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4. 교생 실습-68- >
"그 말 진심이세요? 또 뻥 치는 거 아니죠?"
하도 당한 게 많았던 진아는 의뭉스러운 눈초리로 도훈을 흘겨보았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도훈도 뒤로 빼지 않았다.
"아냐. 난 혜진이보다 사실 너한테 더 관심 많아."
"아, 아니 무슨···. 이건 너무 갑작스럽지 않아요?"
"나는 이미 네가 알고 있는 줄 알았는데?"
"제가 어떻게 알아요? 한 번도 말해준 적 없으면서···."
"진짜라니까?"
진아는 부끄러워하면서도 입가에 미소를 숨기지 못했다. 호감을 품고 있던 도훈이 먼저 고백하자, 지금까지의 장난스럽던 태도가 모두 너그럽게 용서가 되었다. 진아가 부끄러워하면서 말꼬리를 흘렸다.
"전 오빠가 하도 티를 안 내니까···."
"티 팍팍 냈어."
"언제요?"
"네 가슴 물고 빨고 싶다고."
"억! 진짜 끝까지 이럴 거예요?"
"원래 좋아하면 그런 생각 드는 게 당연한 거야."
도훈이 뻔뻔하게 대꾸했다.
"아무리 그래도 진도라는 게 있잖아요!"
"진도? 무슨 진도? 사귀고 섹스하나, 섹스하고 사귀나 그게 무슨 차인데?"
도훈의 궤변에 진아가 발끈했다.
"다, 당연히 다르죠! 어떻게 그게 같아요?"
"좋아하니까 섹스하고 싶고, 섹스하니까 더 좋아지는 거지. 달걀이 먼전지 닭이 먼전지 그게 그렇게 중요해?"
"그치만 서로를 천천히 알아가면서···."
"그냥 한 번에 알면 안 돼? 어차피 언젠간 할 건데 꼭 그렇게 미루면서 이리저리 재야 하나? 몸은 하고 싶어 죽겠는데도?"
"아니, 이 오빠가 정말 못 하는 말이···."
"난 솔직히···."
도훈이 중간에 말을 끊었다.
"이건 진심으로 하는 얘긴데, 가슴 작은 여자하곤 사귀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어."
"······."
"날 저질이라 생각해도 좋아. 내 취향이 원래 그런 걸 어떡해? 그래서 확인해 보고 싶어."
"뭐, 뭘요?"
"너가 진짜 자연산인지, 아닌지."
"하-. 진짜 맞다니까요?"
"그러니까 확인해 보자."
"무슨 소리예요, 대체!"
진아가 벌컥 목소릴 높였다. 까페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두 사람을 향할 만큼 격렬한 반응이었다. 그러나 곧 남 일에 관여치 않겠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도훈은 잠시 호흡을 끊었다가 진지한 표정으로 다시 말했다.
"진짠지 아닌지 확인해 보고 싶어. 너가 뽕브라 얘길 꺼낸 뒤론 이젠 보지 않고는 도저히 못 믿겠거든."
"···흠."
진아는 당장이라도 화를 내며 뺨을 날리고 싶은 충동과, 그를 어떻게든 이해하고 싶은 양가 적인 마음으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오오, 주인님. 이번 공략은 제법 과감하신데요?]
‘어차피 모 아니면 도야. 스킬도 쓸 수 없으니 도박을 걸어 봐야지.’
[하지만 그런 제안에 응할 여자가 과연 있을까요?]
‘계속 생각했어.’
[뭘요?]
‘나를 좋아하는 여자를 휘두를 땐 어떤 식으로 행동해야 할지 말이야.’
[이게 그 해답인가요?]
‘보통 때라면 이렇게 극단적으로 밀어붙이진 않았겠지. 하지만 진아에겐 왠지 통할 것 같았거든.’
[콧대 높은 진아양이 이런 말도 안 되는 요구에 응한다고요?]
‘그래서 미리 떡밥을 던졌잖아.’
[무슨 떡밥요?]
‘사귀고 섹스하나, 섹스하고 사귀나 매한가지라면서.’
[설마, 주인님 지금 먹튀를 계획 중이신 겁니까?]
‘어차피 쉽지 않은 공략이야.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 이리저리 통 빡 굴려봐야 답은 안 나온다고.’
[그건 그렇지만···.]
