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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453화 (426/2,000)

< 435. 도쿄 핫(TOKYO-HOT)-19- >

5연사를 마무리한 도훈은 스텝이 건넨 가운을 걸치며 걸어 나왔다. 포기할 뻔했던 이벤트의 첫 번째 관문을 마쳐서 그런지, 무척이나 가벼운 걸음걸이였다.

"가토씨! 신고식은 통과 한 거죠?"

"그, 그래! 열심히 해보라고 신입!"

가토가 분한 기색으로 물러났다. 도훈은 전형적인 악당처럼 ‘두고 보자.’라는 표정을 짓고 있는 가토에게 속으로 뻑큐를 날려준 뒤, 미키 대표를 향해 영어로 물었다.

"힘을 너무 썼는지 목이 타네요. 혹시 마실 것 좀 없을까요?"

"물? 얼마든지 있지. 정말 고생 많았어. 그나저나 식사 시간도 다 되었는데 점심이나 먹으러 갈래? 앞으로 스케쥴도 알려줄 겸."

미키는 벌어진 가운 사이로 보이는 도훈의 사타구니를 힐끔거렸다.  늘어진 채 덜렁거리는 살덩이가 어쩜 그렇게 탐이 나는지 모를 일이었다.

살면서 마주친 남자 물건이 수백도 넘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더 엄청난 아이야. 정력은 말할 것도 없고, 가리는 것 없는 잡식성까지 갖추었어. 커버할 수 있는 베리에이션이 상당할 거야.’

"그럴까요, 그럼?"

도훈은 평상복으로 갈아입은 후 대표와 단둘이 스시집으로 향했다.

이윽고 도착한 스시집은 일본식 다다미방으로 꾸며진 고급 요정이었다. 서빙을 맡은 직원들은 일본 전통 의복 유카타를 입고, 무릎걸음으로 다가와 주문을 받았다.

"스시 좋아해?"

"날 것이라면 다 좋죠."

도훈의 의미심장한 표현에 미키가 배시시 웃었다. 그녀가 능숙한 태도로 주문을 마치자 방안을 둘러보던 도훈이 물었다.

"굉장히 비싸 보이는 식당인데요?"

"비용은 신경 쓰지 마. 체류하는 동안엔 언제든 와서 먹어도 괜찮으니까."

"정말요?"

"물론. 이쯤이야 얼마든지."

미키는 스스럼없이 자랑하다, 속으로 흠칫 놀랐다.

‘내가 왜 얘 앞에서 안 하던 돈 자랑을 하고 있지?’

거대 프로덕션의 대표인 미키는 돈이라면 아쉬울 게 없는 사람이었다.

이미 현역시절 국민 야동 배우(?)의 반열에 오르며 큰 부를 이루었고, 그 돈으로 프로덕션을 차려 지금은 업계에서 손가락 안에 드는 유명 레이블의 사장이 되었다.

시부야 중심가에 자리한 빌딩의 부동산 가격만 해도 입이 떡 벌어지는 수준일진데, 굳이 도훈 앞에서 돈 있는 척 과시하는 자신의 행동에, 스스로도 의뭉스러운 마음이 피어났다.

‘아···. 내가 얘한테 잘 보이고 싶은가 보구나.’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심하게 몸을 굴려서인지 몰라도, 남자에 대한 환상은 티끌도 남아 있지 않은 줄 알았다.

기계적이고 직업적인 섹스는 그녀의 순정을 마모시켰고, 누구와 잠을 갖더라도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후천성 석녀가 되었다. 은퇴 이후 남자를 만나지 않는 이유엔 그런 비밀이 숨어 있던 것이다.

‘어제도 그렇고···. 참, 이상해. 이 아이를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몸이 뜨거워져. 본능적으로 이끌린달까?’

처음엔 젊은 몸뚱이에 혹하는 것으로 착각했다.

젊다는 것.

어리다는 것은 남녀 누구에게나 싱그러운 느낌을 준다.

남자들이 나이 어린 여자를 밝히는 것처럼, 농염한 여인들 또한 아랫배가 툭 튀어나온 동년배의 남성보다 몸 좋고 정력 넘치는 젊은이에게 이끌리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하지만 도훈 정도로 나이 어린 배우들은 소속사에도 수없이 많았다. 여자랑 재미도 보면서 돈도 벌 수 있다며,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곧바로 뛰어든 철부지 같은 애들마저 있었다.

