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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524화 (497/2,000)

< 506. 교생 실습-50- >

"결혼을 꼭 해야 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야. 보는 사람마다 결혼은 언제 할 거냐, 사귀는 사람 있느냐 하도 물어보니까 나도 모르게 예민해졌나 봐."

"그러셨구나. 그럼 혹시 사귀는 사람도 없는 거예요?"

"응. 지금은···."

한솔이 말꼬리를 흘렸다.

실은 ‘지금은’이 아니라, ‘한 번도’라는 말이 옳았다. 한솔의 비밀을 아는 도훈으로서는 자존심을 지키려는 모습이 애처롭게 느껴졌다.

‘어찌 보면 불쌍한 여자구나.’

[네?]

‘모든 걸 다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속은 텅 빈 공허감으로 가득 차 있달까?’

[이제 좀 달리 보이시나요?]

‘응.’

[혹시 부작용이 풀리신 건가요?]

‘그런 것 같기도···.’

깨톡-

다시 민주에게서 깨톡이 도착했다. 도훈은 일부러 폰을 확인하지 않고 한솔에게 계속 말했다. 그녀에게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었다.

"하긴 굳이 결혼을 해야 할 필요가 있나요? 요샌 비혼주의자들도 많다는데."

"도훈이 너도 그렇게 생각하니?"

"전 아직 어리지만, 결혼에 대한 환상 같은 건 없어요. 솔직히 결혼한 유부남 보고 있으면 그렇게 행복해 보이진 않더라고요."

그저 하는 소리가 아니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마음껏 불륜을 저질렀던 아내.

상간남에 의한 원통한 죽음.

심지어 혈육인 줄 알았던 딸아이는 남의 자식이기까지.

결혼한 남자가 겪을 수 있는 최악이란 최악을 모두 경험한 도훈의 입에선, 나이답지 않은 절절함이 묻어나왔다. 그가 쉽게 여자에게 마음을 주지 못하고 방황하는 이유는 어쩌면 과거의 지독한 상처 때문일지도 몰랐다.

"그렇구나···."

부작용에서 겨우 해방된 도훈이 슬슬 시동이 걸었다.

"뭐, 한 사람하고만 평생 사는 게 쉽지 않을 것 같기도 하고요."

"응?"

"어떤 책에서 읽었거든요. 사랑의 유통기한은 길어야 3년이라고. 선생님도 그런 경험 있지 않으세요?"

"겨, 경험이라니?"

"아니, 전에 남자 사귀었을 때요. 콩깍지 다 벗겨지고 나면 단점만 들어오잖아요. 그렇게 좋아했던 사람인데 하는 짓마다 미워 보이고. 불과 몇 년만 지나도 이렇게 사람 마음이 바뀌는데 평생 어떻게 한 사람만 보고 살 수 있겠어요?"

"으, 응. 그, 그런 것 같기도···."

‘한 번도 남자 사귀어 본 적 없다고 말하면 우스워 보이겠지?’

모태솔로라는 과거가 창피했던 한솔이 두루뭉술 대답을 둘러댔다. 도훈은 그녀가 난처해 하는 걸 알면서도 계속 물었다.

"혹시 제일 오래 사귄 분은 몇 년 만나셨어요?"

도훈의 질문에 한솔이 주춤했다.

‘윽, 무슨 저런 걸 물어본담···.’

한솔은 대답을 회피하고 싶었지만, 겨우 원상 복구된 도훈과의 관계가 틀어질까 봐 망설였다. 도훈은 예상밖에 퉁명스러운 사내였고, 보기보다 직설적이었다. 그의 비위를 맞춰주지 않으면 또다시 대화가 단절될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이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음···, 그러니까···."

"제가 맞춰 볼까요?"

"그럴래?"

차라리 그편이 나았다. 있지도 않은 거짓말을 지어내느니, 스스로 오해하게끔 만드는 게 자존심을 덜 상하는 방법이었다.

‘뭐, 착각은 자유니까.’

"왠지 선생님은 진득하게 오래 만나셨을 것 같아요."

"왜?"

"그냥 느낌이요. 한 5년 쯤?"

"글쎄···."

‘사귀어는 봤냐고 먼저 물어보는 게 예의 아니니?’

한솔의 미적지근한 반응에 도훈이 갑자기 태도를 바꿨다.

