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2. 도쿄 핫(TOKYO-HOT)-6- >
고개를 돌리자 왜소한 체격의 중년 남성 하나가 팻말을 들고 있었다. 팻말에는 "이도훈"이란 글자가 빼뚜름하게 적혀 있다.
"안녕하세요."
"앗, 혹시 바토만 센세?"
"맞습니다."
스카우터가 나를 보더니 과장된 동작으로 꾸벅 고개를 숙였다. 일본인 특유의 예의 바름이 몸에 밴 사내 같았다.
"귀인을 만나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오카모토라고 합니다."
‘오카모토?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 인데? 아, 그 콘돔이구나!’
생각해보니 일본산 0.03mm 초박형 콘돔 브랜드 이름과 똑같았다. 야동 제작자라 그런지 이름부터 클라스가 남다르구만?
"이도훈입니다. 편하게 도훈이라고 불러주세요."
"하잇! 일단 출국장으로 가실까요?"
오카모토가 커다란 캐리어를 끌며 나에게 물었다.
"혹시 일본어는 할 줄 아시나요?"
"아뇨. 영어 밖에 못 합니다. 혹시 문제가 되나요?"
"아닙니다. 도훈 상의 통역은 앞으로 제가 전담할 것입니다. 일본은 초행이신가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망설였다. 전생에선 몇 번 갔지만, 이도훈의 몸으론 처음이다. 복수여권에 날인된 출국기록엔 일본이란 나란 없었다.
"···처음입니다. 그보다는 어떻게 제가 캐스팅된 것인지 궁금하군요."
"아, 실은 저희 회사가 제법 규모가 크다 보니 국제적으로 배우를 섭외하고 있습니다. 저는 아시아 쪽 담당 스카우터구요."
"그렇군요. 전 야동엔 일본인만 출연하는 줄 알았는데···."
오카모토가 콘돔처럼 번들거리는 머리를 머쓱하게 쓸어 올렸다. 옆으로 삐져나온 머리가 안쓰럽게 흩날렸다.
"하핫, 바야흐로 국제화 시대니까요. 과거에도 러시아 백인이나, 아프리카계 흑인들에 대한 수요는 많았습니다. 본토에서 섭외를 진행될 때도 있지만, 시청자들이 뉴페이스를 원하다 보니 이렇게 직접 외국에 나가 참신한 얼굴을 픽업하는 편이죠."
"그렇군요."
"최근 들어선 중국이나 한국, 혹은 대만이나 베트남 같은 아시아 쪽에 대한 요구도 늘고있는 추세입니다. 특히 한국 여성들은 외모가 수려한 편이라 본토에서 인기가 많거든요. 아, 쓰미마셍! 도훈 상에겐 불쾌하게 들릴 수도 있는 얘기군요."
"괜찮아요. 어차피 비즈니슨데요, 뭘."
납치해서 강제로 촬영하는 것도 아닌데 내가 상관할 건 뭔가.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무튼, 기획에 따라 현지 로케 촬영도 하고, 본국 세트장에서 촬영하기도 합니다."
"근데 저처럼 남자 배우를 캐스팅하는 사례도 흔한가요?"
오카모토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사이 출국장에 도착한 우린 공항 검색대에 섰다. ‘ㄹ’자로 구부러진 가이드 라인 안으로 사람들이 따분한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아뇨. 사실 도훈 상의 경우엔 조금 이례적이었습니다."
"이례적이라뇨?"
"보통 남자 배우의 경우 앵글로 섹슨 계통이나 아프리칸 흑인을 선호하는 편입니다. 무엇보다···"
오카모토가 이두박근을 과시하듯 팔뚝을 수직으로 들어올렸다.
"···사이즈가 이빠이."
‘으으, 저런 변태 중년 같으니라고.’
"그, 그렇군요."
"특히 여성 시청자 쪽에서 대물에 대한 선호도가 제법 있는 편입니다."
"네···."
"실은 우연히 도훈 상의 방송을 보게 되었을 때 무척 놀랐습니다."
"제 방송이요?"
"BJ 가영이라는 분과 촬영했던···."
"아, 그거 게스트로 잠깐 우정 출연했던 거예요. 그 이후론 다른 방송에 나간적도 없구요."
