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2. 교생 실습-66- >
***
"아까 그 오빠 누구야? 엄청 잘생겼던데?"
한적한 카페 안.
대학생 정도로 보이는 두 여자가 수다를 나누고 있었다.
"왜? 관심 있어?"
"당연하지. 루저만 가득한 교대에선 보기 드문 외···. 아, 미안 하린아. 내 말은 그러니까 경수 오빠가 루져라는 게 아니라···."
"됐어. 이미 말 다 해놓고 수습하려 하지 말구, 이 기집애야."
"하린이 너 삐졌니?"
"삐지긴 뭘 삐져. 펙트로 맞으니까 뼈 아파서 그렇다, 왜?"
"아잉, 미안. 솔직히 경수 오빠에 비하면 하린이 네가 많이 아깝긴 하잖아. 그래도 너한테 엄청 잘 해주지 않아?"
하린은 대답 없이 눈앞의 머그잔만 홀짝였다.
그렇게라도 남친에 대한 자신의 속내를 숨기고 싶은 심정이었다.
‘···엄청 잘 해주긴 하지. 그게 전부란 게 문제지만.’
추가 합격으로 교대에 입성한 하린은 부푼 마음을 품고 서울서 머나먼 충주로 내려갔다. 그러나 아는 친구 하나 없고 돌봐주는 가족도 없는 고독한 타향살이는, 겨우 스무 살인 하린에겐 무척이나 외로운 일이었다.
성격이 딱히 모난 편은 아니었지만, 대학 와서 만난 친구들은 진심으로 친해지기 어려웠다. 고등학교 때와 달리 어딘가 가식적이고 계산적이라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그나마 기숙사 룸메로 자연스레 친해진 윤희만이 유일한 단짝이라 할 수 있었다.
이따금 시골 환경의 불편함과, 빡빡한 대학 생활에 지칠 때면, 무슨 복을 누리려고 머나먼 이곳까지 내려왔을까 하는 후회만 들었다.
그렇게 외로운 타향살이를 이어가던 하린은 3월의 끝자락에 다다를 무렵, 같은 과 선배인 경수의 대쉬를 받게 되었다.
경수는 잘 생기지도, 키가 큰 편도 아니었지만 자상하고 착한 남자였다. 두꺼운 뿔테 안경을 눌러 쓴 그는 공부도 열심히 하고 주말엔 아르바이트도 겸하는 착실한 학생이기도 했다.
엉겁결에 분위기에 휘말려 사귀게 되었지만, 하린은 사귄 것을 단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다. 그는 예상대로 좋은 남자 친구였고, 본받고 싶은 선배였다.
그와 첫 잠자리를 갖기 전까진 말이다.
"저번에 2 강의동에 수업 듣고 나오는데 갑자기 소나기 엄청 쏟아졌잖아. 그때 경수 오빠가 빗속을 뚫고 우산을 들고 너한테 뛰어오는데···, 정말 그렇게 착한 사람이 어딨을까 싶더라."
"···으응."
하린의 반응이 시큰둥 하자 친구인 윤희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하린아, 너 경수 오빠랑 요새 사이 별로니?"
"아니야."
"아닌 게 아닌 것 같은데?"
"사이가 안 좋을 리 뭐 있어? 오빠가 얼마나 잘해주는데. 이번 주 서울 올라간다니까 용돈 하라고 차비도 주던걸?"
"진짜? 대박! 주말 내내 알바 해서 번 돈으로 여자친구 용돈까지?"
"응! 우리 오빠 엄청 착하지?"
"부럽다 이뇬아. 난 경수 오빠 같은 남자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당장 사귀었을걸? 왜 그런 남잔 별로 없는 걸까?"
부러워하는 윤희를 보는 하린의 표정이 짜게 식어 있었다.
‘···네가 경수 오빠랑 자고 나서도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하린이 다시 커피를 들이켰다. 오늘따라 커피 맛이 유독 썼다.
간단히 말해 경수는 토끼였다.
하린은 그의 첫 여자였다. 오죽하면 그를 먼저 덮친 것도 하린이었다. 상영이 진즉 끝난 영화를 꼭 보고 싶다는 핑계로 DVD방까지 유도한 것이다. 끈적한 애무와 키스가 이어진 후 하린은 도저히 못 참겠다며 그를 위에서 덮쳤다.
