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2. 교생 실습-6- >
"커피 배달 왔습니당!"
현아는 어딘지 들뜬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마음에 드는 남자 교생이 예의까지 바른 것이 마음에 쏙 들었기 때문이었다.
‘후후. 애가 얼굴만 잘생긴 게 아니라 착하기까지 하네? 역시 키워서 잡아먹는 게 최고란 말씀이야.’
하지만 그녀가 호의적으로 평가한 도훈은 쟁반에 커피를 받쳐 든 현아를 보고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오봉인가?’
[···네?]
‘아니, 다방 레지 같은 말투라서.’
[주인님, 아무리 그래도 현직 교사보고 오봉이 뭡니까 오봉이?]
‘왜? 어렸을 때 잠깐 알바 했을지도 모르지.’
[나, 원 참.]
‘근데 학교 선생하고 관련된 미션 같은 건 없어?’
[미션의 발생 조건에 대해선 아는 바가 없습니다. 저는 도우미일 뿐 치트키는 아니니까요.]
‘그럼 업적은?’
도훈은 최근 일본을 들러 2개의 위업을 달성하고 왔다.
‘포르노 스타와 한판’과 ‘오늘부터 구멍 동서’ 위업이었다.
본래 국내에서 이루기 힘든 포르노 스타 업적을 이루기 위해 갔다가, 우연히 구멍 동서 업적까지 얻어 걸렸다.
이제 중수까지 남은 업적은 모두 넷.
멀어만 보이던 중수가 손으로 헤아릴 만큼 근접해 있었다.
[업적요? 으흠, 특정 직업과 관련된 업적이 존재하긴 합니다. 하지만 한가지가 아니고 모두 다섯 가지 직종을 공략해야 합니다.]
‘다섯 가지나? 그게 뭔데? 그중 혹시 교사도 포함되어 있어?’
[애석하게도 아닙니다. 그리고 교사라면 일전 송지희양에게 복수한다고 이미 달성하셨지 않습니까?]
‘아, 그랬지? 지희도 교사였지.’
[아무튼 교사나 간호사처럼 종사자가 많은 직종들은 해당 업적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업적이 포함된 것들은 대부분 특이한 직업들이거든요.]
‘궁금한데? 말해봐.’
[왁싱 전문가, 여경, 여의사, 치어리더 마지막으로 아이돌입니다.]
‘엥? 무슨 직업들이 연관성이라곤 하나도 없냐?’
[각각 전문 분야에 종사하는 여성들을 공략하는 위업이거든요. 위업 명은 ‘특수직종이 더 맛있어.’입니다.]
‘특수부위도 아니고 특수 직종이라니···.’
[위에 해당하는 직업을 가진 여성들을 순서에 상관없이 모두 공략해 낼 경우 달성이 가능합니다.]
‘하나같이 만만치 않은 직종이군.’
여경이나 여의사는 공략이 쉬운 대상은 아니지만 만나려면 얼마든지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치어리더나 아이돌은 연이 닿지 않은 이상 만나기 조차 어려운 희소한 직종임이 확실했다.
‘그나마 제일 빠르게 달성할 수 있는 것이 왁싱 전문가인가?’
[앞에 있는 것일수록 난이도가 낮게 잡혀 있긴 하죠.]
‘흐흐 알았어. 어쨌든 특수 부위, 아니 특수 직종 업적이 있긴 하다는 소리구나. 기억해 놨다가 시도해 봐야지.’
"도훈 선생님은 생각보다 말 수가 없는 편이네?"
"···네?"
정신을 딴 데 팔고 있던 도훈은 담임 선생인 현아의 질문에 당황하며 아무말이나 둘러댔다.
"제가 좀 낯가림이 심해가지고요."
"호호. 정말? 사람 잘 사귀고 그럴 것 같았는데 의외네? 설마 여자친구도 아직 없는 거?"
‘응? 왠 뜬금없는 질문이람?’
도훈이 의아한 표정을 짓자 현아가 둘러대듯 말했다.
"아니. 낯가림이 심하다길레···."
‘초면에 낯가림 심한거랑 여자친구랑 무슨 상관이야?’