"아하, 그러셨군요. 아무튼 도훈 상은 전형적인 한국인인데도 피지컬이···."
오카모토는 슬쩍 눈을 내리깔더니 내 사타구니로 시선을 던졌다. 그는 입맛을 쩝 다시며 말했다.
"···같은 남자로서 부럽더라구요. 정말이지 대단한 물건을 지니셨습니다."
"아, 예, 뭐···."
남자에게 대물 칭찬을 들으니 민망하구만.
그때 줄이 줄어들며 오카모토가 먼저 검색대를 통과했다.
내 차례가 되자 백팩을 풀어 컨베이어 벨트에 올리고는, 사각형 문틀처럼 생긴 검색대를 지나쳤다. 그때 삐이- 하는 경고음이 울렸다. 맞은편에서 금속 탐지기를 들고 있던 여성이 나에게 다가와 물었다.
"혹시 벨트나 시계류가 있으면 풀어 주실래요?"
"예."
나는 버클을 풀어헤치며 로시에게 물었다.
‘혹시 스마트 워치가 금속 탐지기에 걸리나?’
[아닙니다. 이 세상엔 존재하지 않는 초합금 재질입니다. 금속 성분이 검출되지 않습니다.]
‘오케이.’
허리띠를 풀어 컨베이어 벨트에 올리고 검색대를 재통과하자 검색대 직원이 다가왔다.
"양팔 들어주실래요?"
"네."
제복 스타일의 유니폼을 입은 직원은 제법 귀여운 인상의 여자였다. 나이는 이십 대 중반쯤?
‘호오, 귀여운데?’
[주인님. 자제 좀···.]
‘자제가 되겠냐? 요 며칠, 시험공부 하느라 엄청 굶었다고.’
안 그래도 허기진 와중에, 젊은 여성이 몸을 더듬어 대자 불쑥 음심이 동했다. 여직원은 예수처럼 양팔을 벌리고 선 나를 금속 탐지기로 쓱쓱 훑더니 곧 자세를 낮춰 바지 쪽을 더듬거렸다.
‘장난 좀 쳐볼까?’
껄떡-
발기된 물건을 움직이자 여직원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바, 방금 뭐였죠?"
"네? 뭐가요?"
나는 시치미를 뚝 뗐다.
"혹시 바지 속에 뭔가 들어 있나요?"
"아무것도 없는데요?"
"흐음···."
여직원이 의심스러운 눈길로 금속 탐지기를 들어 바지 앞을 두어 번 휘저었다. 그러나 대물에 쇠구슬을 박은 것도 아닌 마당에야 당연히 걸릴 게 없었다.
"왜 그러시죠?"
"잠시 몸수색 좀 해도 될까요?"
"네."
보안 검색대 여직원이 의심스런 표정으로 바지춤을 매만졌다.
물컹-
그때, 커다란 대물이 손에 잡히자 여직원이 움찔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그녀는, 그제야 껄떡거리던 물건의 정체를 깨달은 것 같았다.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여직원이 당황하며 사과했다.
"죄, 죄송합니다. 실수로···."
"괜찮아요. 그럴수도 있죠."
"토, 통과하세요."
여직원이 민망한 표정으로 나를 통과시켰다.
나는 유유히 웃으며 검색창구 밖에서 기다리던 오카모토와 합류했다.
"혹시 무슨 문제가 있나요? 몸수색을 한 것 같던데요?"
"무기 소지죄로 잡혀갈 뻔했어요."
"무기라니요?"
"농담입니다."
"아, 한국식 농담은 조금 이해하기 어렵군요. 여기 15번 게이틉니다."
"네."
[짓궂으신 건 여전하시네요.]
‘내가 뭘? 내가 시켰냐? 지가 더듬었지.’
[쯧쯧. 근무 중인 여직원 앞에서 그게 무슨 추탭니까?]
‘흐흐. 난 제복 입은 애들 보면 이상하게 꼴려서 말이야.’
[저기 저 스튜어디스들 처럼요?]
로시의 말에 고개를 돌려 보니 아오자이 유니폼을 입은 스튜어디스 무리가 또각 또각 힐 소리를 내며 걸어가고 있었다.
‘오, 베트남 항공사 직원들인가? 의상 훈훈하네.’
