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7, 도쿄 핫(TOKYO-HOT)-31- >
도저히 믿기지 않는 상황에 감독이 재차 물었다.
"이거 누가 손댔어? 장난친 거 아니지?"
"시나리오는 스바루 선생님께서 직접 다듬었다고 들었습니다."
"···스바루 센세가?"
미야모토 스바루.
굵직한 시리즈를 엮어낸 최상급 시나리오 작가.
상급생부터, 오오무라 병원 사람들, 지금은 전설로 남은 ‘자쿠’연작까지. 엄청난 변태력과 꼴림성 있는 전개로 업계의 거장이다.
5년 전까지 현역으로 활동하다 지병이 심해지면서 일선에서 물러났다고 들었는데, 그가 다시 팬 대를 잡았다는 소리에 감독은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확실합니다. 배달 온 우편물 소인에 스바루 센세의 성함과 주소가 적혀 있었거든요."
구세대 작가인 스바루는 컴퓨터를 전혀 다룰 줄 몰랐다. 때문에 그는 육필로 원고를 작성했는데, 그가 직접 원고를 쓰면 보조작가들이 다시 다듬는 이중작업을 거치곤 했다.
감독은 삭선된 부분과 첨가된 부분을 꼼꼼히 살피며 원고에 적힌 필체를 확인했다. 분명 젊은 시절 우연히 보았던 스바루의 글씨였다.
"와···정말인데? 스바루 선생님이 직접 개작을 하다니···."
정말이지 놀라운 일이었다.
3류 작가들만 즐비한 야동 판에, 최고의 스토리 텔러로 손꼽히던 스바루가 오랜만에 펜을 꺼내 든 것이다.
도대체 왜?
‘은퇴한 양반이 무슨 바람이 불었을까? 아, 그렇지. 스바루 센세가 미키 대표랑 막역한 사이였지?’
현역 시절의 안도 미키는 스바루가 무척이나 아끼던 여배우였다.
그의 작품을 소화하려면 외모만 가지곤 어림없었다. 작품 전체에 흐르는 특유의 감정선을 짚어낼 연기력이 필수였다. 하지만 대부분의 AV스타는 타고난 몸뚱이로 승부했던 탓에 업계의 거장을 만족시키기란 여간 까다로운 일이었다.
‘···맞아. 우리 회사에서 스바루 센세에게 시나리오 각색을 청탁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미키 대표뿐이야. 스바루 센세는 오랫동안 미키 대표를 끔찍히 아꼈으니까. 대표님 정도되는 사람의 부탁이 아니고서야 요양중인 와중에 굳이 남의 시나리오를 고치는 수고로움을 감당했을 리 없지.’
그렇다 해도 한 가지 의문이 더 남았다.
‘한데 무슨 이유로 배역까지 모두 바꿔버린 걸까? 아버지 역에 가토, 어머니 역에 미키라니···. 이건 정말 역대급 라인업이잖아?’
현역 남자 배우 중 최고의 몸값을 자랑하는 가토.
은퇴 후 프로덕션 대표로 완벽히 자리잡은 미키.
높은 개런티를 자랑하는 가토가 단순한 엑스트라로 나온다는 사실도 충격이었지만, 현역 배우를 접은 지 어언 10년이 넘어가는 미키의 복귀작이 ‘한국 대물남의 일본 정벌기’ 시리즈라는 것은 더더욱 믿기 힘든 일이었다.
아무리 세월이 흘렀다 한들, 그녀는 시대를 풍미했던 희대의 AV스타.
지금도 매니아들 사이에선, 그녀가 출연했던 비디오 테잎이 높은 가격대에 거래되고 있었다. 몇 번을 고쳐 생각해도, 네임벨류에 걸맞지 않는 배역이다. 비유하자면, 한 때 은퇴한 마이클 조던이 복귀 무대로 KBL을 선택한 꼴이다. 그것도, 후보로.
충격을 먹은 감독은 편집을 중단한 채 시나리오를 꼼꼼히 훑어보기로 했다. 어쩌면 하숙집 시리즈의 최종편은 자신이 기대 이상으로 대단한 역작이 탄생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이건 정말이지, 메가폰을 잡는 것만으로도 가문의 영광이겠군.’
