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341화 (321/2,000)

< 323. 애자매-23- >

"무, 무슨 소리. 오해야."

"흐응. 아무래도 수상해. 확인해 봐야겠어."

"어, 어딜?"

미애가 말없이 대물을 빤히 쳐다보았다.

바지 밖으로 형체를 드러낸 대물은, 땅 밑을 기어 다니는 거대 이무기처럼 여전히 흉물스러운 모습이었다. 미애는 한 손으로 턱을 괴더니 미심쩍은 표정으로 물었다.

"어째 살짝 커진 거 같기도? 그치?"

"아, 아냐!"

나는 적극적으로 해명했다.

"원래부터 이 사이즈라고!"

"그걸 어떻게 믿어? 평소 크기도 모르는데."

"자, 잘 봐! 안 딱딱하잖아!"

말을 내뱉고도 아차 싶을 만큼 우스꽝스러운 답변이다.

내 대답에 미애가 어깨를 움찔 떨더니 두 손으로 발 그래진 볼을 감싸 쥐었다.

"헐, 뭐야. 선생님 변태였어?"

"아, 아니 그러니까 내 말은···."

"됐어. 학생한테 음란한 소리나 해대고. 심성이 글러 먹었어. 쯧쯧."

"이건 네가 물어봐서 대답한 거잖아."

"그럼 내가 물어보는 건 다 말해 주는 거야?"

미애는 예의 그 반달 눈웃음을 지었다.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생글거리는 모습이, 바람난 봄 처녀마냥 깜찍하기 짝이 없었다.

아오, 진짜.

확 벗겨놓고 따버리면 소원이 없겠네.

"또 뭘 물어보려고?"

"나 사실 궁금한 거 무지 많거든."

슬며시 시간을 확인했다.

건조기에 넣은 바지가 거의 다 말랐을 시각.

현재 학습 수준 파악과 앞으로의 공부 계획도 적당히 세웠겠다, 나는 자세를 편안히 고쳐 앉고 물었다.

"뭔데? 쉬는 시간이니 특별히 대답해 줄게."

"아싸!"

미애가 배시시 웃었다.

"대학교에서 MT 가면 진짜로 그거 해?"

그거?

때씹 말인가?

"아니 꼭 그렇지는···."

"장기자랑 안 해?"

"아, 장기자랑."

"뭐야? 그럼 뭐 물어보는 줄 알았는데?"

"아냐, 장기자랑. 나도 그거 생각했어."

"다른 거 생각한 것 같은데?"

"뭐래, 자꾸."

"하나 더 있어. 대학 가면 소개 많이 받지?"

"맞선?"

"무슨 소리야 대체! 아재도 아니고···. 소개팅 말하는 거잖아!"

"아, 소개팅. 가끔 하지."

난 저번 MT에서 한지연의 주선으로 이루어진 미술과 과팅을 떠올렸다. 그땐 1학년 남자애들을 때놓을 목적이었기 때문에 별다른 감흥은 없었다.

솔직히 나온 여자애들이 그닥이기도 했고.

미술하는 애들이라 그런지, 얼굴도 추상화 같았던가?

"그럼 오빠도 해봤어?"

"아니. 난 그런데 별로 관심이 없어서. 그런데 넌 공부하는 학생이 왜 그런 질문만 해? 난 또 공부에 대한 거 물어보는 줄 알았네."

"왜? 사람이 공부만 하려고 태어난 것도 아니잖아?"

그런가?

적어도 이정우 때 난 그런 줄 알았다.

공부만이 전부였고, 가장 잘할 수 있었던 것이 공부였던 그 시절.

돌이켜 생각하면 공부는 누구보다 곧잘 했지만, 딱히 삶의 만족도가 높았던 것 같진 않다. 언제나 1등을 도맡았던 내 삶의 끝은 그야말로 비극이었으니까.

오히려 이도훈인 지금이 훨씬 행복하다.

공부보다 여자가 좋다.

이건 진심이다.

그런 생각에 이르자, 이성에 부쩍 호기심을 보이는 미애가  다소 귀엽게 느껴졌다. 어쩌면 지금 이 시기가, 이 아이의 인생에선 가장 행복한 순간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청춘은 누구에게나 존재만으로 빛나는 시기니까.

"맞다, 맞다. 나 하나만 더 물어봐도 돼?"

"뭔데?"

