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506화 (479/2,000)

< 488. 교생 실습-32- >

***

"어머, 그랬니?"

"네. 체육 선생님 차는 뭔가 퀴퀴한 냄새가 나더라고요. 참, 이건 절대 말하면 안 돼요."

"당연하지, 나도 눈치가 있는데. 근데 나 그 냄새 뭔지 알 것 같아."

"뭔데요?"

"초임 발령받고 차 사기 전에 김 선생님이 몇 번 데려다준 적이 있었거든. 그때 보니 뒷좌석에 양말 벗어 놓아놨지 뭐니?"

‘오호라? 체육 선생의 연정이 생각보다 오래됐구나?’

막 발령 당시 현아는 20대 중반의 풋풋한 신규.

학교라는 업무 특성상 매번 같은 일을 반복하며, 슬슬 결혼 생활에 권태가 찾아올 무렵 체육 선생 앞에 등장한 뉴페이스.

살짝 푼수 끼가 있긴 하지만, 한창 물오른 말 같은 처녀를 본 체육 선생은 자기도 모르게 음심이 동했을 것이다.

가장 먹음직한 여자는, 본래 처음 보는 여자라지 않는가?

하지만 30대의, 그것도 유부남에 혹할 리 없던 현아는 체육 선생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고, 그것이 지금까지 일방적인 관심으로 이어져 온 것 같다.

대강의 사태를 파악한 나는 묘한 배덕감을 느꼈다.

‘누구는 군침만 삼키며 몇 년째 쳐다만 보던 처녀 선생을, 나는 일주일도 안 돼 홀랑 벗겨 먹겠구나. 역시 세상은 불공평하다는 말씀이야.’

그렇다.

세상은 불공평하다.

누군가에겐 쳐다보지도 못할 나무가, 어떤 이에겐 흔해 빠진 잡초에 불과한 경우도 허다하다.

이 부조리는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세상은 지금껏 그렇게 흘러왔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흘러갈 것이다.

‘뺏기느니 빼앗는 쪽이 낫지. 욕망을 주시되 능력을 안 주신 누군가를 원망하라고, 김봉두씨.’

"평소 운동을 많이 하셔서 그런가 봐요."

"응. 맨날 내 앞에선 운동 얘기뿐이야. 볼링 정규전 우승했다느니, 주말에 교외로 골프 치러 갔다느니···. 한 번은 자기랑 같이 테니스 배워 볼 생각 없냐 하는 거 있지? 몸매 관리에 좋다나, 뭐라나?"

체육 선생의 눈물겨운 흑역사에 나는 속으로 쯧쯧 혀를 찼다.

‘잘하는 게 운동이다 보니 그쪽으로만 어필을 많이 했나 보네. 여자를 몰라도 너무 모르는군.’

[어떤 점에서요?]

‘여자들이 운동 잘하는 남자를 좋아하는 건 맞아. 아니 여자들은 공부 잘하는 남자도 좋아하고, 돈 잘 버는 남자도 좋아하지.’

[당연한 거 아닙니까? 능력이 뛰어난 사람에게 호감이 가는 건 인간의 본능이니까요.]

‘하지만 체육 선생은 결정적인 게 빠졌잖아.’

[뭐요?]

‘이거.’

도훈이 무의식으로 자기 얼굴 앞에 손바닥을 펼쳐 흔들었다.

[얼굴요?]

‘그래. 우선은 이것부터 갖춘 다음, 나머지도 잘해야 매력 있는 거야. 공부는 잘하는데 몸은 뚱뚱해, 운동을 잘하는데 얼굴이 빻았어. 그래 봐야 말짱 꽝이란 말이지.’

[기승전 얼굴이란 소리군요. 주인님, 옛말에 개구리 올챙이 시절 모른다더니···.]

‘큭. 인정. 내가 많이 변했다는 거. 하지만 미남으로 살아보니, 이것만큼 세상 편한 게 없더라. 여자는 외모고 남자는 능력이란 말이 맞아. 하지만 20대 때 남자의 능력은 어쩌면 외모가 최고일지도 모르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실제로 두 가지 삶을 살아보니 그래. 야, 솔직히 말해서 남자가 아무것도 없이 20대 여자를 가장 많이 따먹을 수 있는 시기가 언제 같냐?’

[글쎄요?]

