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6. 도쿄 핫(TOKYO-HOT)-30- >
"여어, 요새 자주 보네 누님?"
미키는 가토 특유의 건들거리는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긴 애초 AV만 십수년 찍어온 사내에게 교양 같은 게 있을 리 없었다. 그는 여자를 한낱 도구쯤으로 보는 사내였다. 그리고 그런 저질스러운 생각이 전신에서 뿜어져 나왔다.
‘역겨운 자식.’
"내 회사니까."
미키가 겨우 냉정을 유지하며 말했다.
"아, 그렇지? 누님 회사였지? 하도 들락거려서 가끔 우리 집 안방으로 착각한단 말이야?"
가토는 여전히 빈정거렸다. 시비를 걸러 작정하고 온 사람같았다.
"나한테 용건 있어?"
"이거 왜 이러실까나? 한솥밥 오래 먹은 처지에?"
가토가 자연스레 어깨를 두르려고 팔을 올리자 미키가 얼음장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치워."
미키의 냉랭한 태도에 가토가 머쓱한 듯 들어올린 손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거참, 사람 정 없네."
"가토. 똑바로 들어. 여긴 회사고, 난 이 회사 대표야. 좀 더 예의를 차려보는 게 어때?"
어젯밤 결심을 마친 뒤로 미키는 평소보다 세게 나갔다.
쳐내기로 마음먹은 마당에, 더 이상의 관용은 사치였다.
가토 역시 급변한 미키의 태도를 보고 뭔가를 느꼈는지 알 듯 말 듯 고개를 끄덕였다.
"흐응, 그렇고만. 이제 사냥이 끝났다 이거지?"
"뭐?"
"토사구팽이라는 말이 있지. 토끼몰이가 끝나면 사냥개를 잡는다고. 변변찮은 회사 이 만큼이나 키워주니까, 이젠 내가 필요 없다 이거잖아?"
"입 조심해, 가토."
"아니네. 그게 아니구나. 새로운 사냥개를 들인거구만? 한국산 똥개 말이야. 하하핫!"
마침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가토와 감정 낭비를 하기 싫었던 미키는 잽싸게 엘리베이터에 올라 그를 피하려 했다. 하지만 가토가 엘리베이터 문 사이에 발을 끼워 넣으며 비집고 들어왔다.
"어어, 얘기하다 말고 어딜 가?"
"난 너랑 할 얘기 없어."
"아니. 내가 할 말이 있다고. 당신한테."
당신?
미키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이쯤 되면 하극상이다.
"뭐? 뭐라고? 다시 말해봐."
"왜? 그럼 당신이지 여보야? 아니, 여보 당신인가? 하핫!"
"너, 너 이이!"
더이상 감정을 주체못한 미키가 부들부들 주먹을 말아 쥐자 가토 역시 장난기를 싹 거둔 얼굴로 말했다.
"여봐, 미키. 어차피 회사 관두고 나가면 남남이야. 내가 언제까지 당신 밑이나 닦고 있을 것 같은데?"
가토가 목소리를 낮게 깔자 미키는 살짝 위협을 느꼈다.
회사 안이라곤 하지만, 둘밖에 없는 엘리베이터다.
어찌 보면 완벽한 밀실이며 사각지대인 셈이다.
"······."
위협을 느낀 미키가 조금 수그러들자, 협박이 먹혔다고 생각한 가토가 계속 말을 이었다.
"하긴 하도 줄줄 흘리고 다니니까 오랫동안 닦을 수밖에. 당신 옛날 작품 보니 아주 분수처럼 뿜어 대더만? 난 무슨 지하수 터진 줄?"
낄낄거리는 가토는 교묘하게 엘리베이터 버튼 쪽을 가리고 있었다. 버튼을 눌러야 다른 층으로 이동을 하든 문을 열든 할 텐데, 이제 누가 문을 열어주기 전까진 속절없이 밀실에 갇힌 꼴이 되고 말았다.
미키가 어떻게든 빠져나갈지 궁리하며 계속 머리를 굴리는 사이 가토는 연신 혼자 떠들었다.
"요새도 잘 젖긴 해? 이제 그때만큼은 힘들지?"
"가토.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 뭐야?"
도저히 방법을 못 찾은 미키는 정면돌파를 결심했다.
