냥 좀 해주면 안되냐. 우리 사이에."

-우리가 무슨 사인데?

전화상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왠지 듣고 싶은 대답이 있는 모양이다. 답정너를 원한다면야, 얼마든지 해드려야지.

"그렇고 그런 사이지."

-그렇게 애매모호하게 말하지 말고.

"너가 원할 때 얼마든지 나 따먹어도 되는 사이."

-미, 미친! 야. 끊어. 나 지금 나가봐야 돼. 호출 왔어.

"부탁한 것 좀 최대한 빨리 알아봐줘."

-몰라!

뚝-

지연은 정말 바쁜 일이 있는지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분명 내 부탁을 거절할 수 없을 것이다.

암, 누구 부탁인데.

[변호사는 왜요?]

‘설수지 아버지가 변호사랬잖아. 삼촌은 현직 지검장이고.’

[근데요?]

‘일단 그쪽 집안에 대해 뭐라도 알아야 대처가 용이하지 않겠어? 상대는 법조인 집안의 딸이라고. 잘못 건드렸다간 나도 위험하단 말이지.’

[거참, 용의주도 하시군요.]

부르르-

그때 진동이 울렸다.

설수지에게서 온 깨톡 메시지였다.

설수지 : 바쁘세요?

나는 팝업으로 떠오른 설수지의 메시지를 보고 씩 웃었다.

‘봤지? 먼저 연락하는 거.’

[주인님이 답장을 안 보내서 다시 보낸 거잖습니까?]

‘아무튼 이젠 장난질 못 할 거야.’

나는 다시 답장을 보냈다.

이도훈 : 네. 저도 전화 통화 좀 하느라.

설수지 : 인기 많으신가 봐요.

이도훈 : 아녜요. 일요일인데 뽈 차러 오라고 과 선배가 전화해서요.

설수지 : 아~ 운동 좋아하시죠?

예상대로 소개녀의 답장은 훨씬 빨라졌다.

언제까지 멀쩡한 대학생 연기를 펼칠지 궁금해진 나는 슬슬 떡밥을 던질 준비를 했다.

이도훈 : 아무래도 과가 과니까요.

설수지 : 어떤 운동 잘하세요?

이도훈 : 몸으로 하는 건 다 조금씩은. 하하.

설수지 : 몸으로요?

이도훈 : 그러니까 맨몸으로 하는 종목요.

설수지 : 아~

나의 드립을 알아챘을까?

맨몸이라는 단어 대신 알몸이라고 쓰려다 너무 노골적인 같아 고쳤는데.

설수지 : 저도 운동 좋아해요. 맨몸운동.(이모티콘)

엇.

생각보다 적극적인 반응이었다.

특히 맨몸운동이라는 단어를 직접적으로 언급한 것은 뭔가 의도를 담고 있는 것 같은 뉘앙스를 풍겼다.

‘이거 생각보다 훨씬 쉬울지도 모르겠는데?’

[공략이 쉬우면 좋은 거죠.]

이도훈 : 정말요? 어떤 운동 좋아하세요.

설수지 : 음, 요샌 요가 배우고 있어요.

이도훈 : 요가요? 와, 멋있네요.

설수지 : 하하, 배운지 얼마 안 돼서 잘 하진 못 해요.

그러더니 갑자기 사진이 날아왔다. 속살이 훤히 비치는 타이트한 요가복을 입고 찍은 사진이었다.

"헉!"

나도 모르게 사진을 보는 순간 헉 소리가 절로 났다.

특히 깊이 패인 탱크 탑 골짜기 사이로 땀방울이 송송 맺힌 사진은 너무도 야해 보이는 이미지였다.

[와, 너무 노골적인 거 아닙니까? 초면부터 이런 사진이라니.]

‘근데 몸매 진짜 좋네. 가슴골 음영으로 봐선 B아니면 C정도?’

설수지 : 앗, 죄송해요. 요가 사진을 보낸다는 게 실수로 잘못 보내버렸어요.

그녀는 자신이 보낸 야시시한 사진을 실수라고 민망해 했다. 하지만 내가 볼 땐 전형적인 흘리기였다.

