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0. 교생 실습-14- >
‘뭐지? 진심으로 하는 말인가?’
진아는 사실 반쯤 포기하고 있었다.
다른 대학과 달리 일찍부터 실습을 내보내는 국성대 사대의 악명 높은 커리큘럼은, 특히 대표 수업에서 정점을 찍었다.
사범대 생이라곤 하나 고작 2학년 1학기.
전공으로 배운 것은 교육학 개론이 전부인 초짜들이다.
사실상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이 불가능한 학생들에게 현장 수업을 맡기는 것은 어불성설이나 마찬가지였다. 마치 본과에 재학 중인 의대생에게 메스를 쥐여주고 수술을 해보라는 것과 같달까?
하지만 모든 일에는 목적이 있는 법.
국성대 사범대가 그런식으로 교육과정을 짠 의도엔 반면교사라는 철학이 담겨 있었다.
즉, 현장에서 수업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깨닫고, 앞으로 남은 대학생활 동안 충격을 주기 위한 ‘예정된 실패’인 셈이다.
대표 수업을 맡은 학생은 학생대로, 또 그의 고난을 옆에서 지켜보는 참관 학생들은 관찰학습을 통해 ‘이론과 실제의 커다란 괴리’를 깨닫는 것이다.
따라서 아무리 실습 점수 만점을 준다 해도 모두 기피 하는 것이 대표 수업이었고, 종래엔 제비뽑기로 귀결되고야 마는 고난을 행군을 도훈이 자처했을 때 진아는 진정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학점이 급한 걸까?’
가끔 그런 학생들이 있었다.
기숙사에 거주하는데 최저 학점을 통과 못 해 쫓겨나게 생긴 경우라던가, 학사 경고가 코앞이라 지푸라기라도 잡고자 자원하는 경우. 하지만 이미 기숙사에 거주 중인 진아로서는 도훈의 존재가 금시초문이었다.
‘저렇게 훤칠한 남자애를 내가 못 봤을 리 없으니 기숙사생은 아닐 텐데···. 역시나 학사 경고려나?’
진아가 도훈을 향해 짐짓 조언했다.
"학년 수업이나 재학생 대표 수업이나 실습 점수엔 차등이 없다고 알고 있어요. 혹시나 점수가 필요하신 거라면 그냥 학년 수업을···."
"아니요. 점수 때문이 아니라서요. 기왕 하는 거 교장, 교감 선생님 앞에서 하는 게 폼나지 않겠어요?"
‘저 미친!’
도훈의 두 번째 발언은 용기를 넘어 만용에 가까웠다.
‘예정된 실패’를 경험하기 위한 첫 수업이라지만, 굳이 자진해 창피를 당하겠다는 도훈은 객기에 지나지 않았다.
‘혹시···. 남들 앞에서 뽐내길 좋아하는 성격인가?’
진아는 어처구니 없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잘 보이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
그녀가 천천히 좌우를 둘러 보았다.
2학년 교생들이 모두 모인 자리. 자신을 포함 모두 8명의 여학생이 있지만, 까놓고 말해 그녀보다 예쁜 여학생들은 한 명도 없었다.
‘3반에 박혜진이라는 애가 좀 귀엽게 생기긴 했는데··· 몸매가 영 아니니 후훗. 설마 나한테 점수 따려고 그러는 거야?’
오진아의 불치병, 도끼병이 발발했다.
‘호호. 귀엽네 제법. 안 그래도 언제쯤 말 거나 은근 신경 쓰고 있었는데 이런 식으로 들이대나?’
도훈의 행동을 이해 못 한 진아는 마침내 아전인수격 해석을 덧붙였다. 도훈이 자신의 관심을 끌기 위해 과시하는 것으로 확정 지은 것이다.
‘뭐, 나름 방법이 참신하긴 했어.’
진아가 빼어난 외모를 가지고도 여태껏 남자친구를 사귀지 못한 것은 콧대가 무척 높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예쁘고 똘똘하다는 소리를 귀에 못이 박이게 들었다.
그리고 그러한 칭찬은 점점 그녀에게 평생 고치지 못 할 불치병을 선사했다. 그것은 바로, 세상 모든 남자들이 자신을 좋아할 수밖에 없다는 지독한 망상이었다.
