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385화 (365/2,000)

< 367. 조각모음-5- >

"소식요? ···무슨 소식요?"

도훈은 순간 불안감이 엄습했다.

무슨 사고라도 당한 것일까?

아님 난데없이 결혼이라도?

"필라테스 학원을 연다고 일주일 전 그만 뒀잖아요."

"필라테스요?"

"아, 모르셨구나. 원래 송미나 코치가 계속 그쪽 방면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지도 연수도 받고, 관련 자격증도 따고···. 암튼 너무 섭섭해 말아요. 원래 트레이너들은 개인 숍 차리는 게 꿈이니까. 나도 남성 전문 PT 숍이나 열고 싶은데···. 혹시 생각 있음 말해

요. 창립 회원 50% 디씨해 줄 테니까. 하하!"

‘남성 전문 PT숍 같은 소리하네. 게이들이나 득실거리겠지.’

도훈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코치와 인사를 마치고 탈의실로 향했다. 어쨌든 헬스장까지 들어온 이상 그대로 돌아가자니 우스운 꼴이 될 것 같았다.

‘미나가 PT 많이 하더니 돈 많이 벌었나 보네. 벌써 개인숍이라니···. 하긴, 남성 회원들이 틈만 나면 몸매 훔쳐보는 헬스장에서 공짜로 눈요기 시켜주긴 싫었겠지. 그래서 최근 헬스장 오라는 연락이 없었나 구나. 가게 오픈 하려면 정신없을 테니까.’

하지만 도훈도 사람인지라 연락도 없이 그만 둔 미나의 태도가 못내 섭섭했다.

특히 옷을 갈아입고 운동을 하러 나간 순간, 그녀와 함께 뒹굴었던 헬스장의 모습이 오버랩 되면서 그날 밤 뜨거웠던 추억이 떠올랐다.

‘이 벤치 프레스 위에서 떡방아도 찧고 그랬었는데 말이지.’

그때 지나가는 아줌마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송 코치 필라테스 샵 내일 오픈한다지?"

"정말? 어디?"

"여기서 별로 안 멀어. 곰플러스 마트 옆 건물이라던가?"

"근데 좀 섭섭하네. 나도 그룹코치 한 번 받았었는데, 그렇게 말도 없이 떠나버리다니 말이야. 그만 둘 땐 두더라도 작별인사는 하고 가지는."

"그게 들어보니 사연이 좀 있더라고."

"무슨 사연?"

도훈은 운동을 하는 척 자연스럽게 두 아줌마의 대화를 엿들었다.

"여기 사장이 송 코치 그만둔다니까 엄청 말렸다잖아, 월급 20% 더 올려줄테니까 제발 있어달라고."

"20프로를 더?"

"그럴만도 하지. 생각해봐, 여기 송코치 보러오는 남자들이 얼마나 많았는데."

"하긴···. 탄탄한 궁둥이 씰룩거고 다니면 남자들이 사족을 못 쓰긴 하더라."

"아무튼 근데 송 코치도 은근히 스트레스가 많았나 보더라고. 솔직히 젊은 아가씨가 맨날 남자들이 자기 훔쳐보는데 기분 좋을리 있겠어?"

"아, 그래서 필라테스를?"

"그렇지. 그런 운동은 주로 여자들이 하니까."

"근데 왜 말도 없이 그만 둔거야?"

"아무래도 연관된 직종이다 보니까 사장이 회원 뺏길까봐 괜히 심술부린 거지. 상도덕 운운하면서 일절 알리지 말라고 했데. 나도 그만 둔 다음 다른 트레이너들이 말하는 거 듣고 알았잖아."

"아···. 근데 내일 오픈이라는 건 어떻게 알았어?"

"응, 아까 장보려고 마트 들렀다가 가는 길에 우연히 만났어. 인테리어가 아직 안 끝났는지 늦게까지 가게 불 켜져 있더라고."

"우리도 그 짝으로 옮길까? 필라 머시긴가?"

"여편네가 별걸 다 배운 다 그러네. 런닝머신이나 열심히 뛰어."

두 사람의 대화를 들은 도훈은 그제야 사정을 파악했다.

‘오호라, 일이 그렇게 된 거였어? 그렇다고 나한테 까지 연락을 안 할 줄이야. 내가 그렇게 열심히 물을 빼줬더니만···.’

