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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435화 (408/2,000)

< 417. 도쿄 핫(TOKYO-HOT)-1- >

매끈하게 쭉 뻗은 다리는 허벅지 안쪽까지 훤히 비추었다.

‘헉, 설마 하의 실종?’

도훈은 놀란 나머지 허리를 좀 더 숙여 의자 밑으로 기어들어 가다시피 했다. 시선을 계속 올리자 올이 삐져나온 데님 소재의 핫팬츠가 눈에 들어왔다.

‘에이, 핫팬츠였잖아? 난 또···. 가만 근데 설마 저건?’

핫팬츠의 벌어진 부분 사이로 뭔가 거뭇거뭇 한 게 보였다.

도저히 팬티로 안 보이는 그것은···.

그때 건들거리던 발이 뚝 멈추더니 갑자기 책상 밑으로 머리가 쑥 들어와 도훈과 눈을 마주쳤다.

"?!"

도훈은 변태 취급을 받을까 두려워 서둘러 변명했다.

"바, 바닥에 지우개가 떨어져 가지고···."

"···안 물어봤는데?"

"아예, 실례했습니다."

도훈은 민망한 마음에 다급히 일어서다 책상에 머릴 처박고 말았다.

쿵-

"으억!"

머리가 깨어질 듯 아팠지만 어색하게 마주 보는 상황이 더 창피했기 때문에 그는 재빨리 책상 위로 올라아 아픈 머리를 감싸쥐었다.

‘아오, 쪽팔려. 빤스 한 번 보려다 이게 대체 무슨 꼴이람?’

[쪽팔린 줄은 아시니 다행이군요.]

‘야! 이건 오롯이 내 잘못이라고만 할 수 없다고. 노팬티로 독서실에 온 얘가 더 문제 아니냐?’

[비겁한 변명처럼 들립니다.]

‘아니, 혈기왕성한 남자라면 백이면 백 나같이 행동했을 거란 말이야.’

도훈이 머리를 감싸며 엎드려 있는데 누군가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저기."

고개를 들어 보니 책상 밑에서 민망하게 눈이 마주친 핫팬츠의 여성이었다. 가까이보니 생각보다 키가 작았고, 상의는 헐렁한 민소매 티를 입고 있었다.

‘독서실 오는데 핫팬츠에 민소매라니···. 일부러 사람 골탕 먹이는 의상도 아니고.’

도훈은 왠지 낚인 것 같아 짜증이 났지만, 핫팬츠 걸의 예쁘장한 외모에 차마 화를 낼 수 없었다.

‘흠, 그래도 제법 귀여우니까 봐주지.’

단발 머리를 노랗게 물들인 핫팬츠걸은 무척 도발적인 외향이었다.  귓불 아래 커다란 피어싱을 두 개나 한 것도 그렇고, 민소매 나시도 밑이 짧아 팔만 쳐들어도 배꼽이 보일락 말락 했다.

"괜찮으세요?"

"네?"

"그쪽 머리 말예요. 방금 엄청 세게 부딪힌 거 같았는데?"

핫팬츠의 걸이 염려했지만, 도훈도 남자인지라 여자 앞에서 약해 보이고 싶지 않았다.

"하핫! 뭘 이정도 가지고. 괜찮아요. 소리만 좀 요란했어요."

도훈이 멋쩍은 표정으로 뒤통수를 문지르는데 갑자기 손에 이상한 촉감이 들었다. 손을 눈앞으로 가져오니 손바닥 가득 시뻘건 피가 묻어 나왔다.

"으헉!"

"피, 피나는데?"

"좀 조용히 좀 합시다! 아까부터 진짜 너무하네!"

"거기 독서실 전세 냈어요?"

사방에서 야유가 들려오자 도훈은 피 나는 머릴 감싸 쥐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어흑, 쪽팔려! 이게 대체 무슨 창피람. 독서실 끊자마자 피를 보다니···.’

[머리가 깨진 걸까요? 손상 여부를 스캔해 보겠습니다.]

‘심한 상처는 아냐. 책상 밑 까슬까슬한 부분에 두피를 살짝 긁힌 거 같아.’

남자 화장실로 뛰쳐 들어간 도훈은 화장지에 물을 묻혀 피가 나는 부분을 꾹 눌렀다. 그의 말대로 단순 찰과상이었는지 금세 피가 멎었다. 거울을 보는데 스스로가 한심했다.