‘같은 20대뿐이야. 가진 건 몸뚱이뿐, 비전도 능력도 없지만 그저 젊고 탱탱하다는 것. 그것만으로 20대의 여자들을 실컷 따먹고 다닐 수 있는 거지.’

[맞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참으로 불순한 사상인 건 확실하네요.]

‘불순하다고 해도 상관없어. 난 이미 머저리처럼 40년을 살았으니까. 다시 신체 건강한 20대로 돌아온 이상 전생에 못 해본 섹스 원 없이 할 거야. 박다가 죽어도 좋다고!’

[네네, 얼마든지 즐기십시오.]

"덥니? 에어콘 틀어줄까?"

내 손동작을 손부채를 흔드는 것으로 오해한 현아가 차량의 에어컨을 켰다. 곧 시원한 바람이 나오며 기분이 상쾌해졌다. 10시가 넘어가니 차량의 체증도 풀리면서 도로도 제법 한산했다.

현아가 기분 좋은 표정으로 말했다.

"아, 이대로 멀리 떠나 버리고 싶다."

"네? 집으로 안 가시고요?"

"가야지. 가는데, 그냥 기분이 그렇다고. 너도 나중에 교직에 오면 답답함을 느낄 거야. 맨날 같은 생활을 반복한다는 게 여간 쉽지 않거든. 좀 지겹달까?"

"전 아직도 낯설어서···."

"교생 때는 다 그렇지. 초임 때도 마찬가지야. 수업 준비하고, 업무 처리하고 나면 하루가 홀딱 가버리거든. 그렇게 집에 오면 녹초가 돼 다음날 또 출근. 근데 이 짓도 몇 년 하다 보니까 너무 지루하더라."

"그래도 교사들은 방학이 있지 않아요? 그때 많이 놀러 가시면 될 것 같은데···."

"방학이 있어 봐야 뭐하니? 같이 갈 남자도 없는데."

"아···."

넌지시 남자 이야기로 화제를 전환한 현아가 나에게 물었다.

"난 왜 연애를 못 하는 걸까?"

"으, 음···. 그, 글쎄요. 충분히 예쁘신데···."

일부러 어리숙한 연기를 했다.

"정말? 내가 이뻐다고? 어디가?"

"그, 그게···."

"에이, 그렇게 두루뭉술 칭찬하면 안 되지. 입발린 소리 같잖아. 여자들은 구체적인 칭찬을 좋아한다고."

‘풉, 얘 지금 나한테 연애 강의하는 거냐?’

[그래 보이네요.]

‘일단 들어는 드리지.’

"그런가요?"

"당연하지. 나도 그렇지만 너도 영 쑥맥이네?"

"제가 좀 서툴러서···."

"전에 여자친구 사겨봤다지 않았어?"

"군대 가기 전이라서요. 스무살 때. 그때 제가 뭘 알았겠어요."

"후훗. 지금은 뭘 안다는 듯이 말하네?"

현아의 목소리가 좀 더 농밀해졌다. 운전대를 잡으면서도 이따금 힐끔거리는 시선에는 어딘지 모를 끈적함이 묻어있다. 나의 몸을 혀로 핥는 느낌이랄까?

‘거참. 이 아가씨 많이 굶었구나.’

[주인님이 아까 자극해서 그런 게 아닐까요?]

‘그런 영향도 있겠지. 암시를 계속 줬으니까.’

[무슨 암시요?]

‘조건 반사 같은 거야. 내가 레인 위에 오를 때마다 기분 좋은 자극을 느꼈잖아. 설마하니 아이템은 꿈에도 생각 못 했을 테니 아마 나 때문이라고 생각했겠지.’

[오호라. 조건과 자극을 매칭시킨 거군요.]

‘그렇지. 그렇게 계속 반복되다 보면, 자연스럽게 볼링공을 든 내 등판만 쳐다봐도 흠뻑 젖어버린단 말이지. 이유도 모르고.’

[와아, 주인님은 정말···. 아이템 활용 능력이 탁월하신 것 같습니다.]

"아, 아니요, 뭘 아는 건 아니지만···."

"후훗. 난 도훈이 부끄러워하는 게 너무 귀엽더라? 누나들한테 인기 많지 않니?"

"누나들요?"

"응. 학교에 여자 선배들."

많지.

하도 많아서 손가락으로 못 샐 정도지.

"저흰 체육과라 그런지 여자들이 별로 없어요. 사범대에선 우리과가 가장 남초일 거에요."

"아, 그렇겠네?"

