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9. 교생 실습-63- >
진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썸이라뇨?"
"미안. 기분 나빴니?"
"아, 아니 뭐 꼭 그렇다기보다는···."
"실은 네 말대로 약간 치근덕대더라고."
"그 교대생 말이죠?"
"응. 난 오랜만에 반가워서 인사만 건넸는데, 요샌 어떻게 사느냐, 여자친군 생겼느냐 하고 물으면서 계속 안 놔주더라고."
"거봐요. 제 말 맞죠?"
"그러게. 지금 생각해보니 확실히 이상하긴 하네. 아무튼 같이 온 사람이랑 무슨 관계냐면서 꼬치꼬치 캐묻길래 대답할 말이 없어서 그냥 썸타는 사이라고 해버렸어. 그럼 귀찮게 안할 까봐서."
"그러셨구나."
진아는 예상대로 싫은 눈치는 아니었다. 오히려, 보조개가 살짝 들어가면서 자기도 모르게 미소를 짓는 것으로 보아 내 대답에 무척 만족스러워하는 듯했다.
"근데 괜히 그런 말 했다 나중에 오해사면 어쩌려고요?"
"자주 볼 사이도 아닌데 오해는 무슨···. 그리고 혹시 아니? 사람 일은 모르는 거래잖아."
"아이, 오빠도 참···."
진아의 두 볼이 더욱 붉어졌다.
희망 고문이라는 단어가 있다.
여지를 남기듯 툭툭 내뱉는 말로, 상대를 어장에 가두어 놓는 행위다. 내가 지금 진아에게 하는 태도가 딱 그러했다.
다른 여자에게 관심 있다 해놓고 자꾸 흘리는 것이다.
몸매가 좋다느니, 얼굴이 예쁘다느니, 너랑 잘 될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둥 명확한 표현보다 불확실하고 모호한 진술로 슬쩍슬쩍 미끼를 흘려댄다.
진아는 또 좋다고 그걸 덥석 받아먹었다.
"근데 오빤 저보다 혜진이한테 관심 있지 않았어요?"
괜스레 토라진 표정. 나는 그녀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글쎄. 그렇다고 혜진이를 딱히 엄청 좋아하고 그런 건 아니니까."
"진짜요?"
"솔직히 네 말마따나 내 취향이 좀···."
그러면서 은근슬쩍 가슴을 쳐다보았다.
진아는 이번만큼은 손으로 가리지 않았다. 오히려 더 자세히 보라는 듯이 상체를 기울이며 골짜기를 더 깊게 만들었다. 오오, 섹스어필 좆구영.
"···오빠두 참."
"언제는 아재라면서?"
"제가 언제요? 그냥 말하는 게 가끔 깬다는 거죠. 오빠가 어딜 봐서 아재예요?"
"그런가? 그나저나 밥도 다 먹었으니 슬슬 장소 옮길까?"
"그럴까요?"
"혹시 가보고 싶은 곳 있어?"
"흠···. 실은 데이트 코스를 몇 군데 알아놓긴 했는데···."
"데이트 코스?"
"아, 아뇨. 오해는 마시고요. 제가 오늘 데이트 코칭 해드리기로 했잖아요. 그래서 커플들이 갈만한 곳을 미리 조사해 놨거든요."
"아하, 거기가 어딘데?"
"음, 덕수궁 돌담길이나 한강 변?"
"이 시간은 너무 더울 거 같은데?"
때는 5월 중순.
올해는 최고로 더운 여름이 될 거라는 기상청의 예보대로, 정오의 햇살이 벌써부터 사람을 태워 죽일 것처럼 내리쬐고 있었다. 요 며칠 사이, 밖을 잠시 걷기만 해도 겨드랑이에 땀이 찰 만큼 더워지긴 했다.
"그, 그죠? 거긴 해 질 녘 즈음이 좋을 거 같고···. 음, 그럼 실내는 알아본 데가···."
"실내는 어딘데?"
"아이스크림 가게나 커피숍 같은···."
"방금 밥 먹었는데 디저트를 또?"
"아, 아니면 영화관은 어때요?"
"영화 좋지. 근데 영화를 보는 내내 대화를 많이 못 하잖아. 게다가 영화가 혹시 재미라도 없으면 그 분위기 어쩔 거야."
제시안을 자꾸 퇴짜 놓자 진아도 준비한 선택지가 떨어졌는지 점점 난색을 보였다. 그때 뭔가 떠오른 듯 갑자기 손가락을 튕기며 소리쳤다.
