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3. 교생 실습-47- >
정액은 맛이 없다. 딸딸이를 치고 난 골방에는 흔히 밤꽃 냄새라 불리는 특유의 비릿한 냄새가 진동한다. 그 때문에 대부분 여자는 정액을 입으로 받되 다시 뱉어내기 일쑤다.
하지만 현아는 도훈의 정액이 무안 단물이라도 되는 양 꿀떡꿀떡 삼켰다.
"서, 선생님···."
"카하! 잘 먹었다."
목울대가 꿀렁거리는 모습을 보고 도훈이 생각했다.
‘방금 들이킨 게 보약보다 값어치 있는 성수라는 걸 알려나 모르겠군.’
[후후, 주인님과 관계하는 여자들도 쏠쏠한 보상이 생기는군요.]
‘당연히 베풀고 살아야지, 암.’
"그걸 왜···."
"괜찮아. 도훈이 몸에서 나온 거라면 뭐든 좋아."
"아···."
현아가 배시시 웃더니 물티슈를 챙겨 대물 주위를 닦았다.
"자, 뒤처리 끝."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내가 좋아서 한 건데."
어느덧 퇴근 시간을 살짝 지나 있었다.
현아는 아쉽지만 도훈의 꿀물을 뽑아낸 것을 위안으로 삼았다.
‘나는 못 즐겼지만, 도훈이가 기분 좋았으면 됐어. 맨날 이렇게 잘해주다 보면 언젠간 나에게 홀랑 빠지겠지?’
현아는 성의를 다한 서비스로 어린 도훈의 마음을 뺏을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세상 어느 여자가 씻지도 않은 물건을 입으로 싹싹 핥아 주겠느냐면서. 하지만 그녀는 모르고 있었다. 도훈의 사타구니는 물론 똥구멍까지도 거침없이 빨아줄 수 있는 민주의 존재를. 그의 총애를 받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여자들이 생각외로 많다는 것을.
"아쉽지만, 오늘은 이걸로 만족하렴."
"네, 선생님."
현아와 헤어진 도훈은 짐을 챙겨 교무실로 향했다. 종일 사람들이 북적대던 교무실은 퇴근 시간이 지나고 나니 눈에 띄게 한산해 보였다.
남은 업무를 서두르는 교무 행정 직원과, 시험 문제를 출제 중인 선생 두어 명 정도가 자리를 지켰다.
도훈은 구석 자리에 앉은 한솔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도훈이 다가오는지도 모른 채 컴퓨터에 매달려 있었다. 안경을 썼음에도 컴퓨터 앞에 바짝 붙은 자세가, 허리가 굽어진 거북이를 연상시켰다.
‘쯧쯧. 저러다 목 빠지겠네. 무슨 일을 저렇게 빡세게 한 담?’
[왜요? 교사로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멋있지 않으십니까?]
‘일도 좋지만, 가끔 즐길 줄도 알아야지. 젊다고 저렇게 몸을 혹사했다간 나이 들어 한 방에 훅 간다고.’
[그건 주인님 본인 얘긴가요?]
‘과거의 나도 그랬지만, 주변에도 많았어. 젊어서 개처럼 고생만 하다 자리 잡을 때쯤 골병들어 몸 망친 사람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의욕이 과하면 본말이 전도된다는 말씀이야.’
[그래도 제 눈엔 학교에서 섹스를 즐기는 라이프보단 건설적으로 보이는군요.]
‘내가 다 해보고 하는 말이래도?’
"저어···, 선생님."
"응? 왔니? 잠깐, 이것만 마저 끝내고."
"네."
한솔은 도훈을 한참 세워둔 채 일을 마무리했다. 뭔가에 빠지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집중하는 모습이 전형적인 워커홀릭다웠다. 끝내 엑셀 표를 정리한 한솔은 그제야 도훈을 오래 세워두었다는 걸 깨닫고 민망하게 말했다.
"미안, 내가 정신이 없었구나. 많이 기다렸지?"
"아니에요."
태연하게 대답하는 도훈의 모습에 한솔은 더욱 미안해졌다.
"저녁 안 먹었지? 내가 살 게. 어차피 오늘 일찍 끝나긴 힘들 것 같은데."
저녁 식사를 제안한 한솔이 남아있는 교무실 직원들을 향해 말했다.
