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494화 (467/2,000)

< 476. 교생 실습-20- >

사실 도훈은 사전에 장소를 물색해놓았다.

점심시간 학생에겐 체육관을 개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미리 파악했고, 체육관 담당 교사에게 교구를 확인할 게 있다며 출입문을 열어둘 것을 부탁했다.

오후 잠깐 출장을 나간다는 담당 교사는, 그에게 출입문 열쇠까지 맡겼다.

-항상 열심히 구만. 그럼 나중에 문단속 좀 부탁할게.

도훈은 주머니에 담긴 열쇠를 만지작거리며 생각했다.

‘흐흐. 드디어 학교 안에서 가장 완벽한 밀실을 확보했군.’

체육관 입구를 들어선 도훈이 가장 먼저 한 일은 팔을 뻗어 안에서 문을 잠그는 것이었다.

"왜, 왜 문을?"

"혹시 옷 갈아입을 때 누가 들어오면 곤란하니까."

"아···."

탈의실이 별도로 마련된 체육관 출입문을 잠그는 것이 무슨 관련이 있는지 몰랐지만, 혜진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텅 빈 체육관은 천장이 높고, 조명이 꺼져있어 다소 음침했다.

"너무 조용한데? 아무도 없나?"

도훈은 체육 교사가 출장 나간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혜진에게 확인시키기 위해 체육 연구실 문을 노크했다.

똑똑-

당연히 들려오는 대답이 없었다.

문고리를 잡고 흔들자 사무실이 굳게 잠겨있었다.

"체육 선생님 문 잠그고 외출하셨나 본데?"

"아···."

혜진도 그쯤 이르러서야 자신이 거대한 체육관에 도훈과 단둘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심지어 외부 출입문은 잠겨있고, 점심 쉬는 시간은 여전히 30분이나 남아있었다.

‘헛! 그럼 닫힌 체육관에 오빠랑 나 둘밖에 없는 거야?’

혜진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도훈이 말했다.

"아침에 체육복 가져다 놨지?"

"네."

금일 오전 연수는 체육관 겸 강당에서 진행되었다. 출근과 동시에 이루어진 연수에서, 실습생들은 오후에 갈아입을 체육복을 미리 탈의실에 가져다 놓았다.

"옷이나 갈아입자."

"···네."

혜진이 탈의실에 들어가는 모습을 도훈은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주인님. 그런 눈빛으로 쳐다보지 마십시오. 마치 범죄자 같으니까요.]

‘내가?’

[네. 음흉하기 짝이 없달까···.]

‘흐흐. 분위기 조성만 하는 거야. 강제로 뭘 해볼 생각은 없다고.’

도훈은 체육복을 챙긴 뒤 여자 탈의실 앞에서 우두커니 서서 기다리다 잠시 후 문을 노트했다.

똑똑-

"혜진아."

"네, 네?!"

안에서 당황한 혜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남자 탈의실 문이 잠겨있는데 거기서 같이 갈아입어도 될까?"

"예? 자, 잠시만요. 저 거의 다 입었어요."

말도 안 되는 요구였지만 혜진은 서둘러 바지를 입었다. 그러나 허둥대는 통에 제대로 옷을 입을 수가 없었다.

덜컥-

도훈은 허락이 떨어지기도 전에 문을 열고 들어왔다. 혜진이 외발로 서서 한발을 끼워 넣는 망측한 포즈를 하고 있을 때였다.

"아앗! 오, 오빠아!"

"미안. 아직 다 안 갈아입었네."

말로는 미안하다 했지만, 전혀 미안한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도훈은 빤히 혜진의 속옷을 쳐다보고 있었다.

"지금 어딜 보시는 거예요!"

"아··· 나도 모르게."

도훈이 마지못해 고개를 돌렸다. 혜진은 얼굴이 빨개진 채 서둘러 바지를 입었다. 그녀가 모처럼 씩씩거렸다.

"여자 탈의실을 함부로 들어오시면 어떡해요?"

"아···. 남자 탈의실이 잠겨 가지고."

"그 체육복은 어떻게 꺼냈는데요?"

도훈이 둘러댔다.

"탈의실이 아니라 기구실에 놔뒀거든."

혜진이 두 팔을 허리에 올린 채 쏘아붙였다.

"오, 오빤··· 진짜 제가 바본 줄 아세요?"

아무리 순해 빠진 사람이라도 화낼 줄은 아는 법.

