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1. 애자매-21- >
선희의 표정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그 변화는 너무 급격해 변검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얘도 참 칠칠치 못하게··. 집에 남자 손님도 와 계신 데."
선희가 희애에게 다가가더니 등 지퍼를 끝까지 올려주었다.
찌익-
소름 돋는 사운드.
희애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아차, 끝까지 안 올렸었나?’
나름 철저하게 증거를 인멸한다 했지만, 보이지 않는 등 뒤까진 미처 신경 쓰지 못했다. 희애가 애써 당황한 기색을 숨긴 채 혀를 날름 내밀었다.
"그게 또 언제 내려갔담? 누워서 영화보다가 소파에 걸렸나 봐요. 헤헤."
왠지 변명처럼 들리는 기분에 희애의 얼굴이 후끈거렸다.
선희는 듣는 둥 마는 둥 제 할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너. 아무리 집이 편하더라도 속 옷은 입고 다녀야지. 다 큰 여자애가 그러면 못 쓴다."
선희가 속옷 자국이 보이지 않는 의상을 꾸짖자, 희애가 꾸벅 고개를 조아렸다. 누구에게나 제멋대로였지만 어머니 앞에선 늘 작아지는 희애였다.
"···알겠어요. 앞으론 조심할게요."
희애가 도망치듯 화장실로 들어갔다.
쿵- 닫히는 문소리가 그녀의 놀란 심정을 대변했다.
닫힌 문에 등을 기댄 희애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씨바. 엄마 눈치 깐거 아냐?"
희애는 어려서부터 관찰력이 뛰어났다.
주변 사람의 감정도 기민하게 캐치 했다.
둘째 수애가 저녁마다 자기 방에 틀어박혀 오나니를 하는 것도, 출신이 수상한 할아버지의 개인 비서 정민서가 아버지와 썸씽이 있다는 사실 역시 남다른 눈치를 통해 알게 된 것이었다. 더욱이 엄마인 선희가 가끔 새벽 늦게 들어온다는 비밀까지.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눈치가 누구에게 물려받은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적어도 아빠는 아니다.
최 사장, 그러니까 모 영화배우와 이름이 똑같은 민식은 할아버지에 비교하면 한참 뒤떨어진 인간이었다.
끈기가 없어 배움이 부족했고, 절제가 부족해 근성도 없었다. 근성이 없으니 뭘해도 안됐다.
금수저로 태어났기 망정이지, 손대는 사업마다 족족 말아먹는 바람에 ‘마이너스의 손’이라는 모멸적인 별명까지 붙은 작자였다.
자식의 눈으로도 한심하기 짝이 없는데, 부하직원들 시선 또한 곱지 않은 것이 당연했다. 낙하산으로 내려와 계열사에 근무하는 중에도 아버지에 대해 수군거리는 회사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었다. 그럴 때마다 희애는 화끈거리는 표정을 숨기느라 시선을 피
하곤 했다.
어릴 땐 그런 모자란 아빠에게 예쁘고 똑똑한-물론 안 좋은 의미로-엄마가 시집 갔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물론 나이를 들면서 돈의 위력을 깨닫고 나서야 수긍할 수 있었지만.
어쨌든 자신이 기민한 눈치는 엄마에게 물려받은 것이다.
게다가 색을 밝히는 특징까지 덤으로.
한숨을 쉬던 희애가 이내 생각을 고쳐먹었다.
"하긴 뭐 알면 어쩔 건데? 미애 과외 선생 좀 따먹었다고 혼내기야 하겠어? 자기도 몰래 바람피우는 처지면서."
그녀는 여전히 모르고 있었다.
엄마인 선희의 욕구가 자기 생각 보다 훨씬 커다란 것임을.
청출어람 청어람이라지만, 아직 멀었다.
엄마를 따르려면.
***
"우리 막내 손녀 과외를 맡기로 했다지?"
"네. 어쩌다 보니."
"그것참 잘된 일이 아닌가? 도훈 학생은 용돈 벌고, 나도 조금은 마음의 짐을 덜 수 있고."
"네, 아무래도 그냥 도움을 받는 것보다야 한결 마음 편하네요."
‘로시, 데일리 아큐브 효과는 영영 끝나버린 건가?’
