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8. 교생 실습-12- >
한솔의 표정이 미묘하게 바뀌었다.
"···교생 대표 수업?"
"네. 2학년 실습이 참관 위주긴 해도 한 번은 수업을 직접 한다던데, 아닌가요?"
한솔의 미간이 좁아지며 의심스러운 눈빛이 되었다.
‘뭐지? 공부랑은 전혀 거리가 멀어 보이는 인상인데···. 학점에 욕심을 내는 걸까?’
"그러니까 도훈 학생이 교장, 교감 선생님까지 참관하는 교생 수업을 해보고 싶다고요? 대표로요?"
"네."
"흠···. 어제 학년 대표 안 뽑았나요?"
"뽑았습니다."
"교생 대표 수업은 학년 대표끼리 협의해 결정하는 사안이에요. 내가 지도안 첨삭이나 내용을 짚어준다곤 하지만 대표를 임의로 선발할 권한까진 없어요."
"아··· 그렇군요."
한솔 역시 교생 실습 때 대표 수업을 한 적이 있었다.
어차피 학년 대표만 맡아도 실습 점수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누구도 나서지 않자 본인이 자청한 것이었다. 물론 그녀는 교생 때부터 완벽한 수업을 선보임으로써 자신의 능력을 과시했지만, 당시에 동기들의 무성의한 협조 때문에 애먹던 기억이 생생히 남
아 있었다. 그만큼 실습생에게 있어 대표 수업은 힘든 일이다.
‘얘가 대표 수업이 뭔진 알고 지원하는 건가?’
"한데 도훈 군은 왜 대표 수업을 하려는 거죠? 50분짜리 수업일지언정 제대로 준비하려면 며칠은 꼬박 새워야 하는 건 알고 있나요?"
도훈은 유난히 말이 많아진 한솔의 모습에, 자신에 대한 평가가 유보적으로 바뀌었음을 직감했다. 이번 질문에 대한 대답 여하에 따라 호감도의 등락이 결정될 것이다.
‘신중 하자. 워낙 특이한 성격이다 보니 섣불리 대답했다간 오히려 점수를 까먹을지도 몰라.’
정보창을 연이어 두 번 쓸 수 없으니 추천 멘트의 도움을 기대할 순 없었다. 이에 도훈은 마음의 소리 스킬로 그녀의 속마음을 읽었다.
{재밌는걸? 어디 무슨 대답을 하는지 들어나 볼까?}
‘음? 이게 무슨···.’
마음의 소리 스킬의 문제는 상대의 현재 생각을 들려준다는 것이었다. 이것만 가지곤 그녀가 무슨 대답을 원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렇지. 또 다른 스킬이 하나 더 있지?’
그에겐 최소 두 번의 실패를 경험해 볼 수 있는 스킬이 있었다.
‘로시, 이지선다 준비해.’
[넵. 이지선다 스킬 준비하겠습니다.]
디스플레이에 두 가지 선택이 떠올랐다.
1. 교사가 될 사람이라면 수업을 피해선 안 되죠.
2. 실습 점수 만점 받고 싶어서요.
‘음, 명분과 실리 사이의 선택인가? 한솔은 고지식한 교사니까 분명 1번이 정답이겠지?’
오랜만에 스킬을 쓰니 가상 현실 진입 순간 머리가 핑 돌았다.
"교사가 될 사람이라면 수업을 피해서는 안 되죠."
도훈의 당당한 대답에 한솔이 피식 웃었다.
"고작 그 이유에요?"
"···네?"
"아니에요. 암튼, 정 하고 싶으면 학년 대표 협의 때 직접 건의해 보세요. 그럼 난 이만."
‘뭐지? 이게 아닌데?’
도훈은 분기점을 돌려 두 번째 선택지를 골랐다.
"저, 솔직하게 말씀드려도 될까요?"
"얼마든지."
"실습 점수 만점 받고 싶어요."
"···뭐라고?"
도훈의 노골적인 대답에 한솔도 살짝 당황한 기색이었다. 아무리 점수가 필요하다 한들 제 입으로 그런 말을 하는 뻔뻔한 학생은 드물기 때문이었다.
도훈은 눈치를 보지 않고 내친김에 몰아쳤다.
"실은 이번에 학년 수석을 노리고 있어요. 전액 장학금 받는 게 목표거든요. 근데 실습에서 평점이 깎이면 억울할 것 같아서."