어떻게 반응할지 고민하다 우선 칭찬을 건냈다.

이도훈 : 건강해 보이는 사진이네요. 하하.

설수지 : 부끄러워요. (이모티콘)

땀을 삐질삐질 흘리는 사진으로 자신의 난처한 심정을 대변하는 수지를 보며 점점 그녀에게 흥미가 돋았다.

이렇게 멀쩡한 여자가 노출증 환자라니···.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그때 다른 사람에게서 메시지가 날아왔다.

방금 통화를 한 한지연이었다.

한지연 : 부탁한 거 알아봤어.

이도훈 : 엄청 빠른데?

한지연 : 다행히 경호팀 인명 베이스에 있는 사람이더라고. 로펌에 근무하는 사람의 이름은 설인혁, 법무법인 정명의 파트너 변호사던데? 그리고 친동생은 현재 수원지부 검사장인 설민혁. 둘 다 굉장한 인재야. 형은 연수원 수석. 동생은 다른 기수긴 하지만 차석에, 아버지도 판사로 퇴임하셨더라? 굉장히 유명한 법조인 가문이야.

성수 말이 맞았군.

생각했던 것보다 더 엄청난 집안이었다.

그때 또 문자가 도착했다.

한지연 : 나 근데 네가 왜 부탁했는지 알 것 같아.

이도훈 : 왜?

한지연 : 설인혁 변호사에게 외동딸이 하나 있더군. 설수지, 22세. 국성대 법대 재학 중. 얘 뒷조사 한 거 맞지?

큭, 역시 정보통이라 그런지 눈치 하난 귀신이다.

나는 일단 부정했다.

이도훈 : 아니야. 그냥 뭐 좀 궁금해서.

한지연 : 내가 너를 모르니? 난 니가 왜 난데없이 변호사랑 검사를 찾아봐 달라는지 했네. 야, 너 적당히 좀 해. 대체 여자를 몇 명을 만나고 다니는 거야?

답장을 할까 하다 씹었다. 괜히 답도 없는 말다툼 해 봐야 쓸데없는 시간 낭비다.

그나저나 듣던 것 이상으로 이력이 대단하다.

할아버지는 판사.

아버지는 연수원 수석에 로펌 파트너 변호사.

삼촌은 연수원 차석에 현직 지검장.

듣기론 부천의 김태희라고 불렸다는 소문으로 보아 본인 역시 굉장한 수재였을 가능성이 크다.

근데 어째 국성대 법대로 왔을까?

국성대를 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인 서울 법대 중에선 하위권에 속하는 게 사실이다. 내가 알기로만 국성대 윗급의 대학이 10개는 넘을 것이다.

일단 이건 나중에 묻기로 하고.

이도훈 : 저는 헬스 해요.

설수지 : 헬스요? 사진 같은 거 있어요?

수지는 대번에 사진을 요구했다. 어쩌면 자신의 사진을 먼저 보낸 이유가, 내 사진을 받아내긴 위한 미끼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은 계집애군.’

[근데 따로 찍은 게 있었나요?]

‘아니. 굳이 내 몸사진을 찍진 않지.’

[어쩌시게요?]

이도훈 : 안 그래도 지금 헬스장 가던 참인데, 가서 찍어 줄게요.

[집으로 가시는 거 아니었습니까?]

‘어쩔 수 없지. 마침 헬스장 가까우니까 가서 사진 한 장 찍어 보내야지.’

현재 거주하는 원룸은 역세권이 아니라 지하철을 나서면 자취집과 헬스장의 중간 정도 거리였다.

‘말 나온 김에 오랜만에 몸 좀 풀고. 계속 운동을 쉬었더니 영 찌뿌둥 하네.’

[좋은 생각입니다. 근육질의 몸을 유지하시려면 계속 관리가 필요하니까요.]

헬스장까지 가볍게 구보로 뛰어가니 몸에 살짝 땀이 났다. 오랜만에 본 직원의 인사를 대충 받아넘기고 곧바로 헬스복으로 갈아입었다.

‘가슴을 펌핑하고 찍어야겠지?’

