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3. 조각모음-1- >
***
저택을 나서며 택시를 잡았다.
"기사님 국성대 근방으로 가주세요."
기사는 대꾸도 없이 메타기를 꺾더니 그대로 차량을 출발시켰다. 뒷좌석에 자리잡은 나는 문득 고개를 돌려 작아지는 최 회장 일가의 저택을 바라보았다.
거대하고 음울한.
중세의 칙칙한 고성을 연상시키는 대저택이 조금씩 멀어져간다. 고작 이틀이라는 시간동안 엄청난 일을 겪은 것 같다.
‘신벌’은 어떤 식으로 내려지게 될까?
아마 세 사람 다 무사하진 못할 것이다.
자식의 아내를 탐한 최 회장이나, 아내를 초대남에게 돌린 최민식이나, 타고난 음기를 주체 못하고 두 사람 사이를 줄타기 하던 정선희나.
‘···안타까운 일이군. 다른 사람들은 죗값을 받는다 쳐도 애자매는 무슨 죄야? 진실을 알고 나면 충격이 클 텐데···.’
[어쩔 수 없지요. 좋은 부모 밑에서 태어나는 게 행운이라면, 그로인해 발생한 불행 또한 감당해야하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겠죠.]
‘하긴, 세상에 좋은 일만 있을 순 없지.’
입맛이 씁쓸했다.
이러나저러나 마지막 방아쇠를 당긴 사람은 결국 나다. 남의 불행을 촉발시켰다는 점에서 나 역시 마음이 편친 못하다.
나는 누구를 단죄할 만큼 깨끗한 사람인걸까?
로시가 속마음을 읽은 것처럼 곧바로 화제를 돌렸다.
[참, 하수3레벨 승급을 축하드립니다. 보상을 확인하셔야죠.]
‘뭐가 있었지?’
[우선 자매덮밥에 대한 보상으로 ‘마법의 팬티’ 아이템을 확보 하셨습니다. 착용하는 동안 정액 생산량을 증진시켜 임신확률을 최대 3배까지 올릴 수 있는 아이템입니다.]
‘아···, 임신확률 증가라니, 그야말로 쓸데없는 아이템이로군.’
[위대한 유산 옵션과 병행하면, 별도로 정액량만 증가시킬 수도 있습니다. 정액이 많으면 다양한 플레이가 가능해 지겠지요.]
‘음, 이단 발사 때 좀 덜 아프려나?’
이단 발사는 내가 멋대로 붙인 이름이다.
한번 싸고, 연이어 또 싸는 스킬.
특히 두 번째 발사 때는 불알이 오그라들 정도로 쥐어짜는 느낌이 있었는데, 정액이 증가하면 좀 더 개선될 듯도 싶다.
[또 자매덮밥 위업의 달성으로 하수2레벨에서 하수3레벨로 승급하셨습니다. 승급 보상으로 랜덤 스킬 박스와 더불어 ‘카사노바 반지’의 포인트가 확보되었습니다.]
‘호오, 드디어.’
스마트 워치의 디스플레이 창엔 ‘랜덤 스킬 박스’가 떠 있었다. 레벨 승급 시에만 주어지는 공짜 스킬. 이번엔 무슨 스킬을 받게 될까?
[지금 확인 하시겠습니까?]
‘당연하지. 지금이 운 빨 대폭발 시간이잖아.’
섹스 직후 1시간.
나에겐 평소보다 배가 넘는 행운이 주어진다.
왠지 지금이라면 굉장히 좋은 스킬을 받게 될 것 같다.
*랜덤 스킬 박스(?)
-하수3Lv, 호칭 보상
-클릭하시면 새로운 스킬을 얻을 실 수 있습니다.
화면을 터치하자 보물상자가 열리는 그래픽 효과가 발동되었다. 언제 봐도 유치하기 짝이 없는 도트그래픽이다.
띠링-
[마음의 소리(3Lv)]
-반경 30m내에 자리한 사람들의 생각을 머릿속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지속시간 3분.
-다음 스킬레벨로 올리기 위해선 200포인트가 필요합니다.
-다음 스킬레벨에 도달하면 청취시간이 1분 더 증가합니다.
-다음 스킬레벨에 도달하면 청취반경이 5M 더 증가합니다.
-재사용대기 8시간 6분.
