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549화 (522/2,000)

< 531. 교생 실습 -75- >

***

"내 상식으로는 여자들은 쿨한 게 더 멋있지 않니? 설마 오늘 한 번 잤다고 사귀고 그러는 건 아니지?"

"쿨한 여자요···?"

도훈의 상식 개변 스킬이 적용되자 거울을 쳐다보던 진아의 눈빛이 묘하게 바뀌었다. 새로운 상식이 기존의 관념을 대체하며, 그녀의 이성관을 재정립했다.

‘맞아, 쿨한 여자가 훨씬 근사하지. 근데 나 왜 이렇게 구질구질하게 살았지?’

스킬로 인해 생각이 바뀐 진아는 그간 처녀를 지키며 살아왔던 무수한 날들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요즘 같은 시대에 처녀가 자랑도 아닌데 말이야.’

동시에 도훈과의 관계도 새롭게 정리되었다.

‘어쩌다 섹스 좀 했다고 오빠랑 굳이 사귀어야 할 필욘 없잖아? 마음만 맞으면 한 번쯤 잘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오늘 일은 학교에선 비밀이다. 알지?"

"당연하죠. 오빤 제가 설마 사귀자고 할 줄 알았어요?"

거울을 통해 진아의 얼굴을 바라보던 도훈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몇 마디 암시만으로 사람의 사고방식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정도였다.

기존의 매저키스트 밧줄을 이용한 정신 조작 스킬이 인신을 구속해 꼭두각시처럼 조종하는 것에 그쳤다면, 상식 개변 스킬은 세뇌에 가까울 정도로 인간을 정신을 조작할 수 있었다. 잘만 활용한다면 현자 타임의 두뇌 가속 스킬 만큼 엄청난 폭발력을 지닌 스킬이었다.

‘스킬의 위력이 이 정도였을 줄이야. 이건 정말 말이 안 나오는군.’

[상식 개변 스킬은 그 강력한 위력 때문에 사용하는데 늘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한 사람의 가치관을 송두리째 바꿔 놓을 수 있으니까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 그리고 패널티를 어째서 그렇게 강조했던 건지도.’

도훈은 앞으로 해당 스킬을 신중히 사용할 것을 다짐하며, 쿨녀로 변한 진아와 2차전을 이어갔다.

진아는 그날 대실이 끝날 때까지 두 발로 걷지도 못 할 만큼 도훈에게 따먹혀야 했다.

***

"그럼 조심히 들어가."

"네, 오빠두요."

교외 드라이브를 마치고 서울로 다시 도착한 시간은 오후가 다 훌쩍 넘은 시간이었다. 진아를 바래다준 도훈은 집 쪽으로 방향을 돌리며 로시에게 말했다.

‘방금 들었지?’

[뭘요?]

‘차에서 내리기 전 진아가 했던 말.’

[아, 네. 다소 충격적이더군요.]

‘뭐랬더라? 오빠 그럼 저랑 섹파나 할래요, 라던가?’

[분명 그리 말했습니다.]

‘캬-. 쿨내가 풀풀 나는 구만. 오수정도 한 수 접고 가겠어. 근데 이러다 너무 자유분방해 져버리는 거 아니냐? 양희주처럼 프리섹스 주의자는 좀 별론데···.’

도훈은 쿨하다 못해 헤프기 짝이 없는 학과 후배 희주를 떠올렸다. 남자친구가 빤히 있으면서도 노래방에서 바람을 피워 댄 희주는, 정조관념 따위는 저 멀리 안드로메다로 날려버린 여자였다. 즐기기는 좋지만, 딱히 정이 가거나 계속 챙겨주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그럴 염려는 안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어째서?’

[진아양과 희주양은 정반대 성향이니까요. 진아양은 자존감이 지나치게 높고, 기본적으로 남자를 낮춰 보는 입장이기 때문에 쉽게 누군가와 섹슈얼한 관계를 맺진 않을 겁니다. 주인님과 동급이 아니고선 말이죠.]

‘하긴. 진아가 얼굴값 좀 심하게 하긴 하더라. 희주는 딱 생긴 대로 놀고.’

[희주양도 몸매 하나는 끝내주지 않던가요?]