계속되는 도훈의 도발에 혜진도 더는 참지 못하고 폭발했다.

"기구실에서 갈아입어도 되는데 일부러 여기까지 들어오신 거잖아요!"

‘휘유-. 이제 좀 성깔 나오는데?’

[장난이 심하셨습니다. 성추행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닌데요.]

‘일부러 그런 거야.’

[네?]

‘혜진이는 이제껏 너무 당하고만 살았잖아. 아무리 착해 빠졌어도 상대에게 화를 낼 줄도 알아야지. 뻔히 자신을 농락하는 줄 알면서도 꾹 참기만 해선, 매력적인 여자가 될 수 없거든. 스스로를 모욕한 뒤에야 남이 자기를 모욕할 수 있는 법이니까.’

[그럴듯한 궤변이군요. 어쨌든 의도대로 혜진 양이 화를 냈으니 이젠 어쩌실 겁니까? 자칫 성추행으로 고발당할지 모릅니다. 요새 흉흉한 분위기라면 재적까지 몰릴 위기라고요!]

‘너 내가 좋아하는 말이 뭐랬지?’

[눈눈이이?]

‘그래. 난 언제나 공평하거든.’

도훈이 어깨를 으쓱하더니 벨트 옆으로 재꼈다.

"미안···. 일부러 보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지, 지금 뭐 하세요?"

"의도치 않게 니껄 봤으니 나도 내껄 보여주면 되지? 그럼 공평하잖아."

"아, 버, 벗지 마요. 안 그래도 돼요!"

"아니야. 내가 미안해서 그래."

[이런 참신한 개소리라니!]

‘옛말에 왼뺨을 맞으면 오른뺨을 내밀랬어.’

[그게 무슨 뜻입니까?]

‘기왕 사과할거면 한술 더 떠야 한다는 거야.’

도훈이 바지를 훌렁 벗었다. 고급소재로 만들어진 정장바지는 허물 벗겨지듯 스르륵 미끄러졌다.

그리고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노팬티 차림이었다.

"꺄, 꺄악!"

도훈의 커다란 물건을 목도한 혜진이 비명을 질렀다.

도훈은 발목에 바지를 끼운 채 머리를 긁적였다.

"아, 오늘 노팬티였지."

"이, 입으세요!"

"암튼 됐지? 난 빤쓰까지 다 내렸다."

"어, 얼른 입으시라구요!"

혜진이 두 눈을 감은 채 빼액거렸다. 바지를 완전히 벗어 던진 체 셔츠만 입고 있는 도훈은 유유자적 체육복을 꺼냈다.

"기왕 벗었으니 옷은 갈아 입고 나가야지."

"그, 그럼 제가 나갈게요!"

혜진은 애써 도훈의 나신을 외면하며 탈의실을 빠져나가려고 했다. 그러나 도훈이 출입구 쪽에 서 있었기에 밖으로 나가려면 그를 가로지르는 수밖에 없었다.

도훈은 마음대로 하라는 듯이 셔츠까지 훌렁 벗었다. 조각 같은 그의 몸매가 온전히 드러나자 벽에 붙은 체 탈의실을 빠져나가던 혜진도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세, 세상에 어떻게 저런 몸이···.’

그녀가 일전에 만난 남자들은 대부분 외모가 별로였다.

뚱뚱하거나, 키가 작거나, 아니면 얼굴이 빻았다.

하지만 자존감이 낮았던 혜진은 남자의 외모를 따지거나 거를 처지가 아니었다. 그저 자신을 여자친구로 대해주는 것도 감지덕지. 그런 그녀에게 도훈의 모습은, 모델이 사진을 찢고 튀어나온 것처럼 여겨졌다.

‘어, 엄청나···. 온몸이 갑옷처럼 단단해 보여. 특히 거기는···.’

혜진이 어느새 도훈의 등 뒤까지 왔다. 그녀는 낭떠러지를 벗어나는 사람처럼 벽에 바짝 붙은 체 슬금슬금 그를 지나쳤다.

하지만 이대로 그녀를 보낼 도훈이 아니었다.

혜진이 지날 타이밍에 맞춰 도훈이 한 쪽 발을 들어 올리자 그의 커다란 대물이 덜렁거리며 노출되었다.

"흐읍!!"

"뭐야? 나간다면서 왜 계속 봐?"

"보, 보려고 한 게 아니고···."