***
"오늘도 고생하셨습니다, 도훈 상. 어느덧 내일이 마지막 촬영일정이군요."
샤워를 마치고 대기실에서 휴식을 취하는데 오카모토가 음료를 건네며 다가왔다.
"벌써 그렇게 됐나요?"
"그러니까요. 고작 일주일도 안 되는 여정에 3일을 내리 촬영이라니···. 이것 참 강행군이 아닐 수 없군요."
"어쩔 수 없죠. 어쨌든 시간 안에 계약된 편 수는 마치고 돌아가야 하니까."
"참, 마지막 시나리오의 최종 편집본이 막 도착했습니다. 지금 한국어로 번역 중인데 나중에 숙소에서 확인해 보시겠습니까?"
"수정요?"
"네. 아마 처음 받았던 원본하고 많이 달라졌을 겁니다. 대사가 많으니 미리 숙지하고 오시라는 대표님 당부가 있었습니다."
그때 대기실 문이 열리더니 여자 스텝 하나가 갈색의 서류봉투 하나를 오카모토에게 건넸다. 오카모토가 말한 최종 편집본으로 보였다. 여자 스텝이 숨을 헐떡거리며 말했다.
"헉헉, 최대한 빨리 끝냈어요."
"수고 많았어."
봉투를 인계받은 오카모토가 대본이 담긴 서류를 내게 건넸다.
"이것입니다."
보기보다 더 묵직했다. 봉투를 열어보니 일전에 받았던 시나리오보다 두 배는 두꺼워 보였다. 꺼내 스르륵 페이지를 넘기는 데 원본보다 지문이나 대사량이 압도적으로 늘어 있었다.
"어? 왜 이렇게 분량이 많아졌죠?"
"씬보다 내용에 초점을 두고 있어서 그럴 겁니다. 물론 씬 또한 이전 편보다 훨씬 늘었을 거고요."
"그래요?"
방금 촬영을 끝마친 두 번째 편 만 해도 총 3번의 씬이 있었다.
1층 침대의 시즈카와 한 판, 2층 침대의 리카와 또 한 판.
그리고 둘이 한데 모은 자매 덮밥 스리썸까지.
하지만 마지막 편이 그보다 많다니, 대체 몇 탕을 뛰어야 한다는 소릴까?
"도훈 군의 체력을 안배해 촬영 기간을 이틀로 늘리는 방안도 고려 중입니다. 원래 씬이 많은 2시간짜리 촬영분은 몇일에 걸쳐 찍기도 하거든요."
"괜찮습니다."
"네?"
"할 수 있다면 하루 만에 끝내고 싶어서요."
"하, 하지만 촬영 분량이···."
"뭐, 어쨌든 무리하면 하루 동안 끝낼 수 있는 내용이라는 거잖아요."
"그, 그렇긴 합니다만."
"그럼 해 볼게요."
오카모토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틀 연짱으로 물을 뽑아낸 내가, 마지막 촬영까지 원 테이크로 강행하겠다고 하자 기가 막히다는 표정이다.
하지만 그가 모르는 것이 있었으니, 나의 정력을 쓰면 쓸쓰록 강해진다. 그리고 음기가 강한 여자들과 붙을수록, 더욱 많은 양기를 충천할 수 있다.
오늘만 해도 시즈카와 리카의 훌륭한 음기를 빼앗아 정력을 충분히 채운 상태였다. 나에게 있어 오래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튼, 오늘은 푹 쉬시는 게 좋겠습니다. 내일은 고된 촬영이 될 테니까요."
"알겠습니다."
대본을 들고 숙소로 털레털레 돌아오는 데 호텔 로비에서 선글라스를 쓴 여자가 다가왔다.
"hi."
벙거지를 깊게 눌러 쓴 여자는 딱 봐도 수상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나는 경계하는 태도로 되물었다.
"누구세요?"
여자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커다란 선글라스의 콧대를 잡아 슬쩍 내렸다.
"···마이 씨?"
"쉿-. 이름 말하지 마요. 겨우 변장하고 나온 거니까."
이게 변장이라고?
바바리 코트에 깊숙한 눌러 쓴 벙거지, 거기에 얼굴의 반을 가리는 선글라스라니···.
나 수상한 사람이요, 광고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잖아?
"근데 여긴 어떻게···."