도훈이 푸념하자 로시가 말했다.

[연락 안하긴 주인님도 매한가지 아니던가요?]

‘응?’

[솔직히 그렇잖습니까. 자긴 여자에게 먼저 연락안하면서 무조건 상대방이 오길 기다리는 거. 여자 입장에서 생각하면 섭섭하지 않을까요?]

‘그거야 관리할 여자들이 한 둘도 아니니.’

[그걸 송미나 양이 이해해줄 필요는 없죠. 아니 알아서도 안 되고요.]

도훈은 로시의 지적에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다.

절대 먼저 연락 안하는 주제에, 남이 연락 안 했다고 실망하다니. 그것이야 말로 이기적인 작태가 아닌가? 게다가 도훈이 연락을 끊은 것은 두 사람이 자고난 이후다. 아마도 송미나 입장에선 먼저 연락하기가 무척이나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남자들은 여자와

한 번 자고 나면 나몰라라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음, 생각해보니 내가 잘못 했네.’

[그렇죠? 먹튀한 쪽은 오히려 주인님이니까요.]

‘먹튀라니? 말 조심해. 먹긴 했지만 튀지는 않았다고.’

[업적도 다 이뤘겠다. 시들해 진 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죠.]

‘그런 거 아니라니까 그러네. 잠깐 다른 일로 소흘해 졌을 뿐 잊은 적 없어.’

도훈이 운동을 하다말고 벌떡 일어섰다. 그녀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라도 이대로 있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

[왜요?]

‘가게 오픈한다는데 개업 축하라도 해줘야지.’

[지금 말입니까?]

도훈이 헬스장에 걸린 시계를 힐끔거렸다.

저녁 8시 반.

아직 늦지도, 그렇다고 이르지도 않는 시간이다.

‘오픈 당일 날은 서로 바쁠테니까 말이야.’

도훈은 운동을 하다말고 샤워실에 들러 대충 몸을 씻고는 곧바로 헬스장을 나섰다.

***

문자 메시지를 뒤져 송미나의 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한참 가는데도 전화를 받지 않자 살짝 조급해졌다.

‘흠, 설마 안 받는 건 아니겠지?’

그때 미나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오랜만이네?

"네. 누나도 잘 지내셨어요?"

-어. 요새도 학교생활 바쁜가 봐?

미나의 목소리는 어딘가 심술이 묻어 있었다. 나한테 섭섭한 마음이 많았겠지?

"아니에요. 3월도 다 지나고 이제 숨 쉴만 해요. 누난 어떻게 지냈어요?"

-그냥 뭐···. 참, 나 트레이너 그만뒀어.

"진짜로요? 제 PT는요?"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물었다.

-음, 다른 코치님들한테 미리 부탁해 놨어. 잘 해주실거야.

"아, 난 누나 아니면 안되는데."

-피. 그날 이후로 연락도 없더니만 무슨···.

"미안해요. 사정이 좀 있었어요."

-괜찮아. 솔직히 많이 섭섭했는데, 생각해보니까 우리 아무사이도 아니잖아. 그치? 나 쿨한 성격이니까 신경 안 써도 돼. 어, 잠깐. 아저씨 그 기구는 그쪽 아니구요, 벽면에 바짝. 네, 거기요.

"바빠요?"

-아니, 일하는 중이라···. 오늘 좀 정신없네.

"다른 일 자리 벌써 구한거에요?"

-그럼 집에서 놀고 있을 까봐서?

"근데 뭐 공사 하나봐요? 아까부터 전동 드라이버 소리 들리던데?"

-너 참 귀도 밝다야.

"설마 막노동 뛰는 건 아니죠?"

-뭐래니, 얘도.

"왜요, 누나 힘 좋잖아요. 특히 쪼이는 힘."

-그런 소리 마. 괜히 생각나니까. 만나주지도 않을 거면서.

"농담이었어요. 근데 진짜 무슨 일 하는 데요?"

빠르게 발을 놀리다 보니 어느새 곰플러스 마트가 눈에 들어왔다. 도보로 10분 좀 안 걸리는 위치였다.

-나 원래 개인 숍 갖는 게 꿈이었거든. 그래서 이번에 조그맣게 필라테스 학원 준비하고 있어.

"우와, 그럼 이제 트레이너가 아니라 원장님이네요?"