"어쨌든 봤잖아."

"죄, 죄송해요."

무엇이 죄송한진 알 수 없었다.

혜진은 도훈에게 완전히 말려들고 있었다.

"아무리 우리가 편하게 얘기하는 사이지만, 지킬 건 지켜줘야지."

"저, 정말 죄송해요."

"됐고. 너도 보여줘."

"네?!"

"너가 소문내고 다니면 난 학교생활 어떻게 해? 도훈이 오빠 빽잦이라고 떠벌이기라도 하면?"

도훈은 이제 보란 듯이 대물을 들이밀었다.

털을 밀어 깨끗한 그의 물건이 혜진 앞에 덜렁거렸다.

원체 큰 그의 물건은 노발기임에도 10Cm에 육박했다.

그녀가 살면서 본 어떤 물건보다 컸다.

혜진은 얼토당토않은 도훈의 요구에 점점 혼란스러워졌다.

‘마, 말도 안 돼. 자기가 먼저 보여줘 놓고선 나한테 책임을 떠넘기다니···.’

부조리했다.

부조리의 극치였다.

혜진은 억하심정이 들었다.

"그, 그런···."

혜진이 우물쭈물 입을 열었다.

"마, 말도 안 되는···."

도훈은 침착하게 기다렸다.

‘화를 내. 화를 낼 땐 화를 내야 해. 그래야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어.’

"이건 말도 안 되잖아요!"

"어째서?"

혜진이 각성했다.

"제가 오빠한테 보여달라고 한 적도 없는데 멋대로 들어오셨잖아요! 그리곤 막 훌렁훌렁 옷 벗어버리고. 이게 어떻게 제 탓이에요?"

혜진은 한바탕 쏟아붓고 스스로에게 놀랐다.

‘내, 내가 화를 냈어! 다른 사람도 아닌 도훈 오빠에게···.’

심장이 미칠 듯이 쿵쾅거렸다. 이제껏 화를 내고 나면 감정이 상할까 꾹 참기만 했다. 그런데 막상 화를 내고나니 답답했던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듣고 보니 그렇네. 미안, 내가 좀 과했어."

도훈은 마저 바지를 입으며 혜진에게 사과했다.

혜진은 심장이 벌렁거리면서도 도훈의 사과를 받았다.

"괘, 괜찮아요."

"그럼 나갈까?"

"네···."

‘후후. 이제 좀 따먹을 맛이 나는군.’

[주인님은 정말 극단적인 분입니다.]

‘어쩔 수 없잖아. 저런 소심한 성격은 병이나 마찬가지거든. 때론 충격요법이 효과가 좋아.’

체육관으로 나온 도훈이 혜진에게 말했다.

"온 김에 배구 네트나 설치하고 갈래?"

"네?"

"직원체육 때 배구 한다니까. 네트 치는 거 금방이거든."

"아···. 네."

"아까 보니 기구실에 네트가 있던 것 같던데."

도훈이 성큼성큼 기구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혜진은 망설이면서도 도훈을 뒤따랐다. 왠지 그를 도와줘야 할 것 같았다.

‘화내고 나니까 괜히 미안하네. 오빠가 장난이 심해서 그러지 나쁜 사람은 아닌데···.’

소심한 혜진은 도훈과의 관계가 틀어질까 봐 조바심이 들었다. 그녀가 아는 가장 잘생긴 남자인 도훈과 멀어진다면 무척이나 서운할 것이다.

"지주를 어디서 봤더라···."

체육 기구실은 혼잡스러웠다. 나름 정리를 해놓았다 하지만, 켜켜이 먼지 묶은 도구들과 각종 공들이 사방을 멋대로 굴러다녔다. 도훈은 어지러운 기구들을 헤치고 안쪽에 짱박혀 있는 배구 지주를 찾았다.

"아, 저깄네. 근데 주변 물건을 먼저 치워야 할 것 같은데."

"제가 도울게요."

혜진이 적극적으로 나섰다.

도훈에게 미안한 감정이 남은 혜진은 그를 돕고 싶어했다.

"그럼 매트부터 옮기자."

두 사람이 매트를 붙잡고 한쪽으로 치웠다. 가볍게 드는 도훈에 비해 체격이 왜소한 혜진은 땀을 뻘뻘 흘렸다. 여러 장이 겹쳐 있는 매트를 모두 옮기고 나니 혜진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힘들지? 그냥 남자 교생들 불러서 할 걸 그랬나?"