‘그리고···. 솔직히 말장난이긴 하지만, 난 섹스한다고 사귀어 준다고는 말 안 했어.’
[아니, 그럼···.]
‘그렇게 착각하게끔 유도한 거지.’
[너무 나쁜 남잔데요, 이건.]
‘나를 자꾸 나쁜 남자로 만드네, 진아가.’
[비겁한 변명입니다.]
‘어차피 이현령비현령이야. 뭐 지금껏 관계한 여자들은 다 사귀는 사이라 섹스했나? 섹스하고 적당히 둘러댄 거지.’
[하아-. 유부녀는 절대 건드리지 않는다는 금기를 깨뜨린 이후부터 정말 막 나가시는군요.]
‘공략이 우선이야. 일단 먹고 나면 대책은 생기기 마련이니까.’
[네?]
"딱 가슴만 확인할 거야. 네가 어떤 생각하는지는 아는데, 나도 거기까진 생각 없어."
망설이는 진아를, 도훈이 살살 꼬드겼다.
마치 손만 잡고 잘게 라던가, 술만 깨려고 들어가는 거야 따위로 순진한 여자를 안심시키는 고전적인 수법이었다. 고전은 진부하지만, 그만큼 잘 통하기에 고전이다.
"지, 진짜죠?"
진아는 끝내 미끼를 덥석 물었다.
"진짜 가슴만 보는 거죠?"
"당연하지. 오빠 못 믿니?"
"흐음···."
[아아, 더 좋아하는 쪽이 약자라더니···. 순진한 진아양이 한순간의 유혹에 넘어가고 말았군요!]
‘한순간이라니? 방 탈출 카페에서부터 얼마나 양념을 묻혀 놨는데. 진아도 사람이야. 아무리 순진한 처녀라도 정말 그런 생각 전혀 안 할 거 같아?’
[물론 그렇다곤 해도···.]
‘사람들은 흔히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 말하지만, 때론 육체가 정신을 지배하기도 하는 법이야. 본능이라는 게 얼마나 맹목적인지 이제부터 보게 될 거야.’
"근데 어디서요? 설마 여기선 아니죠?"
도훈은 말없이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아까 차 안에서 가리켰던 러브호텔이 자리 잡고 있었다.
***
"대실이요."
"일반이요, 특실이요?"
"특실로 주세요."
"3만원입니다. 3시간이고요."
"네."
계산을 치르고 모텔 주인이 키를 건넬 때까지 진아는 창피한 듯 뒤에 숨어 있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잽싸게 뛰쳐 들어가는 거로 봐선, 지금의 상황을 몹시 부끄러워하는 듯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그제야 진아가 말문을 열었다.
"오빤 능숙하네요? 난 엄청 떨리는데."
"당연히 한두 번 온 게 아니니까."
"정말요?"
"아니, 군대서 외박 나오면 모텔서 많이 잤거든."
"아, 군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는 동안 진아는 자꾸 거울을 쳐다보며 머리를 쓸어 넘겼다. 목울대를 꿀렁이는 거로 봐선 입이 바싹 마르는지 억지로 침을 삼키는 모양새였다.
띵-
"다 왔다."
나는 뻘쭘해하는 진아를 위해 서둘러 모텔 방을 찾았다. 우리가 빌린 방은 다행히 엘리베이터에서 가까이 있었다.
"702호 이방이네. 들어가자."
"자, 잠시만요."
"왜?"
"손에 든 건 뭐예요?"
진아가 손에 든 일회용 세트를 보고 물었다.
"아, 이거? 칫솔이랑 샴푸 같은 거 들어 있을걸?"
"그···, 혹시 이상한 거 든 건 아니죠?"
"이상한 거?"
"그러니까··· 코, 콘돔이라든가···."
"글쎄? 한 번 찾아볼까?"
"아, 아니에요. 됐어요."
진아가 먼저 방으로 뛰어들어갔다. 평소의 당찬 모습과 달리 유달리 긴장한 모습이, 그녀 말마따나 생짜 숫처녀인 모양이다.
"으으, 모텔이라니···. 미쳤어, 진짜."
방 한가운데 선 진아가 불경스러운 곳을 발을 디딘 사람처럼 몸서리를 쳤다. 작금의 사건이 그녀의 인생에서 엄청난 도전이라도 되는 모양이다. 하긴 동정을 떼는 것도 평생 기억에 남는데, 처녀야 오죽하겠냐만.
