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390화 (370/2,000)

< 372. 조각모음-10- >

***

도훈이 화장실에서 돌아왔을 땐 이미 술이 한 순배 돌았는지 다들 왁자지껄 떠드는 중이었다.

"···그때 말이야, 완전 술 꽐라 돼서 난리도 아니었잖아. 내 친구 한 새끼는 룸 화장실에서 즉석 떡치고 있고, 나머지 한 놈은 눈 맞아서 모텔로 직행하고···."

그럴싸한 모험담을 늘어놓는 조각 멤버들 표정엔 숨길 수 없는 기대감이 드러나 있었다. 본래 나이트 입장 전까진 다들 그럴듯한 계획을 품고 있는 법이다. 여자들한테 뺀지 맞기 전까지는.

"매냐 형도 썰 좀 풀어줘 봐요. 먹은 애들 중에 가장 예뻤던 애가 누구였어요?"

모두의 시선이 한데로 쏠렸다.

현재 가장 주가가 높은 멤버는 방장인 클럽 매냐.

그는 자타가 인정하는 유흥 계의 고수였다.

다들 그의 이야기에 흥미를 보였다.

기대감을 충족시키려는 듯 방장이 거들먹거리는 태도로 입을 열었다.

"그게 너무 많아서 누굴 말해야 될지 모르겠네. 대충 한 달 전 쯤 이던가? 피팅 모델 하던 애를 꼬신적이 있지."

"오! 피팅 모델들 몸매 쩌는데···"

"진짜로요? 혹시 검색하면 나와요?"

"응. 비키니 닷 컴 전속이라고 했던 것 같아. 궁금하면 한 번 들어가 보든지."

방장의 말에 다들 스마트 폰을 들고 검색에 돌입했다.

여자 수영복 판매 전문인 해당 싸이트는 첫 페이지부터 후끈한 비키니 모델 사진들로 도배되어 있었다.

"우아, 개쩜. 혹시 이 여자에요? 썬글라스 쓴 여자?"

화면 속의 상대는 가슴을 겨우 가리는 조막만한 비키니를 입은 체 야한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어느 정도 보정이 들어갔겠지만, 일반인이라 하기엔 입이 떡 벌어지는 우월한 몸매의 소유자였다. 도훈 역시 자연스럽게 눈길을 빼앗겼다.

‘진짜로 이 여자를 먹었다고? 방장이?’

무용담을 늘어놓는 클럽 매냐의 얼굴에 자부심이 피어 올랐다.

내가 이 정도 능력을 갖춘 사람이다, 라고 이마에 써붙인 표정이었다.

"어 맞어 걔. 흐흐. 그날 엄청 따먹었지."

"지린다. 와, 빨통 대빵 크네. 실제로도 이렇게 커요?"

"얼굴은 보정 좀 한 것 같더라. 근데 가슴은 진퉁이야. 자연산 D컵. 대학 다니다 관두고 아예 전업했다는 것 같던데?"

"캬-, 혹시 지금도 만나요?"

방장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냥 뭐 심심하면 만나 물 빼는 정도? 내 좆집 중에 하나야."

"대박."

"나는 언제 이런 모델 같은 애들 이랑 자보냐."

"부럽다."

다들 부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홈런을 친 것도 대단한데, 그 상대가 인터넷으로 검색까지 되는 유명한 피팅 모델이라니···. 다들 방장을 무슨 신처럼 떠받들었다. 도훈은 그 모습에 배알이 꼴렸다.

‘쳇. 저런 여자는 나도 많이 먹었는데, 이걸 증명할 방법도 없고.’

"전 매냐 형만 믿고 가요."

"나도 동생 밖에 없네."

"역시 남자도 얼굴 빨이라니까?"

그러자 방장이 건방지게 손가락을 좌우로 까딱이며 말했다.

도훈은 거들먹거리는 방장의 태도에 빈정이 상했다.

진정한 고수는 따로 있는데, 제대로 된 인정을 못 받는 것 같은 기분 때문이었다.

"꼭 그런 건 아니야."

"응?"

"그게 무슨 말이야?"

"아니, 여자를 얼굴로만 꼬시는 게 아니라고."

"오···."

"그럼 뭘로 꼬셔지? 돈으로?"

"돈도 좋지. 어차피 나이트는 시작부터 기울어진 운동장이야. 누구는 금수저고, 누구는 전문직이지. 누구는 몸짱이고, 누구는 얼짱이고. 여긴 똑같은 출발선에서 시작하는 달리기 경주가 아니란 말씀이야."

"진짜 주옥같은 말씀이네요."

"방장이 현실감각이 있네."