-원장은 무슨. 아직 개시도 안했는데.

"어디서 하는데요?"

-그게 좀···. 기존 회원님한테는 홍보 안하기로 약속했거든.

"에이, 제가 필라테스 배울 것도 아닌 데요. 그냥 말해줘 봐요."

-어차피 아직 오픈도 안했어. 나중에 가게 정돈되면 그때 알려줄게.

"섭섭하네. 개업 선물이라도 사갈까 했는데."

-마음만 받을 게.

"진짜로 괜찮겠어요? 선물 뭔지 안 들어봐도?"

-응? 뭔데?

"일단 도착했으니까 올라갈게요. 4층이네? 엘리베이터 타고 가면 되죠?"

-어? 무슨 소리야 갑자기?

"저 누나 학원 밑이에요. 아직도 공사중인가 보네. 불 다 켜져있고."

-도, 도훈아.

"그럼 올라갈게요."

나는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자 입구까지 마중 나온 미나가 보였다.

청 멜빵바지에 흰 티, 야구 모자를 눌러 쓴 캐주얼한 스타일. 현장 일을 도우러 온 모양인지 작업복에 가까운 차림이었다.

‘후후. 몸매가 이쁘니까 저렇게 입어도 섹시하군?’

미나는 내 얼굴을 보더니 깜짝 놀라서 물었다.

"진짜로 왔네?"

"그럼 거짓말 하는 줄 알았어요?"

"여긴 어떻게 알고···."

"누나 보러 헬스장 갔다가 우연히 들었어요. 근데 나 여기 계속 세워둘 거예요?"

"아, 아니 근데 지금 한참 아저씨들이 마무리 작업 중이라···."

"괜찮아요. 제가 도와줄 건 없어요?"

"뭘 돕기까지 해."

"왜요. 우리가 보통 사이도 아니고."

나는 거침없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 필라테스 학원은 그녀의 말대로 아담한 사이즈였다. 가운데 홀을 중심으로 기구룸과 탈의실, 그리고 메트가 깔린 스트레칭 룸이 나뉘어 있었다. 작업하는 인부들은 모두 3명이었는데 기구배치와 조명 작업등을 하고 있었다.

"수고하십니다. 누나 동생이에요."

"오, 미나씨 동생도 있었어?"

"동생 분도 누님 따라 미남이구만."

아저씨들은 몇 차례 덕담을 건네더니 자기 일에 몰두했다. 마감을 맞추기 위해 막바지 인 것 같았다. 나는 전체적으로  둘러보고 소감을 말했다.

"가게 예쁘네요. 특히 인테리어가 깔끔해서 회원들이 좋아할 것 같아요."

"고마워. 내일 바로 첫 수업인데 잘 될지 모르겠어."

"회원은 많이 유치했어요?"

"오픈 이벤트 좀 걸었더니 어느 정도는? 참, 차라도 한 잔 마실래?"

"네. 좋죠."

나는 홀 중앙에 비치 된 테이블에 앉았다. 잠시 후 미나가 종이컵에 커피를 타서 왔다.

"미안. 준비가 덜 되가지고 줄게 이것 뿐이네."

"믹스가 어때서요? 맛만 좋은데. 누구처럼."

나의 19금 농담에 미나가 화들짝 놀라며 눈치를 살폈다. 다행히 작업 중이던 소음에 묻혀 아무도 못 들은 것 같았다.

"야! 너 진짜."

"히히 왜요? 틀린 말 했나, 뭐."

"한참 만에 찾아와서는 한다는 소리가 그것뿐이니?"

미나가 펙트로 때렸다. 뼈가 울릴 만큼 뜨끔한 일침.

‘안되겠는데 정보창 도움 좀 받아야겠어.’

[역시 전가의 보도를 꺼내시는 군요. 디스플레이에 띄웠습니다.]

나는 시계를 힐끔 거리는 척 미나의 갱신된 정보를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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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 송미나 (비 처녀, 일시 20세 5개월)

나이 : 24

호감도 : 86/100

개방성 : 중

성감대 : 입술, 젖꼭지, 밑 가슴 접힘 부위.

*애무 포인트 : 그녀는 이빨로 젖꼭지를 잘게 깨무는 걸 좋아합니다.

성욕지수 : 상

공략팁

*위 대상은 이미 공략되었습니다.

