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9. 교생 실습-53- >
"이러고 있으니까 우리 사귀는 사이 같지 않니?"
민주는 무척 들떠 보였다.
조교를 당하지 않을 때의 그녀는 너무나도 말짱했다. 큼지막한 눈동자엔 재기가 번뜩였고, 상냥하고 여성스러운 태도에선 유복한 가정에서 곱게 자란 티가 났다. 교사가 되기를 포기하고 더 큰 꿈에 도전할 만큼 야망도 갖춘 여자다.
아마 지금의 모습이 본연의 민주에 가까울 것이다.
예쁘고, 똑똑하며, 누구 앞에서나 늘 당당한 여자.
이토록 기품있고 훌륭한 아가씨가 어째서 그런 변태 같은 취향을 갖게 된 것인지는 의문이다.
문득 민주가 안쓰러워졌다.
그녀를 괴롭혔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낀다.
슬며시 팔을 들어 어깨를 두르자 민주가 비 맞은 강아지처럼 몸속으로 파고들었다. 바닷바람은 뜻밖에 쌀쌀했고, 얇은 티 하나로 차가운 밤공기를 막아내기엔 역부족이었다. 우리는 서로의 체온에 기대며 밤바다를 견뎠다.
검은 바다 위로 떠오른 만월 탓인지, 유달리 센티 해지는 기분이었다.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을 질문을 던졌다.
"선생님은 저랑 사귀고 싶으세요?"
묻자마자 곧장 후회했다. 관계를 설정하는 것은 절대 해선 안 될 물음이다. 괜히 상대만 희망 고문할 여지가 크다.
어차피 결론은 정해져 있으니까.
"글쎄···. 어떨 거 같은데?"
민주는 살짝 모호한 스탠스를 취했다.
긍정보단 부정에 가까운 뉘앙스. 괜히 물었나 싶었는데, 그녀의 태도로 보니 섣부른 걱정을 한 것 같다.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애인을 원하는 건지, 섹파를 원하시는 건지. 그마저도 아니면, 그냥 취향을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이라 만나는 건지···."
방금 대답은 민주에게 늘 가지고 있던 의문이었다.
예를 들어 정음이 같은 대부분의 여자는 관계가 깊어질수록 나에 대한 소유욕이 점점 강해지는 경향을 보였다. 사실 마음에 드는 남자를 독점하고 싶은 마음은 여자로선 당연한 태도. 애초에 파트너를 약속한 오수정 같은 경우가 아닌 이상에야 자기 남자를 다른 여자에게 내주는 것이 정상적인 반응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민주는 자신의 절친인 송지희를 따먹는 섹스 동영상을 보고서도 나에 대한 애정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그 뒤로 더욱 뜨거워진 느낌이다.
"···난 남들처럼 평범하게 누굴 만나고 사귈 자신은 없어."
그녀가 밤바다를 바라보며 소곤거렸다.
"내가 평범하지 않다는 거, 너도 잘 알잖아."
확실히.
민주는 평범하지 않다.
만났던 수많은 여자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변녀다.
질 속에 치킨 무를 쑤셔 박아도, 다른 여자와의 후장 개통식을 폰으로 생중계해도, 목줄을 묶어놓고 개처럼 따먹어도 여전히 좋다고 매달리는 진성 메조.
그녀는 스스로 정상적인 남녀 관계를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듯했다. 역할극을 잠시 중단하고 있기 때문인지, 민주는 오랜만에 인생 선배처럼 충고했다. 평소 내 앞에선 잘 보여주지 않는 모습이었다.
"도훈아."
"네?"
"넌 그냥 좋은 여자 만나. 착하고 예쁜 애들."
"그래도 되겠어요?"
민주의 눈빛이 조금은 흔들렸다.
그러나 이윽고 결심을 마친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응. 그게 서로에게 좋을 거 같아."
"흠."
"···대신."
민주가 단서를 붙였다.
"누구를 만나도 상관은 없는데, 나 버리지만 말아줘."
"그게 무슨 소리예요?"
"난···. 너 없이는 너무 힘들 것 같으니까."
