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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421화 (394/2,000)

< 403. 글 잘쓰는 잘생긴 오빠-10- >

[그때 주인님께서 혜공과 혜민 스님의 내력을 흡수하셨잖습니까?]

‘아아, 그랬었지.’

도훈은 희원 보살의 공략 당시 기연을 만나 폭발적인 성장을 이룬 적이 있었다. 그때 흡수한 내력에 힘입어 그의 스킬은 순식간에 몇 단계의 강화를 성공시켰다.

[플레이어나 PK단이 가진 마력 또한 흡수 가능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중수에서 랭커까지 가는 길이 더욱 빨라지겠죠.]

‘호오라, 이건 마치 하이랜더 같은 개념인건가?’

[네?]

‘왜, 옛날에 유명한 영화 있잖아. 불사의 삶을 사는 전사들 이야긴데, 서로 죽이면서 상대방 힘을 빼앗는.’

[음, 개념적으론 비슷할 수도 있겠군요.]

‘한마디로 PK단을 잘만 이용하면 빠른 레벌업을 노려볼 수 있다는 소리네.’

[이론적으론 가능은 합니다만, 너무 위험하죠. 굳이 위업과 미션으로도 충분한 성장을, 목숨 걸고서 앞당겨야할 이유가 있을까요?]

‘아니 뭐, 꼭 그렇겠다는 건 아니야. 좌우간 그 아이템 구매해줘.’

[킬러들의 수다 말씀이시죠?]

‘응. 포인트도 소중하지만 어쨌든 보험 하나 정돈 들어 두는 편이 좋을 것 같아. 로시 네 말마따나 내가 보통 하수는 아니잖아. 신들도 관심을 기울일 정도니.’

[조금 이른 감은 있긴 한데···. 해당 아이템을 구매하시면 잔고가 거의 바닥이 됩니다. 정말로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래. 내 경험상 연금과 보험은 일찍 드는 편이 좋더라. 괜히 호미로 막을 거 가래로 막기 싫으면.’

[알겠습니다. 주인님 생각이 정 그러하시다면···.]

잠시 후 평범한 보조 베터리가 지정된 위치로 전송되었다.

도훈은 적들의 접근을 감시하는 장치가 어째서 보조 베터리의 형상을 띄고 있는지 궁금했다.

‘근데 웬 보조배터리야? 무슨 의미가 있는 건가?’

[상시로 들고 다녀야하니 실용성 부분을 염두 한 것 같습니다. 참고로 내부엔 아크 원자로가 탑재되어 충전 없이 평생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흐익! 워, 원자로라고?’

도훈은 무슨 폭탄이라도 되는 냥 보조 배터리를 멀리 집어 던졌다. 그러다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닫고 뒤통수를 감싸 쥔 체 바닥으로 바짝 엎드렸다.

‘···후웁, 후웁, 씨발 터지는 거 아니냐?’

[안심하십시오. 아크 원자로는 마이크로 나노 기술이 집약된 천상계 최신 발명품입니다. 절대 폭발한다거나, 방사능이 세어 나오는 일은 없습니다. 수소차가 수소폭탄은 아니지 않습니까?]

‘미, 미친! 아무리 그래도 기껏 핸드폰 충천하는데 소형 원자력 발전소를 집어넣을 구상을 하다니! 거기 개발자 중에 혹시 토니 스타크라도 있는 거야?’

[네?]

‘아, 아니다.’

띠띠띠- 띠리잉!

철컥-.

그때 원룸 복도 밖에서 전자키를 여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도훈은 옆 방 사람이 늦게 귀가했나 보다 하고 생각하다 갑자기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벌떡 일어섰다.

‘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왜 그러십니까?]

‘방금 못 들었어?’

[문 여는 소리요? 밤 9시니 귀가하는 사람도 있겠죠.]

‘그게 아니라, 우리 옆방이잖아!’

[네?]

‘하서윤! 옆방의 BJ!’

***

그녀가 돌아왔다.

한 달 전 지방으로 공무원 시험을 치러 간다며 편지 한 통만 달랑 남기고 떠나버린 그녀가.

도무지 그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정말로 서윤일까? 혹시 부동산에서 나온 사람아닐까?’