‘실습 중이라 화장에 신경 좀 썼으니 눈이 뒤집힐 만도 하지. 하지만 내 성에 차려면 아직 멀었어.’
외모가 출중한 그녀에게 지금껏 몇 번의 소개팅 제의가 있었다. 그녀는 모두 일언 지하에 거절했는데 사유가 각기 달랐다.
사례1
-상대 전공이 뭔데요?
-공대생이라던가?
-공대생요?
-응. 공대에서도 엄청 킹카로 유명하데.
-됐어요.
-왜? 잘생겼다니까?
-공대생이라면서요. 공부도 지지리도 못했구만 뭘.
-······.
사례2
-지나야! 이번엔 사범대 소개팅이야, 어때?
-스펙이 어떤데요?
-영어 교육과에다가 훈남이라던가?
-집에 돈은 좀 있데요?
-···어?
-하긴 집에 돈이 많으면 선생질이나 하겠어요? 집에서 근사한 사업체 하나 물려줬거나, 빌딩 같은 걸 줬겠지. 난 가난한 남자는 사양.
-······
사례3
-진아야. 진짜 이번에야 말로 완벽한 남자야. 무려 의대생에 집도 엄청 부자래. 학벌도 좋고 돈 많은 남자, 어때?
-호오. 사진 좀 있어요?
-가만, 깨톡 프로필에 사진이···
-설마 이거 본인 사진은 아니죠?
-응? 맞는 거 같은데···
-어휴. 얼굴이 생기다 말았네. 게다가 무슨 대학생이 배까지 나왔어? 진짜 별루다. 이런 남자는 아무리 돈 많고 공부 잘해도 싫어요. 예선은 통과해야 본선에 오르는 거지, 예선에서 탈락이네.
-야! 진짜 이게! 내가 너 앞으로 소개팅 시켜주나 봐!
늘 이런 식이었다.
젊고 예쁘고 똑똑했던 진아는 자신이 가치를 늘 과대평가했고, 상대가 지닌 것을 과소평가했다. 또한 모든 남자들은 자신을 좋아할 수밖에 없다는 이상한 도끼 병까지 겹쳐 지닌 외모에 비해 인기가 없는 타입이었다.
아무리 몸매가 좋고 외모가 수려한 들, 단 10분만 얘기해도 지나치게 공주병에 빠진 나르시시즘 환자라는 것이 티가 나는 것이다.
지금도 진아는 대표 수업을 자청하는 도훈을 속으로 재고 있었다.
‘키는 적당하고, 얼굴은 봐줄 만하네. 근데 체육교육과랬던가? 걔네는 같은 사범대라고 하기에도 원체 무식해서···. 아쉽네. 국어교육과 정도만 됐어도 살짝 흥미가 생길 뻔 했는데.’
"체육교육과 아니세요?"
"맞는데요."
"그럼 체육수업으로 공개 수업을 하시겠다는 말씀이에요?"
"네. 못 할 건 없죠."
"흐음···. 일단 다른 지원자분이 없는 것 같으니 저희 학년 대표로 올릴게요. 단, 다른 학년 대표랑은 얘기를 해봐야 할 것 같아요. 교생 대표 실습은 저혼자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라서요."
진아의 답변에 도훈이 한 번 더 신신당부했다.
"저 꼭 해보고 싶어요. 그러니 다른 학년 대표에게도 잘 말해주세요."
진아에겐 도훈의 간곡한 부탁이 마치 이렇게 들렸다.
-제가 이렇게 용기 있는 남자랍니다. 어때요? 이 정도면 봐 줄 만하지 않나요?
‘훗-. 열정은 높이 사 줄게.’
***
실습생들이 시청각실에서 연수를 받는 동안 2학년 교무실에선 소소한 티타임이 벌어지고 있었다.
중고등학교 교사의 수업은 온종일 쉬지 않고 하는 강행군이 아니라, 중간중간 비는 타임이 있다. 그 막간의 휴식기가 겹쳐진 교사들은 교무실에서 업무를 보거나 때론 수다를 떨곤 했는데, 지금 교무실에는 연구부장과 2학년 3반 담임인 정현아, 그리고 체육 선생이 테이블에 둘러 앉아 있었다.