"흠···."
한솔의 눈빛이 의뭉스럽게 바뀌었다.
‘남학생이 사범대 탑을 노려?’
아무리 봐도 이상했다.
잘생긴 얼굴. 맞춤 수트처럼 어울리는 모델 같은 몸매.
이리 보고 저리 봐도 공부와는 거리가 먼 용모였다. 차라리 기생오라비처럼 여자나 후리고 다닌다면 믿을까, 저 얼굴로 전액 장학금을 노리다니.
한솔은 도훈의 말이 진심으로 와 닿지 않았다.
"흥미로운 대답이군요. 하지만 오히려 그런 이유라면 더 들어줄 수 없어요. 난 사적으로 청탁 같은 거 들어주는 사람이 아니니까요."
"청탁이 아닙니다. 어떻게 하면 할 수 있는지 방법을 여쭤본 거죠. 일단 알겠습니다. 학년 대표 협의 때 제가 교생 대표 수업을 한다고 말할게요. 혹시라도 제가 되면 나중에 지도 부탁드립니다."
도훈이 공손한 태도로 고개를 숙이며 물러났다.
그의 늠름한 등판을 바라보는 한솔의 눈빛이 이채로움으로 가득 찼다.
‘흠- 재밌는 아이네?’
그녀는 성취동기가 무척 강했다.
이기는 습관이 몸에 밴 사람이었다.
어떤 일에서건 지는 걸 싫어했고, 경쟁에서 이기는 것을 미덕으로 살아왔다. 그런 투사 같은 성격을 가진 한솔에게 도훈의 진솔한 ‘욕심’은 패기와 투지처럼 읽혔다.
그녀는 욕망하고 갈구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학생의 태도라 여겼다. 갑자기 도훈이 마음에 들었다. 아주 조금.
‘그래. 어디 한 번 대표로 올라와 보렴. 내가 아주 눈물 쏙 뺄 때까지 혹독히 단련시켜 줄 테니.’
그녀는 도훈을 조련시킬 생각에 들뜨기 시작했다.
***
‘후-. 이걸로 점수 좀 땄겠지?’
[그럴 겁니다. 그나저나 주인님께 비호감을 보이는 여자는 정말 간만이군요. 외모가 전혀 먹히지 않는 상대라니···.]
‘그건 사람마다 다른 거니까. 본인의 가치관에 따라 외모는 전혀 중요하지 않을 수 있거든.’
[그렇군요.]
‘이제 담임 수업 참관이던가?’
[네.]
1교시를 마치고 나온 도훈은 혜진과 함께 2학년 3반으로 참관 실습을 하러 들어갔다. 담임인 현아는 두 사람을 학생들 앞에 소개했다.
"자자. 주목. 오늘부터 이주간 우리 반과 함께할 교생 선생님들이에요. 다들 공손히 인사하세요."
"와! 키 크다!"
"형, 잘생겼어요!"
"누나 예뻐요."
"두 사람 설마 애인 사이?"
중2병 남학생들은 호들갑을 떨며 환영 인사를 해왔다. 마지막 짓궂은 질문에 현아가 눈살을 찌푸리며 경고를 알렸다.
"야, 쓸데없는 질문하는 사람은 오늘 남아서 깜지 쓰고 갈 테니까 그리 알아."
"우우-"
"이것들이 확!"
"······."
"자, 두 사람 가볍게 자기 소개."
현아의 손짓에 도훈이 교단 앞에서 자신을 소개했다.
"안녕하세요, 2학년 3반 여러분. 교생 이도훈이라고 합니다. 2주간 잘 부탁합니다."
"형 혹시 여자친구 있어요?"
정현아는 반 학생들의 불손한 태도가 마음에 안 드는지 버럭 소릴 질렀다.
"야! 너희 내가 쓸데없는 질문 말랬지? 그리고 교생 선생님한테 형이 뭐야 형이? 앞으로 선생님으로 호칭 통일해."
"넵!"
"도훈 선생님은 과목이 뭐에요?"
"체육입니다."
"혀, 아니 선생님은 무슨 그럼 운동 잘해요?"
"보나 마나 축구지. 딱 보면 모르겠냐?"
"야구 아닐까? 호타준족 체형인데."
"난 오히려 격투기 쪽 같은데?"
