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1. 글 잘쓰는 잘생긴 오빠-8- >
***
번갯불에 콩 구워 먹는 섹스가 끝났다.
뒤처리를 끝낸 희주가 만족스러운 듯 말했다.
"아, 오랜만에 제대로 느꼈네. 오빤 어쩜 그렇게 섹스를 잘하세요?"
"글쎄? 물건이 커서?"
"봉구도 물건은 크죠. 근데 크다고 다 잘하는 건 아니던데?"
희주가 남자친구 흉을 봤다.
아무리 봐도 이 커플은 오래가긴 글렀다.
"물론 크다고 다 잘할 순 없겠지. 하지만 작은 것 보다야 낫지."
희주는 소물의 고통을 모른다.
풀 발기 5cm시절의 나는, 제발 평균만 되어도 좋겠다고 간절히 바랬었다.
"솔직히 작은 애들은 상대하기도 싫어요. 저번에 한 번 나이트에서 잘생긴 오빠랑 원나잇 했는데, 와 진짜 넣는 줄도 몰랐다니까요? 전 제가 허벌 된 줄?"
희주는 자기 비하식 농담도 아무렇지 않게 했다.
그녀에게 섹스란 대체 무엇일까?
"너 근데 몰래 바람 피워도 아무렇지도 않은 거야?"
희주가 피식 웃었다.
"바람은 무슨 혼자 피나요? 다 쿵짝이 맞으니까 하는 거지."
하긴. 나도 똑같구나.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랄 순 없는 일이다.
"그래. 아무튼 적당히 해. 그러다 임신이라도 하면···."
"걱정 마요. 피임 알아서 잘하고 있으니까. 오빠나 조심하세요. 나중에 얼굴도 기억 못하는 여자가 배불러서 찾아오면 어떡하려고 그래요?"
역으로 희주가 나를 걱정했다.
하지만 그 점에 대해선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나에겐 위대한 유산이라는 놀라운 패시브가 장착되어 있다.
"그래. 걱정해 줘서 고맙다. 난 이제 수업 갈란다. 같이 나가면 의심받으니까 좀 있다 나와."
"네."
"그리고 너, 남친한테 잘 좀 해. 누가 보면 남친 아니고 머슴인 줄 알겠더라."
"히히. 알았어요."
희주를 두고 노래방을 나왔다. 어두운 지하에 있다가 지상으로 나오자 유난히 햇살이 쨍했다.
시원한 아이스커피와 담배가 땡기는 시간.
길 빵을 하긴 뭐했으므로 편의점에서 캔커피 하나와 담배를 산 뒤 파라솔이 놓인 야외 벤치에 앉았다.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로시와 대화를 나누었다.
‘그나저나 업적도 안 걸린 섹스를 연달아 해버렸네. 중수까지 계속 달려야 되는데 말이야.’
[아시긴 아시는 군요. 자제좀 하십시오.]
‘알았어. 현재 달성 가능성 높은 업적이 뭐가 있지?’
[어려운 질문이군요. 현재 대학 내에서 이룰 수 있는 업적은 거의 완료 되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남아있다고 해봐야, 난이도가 극악인 것들뿐이라.]
‘대충이라도 말해봐.’
[우선, 숨겨왔던 나의···.]
‘아쫌! 그딴 비역질은 빼고.’
[그렇다면 육보시라든가 육덕녀와 육떡치기는 어떻습니까?]
‘음, 육보시가 70세 이상의 비구니랑 하는 거였나?’
[맞습니다. 육덕녀 위업은 고도비만이 여성을 상대로 하룻밤 6번의 섹스를 이루는 업적이고요.]
‘둘 다 너무 극단적인데. 다른 건 없어?’
[진행 중인 업적도 있습니다. 친구의 친구를 사랑했네랑, 백마타고 흑마타고, 인종의 도가니탕 등요.]
‘친구의 친구라는 게 지인의 여친을 공략하는 거였던가? 엇, 혹시 방금 전 희주는 해당 안되나?’
[조봉구 군은 지인이라기엔 겨우 오늘 만난 사이라서요. 주인님의 지인이라고 한다면 학과 동기나 선후배를 지칭합니다.]
나는 여자 친구가 있는 성수 등을 떠올렸다.