"어쨌든 그래서 나이트는 총알 많은 사람이 유리한 조건이야. 하지만 돈으로 여자를 살 거면 그냥 떡집을 가서 사 먹는 게 차라리 낫지 않겠어?"

"하긴···."

"가장 중요한 건 이거야."

방장이 자기 입술을 가리켰다.

"키스?"

"설마 보빨?"

"뭔 소리야, 다들? 아무리 막장이라도 룸에서 물고 빨고 하겠냐?"

"왜요, 눈 맞으면 즉석으로 할 수도 있지. 나 옛날에 사까시까지 해주는 여자도 봤었는데."

"니가?"

"아니 다른 친구요."

방장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마치 하수를 가르치는 듯한 시건방진 표정이었다. 도훈은 점점 고까워졌다.

"이빨이야."

"입 터는 거요?"

"그것도 얼굴이 되야 가능한 거 아닌가?"

"아니아니. 얼굴은 적당히 비호감만 아니면 돼. 남자는 예쁜 여자면 무조건 장땡이지만 여자들 취향은 의외로 다양하단 말이지. 잘생긴 애 좋아하는 여자도 있고, 몸 좋은 애 좋아하는 여자도 있고, 웃긴 사람한테 끌리는 여자도 있고, 막말로 돈만 주면 가랑이

벌리는 여자도 있는 법이야. 근데 무엇보다 중요한 건 짧은 시간 안에 말 빨로 여자를 조지는 거야. 혹시 픽업 아티스트라고 들어봤나 모르겠네."

"헉! 설마 그 거리의 마술사라는?"

"형 혹시 그 출신이에요?"

방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한참 헌팅 할 때 많이 써먹었지."

"이야! 완전 프로네 프로."

"진짜 그런 기술이 있어요? 그거 쓰면 여자들 껌뻑 죽는 다는데?"

방장은 한참 자랑을 늘어놓았다.

처음 본 여자에게 가볍게 접근하는 법.

호감을 사기 위한 몇 가지 사소한 기술들.

자연스레 번호 따는 법이나 야한 화제로 넘어가는 법.

도훈은 잠자코 듣는 중에도 방장의 언변이 보통이 넘는다고 생각했다.

‘저놈 말을 곧이곧대로 믿으면 진짜 프로 중 프로네. 내가 본 어떤 놈들보다 여자 후리는 스킬이 대단해.’

[100% 사실이 아닐지도 모르죠. 남자들은 기본적으로 허세를 타고나니까.]

‘사실이든 아니든 중요한 건 다 그렇게 믿고 있다는 거잖아. 보험 팔이 하면 보험왕에 오를 만한 말빨이랄까?’

[왠지 비꼬는 말투군요.]

‘뭐 내가 틀린 말 한 것도 아니지.’

[그나저나 방장 역통수를 치는 게 녹녹친 않겠는데요? 방법은 있으신 겁니까?]

‘로시 네가 그랬잖아. 공략 대상인 여자에게 스킬을 쓰거나 도움을 받으면 업적 도전이 무효라고.’

[그렇죠. 오늘은 정말로 순수하게 주인님 본연의 실력으로 커버해야 합니다. 그래서 방장같은 재야의 고수들을 조심해야 하는 거구요.]

‘하지만 그 말은 공략 중이 아닌 사람에게 스킬을 써도 상관없다는 말이지.’

[네? 혹시 설마?]

‘그래. 이번엔 아군에게 스킬을 쓸 거야. 아니 아군인척 하는 배신자들을 스킬로 조질 생각이야.’

[이야, 역시 주인님은···.]

‘특히 방장 저놈. 저 시건방진 놈을 완전히 짓눌러 버려야겠어. 지가 무슨 야왕이나 된 것처럼 깝치고 있어? 밤의 황제는 바로 나라고!’

[하지만 입담이 보통이 아닙니다.]

‘그래봐야 결국 중요한 건 이거야.’

도훈이 테이블 아래 손을 내려 대물을 거세게 움켜쥐었다. 손안에 묵직하게 들어차는 대물은 그가 가진 가장 훌륭한 무기였다.

‘아무리 여자를 감언이설로 꼬셔서 눕혀봐. 이게 부실하면 말짱 황이야. 두고 봐. 내가 싹쓸이 홈런이 뭔지 보여줄 테니까.’

[각오가 대단하시군요. 막강한 라이벌을 만나니 오랜만에 제대로 불이 붙으신 모양입니다.]

‘픽업 아티스트 좋아하시네. 아티스트 죄다 얼어 뒤졌냐? 지가 거리의 마술사면 나는 침대 위의 마술사야. 대물만 꽂으면 어떤 여자든 내 걸로 만들 수 있어.’