"있지···. 남자들은 혹시 여자가 경험 없으면 별로인가?"

흠. 결국, 이게 가장 궁금했던 거로군?

진짜 묻고 싶은 건, 언제나 마지막이지.

"넌 무슨 그런 걸 물어. 꼬맹이가."

"꼬맹이라니? 나도 성인이라고. 운전면허도 있어."

"차 몰면 다 어른이야? 그리고 그게 과외 선생님한테 할 질문이니?"

"히잉. 뭐든 대답해 준다며."

"내가 언제?"

미애가 한껏 서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솔직히 내가 그걸 누구한테 물어보겠어. 가족한테 묻긴 민망하고, 그렇다고 재수 학원도 안 다니는 내가 다른 친구들이 있는 것도 아닌데."

"고등학교 때 친구 있잖아?"

"없어. 왕따였어."

입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은.

아깐 대학 간 친구들이 페북이니 인스타니 남자친구 자랑한다고 시샘해 놓고.

"그래서 가장 만만한 게 나다?"

"만만하긴. 오빠가 제일 믿을 만하니까 묻는 거지."

"흐음."

나는 고민에 빠졌다.

지금의 내 컨셉은 <순진한 과외선생>.

괜히 구체적인 답변을 했다가 정체가 탄로 나도 괜찮을까?

대답을 머뭇거리자 미애가 다시 말했다.

"엄마한테 절대 말 안 할게."

"응?"

"우리 둘 사이에만 비밀로 하면 되잖아. 오빠 곤란할 일은 없을 거야."

[저렇게까지 매달리는 데 슬쩍 알려주시죠. 이 분야의 전문가 아닙니까?]

‘그럴까? 이쯤에서 자극을 주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진짜로 그게 궁금해?"

"응, 응!"

미애의 눈이 초롱초롱 반짝였다. 해시테그에 붙은 ‘호기심 천국’이라는 문구가 딱 어울리는 표정이다.

"그러니까 그 경험이라는 게 내가 생각하는 그거 맞지?"

"아으 답답해! 그냥 편하게 말해도 돼. 나도 알 건 다 아니까."

풉-

정보창이 인증한 숫처녀 주제에, 알긴 또 뭘 알아?

넌 큰 언니 따라오려면 한참 멀었어.

너네 엄마랑 비교하면 끝도 안 보이고.

아무튼, 나는 최대한 조심스러운 태도로 대답했다.

"보통 남자들은 처녀를 더 선호하겠지."

"진짜? 오빠도 그래?"

"왜 갑자기 나한테 화살을 돌아오지?"

"그냥 묻는 건데?"

"아니라곤 못 하겠군."

"히. 오빠도 처녀를 더 밝히는구나?"

"얘기가 어째 그렇게 돼?"

"아니야. 히히."

여기서 대화가 끝나면 수위 낮은 19금 토크 정도다.

하지만 나는 별안간 미애를 흥분시키고 싶어졌다. 순진한 여자아이를 타락시키는 일만큼 신나는 일이 또 있을까? 차후의 공략을 위해서라도 지금 그녀의 호기심을 채워줄 필요가 있다. 궁금할수록 하고 싶어질 테니까.

"···근데 내 말이 모두 옳은 건 아냐. 어떤 사람들은 처녀를 싫어하기도 하거든."

"왜?"

"하나부터 열까지 다 가르쳐야 해서."

"그렇게 배울 게 많아?"

당연하지.

고기도 먹어본 놈이 더 잘 먹는 법인데.

"배울 게 많은 것도 있고, 일단 서투르잖아."

"어떤 부분이?"

"진짜 내가 이런 얘기까지 해야 해?"

"오빤 내 과외 샘이잖아. 그러니까 해줘."

이러라고 받은 과외비가 아닐 텐데···.

에라, 모르겠다.

학생의 궁금증을 해결해 주는 게 선생의 도리지.

"너 근데 진짜 엄마한테 말하면 안 된다. 이건 우리 둘만의 비밀이야. 내 말 무슨 뜻인지 알지?"

"당연하지. 나 입 무거워."

니 가슴이 더 무겁겠다.

흠흠.

"여자들이 처음 관계할 땐···."

"섹스라고 해."

"야, 넌 무슨 여자애가."

"그냥 구체적으로 말해. 그편이 더 헛갈린다고."

"알았어. 아무튼, 처음 섹스를 하면 그 처녀막 있지."

