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541화 (514/2,000)

< 523. 교생 실습-67- >

진아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오빠가 그런 말을 할 줄은···."

"왜? 이상해?"

"전 엄청 착하고 순진하신 줄만 알았는데···."

"무슨 소리야? 남자는 다 늑대지."

"그럼 오빠도 늑대란 소리네요?"

"아니."

"방금 전에 남자는 다 늑대라고···."

"난 늑대 따위가 아니란 소린데? 그보다 더하면 모를까."

"오, 오빠! 지금 농담하시는 거죠?"

"응."

한참 긴장도를 높이던 도훈이 한발 물러섰다.

‘너무 몰아붙이면 지레 겁먹을 수 있으니까 이쯤에서 한 번 접고.’

"아유, 뭐예요! 진짜로 놀랬잖아요."

"근데 정말 몰라서 물어본 거였어?"

"뭘요?"

"6974 말이야."

또다시 야한 말이 나오자 진아의 얼굴이 빨개졌다. 사람을 조였다 풀었다 하는 솜씨가 능수능란하기 짝이 없었다.

"다, 당연하죠. 제가 그런 걸 어떻게 알겠어요?"

"요즘 애들은 다 알던데?"

"전 그런 애 아니거든요?"

진아가 발끈했다. 모태 솔로에 처녀인 그녀로선 발랑 까진 여자 취급을 받는 것이 억울했다.

"아니 뭐 꼭 그런 애라서가 아니고···. 어디서 주워들을 수도 있으니까."

"흠!"

‘오빠가 이렇게 대범한 사람이었다니···.’

지금의 도훈은 학교에서 모습과 전혀 달랐다. 마치 여자를 많이 다뤄본 남자처럼 행동했다. 말투는 도발적이었고, 자신을 멋대로 들었다 놨다. 살살 약 올리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나는 오빠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구나···.’

그때 톨게이트 하이패스를 통과한 도훈이 나직이 말했다.

"···나 솔직히 말하면 혜진이한테 별 관심 없어."

"네, 네?"

도훈이 폭탄선언을 했다.

"방금 들었잖아. 사실 혜진이 관심 있는 거 아니라고."

"그, 그럼 왜 저한테 거짓말하셨어요?"

진아의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분명 어디서 많이 보던 패턴이었다. 로맨스 소설이나 드라마에 나오는.

"너 질투하라고."

"그게 무슨 뜻이죠?"

"내가 혜진이한테 관심 보이면 너가 질투할 거라고 생각했어."

"제, 제가 왜요?"

"너도 나한테 관심 있지 않아?"

"···!"

단도직입.

직설적인 도훈의 화법에 진아는 말문이 막혔다. 갑작스러운 고백에 그녀는 대답할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도훈이 재촉하듯 물었다.

"내 말 맞지?"

"···오, 오빠 맘대로 생각하세요!"

"아니면 아니라고 해. 내가 착각했나 보지."

진아의 가슴이 미친 듯이 두근거렸다. 차를 타고 가다 느닷없이 고백하는 도훈의 모습은, 전혀 예상 못했던 반응이었다.

그에게 호감이 있긴 했지만, 그걸 솔직하게 드러내지 못한 건 자존심을 다치기 싫어서였다. 자신이 아닌 혜진을 좋아한다는 도훈에게, 일방적인 짝사랑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설마 오빠도 나를···?’

진아가 자세를 고쳐잡고 진지하게 물었다.

"오, 오빠 방금 그 말 진심이세요?"

도훈이 기다렸다는 듯 딴청을 부렸다.

"아니? 농담한 건데?"

잔뜩 기대에 부풀어 있던 진아가 발끈해 소리쳤다.

"무, 무슨 그딴 농담을 해요!"

"만약 진심이면 어쩌려고?"

"아으, 저한테 왜 그래요, 진짜!"

"내가 뭘?"

"자꾸 사람 갖고 놀리지 말라고요! 오빤 제가 만만해요?"

도훈의 오락가락한 태도에 진아가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 사람을 기만해도 정도가 있어야지, 감정을 가지고 노는 건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었다.

"전혀 안 만만한데?"

"근데 대체 왜 그러냐고요!"

"귀여워서."

"···네?"

"네 반응이 귀엽다고."

"아이, 씨!"