"맞다, 방탈출 까페는 어때요?"
"방 탈출 까페?"
"혹시 모르시는 건 아니죠?"
기억을 더듬었으나 너무나 생소한 이름이었다.
"그게 뭐지?"
"역시 오빠는 요즘 사람 아닌가 봐요. 진짜로 몰라요?"
"응. 설명해 줘."
"그러니까 방 탈출 까페가 뭐냐면요···."
진아는 한참 방탈출 까페의 컵셉에 대해 설명했다. 미로와 같은 방에 갇힌 후, 방 안의 물건을 뒤져 힌트를 이용해 제한된 시간 내에 탈출하는 게임이었다.
굉장한 추리력과 논리력, 관찰력 등이 요구되는 이 지능형 게임은, 최근 20대 사이에선 꼭 한 번쯤 경험해봐야 하는 ‘It Item’이라고 했다.
한참 열을 올리던 진아가 신이 나서 물었다.
"저랑 한 번 가보실래요?"
"너랑?"
"네. 그거 잘하면 진짜 뇌섹남처럼 보이거든요. 뇌섹남은 뭔 줄 알죠?"
"알지."
"요샌 몸 좋은 남자보다 머리 좋은 남자가 대세라잖아요. 어때요? 미리 한 번 경험해 보면 혹시 나중에 혜진이랑 함께 가더라도 허둥대지 않지 않겠어요?"
"그래. 그럼, 거기 한 번 가보자."
엉겁결에 결정한 것 같지만 확실한 계산이 있었다.
진아의 설명에 따르면 방 탈출 게임은 참여자 모두가 1시간 가량 방에 갇히는 방식이라고 한다. 그 말은 1시간 동안 누구도 훼방을 놓을 수 없는 밀실을 제공된다는 소리다.
‘후후. 여기가 오늘의 승부처가 되겠군.’
[근데 자신 있으십니까? 아이큐 97인 주인님의 능력으로는 무척이나 벅차 보이는 데요?]
‘뭐 인마? 사실 상관없어. 어차피 탈출하려고 들어가는 게 아니니까.’
[탈출이 목적인 게임에 탈출이 아니시라면···.]
‘나에겐 단둘이 갇힌다는 전제가 더 중요하단 거지. 흐흐.’
[역시! 어떤 상황에서도 기회를 만들어내는 주인님답습니다.]
***
두 사람은 차를 타고 주변에 있는 유명한 방 탈출 까페에 도착했다. 날도 더워 대기열이 잔뜩 밀려 있었는데, 운 좋게 2인용 방이 비는 바람에 우선 배정을 받게 되었다.
방 탈출 까페 직원은 카운터에서 몇 가지 주의 사항을 준 뒤 두 사람에게 안대를 건넸다.
"이거 쓰고 저 따라오세요."
"아, 앞이 하나도 안 보이는데요."
"여자분은 제 손 잡으시고, 뒤에 남자분은 여자분 양쪽 어깨에 손을 얹으세요."
도훈은 시키는 데로 진아의 양어깨에 손을 얹었다. 잠시 후 직원의 에스코트에 따라 진아와 도훈이 탈출할 방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한참을 걷다 보니 어딘가 다른 공간으로 들어온 느낌을 받았다. 에어콘 바람이 천장에서 내려오는 것으로 보아 방으로 들어온 것 같았다.
여전히 안대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직원이 두 사람을 바닥에 앉도록 지시했다.
"당신들은 이곳에 갇혔습니다. 탈출 시간은 지금부터 정확히 1시간. 전화 힌트는 모두 3번까지만 허용됩니다. 그 이상을 사용하면 1시간 내에 탈출해도 무효가 되구요."
직원은 설명을 이어가며 갑자기 안대를 찬 두 사람을 로프로 묶기 시작했다. 바닥에 주저앉은 채 등을 맞대고 몸이 묶이자 도훈은 야릇한 생각이 들었다.
‘매저키스트의 밧줄로 진아를 꽁꽁 묶어버리면 재밌을 텐데···.’
"다 묶었어요. 그럼 제가 문을 닫고 나가면 안대를 풀어 게임을 시작하시면 됩니다."
곧 문 닫는 소리가 들리고 두 사람이 안대를 벗었다.
벽 구석구석 액자가 걸린 단출한 형태의 방이었다.
도훈은 어설프게 묶은 줄을 풀기 위해 힘을 주었다.
"아앗, 오빠 갑자기 그러시면 제가···."
"응?"