"응."

"그게 찢어질 때 피가 나거든. 그때 좀 아픈가 봐."

"으으! 나 피 나는 거 싫은데."

"근데 남자까지 처음일 경운 더 문제야."

"그건 왜?"

"남자들은 대부분 섹스를 야동으로 배우거든."

"야동? 나도 가끔 봐."

"넌 가끔이지? 남자들은 가끔 안 보는 정도야. 비교할 수 없지."

"윽! 오빠도?"

"그건 노코멘트."

"보네! 매일 보는구나? 역시 헨타이였어."

"아무튼, 야동으로 섹스를 접하게 되면 여자가 내는 신음을 좋아서 내는 줄로 알아."

"아···."

"근데 여자는 아파서 내는 걸 수도 있잖아. 실제로 충분히 젖지 않았는데 갑자기 쑥 넣어버리면···."

나는 이쯤에서 잠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미애의 목울대가 꿀렁거린다.

어찌나 집중하는지 침 삼키는 소리가 밖으로 들릴 지경이다.

공부를 이렇게 하지 그랬니.

그렇다면 재수도 안했을 텐데.

"너, 넣으면?"

"생살이 찢어지는 기분이겠지?"

"으윽!"

"그런데 야동으로 섹스를 배운 남자들은 마치 좋아서 그런 줄 알고 더 신나게 박아 버리는 거야."

"아악! 넘 야해, 오빠. 무슨 그걸 못 박는 것처럼 가볍게 말해."

"언제는 구체적으로 알려 달라며. 하면 한다고 뭐라하고, 안 하면 또 안 한다고 뭐라하고."

"아, 맞다. 쏘리쏘리. 계속해줘."

대화는 점점 노골적으로 흘러갔다.

야한 얘기가 이어질수록 미애의 두 볼이 달아오르며 책상 아래 발가락이 꼼지락거리기 시작했다.

‘슬슬 반응이 오는구나. 거기가 근질근질 하지?’

"그래서 여자도 못 느끼고, 빠르게 흔들어댄 남자 역시 자극을 못 참고 금방 싸버리지. 그렇게 되면 첫 경험이 안 좋은 추억으로만 남는 거야."

"아···."

"그래서 내 생각인데 여자가 처음일 땐, 무조건 경험이 많은 남자랑 해야 해. 특히 처녀를 많이 접해본 남자가 더 좋겠지. 훨씬 부드럽게 리드해 주니까."

"근데 남자가 처녀를 많이 만났는지는 어떻게 알아?"

니 앞에 있잖아.

자타가 공인하는 아다 폭격기.

"겉만 봐선 알 수 없지. 그래서 차라리 바람둥이 같은 남자가 연애하긴 더 좋다는 거야. 바람둥이들은 여자를 많이 만나봤으니 상대적으로 경험도 많을 테니까."

"한마디로 오빠 같은 남자?"

미애가 또다시 도발해 온다.

아주 빈틈만 보이면 달려드는 구만.

"그것도 노코멘트."

"왜 그렇게 노코멘트가 많아?"

"그건 너무 사적인 질문이야. 난 네가 궁금한 것만 대답해 줄 거야."

"나한테 지금 그게 제일 궁금하다구. 오빠 처녀랑 많이 해봤어?"

[오, 꽤 강력한데요? 미애양의 호기심은 끝을 모르는군요.]

‘이쯤 되면 뻔뻔한 건지 순진한척 하는 건지 모르겠다. 희애랑은 다른 의미로 골때리는 아이네.’

[비밀친구가 되고자 한다면, 비밀이 많을수록 좋은 거 아닐까요?]

‘그럴지도···. 다만 어설프게 도발했다간 큰 대가를 치른다는 것도 알려줘야지.’

"네가 보기엔 어떤데?"

질문을 역으로 돌리자 미애가 멈칫했다.

"나 솔직히 말해도 돼?"

"네 생각이니까 뭐."

"엄청 많을 것 같아."

"왜 그렇게 생각해?"

"잘생겼잖아."

"나보다 잘생긴 사람은 많아."

"몸도 좋고."

"보디빌더들은 더 좋겠지."

"공부도 잘해."

"수능은 아까 그 의대생이 더 잘 봤을 거야."

"그치만, 그 셋을 다 갖춘 사람은 별로 없잖아."

잘생기고, 몸도 좋고, 똑똑한.

