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4. 글 잘쓰는 잘생긴 오빠-1- >
***
"야, 솔직히 이상하지 않냐?"
"뭐가?"
점심시간.
국성대 학생 식당은 여느 때처럼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식탁위에 오른 것은 2,000원짜리 백반과 일품으로 나온 3,000원짜리 제육볶음.
남학생 둘은 빈곤한 지갑사정에 맞춰 식사를 하는 중이었다.
"아니, 도훈이형 말이야. 어떻게 그 얼굴에 아직까지 여자친구가 없지?"
"낸들 아냐."
잔뜩 열을 올리는 태영에 비해, 받아주는 동기 경민은 별 관심 없는 눈치였다. 하지만 태영은 끈질기게 물었다.
"혹시 걔랑 사귀는 게 아닐까?"
"누구?"
"왜 접때 미술과에서···."
체육과 1학년 남학생들은 MT 당시 미술과 여학생들과 소개팅을 했었다. 당일 분위기는 좋았지만, 막상 대학으로 돌아오고 나서 연결된 커플은 전무.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뻔한 결말이었다.
"아아, 제일 예쁘게 생긴 누나 말이지?"
"이름이 뭐랬더라?"
"이랑이던가?"
"아니, 그 이름은 아닌 것 같고···. 맞다. 이든."
"맞아, 송이든."
"그때 좀 분위기 이상하지 않았냐?"
태영이 당시의 기억을 떠올렸다.
분명 다같이 떠들고 노는 사이 도훈이 핑계를 대고 먼저 사라졌고 뒤이어 송이든 역시 모습을 감췄다.
"넌 어떻게 그런 걸 다 기억하냐? 대단한 기억력이네."
"왜냐면 내가 당시에 그 누날 점찍었거든."
태영은 이든을 처음 보는 순간 첫눈에 반했다.
그는 비공식적으로 ‘금사빠’라고 불렸는데, 금방 사랑에 빠져버린 데서 붙은 놀림감 같은 별명이었다.
"어얼, 너 그때 다른 애 노리지 않았냐? 결국 차였지만."
"야. 씨, 내가 먼저 찬 거라니까?"
"어쨌든. 결과적으로."
"사실 처음엔 이든이 누날 노리고 있었거든. 근데 가만 지켜보니까 그 누나가 도훈이형이 간 방향으로 사라지더란 말이야."
"에이, 말도 안 돼. 도훈이형이 사귀면 사귄다고 말했겠지. 우리에게 왜 솔로라고 숨기겠어?"
"그니까 내 말이. 뭔가 비밀이 있는 게 아닐까?
태영이 계속 떠드는 데 누군가 두 사람의 테이블 앞으로 식판을 받아왔다. 같은 과 여자 동기인 나연과 연두였다.
"아직 다 안 먹었음 우리랑 같이 먹자."
"안녕, 태영, 안녕 경민아."
"잉꼬 커플 왔네."
"뭐래? 우리가 왜 잉꼬 커플이야?"
태영의 놀림에 나연이 식판을 내려놓으며 눈을 흘겼다.
"맨날 같이 붙어 다니니까. 저번엔 팔짱도 끼고 가더라? 학떨목 아래서."
"남이사 팔짱을 끼든 말든?"
"밥이나 곱게 쳐드세요. 밥 먹다 처 맞기 싫으면."
"난 빼줘. 태영이 혼자 그런 거니까."
나연과 연두는 남자동기들 사이에선 전혀 내숭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을 남자로 보지 않고, 동성으로 취급했기 때문이었다.
"근데 무슨 작당모의 중이었어? 얼핏 들으니까 도훈오빠 어쩌고 저쩌고 하는 것 같던데."
연두의 물음에 태영이 답했다.
"맞다. 너희들한테도 물어봐야지. 도훈이 형 말이야,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뭐가?"
"응?"
"왜 아직까지 여자 친구가 없을까?"
태영의 물음에 나연은 입을 한 일자로 꾹 다물었다. 연두는 뭔가 캥기는 사람처럼 시선을 피했다.
사실 두 사람은 도훈과 쓰리썸을 한 경험이 있었으므로, 그의 비밀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상태였다. 왜 여자친구가 없는지. 아니, 왜 여자를 안 사귀고 있는지.
"혹시 여자가 보기엔 별로 매력이 없나?"
"누가?"
"도훈 오빠가?"
