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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370화 (350/2,000)

< 352. 애자매-52- >

***

바깥 공기를 쐬며 기운을 되찾은 도훈은 뻐근한 허리를 풀며 앞으로의 일을 대비했다.

소모한 정력은 정선희의 어마어마한 음기로 인해 상당량이 회수된 상태. 정신적 피로만 극복한다면 얼마든지 더 할 여력은 있었다.

‘깜짝 이벤트도 완수 했겠다, 이제 자매 덮밥 위업만 남은 셈인가?’

타겟은 희애와 수애. 대물에 환장하는 두 자매를 동시 공략하면 이 지긋지긋한 저택과도 이제 안녕이다.

그때 저택 문이 자동으로 열리더니 멀리서 헤드라이트가 비추었다. 도훈은 들어오는 승용차를 피해 구석으로 숨었다.

‘웬 차지? 설마 최 사장인가? 가만, 아직 정선희가 안방에 널 부러져 있을 텐데?’

도훈은 긴장된 표정으로 차에서 내리는 사람을 관찰했다. 만약 민식이라면 소란을 피워서라도 시간을 끌 요량이었다. 그러나 내리는 사람은 다름 아닌 최 회장이었다.

김 기사가 서둘러 트렁크에서 휠체어를 꺼내 최 회장을 앉혔다. 휠체어 뒤에는 언제나처럼 정비서가 시중을 들고 있었다. 말끔한 오피스룩을 차려입은 정비서가 김 기사에게 말했다.

"기사님 수고하셨어요. 먼저 퇴근하세요."

"네."

‘모임에 나갔다던 최 회장이 돌아왔나 보군. 근데 어째 안색이 영 불편해 보이는데?’

도훈은 귀를 쫑긋하며 정비서와 최 회장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컨디션은 좀 어떠세요?"

"으음, 차에서 잤더니 한결 낫구나. 너도 그만 들어가 보거라."

"잠자리까지 모셔다 드려야죠."

"그런 일은 며느리 불러서 하면 그만이야."

"아닙니다, 회장님. 이게 제 일인 걸요."

최 회장의 만류에도 민서는 휠체어를 밀며 저택으로 들어갔다. 도훈이 숨어서 지켜보니 최 회장의 얼굴이 불그스름한 게 술에 취한 것처럼 보였다. 아무리 최 회장이 노익장을 과시한다 한들 저 정도 취기면 금방 곯아떨어질게 분명했다.

‘그나저나 정민서, 저 불륜녀에게도 따끔한 맛을 보여줘야 하는데 말이지.’

도훈이 민서를 보며 입맛을 다시자 로시가 말했다.

[언제는 쳐다보기도 싫다더니 갑자기 마음이 동하나 보죠?]

‘인마. 그땐 바람피우는 게 역겨워서 그랬지.’

[지금은요?]

‘이젠 괜찮아. 너도 그랬잖아? 내가 하면 로맨스라며? 캬, 명대사였다 그건 정말.’

[저야 늘 주인님 편이니까요.]

도훈은 심드렁하게 말했다.

조금은 자조적인 표정으로.

‘···어차피 진흙탕에 뒹군 몸이야. 처음이 어렵지 두 번이든 세 번이든 무슨 상관이겠어?’

[호오, 방금 그 말은 무척 의미심장하군요. 이제 불륜이고 뭐고 신경 쓰지 않겠다는 소린가요?]

‘꼭 그렇다 보다는 응징이 필요할 때라면 더이상 뒤로 빼지 않겠다는 뜻이지. 불륜녀 중엔 정선희처럼 응당 벌 받아야할 여편네도 많을 거니까.’

도훈은 속으로 생각했다.

금제는 끝났다.

행복한 가정을 일부러 파괴하는 일은 없겠지만, 이젠 불륜이라는 행위에 대해선 더 이상 연연치 않을 것이다.

[어째서인지 저는 주인님이 이벤트를 완수한 것보다도 불륜 트라우마를 극복한 것에 더 기쁘군요.]

‘아무래도 상대가 상대였으니까. 좆방맹이라도 후려치지 않고선 참을 수 없을 만큼 역겨웠거든. 내 손에 똥오줌이 튀어야 응징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묻히겠어.’

도훈이 그런 생각을 하며 기다리는데 집으로 최 회장을 데리고 들어갔던 민서가 후다닥 핸드폰을 든 체 뛰쳐나왔다. 그녀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전화를 받았다.

"네, 사장님 전화 받았습니다."