도훈이 고개를 갸우뚱 하는데 옆에 있던 혜진마저 귀를 쫑긋 세우고 몸을 기울였다. 도훈은 곧바로 두 사람이 자신에게 호감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하-. 미남이라 피곤하구만 이거. 은근슬쩍 호구조사 들어가기는.’
이정우 시절엔 상상도 못하던 일이었지만, 도훈으로 다시 태어난 이후론 비교적 익숙한 일이기도 했다.
남자가 많은 집단이라면 도훈만큼 키가 크고 잘생긴 사람이 없지 않았겠지만, 여초 집단인 교직사회의 특성상 도훈은 단연 군계일학이었다.
두 사람은 노골적일 정도로 도훈의 입술을 주시했다.
도훈은 두 사람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단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아직은···."
"어머, 진짜? 어디, 손 줘봐."
"손이요?"
"책상에 올려봐."
도훈은 영문을 모르지만 현아가 시키는 데로 책상위에 손바닥을 올렸다. 현아는 도훈의 약지 손가락 부근을 꼼꼼히 살피며 은근슬쩍 손을 매만졌다.
"정말이구나? 반지자국 있는지 살펴보려고 했어. 호호. 요샌 애인 있어도 없는 척 하는 애들이 많다길레."
"아니에요."
도훈은 대놓고 호감을 드러내는 현아의 행동에 속으로 피식 웃었다.
‘웃기네 저 여자. 은근슬쩍 총각 손 한 번 만지려고.’
[주인님께 관심이 많아 보이는데요?]
‘그러게. 처음부터 끼가 보이긴 했는데 너무 노골적인데? 어디 속마음을 읽어볼까?’
도훈은 마음의 소리를 켜 현아의 머릿속을 들여다 보았다.
{어머어머, 손 만졌다고 부끄러워하는 거 봐. 생긴건 아주 상남자 같이 생겨서는 부끄럼이 되게 많구나? 키워서 잡아먹는 맛이 있겠는 걸? 히히.}
‘키, 키잡?’
도훈은 하마터면 마시던 커피를 뿜을 뻔 했다.
[키잡이라는 것이 뭐지요?]
‘키워서 잡아먹는다는 비속어야. 보통은 나이많은 남자가 어린 여자애들 한테 주로 써먹는 말인데···.’
[세상에, 다른 사람도 아니고 주인님을 키잡한다고요? 주인님이 어떤 분인지 전혀 모르나 보군요.]
‘그러게. 내가 따먹고 다니면 다녔지, 누구한테 잡아 먹힐 사람은 절대 아닌데···. 오호라, 내가 어리버리하게 행동해서 나를 순진하게 본 모양이군.’
[후후-. 주인님이 힘을 숨기고 있는 걸 전혀 모르네요.]
{아, 근데 첫날부터 너무 들이대면 부담 느낄지도 몰라. 풍요속 빈곤이라고 오히려 이렇게 말짱하게 생긴 애들이 의외로 동정인 경우가 많거든. 천천히 다가가야지.}
도훈은 현아의 착각을 실시간으로 듣고 있자니 실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근거도 없이 확신에 가까운 결론을 내리는 현아를 보고 있으니 퍽 우습다는 생각도 들었다.
‘재밌는 선생이군. 교생인 나를 공략할 생각을 하다니···. 이걸 어떻게 한다?’
[미션도 위업도 없는 상대에게 굳이 힘을 뺄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렇긴 한데 실습 점수의 상당부분을 저 정현아라는 담임이 주게 되어 있거든. 한마디로 이번 이주간의 내신이 걸려있달까?’
[아···. 그랬죠?]
‘일단 착각은 자유니까 그냥 냅둬야겠다. 하는 짓이 웃겨서 보는 재미가 있네.’
[그건 알아서 하십시오.]
{맞아. 오늘은 이쯤해야 겠어. 여자가 너무 들이대면 매력이 없다고 여길수도 있으니까.}
생각을 고쳐먹은 현아는 갑자기 자세를 바로 잡더니 진지한 태도로 말했다.
"아, 그리고 혹시 착각할 까봐 말해주는데 내가 교생 선생님들에게 친절한 것은 오늘 뿐이야."
"네?"
"공은 공이고 사는 사니까. 실습 들어가면 누구보다 혹독하게 가르칠 거야. 각오 단단히 하도록."
"네, 넵!"