‘응. 얼굴에 비닐봉지 씌우고 나면 먹어 줄만은 하지. 아님 시작부터 끝까지 이불에 머리 처박고 뒤치기만 주구장창 하던지.’

[주, 주인님 그건 좀···.]

‘참, 그럼 이제 진아의 상식은 더 이상 변하지 않는 건가?’

[무슨 말씀이시죠?]

‘내가 바꿔 놓은 상식은 이제 평생 가는 거야? 스킬의 지속시간이 있다거나···.’

[지속 시간의 개념은 없습니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계속 생각이나 사상이 바뀌기 마련이니까요. 어떠한 계기가 있다면 뒤집어진 개념에 혼란을 느껴 다시 변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시일이 걸리는 일이구요.]

‘마치 내가 유부녀나 애인 있는 여자도 가리지 않게 된 것처럼 말이군.’

[주인님도 처음과 비교하면 굉장히 많이 바뀌셨지요. 편의점 알바 할 때랑 비교하면 천지개벽 수준이랄까요?]

도훈이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하린이를 처음 따줬을 때의 나랑 지금은 전혀 다른 사람이지.’

무엇이 더 옳고 그르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삶은 관통하는 명징한 단 하나의 진리는, 모든 것은 변한다는 사실 뿐이다.

도훈이 옛 생각을 하는데 때마침 하린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실은 서울 도착 예정 시간에 맞추어 하린에게 미리 메시지를 남겨놓은 도훈이었다.

-여보세요? 오빠, 저 친구랑 막 헤어졌어요.

"어, 하린아. 지금은 어디야?"

-오빠 집 쪽으로 걸어가는 길이에요. 그때 그 원룸 맞죠?

"응. 어딘지 기억나니?"

-대충은요.

"그래. 나도 금방 도착하니까 집 앞에서 보자."

-네.

전화를 끊은 도훈이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하린이도 많이 달라졌으려나···."

처녀를 따주기 전 하린은 교대 입학이 간절한 재수생에 지나지 않았다. 이제 어엿한 대학생이 된 그녀가 어떻게 발전해 있을지 궁금했다.

***

집 앞에 도착하자 하린이 커다란 여행 가방을 옆에 세운 채 기다리고 있었다. 주차장에 차를 주차 시킨 나를 향해 하린이 물었다.

"어머? 오빠 차도 있어요?"

"아니. 일본 출장 간 외삼촌이 잠깐 쓰라고 빌려주셨어."

"외삼촌요?"

나는 또 한 번 있지도 않은 가공의 외삼촌을 만들어 냈다.

"아, 그러셨구나. 부럽네요. 차도 모시고."

"내 차도 아니고 잠깐 빌리는 건데 뭘. 근데 그 캐리어는 뭐야?"

"아, 이거요? 집에서 여름 옷 좀 챙겨 왔어요."

"챙겨오다니?"

"엄만 저녁에 바로 충주 내려가는 줄 아시거든요."

"응? 그러면···."

하린이 해맑게 웃었다.

"저, 오늘 오빠 집에서 자고 가도 되죠?"

헐. 작정했네, 작정했어.

짐까지 바리바리 싸들고 올 줄이야.

"뭐 상관은 없는데···. 일단 들어가자."

"네."

"가방 이리 줘."

"괜찮아요."

"아니야. 엘리베이터도 없는데."

원룸 문을 열고 들어가자 하린이 신발을 가지런히 현관 앞에 정리했다. 외간 남자 집에 발을 들이는 데 전혀 긴장한 기색이 없었다. 처음 우리집에 초대했을 때 뻘쭘해 하던 모습과는 사뭇 달라진 반응이었다.

‘제법 대범해진 것 같기도?’

[주인님이 편해서 그런 게 아닐까요?]

‘한 번 떠보면 알겠지.’

"내일 아침 일찍 내려가야 한다고?"

"네."

"잠은 우리 집에서 자고?"

"왜요? 혹시 불편하세요?"

"아니, 재워주는 건 문제가 아닌데, 굳이 점장님한테 거짓말까지···."

"풉-. 아직도 울 엄말 점장님이라고 불러요?"

"그게 입에 붙어가지고."

"집에서 잔다면 저녁 늦게 못 있게 할 것 같아서요. 벌써 7시 다 되어 가는데 9시면 들어가야 하거든요."

"너 통금도 있니?"