대화가 쭉 진행되다 어느새 화제가 대학교 이야기로 넘어갔다. 아무래도 멤버 중 절반이 대학생이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근데 학생이면 캠퍼스 커플 같이 여자 만나기 쉽지 않나? 굳이 나이트까지 오는 이유가?"

누군가의 질문에 샤대생이 대학생 대표처럼 대답했다.

"눈치 보이잖아요."

"응?"

"막말로 학교에서 꼬시긴 쉽죠. 소개팅도 많이 하고 동아리 활동같이 여자 만날 일 많으니까."

"그렇지. 나도 취직하고 나니까 여자 만나기가 어렵더라. 우리 회사는 또 완전 남초라···."

"근데 그렇게 만나고 나면 사겨야 되잖아요. 사귀면 소문 금세 퍼져서 공인 커플되고···. 저도 1학년 때 한창 CC했었는데 그거 엄청 불편해요. 다른 예쁜 여자들 건들지도 못하고. 그림의 떡이 되니까."

"그림의 떡이랑 떡치고 싶은 거군?"

"그런 셈이죠. 그리고 전 여자들 들러붙는 거 아주 질색이에요. 사귀면 무슨 마누라처럼 간섭하고. 아니 막말로 이제 20대 초반인데 결혼할 사이도 아니잖아요? 이 여자 저 여자 찔러보고 맛도 보고 그래야지. 남자가 밥만 먹고 어떻게 삽니까?"

"으으, 우리나라의 미래가 걱정된다. 무슨 샤대씩이나 다닌다는 놈이···."

"이건 대학이랑 상관없죠. 요새 애들 얼마나 개방적인데. 세상이 바뀌었다니까요?"

"맞아. 나이트 가보면 1/3은 여대생이더라. 진짜 발정 난 세상이야."

"흐흐. 닭고기와 여자는 영계가 맛있는 법이라잖아."

"산삼보다 고삼?"

"그건 범죄고."

다들 흥분해서 떠드는데 도훈이 잠자코 이야기를 듣다 샤대생에게 물었다.

"근데···. 생명공학부면 자연대 근처던가? 거기 좀 시끄럽지 않아요?"

"응?"

뜬금없는 물음에 샤대생의 표정에 당황하는 빛이 떠올랐다.

"아니 저번에 한 번 친선으로 뽈 차러 갔다 보니까 자연대 옆에 공설운동장이랑 테니스장이 있더라고요. 공부할 때 엄청 방해될 것 같던데?"

"아아, 그 말이었어? 아냐 뭐, 그냥 남자들 많으니까 운동하기도 좋지."

도훈은 자칭 샤대생의 대답을 들으며 속으로 피식 웃었다.

‘이 새끼 사칭맞네.’

[네? 무슨 말씀이세요?]

‘내가 한국대를 몇 년을 다녔는데 자연대가 어디 붙은 줄 모르겠어? 자연대 옆은 농대 실습장이야. 존나게 조용하다고.’

[설마 떠보신 겁니까?]

‘아무래도 수상해서 말이지. 말하는 투가 전혀 지적인 게 느껴지지 않잖아.’

그때 샤대생이 의심받는 느낌을 받았는지 갑자기 지갑을 꺼내 들었다.

"솔직히 제가 샤대 다닌다고 하면 여자들이 못 믿어서 아예 이렇게 지갑에 꼽고 다녀요."

그가 지갑을 열자 투명한 속지갑 속에 학생증이 꽂혀 있었다. 그는 손가락으로 이름을 가린 체 학교 마크를 과시했다.

"오, 진짜 샤대구나."

"학교 부심 쩔겠다."

"막 과잠만 입어도 다들 우러러 보지 않나?"

"과잠은 쪽팔리잖아요. 그거 입고 나이트 올 수도 없고."

[으잉? 정말 학생증이 있는데요? 혹시 주인님이 대학 다닐 적이랑 건물 배치가 달라진 게 아닐까요?]

‘그럴 리가 없는데···. 가만, 스킬 좀 써보자. 싸이코 메트리 준비해.’

[넵.]

도훈은 구경하는 척하며 학생증을 매만졌다.

그의 머릿속으로 한가지 영상이 들어왔다.

***

"야, 진짜 한번 만 빌려줘 봐. 그 책이 검색해 보니 너네 학교에 밖에 없더라니까?"

"너 쓸데없는 데 쓰면 안 돼."

"이 새끼 10년지기 불알친구도 못 믿네. 얼굴도 다른데 내가 이거들고 너 사칭하고 다니겠냐 그럼?"

영상에선 대학생으로 보이는 두 남자가 등장했다.

한 명은 처음 보는 얼굴.

그리고 학생증을 빌리는 사람은 자칭 샤대생이었다.