몸을 기대고 있던 민주가 팔짱을 끼며 달라붙었다. 풍만한 가슴이 팔꿈치를 짓누르며 압박해 온다. 그녀의 몸에서 나는 향긋한 냄새에 취할 것 같다.
"내가 널 원하는 건 지나친 욕심이라고 생각해. 도훈이 네가 한 여자에 구속될 타입이 아니라는 걸 잘 아니까. 난 매달리고 상처받기 싫어. 그러니 널 자유롭게 풀어주고 싶어."
"아···."
"그래도 네가 부르면 언제든 달려갈 거야. 난 너의···."
가슴을 부대끼며 흥분했는지 민주의 몸이 더욱 밀착되었다. 그녀의 손이 바지 틈 사이로 뱀처럼 파고들었다. 천천히 지퍼를 내리며 민주가 속삭였다.
"···전 주인님의 영원한 좆물받이니까요."
다시 2차전이 시작되었다.
이번엔 컴컴한 모래사장 위였다.
***
피씨방 사장 조대근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특히 최근 최저 임금이 상승하면서 알바도 자르고 자신이 손수 관리하는 일이 많아졌다. 물수건으로 키보드를 박박 닦아내던 대근은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
이러려고 시작한 헌터 생활이 아니었다.
흔히들 PK단이라 불리는 집단은, 플레이어 사냥꾼이란 의미에서 헌터라는 별칭으로 불렸다.
악인을 처단하고 세상을 구원한다는 말에 미련 없이 몸을 투신했지만, 살림살이는 늘 팍팍했다. 물론 수완이 좋아 부동산으로 재미를 본 헌터도 있다 들었지만, 근본적으로 이 일은 무보수 무임금이 원칙이다.
개인의 영달을 위한 능력사용을 극도로 제한하는 협회의 절대 원칙에 따라, 모든 헌터들은 자력으로 생계를 이어가야 했다. 가끔 나오는 본부의 지원금은 작전을 수행하며 소요되는 경비보다 적을 때가 더 많았다.
그래도 팀장이랍시고 팀원들을 어르고 챙기며 이따금 회식도 시켜줘야 하는 대근으로서는 늘 빠듯한 예산에 죽을 맛이었다.
‘다음 달엔 가겟세를 올려달라는데 한 명을 더 잘라야 하려나?’
어느덧 임대계약 만료가 도래하고 있었다. 건물 주인은 갱신 기간에 맞춰 임대료 인상을 통보했고, 늘어난 월세를 충당하기 위해 골머리를 썩는 대근이었다.
"젠장, 플레이어 녀석들만 없었어도···."
PK 단의 존재 이유는 오로지 플레이어라는 이단 때문이다.
스스로 신의 대리자를 자청하는 이단들은 혹세무민하며 세상을 어지럽혔다. 우연히 얻은 능력을 개인의 입신양명을 위해 사용했다. 때론 강력한 플레이어는 헌터를 역으로 사냥하기도 했는데, 그들은 뻔뻔하게도 자신들을 배덕자로 몰았다.
‘우리가 정말 악당이라면 이렇게 가난할 리가 없잖아?’
대근의 생각은 확고했다.
그때 옆자리에서 게임 중인 손님의 이야기가 들렸다.
대학생 정도로 보이는 청년들이었다.
"야, 너 그거 봤냐?"
"뭐?"
"일본 원정남 시리즈."
"어. 봤지. 난 28호가 제일 낫더라."
"아니 원정녀 말고 원정남."
"원정남? 그게 뭔데?"
"햐, 이 새끼 이거 트랜드 좆나 느리네."
자리를 치우던 대근은 손님들이 떠드는 이야기가 자신들이 추적 중인 대물남에 대한 이야기임을 직감했다. 그는 모니터 베젤의 먼지를 닦는 척하며 귀를 기울였다.
"요새 사이트에서 엄청 핫하거든. 한국인 출신 같은데 일본 AV배우들 폭격하고 다니는 스토리야."
"한국인이 AV배우를?"
"어. 벌써 3부작이나 나왔다니까? 일본 원정남 검색하면 나올 거야. 근데 그 새끼 진짜 좆이 엄청 크더라고."