또다시 맥락 없는 칭찬.

진아의 기분은 한순간에 냉탕과 온탕을 오갔다.

대체 자신을 좋아한다는 건지, 아니면 심심해서 장난을 치는 건지 종잡기 힘들었다.

그때 도훈이 말했다.

"우리 저기 갈래?"

진아가 보조석 차장을 통해 도훈이 가리키는 곳을 쳐다보았다. 교외에 자리한 전형적인 러브호텔 간판이 보였다.

"무, 무슨 소리예요?"

"계속 달리니까 좀 피곤하네."

"아, 아니 아무리 그래도 대낮에 저런 데를 가자고요?"

"대낮에는 가면 안 돼?"

"오빠가 절 어떻게 보셨는지 모르겠···."

"아니, 커피숍 가는데 밤낮이 따로 있어?"

"커피숍요?"

"어. 저기 정원 있는 곳 말이야. 넌 내가 어디 말하는 줄 알았는데?"

진아가 다시 보니 모텔 옆으로 경치 좋은 커피숍이 보였다. 눈에 먼저 보이는 모텔만 생각하던 진아는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이제 귀밑까지 얼굴이 빨개졌다. 물론 착각을 유도한 도훈의 고의였다.

"아, 아니 전 그러니까···."

"아항, 너 이상한 생각 했구나?"

도훈은 놀림에 진아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분명 날 가지고 노는 게 분명해. 아, 진짜 열 받네.’

"그런거 아니거든요?"

"아님 말고. 뭘 그렇게 흥분하고 그래?"

도훈이 피식 웃으며 커피숍 주차장에 차를 댔다.

교외에 위치한 커피숍은 앞으로 잔디가 펼쳐져 있고, 다채로운 수목으로 조경이 되어 보기 좋았다. 도심에 있는 브랜드 커피숍과는 달리 아기자기한 인테리어가 돋보였다.

"야, 경관 좋다."

능청스럽게 앞서 걷는 도훈의 뒤통수를 보며 진아가 주먹을 쥐고 부들부들 떨었다.

‘날 가지고 놀았다 이거지?’

진아는 무척 자존심이 강한 여자였다. 어딜 가나 주목받았고, 늘 주인공 대접을 받았다. 자신에게 함부로 대하는 남자는 본 적도 없었고, 대부분의 남자들이 그녀 앞에서 쩔쩔매기 일쑤였다. 그리고 나르시스트인 그녀는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도훈의 태도는 전혀 달랐다.

처음 봤을 때부터 그녀를 안중에도 없는 것처럼 굴었다. 혜진이를 핑계로 겨우 친해졌다 생각했지만, 여전히 자신의 예상을 뛰어넘으며 제멋대로 행동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불안전함.

자신이 전혀 컨트롤 할 수 없는 남자.

도훈은 예측 불가이자 통제 불능이었다.

진아는 그런 도훈을 사로잡고 싶은 욕망이 들끓었다.

자신에게 쩔쩔매고, 매달리게 만들고 싶었다.

그리고 받은 만큼 돌려주고 싶었다.

진아가 결심했다.

‘받아치지 못하니까 사람을 우습게 보는 거야. 어리다고 깔보는 것도 아니고 진짜. 두고 봐. 나를 자극한 걸 후회하게 만들어 줄 테니.’

진아가 각오를 단단히 다지며 커피숍에 들어섰다.

[도발 수위가 위태위태 한 거 아닌가요?]

‘그렇게 생각해?’

[진아 양 표정이 심상치 않아서 말입니다.]

‘일부러 도발한 거야. 진아처럼 자존감이 하늘을 찌르는 애들은 자기방어 기제가 너무 강하단 말이지.’

[하지만 그렇게 놀렸다간 호감보다 비호감을 먼저 사지 않겠습니까? 목적이 공략에 있다면 좀 더 발언 수위를 낮추시는 게···.]

‘아니. 지금은 비호감을 얻더라도 발끈하게 만드는 게 더 중요해. 제발로 모텔로 향하지 않은 이상 어떤 감언이설에도 꿈쩍도 안 할 아이니까. 진아 쟤는 청개구리야. 칭찬하면 자신이 잘난 줄 알고 우쭐거릴 줄이나 알지, 절대 내 뜻대로 응하지 않을 거야.’