"가네다 상에게 물었어요."
"가네다요? 아아."
일본에 도착했을 때 공항으로 마중 나왔던 직원이 가네다였다. 그가 숙소를 알려줬다고?
"가네다 상이 제 팬이거든요. 히히."
마이는 무척 들뜬 표정이었다. 그녀는 불쑥 팔짱을 끼며 나를 엘리베이터로 이끌었다.
"가요."
"어딜요?"
"어디긴요, 방으로 가자고요. 우리 들키면 큰일 나는 거 알죠?"
강제로 잡아끄는 바람에 마이의 큼지막한 가슴이 팔뚝에 짓눌리며 뭉클한 촉감이 느껴졌다. 아무리 봐도 이 여자, 노브라인 것 같다. 코트 옷깃 사이로 보이는 목 아래가 너무나 휑했다.
막무가내로 엘리베이터에 오른 뒤 나는 내 룸이 있는 층의 버튼을 눌렀다. 마이가 말했다.
"휴-. 떨려 죽는 줄 알았어요. 들킬까 봐."
"걸리면 큰일 날 짓을 왜 해요?"
"스릴 있잖아요."
마이가 씨익 웃었다.
왠지 지금 상황을 즐기기라도 하는 표정이었다.
룸에 들어가려는데 마이가 문고리의 팻말을 "Do not Disturb"로 돌려놓았다. 누구에게도 방해받고 싶지 않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흠, 엄청 몰린 듯한 표정인데?’
[그러게 말입니다. 조급한 마음이 여기까지 전해지는군요. 주인님이 엄청 고팠나 봅니다.]
‘거참, 사내연애는 금지라고 했는데···. 준다는 여잘 마다하기도 그렇고···.’
[근데, 내일 중요한 일정이 있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오늘도 3번이나 무리를 하셨는데···.]
‘3번이나 4번이나 그게 그거지. 그리고 채음보양술 덕에 정력을 많이 돌려받아서 아직 말짱해.’
방으로 들어온 마이는 그제야 겨우 안심이 되었는지 휴- 하는 한숨과 함께 선글라스를 벗어 테이블에 올렸다. 얼굴이 드러난 그녀는 화장이 다소 짙은 도회적인 이미지였다.
"어쨌든, 다시 만났네요. 도훈 사마?"
"네."
나는 태연한 표정으로 냉장고를 열었다.
"음료라도 한 잔 드릴까요?"
"전 맥주로."
"맥주요?"
"네."
맥주로 유명한 일본답게 냉장고 진열 칸에는 여러 종류의 맥주들이 줄줄이 놓여 있었다. 나는 가장 앞에 있는 맥주 두 캔을 꺼내 그녀가 앉은 테이블 맞은편에 앉았다.
맥주캔을 까 건네자 마이가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일본말로 화답했다.
"아리가또."
"근데 어쩐 일이세요?"
나는 그녀의 목적을 이미 알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물었다. 차가운 맥주를 한 모금 들이킨 마이는 "크아!" 하는 기성을 토하더니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남자 혼자 자는 방에 여자가 쳐들어왔으면 목적은 뻔한 거 아니에요?"
‘어쭈. 완전 노골적인데?’
맥주가 그녀에게 용기를 주었을까? 다시 한 모금을 더 들이킨 마이가 연이어 말했다.
"어제 사장님 때문에 못다 말했는데, 나 도훈씨랑 한 번 자보고 싶어요."
"저랑요?"
"네. 그래서 오늘 촬영도 없는데 몰래 나왔잖아요. 다른 사람들은 제가 고향에 내려간 줄 알아요."
"흐음."
"도훈씨는 나 별로에요?"
별로일 리가.
마이는 객관적으로 상당히 예쁜 축에 속했다.
살짝 덧니가 난 얼굴은 깜찍했고, 몸매는 말할 것도 없이 훌륭했다. 특히 고래처럼 뿜어대는 분수는, 여느 여자에게 찾아보기 힘든 특별한 매력이었다.
"아니 뭐···, 꼭 그렇다기보다는 미키 대표님이 께서···."
"사내 연애요? 저 도훈씨랑 연애하자는 거 아닌데?"
"그럼···."