학생들은 오랜만에 보는 젊은 남자 선생님에 흥분했는지 유난히 질문이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학교에 재직 중인 남교사 중에선 가장 어린 사람이 서른 중반이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나이 차가 많이 안 나는 도훈이 신기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도훈은 생각보다 능숙하게 어린 학생들을 리드하며 대화를 이끌었다.
"운동이라면 다 쫌 하는 편이야."
"와! 역시!"
"다음 체육 시간에 기회 되면 옆 반 교생 선생님 넣고 축구나 한판 하자."
"멋지다!"
"우리 반이 이길 거에요!"
정현아는 도훈이 학생들과 금세 친해지는 것을 보고 내심 감탄했다.
‘제법인데? 중이병 남학생들은 베테랑들도 두 손 두 발 다 드는 말썽꾸러기들인데···. 고작 2학년이 저렇게 태연할 수가 있는 건가?’
물론 이는 도훈의 이력을 전혀 모르기 때문.
그는 여타의 평범한 대학생들과는 경험 자체가 달랐다. 그에겐 40년 넘게 살아왔던 이정우의 일생이 있었다. 오랫동안 회사원으로서 성공적인 삶을 살아온 기억은, 젊은 도훈을 노련한 중년처럼 만들어 주었다.
그런 그에게 고작 15살 먹은 남학생들을 다루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문제는 그가 너무 소개를 잘해서 발생했다.
바짝 얼어있던 혜진이 자기 차례가 되자 말을 더듬으며 학생들과 시선도 마주치지 못한 것이다.
"저, 저 저는 바케진, 아니 박혜진이라고···."
"와하하! 선생님 너무 떠시는 거 아니에요?"
"뭐라는지 하나도 안 들려요!"
"노래해! 노래해!"
"김창렬, 이대진! 너네 둘 오늘 남아서 깜지 두 장 써!"
"윽!"
담임의 개입으로 힘든 소개가 끝났지만, 두 사람의 성격을 극명히 드러내 준 시간이었다. 쉬는 시간 잠시 학년 연구실로 향한 혜진은 좌절감에 고개를 푹 떨구고 스스로를 자책했다.
"아···. 저는 교사 체질이 아닌가 봐요."
"왜 그래? 잘하던데."
"뭘요. 앞이 깜깜해 가지고 제대로 이름도 말 못했는 걸요."
"남자애들이 장난이 심해서 그래."
도훈이 그녀를 위로했다.
"아니에요. 오빠는 정말 자연스럽게 잘하던데···. 전 학생들 얼굴도 못 쳐다보겠더라구요."
"원래 무슨 일이건 처음부터 잘하긴 힘들지. 그리고 난 같은 남자라 더 동질감이 있기도 했고."
"그, 그래요?"
"그럼. 여학교였으면 오히려 정반대였을 걸? 어차피 이번 실습은 참관만 하는 거니까 너무 긴장하지 마. 오늘 괜찮았어."
"고마워요, 오빠."
"참, 나 아까 우연히 들었는데 어떤 학생이 너 되게 예쁘다더라."
"지, 진짜요?"
혜진은 평소 듣지 못했던 칭찬에 얼굴이 금세 빨개졌다.
객관적으로 혜진이 못생긴 축은 아니었지만, 지나치게 마른 몸매에 자신감 없는 표정이 그녀의 미모를 가리고 있었다.
도훈은 그녀의 자신감을 회복시키기 위해 없는 얘기를 계속 지어냈다.
"그렇다니까? 너 소개하려고 앞에 서 있는데 앞줄에 앉은 남학생이 그러더라고. 여자 교생 샘 존예 라면서."
"존예요? 그게 뭐에요?"
"어, 그러니까···."
도훈은 솔직히 말을 할지 망설였다. 순박해 보이는 혜진에게 이런 말을 해도 괜찮을지 고민되는 순간이었다.
‘에라, 모르겠다. 어차피 나중에 따 먹어야 되는데 한번 질러 보자.’
"그니까··· 음, 존나 예쁘다는."
"존나요? 그게 뭔데요?"
혜진은 비속어를 잘 쓰지 않는지 고개를 갸웃했다. 어감이 어딘지 불순하게 들렸지만, 정확한 뜻을 모르니 답답했다.
"궁금해?"
"네."
"뜻을 말하면 민망할 텐데···."
"괜찮아요. 유행어도 모른다고 애들한테 무시 받는 게 더 싫으니까."