[자신은 있으십니까?]

‘있으니까 모텔 바로 옆 커피숍으로 왔지.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승부야.’

"커피 뭐 마실래?"

"커피는 제가 살게요."

"왜?"

"이제껏 오빠가 다 내셨잖아요."

"그러던가, 그럼."

진아가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더니 커피 두 잔과 디저트로 먹을 케잌을 계산했다.

[오, 나름 개념녀군요.]

‘그보다는 신세 지기 싫다는 의미지.’

[신세라뇨?]

‘자꾸 남자한테 얻어먹다 보면 아무래도 발언권이 약해지기 마련이거든. 계속 끌려다니게 되고. 진아는 지금 나랑 동등한 위치에 서겠다는 거야.’

[그게 또 그렇게 해석되나요?]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덤벼 보겠다는 선전포고랄까?’

[어디 한번 주인님의 화술을 믿어 보겠습니다.]

두 사람은 창밖에 보이는 자리에 자릴 잡았다. 유난히 조경이 좋은 곳이라 바라보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진아의 태도에선 어딘가 모르게 냉기가 흘렀다.

진아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오빤 보기보다 짓궂은 성격 같아요."

"내가?"

"네. 농담도 과하시고."

"그랬어?"

"은근히 저질이에요."

‘오, 좀 센데?’

대놓고 비난하는 진아의 지적에도 도훈은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꼭 그렇지만도 않을걸?"

"전 보이는 사실대로 말한 건데요?"

"은근히가 아니라 대놓고 저질이란 말이지."

능글맞은 도훈의 대꾸에 진아가 또다시 주춤했다.

‘윽, 물러서면 안 돼. 자꾸 이런 식으로 지고 들어가니까 말빨이 밀리는 거야.’

"저도 한 저질 하거든요?"

"그래 보이네."

‘아니, 진짜 이 오빠가!’

"오빤 저한테 한 마디도 지고 싶지 않죠?"

"너도 마찬가지잖아."

"아니 무슨 남자가···."

다시 발끈하던 진아는 주문한 커피가 나오자 입을 꾹 다물었다. 프랜차이즈 커피숍과 달리 이곳은, 주인이 직접 커피와 디저트를 가지고 테이블로 가져왔다.

도훈과 진아를 본 주인이 덕담을 건넸다.

"아이고, 여자친구분이 엄청 미인이시네."

"감사합니다."

"남자분도 훤칠하게 잘 생겼고. 보기드문 선남선녀 커플이시네요."

"별말씀을."

"그럼 즐거운 시간 되세요."

"네."

주인이 커피를 놓고 사라지자 진아가 득달같이 따지고 들었다.

"뭐에요? 왜 커플이라고 하는데요?"

"칭찬해 주시는 데 괜히 무안할까 봐."

"그렇다고 저희가 사귀는 사인 아니잖아요."

"그럼 너가 반박하지 그랬니? 지도 입 꾹다물고 있어놓고선."

"아, 아니···."

"그냥 남들 보기에 다정한 커플처럼 보이나 보지."

"오빤, 혜진이 좋아한다면서요?"

"아까 아니라고 했는데?"

"농담이라면서요?"

도훈이 말없이 커피를 홀짝이더니 뜬금없이 물었다.

"저번에 너한테 내 취향 말한 적 있지."

"취향요? 무슨?"

도훈이 가슴 쪽을 빤히 쳐다보자 진아가 옆에 있던 쿠션을 들어 얼싸안았다.

"보지 마요. 변태."

"미안해, 저질이라."

"으휴, 진짜."

"암튼 혜진이한테 관심이 있었던 건 사실이야."

"근데요?"

"근데 네가 그랬잖아. 걔 뽕브라라고."

"아···."

"첨엔 괜찮았는데, 집에 가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뭔가 열 받더라고. 속은 것 같기도 하고."

"무슨 사람이 그렇게 오락가락해요? 가슴 크기가 그렇게 중요해요?"

"어."

"으휴!"

"넌 아니지?"

"뭐가요?"

"뽕."

"아, 아니거든요?"

"요샌 뽕이 너무 발달해서 당최 믿을 수가 있어야지."

"장난해요? 제가 그때 보여드렸잖아요."

"그땐 너무 순식간이라. 다시 보여줄래?"