"젠장, 쪽이란 쪽은 다 팔고 다니는구먼. 하필 머리에 피가 날 건 뭐람?"

도훈이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화장실 밖을 나가는데 입구 앞에서 핫팬츠 여자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엇?"

"뭘 그렇게 놀래요?"

"아, 아니요···. 혹시 저 기다리신 거예요?"

"당연하죠. 사람이 머리가 깨져서 피가 철철 나는데···. 병원 안 가봐도 괜찮아요?"

여자는 반항적인 외향과는 달리 굉장히 착한 심성을 가진 것 같았다. 처음 보는 도훈이 걱정되어 계속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실에 도훈은 조금 감동했다.

‘흠, 그래도 누구 때문인지는 알고 있으니 다행이군.’

"피부가 살짝 긁힌 것 뿐이에요."

"그래도···."

"진짜 괜찮아요. 그냥 피를 보니까 놀랜 것 뿐이에요."

"알겠어요. 근데 사범대 생이세요?"

"엇, 그건 어떻게?"

"책장 위에 펼쳐진 전공서 봤어요. 암튼 반가워요. 저도 국성대 다니거든요."

"아, 그러시구나."

여자가 자연스레 손을 내밀자 도훈이 악수를 하려고 손을 마주 뻗었다. 그러나 여자는 다시 주먹을 말아 쥐더니 도훈의 손등을 툭 치며 피식 웃었다.

"웃겨. 요새 누가 악수 같은 걸 해요? 아재 세요?"

‘아재면 어쩔래?’

"하핫. 제가 이런 건 익숙하지 않아가지고."

그때 핫팬츠 걸이 도훈의 상의 포켓이 각지게 튀어나온 걸 보고 물었다.

"혹시 담배 피세요?"

"아, 네."

"기왕 나온 김에 옥상에서 머리 좀 식히고 들어가죠."

여자는 거침이 없었다.

처음 보는 사인데도 도훈을 편한 친구처럼 대 했다.

도훈은 오랜만에 여자에게 휘둘리는 느낌에, 과거의 찐따 시절로 되돌아간 기분이었다.

‘재밌는 아이구나. 키는 밤톨만 한 게 의외로 대범하단 말이지? 대체 뭐 하는 여잘까?’

[으이구. 그 세 관심이 생기셨습니까? 하여간 이쁜 여자만 보면 사족을 못 쓰는 군요.]

‘이뻐서 그런 게 아니라 성격이 특이하잖아. 제법 착하기도 하고.’

[얼씨구. 몸매가 착한 거겠죠.]

로시의 말대로 핫팬츠의 여자는 짤막한 키에도 불구하고 비율이 무척 좋았다. 매끈하게 뻗은 다리도 그렇지만, 민소매 사이 벌어진 틈으로 살짝 부유방이 드러나 있었다. 작은 가슴에선 결코 볼 수 없는 지방층이자 풍유의 상징이기도 했다.

탁 트인 독서실 옥상 위에 오르자 여자가 도훈에게 물었다.

"근데 사범대생이 이 독서실 오는 건 처음 보네요?"

"아는 사람들 피해서 멀리 왔어요. 공부에 방해될 것 같아서요."

"아앙, 은근히 범생 스타일이시네?"

그녀는 담배에 불을 붙이더니 도훈을 향해 후- 하고 연기를 내뿜었다. 연기가 들어가자 코가 시큼해진 도훈이 콜록콜록 헛기침을 했다.

‘뭐야? 나 지금 도발하는 거야?’

[그건 모르겠지만 주인님을 쉽게 보는 건 분명해 보이는 군요.]

‘뭐? 천하의 이도훈을? 어처구니가 없네. 한 입거리도 안될 것 같은게.’

그때 핫팬츠의 여자가 다시 말했다.

"나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지 않아요?"

"네? 어디서요?"

"에이, 다 알면서 괜히 모른 척하긴."

여자가 피식 웃으며 옆구리를 쿨 찔렀다. 하지만 도훈으로선 처음 보는 여잘 알 도리가 없었다.

‘쟤 뭐래는 거야? 지가 무슨 연얘인이라도 돼?’

"맞아요. 토네이도의 보컬, 류진. 저라 구요."

"보, 보컬?"

"에엥? 진짜로 몰라요?"

‘노란 머리랑 피어싱이 제법 튄다고 생각은 했지만 설마 보컬일 줄이야···.’