[눈독 들이지 마십시오. 공공장솝니다.]
‘왜? 쳐다보는 것도 안 되냐?’
[주인님이 너무 음흉하게 쳐다보니까 그렇죠.]
로시와 한창 노닥거리고 있는데 오카모토가 물었다.
"혹시 도훈 상은 저희 레이블 작품을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이름이 뭐라고 하셨죠?"
"도쿄핫이란 레이블에서 유통을 하고 있죠."
"제가 야동은 잘 안 봐서···."
"아, 그렇군요."
물론 이정우 시절엔 뻔질나게 보긴 했었다.
품번까지 외고 다닐 정도로 매니아는 아니었지만, 도쿄핫이라는 타이블은 몇 번 본 적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이도훈이 되고 부턴 야동을 볼 필요가 없었다.
내 삶이 야동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나중에 촬영장으로 가보시면 알겠지만, 애로 배우의 삶이 그저 좋은 것은 아닙니다."
"그래요?"
"네. 뭐든 재미로 할 땐 좋지만, 막상 직업이 되면 괴로운 법이라고 하더군요. 여배우도 그렇지만 남자 배우들 또한 무척 곤혹스럽다고."
오카모토는 이런저런 업계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이야기가 흥미로워 시간가는 줄 모르고 듣다보니 곧 비행기 탑승 시간이 되었다.
"도훈 상 좌석은 비즈니스 클래스입니다. 당일 예약이라 한 자리밖에 구하지 못했습니다. 아무쪼록 양해 부탁드립니다."
"같이 일반석으로 예약하셔도 되는데···."
"아닙니다. 그래도 저희가 모시는 손님이신걸요. 나중에 도착해서 뵙겠습니다. 편안한 여행 되시길."
"네."
기체에 올라 승무원의 안내를 받아 좌석에 앉았다. 널찍한 비즈니스 클래스에 몸을 기대자 그간 쌓여왔던 피로가 순식간에 밀어닥쳤다.
‘으으, 며칠간 밤샘한 게 무리긴 했나 보네. 급피곤해 지는데?’
[고생하셨습니다. 시험은 잘 치르신 것 같던가요?]
‘모르겠어. 반반이야. 하여튼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고생한다더니 그 말을 절실히 느꼈달까?’
[어쩌면 전생의 주인님이 지나치게 머리가 좋았던 건지도 모르죠.]
‘물론 그런 부분도 없잖아 있겠지. 최신 스마트폰 쓰다가 구형 폴더 폰으로 돌아간 느낌이니까.’
[아이큐를 100 이하로 만드신 걸 후회하시나요?]
‘아니. 후회 안 해.’
[아···.]
‘내가 전생에 키 작고 좆 작은 남자였을 때, 그런 생각을 잠깐 했거든. 머리가 나쁜 건 노력으로 극복 가능하겠다고. 잠 좀 줄이고, 놀 시간 좀 줄이면 어쨌든 따라갈 순 있는 거잖아.’
[그렇죠.]
‘하지만 키랑 물건은 노력으로 안 되더란 말이지.’
[아···.]
‘제일 억울한 게 그거 였어. 내가 키 작고 좆 작은게 내 잘못은 아니잖아? 그렇게 태어난 걸 어쩌라는 거야?’
[하긴 그렇죠. 유전의 문제니까요.]
‘근데 내가 노력해도 안되는 걸로 무시당하니까 기분이 더럽더라고. 그래서 혹시라도 다시 태어나면 아이큐 좀 줄이더라도 키랑 잦이는 늘리고 싶었거든.’
[소원 성취 하셨군요.]
‘응. 그래서 후회 같은 거 절대 안 해. 두뇌 회전이 조금 느려졌을 뿐이야. 이정우의 경험과 지식은 여전히 머릿속에 담겨 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다행이고요.]
그때 기장의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이런저런 쓸데없는 잡소리를 요약하면 도쿄 공항까지 대략 2시간 반 정도 걸린다는 내용이었다.
‘한숨 자고 나면 도착이겠군.’
[네. 시험 치르느라 수고하셨습니다. 푹 쉬십시오.]
나는 미리 준비한 수면용 안대를 꺼내 착용하고 푹신한 의자에 몸을 파묻었다. 막 잠이 들려던 찰나 옆에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손님, 곧 비행기가 이륙합니다. 안전 벨트를 착용해 주시겠어요?"
