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1. 교생 실습-25- >
***
수업은 축구로 시작해 축구로 끝이 났다. 체육 수업을 참관한 것은 처음이었지만, 재미만 있고 배움이라곤 없는 수업이었다.
연구부장이 체육 과목을 공개수업으로 한다고 했을 때 왜 주저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흐음. 이건 좀 고민 해봐야겠군. 학생도 그렇고 교사도 그렇고 수업이라는 인식이 전혀 없달까.’
[그러게 말입니다.]
아이들과 운동장을 누리느라 땀을 뻘뻘 흘린 체육 선생은 수업이 끝나고 나에게 다가왔다.
"도훈이는 담배 피우나?"
"네."
"간만에 뛰었더니 확 땡기네. 같이 한 대 빨러 갈래?"
"네? 지금요?"
"응. 나만 따라와."
‘뭐지? 학교는 절대 금연 구역 아니었나?’
[그렇죠. 학교 주위 50M까지는 범칙금을 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흐음. 같이 벌금 낼 생각은 없는데···.’
체육 선생은 한참 계단을 오르더니 3층 옥상 입구에 도달했다. 옥상 문은 학생의 안전을 위해 당연히 잠겨 있었다.
"근데 담배를 어디서 펴요?"
"응. 여기 아지트가 있어."
체육 선생은 팔을 쭉 뻗어야 겨우 닿는 문틀 위를 뒤적이더니 열쇠를 찾아냈다. 그가 자물쇠를 돌리자, 끼익- 하는 쇳소리와 함께 육중한 철문이 열렸다.
"바로 여기야."
옥상은 출입구 부분을 제외한 사방이 뻥 뚫려 있었다.
어디서 구해놨는지 입구 근처엔 스탠드형 재떨이와 낡아 빠진 가죽소파도 보였다.
체육 선생은 아무렇게나 소파에 걸터앉고는 나에게 담배를 한 대 건넸다.
"한 대 필래?"
"넵. 감사합니다."
담배를 받아들자 체육 선생이 지포라이터를 꺼내 불까지 붙여주었다. 그 역시 담배를 입에 물고 한 모금 깊이 빨아들이더니 후- 하고 진한 연기를 내뿜었다.
학생들과 있을 땐 카리스마 넘치는 무서운 선생님이었지만, 같이 사적으로 담배를 태울 때는 영락없는 동네 아저씨였다.
"근데 여기서 펴도 되나요? 학교는 전부 금연구역이라고···."
"괜찮아. 안 걸리면 되지. 누가 옥상을 카메라로 찍어서 신고하지 않는 이상엔 말이야."
"아, 네···."
나 역시 맞은 편에 걸터 앉으며 조심스럽게 담배를 피웠다. 나이 차가 제법 나는 어른과 맞담배를 피우려니 행동이 조금 조심스러웠다. 물론 실제론 내가 한참 위지만.
"실습 나와보니 어때? 교직은 적성에 맞는 거 같아?"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정장 쫙 빼입고 오니까 인물이 확 살더만? 근데 앞으로 체육 하게 되면 맨날 추리닝 입고 다녀야 할 거야."
체육 선생이 어깨로 코를 처박더니 킁킁거리며 땀 냄새를 맡았다.
"이렇게 맨날 땀에 쩔어서 말이지."
"괜찮습니다. 각오한 일이니까요."
"훗-. 나도 자네 나이 때는 열정이 넘쳤지. 지금처럼 ‘아나공’하고 던져주면서 수업하는 선배들을 제일 싫어했거든."
"그래도 학생들이 무척 즐거워 하던데요."
"솔직히 이건 수업은 아냐. 그냥 애들하고 놀아 준 거랄까. 근데 이것도 나름 가치는 있어. 맨날 공부 때문에 스트레스받는데, 나까지 빡빡하게 굴면 애들 숨 쉴 구멍조차 없는 거잖아."
"아···."
듣고 보니 일견 타당한 면도 있었다.
그는 완벽한 교사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나쁜 선생이라고 매도하기엔 애매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내가 그랬잖아. 이것들은 짐승 같아서 이렇게 힘을 안 빼주면 맨날 뻘짓만 한다고."
"네."
"근데 아까 현아샘이랑 무슨 얘기를 그렇게 다정하게 한 거야?"
"네?"
"조회대 근처에 나란히 앉아서 계속 얘기하던데?"
눈치도 빠르네. 심판 보는척 은근슬쩍 우릴 훔쳐보고 있었다니. 남들 보는 장소에선 특히 행동거지를 신경써야함을 또 한번 되새겼다.
