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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413화 (386/2,000)

< 395. 글 잘쓰는 잘생긴 오빠-2- >

현태는 어이가 없었다.

기껏해야 20대 중반 정도 밖에 안 돼 보이는 사내였다.

자신보다 겨우 한두 살 많은 주제에, 40대인 사장과 친분이 있다는 것이 우스웠다. 설혹 그 말이 사실이라 쳐도 돈도 없어 피씨방에서 날 샌 주제에, 뜬금없이 공짜 커피를 달라는 거지 근성에 절로 얕잡아 보이는 마음이 들었다.

‘무슨 이런 거지같은 새끼가···.’

"···뭐라고?"

"네?"

"너 방금 거지같다고 했냐?"

사내의 눈빛이 더 없이 날카로워 졌다.

동네 백수 같은 츄리닝 차림에서 그런 기도가 쏟아지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사내가 재차 물었다.

"방금 그랬잖아. 거지같은 새끼라고."

"아, 아니 전···."

현태는 속내를 들키자 절로 당황하고 말았다.

‘어, 어떻게 알았지?’

"어떻게 알았냐니? 니 얼굴에 딱 써 있고만."

"저, 전 그냥···."

"현태야."

어느 샌가 PC방으로 들어온 사장이 현태를 구원했다.

"앗, 사장님 나오셨어요."

"오늘은 그만하고 퇴근해."

"아직 청소를 다···."

"괜찮아. 오늘은 그냥 가."

인색한 사장이 웬일로 현태를 일찍 퇴근 시켰다. 현태는 안 그래도 난처한 상황에 도망치듯 자리를 빠져나갔다. 물러서는  현태는 보며 츄리닝 사내가 끌끌 혀를 찼다.

"대장, 저 새끼 당장 짤라버려요. 손님 대하는 매너 하고는···."

"창범아, 형이 민간인 상대로 능력 쓰지 말라지 않던?"

동네 아저씨처럼 생긴 PC방 사장이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는 평소에도 잔소리가 심한 편이었으므로 창범이라는 청년은 귀찮은 마음에 바로 꼬리를 내렸다.

"아니 쓸려고 한 게 아니라 그냥 들리는 바람에···."

"자꾸 이런 식이면 <능력자 협회>에서 제재 들어올 수도 있어. 내 능력으로 커버치는 것도 한계가 있다고."

"네네, 앞으로 조심할게요."

"대답은 따박따박 잘하지. 이런 게 한 두 번이냐? 너 저번에도···."

대장의 잔소리가 끝없이 이어지자, 창범도 욱하는 마음이 들었다.

"아니. 미호는 어젯밤에도 남자 하나 잡아먹었는데 그건 왜 뭐라고 안하세요?"

창범의 대꾸에 대장도 덩달아 언성이 높아졌다.

"인마! 미호는 조금 특별하다는 거 너도 알잖아!"

"네. 아주 조빠지게 야근하다 모임 늦을까봐 새벽부터 달려와 날 샌 나만 바보지."

창범이 서운함을 표시하자, 대장이 피곤한 기색으로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하이고야. 내가 이 일을 은퇴하든가 해야지, 언제까지 어린애들 칭얼대는 거나 봐주고···.’

그 순간 창범의 표정이 미묘하게 바뀌었다. 대장은 대번에 그가 독심술을 발휘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야! 내가 함부로 내 머릿속 들여다 보지 말랬지!"

"대장, 저도 이제 스물다섯이에요. 어린애는 무슨···."

"벌써 모여 있었네?"

그때 두 사람 사이로 예쁘게 생긴 여자 한명이 끼어들었다. 귀신처럼 발소리 하나 없이 나타난 그녀는,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묘령의 아가씨였다.

"구미호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만."

"오늘은 세나거든?"

"뭐야? 그세 또 인격이 바뀌었어?"

"모임 좀 일찍 일찍 오자."

"5분밖에 안 늦었다고요."

세 사람은 자리를 피씨방 구석의 테이블로 자릴 옮겼다. 사장이 미니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오자 미호가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난 아메리카노 아니면 안 마시는 데···."

"좀 주는 대로 먹자. 쓸데없이 입맛만 고급이야."