‘오오! 이것은!’
[축하드립니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 아이템의 상위호환 스킬이 나왔군요.]
‘내가 가끔 사용하던 그 이어폰 말이지?’
[그 아이템은 ‘내 귀의 도청장치’라고 해당 아이템의 소모품 버전입니다.]
‘아, 그렇군. 근데 상위호환이라니?’
[모든 스킬 셋은 하위호환과 상위호환 버전이 나뉩니다. 가령 예를 들면 불을 다루는 마법인 ‘파이어 볼트’는 ‘파이어 볼’의 하위 호환이지만, ‘헬 파이어’라는 마법은 상위 호환인 것처럼요.]
‘뭔소린 줄 모르겠지만 비슷한 계열의 스킬끼리도 차등이 있는 말이지?’
[네 그렇습니다. 해당 스킬은 이어폰이나 헤드셋과 같은 통역 장치로 구현되는 거추장스러움이 없을뿐더러, 카툰 형태에서 목소리로 전환되어 스킬의 사용 범위까지 획기적으로 개선되었습니다. 또한 별도의 포인트 소모 없이 쿨타임만 지나면 쓸 수 있다는 장
점도 있지요.]
‘역시, 왠지 운수가 좋을 것 같더라니. 사용방법은 어떻게 되지?’
[스킬을 생각하시고 반경 30M의 특정인을 지정하시면 됩니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다 무뚝뚝한 택시 기사를 바라보았다.
어쨌든 당장의 실험대상은 택시 기사 뿐이군.
‘로시, 저 택기기사의 마음의 소리를 들려줘.’
[넵. 스킬이 발동되었습니다.]
잠시 후 머릿속에서 생소한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아마도 택시 기사의 실제 목소리 같았다.
{이래가지고 오늘 사납금이나 채울 수 있으려나.}
오호, 들린다 들려!
나는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 척 그의 생각을 엿들었다.
{저 대학생 한 눈 파는거 같은데 살짝 돌아 가볼까?}
나쁜 마음을 먹은 택시 기사가 룸미러를 힐끔거리며 나를 쳐다보았다. 어쭈, 뺑뺑이 돌아서 요금 더 받아 처먹겠다 이거지?
기사가 좌회전 깜빡이를 켜 신호대기하자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아저씨, 근데 여기서 좌회전보다 직진하는게 더 빠르지 않아요?"
"아! 그, 그렇지. 내가 정신이 없어가지고."
기사는 엄청 당황하며 핸들을 꺾었다.
곧이어 그의 생각이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왔다.
{어이쿠, 쪽팔릴 뻔 했네. 딴 생각 말고 열심히 운전이나 해야겠다.}
3분이 지나자 더 이상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오, 이거 대박인데? 상대방의 생각이 머릿속으로 직접 들어오네?’
[그렇죠? 지속 시간이 짧은 게 흠이지만 필요할 때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겁니다. 스킬 확인이 끝나셨음 카사노바의 반지 포인트 재분배도 하셔야죠.]
‘오케이.’
새로운 스킬의 효과를 확인한 나는 손가락에 차고 있던 반지를 옆으로 돌렸다. 디스플레이 화면에 대물 정보가 갱신되었다.
[보유자 : 이도훈(23)]
(포인트를 분배해 주십시오. 현재 잔여 포인트 :5)
길이 : 18cm(고정값, 수치 변경 불가)
직경 : 4.3cm (포인트당 +0.1)
발기 지속력 : 50Min (포인트당 +1)
*근성가이 패시브 효과로 지속력이 증가하였습니다.
발기 강도 : 93 (포인트당 +0.5)
회복 시간 : 22Min (포인트당 ?0.5)
*근성가이 패시브 효과로 회복시간이 감소하였습니다.
일일 최대 사정 횟수 : 7회 (5포인트당 1회 추가)
*근성가이 패시브 효과로 사정횟수가 증가하였습니다.
굴곡률 : 4° (포인트당 +0.3)
1회 평균 사정 양 : 3ml (포인트당 +0.05)
*보유하신 마법의 팬티효과로 1회 사정량을 증가시킬 수 있습니다.
오랜만에 본 대물 상세 정보엔 상당한 변화가 있었다.