도훈이 뭐라 할 말이 없어 머뭇거리는 데 류진이 김빠진 표정으로 푸념했다.

"에이, 진짜로 공부만 했나 보네. 저희 나름 홍대에서 잘나가는 밴든데···."

"아아! 밴드 셨구나."

"됐어요. 난 또 내 팬인 줄 알았네."

류진이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담배를 비벼 껐다.

그럼 처음부터 그녀는 도훈이 자신을 찾아온 팬이라고 착각했던 걸까?

"근데 무슨 음악 하세요?"

"헤비 메탈요."

"헤, 헤비요?"

"하긴 헤비메탈 하기엔 제가 너무 가볍긴 하죠? 하핫!"

류진이 꺼낸 농담에 도훈은 울컥 살인 충동을 느꼈다.

‘내가 아재면 넌 아줌 개그냐? 어처구니가 없어가지고.’

[둘 다 도긴개긴 같은데요?]

‘내가 개야!’

[네, 개라서 좋겠습니다.]

‘아씨, 왜 욕같이 들리지?’

[······.]

"너무 공부만 말고 음악 좀 듣고 사세요. 선생 될 사람들이 이렇게 감성이 메말라서야 원···."

류진이 쯧쯧 혀를 찼다.

도훈은 선생 될 사람과 헤비메탈 감성 사이에 대체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 것인지 묻고 싶었지만, 괜히 말다툼을 하기 싫어 꾹 참았다.

‘얼굴은 예쁘장하게 생겨가지고··· 아주 음악에 영혼을 팔아 버렸구나. 쯧, 그냥 수수하게 다니면 더 예쁘겠구만.’

담배를 다 핀 유진은 곧장 내려가지 않고 옥상 난간으로 향했다. 그녀는 타이타닉에 나온 여주인공처럼 팔을 벌리더니 밤바람을 온 몸으로 맞았다.

"아~ 놀고 싶다. 이렇게 날 좋은 날, 독서실에나 처박혀 있어야 하다니···."

도훈은 그녀의 동작이 왠지 과장스럽고 허세가 가득 차 있다고 생각했다.

‘독특한 정도가 아니라 어딘가 정신이 이상한 얘 같구나. 헤비메탈이 그녀를 망쳤어.’

"근데 그쪽은 이름이 뭐예요?"

옥상 밖으로 펼쳐진 도심의 야경을 감상하며 류진이 물었다.

도훈이 슬쩍 그녀 곁으로 다가가 말했다.

"도훈이에요. 이도훈."

"도훈."

류진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도훈의 이름을 되뇌었다.

"류진씨는 그럼 외잔 거에요?"

"네. 근데 이름만 부르면 너무 여성스러운 것 같아 그냥 성이랑 같이 써요. 류진은 왠지 중성적이잖아요. 그렇지 않아요?"

도훈이 그녀의 짧은 단발머리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머리도 짧게 친 건가? 숏컷보단 단정하게 머릴 길러도 예쁠 것 같은데···.’

류진은 여전히 야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서울의 스카이라인이 화려한 조명으로 어우러지며 운치 있는 분위기를 자아냈다.

"···아깐 왜 그랬어요?"

류진의 뜬금없는 물음에 도훈이 움찔 놀랐다.

"네?"

"내 다리 훔쳐봤잖아요. 내가 모를 줄 알았어요?"

"아, 아니 그게···."

정곡을 찔린 도훈이 움찔 놀란 기색을 보이자 류진이 피식 웃었다.

"하여간 남자들이란···. 그래도 그렇게 대놓고 보는 사람은 처음 봤어요. 완전 스토컨 줄?"

"스, 스토커라뇨? 이 독서실 오늘 처음 왔는데."

"그래서 물었잖아요. 제 팬이냐고. 가끔 저 쫓아다니면서 성가시게 구는 애들 있거든요."

도훈은 그녀의 말이 납득이 갔다. 귀여운 용모와 상반되는 헤비메탈을 하는 그녀라면, 분명 인기가 많을 것이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닌데··· 아무튼 사과할게요."

"괜찮아요. 보라고 이렇게 입고 왔는데 뭘."

"네?"

류진이 고개를 돌리더니 도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남자들 보라고 입고 왔다고요, 이렇게."