"왜, 그런 남자들 있잖아. 남자가 볼 땐 엄청 잘생기고 괜찮은데 여자들이 보면 좀 아닌 경우."
나연이 속으로 혀를 끌끌 찼다.
‘그럴 리가. 도훈 오빠 정도면 우리과 여자들 다 사귀고 싶을 텐데···.’
연두 역시 생각했다.
‘네가 도훈 오빠를 한참 모르는 구나. 오빤 짐승이라고 짐승.’
두 사람이 별다른 반응이 없자 답답해진 태영이 다시 물었다.
"너희들이 볼 땐 어때? 남자로서 도훈이형."
"음···. 잘생겼지."
"몸매도 좋고."
"막 사귀고 싶고 그런 타입이야?"
"근데 내가 왜 이 질문에 대답을 해야 돼?"
"너 그리고 이상하다. 오빠 스토커니?"
두 사람의 공격적인 반응에 태영이 움찔 놀랐다.
‘뭐야, 내가 못 할 말을 했나?’
"아니 난 그런 뜻이 아니고 하도 이상해서···."
"이상할 것도 참 없네."
"너나 잘하세요, 김태영씨. 저번에 미술과 걔한테 까였다며?"
"까이긴 누가 까여? 내가 찬거지."
태영이 자존심을 챙기자 연두가 콧방귀를 꼈다.
"흥! 웃기고 있네. 너 금사빠라고 소문 쫙 퍼졌거든? 우리과 여자애들도 모자라 이제 미술과까지 가서 추태 부리고 다니냐?"
"우리과라고? 태영이 너 우리 과 여자애들한테도 작업 했었냐?"
잠자코 밥을 먹고 있던 경민 역시 의외라는 듯이 물었다.
갑자기 궁지에 몰리자 태영이 허겁지겁 변명했다.
"아니야, 그런 거. 그냥 갠톡 좀 한 걸 가지고 작업이니 뭐니 오해하는 거라고."
"그 누구였더라? 정음이랑 경희던가?"
"육정음에 이어 강경희까지?"
"이야, 김태영. 아주 예쁜 애들만 골라서···."
"진짜 아니라고! 동기들은 이미 새터 때 끝냈어!"
"정말?"
"저번에 보니 일본교환학생이랑 붙어 다니던데 걔도 작업중이니?"
"대체 몇 명이니? 김태영, 완전 바람둥이네."
동기들의 핀잔에 태영은 억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아씨, 뭐라도 해보기라도 했으면 이렇게 억울하지나 않지.’
결국 태영은 괜한 화제를 꺼냈다가 본전도 못 건지고 찌그러져야 했다. 화제가 적당히 사그러들자, 연두가 도훈을 변명하듯 말했다.
"도훈 오빠가 여친이 없는 건 공부를 너무 열심히 해서 그럴거야."
"맞아. 맨날 저녁에 도서관 가서 공부하잖아. 여자 만날 시간이 없겠지."
"아···. 잘생긴 남자가 공부까지 열심히 하다니. 세상은 참 불공평해. 그지 태영아?"
"야! 왜 나를 갖다대."
그때 제육볶음을 우걱우걱 먹고 있던 경민이 한마디 거들었다.
"참, 아까 까페에 도훈이형 앉아 있는거 봤는데."
"까페에?"
"혼자?"
나연과 연두가 필요 이상으로 관심을 드러내자 뻘쭘해진 경민이 움찔 놀라며 대답했다.
"으, 응. 내가 인사하러 가니까 연습장에 뭘 쓰고 계시더라고."
"요샌 까페에서 공부하나?"
"아, 그게 아니고···. 내가 궁금해서 물었거든. 뭐하시냐고. 그러니까 공모전 작품 쓰고 있다더라고."
"공모전?"
"오빠 공모전도 나가?"
"아! 그거다 그거."
태영이 뭔가를 알겠다는 듯이 호들갑을 떨었다.
"도훈이형 국춘문예 작품 낸다고 그랬거든. 마감이 얼마 안 남았던데, 아마 그거 쓰고 있었을 거야."
"국춘문예?"
"와, 도훈오빠 시도 써?"
"아니 시는 아니고 소설일 걸. 저번에 나한테 그거 나간다고 했었어."
"우앙, 멋있다. 잘생긴 오빠가 문학청년이었다니."
"근육도 짱짱 멋있자너."
나연과 연두가 눈을 초롱초롱 빛내는 모습에 태영은 배알이 꼴렸다.