곰같은 덩치에, 나를 항상 챙겨주는 착한 선배.
‘···음, 그건 좀 아닌 것 같아. 바람을 핀다한 들 주변에 민폐를 끼치고 싶진 않거든.’
[아니면 저번에 백마는 타셨으니 흑마는 어떠신가요?]
백마면 사라? 그나저나 사라와 스테파니가 미국으로 간지도 한참 됐네. 의붓 여동생 혜은이도.
‘혜은이는 잘 있으려나?’
[궁금하면 연락 하실 수 있지 않습니까?]
‘···아니야. 이제껏 길러준 부모가 친부모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으니 몹시 혼란스러울 거야. 스스로 정리할 시간을 줘야지. 괜히 먼저 연락했다 겨우 잡은 마음을 흔들 것 같아서.’
[의외로 여동생분에 대한 마음이 극진하시군요.]
‘피붙이는 아니어도 어쨌든 남매니까. 아, 맞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 지연이가 고은성 조만간 귀국한다지 않았던가?’
[그 재벌 집 여식 말이죠? 네.]
‘은성이도 제법 귀여웠는데···. 지 오빠랑은 너무 다르단 말이지.’
은성에 이어 고성민이 떠오르자 갑자기 볼이 씰룩거렸다.
혜은이를 노리던 쓰레기 재벌 3세.
창피를 주고 끝내긴 했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마음에 안 드는 녀석이다.
‘그딴 새끼가 무슨 작가나부랭이라고···. 아! 내 소설. 민주한테 연락해 봐야겠다.’
나는 공모전 제출할 소설을 깜빡한 게 떠올라 민주에게 문자를 남겼다. 민주는 한참 일하는 중인지 대답이 없었다. 그녀에게 답신이 온 것은 마지막 수업이 끝날 무렵이었다.
-민주 : 소설 제가 다 타이핑해 놨어요, 주인님♡ 메일로 보내드릴까요?
-도훈 : 응, 고마워.
-민주 : 뭘요, 히잉. 근데 세미나 끝나고 바로 회식 있데요. T_T 주인님 보고 싶었는데···.
-도훈 : 다음에 기회가 또 되겠지. 서현이는 잘 둘러 넘겼니?
민주는 세미나로 바쁜지 평소답지 않게 답장의 텀이 늘어졌다.
-민주 : 네. 조교실 쳐들어와서 미친년처럼 날뛰길래 따끔하게 혼내줬어요. 다음에 한 번 따로 불러서 말하려고요.
-도훈 : 집착이 심한 아이야. 조심해야 돼.
-민주 : 네. 파일 막 보냈어요.
민주에게 파일을 건네받아 공모전 심사를 하는 곳으로 메일을 보냈다. 이제 결과만 기다리면 되겠군.
***
세 사람은 몹시 지쳐보였다.
특히 PC방 사장 조대근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옷은 찢어지고, 입가 주변으로 핏자국이 가득했다.
"헉헉. 역시 체술가라 그런지 중수밖에 안되는데 엄청 강하구만."
"그러게요. 하마터면 뒤질 뻔 했네."
동네 백수처럼 생긴 창범이 쓰러진 사람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굉장한 근육질을 자랑하는 젊은 사내였는데, 누군가 그의 얼굴을 봤다면 깜짝 놀라고 말았을 것이다.
"현역 UFC 선수다운 실력이었네요. 어우, 전 형님이 힘으로 밀리는 건 처음 봤잖아요."
"그러게. 스킬을 죄다 그쪽 계열로 몰빵했나봐. 어쨌든, 미호가 가장 수고했어."
미호 역시 비오듯 땀을 흘린 상태였다. 땀에 젖은 머리칼을 쓸어 올리며 미호가 말했다.
"아니에요. 그나저나 어제 겨우 양기 보충 했는데 술법 쓰느라 다 소모시켜 버렸네."
"어? 눈가에 주름살!"
"정말?"
미호가 화들짝 놀라 클러치에서 파우더 통을 꺼내 열었다.
거울을 통해 꼼꼼하게 눈가를 살피는데 창범이 배를 잡고 웃으며 말했다.
"우하하, 뻥이었는데!"