류진이 슬쩍 가슴을 내밀자 민소매 사이로 풍만한 가슴이 도드라졌다. 도훈은 그제야 그녀의 의상에서 눈에 띄는 점을 찾았다. 가슴 양쪽에 볼록 꼭지가 튀어나와 있었던 것이다.

‘흐억, 노팬티에 노브라?’

도훈의 시선을 즐기는 듯 유진의 입꼬리가 더욱 올라갔다.

"난 시험 기간되면 스트레스 많이 받는 타입이거든요."

"아···."

"그래서 갑갑한 건 다 벗어 버리고 싶어요."

"네···."

‘이, 이상한 여자다.’

도훈은 생전 처음 보는 타입에 몹시 당황했다. 이제껏 주도적으로 여자를 공략해 오던 그에게 있어서, 류진은 전혀 생소한 느낌이었다.

그녀는 도훈을 풋내기 취급하듯 가슴을 들이밀며 코너로 몰아 부쳤다.

"솔직히 말해봐요. 어디까지 봤어요?"

"네, 네?"

"아까 다리 볼 때. 다리만 본 거 아니죠?"

"아, 아니 그게···."

뒷걸음질 치던 도훈이 난간에 등을 부딪히며 멈춰섰다.

그때 도훈에게 바짝 다가온 류진이 도훈에게 속삭였다.

"···원하면 더 보여줄 수도 있는데."

크헉!

[와, 정말 과감한 여자군요. 주인님이 이렇게 쩔쩔 매시는 모습은 처음 봅니다.]

‘아니, 해도 해도 장난이 지나치잖아.’

그때 머릿속에서 종이 울리는 것처럼 띠링- 하는 소리가 두뇌를 강타했다.

‘이, 이소리는?’

[미션 입니다! 주인님, 간만에 미션이!]

‘읊어봐.’

[넵. 이번 미션은 ‘육식녀에게 잡아 먹혀라’ 미션입니다.]

‘엉? 공략하라가 아니고?’

[네. 이제까지 늘 여자를 공략하는 역할을 했던 주인님이 드디어 피 공략자로 뒤바뀌는 것이지요. 이른바 롤 체인지 미션입니다.]

‘무, 무슨 그런 해괴망측한···.’

[주의사항은 결코 주인님이 섹스를 주도해선 안 된다는 점입니다.]

‘뭐라?’

[앞서 말했듯이 이번엔 주인님이 당하는 역할입니다. 육식녀인 류진 양에게 일방적으로 당하는 입장이 되어야 이번 미션을 완수 할 수 있습니다.]

‘크헉. 미친 난이도 보정 보소?’

[장소는 옥상 한정입니다. 미션을 수락하시겠습니까? 수락까지 1:32초 남았습니다.]

도훈은 오랜만에 뜬 미션이 반가웠지만, 그 내용을 듣고는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항상 갑의 위치에서 주도권을 쥐었던 그에게, 을로 전락하라는 롤 체인지가 달가울 리가 없었다.

‘그러니까 류진이라는 저 노출 보컬이 시키는 데로 끌려가야 된다는 말이야?’

[네.]

‘어떤 플레이를 하더라도?’

[네, 100% 수동적인 섹스로만요.]

‘으으!’

[고민할 시간 없습니다. 미션 수락까지 1분 11초!]

‘제, 젠장!’

도훈은 지난 번에 봤던 대도서관의 스킬북 가격을 떠올렸다.

무려 만 포인트가 넘는 스킬 북.

지금부터 차근차근 포인트를 확보해 놓지 않으면, 막상 고수가 되어도 스킬을 배우기란 요원한 일처럼 여겨졌다.

[수락하시겠습니까?]

‘그래! 나도 모르겠다. 그냥 당하면 된다 이거지?’

[네. 디스플레이 설명을 참조 바랍니다.]

-육식녀에게 잡아먹혀라.-

*육식 성향을 가진 여성에게 강제로 따먹히는 미션입니다. 사정 전까지 절대 관계를 리드해선 안되며 상대의 요구를 100% 수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성공 보상으로 2,000포인트와 ‘비상 지갑’이 제공됩니다.

*비상 지갑 속엔 언제나 만원권이 상비되어 있으며, 필요시 꺼내 쓸 경우 24시간 단위로 리젠 됩니다.

*제한된 장소 ‘옥상’을 이탈하면 자동으로 미션이 소거됩니다.

*남은 시간 : 30Min

< 417. 도쿄 핫(TOKYO-HOT)-1- > 끝

ⓒ 성난불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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