"진짜로 자보고 싶다고요. 음, 이해가 될지 모르겠네요. 우리 쪽 일하는 사람들은 솔직히 기계적인 섹스를 해요. 상대가 못생겼든, 잘생겼든. 고추가 작든 크든. 테크닉이 좋든 후지든. 그냥 배역에 몰입하면서 감정 없는 섹스를 한단 말이죠."
"네."
"뭐 그런 것에는 불만 없어요. 남자 배우들도 하기 싫은 섹스를 억지로 하는 경우도 있을 테니까."
갑자기 빅걸의 무시무시한 몸이 떠올랐다.
쉣-. 아이템이 아니었다면 진짜 면상에 토해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렇겠죠."
"근데 어젠 정말··· 촬영 중인데 엄청 느꼈어요. 저 쌀 때 못보셨어요?"
"그야 마이씨가 다른 사람하곤 다르게 좀 유별난 체질이시다 보니···."
"아니에요. 물론 저도 제가 물이 유난히 많은 편인 건 알아요. 데뷔하기 전에 사귀었던 남친들이 허구헌날 놀렸거든요. 너랑 하면 시트가 다 젖어서 큰일이라면서···. 암튼 근데 어젠 정말 달랐어요. 특히 사사키씨랑 비교하니까 더더욱요."
"사사키씨도 상당하던데요?"
"맞아요. 저도 소문만 들었지 직접 겪어 보는 건 처음이었거든요. 확실히 실력은 있더라고요. 감도 뛰어난 것 같고. 근데."
말을 많이 한 마이는 목이 타는지 맥주를 다시 한 모금 들이켰다.
"근데 도훈씨는 아예 클라스가 달랐어요. 이제껏 분수쇼를 여러번 찍긴 했지만 그런 움직임은 처음봤어요. 대체 어떻게 한 거에요?"
초능력이지롱.
···하고 말할 순 없었다.
"그냥 어쩌다 보니···."
"어쩌다 보니 손기술을 익혔다고요? 에이, 거짓말. 제가 남자보는 눈이 좀 있는 편이거든요. 제가 볼 땐 도훈씨는 완전 꾼이에요 꾼."
"타고난 섹서라구요."
풉-.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려는 걸 꾹 참았다.
빠르게 맥주를 섭취한 마이는 어느새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녀는 슬쩍 땀이 나는지, 일어서더니 코트를 벗었다.
"옷 좀 벗어도 돼죠?"
"물론."
마이가 똑바로 서서 코트 단추를 하나씩 끄르는데 뭔가 이상했다. 좌우로 벌어지는 코트 깃 사이로, 맨살이 드러났던 것이다.
"어어?"
마이가 놀라는 나를 보며 웃었다.
"코트 입기엔 조금 덥더라구요. 안에는 아무것도 안 입었어요."
알고 보니 그녀는 노브라에 노팬티 차림으로 코트를 걸칠 것이었다. 아, 가터벨트는 하긴 했구나? 오히려 올 누드보다 노팬티 위에 가터를 걸친 모습이 더욱 섹시했다.
보란 듯이 알몸이 된 그녀는 나를 향해 교태로운 몸짓을 취했다.
"어때요? 저 맛보고 싶지 않아요?"
[크흠, 대단히 에로한 여성이네요. 아주 작정을 하고 나왔군요.]
‘그러게. 무슨 바바리 변태도 아니고.’
대물은 그녀가 코트를 모두 벗기도 전에 이미 바짝 꼴린 상태였다. 쓰리썸까지 하고 온 마당에 풀 발기가 이루어진 건, 아무대로 상황맥락적인 요소 때문일 것이다.
시즈카와 리카의 본심이 무엇이건 간에, 그녀들은 나와 섹스를 했을 것이다. 그것이 AV배우의 업이기 때문에.
하지만 친분 있는 직원에게 정보를 캐 남몰래 숙소까지 찾아온 마이의 경우는 전혀 달랐다. 그녀는 진심으로 나와 자고 싶어했다. 나의 손기술에 매료되어, 대물을 한 번만 품고 싶어했다.
언제나 강조하는 말이지만, 준다고 할 때 먹어야 한다.
줘도 못 먹으면 병신일 뿐이다.
< 447, 도쿄 핫(TOKYO-HOT)-31- > 끝
ⓒ 성난불기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