이제 보니 허리 밑으로 빙글빙글 감긴 줄은 도훈과 진아를 동시에 묶고 있었다. 도훈이 억지로 힘을 가하면 반대편에 돌아앉은 진아가 압박을 받는 형태였다.
도훈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말했다.
"아니, 탈출하라면서 다짜고짜 묶어 놓고 시작하는 게 어딨어? 요금도 비싸게 받더니만 게임을 하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오빠. 침착해야 해요. 이것도 게임의 일부 거든요. 여기 바닥에 카드 같은 게 떨어져 있어요."
진아는 도훈이 들으라며 카드의 내용을 읊었다.
<당신들은 지금 복잡한 매듭으로 묶여 있습니다. 이 매듭을 풀기 위해선 몇 가지 스킬이 필요합니다.
"매듭?"
"네. 이걸 푸는 법이 있을 거예요."
진아는 몸을 뒤척이며 매듭의 시작을 찾았다. 방법을 알면 금세 풀 수 있지만, 순서를 헛갈리면 한참 시행착오를 겪어야 하는 트릭이었다.
‘음, 같이 묶이니까 너무 접촉이 심한데?’
[뭐하십니까? 안 푸십니까?]
‘내가 왜? 난 이러려고 왔는데?’
[와··· 주인님 진짜.]
"아, 어떻게 푸는 거지? 오빠 뭐라도 좀 해봐요."
"으, 응. 이렇게 묶여 본 건 처음이라."
도훈이 앞으로 힘을 주자 반대편의 밧줄이 바짝 당겨지면 진아의 가슴이 조여졌다. 밧줄 틈으로 튀어나온 유난히 팽팽해졌다.
"아, 악! 오빠."
"왜?"
"너무 당기셨잖아요. 그렇게 힘으로 하는 게 아니라니깐!"
진아가 아픈지 볼 맨 소리를 했다.
‘슬슬 매듭을 풀어야겠군.’
"진아야 이게 보니까 푸는 순서가 있는 것 같아. 내가 한 번 빼 볼 테니까 가만 있어 봐."
"네."
도훈은 매듭의 형태를 확인한 후 알 것 같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 이 매듭 군대에서 배운 것 같아."
"정말요?"
"당연하지. 군대에서 포로들 호송할 때 포박술에 대해서 배우거든."
도훈은 역시 아무렇게나 지껄이기 시작했다.
"오오, 역시 군대 짱 좋군요."
"너도 다녀올래?"
"아, 아니 그런 뜻은···."
"일단 내가 몸을 돌려야 하니까 가만 있어 봐."
도훈은 비좁은 공간에서 억지로 몸으로 돌렸다. 등을 맞댄 자세에서 돌아앉자 자연스럽게 뒤치기 자세가 만들어졌다.
"아···."
"어, 이게 좀 복잡하네."
등끼리만 맞대고 있어도 자극적이었는데 도훈이 백허깅을 하듯 몸을 돌리자 자꾸 아랫도리가 엉덩이에 부딪혔다. 사실 도훈은 일부러 엉덩이 골 사이로 물건을 문지르고 있었기 때문에 진아는 더욱 대물의 실체를 느끼고 있었다.
‘서, 설마 엉덩이에 닿는 게 오빠 그···.’
진아는 난데없는 부비부비에 얼굴이 빨개졌다.
그러고보니 밧줄 끝이 자꾸 유두를 압박하는 모양새라 자기도 모르게 조금씩 몸이 흥분하고 있었다.
"오, 오빠 살살 좀."
"아, 미안. 이렇게 돌면 될 줄 알았는데···."
도훈은 처음부터 밧줄을 풀고 싶은 생각은 없었기 때문에 작정하고 대물을 비벼댔다. 탱탱한 히프에 대물이 닿자, 대물이 점점 부풀기 시작했다.
‘어디 맛 좀 보여줄까?’
도훈이 발기된 대물을 엉덩이 틈 사이에 찔러 넣었다.
"아, 아앗! 바, 바지에 뭐에요?"
"응? 뭐가?"
"아니 지금 뭔가···."
진아는 말을 하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처음에는 긴가민가했는데, 단단하면서도 부드러운 감촉이 절대 물건은 아닌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서, 설마 지금 닿는게 도훈 오빠의?’
진아는 처녀긴 했지만 순진한 편은 아니었기 때문에 금세 도훈이 발기했다는 걸 깨달았다.
‘아, 그, 근데 뭐가 이렇게 크담?’
돌아선 진아의 얼굴이 민망함으로 달아올랐다.