그녀에게 계속 여자가 없는 이유를 미끼처럼 던져주었다.

군대 전역한 지 얼마 안 됐다.

운동을 너무 좋아한다.

같은 과에 여자가 별로 없다.

이런 식의 단서가 쌓이다 보면 아마도 현아는 이런 결론에 이를 것이다.

"어쩐지···. 그래서 아직 여자친구가 없었던 거네? 충분히 있고도 남을 얼굴인데."

"제, 제가요?"

"몰라서 묻니?"

"저 별로 인기 없는데···."

"네가 적극적으로 노력을 안 해서 그렇지. 여자보단 운동이 더 좋지?"

"으, 음···. 운동을 많이 좋아하긴 하죠."

"거봐. 그러니까 여자친구를 못 사귀는 거야. 일단은 만나야지 사귈 수 있지 않겠니?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인데."

"아···, 네."

분위기도 무르익었겠다, 슬슬 떡밥을 던질 시간이다.

"제가 실은 경험이 별로 없어서···."

"무슨 경험? 여자 경험?"

"아, 뭐···. 네."

민망한 척 고개를 떨구었다.

이제 현아는 내가 총각 딱지도 못 뗀 동정으로 오해할 것이다.

"진짜? 진짜 여자랑···. 어머, 웬일 이래니?"

현아가 호들갑을 떨며 웃었다.

내가 동정이라는 게 그리 기쁜가?

"그럼 군대 가기 전에 사귀었던 여자친구랑은 뭐 했는데?"

"그게··· 몇 달 안 만났어요. 한 석 달?"

"석 달이면. 요즘엔 충분하지 않아?"

"뭐, 뭐가요?"

"에이, 뭘 또 알면서 묻니. 진짜 경험없어?"

나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소, 손만 잡아봤어요."

"세상에, 세상에. 남자친구 군대 가는 데 그걸 그냥 보냈다고?"

"그, 그럼 어떻게 보내요?"

"그걸 굳이 말로 해야 하니?"

현아의 즐기는 표정이었다.

순진한 청년을 희롱하는 데 맛 들인 듯했다.

"아무튼, 너도 참 인생 헛살았네. 설마 군대 가서도?"

"군대 가서 뭐요?"

"아니 듣기로 남자들은 군대에서 외출 나가면···. 막, 그런 거 하고 오지 않아?"

현아는 직접적인 언급은 피하면서 교묘하게 19금 주제를 계속 파고 들었다. 아마도 나를 자극하게 만들고 싶은 모양이다.

‘웃기는 선생이네. 하긴 교생 키잡 하려고 마음 먹은 여선생인데 음탕함이 오죽하겠어?’

[계속 받아주는 걸 보니 주인님도 즐기시는 것 같은데요?]

‘그러게. 맨날 여자를 잡아 먹기만 했잖아. 가끔 잡혀 먹는 것도 재밌을 것 같기도 하고···.’

[혹시 이게 주인님이 힘을 숨김 같은 건가요?]

‘이도훈이 대물을 숨김으로 하자.’

[무슨 야설 제목같군요.]

"음, 제가 좀 그런 걸 별로 안 좋아해서···."

"이상하네? 너 혹시 문제 있는 건 아니지?"

"어, 어디요?"

"거기."

현아가 턱 짓으로 내 가랑이 사이를 가리켰다.

나는 움찔 놀란 척 몸을 움추렸다.

"아, 아니에요. 말짱해요."

"아닌 게 아닌데~ 성욕이 없어도 너무 없는데~."

현아는 슬슬 놀리는 데 맛을 들인 듯 했다.

어디까지 가나 보고 싶은 마음에 잠자코 받아주었다.

"저, 저도 있어요. 서, 성욕."

찐따 특.

말 더듬기 스킬에 현아가 더욱 열을 올렸다.

"에그머니나, 선생님 앞에서 그게 할 소리니? 넌 교생이고, 난 선생이야. 흐응!"

[대체 어쩌라는 걸까요?]

‘뭔가 유행어 같긴 한데···.’

그때 차가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아파트가 아닌 단층의 주택들이 모인 곳이었다.

"거의 다 왔어. 나 이 동네 살아."

"아, 그러시구나."

"서울 집값이 워낙 비싸야 말이지. 아파트는 못 들어가겠고 원룸은 너무 좁아서 단독 주택 이층에 전세 얻었어."

"네."

현아는 담벼락 옆으로 차를 대며 말했다.