젊은 연구부장인 김한솔이 말했다.
"실습생들이 엄청 파이팅 넘치더군요. 특히 2학년들이."
"저희 학년요? 혹시 눈에 띄는 학생이 있던가요?"
"이름이 도훈이랬나? 그 학생이 좀 열심이더라구요."
체육 선생이 도훈이란 이름이 나오자 거들었다.
"어, 그 잘생긴 학생 말이지? 키 크고."
"키는 컸던 것 같네요."
"어제도 학교에 남아서 체육시설 둘러보고 있더라고. 상당히 열정이 있던데?"
"정말요?"
"응. 근데 그 뭐냐··· 옆에 같이 있던 아가씨는 여자친군가?"
"여자친구라니요?"
현아가 화들짝 목소리를 높이자 연구부장과 체육선생 모두 움찔 놀랐다. 민망해진 현아가 급히 수습했다.
"아, 아니 무슨 학교에 여자친구를 데리고 와요?"
"데려온 게 아니라 같이 다니던 실습생이었는데? 난 하도 다정해 보이길래 CC(캠퍼스 커플)인 줄 알았지."
현아는 어제 도훈과 혜진이 남아서 인사를 하고 간 것을 떠올렸다. 그녀는 별일 아니라는 듯이 손사레를 치며 말했다.
"에이, 아니에요 체육샘. 둘 다 저희 반 배속인데 인사하고 가겠다고 저 기다리고 있었나 보네요."
"아, 그랬어?"
"네. 그리고 저도 어제 물어봤는데 여자친구 없다던데요?"
진아의 말에 조용히 녹차를 홀짝이던 연구부장 김한솔이 귀를 쫑긋 세웠다.
‘여자친구가 없었구나···. 당연히 있을 줄 알았는데. 근데 현아샘은 아무리 자기 반 실습생이라지만 너무 관심이 많은 거 아니야? 나랑 나이차이도 별로 안 나면서 한참 어린애 한테 왜 저렇게 관심이 많지?’
그런 생각은 연구부장만 했던 게 아니었다.
듣고 있던 체육선생이 놀리듯 말했다.
"어어? 근데 어째 좀 위험하다? 현아샘, 상대는 교생이라고. 이제 대학교 2학년. 벌써 호구조사까지 들어가고, 너무 빠른 거 아니야?"
"체육선생님. 저도 아직 20대 거든요?"
"현아샘 서른 아니었어?"
"아직 생일 안 지났으니 만 스물아홉이에요."
"그거나 그거나···."
"왜욧! 엄청난 차이죠! 앞자리가 휙휙 바뀌는 구만!"
"그래그래. 아직 20대라고 치자고. 근데 정말 실습생한테 흑심 있는 거 아니지?"
"뭐 요샌 연상연하가 대세라잖아요. 다섯 살 차이 정도면 아무것도 아니에요."
"헐. 대박. 이거 큰일 날 소리 하네. 지난 번 교감선생님이 신신당부 했잖아. 실습생들하고 괜히 엮이지 말라고. 사고 사례도 알려주면서."
"그거야 상대가 유부남이었으니까 문제가 된 거죠. 저는 처녀거든요?"
"나원, 참."
체육 선생은 더 말이 통하지 않자 어깨를 으쓱하며 두 손 두 발 다 들고 말았다. 현아가 본래부터 비글미가 넘치는 사람이었기에 그저 웃어넘길 뿐이었다.
하지만 현아는 진심이었다.
‘쳇. 하여간 남 잘되는 꼴을 못 본다니까. 그러니 아직도 노총각이지!’
한편 도훈에게 노골적으로 관심을 드러낸 현아의 태도에 연구부장 한솔 역시 어딘가 신경이 쓰였다.
‘흠···. 내가 상관할 일도 아닌데 왜 이렇게 거슬리지? 에이. 일이나 해야 겠다.’
"전 그럼 공문 쓰러 가볼게요."
"넵, 연구부장님. 언제나 열심히 십니다."
"뭘요. 현아 샘. 차 잘 마셨어."
"네. 가세요. 저기 체육샘, 근데 아까 그 얘기 좀 다시 해줘 봐요. 저희 반 실습생 둘이서 체육관엔 갔었다고요?"
