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9. 교생 실습-13- >
***
[호오, 슬슬 드라이브 거시는 겁니까? 미션의 제한조건에 따르면 호감도를 높이기 위한 어떤 스킬이나 아이템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알고 있어. 템빨이 안 통하니 말빨로 조져야지.’
[말빨로요?]
‘혜진이는 소극적이고 자존감이 없는 성격이야. 조금씩 자극시켜 분위기를 몰아가야겠어.’
"···아, 음··· 그, 그건···."
"여고로 실습 나갔던 선배가 그러던데 요즘 애들은 엄청 조숙하다더라고."
"그, 그래요?"
"응. 막 쉬는 시간에 지들끼리 모여서 야동같은 거 공유하고 학교에 이상한 망가 같은 거 가져와 돌려보고 한다더라. 확실히 우리 때랑 세대 차이가 나긴 해? 그치?"
일부러 세대 차이를 들먹이며 혜진을 자극했다.
너는 구세대고, 따라서 세련되지 못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간교한 화법이었다.
"으, 음. 저희 때도 뭐 그 정도는···."
"그래?"
"솔직히 나이 차가 많이 나는 건 아니니까요."
오호, 잘하면 좀 더 끌어낼 수 있겠는데?
"근데 넌 많이 순진했나보다?"
"제가요?"
"응. 남자친구도 아직 한 번도 안 사겨 봤지?"
혜진이 처녀가 아니란 건 정보창으로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다. 자존감이 낮은 그녀는 일전에 사귄 남자들로부터 섹스를 강요받았고, 대체로 줏대 없이 끌려다니는 연애를 했다. 연애라기보단 정확히는 먹고 버림당하기에 가까웠지만.
내 말이 은연중에 자신을 무시하는 기분이 들었는지 혜진이 발끈했다.
"저도 사겨 봤어요."
"정말?"
"당연하죠. 저도 나름···."
"음, 그랬구나. 그럼 네가 아니라 남자친구들이 순진했나 보네."
"네?"
"아니 뭐, 요샌 다들 빠르지 않나? 사귀면 한 달 안에, 아니 한달이 다 뭐야. 눈 맞으면 일주일도 안 걸리던데."
"뭐가요?"
"섹스."
"······."
혜진이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었다.
직접적인 표현에 무척 놀란 것 같았다.
나는 더욱 기세를 올렸다.
"왜? 다 그런 거 아냐? 요샌 사귀면 다 섹스하는 거잖아."
"아···."
"아니었어? 혹시 혼전순결?"
"아, 아뇨. 그런 건 아니고요."
"그럼 뭐 해봤겠네?"
"···네."
혜진이 얼굴이 빨개져 고개를 푹 숙였다. 바짝 오므라든 허벅지가 방어적인 태도를 대변하고 있었다. 어떻게든 저길 열어젖혀야 한다.
"근데 이상하다? 보통 아다 떼고 나면 자위도 곧잘 즐기게 되던데."
"그, 그런가요?"
"당연하지. 맛을 알아 버리잖아. 한 번도 안 해볼 순 있어도, 한 번만 하긴 너무 자극적이니까."
"저, 저는 잘···."
나는 좀 더 몸을 기울여 혜진 쪽으로 들이댔다.
수컷의 냄새를 풍기며 그녀를 뒤흔들 작정이었다.
"왜? 남자친구들이랑은 별로였어?"
"아··· 음··· 그게···."
혜진은 어쩌다 대화가 이 지경까지 왔는지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이미 평범한 남녀 사이의 대화라기엔 선을 훌쩍 넘었다. 하지만 자기주장을 못 하는 성격인 혜진은, 제멋대로 지껄이는 나를 제지하지 못했다.
대화의 수위가 점점 올라갔다.
"하긴 잘하는 애들 만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 몇 분이나 하던?"
"뭐, 뭘요?"
"섹스를 얼마나 오래 해주더냐고."
혜진이 얼굴이 잘 익은 홍시처럼 시뻘게졌다. 그녀는 골탕 먹이는 재미가 있는 여자였다. 대답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임에도, 상대에 대한 지나친 배려 때문에 시시콜콜 모두 답변했다.
"시, 시간을 재보진 않아서···."
"그냥 느낌상. 길었어, 짧았어?"
"음···. 길진 않았던 것··· 같기도···."
"그거네."
나는 명쾌하게 결론을 내렸다.
"네가 제대로 못 느껴서 그래. 섹스할 때 별로 안 좋았지?"
