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340화 (320/2,000)

< 322. 애자매-22- >

"우엑-. 여기가 무슨 군대야? 나 입영 영장 받은 기억 없는데?"

미애가 비꼬듯 투덜거렸지만, 나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이 세 가지가 규칙이야. 못 지키겠다면 나도 과외 해주기 힘들어."

"푸!!!"

결국 미애는 삐진 아이처럼 두 볼 가득 바람을 불어 넣었다.

복어처럼 빵빵하게 부푼 볼이 몹시 귀여웠다.

그러고 보면 같은 자매 사이인 세 사람 저마다 개성이 뚜렷한 것 같다. 대놓고 팜므파탈을 표방하는 섹시녀 희애. 수줍음 많은 성격을 차도녀 컨셉으로 위장한 둘째 수애. 그리고 반말이 습관인 귀엽고 깜찍한 미애까지.

자매라면 어느 정도 닮은 구석이 있기 마련이건만, 어째서인지 애자매들은 전혀 겹치는 부분이 없었다. 만약 이 캐릭터들이 단 한 명에게서 분화된 것이라면, 정선희는 참으로 보기드믄 팔색조 같은 여자일 것이다.

그녀가 유부녀만 아니었다면 좋았을 텐데···.

"우이씨, 뭔데 진짜. 안 그렇게 생겨서는 엄청 깐깐해."

"내가 어떻게 생겼는데?"

"그냥 모. 자상하고 잘해주다가도 밤에는 막 짐승처럼 변할 것 같은 낮져밤이 스퇄?"

"땍-. 꼬맹이가 못 하는 말이 없어."

"뭐래? 내가 어딜 봐서 꼬맹인데? 오빠랑 나이 차도 별루 안 나는 구만."

"3살이면 적지 않지. 그리고 나이가 중요한 게 아니라, 네가 날 진심으로 따르는 마음이 있어야 수업이 될 수 있어. 그걸 위한 규칙인거고."

"흐음."

나는 최대한 진지한 태도로 말했다.

"난 너희 어머님께 적지 않은 돈을 받았어. 그렇게 큰돈을 받아놓고 대충 수업하는 건 내 스스로가 용납 못 해. 그러니 신중하게 대답해. 위의 규칙을 따른다고 약속해야 과외를 시작할 수 있어. 못 하겠다면 당장에라도 너희 어머님께 그만둔다고 말할 거고. 알

겠어?"

나의 경고에 미애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설마하니 내가 이렇게까지 빡센 과외 선생이라곤 예상치 못했던 얼굴이다.

"···복장을 뭘 어떻게 하라는 건데."

미애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물었다.

과외를 하고 싶긴 한가 보네.

"일단 치마가 너무 짧아. 대학 도서관에서도 이렇게 입고 다니면 욕먹는다고. 혼자 사는 세상도 아닌데 주변 사람 시선도 신경 써야지."

"그치만 짤치 밖에 없단 말이야."

"짤치?"

"짧은 치마."

"츄리닝 없어?"

"없어 그딴 거. 아, 하나 있는데, 그거라도 입을까? 근데 그게 더 야할걸? 핫팬츠라서."

오옷.

귀여운 여자애가 핫팬츠라.

도끼 자국 다 비칠 텐데···.

나는 속으로 군침을 삼키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것도 문제군. 암튼 과외 때문에 새 옷 사라곤 안 할 테니까 복장에 좀 더 신경 써줬음해."

"왜에? 오빠가 힘들어서?"

시무룩해져 있던 미애는 금세 장난기가 동했는지 눈을 반달처럼 뜨고 나에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얘가 눈웃음을 치는 습관이 있었군. 이건 선희나 다른 자매들에겐 없던 특징이다.

"무슨 소린데? 내가 뭘?"

"오빠 커진 거 아니야, 지금?"

미애가 시선을 내리깔더니 지긋이 내 가랑이 사이를 쳐다보았다. 미애 말처럼 몸에 꽉 끼는 츄리닝 덕에 나의 대물은 오른쪽 바지 주머니 옆까지 매립된 흔적이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었다. 누가 보면 안에 구렁이가 한 마리가 기어다는 줄 알 것이다.

"아니 이건···."

