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383화 (363/2,000)

< 365. 조각모음-3- >

핸드폰 화면에 뜬 사진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오!"하는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사진 속의 남자는 소위 말하는 얼짱.

새하얀 얼굴에 숯검댕이처럼 진한 눈썹이 대비되면서 절로 탄성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마치 연예인 데뷔전 사진을 보는 느낌이랄까?

로시 역시 비슷한 심정이었나 보다.

[우아, 엄청난 미남인데요?]

‘그러게. 아이돌 인 줄···.’

[주인님이 꿀리는 거 아닙니까?]

‘에이 설마. 그래도 내가 어디 가서 빠지는 와꾸는 아니잖아? 키도 훤칠하고 몸매 출중하고.’

[물론 그렇지만 한 가지 명심하셔야 합니다. ‘맨몸으로’ 업적은 스킬과 아이템이 봉인될 뿐 아니라, 공략 시점에선 저와의 대화까지 일체 차단된다는 사실을요.]

‘아, 맞다. 그랬지?’

[차라리 지금이라도 다른 조각방을 찾아보시는 게 어떻습니까? 까딱하면 저 얼짱 방장에게 유흥비만 대주고 실속도 못 차리실 수 있을 것 같은데.]

로시의 노파심이 나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뭐? 내가 너 없인 아무것도 못하는 빙다리 핫바지로 보여?’

[아니, 그런 말은 아니옵고···.]

‘까고 말해서 얼굴만 잘생겨 봐야 뭐해? 어차피 여자 취향은 십인십색이란 말이지. 오히려 나처럼 몸 좋은 사람이 더 좋다는 여자가 많을 걸?’

-홈런만 친다 : 와, 방장 엄청 잘생겼네. 5할 타자 인정.

-클럽 매냐 : ㅎㅎ감사합니다.

-홈런만 친다 : 근데 그 정도 와꾸면 헌팅만 해도 여자들 줄줄 넘어올 것 같은데 나이트 조각 왜하심?

-클럽 매냐 : 갠적으로 나이트가 더 잼써요. 헌팅은 많이 해봐서 식상함.

-홈런만 친다 : 쩝-. 나는 그냥 옆에서 콩고물이나 얻어 먹어겠고만.

-섹스피스톨 : 이거 꿀려가지고 같이 조각하겠음? 우리 꿔다놓은 보릿자루 되는 거 아님?

-보픈각 : 허어, 모르는 소리. 차라리 에이스 하나 있어주는 게 훨씬 유리하다니까? 여자들 스프링 하려다가도 에이스 딱 보는 순간 엉덩이에 본드 붙여주는 게 에이스의 힘이란 말씀이야.

-전설의 대물남 : 방장 자신 있어 하는 이유가 있었네. 난 솔직히 얼굴은 그닥인데 몸매는 그럭저럭 봐줄만 함.

이어 또 다른 사진이 올라왔다.

이번엔 ‘전설의 대물남’이란 유저의 사진이었다.

"와, 씨발 이건 또 뭐야?"

육성으로 욕이 튀어나왔다.

그의 사진은 얼굴은 짤린 체 벗은 몸만 드러나 있었는데, 한 여름 해수욕장에서 찍은 듯 쌔까맣게 탄 피부에 밑에는 헐렁한 반바지 차림이었다.

무엇보다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엄청난 벌크를 자랑하는 상체. 거짓말 않고, 곰 같은 성수마저 꼬마처럼 보이게 할 정도로 대단한 근육질이었다.

-섹스피스톨 : 헉! 저 몸매 실화임?

-보픈각 : 혹시 보디빌더세요?

-전설의 대물남 : ㅇㅇ. 현직 트레이넙니다.

-보픈각 : 대박, 셔츠 터져나가겠네.

-섹스피스톨 : 아니 무슨 근육이 갑옷이네 갑옷.

-전설의 대물남 : 사진 빨이 좀 받았어요. 저땐 한창 벌크업 하던 시절이고, 지금은 비시즌이라 볼륨이 좀 빠짐.

-보픈각 : 키아, 근데 진짜 대물 맞나보네, 몸만 봐도 알겠다.

-섹스피스톨 : 몸 좋다고 거기도 실한 건 아니던데···.

-전설의 대물남 : 맘대로 생각하셈.

-홈런만 친다 : 아니, 이러면 대체 나는 뭘로 어필하지? 계속 BMW 키홀더 돌리고 있어야 함?