‘쳇. 괜히 얘기했네. 잠자코 있을 걸. 역시 잘생긴 게 짱이구나.’
태영은 도훈을 무척이나 부러워했다. 사실 그가 정말로 부러워한 것은 도훈의 커다란 대물이었다.
‘잘생긴 형이 거기까지 실하다니. 정말 세상을 불공평해. 여자한테 관심이 별로 없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랄까···.’
그는 여전히 도훈에 대해선 아무것도 몰랐다.
***
까페에서 글을 쓰던 도훈이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후비적거렸다.
"뭐야, 누가 내 얘기 하나? 왜 이렇게 귀가 간지럽담?"
귀를 후비던 도훈은 어느덧 탈고를 앞둔 소설을 덮은 뒤 한껏 기지개를 폈다.
"흐아암, 갑자기 휴강이라 아침부터 급하게 소설을 썼더니 엄청 피곤하구만. 담배나 한 대 피고 와야겠어."
도훈은 커피숍을 나와 담배를 입에 물었다.
[주인님, 소설은 다 완성하신건가요?]
‘응. 마지막 장면만 빼면. 그나저나 만능 만년필 아주 요긴한데?’
도훈이 포켓에 꽂은 만년필을 바라보았다.
문장을 매끄럽게 다듬고, 어휘를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것으로 글짓기 실력을 배가 시키는 아이템이었다.
[어제의 나이트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까?]
‘당연하지. 본래 사람은 자기가 직접 겪은 일일수록 생생하게 쓰는 법이거든.’
[그 얘긴 이도훈의 생부 이찬명씨가 자주 했던 말같군요.]
‘아, 그렇지 도훈이 아버지도 유명한 소설가지?’
[네. 아버지랑 다르게 이도훈 군은 문학적인 소양이 부족한 편이었죠.]
‘얘는 운동만 했잖아. 그리고 소설가 자식이라고 소설 잘 쓰는 법이 어딨어? 운동선수처럼 피지컬을 물려받는 것도 아닌데.’
[그런가요? 아무튼 공을 들인 만큼 이번 작품이 입상하게 되면 좋겠군요]
‘왠지 느낌이 좋아. 특히 어제 겪은 일이라 그런지 현장감이 살아 있더라고. 다시 읽어 봤는데, 내가 썼는데도 재밌더라.’
[아무대로 만능 만년필의 보정효과가 들어갔으니까요.]
‘어쨌든 저자는 나야. 내 손으로 썼고.’
[이제 공모만 마치면 되겠군요.]
‘아니야. 생각해 보니 육필 원고를 그대로 낼 수가 없겠어. 워드로 작업해서 메일로 제출하라는 것 같았거든···. 근데 컴퓨터 쓸 데가 없네.’
[조교실 있잖습니까? 저번에 보니 사무실에 컴퓨터 한 대가 남는 것 같던데.]
‘아, 그랬지. 민주한테 연락해 봐야겠다.’
도훈은 오랜만에 조교 강민주에게 전화를 걸었다. 잠시 신호가 울힌 뒤 민주가 사무적인 톤으로 전화를 받았다.
-도훈 학생, 어쩐 일이죠?
도훈은 그녀의 목소리에서 사적인 통화가 불가능한 상태임을 눈치 챘다.
"예, 조교 선생님. 학과 사무실 컴퓨터 좀 쓸 수 있을까 해서 연락드렸습니다."
-그래요? 난 잠시 대학원생 세미나 준비 때문에 소강당 나와 있어요. 지금은 문이 잠겨 있을 텐데···.
"그럼 제가 그쪽으로 들러서 열쇠 받으러 가면 될까요?"
-아니에요. 안 그래도 중요한 서류 하나를 빼먹고 와가지고···. 아냐, 한솔 샘은 여기 남아서 계속 정리 도와줘. 내가 다녀올게. 개인정보가 담겨있어서 파일에 비번을 걸어 놨거든. 응.
민주는 옆에 있던 누군가와 얘기를 마치더니 다시 도훈에게 말했다.
-그럼, 10분 뒤에 과 사무실에서 봐요.
"감사합니다."
통화를 끊은 도훈이 피식 웃었다.
‘몸소 온다는 걸 보니 우리 암캐께서 아랫도리가 근질근질 하신가 보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조교 선생님께 암캐가 뭡니까?]
‘조교도 조교 나름이어 야지. 맨날 학생 따먹을 생각이나 하고 있으니···.’
[그렇게 길들이신 건 주인님 아닙니까?]
