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2. 교생 실습-56- >
도훈은 기계적으로 타자를 두들겼다. 이미 짜놓은 양식에 글자만 옮겨적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오랜만에 문서작성을 하는 경험은 나름 신이 나기까지 했다.
본디 그는 사무직 연구원이었고, 문서 작업이 주 일과였다. 정신없이 타자를 두드리고 있자니 옛 생각이 나며 저절로 몰입되었다.
한솔은 일에 열중하는 도훈을 몰래 훔쳐보았다.
살짝 풀어헤친 넥타이. 팔꿈치 아래까지 걷어 올린 소매.
남성적 매력을 물씬 풍기는 도훈은, 일에 찌든 여타 중년 남선생들과 확연히 달랐다.
‘어쩜 쟤는 일하는 모습까지 저렇게···.’
한솔이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뜯어보면 볼수록 매력적인 아이였다. 잘생겼다는 생각은 처음 볼 때부터 했지만, 외모의 생김보단 뛰어난 지성에 매혹되어 버렸다.
그녀의 이상형은 자기보다 똑똑한 남자였고, 도훈이 어제 보여준 지성은 그녀를 압도하는 수준이었다.
‘한데 어째서 저런 말짱한 아이가 야동에 심취했을까···?’
너무 안타까웠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지만, 하고많은 결점 중에서 하필이면 야동중독이라니···. 그것은 입에 담기도 민망한 흠결이었다.
‘아냐. 뭔가 사정이 있을지도 몰라. 좀 더 조사해 봐야겠어.’
한솔이 검색창에 떠오른 답변 내용을 빠르게 훑었다. 자칭 전문가라는 한 지식인 답변이 눈에 들어왔다.
···신랑분께서 신혼 중 몰래 야동을 보셨다니 많이 놀라셨겠네요. 하지만 남자와 여자는 근본적으로 다른 존재입니다. 절대 아내를 사랑하지 않거나, 혹은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우고 싶어서 그러는 게 아닙니다. 변명처럼 들리겠지만 그건 남자라는 생물의 본능이랄까요?>
한솔이 안경을 찾았다. 동그란 뿔테 안경은 장시간 모니터 앞에 앉을 때만 사용하는 그녀의 필수 아이템. 평소 이런 쪽으로 무지하던 한솔은 정신을 집중해 남은 내용을 마저 읽어 내려갔다.
신체 건장한 남성들은 매일 왕성한 정액을 생산합니다. 오히려 정액을 제때 배출해 주지 않으면 그게 더 건강에 안 좋을 수 있거든요. 남편분이 몰래 자위를 하는 것도 그런 일환의 하납니다.>
‘아하, 설마 도훈이도?’
한솔은 정보를 자의적으로 편식했다. 그녀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도훈의 행동을 이해시켜 줄 이론뿐, 그를 비난하거나 미워하기 위해서가 결코 아니었다.
밑에 달린 다른 사람들의 댓글도 살폈다.
┖ 저도 여자친구랑 손만 잡고 다녀도 거기가 커지더라고요. 그래서 만나기 전에 꼭 물 빼고 나가요. 안 그러면 나중엔 거기가 아파 불알이 뜯어질 것 같더라고요.
┖ 전문가님 말이 맞음. 저거 가지고 남편 뭐라고 해선 안 됨. 그나마 와이프나 여친 몰래 자위를 하는 애들이 차라리 순수한 거임. 솔까 돈 주고 다른 여자랑 할 수도 있는데, 그렇게 안 하는 게 어디임?
한솔은 점점 도훈의 행동을 이해했다.
‘그랬구나. 도훈이가 지나치게 건강해서 그런 거였어. 매일 물을 빼줘야 할 만큼 왕성하니까···.’
듣기론 도훈은 여자친구가 없다 했다. 당연히 넘치는 정액을 배출하기 위해선 자위 말고 다른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근데 야동을 가지고 다니면서 할 정도였나?’
보통 야동은 컴퓨터 저장공간 깊숙한 곳에 숨겨놓기 마련이다. 업무용으로 쓰이는 USB에 담아 학교까지 가져온 것은 그녀의 상식으로 쉽게 이해가 되질 않았다.
‘설마 못 참을 땐 학교에서 풀려고?’
한솔은 도훈이 자위를 하는 장면을 상상했다. 학교 컴퓨실에 몰래 숨어 남몰래 물건을 꺼내놓고 마구 흔드는···. 야릇한 장면을 떠올리자 자기도 모르게 얼굴이 발그레해졌다.