-보픈각 : 헐, 홈런님 BMW 차주세요?

-홈런만 친다 : 네.

-섹스피스톨 : 아까 회사원이라지 않았어요? 회사원이 무슨 BMW를 몰아요?

-홈런만 친다 : 그냥 지르고 보는 거죠.

-보픈각 : 저는 아직도 서울 메트로 타고 다니는데···.

-섹스피스톨 : 캬, 근데 다들 쩌네요. 흑흑. 전 그냥 평범한 휴학생인데.

-보픈각 : 평범한 거 맞아요? 혹시 구세주 보다 위라는 건물주 아니고?

-섹스피스톨 : 금수저는 무슨. 굳이 내세울 거라곤 공부 좀 잘한 거 밖에 없네요.

-보픈각 : 혹시 대학이?

-섹스피스톨 : 저기 관악산 밑에 있어요.

-보픈각 : 으억, 샤대셨음? 무슨 과?

-섹스피스톨 : 생명공학부요.

-홈런만 친다 : 어, 거기 의전가는 곳 아니에요?

-섹스피스톨 : 자유전공이긴 한데 나중에 그쪽으로 많이들 가죠.

-홈런만 친다 : 아까 알바한다지 않았어요? 샤대생이 무슨 알바를 함?

-섹스피스톨 : 과외 뛰는 건데요.

-홈런만 친다 : 아, 고액과외였구나.

-보픈각 : 다들 짱짱해서 전 명함도 못 내밀겠네요.

-홈런만 친다 : 그래도 보픈각님은 여기서 제일 영계잖슴. 어린 게 최고지.

-섹스피스톨 : 보픈각님도 뭐 자랑할 거 없음?

-보픈각 : 전 진짜 아무것도 없어요. 굳이 있다면···.

-섹스피스톨 : 있다면?

-홈런만 친다 : 두둥 반전!

-보픈각 : 춤은 좀 추는 편이에요. 고등학교 때까지 비보잉 팀에 있었거든요.

-섹스피스톨 : 오! 춤꾼이었네.

-홈런만 친다 : 스테이지 오르면 막 난리 나는 거 아님?

-보픈각 : 헤헤. 클럽에선 먹히긴 하는데, 어차피 이번엔 나이트 조각이니까.

스크롤 올라가는 것을 가만 보고 있자니 점점 배알이 꼴려왔다. 무슨 ‘천하제일 자랑대회’ 나온 줄?

‘이 새끼들 죄다 구라 아녀? 어떻게 한 채팅방에 이런 조합이 나올 수 있지? 얼짱에 몸짱에 금수저에 고학력자에, 전문 춤꾼까지···. 이게 가능한 일이야?’

[허풍이 좀 섞였을 수도 있지만 말한 대로라면 정말 만만찮은 조합이군요. 그냥 지금이라도 포기하심이···.]

‘닥쳐! 내가 우습게 보이냐? 나 대물 플레이어야. 이도훈이라고! 12명 때씹까지 성공한 이도훈!’

로시의 염려가 오히려 자존심을 건드렸다.

‘막말로 채팅으로 뭔 말을 못해? 어차피 인증도 상관없는 거 인터넷 퍼온 사진 올리고 아무 말이나 내뱉을 수도 있는 거잖아.’

[저도 그러면 좋겠습니다. 경쟁자가 잘나봐야 이득될 게 없으니까요.]

‘나도 솔직히 자랑할 거 늘어놓으면 끝도 없다고. 개강한지 한 달만에 같은 과 여자애들 10명 넘게 따먹었다고 터뜨려줘?’

열 받은 나는 재빨리 타자를 두들겼다.

하지만 여전히 느린 손놀림이 말썽이었다.

채팅창 ? 저도 사실 카사노바로 유명···.

-클럽 매냐 : 다들 스펙이 나쁘진 않네요. 근데 어차피 이런 건 중요한 게 아님. 가장 중요한 건 팀웍임. 혼자만 잘났다고 분위기 파토내는 순간 모두 나가리임. 제가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모두가 원나잇 성공하는 거임. 나만 할 거 였음 아는 웨이터 부탁해

서 솔플 뛰었음.

-홈런만 친다 : 오오, 방장님 마인드가 대인배.

-섹스피스톨 : 근데 조각 모두가 원나잇 하는 경우도 있나요?