[넵. 아쉽게도···. 문이 잠겨 있을 줄은 예상도 못 했습니다.]
‘그것도 좀 그래. 집에 있는데 왜 방문을 잠그지? 아무래도 수상하단 말이야. 뭔가 숨기는 게 있는 것 같아.’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제가 보기엔 주인님께 감사함을 느끼며 이것저것 퍼주고 싶어 하는 평범한 노인네 같은데.]
‘그게 수상쩍다는 거야.’
[네?]
도훈은 최 회장의 독특한 가언을 떠올렸다.
<최씨는 빚을 지지 않는다.
‘저 노인네는 평생 기업을 운영하던 사람이야. 누구보다 계산이 빠르고, 손해 보는 짓은 절대 하지 않지.’
[그런데요?]
‘그런데 내가 아무리 자길 구해줬다손 쳐도, 무슨 등록금을 대주고 싶다느니 손녀딸을 주겠다느니 하느냔 말이지.’
[돈이 아주 많으면 그럴 수 있지 않을까요? 돈이란 상대적인 거니까요.]
‘넌 기계라 사람 심리에 대해선 잘 몰라.’
[음?]
‘부자들이 왜 부잔 줄 알아?’
[왜요?]
‘돈이 많은 사람일수록 결코 돈을 허투루 쓰지 않거든. 최 회장은 스스로 은원이 확실한 사람이랬어. 하지만 지금 나에게 베푸는 호의를 보면 받은 이상으로 잘해주고 있어. 왜 그럴 것 같아?’
[빚졌다는 마음이 주인님 생각보다 커서?]
‘아니지. 나에게 뭔가 바라는 게 있다는 뜻이야. 과다한 호의 속엔 다 계산이 숨어있는 거야. 평생 돈 버는 것을 업으로 살아온 사람이니까 더더욱 그렇지.’
[흐음···.]
‘쿨 타임 다 돌았지? 지금 최 회장, 정보창 띄워. 제한된 정보나마 최 회장의 꿍꿍이를 들여다 봐야겠어.’
[주인님, 남성에 대한 정보는 다르게 나오는 거 아시죠?]
‘알고 있어. 그래도 해.’
[넵. 디스플레이에 띄웠습니다.]
도훈이 대화 도중 슬쩍 시계로 눈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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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 최후영 (비총각, 23세 4개월)
나이 : 77
호감도 : 67/100
성취향 : 거유, MILF, 영계
변태성 : 높음
*성감 포인트 : 오랄 받는 것을 무척 좋아합니다.
여성편력 : 평범
공략팁
*그는 당신에게 인간적인 호감을 보입니다.
*그는 말 못 할 비밀을 가지고 있습니다.
-호감도를 상승시키기 위해 다음 멘트를 추천합니다.
-추천멘트 : "회장님 앞으로도 오래오래 사셔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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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으. 기존 정보창 스킬론 건질 게 하나도 없군. 강화된 정보창이 딱 좋았는데.’
[어쩔 수 없지요. 주인님도 계속 강화를 하다 보면 언젠간 가능하실 겁니다.]
‘그래도 기춘이 때보다는 살짝 업 그레이드 된 것 같다?’
[네. 일단 호감도 70 이하에서도 모든 정보가 개방되는 것. 그리고 ‘처녀감별사’ 옵션의 남성형인 ‘총각 딱지’ 옵션으로 최초 성경험 나이를 알 수 있다는 점. 마지막으로 ‘애무 포인트’와 유사한 ‘성감 포인트’가 추가되었습니다.]
‘가만, 근데 성취향에 적힌 밀프라는 건 뭔데? 어디서 본 적 있는 거 같은데?’
[MILF란, ‘M’om ‘I’ would ‘L’ike to ‘F’uck의 약자입니다.]
‘뭐? 엄마랑 떡 치고 싶다고?’
[아뇨. 저기서 맘은 보통 친구 엄마를 뜻하죠. 서구권에서 섹시한 중년 여성을 이르는 약어입니다.]
‘약간 육덕진 스타일의 미시같은?’
[얼추 비슷하겠군요.]
‘한데 스펙트럼이 엄청 넓네?’
[어떤게 말입니까?]