"아···. 별건 아니었어요. 그냥 반에서 까부는 애들이 누군지 알려주신다고."
"흐흐. 암튼 정선생 조심해. 나이 먹고 연애를 못 해서 그런지 은근 히스테리컬 하거든."
"그래요?"
"처음 발령받고 몇 년은 소개팅 뻔질나게 다녔지 아마? 근데 다 잘 안 됐나 봐. 그뒤로 거의 3년째 솔론데 가끔 빽빽 소리 지르는 거 보면 욕구불만때문 같기도 하고. 생긴건 예쁘장한데 너무 눈이 높은게 흠이랄까?"
"아··· 예."
"도훈아. 형이 충고하나 해줄까?"
"네?"
"막상 현장 나오면 발에 차이고 넘치는게 여교사야. 괜히 잘해준다고 덥썩 물지 말고 신중하게 생각해. 내가 볼 땐 넌 임용만 붙으면 앞에 줄 설 여자만 한트럭이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다 폈음 이제 가보자. 곧 직원 체육이지? 내가 공 띄워 줄 테니 호흡 한 번 맞춰보자."
"알겠습니다."
"그리고 혹시 담배 땡기면 아무 때나 와서 올라와서 펴도 돼. 열쇠는 항상 그 자리에 있거든."
"네."
나는 속으로 씩 웃었다.
혜진이를 조교하는 미션 장소 중 학교 옥상이 있어 걱정했는데, 의외로 쉽게 해결되었다.
아마도 한 판 땡기고 와서 운빨 대폭발의 보정효과가 발동한것 같다.
[근데 체육 선생하고 정현아 선생은 사이가 안 좋은 걸까요? 왠지 흉보는 느낌입니다만.]
‘그냥 뭐 조심하라는 소리겠지. 어차피 코낄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으니 상관없어.’
[하긴 주인님이 발목 잡힐 분은 아니죠.]
‘발목이 뭐야. 난 발목 잡으면, 그 잡은 손 부러뜨리고 간다. 이도훈 여성편력에 브레이크 따윈 없어.'
[캬. 멋진 결의입니다.]
'그나저나 오랜만에 몸 좀 풀러 가볼까?’
나는 체육 선생 뒤를 따라 이동했다.
***
도훈이 또 한 번 날았다.
고점에서 내리꽂는 스파이크에 두명이 동시에 뜨며 블로킹으로 응수했지만, 워낙 타점이 높은 탓에 공은 손끝도 스치지 못했다.
팡!
공이 찌그러드는 착각이 일만큼 무시무시한 강타가 터지자 응원 중이던 사람들 사이에서 환호성이 쏟아졌다.
"와아! 저 교생 누구야? 엄청 잘 때리는데?"
"이거 반칙아냐? 아마추어 경기에 선수를 데려오면 어떡해?"
"체육과 출신이래요."
"와, 체육과 교생 못 받은 학년은 서러워서 살겠나. 원 참."
직원 체육 시간에 가장 돋보인 사람은 단연 도훈이었다.
함께 담배를 태웠던 체육 선생은 도훈에게 열심히 공을 띄워 줬고, 도훈은 멋진 스파이크로 응답했다.
학년별로 돌아가면서 펼쳐진 경기에서 도훈이 속한 2학년은 압도적인 점수 차로 나머지 학년을 깔아뭉게는 중이었다.
혜진을 비롯한 많은 여자 교생들이 도훈의 이름을 연호했다.
"우윳빛깔 이도훈!"
"꺄악, 날려버려요 도훈 오빠!"
도훈은 무심한 듯 시크하게 표정관리에 신경 쓰며 실시간으로 늘어나는 인기를 온몸으로 느꼈다.
‘캬, 역시 마유미의 배구 적성은 과연 천부적이구나. 오랜만에 재능 모방자 스킬을 써보니 이렇게 다르다니.’
[모든 여자들이 주인님만 쳐다 보고 있습니다. 호감도 따긴 최적의 조건이랄까요?]
‘어차피 다른 사람은 의미 없어. 공략할 대상의 마음을 훔치는 게 중요하지.’
[누구를 확인해 드릴까요?]
도훈은 수비 동작 중 잠시 짬을 내 주변을 둘러 보았다. 어차피 박혜진은 공략에 성공했다. 담임인 정현아 역시 자신에게 푹 빠져있는 상황.