"흐음, 복장 단정은 선생님부터 지켜야 할 규칙 같은데?"

미애가 약점을 잡았다는 듯 나에게 바짝 상체를 기울이며 압박해왔다. 인형처럼 귀엽게 생긴 스무살 여자애가, 도발적으로 다가오자 나도 모르게 움찔 물러섰다.

"오, 오해야."

"흐음? 어디가 오해일까나?"

[미애양은 굉장히 장난기가 많은 여학생이군요. 하는 짓이 앙증맞네요.]

‘제 언니랑 하나도 다를 게 없어. 외국으로 유학 보냈음 얘도 똑같았을 걸.’

[한데 왜 그렇게 쭈뼛거리시죠? 평소 주인님답지 않습니다.]

‘물론 연기지 이건.’

[연기요?]

‘미애는 도발적인 성격이야. 누군가를 당황 시킨 뒤 보이는 반응에 만족한달까? 큰 언니처럼 적나라하진 않지만, 제 나름 남자를 놀래키는 법을 아는 애지.’

[그래서 일부러 당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고요?]

‘맞아. 이번 컨셉은 <도발적인 학생에게 쩔쩔매는 순진한 총각 선생>으로.’

[흠, 주인님이 순진이라니. 그럴 리가···.]

‘물론 계속 당하는 척하다가 선을 넘는 순간 본색을 드러내는 거지. 내가 덮친 게 아니라, 스스로가 원인을 제공한 것처럼. ’

[후후. 역시 치밀하신 분. 그렇게해서 비밀친구로 만드시려는 거군요.]

‘비밀친구라니?’

[왜, 정보창 공략팁에 있던 그 멘트 말입니다.]

‘아아, 아조씨랑 비밀친구 할래, 그거? 완전 원조교재 단골 멘트 같던데.’

[정확히는 '오빠'랑 비밀친구죠. 정신적으론 원조라고 볼 수 있지만, 육체적으론 전혀 아니니까요. 사실 그렇게 세세하게 따지면 주인님이 공략했던 대학 동기나 선후배들은 대부분 원조나 마찬가지가 되버리니까.]

‘어이, 말은 똑바로 해야지. 돈 안 줬으니, 원조는 아니라고.’

"이건 원래 좀···."

"원래? 와···. 이게 그러니까···, 평상시의···."

미애가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어서와, 이런 대물은 처음이지?

"그만 쳐다 봐. 나도 어쩔 수 없이 입은 거니까. 불편해 죽겠어."

"흐응, 알겠어. 아무튼, 규칙은 최대한 지킬게. 그러니까 과외 못 하겠다는 소린 하지 마. 알았지?"

"좋아. 일단 진도부터 확인해 보자. 지난 번 선생님 한테 어디까지 배웠어?"

나는 미애와 차분하게 공부 계획을 세웠다.

비록 위업을 위한 공략대상이긴 하지만, 어쨌든 돈을 받은 이상 하는 시늉이라도 해야 한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무슨 일이건 돈 받는 순간 프로라고 생각한다. 프로는 결코 허술해선 안된다. 이제부턴 이정우의 명예를 건 과외나 마찬가지인 셈.

한참 그녀와 대화를 나누어 보니 기초가 부족한 게 가장 큰 문제임을 깨달았다.

나는 과거의 경험을 되살려 그녀에게 조언했다.

"그게 문제네."

"어떤?"

"수학은 다른 과목과 다른 부분이 있어. 학습이 누적적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앞부분의 결손이 계속 영향을 미친다는 거지."

"호오."

"가령 초등학교 과정부터 예를 들어 주지."

나는 빈 연습장에 간단한 나눗셈 수식을 적어주었다.

"이거 풀어봐."

"장난쳐?"

딱-!

"아, 아야! 이마는 왜 때리는데?"

"선생님 한테 말버릇이 그게 뭐야? 평소엔 맘대로 해도 되지만, 수업할 땐 예의를 지키도록."

"그, 그런건 규칙에 없었잖아!"

"마지막 규칙. 내 말에 절대 복종할 것. 벌써 잊었어?"

"치이···."

미애가 빨개진 이마를 어루만지며 문제를 풀었다.