도훈에겐 일을 시켜놓고, 음탕한 상상이나 하는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그녀는 얼른 검색창을 끄고 자세를 바로잡았다.
‘근무 중에 이런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한솔은 자타가 공인하는 워커홀릭.
일과 결혼한 여자라는 별명이 따라 다닐 정도로, 멍에 씌운 말처럼 앞만 보고 달려왔다. 승진에 미친 것이 아니냐는 독설도 가끔 들었다. 그 흔한 인터넷 쇼핑이나, 뉴스 검색 한 번 하지 않고 오로지 일에만 집중하는 스타일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지식검색으로 남자들이 왜 야동을 보는지 그 이유를 뒤지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질 않았다. 뭔가에 홀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내가 정말 왜 이러는 거지?’
한솔이 스스로 행동에 극심한 혼란을 느끼고 있을 때쯤, 도훈이 지도안을 모두 끝마쳤다. 이정우의 기억이 또렷이 남아있는 그에게, 단순 문서 작업 정도는 우스운 일이었다.
"선생님."
"으, 응?"
"다 했어요."
"버, 벌써?"
빠르게 타이핑을 마무리한 도훈이 다시 USB에 파일을 담아 한솔에게 다가왔다.
"한 번 확인해 주시겠어요?"
"그래."
도훈의 USB를 받아든 한솔이 긴장된 표정으로 드라이브를 열었다. 루트 폴더에 보란 듯이 떠 있는 ‘직박구리’라는 폴더에 시선을 빼앗겼다. 한솔의 마우스 커서가 저도 모르게 직박구리에 멈췄다.
"아, 그거 아니고요. 네. 그 밑이요."
도훈이 직접 파일 위치를 지목하는데, 갑자기 핸드폰이 울렸다. 발신자를 확인한 도훈의 눈이 동그래지며 놀란 표정이 되었다.
"엇, 지도 교수님이 왜 이 시간에···."
도훈이 한솔에게 급히 말했다.
"죄송해요 선생님. 잠시 교수님하고 통화 좀 하고 올게요."
"으, 응. 그러렴."
도훈이 급한 용무가 있는 사람처럼 교무실을 빠져나갔다. 복도에 선 그의 모습이 교무실 창문 사이로 비췄다. 한솔은 지도안 파일을 띄운 채 도훈이 다시 돌아오길 기다렸다.
‘통화가 제법 길어지는데···.’
한참 도훈을 기다리던 한솔은 문득 ‘직박구리’ 폴더를 떠올렸다. USB를 가득 채우고 있던 야동.
도훈의 과연 어떤 취향일까?
퇴근 시간이 지난 교무실엔 아무도 없었다. 누구도 자신의 모니터를 볼 수 없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한솔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살짝만 봐 볼까?’
타인의 야동을 본다는 것은 은밀한 내면을 몰래 들여다보는 것과 같았다. 한솔은 남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것 같은 죄책감에 쉽사리 폴더를 열지 못했다.
도훈은 여전히 복도에서 통화 중이었다.
한솔이 갈등하기 시작했다.
‘그냥 확인만 해보는 거야.’
한솔이 도훈의 위치를 연신 체크하며 스피커 전원을 껐다. 그리곤 ALT+TAB키를 눌러 화면을 전환했다.
‘조금만···.’
한솔이 떨리는 손으로 직박구리 폴더를 클릭했다.
64기가에 달하는 대용량 USB 안에는 십 수개가 넘는 야동들이 가득 차 있었다. 제목이 한글로 된 것도 있었지만, 주로 일본과 서양 작품 위주였다.
한솔은 조심스럽게 일본어로 된 야동 한 편을 클릭했다.
***
"아니, 교수님 그게 아니고요···."
도훈은 복도가 쩌렁쩌렁 울리게끔 목소리를 냈다.
[언제까지 연기하실 건가요?]
‘너무 티 나냐?’
[아뇨. 알람을 벨소리처럼 바꿔놓고 통화를 한 것까진 좋았습니다. 근데 과연 한솔양이 미끼를 물까요?]
‘아까 못 봤어? 직박구리 폴더에 완전히 꽂힌 거. 아마도 지금쯤 내가 무슨 야동을 보는지 궁금해 미칠 것 같을걸.’
[하지만 한솔양은 섹스에 전혀 관심이 없는 처녀지 않습니까?]
‘그게 포인트야. 한솔이 처녀라는 거.’