분명 가토가 아무 대책 없이 이런 일을 벌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는 보기보다 교활한 데가 있었고, 이제껏 이 판에서 오래 살아남은 내공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말했잖아. 프리선언이야. 아니 그보다는 창업 선언이지. 누님도 해냈는데 내가 못 할 건 뭐야?"
"이제껏 혼자 컸다고 생각해?"
"누님을 내가 키워준 건 확실하지."
"떠날 거면 곱게 가. 난장 피우지 말고."
"아니? 그냥은 못 가지. 벌써 나를 따르기로 한 감독들하고 배우들이 줄 섰어. 그 녀석들 다 데리고 갈거야. 도쿄-핫에 유통책도 진작 뚫어 놨고."
"아주··· 가지가지 했구나. 이 의리없는 자식."
"의리?"
가토의 눈에 불꽃이 튀었다.
그는 미키를 덮칠것처럼 엘리베이터 구석까지 몰아붙였다. 그의 손바닥이 미키의 얼굴을 지나 알류미늄 면을 후려쳤다.
쾅-!!
"의리? 나보고 지금 의리라고 했어?"
"······."
흥분한 가토는 금방이라도 뭔가를 저지를 것 같은 표정이었다. 미키는 더 이상 그를 자극하지 않게 말을 아꼈다.
"하-! 당최 누가 의리 없는 줄 모르겠군. 평생을 회사에 바친 후배 따윈 안중에도 없이 어디 근본도 없는 잡놈을 데려다 꽂은 게 누군데 그래? 그 새끼 좆맛이 그렇게 좋았어?"
"······."
"좆까고 있네. 어차피 떠나는 처지에 확 그냥 따먹어 버릴까 보다, 씨발."
"가토, 진정해."
"진정하게 생겼어? 내가 그렇게 달라고 할 때는 사람 병신취급 하더니만, 만난 지 몇 일 되지도 않는 한국놈한테는 가랑이 쩍쩍 벌리는데?"
"···안 했어."
"뭐?"
"네가 생각하는 그런 사이 아니니까, 오해하지 말라고. 난 소속사 배우랑은 절대 사적인 관계 안 맺으니까."
미키의 말은 진실이었기 때문에 충분한 진정성을 갖고 있었다. 질투심에 눈이 멀었던 가토는 미키의 말에 조금은 기분이 풀어진 듯 위협적으로 뻗었던 손을 거두며 말했다.
"흐음, 했든 안 했든 난 그 새끼 마음에 안 들어. 누님 경영방식도 별로고, 하여간 다 별로야. 이 회사를 떠난다는 생각은 변함없어."
"가토···."
"하지만 지금이라도 나와 관계를 재정립한다면 한 번쯤은 재고해 줄 순 있어. 생각해보라고? 나와 누님이 본격적으로 합치면 얼마나 시너지 효과가 날지."
가토는 불안한 심리를 대변하듯, 짧은 사이에도 오락가락했다. 미키는 문득 가토의 정서가 불안한 지금이야말로 그를 축출해 낼 기회라 생각했다.
‘그래···, 지금이···.’
그녀는 도훈이 오전 야외 촬영을 나간 사이 측근과 시리즈 3부작에 대해 논의를 했다. 배우를 적절히 조정하고 내용을 다듬으면 가토를 끌어들일 수도 있을 거로 생각했다.
‘쇼부다!’
"가토. 네가 왜 그러는 지는 알고 있어."
"누님이 안다고? 내 마음을?"
"그래. 내가 밉겠지. 하지만 난 회사를 더 생각했어. 솔직히 말해서 가토 너도 이제 은퇴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잖아. 아니라곤 말 하지 마. 나 역시 배우 출신이었고, 몸뚱이를 함부로 굴리는 우리네 직업 특성상 오래 버티기 힘들다는 건 충분히 알고 있으니까."
"흐음."
"그래서였어. 네 말대로 가토 넌 우리 회사의 기둥같은 존재야. 하지만 난 네 이후를 대비했어야 했어. 한국인이건 아니 저기 방글라데시인이라도 상관없었어. 실력만 있으면 되는 거니까."
"···어처구니가 없군. 방글라데시라니."