"저, 뭐라 대답을 해야 할지···."
"막 먼저 하고 싶고 그랬니?"
"아, 아니요. 남자친구가 원해가지고···."
"그럼 하기 싫은데 억지로 해 준 거야?"
혜진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러니 네가 아직 맛을 모르지."
"마, 맛이요?"
"응. 그 맛을 봤으면 하기 싫어도 자위를 하게 되지 않았을까?"
"전 어떻게 하는지도 몰라요."
"내가 알려줄까?"
"헉! 아, 아뇨. 괜찮아요. 정말로."
"왜? 궁금하지 않아?"
나는 좀 더 가까이 들이댔다.
이제 귀밑까지 빨개진 혜진은 물러서지도 못하고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성희롱에 가까운 행동이었지만, 소심한 성격인 혜진은 어찌할 줄 모르고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했다.
그녀의 귓가 가까이 바람 소리가 들리게끔 나직이 중얼거렸다.
"학생들이 너 존나 꼴린다잖아. 그거 너 따먹고 싶다는 거거든."
"헙!"
"애들 이제 밤마다 벗은 몸 상상하면서 딸딸이 칠 걸? 교생선생님, 으으! 하면서."
"오, 오빠···."
상상력을 자극해 학생들의 딸감으로 전락한 모습을 떠올리게 하자 혜진의 숨소리가 눈에 띄게 거칠어졌다. 꿈틀거리는 골반의 움직임은 이미 그녀의 팬티가 축축해졌음을 암시했다.
입질이 슬슬 오는군.
"어때? 진짜 알려줘?"
"아, 아뇨."
"왜? 자위가 범죄는 아니잖아. 무엇보다 엄청 기분이 좋거든."
"······."
그때 연구실 문이 열리며 다른 교생들이 우르르 몰려 들어왔다. 둘만의 시간이 끝이 났다.
"후아-. 뒤에 서 있기만 했는데도 엄청 빡시네."
"어? 3반은 벌써 와있었네?"
"조회 시간에 운동장에서 교생 소개 있대요."
왁자지껄 한 분위기에 대화가 중단되자, 혜진이 도망치듯 일어섰다.
"저, 전 화장실에."
나는 그녀를 향해 능글맞게 놀렸다.
"화장실에 오래 있으면 의심한다?"
"하, 핫!"
혜진이 얼굴이 시뻘게져 물러났다. 그녀가 사라지자 옆 반 남자 교생이 다가와 물었다.
"벌써 친해지셨나 보네요? 무슨 얘기를 그렇게 재밌게 하고 계셨어요?"
"아뇨, 뭐 실습 이야기 좀."
"체육과 맞죠? 교양 수업 때 몇 번 봤어요. 전 도덕과 도중웁니다."
"이도훈이에요."
"3반은 분위기 어때요?"
"그냥 뭐 그럭저럭이에요. 남학생들이라 더 잘 통하는 것 같기도 하고."
"담임 선생님은요?"
"잘해주세요."
"좋겠다. 저희 반은 의외로 깐깐 하시더라구요. 매일 참관 소관 빽빽이 적어 오래요. 그걸로 나중에 평가할 거라고."
"그래요?"
"암튼, 운동장에 가요. 교생 소개 있다니까."
"네."
***
운동장.
조회대 위에 교생들이 줄줄이 서 있는데 화장실을 다녀온 혜진이 뒤늦게 헐레벌떡 달려왔다.
도훈이 그녀를 보고 놀리듯 말했다.
"생각보다 많이 늦은 것 같은데?"
"아, 아니에요."
"농담이야. 농담. 반별로 일렬로 서라니까 내 옆에 붙어."
"···네."
혜진은 키가 큰 도훈 옆에 서자 난쟁이가 된 기분이었다. 정장을 입은 그는 늠름하면서도 세련된 모델 같은 분위기가 났다. 이토록 말끔하게 생긴 그가 야한 이야기를 서슴없이 지껄였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오빤··· 보기보다 짓궂은 성격이네.’
여자 화장실에 들어간 혜진은 팬티에 묻어 나온 물을 보고 몹시 당황했다. 도훈과의 자극적인 대화 때문에 팬티가 젖어 있던 것.
급히 휴지로 닦아내긴 했지만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그녀는 왠지 도훈에게 말려든 기분을 떨쳐내기 어려웠다.