나는 피식 웃으며 그녀를 지나쳐 침대 위에 다리를 내놓고 벌러덩 드러 누웠다.
"으! 침대보니 한숨 자고 싶네. 운전을 너무 빡세게 했나 봐."
"그러게 누가 그렇게 빨리 달리래요? 무슨 카레이서도 아니고. 게다가 그거 삼촌 차라면서요? 과속 찍혔음 어쩌려고 그래요?"
방으로 들어온 진아는 안도감이 드는지 점점 목소리가 커졌다.
"그냥 한번 달리고 싶었어."
"저 아까 엄청 겁났거든요?"
"미안해. 돌아가는 길은 최대한 안전운전 할게. 다리가 후들거려서 제대로 밟기나 할는지 모르겠지만···."
"다, 다리가 왜 후들거려요? 오빠 진짜 자꾸 이럼 나 나갈 거예요?"
용케 드립을 알아챈 진아가 허리 위에 손을 얹으며 으름장을 놨다. 후후, 들어갈 땐 네 맘대로지만, 나갈 때는 허락 맡아야 할 건데?
"무슨 소리야 자꾸? 엊그제 볼링한 다리가 아직 뭉쳤다는 얘긴데."
"보, 볼링요?"
"말 나온 김에 잘됐네, 기왕 누운 김에 다리나 좀 주물러 줄래?"
침대에 누워 다리를 들어 올리자, 진아가 어이가 없다는 듯 콧방귀를 꼈다.
"장난해요, 지금? 제가 오빠 다리 주물러 주는 사람이에요?"
"하기 싫음 말지, 말 참 예쁘게 하네. 그럼 내가 주물러 줄게. 이리와."
팡팡!
손바닥으로 침대 쿠션을 팡팡 두들기자 그 모습을 바라본 진아가 움찔 놀라며 뒷걸음질 쳤다.
"뭐, 뭐예요. 오빠 진짜 이러려고 왔어요?"
"뭘 자꾸 이런다는 거야? 주물러 주기도 싫다. 주물러 준데도 싫다. 그냥 무조건 싫다고만 하네."
"그, 그치만··· 부끄럽단 말이에요."
"알았어. 주무르란 말 안 할 테니 잠깐 이리 앉아봐."
"됐어요. 난 저기 앉을래요."
진아는 끝까지 튕기며 구석에 소파에 앉았다.
같은 처녀지만 연구부장 김한솔과는 사뭇 다른 반응이다.
‘확실히 제일 힘든 게 처녀 빤스 벗기는 일이네.’
[한데 모텔까지 스스로 따라 들어와 놓고 왜 저러는 걸까요?]
‘자존심이지. 얼어 죽을 자존심.’
[이래선 공략이 가능할런지나 모르겠습니다.]
‘어쩔 수 없지. 전가의 보도를 꺼내는 수밖에···.’
[보도요?]
"어차피 3시간 쉴 수 있으니까 나 좀 씻을 게."
"왜, 왜요?"
"너 보고 씻으라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놀래니?"
"방이 하나뿐이니까 그렇죠!"
"됐거든. 나 옷 입고 들어갈 거거든. 문 열어 보지나 마라."
나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세면도구 세트에서 칫솔을 챙겨 화장실로 들어갔다. 모텔의 샤워 시설은 일전의 불투명 유리가 아닌 완전밀폐된 공간이었다.
나는 옷을 벗지도 않고 샤워기의 물을 틀며 소리쳤다.
"들어오지 마라."
"아, 안 들어가요! 진짜 저질이야!"
[결국, 대물로 유혹하실 속셈인가요?]
‘그것도 있는데, 벗기 편하게 옷부터 갈아입으려고. 하나씩 벗고 있다간 그 사이 도망갈지도 모르니까.’
[여러모로 쉽지 않은 상대네요.]
‘난이도 높은 미션이니 이정돈 감안 해야지. 그나저나 진아가 그걸 봤으려나?’
[뭐요?]
‘일부러 세면도구 세트에서 콘돔 흘리고 왔거든.’
[캬, 역시 주인님. 잔머리가···.]
‘마음의 소리 거리 되겠어?’
[네. 가능합니다.]
‘진아 속마음 좀 들려줘봐.’
[지금 스킬 실행하겠습니다.]