지금은 미션과 위업이 남아있는 연구부장이나 학년 대표 오진아의 호감도를 체크할 시간이었다.
‘연구부장이 안 보이는데?’
[아까 잠시 들렀다가 어디론가 사라지더 군요. 운동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타입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오진아만 확인하면 되겠군. 정보창 띄워.’
[대상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일단 가까이 가시는 게 중요합니다.]
도훈은 레프트 공격수를 맡고 있었다.
오진아의 포지션은 센터백.
정보창의 허용범위에 닿기엔 살짝 모자랐다.
때마침 기회가 왔다.
상대편 공격수인 체육부장의 서브가 오진아를 향해 날아간 것이었다. 고등학교 때까지 배구를 배웠다는 체육부장은, 나이는 들었지만 여전히 날카로운 서브를 구사했다.
오진아가 엉거주춤한 자세로 받아낸 서브가 후방으로 튕기자, 모두가 실점을 예상하는 가운데 도훈이 전광석화처럼 움직였다.
전위에 있던 그가 후방까지 득달같이 달려들어 기어코 떨어지는 공을 낙법을 펼쳐가며 받아낸 것이다.
"우아!"
"봤어? 수비도 완전 잘해!"
겨우 튕겨 올라간 공이 운 좋게 상대 진영으로 넘어가 득점이 인정되자 2학년 팀은 날 듯이 기뻐했다.
"이 어려운 걸 또 해냅니다!"
"사기캐네 사기캐!"
다들 기뻐하는 가운데 오진아가 넘어진 도훈을 향해 다가왔다.
"고, 고마워요. 전 실책하는 줄 알았는데."
도훈을 보는 진아의 눈빛이 한풀 나긋나긋해져 있었다. 오만한 그녀였지만 네트 안에선 평범한 일반인에 지나지 않았다. 누구든 자신이 못하는 분야에선 주눅이 드는 법이고, 또 잘하는 사람을 동경할 수밖에 없다.
‘지금이야. 오진아, 정보창 열어.’
[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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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 오진아 (처녀)
나이 : 21 #도끼병 중증#나르시스트#오만과 편견
호감도 : 75/100
개방성 : B
성감대 : ???
*애무 포인트 : 애무를 받아 본 경험이 없습니다.
성욕지수 : 중간.
공략팁
*그녀는 당신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도끼병 환자인 그녀는 당신의 슈퍼 플레이를 자신을 의식한 행동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나르시시즘이 발동된 그녀는, 당신이 이미 자신에게 빠져들었다고 확신합니다.
-그녀는 운동도 잘하고 외모가 빼어난 당신이, 자신에게 걸맞는 상대일지도 모른다고 여기기 시작했습니다.
-더이상 친절을 베푸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그녀는 이미 걸려든 미끼에는 빠르게 흥미가 식는 타입입니다.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고 싶거든, 그녀를 무시하십시요.
-추천 행동 : 그녀를 의도적으로 무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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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창을 확인한 도훈의 표정이 짜게 식었다.
'뭐? 잘해줄수록 흥미가 식어? 공주병이 아주 말기에 달했구만? 아무리 얼굴값을 한다치지만 이건 정말 정떨어지는데.'
어차피 미인은 수없이 따먹어 보았기에, 그런것에 딱히 아쉬움을 느낀다거나 갈증은 없었다. 정말 업적만 아니었음 진작에 때려치우고 싶은 상대였다고 도훈은 생각했다.
'그래. 차라리 잘 됐네. 무시할수록 매력을 느낀다니 어디한번 시원하게 갈궈줘야지.'
"넘어지셨는데 어디 다치신 데는 없어요?"
진아가 한번 더 말을 걸어왔지만, 도훈은 들은체 만체 하고 돌아섰다. 무안해진 진아는 세트가 끝나고 코트를 바꿀 시간이 되자 도훈에게 다가와 다시 물었다.
"저기 아깐 게임중이라 못 들으신것 같은데 넘어지면서 다치신건 아니죠? 괜히 저 때문인것 같아 신경쓰여서요."
도훈은 마지못해 입을 연다는 표정으로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수비나 똑바로 하세요. 맨 뒤까지 뛰어가기 힘드니까."
"네, 네?"
도훈의 폭언에 진아의 얼굴이 시뻘게 졌다.
남한테 싫은 소리 한번 들어본적 없던 그녀에겐 너무나 충격적인 폭언이었다.
진아가 어쩔줄 모른 채 당황하는데 도훈이 쐐기를 박듯 혼자 중얼거렸다.