‘사장이면 최민식? 통화 내용을 엿듣고 싶은데 멀어서 방법이 없군.’

[도청장치를 바닥으로 던지는 건 어떻습니까?]

‘오, 그런 방법이! 로시, 바로 쿠폰 제작해. 가장 빠른 방식으로.’

[넵. 무지 표지로 생성중입니다. 전송되었습니다.]

평소 배달 광고를 프린팅하느라 늦게 배송되던 쿠폰 도청기가 빠르게 주머니 속에 들어왔다. 도훈은 몸을 숨긴 체 민서의 주변으로 쿠폰을 날렸다. 나이트 삐끼를 방불케 하는 투척 솜씨에 로시가 감탄했다.

[이런 재능도 있으셨습니까?]

‘이게 재능까지 필요한 일이냐? 아, 소싯적에 딱지는 좀 날렸지.’

잠시 후 도훈이 찬 스마트 워치로 통화 내용을 생생히 들리기 시작했다.

"1시간 뒤에요? 아···."

-왜? 아버지 주무셨다면서? 여편네는 내가 책임진다니까?

"그래도 집안은 좀 무서워요. 따님분들 눈치도 보이고."

-걱정 마. 씨어터 룸은 완벽한 방음이야. 내가 거길 인테리어 맡기면서 얼마나 공을 들였는데?

"희애 아가씨가 밤늦게까지 영화를 시청하는 일도 많던데요?"

-그럼 희애만 처리하면 된다 이거네?

"처리라뇨?"

-있어봐. 오늘 밤 영화 시청 같은 건 엄두도 못 내게 만들어 줄 테니까. 희애 담당이 최 부장이었던가? 오케이, 이것만 처리하고 올 테니 좀 있다 다시 통화하자.

뚝-

전화는 일방적으로 끊겼다. 통화 내용을 엿들은 도훈은 두 사람이 나눈 대화의 파편을 통해 상황을 짐작했다.

‘여편네를 책임져, 집안은 무서워, 따님들 눈치, 씨어터룸···. 어랍쇼? 이것들이 설마 집구석에서 한 판 벌일 수작인가?’

도훈은 똥마려운 강아지마냥 초조해하는 민서를 계속 훔쳐보았다. 핸드폰 액정을 쳐다본다던가, 손톱을 물어뜯는 등 민서의 정서 상태는 영 불안해 보였다.

‘신기하군. 어째서 내연남의 잠자리 요구에 저렇게까지 당황하는 것이지?’

씨어터 룸이라면 본인도 경험이 있었다. 그곳은 설사 20 vs 1로 때씹을 벌여도 안심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일단 나가자. 1시간 뒤 최 사장이 온다니 얼른 일도 마쳐야 하고.’

도훈이 불쑥 어두운 곳에서 걸어 나오자 민서가 화들짝 놀라 소리쳤다.

"누, 누구세요?"

"안녕하세요."

"도···훈군? 어째서 거기서?"

"밖에서 잠시 담배 피우고 있었어요. 비서님 오신거 보니 회장님도 돌아오셨나 보네요?"

도훈은 통화 내용은 전혀 듣지 못한 것처럼 딴청을 피웠다. 민서는 그러면 앞선 통화가 감춰지기라도 하는 듯 전화기를 등 뒤로 숨기며 도훈에게 말했다.

"과외가 생각보다 늦게 끝난 모양이네."

"그건 아닌데 실은 과외 끝나고 사모님께서 맛있는 요릴 대접해 주셨거든요. 그때 와인을 몇 잔 얻어 마셨는데 취기가 올라가지고···. 참, 김 기사님 같이 오셨죠? 저 집에 데려다 달라고 부탁드려야 하는데."

선희에게 미리 사정을 전해들은 민서가 교묘하게 연기를 시작했다.

"김 기사님? 방금 퇴근 하셨을 텐데?"

"네? 그럴 리가···. 아까 사모님께서 귀가 부탁한다고 전화도 해주셨는데요."

"그랬어? 그러고 보니까 통화를 했던 것 같기도. 김 기사가 운전 중에 통화하느라 정신이 없었나 봐. 이를 어쩐다?"

‘연기하고 있군.’

도훈은 민서가 거짓을 말한다고 생각했다. 평소 그녀답지 않게 허둥대는 말투에서 뭔가 낌새가 왔다.