‘박수도 손발이 맞아야 치는 거지. 본인 성향이 진성 메조라 원하는 데로 해준 것뿐야.’
[그나저나 SM마스터 위업을 달성하고도 민주양과는 끈질기게 인연을 이어가시는 군요.]
‘어쩔 수 없지. 어쨌든 민주는 내 학적을 관리하는 체육과 조교잖아. 밉든 곱든 3년간 마주쳐야 할 사람인데 무턱대고 연을 끊기는 곤란하단 말씀이야.’
[3년이라···. 참으로 긴 시간이군요. 그 안에 랭커가 되실 수 있을까요?]
‘지금 속도면 충분하지 않아? 중수가 코앞이라고.’
[쉽게 생각할 문제는 아닙니다. 본래 게임에서도 저랩까진 금방 오르잖습니까? 물론 주인님의 성장세가 괄목할 수준이긴 하지만요.]
‘지금처럼 빠르게 성장하는 건 무리일 거다?’
[당연하지요. 남은 업적 중 상당수는 주인님 성격상 엄두도 못 낼 내용도 많은데다, 간간히 포인트를 벌게 했던 미션 역시 난이도가 상승하니까요. 게다가 중수가 되면 혹시나 모를 Pk단 까지 경계해야 합니다.]
‘맞다. Pk단? 걔네들에 대해서 좀 알려줘 봐.’
[Pk단은···.]
***
이른 아침의 피씨 방은 한산하기 짝이 없었다.
주 고객층인 학생들이 학교에 갈 시간이라, 여태껏 남아있는 사람은 밤을 꼬박 세운 폐인 같은 손님들이 전부였다.
알바인 현태는 그런 손님들을 하나둘 깨우며 자리를 정리했다.
"손님. 손님 일어나세요. 정액 끝났어요."
"······."
깊은 잠에 빠졌는지 손님은 쉽사리 깨어나질 못했다.
어깨를 두들기던 현태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나참···. 사장님 오시기 전에 얼른 치워야 되는데···."
아침마다 정산을 맞추러 오는 사장은 심야 알바에게 모질게 굴기로 유명했다. 주변 가게들이 하니까 어쩔 수 없이 24시간을 돌리긴 하지만, 사실상 새벽에 오르는 매출은 주간하고 비교도 안 되게 차이가 났다.
전기세에 인건비를 제하고 나면 본전도 못 채울 때가 많았기에, 사장은 새벽 알바에게 화장실청소부터 매장 정리까지 싹다 맡겼다. 그렇게라도 해야 주간 알바와 형평성이 맞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시계를 보고 다급해진 현태는 키보드에 머릴 박고 쓰러진 손님의 어깨를 잡고 세차게 흔들었다.
"손님! 일어나셔야 된다니까요!"
"아음···."
"어, 깨셨네? 정액 끝났습니다."
"정액? 내가 몽정했어?"
손님이 갑자기 사타쿠니를 쳐다보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현태가 속으로 생각했다.
‘와씨, 진짜 폐인 새낀가? PC방이 선불이라 참으로 다행이야. 옛날 같으면 100퍼 먹튀 했을 놈 같은데···.’
"그게 아니고요 손님. 시간 다 끝났다고요. 저 교대하기 전에 청소해야 되니까 자리 좀 치울게요."
현태는 사내가 자리에서 일어서지도 않았는데, 컴퓨터 좌석 정리를 시작했다. 헤드셋을 고리에 걸고, 키보드를 뒤집어 탈탈 털고, 마우스 선을 보기 좋게 갈무리했다.
축객령에 가까운 대접을 받은 사내가 현태의 청소를 조용히 지켜보다 물었다.
"근데 너네 사장은 언제 출근한다냐?"
"네?"
"너네 사장 말이야."
"사장님 곧 오실 거예요. 주간 알바 오기 전에 2시간 정도 일보시거든요. 그건 왜요?"
사내는 대답을 않고 혼자서 씨부렁거렸다.
"씨뎅. 새벽부터 기다렸더만, 피곤해 죽겠네. 야, 알바. 커피 있으면 좀 갖다 주라."
"음료수는 선불입니다."
"나 너네 사장이랑 아는 사람이야. 나중에 사장한테 말해 줄테니 먼저 한 잔만 줘."
현태는 어이가 없었다.
< 394. 글 잘쓰는 잘생긴 오빠-1- > 끝
ⓒ 성난불기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