겁많은 혜진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도훈 선생님도··· 알겠죠? 학교 선배라고 너무 편하게 생각하면 곤란해요."
"네. 명심하겠습니다."
"참, 근데 두 사람 다 번호 좀 알려줘봐. 혹시나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해야 하니까."
현아가 폰을 잠금해제 하더니 도훈에게 건넸다.
그러다 화들짝 놀라며 소리쳤다.
"앗, 바탕화면 보면 안 돼!"
"네?"
도훈이 무심결에 바탕화면을 보자 선글라스를 쓴 늘씬한 아가씨 한명이 해변가에서 포즈를 잡고 있는 사진이 있었다.
현아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아이참···. 작년 여름에 찍은 수영복 사진이 있는 걸 깜빡해버려서···."
도훈은 난처한 표정을 짓는 현아를 보며 속으로 콧방귀를 꼈다.
‘연기 더럽게 못하네. 메소드 담배라도 입에 물려 주고 싶을 정도야.’
[그러게 말입니다. 발연기란 저런 것이군요.]
‘제 비키니 사진 보면서 몸매 좀 감상해 주세요! 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지.’
[그래도 나름 푼수같은 매력이 있는데요? 갑자기 각 잡고 진지한 척 할 때 귀엽지 않았습니까?]
‘뭐···. 나름 재밌는 성격이긴 하네. 날 동정으로 착각하는 것도 웃기고. 완전 지 편의대로 생각하잖아?’
도훈이 번호를 적어 넘기자 이번엔 혜진의 차례였다.
혜진은 바탕화면의 사진을 보더니 현아를 향해 감탄사를 연발했다.
"와! 선생님 몸매 정말 좋으세요!"
"아···. 자랑하려고 한 건 아닌데. 암튼 고마워."
"저, 전··· 이런 수영복은 한 번도 못 입어 봐서."
혜진이 또 특유의 자조적인 목소리로 고개를 떨구자 보고 있던 현아가 민망해 하며 위로했다.
"에이, 그냥 아무나 입는 거지. 나도 이거 입으려고 다이어트 엄청···."
현아는 말을 하다 말고 도훈을 쳐다보더니 남자가 있는데서 말하긴 민망한 내용이라고 생각했던지 헛기침을 하면서 둘러댔다.
"암튼, 혜진 선생님도 올 여름엔 도전해봐."
"···아니에요. 전 그냥 해수욕장엔 안 가려고요."
‘하-. 빈유에 대한 콤플렉스가 생각보다 엄청 심하구나.’
[그러게요. 언제쯤 혜진양은 자존감을 되찾을 수 있을까요?]
‘열심히 정액좀 발라주다 보면?’
[주인님이 더욱 분발하셔야 겠습니다.]
번호를 모두 교환한 현아는 두 사람에게 내일 수업 참관의 방법과 학교 생활의 이모저모등 여러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원래 교생들 아침에 오면 교장실에 인사부터 하러 가야 할 거야. 근데 굳이 가지마. 어차피 사람이 많아서 누가 온지 안 온지도 모를 테니까."
"저, 정말 그래도 돼요?"
"그렇다니까? 근데 복장은 좀 신경써야 해."
"복장요?"
"응. 교장 선생님은 다른 건 많이 안보는 데 복장이 불량하면 엄청 잔소리 심하거든. 나도 예전에 짧은 치마 입고 왔다가 엄청 혼났잖아."
"치마 길이가 어느 정돈데요?"
혜진이 무심결에 묻자 현아가 기다렸다는 듯 도훈쪽으로 한쪽다리를 내밀더니 입고 있던 치마 끝단을 접어 올렸다.
"대충 이 정도?"
매끈한 허벅지가 드러나자 도훈이 시선이 반사적으로 쏠렸다. 그의 시선을 느낀 현아는 도발하듯 치맛자락을 한 단 더 끌어 올렸다.
"아니, 이 정도였던가?"
무릎 위로 15Cm넘게 올라간 치마는, 현아의 하얀 허벅지살 고스란히 드러냈다. 도훈은 침을 꿀꺽 삼키며 겉으로는 민망한 듯 고개를 돌렸다.
‘크흡. 이 여자가 정말 가지가지 하는구나. 몸매 좀 좋다고 엄청 과시하는데?’