"아! 아니다. 의외로 자주 바꿀 것 같기도?"

"어?"

"1년 미만이죠?"

"왜 그렇게 생각해?"

"예쁘시니까요."

"음···."

"주변에서 계속 들이대니까 자주 바뀔 것 같아요. 제 말 맞죠?"

"꼭 대답할 필욘 없는 거지? 노코멘트 할게."

"말 안 해도 알아요. 인기 좋으시다는 거. 체육 선생님이 말해줬어요."

"체육 선생님이라니? 혹시 봉두 선배?"

"네. 2학년 체육 선생님이요."

"아니 그 선배는 대체 왜 쓸데없는 말을!"

한솔은 당황했다. 봉두는 그녀의 과거를 소상히 알고 있는 사람이다. 왠지 그가 부끄러운 비밀을 다 까발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암튼 체육 선생님이, 연구부장 선생님 대학 시절에도 인기 엄청 많았다고···. 고백도 자주 받았다던데요?"

"그렇게 말했어? 봉두 선배가?"

‘휴. 다행히 모태 솔로란 얘긴 안 했나 보네. 하긴, 내가 남자 사귀어본 적 없는 걸 자기가 어떻게 알겠어? 나랑 그렇게 친한 사이도 아니었는데.’

"봉두 선배도 참···. 별 얘길 다 하고."

"아, 오해하진 마세요. 제가 여쭤봐서 대답해 준 것 뿐이니까."

"도훈이 네가? 왜?"

"궁금했거든요, 선생님이."

도훈은 시선을 피하지 않고 한솔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갑작스레 훅 들어오는 도훈의 멘트에 한솔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뭐, 뭐야? 지금 저게 무슨 의미지?’

한솔은 더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갑자기 센터페시아로 손을 뻗었다.

"어째 좀 공기가 답답하지 않니? 내부순환으로 되어 있나?"

그러나 허둥대는 탓에 자기도 모르게 와이퍼 레버를 건드리고 말았다. 비도 오지 않는 차창 밖으로 두 개의 와이퍼가 느닷없이 좌우 반동을 시작했다.

끼이익-끼이익-

수분기 없는 차창을 와이퍼가 긁어대자 듣기 싫은 소음이 들렸다. 갑작스레 벌어진 사태에 한솔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반대로 레버를 내렸다. 그러자 이번엔 와이퍼가 2배 더 빠르게 움직였다.

삐꺽-삐꺽-삐꺽!

"어, 어머나!"

한솔은 어쩔 줄을 몰라 했다. 평소 완벽하게 절제된 모습을 보여주던 그녀의 당황하는 모습에 도훈이 피식 웃었다.

‘허둥대기는.’

도훈이 팔을 뻗어 와이퍼를 정지시켰다.

"위로 들어야 해요."

"그, 그렇지? 고마워."

"곧 신호 바뀔 것 같으니 브레이크 밟으시고요."

"응? 신호? 어머!"

끼익-!

하마터면 카메라가 지키고 있는 빨간불을 그대로 지나칠 뻔한 한솔이 급정거를 했다. 미리 준비하고 있던 도훈은 팔을 뻗어 대쉬 보드를 붙잡아 몸을 지탱했지만, 정작 한솔은 아무 대비를 하지 못하고 앞으로 튕겨 나갔다.

도훈은 와이퍼를 조작하던 손을 뻗어 한솔의 몸을 멈춰 세웠다.

"워워, 조심하셔야죠."

물컹-

엉겹결에 도훈의 손이 한솔의 젖가슴에 닿았다. 한솔의 얼굴이 새빨게 졌다. 의도치 않은 행동이란 걸 알았기에 화를 낼 수도 없었다. 그러나 부위가 부위니 만큼 창피함이 훅- 몰려왔다.

"고, 고마워."

"휴, 하마터면 카메라 찍힐 뻔 했네요."

"그러게."

뜻밖의 접촉에 한솔의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허둥대는 모습을 보인 것도 부끄러웠고, 무엇보다 젖가슴이 남자 손에 닿았다는 사실만으로 민망해 죽을 것 같았다.

‘흐읏, 이게 대체 무슨 꼴이람.’

한솔은 몰랐겠지만, 도훈은 명백한 고의였다.

‘후후. 생각보다 물렁젖인데?’

[물렁젖이라뇨?]