그때 경수가 이렇게 말했다.
-하린아. 나는 널 오래 지켜주고 싶은데···.
물론 흥분한 하린은 전혀 듣지 않았다.
하린이 성에 안 차는 남자 친구를 일찍 사귄 이유 중엔, 내심 육체적인 외로움을 달래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허나 경수는 동정답게 뭘 제대로 해보지도 않고 금방 사정하고 말았다. 긴장해서 그렇다고 여긴 하린은 그다음 날도, 또 그 주 주말에도 연거푸 경수를 덮쳤다.
같은 일이 3번쯤 반복되고서야 하린은 깨달았다.
경수가 굉장한 조루라는 걸.
그리고 발기 후 상태도 평균 이하라는 걸.
하필 첫 경험을 도훈과 함께했던 하린이었기에, 경수의 초라한 물건은 지나치게 비교되었다. 그러나 작은 크기보다 더 참을 수 없는 건 5분은커녕 1분도 버티지 못하는 그의 비루한 정력 때문이었다.
이미 섹스의 맛을 알아버린 하린에게 그것은 턱없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길가는 아무나 붙잡고 사귀었더라도 그보다는 나았을 거로 생각했다.
다만 친구인 윤희 말처럼 경수는 보기 드물 게 헌신적인 남자 친구였다. 잠자리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면에서 완벽했다.
늘 하린을 먼저 생각하고, 항상 그녀를 배려했다.
둘이 오붓이 데이트하는 장면을 지켜본 이들이라면, 누구라도 부러워할 수밖에 없는 잉꼬 커플이었다.
그러나 하린은 차라리 나쁜 남자라도 경수가 토끼가 아니었으면 더 좋았을 거로 생각했다.
‘남의 속사정도 모르는 게···.’
하린이 속으로 투덜거리는 데 윤희가 다시 물었다.
"아, 맞다. 아까 그 오빠 물어보려다 갑자기 딴 얘기로 새버렸네. 그 키 큰 오빠는 어떻게 아는 사이야?"
"도훈 오빠?"
"이름이 도훈이야? 어쩜, 이름도 멋있네."
"너 울 엄마 편의점 하는 거 알지?"
"응."
"거기 알바생이었어."
"알바라고? 그 가게 단골 할래, 나."
"근데 지금은 그만뒀을 거야. 군 제대하고 몇 달 있다가 복학했거든."
"그래? 대학은 어딘데?"
"국성대."
"그래도 나름 인서울이네?"
"응, 우리랑 비슷해. 사범대거든."
"선생님 되겠네? 무슨 과목인데?"
"체육교육과던가?"
"오, 잘 어울린다. 혹시 그 오빠 여자친구는 있데? 하긴 있겠지? 그 얼굴에 그 키에···. 체육교육과면 운동도 엄청 잘 할 테니···."
"없을걸?"
"정말? 그럼 나 소개시켜 주라."
하린은 우연히 화장실 앞에서 도훈을 만났을 때 그가 아직 솔로라는 걸 알게 되었다. 도훈을 탐내는 친구 윤희를 보며 하린은 생각했다.
‘오빨 소개시켜 주라고? 네가 감당이나 할 수 있겠니?’
하린이 볼 때 윤희는 너무 순진한 아이였다. 몇 번 대화를 나누며 알게 된 사실로, 여태껏 모태 솔로였고 성에 대해선 조금의 궁금증도 없는 아이였다.
‘그리고 오빠는 너처럼 밋밋한 애들을 별로 안 좋아할걸?’
하린은 도훈의 원룸에서 보냈던 날을 아직도 또렷이 기억했다. 그는 유난히 자신의 가슴에 집착했다. 커다란 가슴을 무척 좋아한다고 했다.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나자 하린이 저도 모르게 픽 웃었다.
"뭐야? 왜 웃어?"
"아, 아니 미안. 근데 정말로 소개시켜 줘?"
"왜? 그 정도로 친한 사인 아닌 거야?"