"통금까진 아닌데 9시 지나면 엄마가 계속 전화하시거든요. 안받으면 스무통도 넘게 하실걸요?"

"하긴 나라도 걱정되시긴 하겠다. 이렇게 예쁜 딸이 밤늦게 돌아다니면···."

"오빠도 참···. 오빠가 제일 위험하거든요?"

"내가?"

"저 덮칠 사람이 오빠 말고 또 있어요?"

나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말을 돌렸다.

"차라도 한 잔 타 줄까?"

"네, 커피요."

캐리어를 현관 한켠에 정리하고 주방에서 물을 올렸다. 그 사이 하린은 오랜만에 온 내방을 구경했다. 그때와 별로 달라진 것도 없는데 유난히 꼼꼼히 관찰하는 하린에게 물었다.

"뭘 그렇게 유심히 봐?"

"여자 흔적 있는지 찾아보려고요."

"응?"

"이 방에 저 말고 다른 여자들도 많이 왔다 갔을 것 같아서요."

"나 여자친구 없다니까?"

"그 말 진짜였어요?"

하린이 의외라는 듯 물었다.

"그럼 내가 뻥 치는 줄 알았니?"

"전 당연히 있을 거라고 봤는데···."

"너처럼?"

야유 섞인 비난에 하린이 쪼르르 달려와 뒤에서 나를 꼭 껴안았다. 커다란 가슴이 등에 부딪히자 물컹한 촉감이 전해졌다. 애교가 많이 늘었군.

"아잉, 왜 그러세요옹, 오빠."

육탄 돌격과 함께 콧소리를 내는 하린을 보며, 나는 시큰둥히 머그잔에 커피를 털어 넣었다.

"교대 가자마자 그렇게 빨리 남친 생길 줄은 몰랐네."

"아니에요. 그게···. 남자친구가 절 너무 좋아라해서···."

"너도 괜찮으니까 사귄 거 아냐?"

"물론 그렇기도 하지만···."

하린의 목소리가 어딘가 석연찮았다. 정보창에 나온 것처럼 현재 남자친구와의 관계가 썩 만족스럽지 못한 듯했다. 나는 이유를 뻔히 알면서 모르는 척 물었다.

"왜? 남자친구랑 무슨 문제 있어?"

"아니 뭐··· 꼭 문제라기보다는···."

"잠깐, 컵에 물 좀 따르고."

나는 허리를 껴안은 하린을 정중히 뿌리친 뒤 커피를 완성했다. 하린은 나의 행동에 거리감을 느꼈는지 머쓱한 표정으로 물러섰다.

"자, 됐다."

"···고마워요."

방안에 앉아 커피를 홀짝이던 하린이 내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오빠 혹시 화난 건 아니죠?"

"화? 무슨 화?"

"아니 제가··· 남자친구 생겨서···."

"배신감이 좀 들긴 했지. 연락이 없던 이유가 다른 남자 때문이었다니."

"아이참, 왜 그러세요 증말. 그러고 보니 오빠도 오늘 여자 만났잖아요?"

"응. 만나긴 했지."

"게다가 썸녀라면서요?"

"썸인 줄 알았는데 쌈이더라."

"왜요? 오늘 잘 안 됐어요?"

하린의 목소리가 유난히 들떠 보였다.

마치 내가 잘 안 되서 다행이다는 표정이다.

사실대로 말할까 하다 굳이 질투심을 유발할 필욘 없을 것 같아 거짓말을 했다.

"그냥 밥 먹고 나서 방 탈출 까페 갔는데 분위기가 별로 안 좋았어."

"거기서 무슨 일 있었어요?"

"난 게임에만 열중했는데 자기한테 집중 안 했다고 삐친 것 같더라고. 그 뒤론 별 말도 안하고."

"아항, 오빠가 잘못했네요."

"내가 뭘?"

"데이트하는데 여자한테 관심을 둬야지 게임에 집중하시면 안 되죠."

"1시간 안에 탈출해야 하는데 그럼 어째?"

"오빠가 그래서 여자친구가 아직 없으시구나?"

"넌 있다고 유세 떠는 거니, 지금?"

"휴-. 있음 뭐해요. 남자 구실도 제대로 못 하는데···."