‘어떻게 밀프와 영계를 동시에···.아, 최 회장 나이 때문이구나?’
[맞습니다. 노령인 최 회장 입장에선 40대 중년 여성도 엄청난 영계임에 틀림없으니까요. 그리고 남 말 하실 처지가 아닙니다. 만약 주인님의 성취향을 늘여 놓는다면 두 페이지는 가득 채울 테니까요.]
‘내가? 뭘?’
[거유, 합법로리, SM, 자매, 모녀, 수치플, 유사강간, 후장, 도구, 관음, 야외노출···. 더 읊어 드려요?]
‘인마, 그게 다 업적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런 거잖아.’
[업적을 핑계로 주인님도 무척 즐기시는 것 같던데요?]
‘어, 인정.’
[후후. 솔직하신 분.]
‘근데 공략팁에 저 부분이 가장 마음에 걸리는군.’
[말 못 할 비밀, 말이군요.]
‘그래. 저 나이까지 살면서 비밀 하나 없는 사람 어딨겠냐만 공략 팁까지 등장할 걸 보면 분명 성적으로 연관되었을 거란 말이지.’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추리력이십니다. 도루콘 줄.]
‘응? 뭐? 아무튼 이제부턴 저걸 파내는 게 관건이겠어.’
"혹시 급한 일이 있으신가?"
도훈이 시계를 힐끔거리자 최 회장이 물었다.
"아···. 실은 내일부터 과외 들어가기로 했는데, 미애 양이랑 얘기하는 걸 깜빡해 가지고."
"허허. 난 신경 쓰지 말고 얼른 가보시게. 난 자네가 급히 나를 찾길래 무슨 일이라도 생긴 줄 알았다네."
"아닙니다. 덕분에 좋은 과외를 구했으니 고맙다는 말씀은 올려야 할 것 같아서요. 문이 잠긴 것도 모르고 몸으로 부딪혀 죄송합니다. 저는 손잡이가 고장 난 줄 알고."
"그렇구만."
"암튼 어르신,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러게나."
도훈이 일어서 서재를 나가는 데 갑자기 최 회장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자네, 바지는 또 왜 그런가?"
"제가 실수로 옷을 더럽혀 급하게 갈아입느라···."
‘고놈 허벅지 하난 튼실하구만.’
최 회장은 불편한 다리 때문에 내내 앉아있었기 때문에 도훈의 대물을 직접 보진 못했다. 그래서 뒤로 보이는 허벅지와 업 된 엉덩이만 보고 생각할 따름이었다.
‘나도 젊었을 땐 저랬던 것 같은데.’
***
나는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다시 2층으로 올랐다.
미애의 공부방은 굳게 닫혀 있었다.
똑똑-
"엄마?"
"아니, 과외···."
"핫! 도훈 오빠구나?"
우당탕- 소리가 나더니 방문이 활짝 열렸다. 이마에 귀여운 머리띠를 한 미애가 환한 표정으로 나에게 물었다.
"왜 이제 왔어?"
애는 반말이 습관인 걸까?
귀여우니 봐줘야지.
"잠깐 통화 좀 하고 오느라."
"어디 있었는데? 아까 엄마가 오빠 찾았는데."
"어머니께서? 음, 정원 구석에 있느라 못 보셨나 보다."
"흐음, 대체 누구랑 했길래 통화가 그렇게 길어진 거야? 여자 친구?"
미애가 팔짱을 끼며 눈을 게슴츠레 떴다. 방에도 못 들어가고 문 앞에서 이러니 왠지 취조받는 느낌이었다.
"여자 친구는 무슨···. 레포트 때문에 조원이랑 논의할 게 있어서 통화한 거야."
레포트라는 말에 미애의 얼굴이 조금은 어두워졌다.
"아··· 오빠 대학생이었지? 부럽다. 조모임도 하고 레포트도 쓰고."
"너도 올핸 붙을 거야. 내가 수학 과외 맡기로 한 건 엄마한테 들었지? 이번 주는 내일 할 거니까 진도보고 계획 좀 세워보자."
"응."
그때 미애가 츄리닝 입은 내 모습을 보더니 푸핫-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 조끼니 진은 또 뭔데?"
"조끼니 진이라니?"
"오빠 패션."
"아, 이게 어떻게 된 거냐면···."