[이 시간에요? 지금 저녁 9시가 넘었습니다.]

‘그렇다면 혹시 도둑···.’

[어느 도둑이 당당히 정문 비번을 누르고 들어간단 말입니까?]

‘흐음.’

[정 궁금하면 한 번 확인해 보시죠. 오랜만에 봤는데 인사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나는 방문의 문손잡이를 돌리려다가도 이내 한숨을 쉬고 돌아섰다.

‘···못 보겠다.’

[왜요? 반갑지가 않으신 건가요?]

‘그럴 리가. 다만 서현이가 나를 먼저 찾질 않는데···. 내가 모른 척 해야 하는 건가도 싶기도 하고.’

공무원 시험을 보겠다며 지방으로 떠난 그녀다.

남긴 편지에선 합격하면 다신 돌아오지 않겠다고 했다.

그런 그녀가 돌아왔다는 건 어쩌면 시험에 낙방했다는 의미.

다시 돌아와 기쁜 마음보다, 실망한 그녀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다. 나보다 그녀가 더욱 민망할 것이다.

‘안타깝군. BJ일도 그만두면서 나름 치열하게 준비했던 것 같은데···. 합격률 높이려고 고향까지 돌아가서.’

[흐음, 하지만 정말로 낙방한 거라면 찾아가서 위로를 해주는 편이 좋지 않을 까요?]

‘아니야. 정말 위로 받고 싶었다면 서현이가 나를 먼저 찾았을 거야. 서울에 온다는 말도 안하고, 늦은 시간 몰래 돌아온 걸 보면, 나를 피하고 싶은 마음 일거라 생각해. 위로 받고 싶은 사람이 원하지도 않는데 위로해주는 건 위로가 아니지.’

[아아···. 어딘가 애잔하군요. 아버지 병수발 때문에 BJ일까지 해야 했던 서윤양이 시험에 낙방하다니···.]

‘원래 청춘은 고달픈 법이지. 유독 서윤이가 혹독하게 겪는 것 같긴 하지만.’

문 앞을 서성이고 있는데, 다시 옆방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방에서 나오는 소리다.

뚜벅뚜벅-

다시 발걸음 소리가 나다가 내 방문 앞에서 뚝- 멈춰 섰다.

고작 5cm의 철문을 사이에 두고 서윤이가 있었다.

나는 먼저 문을 열고 인사를 할지, 아니면 그녀가 노크하길 기다릴지 수없이 고민했다.

그때,

똑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도훈이 안에 있니?"

[서윤양이 확실하군요. 이 목소리는.]

‘그러게. 오랜만에 들으니 반갑네.’

[얼른 마중 나가셔야죠.]

‘그럴까?’

문을 열려고 하는 순간 다시 문밖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없었으면 좋겠다. 도저히 얼굴보고 말할 자신이 없어서."

아. 나는 그 한마디에 얼음처럼 굳어 버렸다.

손잡이를 향하던 내 손은 악수를 거절당한 사람처럼 뻘쭘하게 허공을 방황했다. 머쓱해진 얼굴로 뒤통수를 긁적이는데, 내가 집에 없다고 생각했던지 서현이 혼잣말을 시작했다.

"부동산 문제로 정리할 게 있어서 잠깐 올라왔어. 다시 여기 올 일은 없을 줄 알았는데···."

"······."

"혼자 뭐라 떠드는 줄 모르겠다. 그냥 오랜만에 얼굴 보고 싶더라. 넌 날 이해해준 몇 안 되는 사람이었으니까."

"······."

"나, 시험 합격했어. 하하. 너한테 엄청 자랑하고 싶었는데 도저히 용기가 안 났어. 널 보고 싶기도 했지만, 이제 BJ했던 시절은 묻어 두고 싶어서···. 넌 내가 어떤 사람인지 너무 많이 알고 있으니까."

"······."

"이제 조용히 살 거야. 혼자 강아지나 키우면서. 어쩌면 좋은 남자 만나서 결혼할지도 몰라. 지금 연수원 나가는데 남자들이 엄청 들이댄다? 하하, 역시 공무원이라 그렇겠지?"

나는 그녀의 씁쓸한 독백을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불행한 과거를 지우고 싶어 하는 그녀 앞에, 이제는 떳떳한 공무원이 된 그녀 앞에 나설 용기가 나질 않았다.