머리띠로 앞머리를 훌렁 까놓고 있어 동그란 이마가 툭 튀어나와 때리기 수월했다.

왠지 저렇게 앞으로 튀어나온 이마를 보면 괜스레 때려보고 싶어진다.

"답은 4."

"풀만 하지?"

"이런 나누길 누가 못해. 지금 나 재수한다고 무시하는 거야?"

"아니. 그 다음 걸 설명하려고 그런 거야. 만약 나눗셈이 안된다고 가정해봐. 이런 문제를 풀 수 있겠어?"

이번에는 분수의 나눗셈 수식을 내놓았다.

미애는 여전히 손쉽게 풀었다.

그런 식으로 문제의 유형을 바꿔 도형, 대수 방정식, 마지막으로 미적분까지 문제수준을 끌어올렸다. 미애는 점점 풀이속도가 느려지더니 마지막 문제에 이르러선 손도 대지 못하고 끙끙대기만 했다.

물론 내가 낸 문제는 나도 못 풀 것이다.

아니 이정우 때라면 가볍게 눈으로도 풀었겠지만, 계산 능력이 현저히 느려진 지금은 어렵다는 소리다.

"아이, 참. 여기서 어찌해야 하지?"

미애는 문제에 집중할 때 머리카락을 비비 꼬는 습관이 있었다.

우스꽝스러운 머리띠를 한 이유도 아마 저런 습관을 방지하기 위한 대비책인 듯했다.

‘후훗-. 제법 귀엽잖아?’

[확실히요. 대학을 진학 못해 그런지 여전히 고등학생 같은 느낌이 많이 남아 있군요.]

‘재수생이란 신분이 참 어중간하단 말이야. 어디 가서 고등학생이라고도 못하고, 그렇다고 대학생이라고 할 수도 없고. 아청법엔 안 걸리는 나이지만 또 성인은 아닌 것 같은.’

[어차피 기회만 되면 바로 자빠뜨리실 거 아닙니까?.]

‘인마, 그게 다 업적 때문에 하는 거야. 사심은 없어.’

[과연?]

"으아앙, 못 풀겠어. 뭐가 이렇게 어려워?"

내가 타이르는 목소리로 말했다.

"잘 봐. 지금껏 푼 문제의 핵심은 ‘나누기’라는 기초적인 연산이 확장되어가는 과정이야. 그것을 도형에 적용하든, 아님 대수에 적용하든 기본 골격은 결국 나눗셈이지."

"근데 이걸 왜 시키는 건데?"

"수학을 잘하려면 어떤 부분에서 결손이 있는지를 파악하는 게 우선이야. 앞에서 얼렁뚱땅 넘어간 개념은 이후로도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니까. 이제 난 너의 수학 실력을 기초부터 다시 잡아 줄 거야. 내 말만 잘 따르면 금방 수학 실력을 올릴 수 있어."

상세한 설명에 미애가 감탄한 듯 커다란 눈을 깜빡였다.

"우앙! 오빠 그렇게 말하니까 엄청 똑똑해 보인당!"

‘실제로 천재거든. 과거긴 하지만.’

"그러니 나만 믿고 따라와. 내가 너 꼭 수학 만점 받게 해 줄테니까."

"응! 오빠!"

미애가 신뢰 가득 담긴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지적인 남자를 좋아하는 그녀라면, 이것으로 굉장한 호감도 상승이 있었을 것이다. 공부로 인정 받다니···.이도훈의 몸에선 처음 느끼는 기분이군.

"또. 과외 할 땐 오빠 말고, 선생님이라 하랬지."

"응, 선생님."

"그리고 가만 지켜보니 넌 머리는 굉장히 좋은 것 같아. 다만 방법을 잘 몰라서 해맬 뿐."

"진짜? 고마워, 실은 위에 언니들이 다 공부를 잘해서 스트레스였는데···. 난 나만 멍청한 줄 알았는데."

"아니야. 문제 푸는 것만 봐도 대충 알 수 있어. 근데 이 집안사람들은 다 공부 잘해?"

"응. 할아버진 돈이 없어 대학을 못 갔는데, 고등학교 때까진 엄청 공부 잘했다고 들었어. 엄마도 지금 둘째 언니 다니는 배화여대 나왔고. 아, 아빠는 아니네."