"아···, 네."
벨트를 착용하려고 안대를 벗는데, 익숙한 얼굴이 눈 앞에 있었다. 그녀 역시 안대를 벗고서나 나를 알아챘는지 화들짝 놀라 서로를 가리켰다.
"넌 그때 그 골프 연습생?"
"혹시 지난번 나이···."
***
"혹시 지난번 나이···."
도훈이 나이트라는 말을 꺼내기 전에 보영이 급히 도훈의 입을 틀어 막았다.
"읍!"
"쉿-. 아무말도 하지마."
보영이 눈치를 살피며 다른 스튜어디스의 동선을 파악했다.
"제발 아무 말도 하지 마. 여긴 내 직장이야. 나 곤란하게 안 할 거라고 믿는다?"
입을 막힌 도훈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푸하-. 죽는 줄 알았네."
"호호, 손님. 비행기 처음이신가 보다. 너무 긴장 마시구요."
보영이 갑자기 딴청을 부리자 도훈은 기가 막혔다.
‘얘 저번에 나랑 룸떡친애 맞지?’
[네. 김보영 양입니다.]
‘아 맞다. 김보영. 이런 곳에서 만나다니 정말 우연이군.’
보영은 주변 손님들의 벨트 착용 여부를 체크하더니 다시 도훈 쪽으로 돌아왔다.
"너 그때 거짓말 한 거 아니었어?"
보영이 다른 사람에게 들리지 않도록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제가 뭘요?"
"진짜로 골프 연습생이었어?"
"하하. 그럼 거짓말인 줄 알았어요?"
"아, 아니 뭐··· 그런데 오는 사람들이 다 진실만 말하진 않으니까."
"누난 진실을 말했네요."
도훈이 스튜어디스 복을 차려입은 보영을 향해 말했다. 본래도 미인인 보영이 단정한 유니폼을 입고 있는 모습은 굉장히 섹시해 보였다.
"보영씨 벨트 체크 끝났어?"
그때 일반석으로 이어진 커튼 너머에서 보영을 찾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지금 갈게요."
보영은 도훈을 향해 찡긋 윙크를 날리더니 말했다.
"이륙하고 나서 다시 올 테니 자지 말고 있어. 알았지?"
"피곤한데···."
"치. 오랜만에 봤는데 반갑지도 않나 보네."
"그럼 올 때 커피 좀 가져다주세요."
"네, 고객님."
보영은 상냥하게 대답하며 다른 곳으로 사라졌다. 도훈은 일본으로 가는 비행기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자 무척 신기하고 반가웠다.
‘와, 다신 못 볼 줄 알았더니 여기서 또 만나네. 그러고 보니 그때도 국제선 탄다고 말했던 것 같아.’
[그러게 말입니다.]
‘유니폼 입고 있으니까 왠지 더 이쁜 것 같기도 하고.’
[제복 패티쉬 때문이겠죠.]
‘패티쉬?’
[가만 보면 주인님도 유니폼을 입은 여자들에게 은근히 약하시더군요. 지난번 간호사도 그렇고···.]
‘흐흐. 듣고 보니 그런 것 같아. 난 왠지 유니폼 여자들을 보면 괜히 벗겨보고 싶단 말이지. 간호사, 스튜어디스, 경찰, 군인···. 뭐 이런거 있잖아.’
[전형적인 증상입니다.]
‘말 나온 김에 보영이나 다시 벗겨볼까?’
[여기서 말입니까?]
‘안될 게 뭐야? 마침 내 옆자리도 비어 있는데.’
도훈의 옆 좌석은 예약이 캔슬 됐는지 공석이었다. 또 비즈니스석의 특성상 좌석 간 간격이 넓은 데다, 승객 대부분이 나이 많은 장년층이라 그런지 금방이라도 잠들 것처럼 눈을 감고 있었다.
도훈은 이륙하는 비행기의 긴장을 느끼며 얄궂은 웃음을 지었다.
‘지상에서 섹스는 지겨울 만큼 했으니, 한번 쯤 공중전도 나쁘진 않지.’
< 422. 도쿄 핫(TOKYO-HOT)-6- > 끝
ⓒ 성난불기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