"···나 사실 무서워. 혹시나 누가 내 얼굴을 알아볼까봐."

"······."

"아직도 인터넷에서 나를 찾는 사람들이 있더라. 가영이 어디로 사라졌냐고. 가영이 어디서 본 것 같다고. 대물 배트맨도 찾고."

"······."

"역시 사람은 죄 짓고 살면 안 되는 건가 봐. 돈만 벌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와서 돌이켜 보니 너무 후회 돼."

"······."

"에효. 그만 가봐야겠다. 심야버스타고 내려가야 하거든. 이젠 정말로 안녕이구나. 잘 있어, 도훈아. 널 영원히 잊지 못할···."

나는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이대로 그녀를 보내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다.

철컥-

문을 열자 양 손 가득 쇼핑백을 들고 있던 서윤이 놀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도, 도훈이 안에 있었어?"

나는 아무것도 못 들은 것처럼 심드렁하게 말했다.

"뭐야? 오랜만에 왔으면 얼굴이나 비출 것이지."

"아, 아니 나는···."

공무원이 된 서윤이 무척 반듯해 보였다.

출근복을 입고 온 듯 말끔하게 차려입은 오피스 룩.

지금의 모습에선 야한 속옷을 훌렁 훌렁 벗어 던지며, 시청자 앞에서 분수 쇼를 펼치던 음탕한 가영의 흔적은 전혀 찾아 볼 수 없었다. 그녀는 완전히 새 출발을 한 것이다.

나는 뻘줌하게 서있는 그녀에게 다가가 가볍게 포옹했다.

"잘해라. 앞으로도 너의 인생에 좋은 일만 가득하길."

"도, 도훈아···."

"여기서 잊었던 일은 다 잊어. 사람은 누구나 실수하면서 배우는 거야. 이제 새 인생을 멋지게···흡!"

감정이 복받쳐 있던 서윤이 갑자기 나를 부등켜 안았다.

물컹하는 가슴이 온 몸을 짓눌렀다.

"흑흑! 도훈아 보고 싶었단 말이야!"

그녀가 어린애처럼 울고불며 나에게 매달렸다. 바닥으로 떨어진 쇼핑백이 옆으로 넘어지며 안에 있던 도구들이 우르르 쏟아졌다.

데구르르.

발치에 뭔가 닿기에 쳐다보니 울퉁불퉁 돌기가 튀어 나온 진동 딜도가 보였다.

"······."

"아, 아니 이건 버, 버리려고, 그, 그러니까 이삿짐 아저씨가 보면 안 되니까···."

서윤이 민망한 듯 얼굴이 뻘개져 고개를 푹 숙였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딜도를 주워 쇼핑백에 담아 주었다.

"이삿짐 빼나 보네?"

"으, 응. 부동산에서 새로 세입자 구했으니 바로 방을 빼 달래서. 이것저것 처리하고 짐도 몇 개 빠뜨린 게 있어서···. 내일 짐 빼러 사람들 올 거야."

"그렇구나."

원룸 복도에 서서 얘길 하니 뭔가 어색했다.

"잠깐 들어올래?"

서윤은 망설였다.

나와의 추억이 서려있기도 하지만,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가 공존하는 곳. 과거를 떨쳐내고자 하는 그녀에겐 부담되는 공간일 것이다.

나는 다시 제안했다.

"아님, 어디 커피숍이라도?"

"아, 아니야. 굳이 돈 아깝게 뭘."

서윤이 방으로 들어왔다.

거진 한 달의 일이었다.

***

서윤은 방에 앉아 그간 못 다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시시콜콜한 신변잡기에서부터 지금 다니는 연수원 이야기까지. 처음엔 낯설어 하던 서윤도 어느새 적응이 되었는지 신나게 떠들었다.

"글쎄, 그 사람이 자기 핸드폰을 못 찾겠다면서 잠깐만 내 폰좀 빌려 줄 수 있냐는 거야."

"번호 받으려는 수작이네."

"그치?"

"그래서 빌려줬어?"

"아니. 너무 느끼하게 생겼더라고. 베터리 없다고 해버렸어. 히히."