그 말을 하는 순간 미호의 머리가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그녀의 동공은 붉게 물들고, 귀엽던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내가 그딴 걸로 농담하지 말랬던 것 같은데?"
"흐익, 서, 설마 두, 두나?"
미호의 아홉 인격 중 가장 다혈질인 두나가 튀어 나오자, 창범이 오금을 지리며 침을 꼴딱 삼켰다.
지난 번 폭주했을 때는 건물 하나를 통째로 전소 시켰던 사실을 떠올렸다. 그 덕에 능력자 협회에서 증거 인멸을 하느라 엄청난 수고를 감당해야 했다는 것도.
"아, 아니 난 그냥···."
"두나. 그만 둬."
대근이 두 팔에 푸른빛을 두른 체 만류하자 두나로 변한 미호가 그의 눈치를 살폈다.
괴력 장사.
평범한 동네 아저씨인 대근을 칭하는 별칭이었다.
온 힘을 개방하면 혼자 승용차도 너끈히 들어 올린다는 괴물.
표독스러운 표정이 사라지고, 다시 본래 표정으로 돌아온 미호가 창범을 향해 경고했다.
"다신 그딴 걸로 놀리지 마. 확 열 받으면 정기 쏙 빨아서 해골바가지로 만들어 버릴 테니까."
"흐익, 알았어요. 저도 젊은 나이에 복상사로 죽고 싶진 않거든요."
창범은 겁먹은 와중에도 여전히 깐족거렸다. 곧 맞아 죽어도 할 말은 하고야 마는 성격다웠다.
대충 상황을 마무리한 대근이 말했다.
"창범이 너 본부에 연락해서 뒷수습 좀 해달라고 해. 결계 덕에 목격자는 없지만, 피해가 상당한 것 같으니까."
"네네, 사장님. 여부가 있겠습니까."
"확, 그냥."
"해요. 한다고요. 쳇."
창범이 통화를 하는 사이 대근이 조심스럽게 미호에게 말했다.
"오늘 좀 무리한 것 같은데 힘들면 채음 보양이라도···."
"왜? 오빠가 한 번 빨려 주게?"
‘흐익, 저번에 그 색녀구나.’
순식간에 또 다른 인격으로 바뀐 미호가 물었다. 한바탕 전투가 끝나면 중심인격의 지속력이 감소하며, 그녀의 안에 있던 아홉 인격이 번갈아 튀어 나왔다.
"아, 아니 난 사양. 내 말 뜻은 오늘 무리했으니 본부에서도 딱히 문제 삼지 않을 거라는 소리였어."
"흐으음, 맛있게 생겼는데···."
미호가 혓바닥을 쓸어 올리며 입맛을 다셨다. 그때 본부와 통화중이던 창범이 갑자기 핸드폰을 대근에게 들이밀었다.
"저기 대장."
"왜?"
"본부장님이 좀 봐꿔 달라는데?"
"그 양반이 왜 날? 이번 건 잘 마무리 했다고 했어? 대외적으로 알려진 유명선수라 죽이진 않고 힘만 뺏었다고. 두 번 다신 선수로서는 옥타곤에 못 들어갈 거라고."
"그 말이야 다 했죠. 근데 이 건이 아닌 것 같아서요."
대근이 의아해하며 전화를 받았다. 한참 본부장과 얘기하던 대근이 피곤한 표정으로 통화를 종료하며 말했다.
"젠장. 귀찮게 됐네."
"왜요?"
"무슨 일 있어?"
"아니 지난 번 혹시 플레이어 제보 기억나? 국성대 건."
"씹떡이니 뭐니 하는 옵져버들 말이죠?"
"응, 걔내들이 이번에야 말로 결정적인 증거를 찾았다면서 본부에 또 제보를 했다잖아. 우리 관할이라고 우리보고 확인하래."
창범이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었다.
"뭐요? 방금 한 건 끝냈는데 또요? 좆나 뺑뺑이 돌리네. 지들은 위에서 시키기만 하고."
"위에서 까라면 까야지 어쩌냐."
"아니 근데 거기는 저번에 탐색조가 가서 이상 없다고 종결지은 곳이잖아요."
"그랬지."
"아, 진짜. 그 오덕 새끼들 말은 믿을 게 못되는데···."