"아니 뭐 말은 꺼내 볼 수 있지. 근데 내 말은 어차피 만나다 한들 주말 커플이잖아. 우린 충주에 있고, 오빤 서울에 있고."
"아···."
"나도 경수 오빠가 첫 남친이지만, 시작부터 그렇게 떨어져 있었음 사귀기 힘들었을걸? 원래 아웃 오브 사이트 아웃 오브 마인드라고 하잖아."
"그러려나···. 쩝."
아쉬워하는 윤희를 보며 하린이 생각했다.
‘근데 그 말이 틀린 것 같아, 윤희야. 멀리 떨어져서 잊은 줄 알았는데 오랜만에 오늘 보니···.'
하린이 엉덩이를 꿈틀대며 허벅지를 배배 꼬았다.
‘···조금도 잊지 못한 거 있지?’
오늘 밤 도훈을 만날 생각에 벌써 흥분하고 있는 하린이었다. 다만 같은 대학을 다니는 데다 경수랑도 안면이 있는 윤희에겐 차마 이 사실을 밝힐 순 없었다.
어쨌든, 두 사람은 여전히 보기 좋은 커플이니까.
***
"너 전혀 몰라?"
도훈의 냉소적인 반응에 진아가 움찔 놀랐다. 아까 방 탈출에 성공하고서부터 그의 반응은 평소 모습과 너무도 달라져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마지막 3분을 남겨두고 문제를 풀기 시작했을 때부터.
진아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네···, 모르는데요."
"69랑 74를 첨 들어봤어?"
"네."
"하-. 앙큼하게 생겨서 의외로 순진하긴."
"···네, 네?"
진아는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도훈이 저렇게 거친 말을 쓸 거라곤 예상치 못한 탓이었다.
‘나보고 방금 앙큼하다고 한 거야?’
진아가 어안이 벙벙해 하는데, 현자 타임으로 성욕이 거세된 도훈은 호감도 따윈 신경 쓰지 않고 속사포처럼 지껄였다.
"69는 말 그대로 여자가 남자 성기를 무는 오랄과, 남자가 여자 성기를 빠는 커닐링구스를 동시에 펼치는 섹스 체위를 말해."
"헉!"
"69의 아라비아 표기에서 동그란 부분이 사람 머리고, 나머지가 몸통인 셈이지. 그렇게 서로 180도 뒤집혀서 서로의 성기를 물고 빤다는 은어가 69."
"저, 저 오, 오빠···."
진아는 너무 당황해서 뭐라고 대답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도훈은 그녀의 반응이 재밌다는 듯 계속 말을 이었다.
"아참, 질문이 그게 아니었지? 어떻게 74를 맞췄냐고? 앞에 번호가 6969였잖아. 그 자물쇠는 비번을 직접 세팅할 수 있는 종류란 말이야. 그래서 나는 자물쇠에 비번을 설정한 사람이 은근히 변태라는 생각을 품게 된 거야. 하고 많은 숫자를 놔두고 69라는 의미를 담은 걸 보고 말이지."
"······."
"그래서 두 번째로 야한 숫자인 74를 떠올렸어. 74는 발음이 질싸랑 비슷하잖아. 아, 질싸는 말 그대로 질 내 사정의 준말이야. 노 콘돔으로 여자 안에서 찍 싼대서 질싸. 어때?"
"···아, 아니 저··· 오빠···."
[주인님! 이게 대체 무슨 짓입니까아!!!]
‘왜? 궁금해서 알려줬는데 문제가 되나?’
[진아양 표정을 좀 보시라고요! 얼이 빠져버렸잖습니까? 이 분위기 어떻게 수습할 건데요!!!]
‘수습은 무슨. 됐어. 난 저딴 계집애 조금도 관심 없으니까. 대충 달렸으니 이제 차 돌려서 집에 떨궈줘야겠다.’
[필시 후회하실 겁니다.]
‘후회 같은 소리 하네. 내가 지금 젤 후회스러운 게 뭔 줄 알아?’
[뭔데요?]
‘이 황금 같은 주말을 저딴 살덩어리랑 보내고 있었다는 사실이야. 정말이지 뇌까지 정액으로 가득 찬 이도훈 자식 같으니라고···.’
[주인님이 이도훈이시잖습니까?]