"여기 오늘 야근할 건데 혹시 배달 같이 시키실 분 계신가요?"
"연구부장 선생님, 전 이것만 끝내고 바로 나가요."
"유치원에서 아이 데려와야 해서."
"난 오늘 친구 아버지 장례식이···."
다들 적당한 핑계를 대며 야근을 기피하는 모습이었다.
결국 본인과 도훈 말고는 남는 사람은 없었다. 한솔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우리 둘밖에 없네. 중국집 전화할 건데 뭐 먹을래?"
"전 뭐든 잘 먹어요."
‘여자도.’
"사줄 때 좋은 거 먹어. 여기 삼선짬뽕 괜찮은데 그걸로?"
"네."
한솔은 중국집으로 주문을 걸더니 짬뽕 2개와 군만두를 추가해 시켰다.
"한 명 더 있으면 탕수육이라도 추가해 줄랬는데 아쉽게 둘 뿐이네."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뭘 감사는. 일단 밥부터 먹이고 시작하는 거지."
한솔이 안경을 벗어 책상 위에 올리더니 기지개를 켰다. 순간 타이트하게 조여진 블라우스 사이로 가슴의 굴곡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오, 역시 굿 바디.’
[쯧쯧. 방금 싸고 와놓고 그 새를 못 참으십니까?]
‘로시, 미인은 봐도 봐도 설레는 거야. 그리고 현아랑은 제대로 한 게 아니잖아. 그냥 씻김굿 한 번 했을 뿐.’
[씻김굿이요?]
‘엉. 못 씻어서 찝찝했는데 깨끗이 씻겨 줬잖아.’
[거참, 단어 선택이···.]
한솔이 입은 블라우스는 어깨 아래로 살짝 내려온 반 팔이었는데, 팔을 위로 쳐들자 자연스레 겨드랑이가 노출되었다. 깔끔하게 제모가 된 겨드랑이가 도훈의 음심을 자극했다.
‘후읍-. 저기 코 한 번 파묻고 싶네.’
[주인님, 변태같습니다.]
‘변태 맞는데?’
"많이 피곤 하신가 봐요."
"응. 오늘 종일 컴퓨터만 했더니 어깨가 다 결리네."
"제가 좀 주물러드릴까요?"
한솔은 도훈의 제안에 흠칫 놀라며 손사래를 쳤다.
"됐어, 무슨."
남자의 스킨쉽을 굉장히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에 도훈도 더 제안하지 않았다.
‘역시 철벽인가. 호락호락한 데가 없군.’
[고전이 예상되는 군요.]
"그래, 담임선생님 메신저로 보낸 파일은 받았니?"
"네, 여기 프린트해왔어요."
"읽어봤어?"
"아뇨, 계속 연수가 있어서."
"일단 식사 오기 전까지 눈으로 훑어봐. 수업 흐름이 어떻게 되는지, 특히 교사의 발문이 어떤 식으로 이뤄지는지를 중점적으로 봐야 해."
"네."
한솔은 도훈에게 지도안 보는 요령을 몇 가지 알려주더니 혼자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그 사이 교무실에 남아있던 교직원들이 하나둘씩 퇴근했다.
"연구부장 샘, 오늘은 먼저 갑니다."
"아이고, 오늘도 야근이세요?"
"실습생도 고생하겠네."
저마다 격려와 위로를 보내며 자리를 뜨자 어느새 넓은 교무실엔 도훈과 한솔 두 명만 남게 되었다. 도훈은 열심히 지도안을 읽는 척하며 스트레칭을 하는 한솔을 훔쳐보았다.
‘캬, 확실히 선이 곱단 말이지.’
한솔은 타고난 체형 자체가 훌륭했다. 동물도 혈통에 따라 몸값이 천차만별인 것처럼, 한솔은 축복받은 유전자를 타고 난 것처럼 보였다.
운동을 전혀 안 함에도 군살 하나 없는 몸매는 들어간 곳과 나온 곳의 굴곡이 뚜렷했다. 머리가 유난히 작고 팔다리가 긴 체형은 연예인의 그것과 유사했다.
피부조차 티 없이 맑고 깨끗해 올해로 30 초반이라는 나이가 무색할 정도였다. 웬만한 20대보다 피부가 더 고왔다.