"아, 아니에요."

"원래 체육과 출신들은 이런 거 많이 해. 우린 선배들이랑 배구 하면 제일 먼저 네트부터 치거든."

"아··· 네."

"가만, 왜 이렇게 땀을 많이 흘려? 어디 안 좋니?"

도훈이 혜진에게 다가가더니 이마에 맺힌 땀을 가리켰다.

"조, 좀 더워 가지고."

"잠깐 있어 봐."

도훈이 상의를 들추더니 위로 쭉 끌어올려 혜진의 이마에 묻은 땀을 훔쳤다.

‘하, 핫-.’

도훈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혜진은 어쩔 줄 몰라 하며 숨을 죽였다. 드러난 복근이 돌덩이처럼 알알이 박혀 있었다.

‘세, 세상에. 가까이서 보니까 진짜···. 어쩜 사람이 이렇게 근육질이지?’

노출된 복근을 보자 자연스럽게 시선이 아래로 내려갔다.

츄리닝 반바지로 갈아입은 도훈의 물건이 볼록 튀어나와 있었다.

‘아까보니 거기도 엄청 크던데···. 털도 없어서 맨들맨들하고.’

혜진이 정신을 놓고 바지를 쳐다보고 있는데 도훈이 물었다.

"어디봐?"

"예? 아! 아, 아니요 안봤는데요."

당황한 혜진이 허둥거렸다.

도둑질하다 들킨 사람같은 표정이었다.

도훈이 분위기를 잡으며 그녀를 몰아 세웠다.

"아닌데. 방금 밑에 보고 있었잖아."

"아, 아니라니까요? 그냥 맨살 쳐다보기가 민망해서···."

"풉-. 아까 다 봐놓고 민망할 건 뭔데?"

"미, 민망한건 민망한 거잖아요."

혜진의 목소리가 계속 사그라들었다.

꺼지기 직전의 촛불처럼 힘이 없었다.

"별게 다 민망하네. 남자친구 거 많이 봤을 거 아니야?"

"마, 많이는 안 봤어요. 그리고 안사귄지 엄청 오래 됐어요."

"언제 마지막으로 헤어졌는데?"

"그, 그러니까 작년 겨울···."

작년 겨울부터 5월이면 대략 반년 쯤 흘렀다.

즉, 혜진은 최소 6개월간 솔로였다는 말이다.

‘후후. 거미줄 뻑뻑할 때 됐네.’

도훈이 넌지시 말했다.

"보고 싶음 보여 줄게."

"아, 아니에요!"

"어차피 여기 아무도 안 와. 문도 잠겨있고. 우리가 여기 있는 건 아무도 모른다고."

도훈이 교묘하게 설득했다.

모든 것은 처음부터 의도되었다.

‘여자는 말이지. 여러 사람과 둘이 있을 땐 전혀 다른 생물이거든.’

[네?]

‘내가 오래전에 유학 다녀왔잖아.’

[네.]

‘외국에 있을 때 많이 느꼈어. 한국 여자라고 딱히 보수적인게 아니라 사회적인 압력 때문에 많은 걸 억누르고 사는 거라고.’

[그렇습니까?]

‘나야 그땐 공부만 했지만, 같이 유학 온 여자애들은 엄청 문란했거든. 남자친구 돌아가며 사귀고, 클럽 가서 원나잇 하고. 왜, 외국애들이 우리나라 여자들 보고 부르는 말 있잖아. 옐로우 택시.’

[아하.]

‘보수적인 여자는 없어. 보수적인 사회가 있을 뿐이지. 누구든 자신을 못 알아보고, 언젠간 떠날 곳이라면 마음껏 즐겨 버리더라고. 결혼 업체에서 유학다녀온 여자들 감점 시키는 게 근거 없는 편견이 아니라니까?’

[근데 지금 상황과 그게 무슨 연관이 있죠?]

‘아무도 모른다고 했잖아. 본능을 억누르던 사회적 억압이 해제되었다고. 두고 봐, 혜진이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혜진이 침을 꿀꺽 삼켰다.

-어차피 여기 아무도 안 와.

도훈의 제안이 솔깃했다. 아까 탈의실에서 슬쩍 스치듯 본 것이 잔상처럼 뇌리에 남아 아른거렸다.

혜진이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476. 교생 실습-20- > 끝

ⓒ 성난불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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