-클럽 매냐 : 충분히 있죠. 그래서 팀플이 중요하다는 것임. 여자들은 군중심리가 있기 때문에 한명 삔또 상해서 일어나면 분위기 좋던 다른 여자들까지 우르르 따라가는 경향이 있음. 모두가 합심해서 끌어주고 분위기 화기애애하게 만들면 앉은 자리서 골뱅

이 제작까지 가능. 어차피 술 취하면 와꾸고 나발이고 그딴 게 중요한 게 아님. 그때부턴 들이대서 자빠뜨리는 거임.

-전설의 대물남 : 캬! 방장님 완전 고수시네. 방장님만 믿고 갑니다.

-홈런만 친다 : 방장님 진짜 감동했습니다. 내일 웨이터 팁은 제가 쏠게요. 묻어가는 입장에 가진 건 돈 뿐이라.

-보픈각 : 다들 쩐다 진짜. 저 이 모임 꼭 참석할게요.

채팅창 : 저도 사실 카사노바로 유명한 편인데 믿기 어렵겠지만 같은과 여학우들을···.

채팅창에 글을 쓰는 도중 주제가 전혀 다른 쪽으로 흘러가 버렸다. 그때 누군가 나를 꼬집어 물었다.

-전설의 대물남 : 근데 성난불기둥님은 여전히 눈팅중인가?

-섹스피스톨 : 성난불기둥님 내일 오시는 거 맞죠?

-보픈각 : 아까부터 말이 없는 거 보니까 잠수 아님? 방장님 잠수면 강퇴각 아닌가요?

가, 강퇴라고? 이런 씨발.

나는 욕설을 퍼부으며 다 적은 글을 다시 지워야 했다. 어차피 이제와 내 자랑을 해봐야 믿어주지도 않을 게 뻔하다. 타자가 느린 내 손을 원망하는 수밖에.

-성난 불기둥 : 내일 참석합니다.

-클럽 매냐 : 1초만 늦었어도 강퇴당할 뻔 하셨음. 눈팅만 하지 말고 말 좀 하세요.

-성난 불기둥 : 네.

-클럽 매냐 : 그나저나 이대로면 맴버는 적당한 것 같은데 내일 어디서 만날지 구체적인 장소나 정해보죠. 제가 최근 장안동쪽으로 몇 번 가봤는데 영 수질이 안 좋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에는···.

이후로도 대화는 끝없이 이어졌다.

방장이 먼저 의견을 내고 참가자들의 제청을 받는 식이었다. 말주변이 워낙 좋은데다 유흥 쪽으로 해박한 지식을 선보였기 때문인지, 대부분 방장의 의도대로 대화가 흘러갔다.

‘그나저나 방장 저 새끼 얼굴도 얼굴인데, 입 터는 것 봐선 보통 놈이 아닌 것 같은데?’

[제 말이 그 말입니다. 주인님께서 만약 스킬과 아이템을 자유롭게 사용하고 저와 계속 논의를 할 수 있다면 모를까, 갑자기 능력을 봉인하게 되면 평소보다 배이상 어려울 겁니다. 어차피 업적 달성이 목적이라면 이 조각모음은 재고해 보심이···.]

객관적으로 로시의 조언은 옳다.

나는 소설 집필의 도움을 받기 위해, 또 ‘맨몸으로’라는 업적을 달성코자 나이트를 가려는 것이다. 하지만 스킬도 쓰지 못하고 아이템도 부릴 수 없는 내가, 과연 처음 보는 여자들을 상대로 원나잇을 성공시킬 수 있을까? 저렇게 잘생기고 이빨 좋은 애도 5할 겨

우 넘는 판에? 더구나 저렇거 쟁쟁한 경쟁자들 사이에서?

솔직히 자신은 없다.

하지만 여기서 굽히는건 더 싫다.

그것은 내가 로시의 도움 없이는 무능하다는 반증일 뿐이었다. 이제껏 내가 이룬 모든 업적들이, 순전히 플레이어라는 행운 덕에 가능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꼴이었다.

‘실패해도···.’

그렇다.

때론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덤벼 보는 것도 필요하다.

‘상관없으니까.’

사람이 언제나 성공만 할 순 없다.

숨 가쁘게 달려왔으니 한 번 쯤 넘어져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주, 주인님.]

‘해보이겠어.’

[진심이십니까?]