‘저런 외모에 머리까지 좋으니 인기가 많을 만 했겠어.’
[그러게요. 헌데 체육 선생은 왜 하필 한솔 양보다 현아 양에게 꽂혔을까요?]
사람에 급을 나누는 건 말이 안 되지만, 한솔과 현아는 확실한 차이가 있었다. 현아도 예쁜 편이긴 했지만, 한솔에 비하면 한참 부족했다. 가슴만 좀 더 클 뿐, 전체적인 밸런스에서는 비교 자체가 실례인 수준이었다.
현아가 예쁜 일반인이라면, 한솔은 평범한 연예인급은 되어 보였다.
"지금 얼마나 봤어?"
"네, 두 개 정도···."
"그래서 오늘 중으로 초안 시작이나 하겠니? 배달음식 오기 전까지 얼른 읽어."
"네."
‘음, 난 알 것도 같아. 저 깐깐한 성격 받아 주는 게 여간내기가 아닐걸.’
[그런가요?]
‘똑똑한 여자들은 남자를 부담스럽게 만들어. 숫컷은 남보다 뛰어나야 한다는 본능이 있단 말이야. 그래야 경쟁을 이겨내고 자신의 유전자를 물려줄 수 있으니까.’
[호오.]
‘근데 똑똑한 여자들은 매일 매순간 남자의 부족함을 자각시킨단 말이지. 자신감 잃은 숫컷 만큼 꼴사나운 게 또 있을까. 차라리 좀 모자라도 착한 여자가 낫지, 예쁘고 똑똑한 여자는 인기 없을 만해. 넘치는 재능이 되려 풍요 속에 빈곤을 만든 케이스랄까?’
[역시 탁월한 분석이십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네?]
‘서른두 살 다 되도록 처녀라는 거. 그게 사실은 가장 큰 문제야.’
[처녀를 좋아하시는 편 아니었나요?]
‘내가 아다 폭격기긴 하지. 근데 생각해봐. 저 얼굴에, 저 미모에 지금껏 처녀라는 건 뭔가 이상하지 않아?’
[이상하긴 하죠. 주변에서 절대 가만 안 놔뒀을 것 같은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처녀를 지켰단 말이지. 종교적인 신념이 있거나, 정신적으로 결벽증이 있는 게 분명해. 일단 그것부터 알아내야겠어.’
"근데 선생님 혹시 교회 다니세요?"
"어?"
"아니 그 귀걸이 십자가 모양 같아서요."
"아, 이거?"
한솔이 귀에는 조그마한 금귀걸이가 걸려 있었다. 그녀가 귓불을 매만지며 말했다.
"이거 그냥 어디 갔다가 예뻐 보이길래 하나 사 온 거야. 딱히 종교는 없는데? 왜? 너 교회 다니니?"
"아, 아뇨. 그냥 혹시나 해서 여쭤봤어요."
"이거 쳐다볼 시간에 얼른 지도안이나 봐. 미리 보고 오라고 오전에 보내줬더니 하나도 안 보고 올 줄은 몰랐네."
"네. 죄송해요."
‘만나는 여자마다 덤벼드는 데 읽을 시간이 어딨어? 그나저나 종교가 원인이 아니면 뭔가 다른 심리적 이유가 있나 보군.’
도훈은 기회를 보아 그녀의 속마음을 떠보기로 했다.
***
일본에 도착한 미호와 창범은 수소문 끝에 미키 프로덕션의 본사를 찾아냈다. 두 사람은 여행 기간 중에도 항상 각방을 썼는데, 그 이유는 창범이 기 빨려 죽기 싫다며 한사코 합방을 거부했기 때문이었다.
"방 두 개 있나요?"
"죄송합니다, 손님. 최근 축제 기간이라 남은 방이 많지 않아서···."
"남매사이라 방이 두 개 필요한데요."
"그러시군요. 불편하지 않으시면 트윈룸이 있는데 거기라도 드릴까요?"
벌써 여러 군데 허탕을 친 두 사람은 더는 다른 곳을 이동할 여력이 없었다. 물가가 워낙 비싼 곳이다 보니 여비가 빠듯했기 때문이었다. 보다 못한 미호가 한국말로 말했다.
"야. 안 잡아먹으니까 그냥 자."
"넌 그렇다 쳐도 네 안에 다른 영혼들은 생각이 다를지도 모르잖아."