"여하튼 누구든 상관없었다고. 가토 네가 시들고 나면 회사가 힘들어질 게 뻔하니까."
"웃기는 소리! 난 아직 충분히 현역이야. 나랑 잔 여배우가 몇 명인지 알고 하는 소리야?"
다소 여유를 찾은 미키는 차분한 목소리로 가토를 도발했다.
"그래. 많지. 다 우리 회사에서 찍었으니까. 족히 삼천명도 넘겠지. 그래서 뭐? 과거의 영광이 미래를 보장해 주는 건 아니야, 가토."
"하-! 내가 지금 그 똥강아지보다 못 하다는 얘기야 지금?"
"왜? 정말 자신 있어? 한국산 대물을 이길 자신이?"
"당장 데려와 봐! 그 새끼보다 훨씬 잘해낼 자신 있으니까!"
‘걸려 들었어.’
"못한다면?"
"뭐?"
"남자가 말을 내뱉었음 책임을 져야지. 만약 그 한국산 대물보다 못하다는 게 증명되면, 그땐 어떡하려고?"
"내가 놈보다 못하면 그땐 좆자르고 뒤져버리겠어!"
"워워. 멀쩡한 좆은 왜 짤라? 소변 눌 방향키는 있어야 할 거 아냐?"
도발에 걸려든 가토를 보고 온전한 평소의 모습을 회복한 미키는 가토의 속을 살살 긁기까지 했다.
"으으!"
"좋아. 이렇게 하자."
"어떻게?"
"정말 자신 있다면 정식으로 대결을 붙어보는 거야."
"얼마든지!"
"만약 내 판단이 틀렸다면, 가토 네가 바라는 대로 해도 좋아."
"내가 바라는 대로?"
"그래. 회사 따로 차리려는 게 사실 나 때문 아니었어?"
"음···."
"성가시게 그러지 말고 아예 내 회사를 접수해. 내가 일선에서 물러나 줄 테니까."
미키의 제안에 솔깃한 가토는 한 가지 조건을 더 붙였다.
"난 회사를 탐냈던 게 아냐. 누님을 갖고 싶은 거지."
"그게 그거지. 나를 가지면 내 회사도 갖게 될 테니까."
"···누님을 주겠다는 소리야?"
"원한다면."
파격적인 제안!
상상도 못 했던 빅딜에 가토의 심장이 쿵쾅거렸다.
솔직히 회사의 절반을 데려고 나간다 쳐도, 제대로 자리를 잡기까지 고생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거기다 업계로부터 배신자라느니, 주제넘게 욕심을 부린다느니 하는 비난에도 직면할 게 불보듯 뻔했다.
그런데 미키가 스스로 자신을 헌납한다는 소리였다.
욕망으로 이글거리는 가토의 눈을 보며 미키가 두 번째 조건을 걸었다.
"단!"
가토가 귀를 쫑긋 세우며 집중했다.
이 정도 거래에 리스크가 없을 리 없다. 하지만 가토는 무슨 제안이든 받아들일 각오였다.
"네가 패한다면 군말 없이 물러나. 그대로 은퇴를 하던 다른 프로덕션으로 이적을 하던, 신경 쓰지 않을 테니 우리 회사 직원들은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겠다고 약속해."
꿀꺽.
가토가 마른침을 삼키며 빠르게 계산에 들어갔다.
All or Nothing이다.
도박에 성공하면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지만, 실패한다면 한 순간에 밑바닥까지 추락하게 된다. 자신의 배우 인생을 건 건곤일척의 제안 앞에 가토가 오랫동안 침묵했다.
"···승부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되는지 듣고 싶군."
"승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미키는 한참 동안 설명했다.
미키의 이야기를 모두 들은 가토가 호탕하게 웃었다.
"하핫! 그런 거라면 얼마든지! 가만, 근데 나중에 딴소리하기 없기야?"
"각서라도 써 줘?"
"그렇다면 땡큐지."
"공증이 필요할 테니 내 변호사에게 미리 작성해 두라 할게. 가토 네가 말했던 조건, 그리고 내가 말했던 조건 전부 다 포함해서."
"그럼 서명만 하면 되는 건가?"
"그래."
그때 한참 동안 닫혀 있던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문을 연 여직원은 1층에 머물러 있던 엘리베이터에 가토와 미키가 나란히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 고개를 숙였다.