"아니 우리가 무슨 거지도 아니고···. 인간적으로 100원짜리 커피는 너무 한 거 아닙니까?"

"믹스커피가 어때서? 난 맛만 좋은데."

대장이 종이컵을 홀짝이더니 말을 이었다.

"그리고 창범아. 우리가 플레이어들이랑 다른 게 뭐냐?"

"뭐긴 뭐에요. 좆같은 족쇄에서 풀려났다는 거지."

"그거 말고."

이번엔 스스로를 세나라고 밝힌 여자가 대답했다.

"마켓 대신 블랙마켓 이용하는 거?"

"에잇, 진짜. 우리의 능력을 일신의 영달을 위해 쓰지 않는 거잖아. 능력자 협회 제 1강령, 우리는 진실을 추구한다. 제 2강령, 우리는 사사로운 목적으로···."

"아 쫌, 대장. 그만 좀. 그럴 때마다 진짜 꼰대같은 거 알아요?"

"꼰대가 꼰대 같아야지 그럼. 사람이 나이를 먹었음 나잇값을 해야 하는 거야."

"후훗. 누가 보면 100살 쯤 산 줄?"

세나의 일침에 대장의 표정의 겸손해졌다.

"아, 내가 또 실언을 해버렸구만."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본론부터 들어가요. 날 밤 새서 피곤해 죽겠으니까."

"창범이 날 샜니?"

"그래. 누군 밤에 재미 볼 때, 나는 월급 쥐꼬리만큼 주는 하청업체에서 새벽까지 좆뱅이 치다왔지."

"그런 소리 말라니까. 미호도 사정이 있단 말이야."

"미호가 아니고 세나요."

"저번에 두나였잖아?"

"그땐 하나였고."

"아니 대체 인격이 몇 개나 있는 거야? 그리고, 원래 군령자는 시도 때도 없이 바뀌나?"

"낸들 어째요? 지들이 나오고 싶은 데로 나오는데."

"우리 회의 언제 합니까. 저 피곤해 죽겠어요."

"그래, 그래. 회의하자."

겨우 본론으로 돌입한 대장은 가방에서 얇은 테블릿을 꺼내 들었다. 화면을 켜자 첩보기관에서 쓰는 것 같은 암호창이 띄워졌다.

"잘 봐. 본부에서 입수된 최신 첩보야."

암호창에 숫자를 입력하자 곧바로 동영상이 재생되었다.

영상을 다 본 세 사람이 서로 얘기를 나누었다.

"근데 이 테블릿 지급품이에요?"

"야! 지금 그게 중요하냐?"

"아니 왜 대장한테만 그걸 주냐고요. 게임 깔아도 잘 돌아가게 생겼구만."

"인마. 나는 나름 IT 분야에 근무하니까."

"네네, 파리 날리는 PC방 사장님. 실리콘 벨리 부럽지 않구요."

"넌 그 말버릇 좀 고쳐. 어디서 어린놈의 자식이 싸가지 없게."

"흐음, 하긴 요즘애들이 싸가지 없긴 해."

"아, 아니 난 미호씨 보고 말한 게 아니라."

"세나라니까? 그리고 평소처럼 반말해요. 웬 미호씨람?"

"아니 근데 우리 회의는 언제 합니까?"

"이게 다 너 때문이잖아!"

"근데 영상에 나온 사람, 고수 쯤 되려나?"

대화는 중구난방으로 흩어지다가도 어느새 궤도를 찾아갔다. 대관절 진지함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는 회의였다.

"측정치로는 중수 3레벨 전후인 것 같아. 받은 적성은 보다시피 체술가 계열이고."

"오. 어떻게 또 그런 걸 받았데?"

"근데 체술가면 좀 위험한 거 아니에요?"

"그래봐야 중수야. 우리 셋이면 못 제압할 것도 없지. 그리고 싸우는 거라면 나도 자신 있고."

배도 나오고 머리숱이 없어 보이는 동네 아저씨의 말이었지만, 희한하게도 다들 수긍하는 눈치였다.

"아, 그나저나 본부에서 보너스 좀 팍팍 줬으면 좋겠네."

"창범이 넌 왜 맨날 궁상이냐?"