하린이 머그잔을 내려놓고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슬슬 입질을 올리는 그녀의 속내가 훤히 보이는 것 같아 퍽 우스웠다.

‘지금부턴 답정너 해줄 타이밍인가?’

"왜? 진짜 무슨 문제 있는 거 아냐?"

"그냥 좀 그래요."

"말해봐. 내가 연애 상담해 줄게."

"그게··· 말하긴 남부끄런 얘기라서요."

"괜찮아. 우리 사이에···."

"풉-. 우리가 어떤 사인데요?"

중요한 순간이다.

뻔히 남자친구가 있다고 밝힌 그녀에게 새로운 관계를 정립해야 한다. 괜히 남의 연인 사이에 껴들거나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다간 하린이도 부담을 느낄 것 같았다.

"어떤 사이긴? 난 과외선생이고 넌 내 수제자지."

"푸합-! 오빠도 참!"

"괜찮으니까 말해봐. 혹시 아니? 내가 도움이 될지도···."

"몰라요. 남자 친구가 좀 그래요."

"그러니까 뭐가?"

하린이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그 뭐라하지? 음 좀 빨라요."

"달리기가?"

"에이, 알면서 괜히 그러신다? 시간이 너무 짧다구요."

"조루란 말이야?"

"뭐, 그렇죠."

"어느정돈데? 30분?"

하린이 코웃음을 쳤다.

"30분요? 그거면 소원이 없겠네요."

"10분?"

"10분이라도 감지덕지겠네요."

"뭐야? 그럼 5분?"

"3분이요. 아니, 3분도 아냐. 지난 번에는 넣자 마자 싸더라고요."

하린은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는지 흥분해서 소리쳤다.

"진짜 처음에는 긴장해서 그런지 알았거든요? 제가 첫경험이라더라고요."

"니가 동정을 떼줬네?"

"아니 뭐··· 암튼. 처음에는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그런데 두 번, 세 번 해도 전혀 나아질 기미가 없는 거에요."

"너가 애무를 너무 빡세게 해버린 거 아냐?"

"무슨 애무요?"

"가령 입으로···."

야한 얘기가 시작되자 하린의 얼굴에 생기가 도는 것 같았다. 예전엔 수줍어했는데, 어느새 이런 대화 정도는 술자리 안줏거리 정도로 여기는 수준이 되었을까? 하긴 예전에도 경험만 없었지 막 순진하거나 하진 않았던 것 같기도.

"아니에요. 저도 그런 줄 알고 자제 했거든요? 너무 민감한 거 같아서요."

"그런데?"

"근데 음···. 오빠는 제 가슴만 만져도 막 싸려고 해요."

"만지기만 해도?"

"네!"

"말이 안되는데?"

"그러니까요. 답답해 죽겠어요. 왜 그렇게 못 참는 걸까요?"

나는 얇은 티를 입고 온 그녀의 가슴을 빤히 쳐다보았다. 몸에 살짝 붙는 재질이었기 때문에 커다란 가슴의 굴곡이 고스란히 보였다.

‘역시 D컵은 D컵이네. 진아도 제법 크다고 생각했는데 가슴만 치면 압도적으로 발리겠는데?’

오랜만에 마주친 거유에 좆 끝에 바짝바짝 반응이 왔다.

저 큼지막한 가슴골 사이에 대물을 끼우고 비비고 싶다.

"음, 내 생각엔 너가 너무 색기가 넘쳐서 그래."

"색기요?"

"음기가 좀 쎄달까?"

"그게 무슨 뜻이에요?"

"대가 약한 남자가 버티기엔 너무 강한 여자라는 거지."

"제가요? 전 잘 모르겠던데···."

"아냐. 나도 너랑 해봤잖아."

"아이참, 그 얘길 지금 왜 하시는 건데요~."

하린이 부끄럽다는 듯 팔뚝에 애교펀치를 날렸다.

아주 아양을 떨지 그러냐?

"내 생각엔 너처럼 음기가 센 여자는 더 센 남자가 꾹꾹 눌러줘야지 풀릴 것 같은데···."

슬슬 흘리기를 시작하자 하린이 몸을 바짝 붙이며 속삭였다.

"그 센 남자가 어디 있는데요?"

< 531. 교생 실습 -75- > 끝

ⓒ 성난불기둥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