진아는 도훈이 자길 도발하는 걸 알았지만, 이번만큼은 지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껴안고 있던 쿠션을 내리더니 V자로 깊이 패인 원피스를 드러냈다.

"똑똑히 봐요."

"응."

진아가 상체를 들썩이자 허리 라인이 바짝 조여진 원피스가 가슴과 함께 출렁거렸다. 굉장한 슴부먼트였다. 하지만 도훈은 별 감흥없다는 듯 물었다.

"이상한데?"

"뭐가요?"

"그게 뽕이 아니라는 증거가 될 순 없지. 요새 보니까 옆구리 살을 영혼까지 끌어모으면 다들 커 보이더만. 유튜브에서 봤어."

"우씨! 뽕이랑은 아예 다르거든요?"

"만져 본 것도 아닌데 어찌 믿어?"

"어머, 진짜 이 오빠 못하는 말이 없네?"

"아까 말했잖아. 나 저질이라고."

"아무리 그래도 처녀 가슴을 어딜 함부로 만져요?"

"그럼 너도 공평히 만지던가."

"돼, 됐거든요? 전 남자 몸에 관심 없거든요?"

"정말?"

"당연하죠."

"내가 착각했나?"

"뭘요?"

"지난번에 보니 네가 날 자꾸 날 힐끔거리던데?"

"무, 무슨 소리예요? 제가 언제요?"

"아님 말고."

"흥! 진짜 어이없어서."

"아무튼 난 못 믿겠어."

도훈이 팔짱을 끼며 고개를 가로젓자 진아도 슬슬 약이 올랐다. 자연산 C컵은 그녀의 자부심 중 하나였다. 유륜부도 유난히 뽀얗고, 모양도 예뻐서 거울을 볼 때마다 가장 만족해하는 신체부위였다.

그것을 부정당하자 자존심이 잔뜩 상했다.

"진짜면 어쩔 건데요?"

"진짜면···. 음."

도훈이 멈칫하자 진아가 기세를 올렸다. 자꾸 휘둘리는 상황이 마음에 안 들었던 진아는 무리수를 던져서라도 전세를 뒤집고 싶어했다.

"진짜면 오빠가 나 책임질래요?"

"책임이라니?"

"처녀 가슴을 만졌으니 당연히 책임져야죠."

"처녀인지 아닌지도 모르지."

"와, 이 오빠 막말 쩐다! 저 진짜 숫처녀거든요?"

"그건 너의 주장일 뿐."

"뭐요?"

도훈은 그녀의 속을 살살 긁었다.

"솔직히 그렇잖아. 요새 처녀가 얼마나 있다고. 고등학교 졸업 전에 다 아다 떼고 나오는 세상인데."

"뭐, 뭘 떼요?"

"인터넷 기사 보니까 그러던데? 20살 이전에 성 경험 비율이 엄청 증가했다면서. 절반은 된다던가?"

"저, 전 진짜 아니거든요?"

"그래. 그런가 보네. 대단하다, 숫처녀."

도훈의 비꼬는 반응에 진아는 더욱 열이 받쳤다.

"아씨, 진짜 오빠 완전 저질!"

"그건 인정한다니까 그래."

"오빤 제 가슴 만지고 싶은 생각밖에 없죠?"

"아닌데?"

"뭐가 아니에요? 아까부터 계속 야한 얘기만 하고 있으면서."

"물고 빨 생각도 있는데?"

"헉!"

진아가 화들짝 놀라서 좌우를 두리번거렸다. 다행히 외곽에 위치한 카페라 손님은 그리 많지 않았다.

"오, 오빤 어떻게 그런 말을 서슴없이···."

"왜?"

"오빠 진짜 변태구나."

"난 그냥 남보다 좀 더 솔직할 뿐이야."

"오빠가 그런 사람인 줄 전혀 몰랐어요."

"이제라도 알았으니 됐네."

"되긴 뭐가 돼요?"

"그냥 너한테 숨기는 거 없고 싶거든."

"뭘 숨겼는데요?"

"혜진이한테 관심 있다고 거짓말한 거."

도훈이 갑자기 급진지해졌다.

"흠···."

"그리고 주말에 정말로 보고 싶은 사람은 바로 너였다고."

< 523. 교생 실습-67- > 끝

ⓒ 성난불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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