‘아니지. 현자 타임에 나는 좆이 뇌에 달린 저열한 녀석과는 전혀 다른 존재야. 한 차원 높은···.’
한참 흥분해 씨불이던 도훈은 점점 위화감이 들었다. 뭔가에 홀린 것처럼 때려 밟던 엑셀에서 천천히 발을 뗐다. 또 옆에서 얼굴이 뻘게진 있는 진아를 보고는 아연실색했다.
‘헉! 씨발, 내가 지금 무슨 짓 한 거냐?’
[주, 주인님? 돌아오셨습니까?]
‘아흑! 좆됐다. 미친 현자 타임 같으니! 왜 나 안 말렸어, 로시!’
[안 말리다뇨! 몇 번을 뜯어말렸는걸요? 근데 당최 제 말이 먹혀야 말이죠!]
도훈은 현자 타임 당시의 일들을 똑똑히 기억했다.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무슨 행동을 했는지 모든 것이 흑역사처럼 펼쳐졌다.
‘갓 뎀!, 이걸 어떻게 수습하지? 공든 탑이 무너질 것 같은데···.’
[이미 무너진 거 아닙니까? 진아양 공략은 그냥 포기하심이···.]
‘안 돼! 이번 교생 실습에서 유일한 업적이야. 나머지 미션이 애피타이저라면 진아야말로 메인 디쉬였다고!’
[그 메인 디쉬에 똥을 뿌린 게 바로 주인님이잖습니까!]
‘아흑 씨발! 빌어먹을 현타 스킬, 내가 두 번 다시 쓰나 봐라!’
[왜 맨날 인간은 후회할 줄 알면서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일까요?]
‘잔소린 됐고, 얼른 수습할 계획이나 세워보자.’
[일단 호감도 체크부터 하시지요.]
‘진아 정보창 열어.’
도훈이 떨리는 심정으로 진아의 현 상태를 체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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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 오진아 (처녀)
나이 : 21 #도끼병 중증#나르시스트#오만과 편견
호감도 : 85/100
개방성 : B
성감대 : ???
*애무 포인트 : 애무를 받아 본 경험이 없습니다.
성욕지수 : 중간.
공략팁
*그녀는 당신에게 호감을 깊은 가지고 있습니다.
-그녀는 당신이 보여준 매력에 푹 빠져 있습니다.
-나르시스트인 그녀가 처음으로 자신이 아닌 이성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조금 전 당신이 보여준 적나라한 모습에, 깊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자신이 알던 것과 달리 당신이 굉장한 비밀을 감추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의 노골적인 행동은 그녀의 성적인 호기심을 자극하였습니다.
-추천 행동 : 야한 말을 계속 지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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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옷!]
‘뭐, 뭐야 이건?’
[이게 어떻게···.]
‘잠깐만, 호감도가 85라는 건 방금 일로 전혀 하락하지 않았다는 거잖아? 맞지?’
[그, 그렇군요. 이건 정말 의욉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군요. 어떻게 이런···.]
‘아냐. 생각해 보니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 같아. 진아는 본래 천성이 청개구리 같은 성격이잖아. 상대가 호감을 보이면 하찮게 여기고, 귀찮아하면 되려 관심을 드러내지.’
[근데요?]
‘이 경우도 똑같아. 보통 사내들처럼 칭찬을 건네면서 정석대로 공략해봐야, 진아에게 전혀 자극이 없단 말씀이야.’
[그럼 설마 현자 타임 당시 주인님이 보여준 모습에서···.]
‘맞아. 오히려 거기서 반전 매력을 느껴버린 거야. 예측 불가능한 남자. 함께 있으면 불안 지수를 높이는 남자. 그래서 매력적인 남자.’
[말도 안 됩니다!]
‘안되는 게 어딨어? 운수 좋은 놈은 원래 뒤로 자빠져도 처녀치마 폭이라잖아. 기왕 이렇게 된 거 컨셉 확실히 잡고 가자.’
[어, 어떻게요?]
‘에로에로 한 센빠이로.’
도훈이 얼굴이 시빨개진 진아를 보고 웃었다.
< 522. 교생 실습-66- > 끝
ⓒ 성난불기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