[근성 가이 스킬이 제 몫을 톡톡히 했군요. 발기 지속력, 회복시간, 최대 사정 횟수 모두 눈에 띄는 증가가 있었습니다. 정력 강화 부문을 따로 할 필요가 없겠는데요?]
‘그렇군. 어차피 이건 섹스만 많이 하면 올라가는 거니까.’
[1회 사정량 또한 별도로 올리지 않아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그렇담 여기서 올릴 수 있는 건 직경, 강도, 굴곡률인가?’
기억에 따르면 지난 번엔 직경에 3포인트, 강도에 2포인트를 투자했다. 흔히 오는 기회가 아니기 때문에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굴곡률을 올리면 무슨 효과가 있을까?’
[아무래도 휘어진 만큼 쾌락이 증대되겠죠.]
‘소시지보단 바나나가 좋다는 소린가?’
[음, 그 부분까진 자세히 모르겠군요.]
근성가이 패시브로 투자할 곳이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포인트는 부족해 보인다.
‘두께는 이만하면 된 것 같아. 너무 두꺼워서 못 받아들이는 애들이 있으면 곤란하거든.’
[국내 한정으로는 그렇죠. 처녀 공략 시에도 불편할 거구요.]
‘좋아. 그럼 이번엔 강도에 4포인트, 굴곡률에 1포인트 분배하겠어.’
[알겠습니다. 효과가 적용되어 현재 발기 강도는 95, 굴곡률은 4.3°로 변경되었습니다.]
‘벌써? 꺼내서 확인해 볼 수도 없고.’
[어차피 육안으론 식별이 어려울 겁니다.]
‘흐흐. 그나저나 이번 애자매 덕에 얻은 게 참 많구나.’
자매덮밥의 아이템 보상, 새로운 스킬과 카사노바의 반지 포인트 분배. 그리고 인연의 붉은 실 가위라는 이벤트 특전까지.
[과외비 선불로 100만원도 받으셨죠.]
‘아, 맞다. 이건 어떻게 하지?’
[그만둘 생각이면 돌려주셔야 하지 않을까요?]
‘그만 두는 게 아니라, 민식한테 한 짓이 있으니 짤린다고 봐야지. 그냥 불알 값으로 퉁 치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은데···.’
내기에 진 민식은 나에게 불알 두 짝을 빚졌다.
50만원에 불알 한 짝씩이면 본인도 싸게 먹혔다고 좋아할지도 모르겠다.
[다음 과외가 2주 뒤 주말이었죠?]
‘그렇지. 이번 주말 걸 미리 땅겨서 했으니까.’
[그때쯤이면 신벌로 인한 사태도 종결되었을 겁니다. 지금은 혼란의 도가니 일 테니 그쯤 찾아가 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군요.]
‘그래. 애자매들 뒷이야기도 궁금하고 말이야.’
집에 도착한 나는 오랜만에 푹 잠을 청했다.
단기간에 많은 일을 겪어서 인지, 꿈자리가 영 뒤숭숭한 밤이었다.
***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애자매에 대한 후유증은 상당기간 이어졌다.
최 회장의 최후가 어땠을지, 정선희나 최민식이 무슨 신벌을 받았는지도 궁금했다. 희애나 수애, 미애 역시 괜찮은지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의도적으로 관심을 끊었다.
이제부터 그들 가족의 일이다. 남의 가정사에 너무 깊숙이 참여하는 것은 오지랖이란 생각이 들었다.
다만 아쉬운 것은 매력 터지던 세 자매를 앞으로 못 볼수도 있겠구나 하는 점이었다.
그들의 인생에서 나란 존재는 어떻게 기억될까?
"도훈 오빠?"
혼자 담배를 태우며 상념에 잠겨 있는데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2학년 우현미였다.
"어, 현미야."
"여기서 뭐하세요?"
"수업 끝나고 도서관 가려고."
"공부 열심히 하시는 구나. 끝나곤 뭐하시는데요?"
현미가 눈치 없게 자꾸 알짱거렸다. 빽봊이라 한 번 먹어줬더니 내가 자기 애인이라도 되는 줄 아나?
갑자기 타락의 정화 특전으로 얻은 인연의 붉은 실 가위가 생각났다. 옳지, 잘 됐구나. 저 못 생긴 메갈리안이면 실험용으로 적당할 것 같다.