[네?]
‘쟤는 경험이 전혀 없잖아. 그러니 섹스의 맛을 모를 거란 말이지.’
[근데요?]
‘그러니 호기심을 갖게 해줘야지.’
[아하.]
‘사람들이 야동을 보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관음증이요?]
‘그것도 있지만 일종의 대리 만족이지. 배우들이 하는 행위를 보고 간접 경험을 하는 거야. 두고 봐, 지금쯤 나를 기다리다 야동을 틀기 시작했을 테니까.’
도훈의 말처럼 한솔은 야동을 켜놓고 몰래 시청 중이었다.
배경은 학교나 학원으로 보이는 공간.
선생으로 보이는 여자는 자신처럼 짧은 치마에 속옷 색이 비치는 얇은 블라우스를 입고 있었다. 소위 학원물이라 불리는 야동의 장르였다.
‘어, 어머나. 이건···.’
한솔은 야동에 자신과 유사한 직업이 등장하자 자기도 모르게 숨을 죽이고 집중했다. 여선생이 뒤를 돌아 칠판에 판서를 시작하자, 양아치처럼 보이는 학생이 갑자기 다리를 벌리며 지퍼를 열더니 물건을 꺼내 들었다.
‘허헉!’
한솔은 갑작스레 노출된 성기에 엄청 놀라고 말았다. 그것은 노모였던 것이다. 카메라가 새까맣고 징그러워 보이는 남학생의 성기를 클로즈업했다. 한솔이 그 장면에 침을 꿀꺽 삼켰다.
‘나, 남자 것이 저렇게 생겼구나···.’
한솔이 남자의 성기를 그토록 자세히 관찰한 건 처음 이었다. 성교육 PPT를 만들 때도 인체 해부도 같은 그림 자료만 접했지, 이토록 노골적으로 꼴려있는 물건이라니···.
평소 같으면 징그럽다고 당장 화면을 꺼버렸을 텐데 오늘따라 왠지 계속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도훈이가 어떤 취향인지 좀 더 알아봐야 해.’
영상 속의 남학생은 여선생의 뒤태를 보며 갑자기 딸딸이를 치기 시작했다. 한 손으로 좆기둥의 중앙부를 움켜쥐고 위아래로 흔들어대자 귀두로 피가 몰리며 유선형으로 부풀었다.
‘와···, 저, 저렇게나 커지다니···. 남자의 물건이란 굉장하구나.’
한솔은 발기된 물건을 실제로 본 적이 없으므로, 야동 배우의 물건이 유난히 큰 편이라고 착각했다. 그때 판서를 이어가던 여선생이 뭔가 이상한 눈치를 챘는지 홱 고개를 돌렸다.
‘저런! 이제 저 학생 큰일 나겠군.’
교사의 입장에 빙의된 한솔은 남학생이 학생부에 끌려가 크게 혼이 나거나 퇴학 조치를 밟을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여선생은 활짝 웃더니 학생에게 다가와 책상 앞에 쪼그려 앉는 것이 아닌가?
‘뭐, 뭐야? 왜 저래?’
그리고는 일본어로 뭐라고 중얼거리더니 갑자기 남학생의 물건을 입으로 빨기 시작했다. 한솔은 그 장면에 이르러 더는 참지 못하고 화면을 끄려고 했다.
그때 등 뒤에서 도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생님. 지금 뭐 보시는···."
"어, 어머나!"
화들짝 놀란 그녀는 재빨리 화면을 끄려다가 실수로 줄여둔 창 크기를 전체화면으로 바꾸고 말았다. 이제 영상은 커다란 모니터를 가득 채우며 오랄 장면을 내보였다.
"아, 아니 이게 그러니까···."
허둥대는 한솔은 어찌할 줄 몰라 하며 컴퓨터 전원을 내렸다. 순간 본체의 팬 소음마저 사라지자 싸늘한 정적이 감돌았다.
도훈은 그녀의 뒤에서 팔짱을 낀 채 입을 굳게 다물었고, 야동을 보다 들킨 한솔은 참담한 표정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도훈은 더 말하지 않고 본체에 꽂아둔 USB를 뽑아냈다. 그러더니 꾸벅 고개를 숙이며 돌아섰다. 한솔이 그를 돌려 세웠다.
"도, 도훈아! 갑자기 어디가?"
"죄송해요, 선생님. 오늘은 저녁 먹을 기분이 아니라서···."