‘그래. 스킬과 아이템이 없다고 해도 이도훈은 이도훈이야. 이런 훌륭한 몸뚱이를 가지고 나이트 가서 여자 하나 못 후린다면 그거야 말로 부끄러운 일이라고.’

[오오, 역시 주인님은···.]

‘까짓 거 밑져야 본전이지. 열과 성을 다하면 안되는 게 어딨어? 시작도 전에 포기하는 태도가 더 최악이라고.’

[참으로 훌륭한 마인듭니다. 명필은 붓을 탓하지 않고, 고수는 녹슨 칼만으로 천하를 제패한다더니···.]

띠링-

순간 머릿속에서 알림이 울려왔다.

‘서, 설마 이 소리는?

[주인님! 새로운 알람입니다!]

‘어째서?’

[우선 디스플레이부터 보시죠.]

★천상의 메시지★

-피땀눈물 신의 축복-

"당신의 굳건한 의지가 피땀눈물 신의 관심을 끄는데 성공했습니다. 피땀눈물 신은 당신을 응원코자 이번 업적에 4000포인트를 후원합니다."

[아아, 하수3레벨에 오르자마자 이런 경우가!]

‘뭐야, 대체? 미션도 이벤트도 아니고 천상의 메시지라니?’

[주인님의 폭발적인 성장세를 감안하더라도, 이런 케이스는 정말로 이례적이군요!]

‘야야. 설명부터 하라고. 저게 뭔데 그래?’

[지금부터 복잡한 설명이니 잘 들으셔야 합니다.]

로시가 긴 설명을 시작했다.

***

플레이어의 칭호는 모두 5가지이다.

초심자, 하수, 중수, 고수, 랭커.

초심자는 신에게 선택받은 모든 플레이어들이 최초로 부여받는 기본 칭호다. 여기서 업적 3개를 완수하면 하수로 접어들게 된다.

[하수레벨에선 7개 업적 단위로 레벨이 상승합니다. 주인님은 현 호칭에서 14개의 업적을 완수하셨기에 하수3레벨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그건 이미 아는 얘기잖아.’

[여기서 부터가 중요합니다.]

하수까지는 플레이어로서 미숙한 단계로 판단한다. 스킬도 부족하고, 가용할 수 있는 아이템 또한 저가의 양산품이다.

[일전에 랭커에 오르게 되면 플레이어끼리 의사소통이 가능하다고 했던 것 기억나십니까?]

‘그랬지. 무슨 채널 같은 데 접속할 수 있다며?’

[그것처럼 중수에 오르게 되면 또 다른 특전이 주어집니다. 그것은 바로 신들의 후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죠.]

‘후원이라고?’

[방금 보셨던 천상의 메시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피땀눈물의 신이 주인님을 눈여겨보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가만, 가만. 내가 지금 이해가 잘 안 되서 그런데 다시 말해볼게. 그러니까 칭호가 상승할 때마다 이전에 없던 특전이 개방되는데, 중수에 오르면 신들의 후원이 가능해 진단 소리지?’

[정확합니다.]

‘근데 난 지금 하수3레벨이잖아?’

[아아, 제가 급하게 설명하느라 한 가지 빠뜨렸군요.]

본래 등급에 맞춰 열리게 되어있는 특전은 직전 단계 마지막 레벨부터도 부분적으로 개방된다. 가령 고수3레벨에 이르면 랭커 특전인 채널링을 눈팅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아니, 그러니까 당장 중수가 아니지만, 중수(진)부터 신들의 후원이 부분적으로 가능하다는 얘기야?’

[정확합니다. 다만 제가 아는 바로는 하수3레벨부터 신들의 관심을 끄는 경우는 무척 이례적이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아마도 주인님의 폭발적인 성장이 신들 사이에서도 상당한 관심사가 아닌가 싶습니다.]

‘가만, 근데 신들이라고? 천상계의 창조주는 오직 한 분 아니었어?’

[진정한 신은 당연히 그분밖에 없지요.]

‘근데 무슨 신들이 나와? 그건 신이 여럿이란 소리잖아?’

[주인님이 아셔야 할 것 중 하나는 신들 사이에도 ‘격’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유일신이면 창조주이신 신은 오로지 한 분이지만, 그 이하 신들도 얼마든지 존재하거든요. 일전에 저승에 가셨을 때 한번 만나 뵙지 않으셨던 가요?]

‘으잉, 내가 언제? 아,아! 염라 말이군!’

< 365. 조각모음-3- > 끝

ⓒ 성난불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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