"야. 그것도 너무 뻔한데. 요즘 보조베터리 안 들고 다니는 사람이 어딨다고?"

도훈이 방금 전 천상계에서 수령한 보조베터리형 아이템을 꺼내 보였다.

"우아, 이거 이쁘게 생겼다. 나 잠시 충전 좀 해도 돼?"

"응. 써. 베터리 빵빵할 거야."

서윤이 베터리 연결선을 꽂아 충천하자 핸드폰에 충전량 그래프가 10% 미만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녀는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어쩌지? 충전 좀 하다 가야겠는데. 늦게 돌아가는데 폰 꺼져 있으면 부모님이 걱정하실 거야."

"그래? 그럼 충전 하다가 가. 근데 버스 시간 안 늦겠어?"

서윤이 시계를 보더니 말했다.

"심야에도 차는 계속 있어. 근데 광주 도착하면 너무 늦을 것 같은데···."

"아···."

"그냥 자다가 새벽에 출발할까?"

"낼 출근해야 되는 거 아냐?"

"응. 근데 새벽차 타고 가면 늦진 않을 거야."

"옷은 어떡하고?"

"내 방에 몇 벌 있으니 그걸로 갈아입어도 돼."

"음···. 부모님이 걱정할 것 같은데?"

"퇴근하고 올라오느라 일이 늦어졌다고 하지 뭐. 여기 내 방도 있으니 자고 간데도 이해해 주실 거야."

"그래도 새벽차 타고 내려가서 바로 출근하려면 피곤할 거야."

도훈이 한사코 자신을 밀어내려 하자 서윤이 섭섭한 목소리로 따졌다.

"너 내가 자고 가는 거 싫어서 그래?"

"아, 아니."

"근데 왜 날 보내려고 해?"

‘하-. 참나. 혼자 그렇게 떠들어 놓고선···.’

도훈은 서윤을 배려하는 것이었다.

과거와 단절하고 싶어 하는 그녀에게, 자신은 짐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와의 추억은 합방의 추억이고, 그를 생각할 때마다 잊고 싶은 BJ시절이 떠오를 것이다.

도훈은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것보다, 그녀의 행복을 빌어주고 싶었다.

"그냥. 이제 서로 입장이 달라졌잖아."

"뭐가?"

"난 학생이고 넌 직장인이고."

"그래서?"

"너도 이제 좋은 사람 만나서 결혼해야지."

"야! 진짜 너···."

서윤은 얼굴이 화끈거렸다.

분명 자신의 혼잣말을 다 듣고 하는 소리일 것이다.

그녀가 변명했다.

"아, 아니 그냥 그럴지도 모른다는 거지. 내가 그렇게 안면몰수 할 사람으로 보이니?"

"···괜찮아."

"응?"

"안면몰수해도 괜찮다고. 서윤이 네 인생에서 이도훈이라는 사람은 잊혀져도 상관없어."

"도, 도훈아."

"새출발하기로 했잖아. 기왕 마음먹었으니 이제 나 같은 건 잊어 버려. 나도 너 잊을 테니."

"야! 너 어떻게 나한테 그런 말을···."

"너가 미워져서 그러는 게 아니야. 오히려 너를 응원하고 싶어서 그래. 떳떳치 못한 과거지만 보란 듯이 잘 살수 있다는 걸 보여달라고."

"흑···."

도훈은 눈물을 글썽거리는 서윤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울긴 왜 우냐. 그 어렵다는 공무원 시험도 합격한 사람이."

"흑흑, 난···."

"그래도 대단하다. 네가 아주 자랑스러워. 내가 너 될 줄 알았···."

"도훈아!"

울먹이던 서현이 갑자기 도훈에게 덤벼들었다.

도훈을 덮친 그녀가 뜨거운 키스를 퍼부었다.

"읍읍! 이러면···."

"몰라! 지금은 마음 가는 데로 할 거야!"

바닥으로 쓰러진 도훈에게, 옆으로 기울어진 쇼핑백에서 딜도의 끄트머리가 눈에 들어왔다. 그는 그 와중에도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근데 정말로··· 저거 버리려고 가져간 건가?’

< 403. 글 잘쓰는 잘생긴 오빠-10- > 끝

ⓒ 성난불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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