*위 대상을 공략하여 ‘헬스녀를 공략하라’ 미션을 완수하였습다.

*위 대상을 공략하여 ‘도전과 응전’ 이벤트를 완수하였습니다.

*그녀는 관계 이후 뜸해진 연락에 살짝 골이 난 상태입니다.(호감도 하락-2)

*그녀는 당신을 보고 싶었지만, 바쁜 일정 탓에 먼저 연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당신의 깜짝 방문에 굉장히 기뻐하고 있습니다.

-호감도를 상승시키기 위해 다음의 행동을 추천합니다.

-추천 멘트 : "누나 엄청 그리웠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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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후. 아닌척 하면서 은근히 보고 싶었구만? 하여간 대물맛 좀 봤다하면···.’

[오죽 했을까요? 자신의 명기에 버틴 몇 안되는 남자였는데요.]

‘참, 송미나의 조임력이 얼마였더라?’

[질 수축도는 95입니다.]

‘이번에 카사노바의 반지로 업그레이드 된 내 강직도가 95 아녔냐?’

[맞습니다. 이제 동등한 입장이 되었군요.]

‘후후. 맞수가 되어 다시 만나니 감회가 새롭구만.’

"···미안해서 그렇죠."

"뭐가?"

미나가 은근히 기대하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냥. 그 날 이후로 연락을 못 드려서요."

"미안한 줄은 아네?"

미나의 목소리는 한결 풀어진 것 같았다.

역시 사람을 얼굴 보고 사과해야 한다.

"그래도 다행이네요. 누나도 한참 바빴으니까."

"말도 마. 옛날부터 조금씩 준비하긴 했는데, 막상 시작하려니까 얼마나 정신없던지···."

"근데 왜 갑자기 그만두신 거예요?"

"좋은 위치에 건물이 싸게 나왔거든. 그래도 부모님한테 조금 손 벌려야 했어. 온전히 내 힘으로 시작해 보고 싶었는데···."

"이야, 대단해요. 24살에 사장님이라니."

나는 진심으로 축하했다.

아무리 여자들의 사회 진출이 빠르다곤 하지만 저 나이에 자신만의 샵을 갖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이런 쪽은 어쩔 수 없어. 20대가 전성기니까 무리해서라도 빨리 자릴 잡아야 하거든. 요가든 필라테스든 원장이 젊어야 회원들이 좋아하니까."

"하긴 그렇네요. 그런데 아쉬워서 어째요? 이제 남자 회원들은 많이 못 받을 텐데?"

"왜? 요샌 남자도 필라테스 많이들 배워. 이게 원래 재활치료로 시작한 건 알지?"

"네."

"너도 혹시 운동하다가 삐끗하면 와. 누나가 다시 교정해 줄게."

"진짜요?"

"응. 특별 회원이니까 염가로!"

"그냥 몸으로 때우면 안돼요?"

"으이구, 진짜. 너 나 엄청 편한가 보다?"

나는 피식 웃어 보였다.

"그럼 누난 나 불편해?"

"칫-. 말은 잘하네."

"아참, 제가 도와드릴 건 없어요? 나 일하러 온 건데?"

"괜찮아. 거의 다 됐어. 안쪽에 캐딜락만 설치하면 끝나. 조명도 다 된 것 같고."

"캐딜락이 뭐에요?"

"필라테스 기구이름인데 정식 명칭은 트라페즈 테이블(Trapeze Table)이야.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직접 보는 편이 빠르겠다."

미나가 나를 기구룸으로 안내하더니 인부들이 한참 조립중인 ‘캐딜락’이라는 기구를 가리켰다. 전체적으로 침대위에 평행봉 같은 구조물을 설치한 것 같은 외양이었다.

"우아, 신기하다. 저걸로 무슨 운동을 해요?"

"많지. 스트레칭 포함해서 무려 80가지 동작이나 수행 할 수 있거든."

미나가 신이 나서 기구에 대해 설명하는 와중 나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저 위에서 할 수 있는 체위도 80가지는 족히 넘어 보이는 걸?’

잦이 분쇄기라 불리는 명기와의 재대결을 앞뒀기 때문일까?

대물이 긴장감에 꿈틀대기 시작했다.

< 367. 조각모음-5- > 끝

ⓒ 성난불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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