"아버지?"

"응. 울 아빠는 공부 못했데. 할아버지 말로는 도저히 국내에 보낼 대학이 없어서 외국으로 유학을 보냈다나? 근데 그것도 얼마 못 견디고 다시 한국 돌아와서는 엄마랑 만난 거래."

"그렇군."

그럼 애자매의 뛰어난 두뇌는 정선희에게서 물려받은 것인가?

왕성한 성욕까지 유전된 게 문제지만.

"근데 아빠도 엄청 웃겨. 자기도 학생 때 공부 못했으면서 나한테는 만날 공부만 시켜. 명문대 아니면 다닐 생각도 말라며."

"부모님 마음이 다 그렇지."

"쳇. 자긴 할아버지 재산 펑펑 쓰고 다니면서···."

미애는 아버지에 대한 감정이 별로 안 좋은 듯했다.

그것이 재수를 강요한 결정에 대한 반감인지, 아니면 방탕함에 대한 인간적인 실망인지는 확실치 않았다.

미애가 계속 말했다.

"할아버지도 아빠 하고 다니는 게 별로 마음에 안 드나 봐. 저번에 혼자 술에 취해서는 나한테 그런 말까지 하더라니까? 어떻게 일궈낸 기업인데, 3대를 못 가서 망하게 생겼다면서···. 차라리 나한테 바로 물려주고 싶다고."

뜬금없는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응? 그룹 전체를 미애 너한테?"

"응. 이상하지? 옥스퍼드 경제학과를 나온 큰 언니도 있고, 아님 똑똑한 둘째 언니도 있는데 굳이 나한테···. 그래서 내가 물었어. 왜 나냐고."

"그래서 뭐라시던데?"

"넌 다른 손녀들고 달리 특별하다면서."

"······."

뭔가 기분이 싸했다.

스멀스멀 올라오는 오싹한 기운이 헝클어진 퍼즐처럼 뒤섞였다.

불쾌한 느낌. 왠지 열어서는 안 될 판도라의 상자를 마주한 느낌이다.

혹시 최 회장의 숨겨진 비밀이라는 게···.

에이, 설마.

그건 아니겠지.

나는 지저분한 상상을 멈추었다.

생각만 해도 속이 매스꺼워 진다.

"···그냥 미애 네가 제일 이뻐 보였나 보네."

"어디가? 솔직히 얼굴은 둘째 언니가 최고잖아. 오빠도, 아차. 선생님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수애.

얼굴은 무척 예쁘다.

세월의 흔적이 보이는 정선희와 비교하면 꽃처럼 청초하달까?

다만 가시가 너무 많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내가 싫어하는 빈유.

"글쎄. 내 타입은 아닌데."

"정말? 그럼 희애 언닌 어때? 엄청 글래머잖아. 운동 많이 해서 골반도 잘 빠지고."

희애.

핫바디의 소유자.

육감적인 바디라인에, 다양한 섹스 경험으로 떡 맛 하난 일품인 여자.

하지만 너무 음란하다.

음란함이 지나쳐 정조관념마저 희박하다.

즐기기엔 좋지만, 정을 주고 오래 관계하고 싶지 않은 여자다.

"몸매야 뭐···."

나는 은근슬쩍 미애의 가슴을 훔쳐보았다.

단추를 연 남방 사이로 보이는 볼륨.

적어도 C컵은 넘어 보이는 상당한 크기다.

언니 희애도 가슴이 컸지만, 함몰 유두라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혹시 얘도 언니랑 똑같은 함몰이려나?

의식하기 시작하자 괜스레 신경이 쓰였다.

보고 싶다.

버튼이 눌렸는지 아닌지.

눌러보면 바로 알 텐데.

"어머? 선생님 지금 어딜 보는 거야?"

나이 시선을 느꼈는지, 미애가 과장스럽게 가슴을 감싸 안았다.

엑스맨의 영화 포스터처럼, 두 팔을 가슴 한가운데 크로스 시킨 모양새다.

"내가 뭘?"

"방금 내 가슴 훔쳐봤잖아. 선생님이 학생 가슴 그렇게 봐도 돼?"

< 322. 애자매-22- > 끝

ⓒ 성난불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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