그런데 도훈보다 어린 그들에게서도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 도훈을 보는 순간 시작된 것이었다.

갑자기 미키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도훈은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식전 요리로 나온 스끼다시로 식욕을 돋우었다.

‘음, 배고픈데 마침 잘 됐다. 고급 식당이라 그런지 맛도 좋네.’

[주인님을 바라보는 미키 대표의 눈빛이 심상치 않은데요?]

‘후후. 가만 놔둬. 좀 더 달아오르게 해야지.’

[알고 계셨습니까?]

‘아까 부카케 마치고 돌아서는데 내 거기만 쳐다 보더라고. 아주 혼이 나간 사람처럼.’

[후후. 전설적 포르노 스타에게까지 인정받은 대물이라니! 감개무량입니다, 주인님.]

‘전설은 추억으로 남겨 둘 때가 가장 아름다운 법이라지. 어차피 이제는 현역만 못 할 테니.’

[구관이 명기라는 말도 있잖습니까?]

‘어허, 또 쓸데없는 소리. 솔직히 말하면, 겉은 번지르르한데 속을 썩어 문드러졌을지 모르지.’

[그게 무슨 소립니까?]

‘허벌창일수도 있단 말이야. 저 구멍으로 얼마나 많은 잦이가 들락거렸겠어?’

[확인해 보시면 되죠.]

‘그럴까? 조임이 얼마나 되는지?’

도훈은 질수축도를 알아보기 위해 미키의 얼굴을 빤히 쳐다 보았다. 10초 이상 귓바퀴를 쳐다봐야 알 수 있는 관상쟁이 스킬의 특성상, 노골적인 응시는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도훈의 시선을 느낀 미키가 부끄럼 많은 처녀처럼 두 볼을 감싸며 물었다.

"내 얼굴에 뭐 묻었어?"

{질 수축도 : 93%}

예상외로 미키의 질 수축도는 처녀 못지않게 상당했다.

도훈은 의외라는 표정을 지으며 얼버무렸다.

"아뇨. 대표님이 너무 아름다우셔서요."

"방금 그건 아부인가요?"

"제가 좀 솔직한 편이라."

입발린 칭찬이었지만, 미키는 기분이 좋은지 입을 가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호호, 도훈씨는 바람둥이 같군요."

"이쪽 업계에서 일하려면 당연히 갖춰야 할 덕목이 아닐까요?"

"글쎄요. 꼭 그렇진 않아요."

"네?"

스시가 나오기 전 미키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AV배우라고 해서 난잡한 성생활을 즐길거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소속 배우들 사이의 사적인 연락이나 연애를 금지하는 것은 아이돌만큼이나 엄격하다 등등.

"그게 정말이에요? 연애 금지 규정이요?"

도훈이 놀라 되묻자 미키가 대답했다.

"문화 차이 때문에 도훈군 입장에선 잘 이해가 안 될지 모르겠군요. 일본에선 AV나 그라비아 배우들은 어지간한 연애인 만큼 인기가 많아요. 공중파에도 출연할 정도니까."

"아···."

"이미지 관리가 필수인 이유죠. 주 팬층인 남성들은 애인이 있는 배우보다 솔로인 쪽은 더 선호하니까."

계속 듣다 보니 우스운 이야기였다.

모자이크로 처리될 뿐이지 실제 삽입도 불사하는 AV배우가, 남자친구가 있고 없고가 그렇게 중요하다니.

"여전히 잘 모르겠네요. 이쪽 세계는···."

"후후. 차차 알게 될 거에요."

‘그래서인가? 미키의 조임이 아직까지 살아 있는 이유도?’

[것보단 타고 난 측면도 크겠죠. 꾸준히 운동해 주는 것도 있을 테고.]

‘하긴. 그러니까 AV배우로 대성할 수 있었을 테지. 어찌보면 이 쪽 세계도 섹잘잘이구나.’

[섹잘잘요?]

‘섹스도 잘하는 놈이 잘한다고.’

[어떤 영역이든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선 부단한 노력과 타고난 재능이 받쳐줘야 하는 법이니까요.]

그때 다다미 문이 열리며 커다란 접시가 들어왔다.

한눈에 봐도 두 사람이 먹을 양이 아니었다.

"저, 이렇게까지 많이는 못 먹는데?"

도훈이 놀라서 묻자 미키가 답했다.

"당연하죠. 4인분 시켰거든요."

"네?"

"지금쯤 올 때가 됐는데···. 곧 미팅이 있을 거예요."