"운동 잘하게 생겨서 가운데 박아놨더니. 쯧."
"바, 방금 저보고 하신 거예요?"
그때 체육 선생이 큰 소리로 파이팅을 외치는 통에 자연스럽게 대화가 끊어졌다.
진아는 치욕감을 느끼며 경기내내 도훈을 노려보았다.
'지금 쟤가 나 무시한거야? 헐, 진짜 어이가 없으려니까.'
한번 신경이 쓰이기 시작하자 경기 내내 도훈만 쳐다보게 되는 오진아였다. 이제껏 똑똑하고 예뻤던 그녀는 단한번도 남자들어게 그런식의 대접을 받아본적이 없었기 때문에, 도훈의 무시가 너무나 화가났다.
'지까짓게 운동만 잘하지 쥐뿔도 없으면서.'
그녀는 도훈을 의식하느라 집중력이 흐트러졌고, 이따금 날아오는 평범한 찬스볼에서도 범실하고 말았다.
그때마다 도훈은 경멸 가득한 표정으로 대응함으로써 진아의 속을 뒤집어 났다.
가장 열받는건 공격성공 후 코트를 빙돌며 손뼉을 부딪히는데 의도적으로 진아 앞에서 세레모니를 중단하며 그녀를 부아나게 만든것이었다.
후반 세트 역시 도훈의 대활약으로 승리.
다들 승리의 기쁨에 취해 즐기는 동안에도 진아 혼자 속이 문드러져 표정이 썩어있었다.
'지까짓게 감히 나를.'
차라리 도훈에게 아무 감정도 없던 때라면 모를까, 이미 감정이 솟아난 상태에서 개무시를 당하니 자기도 모르게 오기가 생기는 진아였다.
'두고보자. 이도훈. 내가 너 어떻게든 꼬신다음 치욕을 맛보게 해줄테니까.'
남은 뒷풀이를 기다리는 진아의 눈이 분노로 이글거렸다.
***
"그럼 씻고 5시반에 주차장에서 봐요."
한바탕 왁자지껄 했던 직원 체육이 끝이나자 학년별로 뿔뿔이 흩어졌다. 운동에 참가했던 사람중 일부는 체육관 샤워실에서 땀에 젖은 몸을 씻었다.
경기에 참가했던 혜진과 진아 역시 샤워실로 들어갔다. 혜진은 공이 자기쪽으로 오지 않았기에 딱히 땀을 흘리지않았지만, 아까 도훈과 기구실에서 뒹군 찝찝함에 샤워를 자청했다.
두 사람외에 딱히 학교 샤워장에서 씻으려는 젊은 사람은 없었다. 자연스레 두 사람은 가까운 자리에서 옷을 벗었다.
진아는 스스로 몸매에 자신감이 넘쳤기에 누가 쳐다보든 신경쓰지 않았다. 몸에 딱 붙은 체육복을 벗자 요가복처럼 생긴 스포츠브라가 드러났다.
진아는 브라마저 훌렁훌렁 벗었다.
출렁하고 쏟아지는 커다란 진아의 가슴에, 혜진은 자기도 모르게 벗던 동작을 중단했다.
'와. 엄청크네. 나같은건 창피해서 옆에 서지도 못
하겠어.'
"샤워 안하세요?"
머뭇거리는걸 본 진아의 물음에 혜진이 기어들어간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 자, 잠시 핸드폰좀 보려고요."
"네. 혹시 그쪽반 교생이 도훈씨 맞죠?"
도훈이 혜진과 같은 반이란 걸 알고 묻는 질문이었다.
"네."
"원래 그분 성격이 까칠한가요?"
"아뇨. 엄청 친절하신데. 무슨 일 있으세요?"
도훈과 특별한 관계를 맺은 혜진이 그에게 나쁜말을 할리 없었다. 진아는 혜진의 대답에 더욱 화가 치밀었다.
'뭐야. 저런 애한테도 친절하면서 나한테 그딴식으로 대한거야?'
"아니에요. 그냥 궁금해서요. 먼저 씻으러갈게요."
진아는 샤워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몸을 둘러보았다. 타고냔 체형에 운동으로 다져진 몸은 탄력적이면서도 건강미가 철철 넘쳤다.
아무리 자신의 몸이라지만, 누가봐도 감탄할 만큼 완벽한 바디였다.
"흥. 이런 우월한 나에게 감히?"
자신감을 회복한 진아의 콧대가 다시 올라갔다.
< 481. 교생 실습-25- > 끝
ⓒ 성난불기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