대부분 여성이 호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이성의 조건.

하지만 내가 정작 듣고 싶은 대답이 아직 나오지 않았다.

"정말 그것뿐?"

"음···. 아니. 하나 더 있어."

"뭔데?"

"오빤 잘할 것 같이 생겼어."

"뭘?"

"그거 그거."

미애가 머뭇거리자 나는 더욱 뻔뻔하게 물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봐. 그게 뭔데?"

"섹···."

똑똑-!

"도훈 군. 바지가 다 말라서요. 과외는 아직인가요?"

결정적인 순간 훼방꾼이 등장했다.

타이밍 한 번 기가 막히군.

"아뇨. 지금 나가겠습니다."

결국 난 미애의 대답을 듣지 못했다. 한번 흐름이 끊긴 대화는 실수로 놓친 헬륨 풍선처럼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일어서는 나를, 미애가 아쉬운 눈으로 쳐다보길레 넌지시 운을 띄웠다.

"원래 주말에만 과외 하기로 했는데, 이번 주는 일이 있어서 내일 다시 올 거야. 내일까지 이 문제집 1단원 다 풀어놔. 알았지?"

"헐, 시작부터 숙제 내주기 있긔, 없긔?"

"대신 숙제를 해오면 상을 줄게."

"무슨 상?"

미애가 눈을 반짝거렸다.

"미리 알려주면 재미없지. 아무튼 꼭 해."

"응, 오빠, 아니 선생님!"

공부방 밖을 나가자 선희가 공손한 자세로 내 바지를 들고 있었다.

"첫 수업 어땠어요?"

"수업은 아니고 앞으로 계획 좀 세워 봤어요."

"저희 애가 좀 까불죠? 막내 소녀라고 할아버지가 오냐오냐 키워서 버릇이 없는 편이에요. 도훈 군이 이해해 주세요."

"아닙니다. 배우려는 의지도 강하고 호기심도 많더라고요. 잘 따라올 것 같아요."

물론 그게 공부는 아니겠지만.

"호호. 좋은 말씀만 해주시네요. 참, 속옷은 바지 사이에 개 넣어 뒀어요."

"여러모로 폐를 끼치네요."

"별말씀을. 저기 복도 끝에 손님방 있는데 거기서 갈아입으시면 될 거예요."

"감사합니다."

바지와 팬티를 받고 뒤돌아서는 데, 선희가 문득 생각난 것처럼 한마디 덧붙였다.

"참, 아깐 어디 계셨어요? 과일 들고 가니까 공부방엔 안 보이던데."

"···아, 갑자기 전화가 와서요. 담배 피우러 밖에 나간 김에 정원에서 통화 했어요. 근데 생각보다 길어져서."

"그러셨구나. 저는 말 없이 집에 가버리신 줄 알았지 뭐예요."

"아."

"아님, 길을 잘 못 찾고 엉뚱한 방에 들어갔나 했죠. 씨어터 룸이라던가?"

응?

찰나지만 ‘씨어터 룸’이란 단어에 내 눈빛이 흔들렸던 것 같다. 내 반응을 유심히 지켜본 본 선희가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를 지었다.

‘어랍쇼. 갑자기 분위기 싸해지는데?’

[혹시 뭔가를 알고 묻는 걸까요?]

‘그럴 리가 있나. 씨어터 룸은 완벽한 방음 상태였어. 근데 어떻게 알았지? 혹시 CCTV 같은 거라도.’

[제 시야로는 그런 장비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주인님이 아니라 희애 양이 들킨 걸지도.]

‘그럴지도 모르겠군. 아무튼, 확실한 물증은 없어. 어차피 찔러 보는 거야.’

[생각 외로 예리한 여성입니다. 직감이 무척 발달한 타입 이랄까? 항상 조심하십시오. 무슨 빌미로 꼬투리를 잡을지 모르니까요.]

‘그래야지.’

"그럼 도훈 군, 옷 다 갈아입으면 1층으로 와요. 저희 남편이 퇴근하고 막 돌아왔는데, 저녁 시간에 못 뵈었다고 도훈 군을 꼭 한번 만나보고 싶어 하네요."

"네, 금방 내려가겠습니다."

선희의 남편이면 최민식인가?

부인에게 초대남까지 붙여준다는 그 미친놈을 드디어 만날 차례로군.

< 323. 애자매-23- > 끝

ⓒ 성난불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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