"미팅이요?"

양반은 못 되는지, 미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열린 문 사이로 아가씨 한 명이 구두를 벗고 들어왔다.

"죄송해요, 제가 좀 늦었죠?"

뒤늦게 합류한 여자는 몹시 귀여운 인상이었다.

평범한 반 팔 티에 청바지만 걸쳤는데도 몸매의 굴곡이 여실히 드러날 만큼 상당한 볼륨감을 자랑했다.

"아냐. 이제 막 식사하려던 참이었어. 스즈카도 점심 안 먹었지?"

"네, 대표님. 아, 이 분이시구나. 반가워요. 스즈카라고 해요."

도훈은 통역기를 통해 번역된 일본어에 자기도 모르게 인사를 할 뻔했다. 다행히 미키 대표가 먼저 주의를 주었다.

"스즈카, 도훈 군은 일본말을 못 해."

"예, 예??"

스즈카는 애니메이션에나 나올 법한 몸짓과 표정으로 심하게 오버스런 제스쳐를 보였다. 도훈은 하마터면 빵 터질 뻔 했으나, 이빨을 꽉 깨물며 겨우 표정관리를 했다.

‘큭-. 일본인들의 과장된 리액션이란···’

"안녕하세요. 저는 스즈카입니다."

스즈카가 어색한 발음이지만 또렷또렷한 한국말로 인사하자 도훈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한국말 할 줄 아시네요?"

"스즈카 취미가 한국 드라마 보는 거야. 과외선생도 하나 붙여서 한국어도 계속 배우고 있고."

"그래요?"

"나중에 한국 시장이 개방되면 진출할 계획도 가지고 있거든."

"아하."

미키 대표는 스즈카를 자기 옆자리에 앉힌 뒤 계속 말을 이어갔다.

도훈은 미키와는 영어로, 스즈카와는 한국어로 대화하며 두 여자는 일본어로 말하는 등 3개 국어가 자연스럽게 혼재되었다.

"이쪽이 저번에 말한 그 배트맨. 기억나지?"

"예예예예~~~? 혼또니?"

스즈카는 도훈을 쳐다보며 다시금 코믹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도훈은 AV 여배우들이란 다들 음탕하고, 어딘가 어른스러울 것 같았는데 처음 마주한 현역 배우가 보여주는 푼수 같은 모습이 너무나 인간적이고 귀엽게 느껴졌다.

‘푸핫, 저 반응은 진짜 면역이 안 되네. 일본인들은 실제로 저런 말투를 쓰는구나.’

[뭐, 문화 차이겠죠.]

"정말 잘생기셨스므니다!"

스즈카가 식탁 위로 엄지를 치켜세우며 도훈을 칭찬했다.

"전 영상을 봤을 때 얼굴이 흉측한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제 영상을요?"

도훈의 물음에 미키가 대답했다.

"응. 도훈 군을 영입하기 위해 샘플링 자료를 몇몇에게 돌린 적이 있었어. 그 성인방송."

"아···."

"그땐 얼굴을 가면에 감추고 있어서, 도훈군이 이렇게 잘생겼고는 아무도 예상 못 했거든."

"스고이! 정말 잘생겼기셨어요. 한국 남자들은 다 멋있어."

스즈카가 푼수처럼 도훈의 칭찬하는 사이 미키가 계속 말했다.

"스즈카는 도훈군이 찍을 시리즈물의 첫 번째 상대역이야. 나이는 어리지만, 업계에선 알아주는 실력파지."

"앗, 대표님. 부끄럽사와요."

스즈카를 바라보는 도훈의 눈매에 저도 모르게 미소가 떠올랐다. 촬영장에선 어쩔지 모르지만, 사적으로 만난 스즈카라는 배우는 굉장히 털털하고 귀여운 인상이었다.

‘캬! 야동배우도 할 만하구나. 저런 애랑 자볼 수도 있다니.’

[주인님. 이번 건은 업적 달성 겸 단기 알바입니다. 본업을 잊지 마십시오.]

‘아니 뭐 내가 계속하겠다는 얘긴 아니고.’

세 사람은 싱싱한 회를 먹으며 촬영 스케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럼 촬영은 언제 쯤 들어가나요?"

"일단 오늘 오후에 실내 촬영이 있을 거야. 그리고 내일 오전 야외 부분 촬영해서 편집하면 끝나."

"이틀에 한 편이 나오나요?"