혜진의 확답을 받은 도훈은 상세한 설명을 이어갔다.
"그니까 존나는 사실 좆나를 바꿔 말한 건데 여기서 좆은 남자의 성기를 뜻해"
"···네?"
성기라는 말에 혜진이 커다란 눈을 깜빡였다.
대낮에, 그것도 학교에서 그런 말을 들을 줄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으, 음 그, 그렇군요."
도훈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에이, 괜히 설명했네. 나만 이상한 사람 된 것 같아. 너가 알려달래서 말한 건데."
도훈이 토라진 표정을 짓자 혜진이 미안해하며 도훈에게 사과했다.
"아, 아니에요. 죄송해요. 제가 그런데 둔해가지고···. 계속 설명해 주세요."
"그러니까 좆나의 어원은 원래 ‘좆나오게’야. 다시 말해 ‘발기할 정도로’라는 말이지. 이게 ‘좆나게’에서 다시 ‘좆나’로 줄고, 앞글자가 자음 동화되서 ‘존나’로 변형된 거야."
"아···."
도훈의 백과 사전급 설명에 혜진은 어안이 벙벙하면서도, 학생들이 말한 존예의 의미를 유추하기 시작했다.
"저, 그, 그러니까 존예라는 것은···."
"그렇지 존나 예쁘다는 뜻이니까, 음 번역하면 발기될 만큼 예쁘다는?"
"헉! 저, 절 보고요?"
혜진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벌린 입을 손바닥으로 틀어막았다. 도훈은 그녀의 반응이 재밌어 계속 자극했다.
"음, 아무래도 남학생들이니 그럴 수도 있겠지."
"정말요? 이제 중학생밖에 안 됐는데도요?"
"당연하지. 중학생이면··· 어우, 한 참 열심히 칠 나이네."
"치다뇨? 뭘요?"
"그러니까··· 아 좀 쑥스러운데 이런 얘기까지 해야 하나?"
"괜찮아요. 설명해 주세요."
"그니까 딸딸이를···."
"딸딸이요?"
"자위행위 말야."
"아···."
혜진은 계속되는 도훈의 자극적인 단어에 심장이 벌렁거렸다.
만난 지 이틀 만에 나누기엔 너무도 외설적인 대화였다.
‘이, 이런 얘길 남자랑 하다니··· 너무 민망하고 창피해. 도훈 오빠는 아무렇지도 않은 걸까? 내가 여자로 안 보이나?’
자기비하가 버릇인 혜진은 도훈의 아무렇지 않은 태도에 내심 자존심이 상했다. 자신을 여자로 본다면 저런 이야기를 쉽게 할 수 없을 거란 생각이었다.
‘내가 가슴도 작고 안 이쁘니까 너무 편하게 생각하는 걸 거야. 조금은 속상한데···.’
"원래 남자들은 중학생쯤 되면 거진 다 쳐. 여자들 보단 좀 빠를 걸?"
"네, 네?"
거듭되는 도훈의 말에 혜진은 더욱 난처해졌다.
우연히 학년 연구실에는 둘밖에 없는 상황.
남녀가 단둘만 있는 자리서 음담패설을 하는 것이 익숙치 않았던 혜진은 당황한 나머지 헛소리를 내뱉고 말았다.
"저, 전 자위 안 했는데요?"
"응?"
"아, 아 그러니까··· 그런 거 벼, 별로 안 좋아···."
"그게 아니고 나는 남자가 여자보다 성에 일찍 눈을 뜬다는 말이었어."
"네, 그, 그렇군요."
"여튼, 그러니까 너무 기분 나빠하지는 마. 담임 선생님보다 훨씬 젊고 예쁜 여자 교생 선생님이 오니까 남자애들이 흥분해서 그런 걸꺼야. 말만 저리지 아직은 애들이지 뭐."
"네···."
헛소리를 한 혜진이 얼굴이 뻘게져 고개를 푹 숙였다. 정작 도훈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자신만 이상한 여자가 된 느낌이었다.
‘내가 어쩌자고 이상한 소릴 해버린 거지? 아··· 어디 쥐구멍에라도 숨었으면 좋겠네.’
그때 도훈이 지나가는 말로 혜진에게 다시 물었다.
"너 근데 정말이야?"
"···네?"
"진짜로 한 번도 자위 안 해봤어?"
대화가 점점 야릇해졌다.
< 468. 교생 실습-1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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