도훈은 그녀를 도발하듯 꽂꽂히 발기된 물건으로 자꾸 엉덩이 골 사이를 찔러댔다.
"하앗."
"앗!"
"으응···. 그, 그만좀."
"미, 미안."
"설마 일부러 그러시는 거죠?"
"그게 아니라 이걸 풀려고 보니까···."
도훈이 머쓱해 하며 대답했다.
"미안. 이건 내 맘대로 컨트롤이 안 되서···."
"···알겠어요."
결국 도훈은 한참 부비부비를 끝내고 밧줄을 모두 풀어냈다. 사실 3분이면 누구나 풀 수 있는 난이도를 가지고 10분 동안 낑낑대며 스킨십을 지속한 것에는 다분히 고의성이 엿보였다.
밧줄에서 풀려난 진아는 이제껏 자신을 괴롭혔던 도훈의 아랫도리로 시선을 던졌다. 텐트처럼 일어선 바지는 보기 민망할 정도로 부풀어 있었다.
‘어멋, 저, 저게 왜 저래 진짜?’
"오, 오빠. 바지 좀 어떻게 좀···."
"아, 으, 응. 미안해."
"아니 뭐 미안할 것까진 없는데···. 보기 민망해서요."
"이게 커지고 줄어드는 게 내 의지로 되는 게 아니라···."
"근데 왜 그렇게 됐어요?"
진아가 뻔히 이유를 알면서 물었다.
‘진아도 살짝 흥분한 것 같은데?’
[그러게요.]
"뭔가 닿으면 자동으로 이렇게 되버려."
"설마 제 엉덩이에 닿아서?"
"으, 응. 그런 거 같아."
"오빠도 엄청 건강하시네요."
"내가 좀··· 하하!"
"일단 단서를 찾아봐요. 저쪽 벽에 조그만 입구 보이죠?"
"응."
"아마 1단계가 저기를 통과해야 할 거예요."
"1단계라니?"
"이 방에서만 끝나는 게 아니고 두, 세 개를 연속으로 통과해야 하거든요. 서둘러요. 시간이 얼마 없으니까."
벽에 걸린 전자시계는 어느덧 49분으로 줄어 있었다.
진아와 도훈은 방구석을 구석을 샅샅이 뒤지며 조그만 문의 자물쇠를 열 수 있는 단서를 찾아 나섰다.
그러나 한참을 뒤져도 조금의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그렇게 또 의미 없게 십분이 흘러가자 도훈은 점점 인내심이 바닥났다.
‘씨뎅, 조또 모르겠네. 뭐가 이렇게 어려워? 이걸 풀라고 만든 거야?’
[주인님의 아이큐가 너무 저하되서 그런게 아닐까요?]
‘아니 씨 아이큐가 무슨 상관인데? 애초에 개떡같이 만들어 놨구만. 그리고 진아 쟤는 왜 저렇게 열심히야? 아주 명탐정 코난인 줄?’
도훈이 화가 난 건 문제가 쉽게 풀리지 않는 것도 있지만, 처음의 스킨십 이후 방탈출 게임에 몰입한 진아의 태도 때문이었다. 이런류의 게임을 즐기는 진아는 어느덧 처음의 민망함도 잊고 게임에 완전히 빠져 버렸다.
자연히 초반에 커졌던 도훈의 대물 역시 다시 잠잠해졌다.
"안되겠다. 힌트 한 번 써볼까요?"
"힌트?"
"3번까지는 전화 찬스 쓸 수 있다고 했잖아요. 여기서 더 끌면 못 나가니까 그냥 힌트 쓰는게 좋겠어요."
"그럴까?"
답답함을 느끼던 도훈도 일단 첫 번째 방을 벗어나고 싶어 인터폰을 눌렀다. 알바생은 벽면을 유심히 살펴보라는 짧은 말만 남겼다.
"벽면을 보라는데?"
"벽이요?"
"응."
"그게 다에요?"
"응."
"하, 뭔 소리지?"
힌트를 받고도 미궁에 빠진 진아와 달리 도훈은 순간 뭔가를 깨달았다. 아까 소품 중에서 특이한 청색광을 발하던 물건을 떠올린 것이다.
‘아하, 설마 벽에다 특수잉크로 칠해 놓은 건가?’
뭔가를 깨달은 도훈이 급히 청색광으로 벽을 비추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옆 방으로 통하는 문의 자물쇠 번호가 보였다.
"찾았다!"
< 519. 교생 실습-63- > 끝
ⓒ 성난불기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