"얼마나 큰데?"
"이쯤?"
청년이 팔꿈치를 감싸 쥐더니 아령을 드는 것처럼 주먹을 쥐고 껄떡거렸다.
"좆까? 그게 사람 잦이냐 말 잦이냐?"
"진짜라니까? 이 정도는 아닌데, 아무튼 20㎝는 족히 넘을걸?"
"모형이겠지 새꺄. 야동에 나오는 정액이랑 분수 같은 것도 다 거짓말이라잖아."
"아냐. 그게 부분만 찍혔으면 모형이라고 의심할 수도 있는데, 진짜 풀샷으로 몇 번이나 찍히고 심지어 노발기에서 발기까지의 장면도 다 남아있거든."
"그래? 그럼 진짜 좀 큰 편인가? 한국인인 줄은 어떻게 알고?"
"대사를 한국어로 치는 부분이 있는데 진짜 리얼해. 일본인이 따라 해선 나올 수 없는 네이티브 발음이야."
"그럼 나름 유명한 배우겠는데? 이름이 뭔데?"
"이름은 몰라."
"정식 레이블이면 이름 검색되지 않아?"
"그게··· 거기서도 가면 같은 거 쓰고 나오는데, 실명을 숨긴 거 같아. 찾아봐도 이름은 검색 안 돼."
"아, 그거 때문이네."
"뭐?"
"원래 우리나란 포르노 배우 하는 거 불법이거든."
"성인 배우들은 뭔데 그럼?"
"그건 공사치고 시늉만 하는 거잖아. 진짜 포르노 찍어서 유통했다간 음란물 유포로 걸릴 거야. 그래서 얼굴도 가렸나 보네."
"아, 그렇구나. 근데 사람들이 하도 궁금해서 지금 찾는 중이라는데, 유력한 썰이 하나 있어."
몰래 훔쳐 듣던 대근이 귀를 쫑긋 세웠다.
"뭔데?"
"그 일본 원정남. 옛날에 BJ 누구더라, 가은? 걔랑 합방 찍은 적 있다는 거야. 배트맨 가면 쓰고."
"진짜?"
"어. 걔가 와꾸가 좀 좋거든. 딱 보면 호리호리하게 잘 빠졌어. 거기다 가면을 쓰고 나오는 것도 비슷하잖아. 그래서 동일인물이 아닐까 추정하는 중이야."
"아하."
"어, 게임 시작했다."
어느새 로딩을 끝낸 청년들이 본격적인 게임에 들어가는데 불쑥 대근이 달려와 마우스를 잡고 있던 손목을 붙잡았다.
"뭐, 뭐에요?"
"학생. 방금 했던 얘기 나한테 자세히 좀 들려줘 봐."
"아씨, 아저씨 방금 막 게임 시작했단 말이에요!"
"2시간 공짜로 넣어줄게."
"사장님. 어디서부터 말씀드릴까요?"
두 시간이란 소리에 청년이 놀랍게 고분고분해졌다.
얘기를 모두 전해 들은 대근은 인터넷의 바다를 뒤지며 검색을 시작했다.
‘그러니까 AV에 출연했던 대물남이 한국에서 활동했었단 말이지?’
그것은 무척 중요한 단서였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인물을 찾아 일본을 헤매는 것보다 더 쉽고 빠른 방법이 있었던 것이다.
‘젠장. 돈도 없는데 괜히 두 사람을 일본으로 보냈나?’
대근은 자신의 성급한 판단을 자책했다.
하지만 이미 일본으로 건너간 둘을 돌아오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들은 그들대로 단서를 찾고, 자신은 한국에서 최대한 정보를 수집해 제공해주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오 진짜구나. 눈치 빠른 네티즌 사이에서 이미 한 번 돌았던 내용이었네.’
가면을 쓰고 등장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보기 드문 거근이기 때문인지 일본 원정편에 출연한 대물남의 정체에 대해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었다.
BJ 가영과 출연했던 대물 배트맨이 확실하다.
아니다, 잘 보면 목소리가 전혀 다른 사람이다.
성대모사 같은 거로 위조했을 수 있지 않느냐.