"어쨌든 공인된 옵저버들이야. 무시해선 안 돼."
"그러니까 왜 본부에선 그딴 새끼들한테 옵저버 자격을 남발하냐고요. 저번에 한번 보니 제정신도 아닌 것 같더만."
창범이 유난히 씩씩거렸다.
대근이 그를 달랬다.
"뭐 어쩌겠냐. 나사가 살짝 빠져있으니까 그런 일도 자청해서 하는 거지. 어차피 우린 공생관계야. 걔네들 제보 없으면 이 넒은 땅덩어리를 무슨 수로 커버 할 건데? 가뜩이나 플레이어들이 꽁꽁 숨어 있는 상황에서."
"참나···."
"너무 툴툴대지 말고 일단 시늉이라도 하자. 본부에 찍히기 싫으면."
"단순 제보 정도로 셋 다 출동할 필욘 없잖아요. 저도 좀 쉽시다. 3교대라서 낼 일찍 출근해야 하고만."
"제가 갈게요."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미호가 손을 들었다.
"미호씨가?"
"지금 하나거든요."
"아, 그래 하나씨. 오늘 정말 여러 번 바뀌는군."
"어쩔 수 없어요. 이렇게 힘을 쓴 날에는."
"근데 혼자서 괜찮겠어?"
"단순히 탐색만 해보라는 거잖아요. 스킬 잔흔이 남아있는지만 보고 올게요."
창범이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혹시 젊은 영계들 잡아먹으려고 가는 건 아니고?"
"뭐, 그거야 봐서?"
"에효, 누군지 몰라도 기 한번 제대로 빨리겠구만. 수명단축의 꿈!"
"야야. 미호씨 자극 마라. 너 그러다 골로 간다."
"안 그래도 두나가 전해 달래요. 자꾸 깝치면 죽여 버린다고."
"흐익."
"하나씨. 가더라도 오늘은 쉬고 내일 가. 혹시 플레이어가 있다면 위험해 질지도 모르니까."
"알겠어요."
하나가 생글거리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
일과를 마친 도훈은 집으로 돌아왔다.
오전 내내 소설을 탈고한 터라 저녁에 도서관에서 공부할 체력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리고 그간 모았던 포인트를 재분배할 필요가 있었다.
‘로시. 스킬 강화 포인트 얼마나 쌓였어?’
[넵. 오늘 희주양까지 모두 1132포인트입니다.]
‘뭐? 그렇게나 많다고?’
[맨날 쌓기만 하고 쓰질 않으셨으니까요.]
‘호오.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 간만에 스킬이나 랩업해 볼까?’
도훈이 싱글벙글하며 스킬창을 둘러보는데 로시가 말했다.
[노파심에서 말씀드립니다만, 중수가 가까워질수록 Pk단에 대한 대비도 하셔야 합니다. 주인님처럼 공격 방어 스킬이 전무한 특수 직업군일수록요.]
도훈의 스킬 대부분은 여자를 공략하는데 집중되어 있었다.
가장 강화가 많이 된 정보창부터, 싸이코 메트리, 재능 모방자 등. 전투와 관련된 스킬은 전무하다 시피 했다.
‘근데 궁금한 게 있는데 스티브 잡스도 플레이어라고 했잖아.’
[네.]
‘잡스는 어떻게 살아남았어? 어차피 그 사람도 IT 전문가일 뿐이잖아?’
[잡스는 랭커까지 올랐던 플레이어 였습니다. 그는 많은 포인트를 모았고, 그것으로 방어용 아이템을 최대한 구매했습니다. 하지만 결국엔 그 역시 사망을 피할 순 없었죠.]
‘뭐? 잡스는 지병으로 사망한 것으로 아는데?’
[플레이어가 요절하는 경우는 피습밖에 없습니다. 그의 병은 천상계의 의술로 충분히 고칠 수 있었거든요. 대외적으론 그렇게 알려졌지만, Pk단의 공격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긴··· 50대의 나이에 갑자기 죽은 게 석연찮더라니. 돈도 그렇게 많았는데 제대로 치료도 못받고 말이야.’
도훈도 슬슬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 401. 글 잘쓰는 잘생긴 오빠-8-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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