‘하아···. 날 가지고 노는 거 같긴 한데···. 잘생겨서 기분이 별로 안 나빠. 이상해.’
혜진이 자꾸 도훈을 힐끔거리자 도훈이 그녀를 쳐다보며 씩 웃었다.
"내 얼굴에 김 묻었니?"
"네?"
"잘생김."
"헛!"
도훈의 아재 개그에 혜진이 자기도 모르게 헛웃음을 짓다가 뒤에 서 있던 교무 부장에게 걸려 주의를 받았다.
"거기 떠들지 말고. 애들 보고 있으니까."
"네, 넵 죄송합니다."
교장은 쓸데없는 훈화로 몇 분을 더 끈 다음에야 교생들을 소개했다. 워낙 숫자가 많아 일일이 소개할 수 없어 3학년 교생 대표가 마이크를 잡고 각오를 밝히는 순으로 소개가 끝이 났다. 조회를 해산하는 사이 교무가 교생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오늘은 오전 수업 참관 후 시청각실에서 교직 역량 강화를 위한 연수가 있을 예정입니다. 교생 선생님들은 점심 먹고 시청각실로 모여주세요."
"넵."
동선이 일치한 도훈은 혜진과 교실로 걸어가며 농을 건넸다.
"너 화장실에서 볼일만 보고 온 거 맞지?"
"다, 당연하죠!"
"하긴 할 줄 모른다고 했으니···. 궁금하면 언제든 말해. 내가 상세히 알려줄게."
"돼, 됐거든요!"
혜진이 모처럼 언성을 높였다. 그녀는 도훈의 집요한 농담에 자꾸 자극을 받고 있었다.
‘나한테 왜 저러지 진짜? 내가 만만해 보이나?’
가뜩이나 자존감이 낮은 혜진은 도훈의 행동이 자신을 유혹하는 것이라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오히려 자신을 쉽게 보고 심한 장난을 치는 거라고만 여겼다.
‘다음에 또 그러면 학교에선 이런 얘기 하지 말라고 꼭 말해야겠어. 자꾸 야한 얘기를 들으니까 기분이 이상해질 것 같잖아.’
신기하게도 혜진이 그런 마음을 품고 나서부턴 도훈은 일절 농담을 걸지 않았다. 수업을 참관하면서 참관록만 열심히 기록할 뿐이었다.
그렇게 되자 오히려 답답해진 쪽은 혜진이었다.
한 반에 둘밖에 없는 교생 사이에 대화가 오가지 않자, 괜스레 자신이 뭔가를 실수한 것 같고 고립된 느낌을 받았다.
‘혹시 아까 태도가 기분 나빴나? 왜 말을 안 걸지?’
교실 뒤에서 수업을 듣던 혜진이 도훈 쪽으로 슬쩍 다가가 물었다.
"오빠."
"응?"
"혹시··· 기분 상하신 거 아니죠?"
"내가 왜?"
"아니 계속 말씀이 없으셔서···."
"수업 보고 있잖아."
"···아."
도훈의 일축에 혜진이 무안해졌다.
‘어떡하지? 내가 너무 거절하니까 정말 기분 상했나 봐.’
도훈의 노련한 밀당에 소심한 혜진의 답답함이 가중되었다.
관계가 틀어진 게 모두 자기 탓 같았다.
‘딴에는 호의로 말했을 텐데 내가 너무 매몰차게 굴었나?’
혜진이 속으로 전전긍긍하며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이미 그녀는 수업은 뒷전이고, 도훈의 눈치만 살폈다. 도훈은 그런 혜진을 보며 생각했다.
‘흐흐. 잘 해주다 시큰둥하니 어찌할 바를 모르는구나. 얘도 은근 의존증이 심하네.’
[에혀, 그렇게 사람 놀리시는 거 아닙니다.]
‘어쩔 수 없다고. 나도 이렇게까진 하긴 싫은데 어쨌든 혜진이를 공략해야 한단 말이지. 그녀의 소심한 성격을 이용하는 방법이 지금으로선 최선이야.’
[그렇게 밀어내다 진짜 떨어져 나가버리면요?]
‘걱정 붙들어 매. 저런 애들은 휘두르면 휘두르는 대로 따라오기 마련이거든. 척 보면 모르냐?’
도훈의 예상대로 다음 쉬는 시간이 되자 혜진이 우물쭈물거리며 도훈에게 다가왔다.
"저기··· 음, 아깐 죄송했어요."
"뭐가?"