"도훈이 혹시 출출하니?"

"네?"

"배고프면 샘 집에서 라면 먹고 갈래?"

‘크흑, 이 아가씨가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봤네.’

"아, 아니에요. 시간도 늦었는데."

"괜찮아. 안 잡아 먹거든?"

"아, 아니 그게 아니고···. 혼자 사시는데···."

"뭐 어때? 아래층에 주인아저씨 부부도 사는데. 설마 응큼한 생각하는 거 아니지?"

제발 응큼한 생각 좀 해줘. 라고 말하는 것 같다.

"아, 아니에요. 제가 어떻게···."

"그럼 차라도 한 잔 하고가. 여기까지 배웅해 줬는데 어떻게 그냥 보내니."

"아···."

나는 주저하는 듯 망설이다 끝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럼 차만 마시고···. 핸드폰도 찾아주셨으니까."

"잘 생각했어. 내리자."

현아가 들뜬 걸음걸이로 차에서 내렸다. 단독 주택이긴 했지만, 2층으로 통하는 계단이 따로 나 있었다. 현아가 열쇠로 문을 따고 나를 안내했다.

"올라와. 겉은 누추해도 안은 나름 깔끔해."

"가, 감사합니다."

현아를 따라 집으로 들어가니 그녀의 말대로 아늑하고 깔끔한 집이었다. 나름 현관과 거실이 있었고, 방도 두 개나 나 있어, 혼자 살기엔 제법 넓었다.

"와, 넒은 집에 사시네요."

"넓다고 좋은 건 아니더라. 넓은 공간을 혼자서 채우다 보니 외로움도 배가 되거든."

"네."

"잠깐 소파에 앉아 있어. TV 켜줄까?"

"아, 아뇨. 제가 켤께요."

"그래. 나는 잠깐 씻고 올게."

"씨, 씻어요?"

"뭘 그렇게 놀래니? 세수만 한다고. 세수."

세수를 두 번 강조하는 그녀의 발음이 묘하게 ‘섹스’처럼 들렸다.

"아, 네, 넵."

현아가 피식 웃으며 화장실로 들어갔다. 나는 거실을 둘러보며 인테리어를 구경했다.

유니온 잭 패턴의 직물 소파는 푹신했고, 앞의 나무 테이블도 엔틱한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테이블 위엔 외국의 사원을 배경으로 찍은 듯한 현아의 독사진이 놓여 있었다. 여행을 좋아하는 성격일까? 지금보다 두어살은 어려보이는 그녀의 얼굴은 어딘가 앳된 느낌이 있었다.

‘흐음. 그땐 나름 풋풋했구나. 이러니 체육 선생이 반했지.’

[지금도 어리지 않습니까?]

‘많은 건 아닌데 어린것도 아니지. 여자 나이 스물아홉이면 요물이나 마찬가지거든. 아까도 차에서 들었지? 슬그머니 야한 얘기로 주제 넘기는 거.’

[하긴 그렇긴 하네요.]

‘여자들은 남자랑 다르게 나이가 들수록 야해지거든. 20대 초반일 때랑 20대 후반. 그리고 30대 되면 또 달라.’

[그건 왜 그런가요?]

‘호르몬 때문이야. 성욕을 주관하는 테스토스테론 분비량이 계속 늘어나거든. 남자들이 성욕이 강한 것도 남성 호르몬이 많은 탓인데, 여자도 그게 늘어나니까 자연스럽게 성욕이 강해지는 수밖에.’

[아하.]

‘더구나 현아 쟤는 한동안 남자도 안 만났잖아. 분명 지금쯤 둑이 넘치다 못 해 터지기 직전일 거라고.’

[그런 지경에 주인님이 불까지 붙였군요.]

‘그렇지. 볼링장에서 한 번 맛을 봤으니, 오늘은 그냥은 못 넘어갈걸?’

그때 화장실 문이 열리며 현아가 수건으로 머리를 털며 나왔다. 세수만 한다더니 머리까지 감았는지 젖은 머리가 달라붙은 모습이 은근히 선정적이었다.

게다가 위에 입은 옷도 나이브한 티셔츠로 갈아입었는데···.

어라? 저거 지금 노브라야?

가슴 양쪽이 뿅 마중 나온 것이 노브라가 확실했다.

완전 작정을 했구나, 네가.

< 488. 교생 실습-32- > 끝

ⓒ 성난불기둥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