"아앗, 죄송합니다! 계신 줄 모르고."
"아니야. 깜빡하고 버튼을 안 누른 거야."
"잠깐, 난 다시 나가봐야 겠어."
가토가 엘리베이터를 빠져나가며 미키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그럼 누님, 나중에 다시 봅시다. 하하!"
가토는 싱글벙글 웃으며 사라졌다. 그 모습에 여직원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가토씨가 오늘 기분이 무척 좋으신가 봐요?"
"그러게."
"아, 대표님 몇 층 가세요."
"5층."
"네. 문 닫겠습니다."
***
"대단해. 정말이지 난 놈이야 난 놈!"
촬영을 마친 뒤 편집실로 이동해 촬영분을 다시 보던 감독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절레절레 고개를 가로저었다.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에서도 느꼈지만, 연기면 연기, 씬이면 씬 무엇하나 빠지는 것이 없다.
거기에 물건도 실하고 얼굴까지 잘생겼으니 남녀를 막론하고 모두에게 두루 인기를 끌 만한 완성형 배우의 자질을 갖고 있다.
큼직한 대물은 남자 고객들로 하여금 강한 대리만족을 줄 것이며, 반반한 외모는 충성도가 높은 여성 고개들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촬영장의 분위기를 압도하는 놀라운 연기력은, 실제로 강간범을 데려온 게 아닌가 착각이 들 정도로 몰입감이 있었다.
결정적으로 감독이 쌍수를 높이 들게 만든 것은 놀라운 정력이었다.
1층의 시즈카를 먹고, 2층의 리카를 먹고, 나중에는 둘 다 한 데 모아 쓰리썸까지 이어지는 데도 단 한 번의 휴식 없이 곧바로 몰아치는 끈끈함은 출중하다는 표현으로도 역부족일 정도. 미키가 말했던 대로 그는 섹스의 천재인게 분명했다.
‘···아니. 섹스의 신이라고 불려도 될 정도야.’
도훈에게 찬사를 보내던 감독은 문득 ‘섹스의 신’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섹신 가토’를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신이 둘이나 있군. 이건 말이 안 되는데···."
세상에 무수한 신이 있다지만 섹스의 신은 하나뿐이다.
감독은 두 섹신이 대결을 펼치면 어떨까 하는 호기심이 일어났다. 그때 보조 작가가 한명이 급히 편집실로 들어왔다.
"뭐야? 나 지금 작업 중인거 안보여?"
도훈의 영상을 멈춘 감독이 다소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가, 감독님 마지막 대본이 수정되어 나왔습니다."
"최종본이야 얼마든지 바뀔 수 있지. 고작 그런 일로 나를 찾았단 말이야?"
"그, 그게 아니라 완전히 전면 수정입니다. 아예 다른 이야기라고요."
"아니 무슨 일을 그 따위로!"
감독은 확 스팀이 올랐다.
다른 것도 아닌 시리즈 물이다.
지금껏 진행된 스토리나, 감정선등은 클라이막스인 3편에 맞춰져 있다. 그런데 내용을 완전히 엎어버리다니.
감독의 입장에선 당연히 울화통이 터질 일이었다.
대본을 낚아채듯 거머쥔 감독은 한참 바뀐 부분을 확인했다.
곳곳에 빨간 선이 그어진 대본은 급히 손을 댄 흔적이었다. 통상의 절차대로 진행이 되지 않고 누군가 윗선에서 지시가 내려왔다고 밖에 볼 수 없었다.
"저어···. 출연진도 일부 바뀌었습니다."
"출연진도?"
감독은 맨 앞장으로 다시 페이지를 넘겨 출연진을 확인했다.
마지막 편에는 온 가족이 다 있는 가운데 도훈이 조교를 하는 씬이었기에 1,2부에 나왔던 시즈카나 리카가 바뀌면 큰 일 이었다.
배우 명단을 확인한 감독은 저도 모르게 입을 쩍 벌리며 말을 더듬고 말았다.
"아, 아버지 역할에 가토···, 어머니 역할이······ 미키 대표라고?"
< 446. 도쿄 핫(TOKYO-HOT)-30- > 끝
ⓒ 성난불기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