그는 도서관을 출입한다는 핑계로 학생증을 빌리더니 급히 택시를 타고 어디론가 이동했다. 음습해 보이는 골방에서 그는 한 중년의 남성과 접선했다.

"아저씨, 이거 복제되죠?"

"학생증이네? 이딴 걸 어디 써먹게?"

"필요해서 그래요. 민증이나 여권 도용도 아니잖아요. 어차피 범죄도 아닌데···."

"나야 돈만 주면 상관없지. 증명사진은 가지고 왔지?"

"네."

영상은 그렇게 끝이 났다.

싸이코 메트리를 통해 과거를 엿본 도훈은 어이가 없었다.

‘그러니까 샤대 다니는 친구한테 학생증 빌려서 신분을 위조한 거네?’

[진짜군요. 주인님의 탁월한 감에 감탄했습니다. 근데 어떻게 아셨습니까?]

‘뻔하지. 한국대 다니는 애들이 굳이 지갑에 학생증까지 넣어 자랑하고 다니겠냐? 그런 놈은 한 놈도 못 봤어.’

[근데 굳이 왜 저런 짓까지 하는 걸까요? 아무리 그래도 학교 사칭이라니···.]

‘여자 꼬시려고 발정이 난 거지. 저렇게 하면 먹힐 줄 알고. 보다보니 어처구니가 없구만.’

도훈은 속으로 혀를 찼다.

이 조각모임엔 순전히 구라쟁이 뿐이었다.

중고 BMW를 타고 다니며 번쩍거리는 키홀더를 손에서 빼지 않는 회사원이나, 벌크업 한답시고 살만 찌운 자칭 트레이너, 고등학교 때까지 비보잉을 했다고 주장하는 찐따 새끼.

‘하나같이 병신들 뿐이야. 진짜 멀쩡한 놈은 나밖에 없구나.’

[방장은 그래도 진짠 것 같던데요?]

‘방장은 통수의 달인이잖아. 따지고 보면 저 새끼가 제일 악질이야. 아까 들었지? 처음부터 작당하고 모은 거라고. 호구들 긁어모아서 룸비 아끼려고. 애초 견적부터 과다계상한 거 아냐? 알고보면 지 돈 한 푼도 안 쓰고 코 풀려는···.’

[설마 그렇게까지.]

‘아니야. 이건 나중에 확인해 봐야겠어? 걸리면 아주 조져 버리게.’

도훈이 그런 생각을 하는 무렵 슬슬 시간이 되었는지 방장이 담배를 꺼냈다. 모두 여섯 개비였다. 그는 호프집에서 볼펜을 빌리더니 남들이 보지 못하게 필터에 동그라미 표식을 했다.

"동그라미 쳐진 쪽이 한팀이에요. 민무늬가 한 팀이고."

"지금 바로 팀 짜는 거에요?"

"이제 입장해야 할 시간이니까."

"으 떨린다."

"근데 이게 차라리 나아요. 뒷말도 안 나오고. 누구부터 뽑을까, 그래 기둥이 너부터 해."

방장이 가까이 있는 도훈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 순간 가짜 샤대생이 도훈과 방장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놈도 이미 방장에게 싸인을 받는 눈치였다.

‘일단은 네놈 생각대로 놀아나 주지.’

도훈이 약속대로 맨 왼쪽 담배를 뽑았다.

"전 표식 있네요."

"오케이. 다음은 누구···."

이어서 하나둘 담배를 뽑았다. 방장의 예상대로 헬스 트레이너, 회사원, 춤꾼이 민무늬를 뽑았고, 도훈과 샤대생이 표식이 있는 담배를 골랐다.

"나머진 뽑으나 마나겠네."

방장은 마지막 담배를 뽑지 않고 뽑힌 담배를 모두 한데 모으더니 다시 담뱃값에 집어넣었다. 도훈이 그 모습을 생각했다.

‘얍삽한 새끼. 마지막 담배에는 표시도 안 해놨겠군.’

[네?]

‘뻔하지. 맨 처음 두 사람이 고르게 하고는 나머지는 뭘 뽑아도 민무늬밖에 없게 만든 거라고. 어차피 남은 건 자동으로 정해지니까. 하여간 꼼수는.’

[흐흐. 관전하는 입장에서 흥미진진하군요. 꼼수와 말빨의 달인과 능력을 봉인 당한 대물 주인님의 대결이라니.]

‘한 번 두고봐. 내가 어떻게든 물먹이고 만다.’

나머지 팀이 똥씹을 표정을 짓는 가운데 방장이 일어섰다.

"자, 그럼 선수 입장 해볼까요?"

< 372. 조각모음-10- > 끝

ⓒ 성난불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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