시작부터 벤치 프레스에 올랐다. 앞선 사람이 힘이 좋았는지 커다란 원판이 양쪽에 3개나 걸려 있었다.

"후읍!"

오랜만에 자세를 잡았는데도, 엊그제 헬스를 한 것처럼 익숙했다. 무의식적으로 최적의 팔각도와 호흡이 나왔다.

‘오옷, 뭐지?’

[지난번 미나양에게서 얻은 헬스 적성입니다. 주인님은 현재 준트레이너급의 헬스 지식을 체화한 상태입니다.]

‘아, 그랬지?’

어쩐지 뭔가 자연스럽다 싶었다. 1분씩 쉬면서 3세트를 돌리고 나니 가슴이 뻐근해졌다. 헬스복 위로 부풀어 오른 가슴이 튀어나오고 팔 부위가 타이트하게 조여졌다.

나는 거울을 보며 셀카를 찍은 뒤 수지에게 전송했다.

이도훈 : 방금 찍었어요.

설수지 : 와! 정말 헬스장이네요? 몸 좋으시다.

이도훈 : 에이, 보통이에요.

설수지 : 혹시 복근도 있으세요?

이것봐라?

노출증 환자라는 건 예상했지만, 생각보다 빠르게 본색을 드러냈다. 어쩌면 아까 ‘맨몸’운동에서 뭔가를 캐치한 걸까?

나는 사람들이 볼새랴 빠르게 상의를 반쯤 들춰 복근 사진을 찍었다. 군살 하나 없이 매끈한 복근은 내가 봐도 멋있었다.

사진은 찍었으나 요구하는데로 보내자니 조금 망설여졌다.

이도훈 : 그건 좀 민망해서.

설수지 : 보고 싶어요. 저도 다른 사진 보내드릴게요.

어랍쇼? 왠지 내 몸을 보고 싶다기보다 자기 사진을 보내기 위한 핑계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역시 노출증이 확실해.’

[주인님과 죽이 잘 맞는군요.]

‘무슨 소리야. 나도 노출증이라는 거야?’

[주인님도 훌렁훌렁 잘 벗지 않습니까?]

‘난 필요할 때 아니면 안 벗지. 딱히 몸 자랑 할 생각도 없고.’

[그게 그거죠.]

‘암튼, 어디까지 가나 한 번 보자. 왠지 이번 공략은 쉬울 거 같은데?’

복근이 나온 사진을 전송하자 수지에게서 바로 답장이 왔다.

설수지 : 꺄아, 오빠 몸 엄청 좋으시네요.

이도훈 : 감사합니다.

설수지 : 비교될까 봐 제 사진은 못 보내겠어요. T_T

아니, 이게 무슨 개소리야? 나 낚인거야?

흥분한 나는 곧바로 따지려다 잠깐 핸드폰을 놓았다.

누군가 옆에서 말을 걸었기 때문이었다.

"이도훈 회원님 맞으시죠?"

지난번 봤던 남자 트레이너였다. 하도 오랜만이라 이름도 까먹었다.

"네 안녕하세요."

"요새 왜 이렇게 안 나오셨어요?"

"교생 실습 때문에 좀 바빠 가지고요."

"전 또 미나 코치 없어서 안 나오신 줄! 하하!"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고.’

"미나 선생님은 잘 계시나요?"

"네, 필라테스 학원 잘 된다 하더라고요. 그리고 이건 저희끼리 하는 얘긴데···."

남자 트레이너가 목소리를 줄이더니 속삭였다.

"···여기 계시던 여자 회원님들도 많이 따라 옮기셨더라고요."

"아···."

"아무튼 여기서 알바 생각 있음 언제든 말해요. 방학 때만이라도 좋으니까. 이도훈씨라면 언제든 환영입니다."

"네."

코치랑 잠시 대화를 나누는데 들고 있던 핸드폰에서 진동이 왔다.

설수지 : (사진)

‘안 보낸다더니···.’

팝업에 바로 사진이 뜨지 않아 화면을 클릭했다.

< 547. 거자필반-7- > 끝

ⓒ 성난불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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