"저도 제 능력 맘대로 쓰면 어디 점집하나 차려가지고 떼 돈 벌 수 있거든요? 근데 플레이어 잡는 일 말고는 못 쓰게 하니까 궁상을 떨 수밖에요."

"야. 나도 PC방만 10년째야. 그런 말 마."

"솔직히, 협회도 좀 바뀌어야 되는 거 아닙니까? 아니, 언제까지 이런 능력을 숨기고···."

"창범아."

"네, 네. 대장이 무슨 말을 하던 무조건 옳습니다."

"잔소리 같아서 자꾸 말하기 싫은데, 강한 능력엔 강한 책임이 따르는 거야."

"그렇죠, 암요."

"아무도 알아주지 않겠지만, 우린 세상을 구원한다는 마음이면 충분 한 거고."

"예예."

"아, 거 새끼 참 싸가지 하고는."

그때 두 사람의 대화를 바라보던 미호가 물었다.

"참, 근데 저번에 한 번 어디 대학교에서도 플레이어 제보 하나 있지 않았나? 국 무슨 대학교였는데···."

"국성대 에니메이션과?"

"네네. 그 오덕들요."

"믿지마. 걔네들은 정신상태가 오락가락하니까. 본부랑 연이 닿아가지고 연락책으로 쓰긴 하는데···. 솔직히 놈들이 하는 말은 반쯤 미친 소리라고 생각하면 돼. 그것 때문에 조사단 파견되서 탐지기까지 싹 돌렸는데 아무 흔적도 없었잖아."

"상대가 중수 이하일수도 모르잖아요. 그럼 마력이 약해서 안 잡힐 테니까."

"뭐, 그럴 수도 있겠지···. 아무튼 이번 임무에나 집중하자. 어? 야 이 새끼! 컵라면 계산하고 먹엄마!"

사장이 도망치는 창범을 쫓았고, 창범은 뜨거운 물을 부은 컵라면을 들고 피씨방을 사방으로 뛰어다녔다. 그리고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며 미호가 생각했다.

‘흐음. 아직 개화가 안 된 플레이어가 있을지도 모른다니···. 난 왠지 이쪽이 더 구미가 당긴단 말이지?’

***

학과 사무실로 향하는 동안 로시에게 PK단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놈들에겐 마력을 측정하는 탐색장치가 있습니다. 25AU부터 측정되기 때문에 중수부턴 발각될 확률이 급격히 높아지지요.]

‘AU면 태양과 지구 사이의 거리 단위 아니냐?’

[그런 뜻도 있지만, 여기선 ‘Ability Unit’의 약자입니다. 플레이어의 총역량을 뜻하는 시스템 단위죠.]

‘흐음, 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스카우터 같은 장친가 보군.’

[그렇게 이해하시면 됩니다. 아무튼, 주인님도 슬슬 대비를 하셔야 합니다.]

‘가만. 근데 놈들은 플레이에게 왜 이렇게 적대적인 건데? 그냥 서로 모른 척하고 살면 안 되나?’

[음, 거기까진 제한된 사안이라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거참, 비밀도 많아.’

[······.]

‘그나저나 이 안경 말이야. 평소에 쓰고 다니기엔 너무 자극적이군.’

나는 3사이즈 스카우터를 착용하고 있었다. 스쳐 지나가는 여자마다 디스플레이에 몸매가 뜨는 데, 의외로 몸매가 좋은 여자들은 나도 모르게 군침이 삼켜졌다.

[상시 관음증이군요. 적당히 하십시오.]

‘아니 그냥 시험 삼아 써본 거야. 근데 뭐랄까, 왠지 변태가 된 기분이군.’

[실제로도 변태 맞지 않습니까?]

‘사람은 누구나 변태야. 나도 사람이고.’

[삼단논법은 제 1전제가 참일 경우만 성립하죠.]

‘민주만 봐도 그렇잖아. 그렇게 멀쩡하게 생긴 미인이 진성 메조라고 누가 생각하겠어?’

[귀납적 추론은 반증 가능한 예시가 나올 경우 무너집니다.]

‘유미는 또 어떻고? 강한 여성! 왜곡된 성욕!’

[하고 많은 여성들 중 아주 일부를 예시로 삼으시는 군요.]