‘그거 몰라? 가슴마다 촉감이 다른거. 작지만 단단한 애들도 있고, 크지만 물컹거리는 애들도 있아. 풍만하면서도 탄력 있는 여자도 있는 반면, 작은데 밑으로 흘러내리는 애들도 있지.’

[오오, 역시 젖문가!]

‘한솔이는 전형적인 물렁젖이랄까? 크기는 큰데 손으로 누르면 갈비뼈까지 쑥 들어가는.’

[좋은 건가요, 안 좋은 건가요?]

‘나이 들면 살짝 처지긴 하겠지. 그래도 만지는 촉감은 엄청 부드러운 편이야. 가슴만 가지고 놀아도 재밌달까?’

[음탕한 얘기를 하는 거 보니 다시 돌아오셨나 보군요.]

‘어. 현자 타임 부작용이 생각외로 엄청난데? 다음엔 공략 직전에 절대 써선 안 될 것 같아.’

[무슨 말을 했는지도 다 기억나십니까?]

‘당연하지. 근데 그땐 마치 그래야 할 것 같았거든. 되돌아보니까 아찔하네. 아까 잘 말렸어.’

[아깐 정말 다른 사람처럼 행동하더군요. 주인님이 아닌 줄 알았습니다.]

‘잠시 후유증을 겪은 것뿐이야. 이제 괜찮아.’

한솔이 민망함에 입 꾹 다문 사이 도훈이 핸드폰으로 민주의 메시지를 확인했다.

‘훗-. 진짜로 바니걸 복장이네?’

민주는 착실하게도 도훈의 명령을 잘 수행하고 있었다.

메이드복을 갈아 입은 그녀는 시스루 속옷 위에 가터 펠트로 붙잡은 스타킹, 머리에는 앙증맞은 토끼 귀 머리띠를 하고 있었다.

갖가지 포즈로 찍힌 사진은 화보 촬영처럼 다채로워, 그녀가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알 수 있었다. 도훈은 말을 잘 듣는 민주가 갸륵해 바로 답장했다.

도훈 : 맛있게 생겼네. 먹고 싶다. 우리 집으로 와.

핸드폰을 다시 집어넣은 도훈이 큰 길 옆으로 난 골목길을 가리켰다.

"선생님. 이쯤에서 내려 주시면 돼요."

"그, 그러니? 여기 세울까?"

"네."

한솔은 아까 사건 이후로 도훈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학교에서의 기세등등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수줍음 많은 처녀만 남아있었다.

‘내가 왜 이러지? 설마 도훈이를 남자로 의식하는 건가?’

오랜만에 다가온 두근거림이 몹시도 낯설었다.

연애 세포란 세포는 모두 말라 비틀어진 줄 알았는데, 어쩌면 지금껏 적절한 상대를 만나지 못한 탓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를 정차하자 도훈이 내리더니 차 문밖에서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선생님, 태워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으, 응. 그래."

"조심히 들어가세요."

예의 바른 모습조차도 멋있어 보였다.

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자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 그래. 그럼 난 갈게."

한솔이 서둘러 차를 출발시켰다. 차가 사라질 때까지 묵묵히 지켜보던 도훈이 담배를 꼬나물며 로시에게 말했다.

‘먹혀든 것 같지?’

[네?]

‘연구부장 말이야. 아까부터 눈도 제대로 못 마주치더군. 나에 대한 평가가 바뀐게 분명해.’

[호오, 근데 아까 거기서 왜 더 나가지 않으셨나요? 주인님이라면 좀 더 과감하실 줄 알았는데.]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잖아. 한솔은 아직 무르익지 않았어. 조금만 더 뜸을 들이면 알아서 넘어올 거야.’

[주인님만 믿겠습니다.]

‘어차피 한솔이 내 앞에서 자빠지는 건 시간 문제야. 내일부턴 볼 만할걸?’

[그나저나 민주 양을 집까지 초대하시다니···. 괜찮을까요?]

‘집으로 데려가겠단 말은 아니었는데?’

[그럼요?]

‘오늘 민주는 혼 좀 나야 해. 당연히 야외플레이지.’

[아!]

***

민주는 몹시 들떠 있었다. 바니걸 차림으로 대기하던 그녀는 위에 가벼운 티와 치마만 걸치고 곧장 주차장으로 향했다.

‘드디어 주인님과!’