"지금 내가 잘 억제하고 있다고. 그러니까 그냥 좀 들어가자. 이게 뭐니 벌써 몇 번째···."
미호가 잔뜩 투정을 부리자 창범도 끝내 포기했다. 사실 그도 계속된 실패에 지쳐있었다.
두 사람은 침대 두 개가 나란히 놓인 트윈룸으로 들어가 짐을 풀었다. 창범이 침대와 침대 사이 캐리어 두 개를 바리게이트처럼 쌓으며 엄포를 놓았다.
"하여간 넘어오기만 해봐. 그땐 진짜 피아식별 없는 난타전이 펼쳐질 테니까."
"풉-. 어처구니가 없네. 너 나 이길 순 있니? 확 그냥."
미호가 장난스레 귀기(鬼氣)를 뻗어내자 머리털이 위로 바짝 곤두섰다. 새파래진 동공은 야생동물의 그것처럼 음험하게 빛났다.
"힘으로는 당연히 안 되지. 하지만 내가 정신능력자라는 걸 잊지마. 10층에서 이유도 모르게 뛰어내리게 만들어 줄 수 있으니까."
"그전에 넌 간 빼 먹혀 죽을걸?"
"어휴, 진짜 말을 말자. 그나저나 이제 어쩔 거야. 미키 프로덕션 근처까지 왔는데. 계획은 있어?"
일 이야기로 돌아가자 미호가 자연스레 귀기를 거두었다. 차분하게 가라앉은 헤어스타일이, 그녀를 청순한 대학생처럼 보이게 했다.
"일단 그 대물남부터 찾아야지. 소속 배우니까 한 번쯤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까?"
"그렇다고 마냥 죽치고 기다릴 순 없잖아. 우리 경비 빠듯하다고."
"나중에 본부에다 출장비 정산해 달라면 안 돼?"
"무슨 명목으로다? 뻔히 일본에 지부 있는 거 알면서 국가 간 마찰 각오하고 플레이어 잡으러 왔다고?"
"흐음···. 역시 그건 곤란하네."
"하여튼 나 밤샘 공장 3교대 돌면서 번 돈 다 꼴아박는 중이니까 그런 줄만 알고 있어."
"무슨 남자가 돈 몇 푼 가지고···."
"넌 왜 그 돈 한 푼 없냐 이 구미호야!"
"돈은 나에게 종잇조각일 뿐이니까."
"그 종잇조각 없어서 우리가 지금! 아휴, 말을 말자. 그 짠돌이 사장한테 좀 더 뜯어냈어야 했는데."
창범은 출국 직전 금일봉이라며 봉투를 챙겨준 대근을 원망했다. 돈백이라도 담겨 있을 줄 알았던 봉투에는 꼴랑 10만원이 전부였다.
"돈 이야기는 그만하고 작전부터 세워보자. 너 심문 가능하지."
"일반인을? 안 돼. 그건 협회 규정 위반이야."
"언제부터 우리 창범씨가 그렇게 규칙을 따지셨을까?"
미호가 간사한 웃음으로 창범을 홀리려 했다.
하지만 정신계 능력자인 창범에게 그녀의 매혹은 전혀 통하지 않았다.
"나한테 이상한 수작부리지 마, 어림없으니까. 미호, 우리가 플레이어랑 다른 게 뭐라고 생각해?"
"뭐?"
"민간인에게 힘을 쓰지 않는 거. 자신의 출세와 영달을 위해 이기적으로 살지 않는 거잖아. 그런데 아무 죄도 없는 민간인을 무슨 명목으로 심문해?"
"맨날 꼰대 옆에서 놀더니만 너도 꼰대가 다 됐구나?"
"지금 뭐라고···."
"그들이 플레이어를 돕거나 방조한 자들이라면 그들 또한 책임이 있는 거야. 그러니 당연히 심문의 대상이 될 수 있지."
"만약 아니면?"
"아니면 우리가 헛다리 짚은 거겠지."
"···흐음."
창범의 미간에 골이 패였다.
확실히 이번 여행을 따라 오는 것이 아니었다.
‘더 큰 악을 처단하기 위해 작은 악을 저질러야 하는 건가.’
그가 고민에 빠졌다.
< 503. 교생 실습-47- > 끝
ⓒ 성난불기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