그는 옆으로 고개를 돌린 체 몰래 주머니에서 ‘내 귀에 도청장치’ 이어폰을 꺼내 꽂았다. 총 사용횟수 5번인 해당 아이템은 아직 2번의 유효 횟수가 남아있었다.

한쪽 귀에만 이어폰을 꽂은 데다, 어두운 배경에 도훈이 고개마저 돌리고 있으니 민서의 시야에선 이어폰이 보이지 않았다.

‘어디 한 번, 어떤 사연이 있는지 캐물어 보실까나?’

"그럼 그냥 택시타고 돌아가야겠어요."

"태, 택시? 여기서 거기까지 요금도 많이 나올 텐데···."

(사모님이 겨우 붙잡아 주셨는데 이대로 도훈일 보내면 안 돼. 어떻게든 오늘 밤 도훈이 앞에서 자빠져야 한다고!)

‘으응?’

도훈은 의외의 상황에 도무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민서의 말인 즉실, 자신이 오늘 밤 도훈을 덮치기로 했으며 그것이 정선희에게 받은 명령이라는 의미.

‘정선희, 이 미친 여자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던 거야? 자기가 따먹고 나서 하사품처럼 민서에게 돌릴 생각이었던 건가, 나를?’

참으로 기가 찰 일이었다. 딸들에게도 질투를 느끼는 여인이, 시종이나 다름없는 민서에게 자신을 돌린다는 것은 다른 꿍꿍이속이 있지 않고선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고 보니까 민서도 어처구니없네? 사모가 시키면 아무 남자랑 잘 수 있는 건가? 하긴, 애시당초 민식에게 민서를 붙여준 것도 정선희였지?’

도훈은 그제야 민서가 민식의 전화를 받고 안절부절 못하던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정선희의 명에 따라 오늘밤 도훈과 하룻밤을 보내야 하는 그녀에게, 민식의 요구는 들어주기 곤란한 부탁이었을 것이다.

즉, 장소가 문제가 아니라 타이밍의 문제였던 것.

"실은 아까도 택시타고 돌아간 댔는데, 김 기사님이 금방 온대서 기다린 거였거든요. 저희 집이 퇴근길 방향이라며 태워다 주실 거라고."

"그래도 늦은 시간에 택시 타는 건 위험할 수 있으니 그냥 집에서 자고 가는 건 어때?"

"네?"

도훈의 벙찐 표정에 민서도 아차 싶었는지 다시 덧붙였다.

"아, 아니 여자만 위험하란 법 있어? 요샌 택시 강도도 많고 그러니까···."

"하하. 무슨 소리에요. 방금 농담 하신 거죠?"

(으이구 바보! 당황해서 아무 말 대잔치 해버렸잖아? 그래도 어떻게든 도훈일 붙잡아야 돼. 안 그랬다간 내가 짤릴 판이라고!)

‘짤리다니? 나랑 자지 못했다고 민서가? 이것 봐라, 대관절 무슨 사연인지 급 궁금해지는데.’

"그래도 혹시나 사람일은 모르는 거니까."

"걱정해 주셔서 고마워요, 비서님. 비서님 같은 누나가 있어서 동생 분은 참 든든하겠어요. 부럽다."

"별말을 다하네. 도훈이 너가 내 동생이면 더 든든하겠지."

"진짜요? 말 나온 김에 우리 진짜로 누나 동생하고 지낼래요?"

"누나, 동생이라니?"

"왜, 의남매처럼."

"호호. 그러기엔 우린 너무 모르는 사이 아닌가? 얘기도 많이 안 해봤잖아."

"지금부터 하면 되죠. 아, 누나 퇴근하셔야 되나요?"

"아니야. 내일 회장님 일정이 새벽부터 있어서 집에서 자고 가야 돼. 도훈이 너도 같이 자면 늦게까지 얘기 나누고 좋을 텐데···."

민서가 은근히 수작을 부렸다. 도훈은 짐짓 모른 척 그녀의 장단에 맞춰주었다.

"같이 자요? 아이고, 큰일 날 소릴. 누나, 저 너무 어리게 보는 거 아니에요? 저도 그래도 남잔데."

"아니 그 얘기가 아니라···. 그리고 어리게 본 적 없어. 나보다 훨씬 큰데 어떻게 어리게 보겠어?"

"쓸데없이 키만 큰 거죠."

"정말로 키만 큰 거 맞아?"

‘오, 민서도 작정하고 덤비니까 화끈한데. 크크.’

[그러게 말입니다. 제법 섹드립도 할 줄 아는 군요.]