한솔은 도훈이 화가 많이 났다고 생각했다. 수치스러운 비밀을 들켰으니 응당 그럴만 했다. 하지만 이대로 도훈을 보내고 나면, 앞으로 다신 도훈과 화해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렇다고 이대로 가버리면 어떡하니? 내 말도 좀 들어봐야지."
도훈이 발걸음을 멈췄다.
"무슨 말이요?"
"아, 아니 그러니까 이게 어떻게 된 거냐면···."
한솔이 재빨리 머릴 굴렸으나 핑곗거리가 마땅히 없었다.
"어떻게 된 건데요?"
도훈이 따지듯 물었다.
자존심에 상처받은 얼굴이었다.
"그, 그러니까 우연히 폴더를···."
"선생님은 왜 허락 없이 남의 폴더를 뒤지세요?"
"아, 아니 그게···."
도훈이 언성을 높이자 한솔이 다시 곤란해졌다.
"미, 미안. 일부러 보려고 한 건 아닌데··· 나도 모르게."
"됐어요. 제가 부주의했어요. USB가 그것밖에 없어서···. 학교에 들고오는게 아니었는데···."
"아, 아냐. 도훈아. 몰래 본 내가 잘못이지 넌 하나도 잘못 한 거 없어."
"소문만 내지 말아주세요"
"다, 당연히 안 내지. 너, 너도···."
"뭘요?"
"내가 이걸 봤다고···."
"안 낼게요. 아무튼 죄송했습니다."
도훈이 다시 꾸벅 고개를 숙이더니 돌아섰다. 한솔이 의자에서 일어나더니 도훈의 손목을 붙잡았다.
"자꾸 어딜가니?"
"쪽팔려서요."
"왜? 뭐가? 야동 담아서 가지고 다닌 거? 건강한 남자는 그럴수도 있지. 선생님은 다 이해해."
"···그런게 아니에요."
"응?"
"건강해서 가지고 다닌게 아니고···."
도훈이 입술을 오물거리며 고개를 떨궜다.
이상한 느낌을 받은 한솔이 다시 물었다.
"왜 그러니? 무슨 일 있는 거야?"
"사실 ···건강하지 못해서 담아 다니는 거였거든요."
"무슨 소리야? 너처럼 튼튼한 애가 어딨다고?"
도훈이 갑자기 깊은 한숨을 쉬더니 한솔에게 말했다.
"어차피 다 들킨 거 선생님한테만 솔직하게 말할게요."
"응, 말해봐. 선생님이 들어줄게."
"사실 저··· 임포텐츠에요."
[와, 개소리 오졌습니다.]
‘닥치고 있어 봐.’
"그게 뭔데?"
"발기 부전요."
"발··· 기 부전?"
"네. 발기 부전요."
도훈은 민망함에 제대로 발음도 못 하는 한솔에게 또박또박 다시 들려주었다. 한솔은 자기도 모르게 도훈의 바지춤으로 시선을 내렸다가 민망해하며 시선을 회피했다.
‘세, 세상에 발기부전이라고?’
도훈이 다시 말했다.
"이상하게 두어 달 전부터 그게 안 섰어요. 원래 아침이면 자동으로 커졌거든요."
"으, 응 그러니?"
"그래서 혹시나 싶어 비뇨기과에 찾아가 봤더니··· 심인성 임포텐츠 증상이라는 거예요."
"심인성이면···."
"네. 기능상의 문제는 아닌데 정신적인 문제 때문에 발기가 안 되는 거라고···."
"세상에 어쩌다···."
"의사 선생님이 그러더라고요. 아직 20대 초반이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일단은 시간을 두고 천천히 지켜보자면서 치료 요법으로 그 USB를···."
"아! 그런 일이!"
"틈날 때마다 보랬어요. 자꾸 자극을 받다 보면 자연스럽게 치료가 될지도 모른다면서···. 원래는 그래서 노트북을 들고 다니거든요. 실습하면서부터는 못 들고 다니지만요."
"저런···. 난 그런 줄도 모르고···."
"근데 USB가 필요할 것 같아서 들고 왔더니···. 흠."
"그런 일이 있었구나. 미안해 도훈아. 선생님이 괜히 오해해서···."
"괜찮아요. 그냥 비밀만 지켜주세요."
한솔은 갑자기 도훈이 안쓰러웠다. 어린 나이에 불치병에 걸린 환자 같다고 여겨졌다.
"도훈아. 선생님이 도와줄 일은 없을까?"
< 512. 교생 실습-56-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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