나는 뒷주머니에서 ‘인연의 붉은 실 가위’를 몰래 꺼내들었다. 겉보기엔 평범한 사무용 가위처럼 생겼다.
그러고 보면 천상계와 직통으로 연결된 이 주머니는 마법의 창고가 아닐 수 없다. 필요한 건 언제든 꺼내 쓰고 다시 집어넣으면 된다.
‘로시, 가위 쓰는 법좀 알려줘.’
[가위를 들고 관계를 끊고 싶은 상대를 쳐다보시면 특별한 선이 보일 겁니다.]
‘오케이.’
뒤로 숨긴 손에 가위를 들고 현미를 쳐다보자 그녀와 나 사이로 붉은 색의 끈 같은 것이 연결되어 있었다. 그것은 물속에 잠긴 천처럼 끊임없이 꿈틀거렸고, 주변으로 아지랑이 같은 것을 피워 올렸다.
‘음, 선이 보이는군.’
[인연의 정도에 따라 색깔과 두께가 달리 보입니다. 현미양의 경우 아주 진하진 않는군요. 섹슈얼한 관계가 있는 상대에 대한 호감 정도입니다.]
‘그럼 이걸 자르면 현미랑은 빠이빠이 된다는 건가?’
[네. 호감도가 60으로 초기화 되며, 주인님이 의도적으로 높이지 않는다면 그냥 학교 선후배 정도로 정리될 것입니다.]
‘그렇단 말이지.’
우현미는 ‘무모(?)한 도전’이라는 업적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먹게 된 2학년 후배다. 선천성 무모증이라는 빽봊이가 특이하긴 했지만, 얼굴도 그렇고 와꾸도 그다지 자주 먹고 싶은 타입은 아니다. 특히 메갈을 했다는 과거가 괜스레 찝찝했다.
‘그럼 이것으로 작별이다, 우현미.’
나는 몰래 가위를 들어 인연의 끈을 잘라냈다. 내 눈에만 보이는 선이긴 하지만, 싹뚝하고 잘리는 촉감이 묘하게 현실적이었다.
뚝-
아이템의 효과가 발동되는지 별안간 현미의 표정에 혼란스러운 눈빛이 감지되었다. 자기가 왜 나랑 대화를 나누고 있는지 갈피는 못 잡는 모양새다.
[호감도 재조정 되었는지 확인해 보시겠습니까?]
‘그래. 정보창 띄워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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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 우현미 (비처녀, 21세 7개월)
나이 : 21
호감도 : 60/100
개방성 : C
성감대 : 등허리, 귀 뒤, 클리토리스
*애무 포인트 : 그녀는 모욕적인 표현에 흥분을 느낍니다.
성욕지수 : 중간
공략팁
*위 대상은 이미 공략되었습니다.
*위 대상을 공략하여 ‘무모(?)한 도전’ 업적을 달성하셨습니다.
*인연의 붉은 실 가위 아이템 사용으로 위 대상과의 호감도가 초기화 되었습니다.
-호감도를 상승시키기 위해 다음의 멘트를 추천합니다.
-추천 멘트 : "현미 너 주말에 뭐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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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호감도가 초기화 되었다.
호감도 60이면 이성적인 호감을 가질 수 있는 수준.
한마디로 연인 관계로 발전할 가능성은 있지만, 의도적으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별다른 진전은 없다는 의미다.
‘재조정이 끝난 상대도 호감도를 다시 올릴 수 있는 거였어?’
[네. 관계의 완전한 단절이 아니라 말 그대로 초기화일 뿐이니까요. 바꿔 말하면 관계가 안 좋은 상대라도 얼마든지 초기화가 가능합니다. 주인님과 원수 관계에 있는 사람도 얼마든지 회복시킬 수 있죠.]
‘나한테 원수가 어딨다고?’
[여자는 거의 없지만 남자들은 상당히 많죠. 가령 최민식이라든가···.]
‘아아. 그 말이군.’
굳이 초기화 시킨 관계를 다시 회복할 필욘 없겠지.
나는 혼란스러워하는 현미에게 말했다.
"그럼 난 이만 공부하러."
"네, 선배."
현미는 마침 잘 됐다는 듯이 허겁지겁 물러났다.
이제 두 번 다시 그녀와 얽힐 일은 없을 것이다.
< 363. 조각모음-1- > 끝
ⓒ 성난불기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