[그러게요. 아까 그 교생 대표랑 비교하면 어떤가요?]
‘누구? 아 수학과 걔? 걔가 가슴은 좀 더 큰데 현아 샘이 키가 커서 그런지 전체적으로 늘씬해 보이네.’
[혹시 음심이 동하신거 아닌가요?]
‘아니. 아직은. 그리고 미션 대상도 함께 있는 자리에서 다른 여자에게 혹한 모습을 보일 순 없거든. 호감도 관리해야지.’
[역시 철두철미 하십니다. 주인님.]
"암튼 이쯤 됐던 것 같아. 교장 선생님이 보고선 당장 옷 갈아 입으라고 버럭버럭 성을 내는데···."
"그래서 갈아입으셨어요?"
"응. 그날이 직원 체육이 있어서 체육복을 차에 챙겨왔었거든. 아, 그리고 확실히 남중애들이라 그런지 치마 짧게 입으면 좀 쳐다보긴 하더라."
"중학생들이요?"
"중학생이면 반 쯤 성인이잖아. 키는 벌써 다 컸고."
"아···."
"도훈이도 어려서부터 크지 않았어?"
어느새 말을 편하게 놓은 현아의 질문에 도훈이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음··· 네, 뭐··· 컸던 것도 같고."
"그치? 하여간 요새 애들은 정말 빨라. 도훈이 보담 혜진이 네가 복장을 좀 신경써야 할 꺼야. 가슴 파인 드레스는 입지 말고."
"···그, 그런 옷은 어차피 없는걸요."
혜진의 대답에 다시 분위기가 침울해졌다. 그녀가 가진 특유의 자기비하는 옆에 있는 사람까지도 민망하게 하는 기운이 있었다.
"그, 그래. 여튼 오늘은 시간 늦었으니 여기까지만 하자. 혹시 교직에 대해 궁금하게 있으면 언제든 물어봐도 돼. 퇴근 이후에 전화해도 되고."
현아는 "전화해도 되고."라고 말할 때 일부러 도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마치 "넌 꼭 사적으로 통화하자"라는 선언처럼 들렸다.
‘크. 아주 잡아 먹으려고 작정했구나. 내가 비록 혜진이 앞이라 조심스럽지만 나중에 누가 더 상위 포식자인지 나중에 알게 해주지.’
"오늘 좋은 말씀 감사했습니다. 그럼 저흰 이만 가볼게요."
"그래. 내일 보자."
현아와 헤어진 두 사람은 학교를 나와 걸었다.
연인이라기엔 멀고, 남보다는 가까운 애매한 거리였다.
"오빤 뭐 타고 가세요? 전 6호선 타러 가야 하는데···."
"응. 난 잠깐 들를데가 있어서."
"아, 그러시구나. 그럼 내일 뵈요."
"그래. 혜진아."
혜진이 90도로 허릴 굽혀 공손히 인사를 마치더니 후다닥 지하철로 뛰어갔다. 도훈은 그녀의 뒷 모습을 보며 혀를 끌끌 찼다.
‘쯧쯧. 쟤 자존감 올리기가 만만치 않겠어.’
[혜진양이요?]
‘응. 아까 봤지? 수영복 얘기 나오니까 고개 팍 숙이는 거. 내가 볼 땐 혜진이가 가장 열등감이 심한 신체 부위가 가슴인 것 같아.’
[주인님도 당장 빈유라면 질색하지 않습니까?]
‘아냐. 빅 걸 보고 생각했어. 뚱뚱한 것 보담 차라리 마른게 낫겠더라고.’
[후후. 역시 취향은 변하기 나름이군요. 근데 어딜 가시려고요?]
‘누굴 좀 만날 사람이 있어서.’
[네?]
‘정음이한테 연락왔더라고. 잠깐 얼굴 좀 볼 수 있냐고.’
[육정음 양이요?]
도훈은 깨톡창에 뜬 정음의 메시지를 유심히 살폈다.
-정음 : 오빠, 혹시 오후에 잠시 시간 되세요?
흐음, 정음이가 무슨 일이려나?
도훈은 오랜만에 본처를 만난다는 생각에 가슴이 뛰었다.
< 462. 교생 실습-6- > 끝
ⓒ 성난불기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