<휴, 내가 미쳤지! 무슨 생각으로 여길 따라 들어 온 거람? 그렇다고 저렇게 애원하는데 무작정 짜증 내고 싫다고 할 수도 없고···.
[모텔에 따라온 걸 후회하고 있군요.]
‘어차피 후회해 봐야 늦었어. 여긴 서울서 한참 먼 교왼데 차도 없이 어떻게 돌아갈 건데?’
[설마 그것까지 염두해 두신 겁니까?]
‘의도한 건 아닌데, 현자 타임 때 도훈이가 어떻게 그림을 잘 만들어 놨네.’
[그땐 정말 가관이었습니다.]
‘나도 아니까 그 얘긴 나중에 해.’
아, 근데 오빠가 내 가슴 보고 작다고 하면 어쩌지? 아까 교대생 걔 보니까 엄청 크던데···. 그 정도로 큰 가슴을 원하는 건 아니겠지?>
[박하린 양과 비교되긴 싫나 보군요.]
‘하린이가 거유긴 거유지. 걔보다 큰 여자는 걔네 엄마랑, 폭유 간호사, 그리고 텐프로 아가씨 아이빈가 뭔가 하는 젖소뿐이었으니까.’
<아냐. 내가 꿀릴 리 없어. 무식하게 크기만 한 것보다 모양 이쁜 가슴이 훨씬 낫지. 아, 근데 너무 떨린다. 오빤 왜 갑자기 씻으러 간 거야? 설마 날 덮치려는 건 아니겠지?
‘크크. 은근히 덮쳐주길 바라는 것 같지 않냐?’
[모텔까지 따라 들어왔으니 바보도 아니고, 나름 생각이 있지 않겠습니까?]
‘결정적인 순간에 덮쳐야 하는데···. 슬슬 반응이 올 때가···.’
<응? 이게 뭐지? 오빠가 흘리고 갔나?
[발견한 거 같습니다.]
‘좋아. 슬슬 타이밍 재 볼까?’
<헉, 이 미끌미끌한 느낌. 설마 이거 콘돔이야? 고등학교 때 성교육 영상으로 본 이후 처음이네. 한 번 뜯어 볼까?
나는 서둘러 옷을 벗었다. 적당히 몸에 물기를 묻히고 커다란 베쓰타올로 하체를 둘렀다.
아냐. 괜히 뜯었다가 도훈 오빠를 흥분시킬지도 몰라. 이건 숨겨야겠어. 아니지. 근데 콘돔 없다고 그냥 생으로 해버리면···. 아, 그건 더 무서운데···.>
‘지금이다. 로시.’
나는 문을 벌컥 열고 소리쳤다.
"진아야, 깜빡하고 가운을···. 어? 너 뭐 만지고 있어?"
진아는 도둑질하다 들킨 사람처럼 화들짝 놀라며 콘돔을 뒤로 숨겼다.
"아앗! 뭐, 뭐예요 갑자기 문을 벌컥 열고!"
"아니 갈아입게 가운 좀 달라고. 너 근데 뭐 숨긴 거야?"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닌데? 내가 숨기는 거 봤는데?"
"지, 진짜로 아니에요. 얼른 들어가요."
"이게 내 눈으로 다 봤는데 거짓말하네? 얼른 줘봐."
"진짜 아무것도 아니라니까요?"
진아는 등 뒤로 콘돔을 숨기고 뒷걸음질 치다 침대에 발이 걸려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어, 엄마야!"
몸이 완전히 넘어간 진아는 원피스 치마가 까뒤집히며 속살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뭐야? 괜찮아? 다친거 아니야?"
나는 뒤로 자빠진 진아를 부축하는 척 서둘러 그녀에게 달려갔다. 그러는 사이 헐겁게 감싸둔 타올이 스르륵 발밑으로 흘러내렸다.
"괘, 괜찮아요. 침대라··· 꺄, 꺄악! 오빠!"
"응? 아이고 이런."
나는 실수한 척 허둥대며 떨어진 타올을 들어 밑을 가렸다. 진아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쥔 채 빽 소리쳤다.
"일부러 그랬죠!"
"아니야. 뛰어오다가 흘러내린 거야."
"뭐가 아니에요! 내가 다 봤는데!"
"다 봤다고?"
"아, 아니···. 그, 그게···."
"진짜로 다 봤어?"
나는 침대에 누워 얼굴을 가린 진아에게 천천히 걸어갔다.
< 524. 교생 실습-68-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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