‘암튼 난, 사람은 누구나 변태라고 생각해. 그걸 드러내느냐 마느냐의 차이일 뿐이지.’

[한국 속담 중엔 그런 말이 있더라고요. 뭐 눈엔 뭐 만 보인다나?]

‘이게 아까부터 자꾸.’

[앗, 저기 과 후배 분 아닙니까?]

‘말 돌리지 마.’

[정말입니다. 근데 웬 남자분이랑 있군요.]

‘응?’

"도훈 오빠. 오랜만이에요."

"어··· 희주야. 안녕."

안경을 쓰고 있던 터라 순간적으로 희주의 몸매가 스캔되었다. 디스플레이를 힐끔 쳐다보니 숫자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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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우, 역시 몸매 하난 갑이구나.’

"근데 오빠 웬 안경이에요?"

"응. 요새 좀 눈이 침침해서."

"너무 공부 열심히 하시는 거 아니에요? 소문이 자자하던데···."

희주 옆에 선 사람은 못 보던 남자였다.

우리 과는 당연히 아니었고, 건들거리는 폼이 사범대생처럼 보이지도않았다.

놈은 나를 경계하는 눈빛으로 쳐다보며 물었다.

"누구···?"

"아, 소개가 늦었네. 이 오빠는 우리과 선배님이셔. 여긴 제 남자친구에요."

"남자친구?"

"안녕하세요. 희주 남자친구 조봉굽니다."

봉구라는 웃긴 이름을 가진 놈이 나에게 악수를 청해왔다.

왠지 모를 적의가 느껴지는 눈빛이다.

"반가워요."

그때 손아귀로 강한 힘이 느껴졌다.

놈이 나에게 악력 싸움을 걸어온 것이었다.

‘어쭈? 이 새끼가 누구 앞에서 장난질을.’

나는 표정하나 바꾸지 않고 맞서서 힘을 주었다. 한지연에게 얻은 유도 적성이 발휘되자 손아귀 바짝 힘이 들어갔다. 악력을 키우는 덴 유도만 종목이 없지.

꽈악-!

봉구의 표정이 일그러지자, 내가 웃으며 말했다.

"손힘이 장난이 아니네요. 혹시 운동하시는 분이신가?"

"어떻게 아셨어요? 체육관에서 운동하다 만났거든요. 근데  두 사람 왜 그렇게 악수를 오래 해여?"

눈치 빠른 희주가 우리의 기 싸움을 눈치 챘는지 남자친구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놈은 그제야 힘을 풀고 물러섰다. 얼굴이 시뻘게진 놈은 주먹을 쥐었다 펴며 한참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게 어디서 주제도 모르고 까불어? 한 주먹거리도 안 되는 놈이.’

"우리 희주 잘 부탁해요. 착한 후배니까."

"아···, 예 뭐···."

기가 눌린 봉구는 나와 눈도 못 마주치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근데 오빠 요새 너무 바쁘신 거 아니에요? MT 이후론 얼굴 보기도 힘드네."

"좀 바빴어."

"야, 우리 점심 늦겠는데···."

봉구가 시계를 보며 희주를 재촉했지만, 희주는 남자친구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무시했다.

"나 지금 선배님이랑 얘기중이잖아."

"으, 응."

‘흐음. 왠지 남자친구라기 보단 머슴같은 역할이군.’

[질투 안 나십니까? 그래도 주인님과 관계가 있던 여자 분인데···.]

‘내가? 희주를? 풉-. 야. 재는 남자친구 아니더라도 섹파도 많은 얘였어. 어쩌다 사귀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희주 바람기가 어디 가겠냐?’

[그래서 봉구란 학생이 주인님을 경계한 거군요.]

‘놈도 희주를 알만큼 아는 거지. 나를 섹파 중 하나로 의심했을지도 모르고.’

[이상한 관계군요. 저러면 사귀는 의미가 없을 것 같은데···.]

‘장담하는데 희주는 남자친구랑 있다가도 내가 하자고 연락하면 쪼르르 달려올 걸.’

[요즘 잘나가신다고 너무 자신하시는 거 아닌가요?]

‘나랑 내기 할래?’

< 395. 글 잘쓰는 잘생긴 오빠-2- > 끝

ⓒ 성난불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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