내가 구구절절 사연을 설명하자 미애가 꺄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아직 나이가 어려서 그런지 엄마인 선희나 큰 언니 희애에 비해 순수한 면이 있는 것 같다. 하긴 성숙해 봐야 스무 살이지만.
"근데 왜 이걸 조끼니 진이라 불러?"
"헐, 레알 몰라서 물으심?"
"내가 도통 패션엔 관심이 없어서."
"왜 스키니 진 있잖아. 몸 꽉 끼는 청바지. 그건 뭔 줄 알지?"
"응."
"근데 남자들이 입으면 가끔 거기가···. 히히."
아하, 그래서 조끼니?
그러고 보니 애가 지금 어딜 빤히 보는 거야?
하여간 뻔뻔한 건 이 집안 여자들 종특인가?
"잡담 그만하고 일단 들어가자. 나 시간 없어."
"왜?"
"바지 마르는 데로 집에 가봐야지. 이러다 늦어."
"그냥 자고 가지. 우리 집 빈방 많은데."
"무슨 소리야. 멀쩡한 집 놔두고."
"엄마한테 혼나? 외박하면?"
"엄마 없어. 나 자취해."
"우앙. 매력있다."
"또 뭐가?"
"나도 자취하고 싶어서. 내년에 대학 가면 꼭 독립할 거야."
미애는 대학에 대한 로망이 큰 것 같았다. 사실 요즘엔 개나 소나 다 가는 대학이지만, 재수생에겐 그것조차 부러울지도.
"말 잘했네. 독립하고 싶으면 얼른 공부하자."
나는 미애의 어깨를 감싸 안고 방으로 들이밀었다.
미애는 인형 뽑기 기계에 붙들린 인형처럼, 나에게 붙잡혀 의자에 앉혀졌다.
"쳇. 과외 선생님 됐다고 빡빡하게 굴긴···."
조금이라도 더 쉬고 싶은 미애가 귀엽게 투정했지만,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너 시험 잘 보고 싶댔지?"
"응."
"그럼 내 말 들어. 내가 너 꼭 합격하게 해 줄 테니까."
‘물론 그 대가는 몸으로 받아야겠지만···.’
"나 말 잘 들어. 특히 잘 생긴 오빠한테는, 히히."
"요게 또 장난치네. 나랑 수업할 때 규칙부터 정해야겠다."
"흐으응, 무슨 규칙?"
미애가 책상 위에 두 팔을 올리더니 손바닥으로 턱을 괴었다. 그 바람에 덩달아 가슴이 얹어지며 선정적인 포즈가 연출되었다.
‘휴우-. 무슨 스무 살짜리 빨통이 저렇게나···. 하긴 애 엄마나, 희애만 봐도 유전적으로 클 수밖에 없겠지. 오히려 빈유인 수애가 주워온 자식이 아닐까 의심스럽달까.’
"첫째는 복장 단정."
"복장?"
"그래. 학생이 그렇게 짧은 치마 입으면 공부에 방해돼."
"오빠가 방해되는 건 아니고?"
미애가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슬쩍 치마를 끌어 올렸다.
그러잖아도 짧은 치마가 아슬아슬한 위치까지 올라가며 새하얀 허벅지가 드러냈다. 스무 살 풋풋한 아다 봊이가 조그만 천 하나로 가려져 있다. 나도 모르게 침이 꿀꺽 넘어간다.
확 팬티 내려서 꽂아 버렸으면···.
하지만 위험하다. 이곳은 방금전까지도 최 사장 와이프가 다녀갈 만큼 개방적인 공간. 만에 하나라도 일을 벌이다 꼬이게 되면, 자매 덮밥 위업이고 뭐고 강간범으로 몰리고 말 것이다.
슬슬 약만 올려놓고 기회를 엿봐야 한다.
분명 머지않아 적절한 시기가 나올 것이다.
씨어터 룸에서 희애를 따먹었듯이.
나는 최대한 근엄한 표정으로 미애를 나무랐다.
"또또, 장난친다. 둘째, 장난 금지."
"히잉-."
"마지막으로, 수업할 땐 내 말에 철저히 복종할 것."
< 321. 애자매-21- > 끝
ⓒ 성난불기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