"아니. 오빠가 싫은 게 아니고 그냥 좀 민망해서···."
"아아, 그거? 신경 쓰지 마. 나도 말해놓고 나니 좀 그렇더라고. 별로 친한 사이도 아닌데 괜한 얘길 꺼냈나 싶어서."
"기분 상하신 거 아니죠?"
"내가 기분이 왜 상해? 너무 사과하지 않아도 돼. 잘못한 게 없는 데 왜 사과를 하니?"
"제가 성격이 좀 그래요···."
혜진은 도훈의 태도에 안도하면서도 그의 마음을 풀어주기 위해 용기를 냈다.
"저···."
"응?"
"진짜 그거 하면 기분 좋아져요?"
"어떤?"
"아까 말씀하신···."
"에이, 하지 마. 모르고 살았으면 계속 모르는 게 나아."
"자꾸 듣다 보니 궁금해서요."
"왜?"
"그냥, 주변에 알려주는 사람도 없고···. 또 오빠가 잘 아시는 거 같으니까."
의도대로 놀아나는 혜진의 모습에 도훈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하지만 곧바로 태도를 바꾸기엔 너무 경박해 보일 것 같았다.
"아니야. 아깐 내가 좀 오버했어. 우리가 그런 얘길 나눌 정도로 가까운 사인 아니잖아."
"저, 전 기분 안 나빴어요."
"그래?"
"네. 그냥···. 남자랑 그런 얘길 하는 건 처음이라 당황해가지고···."
"순진하네."
"그런 소리 많이 들어요."
"순진한데 눈에 색기가 있어."
"···네?"
"내가 여잘 볼 줄 알거든. 너 같은 애들이 맛 들이면 진짜 무섭게 변하더라."
"정말요?"
"그렇다니까? 솔직히 말해 줄 수 있어?"
"뭘요?"
"아까···, 젖었지?"
"네?!"
혜진은 도훈의 귀신같은 눈치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런 얘긴 솔직해야 돼. 그래야 나도 제대로 알려줄 수 있거든. 대답하기 싫음 안 해도 되고."
도훈이 다시 으름장을 놓자, 혜진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마, 맞아요."
"많이?"
"모르겠어요."
"물이 많은 타입인지 아닌지가 중요해서 그래. 도구가 필요할 수도 있으니까."
"저, 적진 않은 거 같아요."
혜진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휴지로 닦아냈는데도 팬티는 여전히 축축했다.
"그럼 다행이네. 일단 잘 젖는 타입이라는 거군."
혜진이 얼굴이 시뻘게져 고개를 끄덕였다.
왠지 또다시 그곳이 축축해지는 기분이었다.
"일단 수업 시작할 거 같으니까 지금은 좀 그렇고, 나중에 방과후에 따로 얘기하자."
"···네."
도훈은 그 뒤론 일절 야한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마치 그런 것에 전혀 관심 없는 사람처럼 수업에 집중했다.
시간이 흘러 점심을 먹고 난 실습생들은 학년 별로 따로 모여 커피를 마셨다. 간만에 찾아온 휴식시간이었다.
"와, 정신 하나도 없네."
"나도. 수업 안 하고 뒤에 서서 구경만 하니까 더 뻘쭘한 거 같아. 차라리 수업을 하는게 낫지."
"어? 그럼 형이 대표 수업 하실래요?"
"대표 수업?"
"왜, 학년별로 대표 수업 하면씩 해야 한다면 서요."
"에이, 그건 학년 대표가 맡아야지."
화살이 학년 대표 오진아에게 돌아갔다.
커피를 훌쩍이던 진아는 마침 화제가 나오자 2학년 교생들을 향해 말했다.
"그러잖아도 오후에 그거 상의하려고 했어요. 아까 교무 선생님이 오늘까지 학년 대표 수업자 뽑으라고 해서요."
"대표 수업이니 학년 대표가 해야 하지 않을까?"
"그건 정하기 나름이죠. 혹시 해보고 싶은 분 안 계세요?"
다들 꿀 먹은 벙어리처럼 눈치를 살피는 데 도훈이 번쩍 손을 들었다.
"제가 할게요."
"오! 상남자."
"진짜요?"
"대표 수업은 좀 빡시다던데···."
다들 웅성거리는 데 도훈이 확고한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기왕 하는 거 교생 대표 수업으로 해볼게요."
2학년 대표 진아는 도훈의 패기에 깜짝 놀랐다.
< 469. 교생 실습-1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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