"신기하지? 영화 한 편 찍는데 3-4개월쯤 걸리는데. 우린 조금만 무리하면 그 시간에 100편도 넘게 나오거든."

"와···."

"어쩌면 그 생산상이 이쪽 업계가 가진 매력이겠지."

‘성진국은 역시 클라스가 다르네.’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이기도 하죠.]

"시나리오는 번역가 불러서 한국어로 각색중이야. 대사가 많진 않으니까 잠깐만 보면 될 거야."

"대사를 한국어로 하나요?"

"응. 대충 컨셉을 말해주면···."

미키는 한참동안 도훈이 앞으로 찍게될 시리즈의 흐름을 설명했다. 도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야금야금 회를 한 점씩 집어 먹었다.

스시의 본고장답게 어종을 알 수 없는 각양 각색의 회들이 입안에 들어가는 순간 사르르 녹아내렸다. 도훈이 계속 처묵처묵하자 지켜보던 스즈카가 김에 싼 회를 고추냉이를 푼 간장에 적셔 건넸다.

"이렇게 한 번 드셔 보세요. 김에 싸먹으면 맛있어요."

"아, 감사합니다."

스즈카의 호의를 쳐다보는 미키의 심기가 살짝 불편해졌다.

‘스즈카도 도훈군이 마음에 드는가 보구나. 평소 상대역 미팅할 땐 별 말도 없던 애가···.’

미키는 불편한 심리의 기저에 깔린 질투심을, 사업가적인 마인드로 애써 억눌렀다.

청춘 남녀가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지사. 어쩌면 도훈을 남자로 여기는 것 자체가 노욕일지도 몰랐다.

‘마음을 비워야 해. 저렇게 빠질 것 없는 애가 뭐가 아쉽다고 나같은 나이든 여자를 좋아하겠어? 누가 봐도 스즈카가 쪽이 훨씬 예쁘지.’

겨우 22살인 스즈카는 AV배우로서 한창 물이 오를 시점. 커다란 가슴도 처지지 않고 팽팽하고, 피부는 비단결처럼 고왔다. 성격도 원만하고, 가끔 보이는 허당끼는 같은 여자가 봐도 마음에 쏙 드는 성격이었다.

"아무튼···. 스토리는 대충 이해했지?"

"네, 대표님."

"식사 끝나면 사무실에서 대본 리딩 있을 거야. 나 먼저 일어날테니 늦지 않게 와. 스즈카가 안내해줘. 도훈군은 이쪽 지리를 전혀 모르니까."

"벌써 가세요?"

"아직 음식도 다 안나왔는데···."

"응. 급히 결재할 서류가 있어서. 작품 잘 되려면 주연들간 호흡이 중요하니까 얘기 좀 많이 나눠. 그럼 이만."

미키는 만류하는 두 사람을 두고 허겁지겁 일어났다. 계속 같이 있다간 도훈에 대한 질투심으로 스즈카에 대한 미움이 생겨날 것 같았다.

식대를 법인 카드로 긁으며 푹 한숨짓는 대표를 향해, 영수증을 내주던 지배인이 물었다.

"무슨 안 좋은 일 있으셨어요? 안색이 좀···."

"제가 그랬나요? 요새 좀 피곤해서."

"저런···. 일 도 쉬엄쉬엄하세요. 참, 그리고 여기···."

지배인이 쭈뼛거리며 카운터 밑에서 흰 종이와 팬을 꺼내 내밀었다.

"대표님께서 우리 가게 단골이라고 하니까 친구 한놈이 사인 좀 받아달라고 부탁을 해서요."

"네."

"젊은 시절 정말 팬이었다면서···."

민망한 듯 머릴 긁적이는 지배인을 향해 미키가 활짝 웃어 보이며 물었다.

"몇 장이나 해드릴까요?"

"아앗, 감사합니다! 세, 세장만."

사인을 하는 미키는 기분이 다시 좋아졌다.

현역을 떠난 지도 십수년이 흘렀지만 아직까지 자신을 기억해 주는 팬들은 많았다.

‘그래.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들은 아직도 이렇게 많은걸···.’

대표가 스스로 자존감을 채워가는 사이, 도훈과 둘 만 남게된 스즈카는 도훈을 향해 이것저것 물었다.

"배트맨 상을 만나면 꼭 묻고 싶은 게 있었어요."

< 435. 도쿄 핫(TOKYO-HOT)-19- > 끝

ⓒ 성난불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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