"아니 그러니까 그게···."
한솔은 티타임을 즐기는 두 사람을 벗어나 교무실 자리에 앉았다. 그녀의 컴퓨터 화면에는 팝업창 메시지들과 열람 대기 중인 공문이 한가득하였다.
"으쌰. 그럼 나도 일이나 해볼까?"
자리에 앉아 일에 몰두하려 했건만, 멀리서 체육선생과 정현아의 웃고 떠드는 얘기가 집중력을 흐트러뜨렸다. 왠지 오늘따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자꾸 딴생각이 들었다.
‘흐음··· 괜히 신경 쓰이네. 그 학생.’
이제껏 남자에겐 목석같았던 그녀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
"그러니까 교직에 종사한다는 것은 다시 말하면 성자와 같다. 그러니까 교사 성직관이라고도 할 수 있죠."
무대 앞에 선 강사의 설명은 고루하기 짝이 없었다.
준비한 PPT는 닳고 닳은 것이었고, 목소리 톤 또한 잠들기에 딱 좋게 잔잔히 흘러갔다. 심지어 내용 또한 평소 대학에서 배우던 교직관에 대한 연수였기 때문에 참신함이라곤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다.
첫 출근의 긴장이 풀리고, 점심 식사 이후 나른함까지 겹쳐지자 하나둘 헤드뱅잉을 시작한 실습생들은 급기야 절반이 졸음에 빠지고 말았다.
도훈 역시 밀려오는 졸음을 애써 참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연수 더럽게 재미없네.’
[그렇긴 하네요. 이런 쓸데없는 짓은 왜 하는 걸까요?]
‘뭐, 누군가는 열심히 듣고 있겠지.’
[저기 오진아 양처럼 말이죠?]
도훈이 고개를 돌려 같은 라인에 앉은 오진아를 힐끔거렸다.
2학년 교생 대표인 그녀는 다른 사람과 다르게 굉장히 열성적인 태도로 연수를 듣고 있었다.
‘쟤도 참 열심히 산다. 몸매 보면 자기 관리도 철저한 것 같고.’
그때 도훈의 시선을 느낀 진아가 슬쩍 고개를 돌렸다.
두 사람이 눈이 허공에서 얽히자 도훈이 민망해하며 씩 웃어 보였다.
"흥."
그러자 진아가 도도한 표정으로 콧방귀를 끼며 도훈을 무시했다. 난데없는 태도에 도훈이 벙찌고 말았다.
‘뭐, 뭐냐 쟤? 왜 저렇게 도도한 척이야?’
[그러게 말입니다. 주인님이 추파를 던지는 줄 착각했을 까요?]
‘아니 그냥 한 번 쳐다본 것 가지고 엄청 유세네. 희한한 성격인데?’
[궁금하시면 정보창 한 번 열어 보시죠.]
‘그럴까?’
그녀와의 거리는 대략 4~5미터 정도.
도달 거리가 3M인 정보창을 쓰기엔 애매하게 부족한 거리였다. 도훈은 일부러 그쪽으로 볼펜을 굴린 후 주으러 가는 척 연기를 했다.
‘로시, 정보창.’
[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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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 오진아 (처녀)
나이 : 21 #도끼병 중증#나르시스트#오만과 편견
호감도 : 65/100
개방성 : B
성감대 : ???
*애무 포인트 : 애무를 받아 본 경험이 없습니다.
성욕지수 : 중간.
공략팁
*그녀는 당신에게 약간의 호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도끼병 환자인 그녀는 당신이 자신에게 관심이 있다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나르시시즘의 화신인 그녀는 세상 모든 남자들이 자신의 매력에서 헤어나올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녀는 자신에게 걸맞은 남자를 만나지 못해 여전히 숫처녀입니다.
-그녀의 높은 콧대를 꺾기 위해선 의도적인 무시가 필요합니다. 자신을 막 대하는 남자를 상대하지 못한 그녀는, 색다른 타입에 강한 흥미와 정복욕을 느낄 것입니다.
-추천 행동 : 그녀의 질투심을 유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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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창을 확인한 도훈은 진아에 대한 평가를 한마디로 정리했다.
‘도랐네.’
< 470. 교생 실습-14- > 끝
ⓒ 성난불기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