‘드립은 받아쳐야줘야 제 맛이지.’

"물론 그건 아니지만. 그나저나 택시타고 가려고 했는데 누나가 이리 붙잡으니까 갈 수가 없네."

"진짜로? 나 심심한데 그럼 얘기나 하다가. 택시는 늦게까지도 다니니까."

"그러다 끊기면요? 그렇다고 누나를 탈 순 없잖아요?"

민서는 움찔하는가 싶더니 대수롭지 않게 어깨를 으쓱했다.

"뭐, 그것도 나름 재미는 있겠네···."

[오오! 이게 무슨 경우랍니까? 완전 작정한 것 같은데요?]

‘그러게. 칼 같은 민서에게 저런 모습이 있었다니, 갑자기 흥미가 돋는 걸?’

드립의 후폭풍으로 애매한 분위기가 연출되는데 손에 쥔 민서의 폰에서 진동이 왔다.

부르르르-

한참 울릴 때까지 민서가 전화를 받지 않자 도훈이 물었다.

"안 받으세요?"

"집에서 찾는 전활 거야. 아이참, 오늘 회장님 댁에서 자고 간다고 말했는데, 자꾸 전화네. 그냥 안 받을래."

‘능청스럽게 거짓말도 잘하는 군. 민식의 전화란 거 뻔히 아는데.’

"근데 혼자 계속 담배 피우고 있던 거야?"

민서가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리자 도훈이 대답했다.

"아까 저녁 먹고 가볍게 맥주 한 캔씩 했거든요. 근데 다들 피곤했는지 금방 자러갔어요. 혼자 뻘쭘하게 있다 김 기사님 오시기만 기다리고 있었죠. 그런데 깜빡하고 가버릴 줄은 몰랐어요."

"그랬구나."

부르르르르-

그때 또 다시 전화가 울렸다. 연거푸 울리는 전화에 민서의 얼굴에 초조한 기색이 엿보였다. 도훈이 먼저 자릴 피했다.

"집에서 걱정하나봐요. 통화하세요. 전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그, 그럴래?"

도훈이 집안으로 들어가자 민서가 다시 전화를 받았다. 바닥엔 여전히 도청기가 깔려 있었기에 도훈은 멀리서도 두 사람의 통화 내용을 고스란히 엿들을 수 있었다.

-뭐야? 왜 전화 안 받는데?

"잠시 회장님이 부르셨어요. 내일 일 때문에···."

-거 아버지도 참, 술 자셨으면 곱게 주무실 것이지. 참, 그나저나 희애는 전혀 걱정할 필요 없다고 알려주려고.

"네?"

-내가 희애 직속 상사를 좀 갈궜거든. 업무 똑바로 가르치고 있느냐고. 오너 가족이라고 쉬엄쉬엄 봐주면 가만 안두겠다고. 왜 애가 집에만 오면 일도 없이 노냐면서. 다른 직원들하고 똑같이 일시키라고.

"······."

-그랬더니 대뜸 안 그래도 남아서 처리할 일이 있었는데 내일 오전에 한다고 일찍 퇴근했다는 거야. 크크. 지레 겁먹고 술술 불길레 당장 희애한테 전화해서 집에서 끝내서 오라고 했지.

"···그랬군요."

-근데 웬 걸? 전화를 아무리해도 안 받다가 겨우 받아가지고 한다는 소리가 과음을 해서 도저히 피곤해서 못 하겠다는 거야. 내일 일찍 출근해서 꼭 하겠다면서. 무슨 말인지 알겠어? 희애 지금 뻗어서 자고 있다고.

"네."

-뭐야? 그 성의 없는 대답은. 너 진짜 무슨 일 있어?

"아니에요. 저 근데 사장님···."

-응, 말해봐. 빽 사줄까? 아님 현찰 필요하니?

"그게 아니라···."

-아무튼 1시간 내로 갈 테니까 씻고 기다리고 있어. 아니다. 그냥 씻지 마. 난 너 안 씻을 때가 더 좋더라. 어, 김상무. 통화 다 끝났어. 애인이냐고? 하하, 누군지 알면 깜짝 놀랄걸.

뚜우뚜우-

전화는 또 다시 일방적으로 끊겼다. 도청기를 통해 통화를 엿듣고 있던 도훈에게 민서의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하아-. 왜 이렇게 꼬이기만 하지?"

그것은 가슴 속 깊이 우러나오는 탄식이었다.

< 352. 애자매-52- > 끝

ⓒ 성난불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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