도훈이 집 주소를 알려준 적은 없지만 그건 상관없었다.

도훈은 체육과 학부생이었고, 그녀는 체육과의 조교였다. 이미 신상정보를 싹 뒤져보았기에 그의 등록주소 및 가족관계까지 모르는 게 없을 정도였다.

‘하아···. 오랜만에 주인님의 대물을···.’

차에 시동을 켜는 떨림만으로 팬티가 젖어 드는 것 같았다. 오늘은 도훈이 어떤 식으로 거칠게 다뤄줄지 상상이 가질 않았다.

"흐으응···."

흥분을 참지 못한 민주가 콘솔 박스 안에 꽁꽁 숨겨두었던 로터를 끄집어냈다. 메추리 알 크기의 전동 로터를 들어 팬티 옆으로 끼운 민주가 스위치를 작동했다.

부르르!!

작지만 강한 떨림을 자랑하는 일본제 자위기구가 진동을 시작했다. 찌르르한 느낌과 함께 민주의 젖꼭지가 빳빳해졌다.

"하아, 주인님···, 민주 지금 달려요!"

만나기도 전부터 몸을 달구기 시작한 민주는 신호도 무시한 채 엑셀을 밟아댔다. 도훈을 1분 1초라도 일찍 만날 수 있다면, 그까짓 신호 위반 범칙금이야 얼마든지 지불해도 상관없었다.

‘주인님의 집으로 드디어 가보는구나. 비번 알려달래서 다음에 몰래 가서 청소도 해드리고, 저녁도 지어드리고···.’

민주는 도훈의 우렁각시가 되는 상상에 빠졌다. 감동한 도훈이 자신을 안아주기까지 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았다.

‘아, 주인님의 정액을 가득가득 넣고 싶어.’

행복한 상상에 빠진 민주가 어느덧 도훈의 주소지 근처에 도착했다. 한적한 원룸촌이었다. 민주가 차를 서행하며 위치를 찾는데 앞에서 누군가 손을 들었다.

"응?"

손을 든 사람은 도훈이었다. 교생 실습을 다니느라 말끔한 정장 차림의 도훈이 몸소 배웅을 나와 있었다.

"아아, 주인님···, 저 같은 미천한 것에게···."

민주가 감동한 체 차를 멈춰 세웠다.

도훈이 곧장 차 문을 열고 들어왔다.

"왔어?"

"주, 주인님! 민주를 위해···."

"밟아."

"네?"

"차 세우지 말고 계속 가라고."

"아···."

민주는 감히 도훈의 명령을 거역하지 못하고 그대로 차를 출발시켰다. 네비에 찍힌 목적지가 다시 멀어지고 있었다. 민주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주인님 근데 지금 어디로···."

"묻지말고."

"네, 네."

도훈이 거칠게 넥타이를 풀었다. 종일 일에 시달린 것처럼 피곤한 모습이었다.

"너랑 드라이브 좀 하고 싶어서."

"아···."

민주는 또다시 감동했다.

드라이브는 연인들끼리 하는 데이트 코스가 아닌가?

"어디든 좋으니까 한적한 곳으로."

"네, 주인님."

민주가 신이 나서 엑셀을 밟았다. 도훈과 단 둘이 차를 타고 교외로 나간다는 사실만으로 민주는 들뜨기 시작했다. 도착 직전까지 로터로 달군 구멍이 다시 벌렁거렸다.

‘아아, 주인님이 바로 옆에 있으니까 너무 흥분돼. 이럴 줄 알았으면 로터 계속 끼우고 있을 걸.’

그때 도훈이 갑자기 코를 킁킁거리더니 콘솔 박스 주위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근데 이게 무슨 냄새지?"

"네? 차에서 무슨 냄새 나요?"

"응. 어디선가 보짓물 냄새가 진동하는데?"

도훈은 마치 민주의 행동을 훤히 들여다 본 것처럼 콘솔 박스를 열더니 깊숙한 곳에 감춰두었던 로터를 끄집어냈다.

건전지 부분을 잡고 들어 올린 로터의 표면에는 끈적한 애액이 잔뜩 묻어 있었다.

"···어쭈? 이것 봐라?"

도훈의 입꼬리가 사악하게 비틀어졌다.

< 506. 교생 실습-50- > 끝

ⓒ 성난불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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