저게 성대모사로 될 수준이냐. 등등.
하지만 많은 네티즌들이 동의하는 바는 두 인물의 많은 부분이 유사하다는 점이었다. 날렵한 근육질. 굉장한 대물. 그리고 뛰어난 섹스킬까지.
단지 사용한 가면이 달라지고 목소리가 전혀 다른 사람처럼 들리는 부분에서 의견이 갈리고 있었다. 심지어는 두 사람의 쌍둥이 설까지 제기되고 있었다.
"가만있자···. 그럼 원정남인지 대물남인지에 대해서 가장 잘 아는 사람은 BJ 가영이라는 여자인가?"
대물 배트맨의 첫 등장은 벗방으로 유명했던 BJ가영의 초대손님 편이었다. 대근은 겨우 주소를 탐문해 BJ가영이 활동했던 사이트까지 접속했으나, 끝내 가영의 정체를 추적해 내는 데 실패했다.
하필 BJ 가영이 몇 달 전부터 공식적 은퇴를 선언한 상황. 애초에 BJ 가영조차 얼굴을 제대로 드러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누군지 추정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오리무중에 빠진 대근이 짜증을 내며 마우스를 움켜쥐었다.
"젠장! 뭐하는 놈인데 이렇게 정체를 꽁꽁 숨기고 있는 거야?"
"저, 사, 사장님."
"어?"
"마우스 부서진 거 같은데요?"
"얼레?"
자기도 모르게 괴력을 발휘한 대근이 손에서 파편이 되어 바스러진 마우스 잔해를 털어냈다. 야간 알바가 놀란 표정을 짓자 대근이 너털웃음을 지으며 둘러댔다.
"허허! 마우스 납품업체 놈들 조져야겠네. 무슨 마우스를 쿠크다스처럼···."
알바가 의심하는 눈초리를 보내자 대근이 서둘러 카운터를 빠져나갔다.
"아무튼, 야간 잘 보고 고생 좀. 난 퇴근할게."
"네. 조심히 가세요."
"어."
가게를 나선 대근은 곧장 일본으로 전화를 걸었다.
어쨌든 우연히 알아낸 정보인 만큼 창범에게 전달해줄 필요를 느꼈다.
"창범이냐?"
-아씨, 대장. 국제전화 걸면 양쪽에서 요금 나가는 거 몰라요?
"얀마. 중요한 내용이라서 그래. 그 대물남에 대해 몇 가지 더 알아냈어."
-대물남요?
"어. 확실치는 않은데 두어 달 전에 국내에서 성방을 찍은 이력이 있어."
-두 달 전에 그럼 한국에 있었단 얘기에요?
"어. 아마도. 내 생각인데 재일교포라기보단 한국인일 가능성이 커."
-그런 거 같네요. 지금 프로덕션 사람들이랑 연결되는 운전기사한테 접근 중이에요. 조만간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힐 거 같아요.
"열심히 하고 있구나."
-아, 근데 대장. 아무리 그래도 금일봉이라고 봉투 줘놓고 10만 원이···
"여보세요? 창범아? 국제전화라 잘 안 들리나?"
-아씨 안 들린 척 말고 이 쫌팽이야!
"수신 상태 불량하니 오늘은 이만."
뚝-
전화를 일방적으로 끊은 대근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새끼. 없는 돈 쪼개서 보태준 것도 모르고···."
대근은 집에 가는 길에 서둘러 편의점을 들렀다.
이 시간이면 폐기제품을 헐값에 구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오늘은 무슨 삼각김밥을 먹어볼까나?"
생활고에 찌든 중년의 어깨가 유난히 초라해 보였다.
***
심야 드라이브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니 어느덧 시간은 새벽 3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도훈은 차로 바래다준 민주에게 잘 가라고 인사하며 원룸으로 들어갔다.
"와, 샤워부터 해야겠네. 몸에 모래 엄청 묻은 듯."
[그러게 모래사장에서 왜···.]
‘어쩔 수 없잖아. 갑자기 거기서 덤벼드는데.’
도훈은 민주와의 해변 섹스를 떠올렸다.
< 509. 교생 실습-5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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