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0. 애자매-20- >
***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Все счастливые семьи похожи друг на друга, каждая несчастливая семья несчастлива по-своему.)
-안나 카레리나, 톨스토이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똑똑하고, 성실했으며, 특히 이문에 밝았다.
그는 자수성가의 교과서 같은 인물이었다.
많은 사람이 그가 이룬 성공을 부러워했으며, 죽을 때까지 다 쓰지도 못할 어마어마한 부를 이룬 것에 경탄했다.
하지만 그에게도 불행한 일은 없지 않았다.
평생 고락을 함께해온 조강지처를 떠나 보냈을 때, 그는 자신의 절반을 잃은 느낌이었다.
그는 우울했고, 외로워졌다. 그저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 것만이 유일한 삶의 낙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뿐인 자식이 술에 잔뜩 취해 집에 돌아왔다.
"죄송합니다, 아버지. 제가 이번에도 사고를 쳐서···."
궁핍을 모르고 살아온 자식은 자신과 너무 달랐다.
게으르고, 나태했으며, 향락을 즐겼다. 일찍이 여자에 눈을 떠 허구한 날 문제를 일으켰다. 고생 없이 얻은 부는 자식 농사를 망쳤다.
"···못난 놈 같으니."
걸핏하면 사고를 쳐대는 아들이 못마땅했다. 당장 무마해도 언젠가 같은 실수를 반복할 게 불 보듯 뻔했다. 이젠 스스로의 행동에 책임지는 법을 배워야 할 필요가 있다 여겼다.
"네놈이 벌인 일, 알아서 해결하거라."
반쯤 시험하고자 하는 마음이었다.
언제까지 싸고 돌 수만은 없었다.
그는 점점 늙어가고 있었고, 하나뿐인 자식은 언젠가 회사를 물려받아야 했으니까.
자식은 끝내 결혼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으로 사태를 해결했다.
졸지에 생각도 못 했던 며느리가 생겼다.
이런 방식의 혼사를 원한 건 아니었지만, 자식의 선택을 존중하기로 했다. 어쩌면 결혼을 통해 자식이 조금이나마 성숙한 사람이 되길 바랐을지도.
자식이 처음으로 며느리를 데려와 소개했다.
아직 대학도 졸업 못 한 어린 처자였다.
"아버님, 처음 뵙습니다."
어린 나이에도 우아한 기품이 있었다. 하얀 얼굴에 곱디고운 자태가 남자의 눈길을 묘하게 잡아끌었다.
부인이 죽고 난 뒤, 오랜만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시간이 흐르고 며느리는 첫딸을 낳았다.
그녀를 쏙 닮아 인형처럼 귀여운 손녀.
아이를 낳았음에도 며느리는 여전히 처녀 같았다.
유일하게 바뀐 점이라곤 유선의 발달로 유방이 다소 커진 점이랄까?
며느리의 커다란 가슴에 넋을 놓는 일이 잦아졌다. 그러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자석에 끌리듯 시선이 빨려들어 갔다.
사건이 벌어진 것은 자식이 한 달간 해외 출장으로 집을 비운 어느 날이었다.
유난히 무더웠던 여름 밤.
가정부마저 모두 퇴근한 텅 빈 저택에서, 며느리는 갓난아이에게 모유 수유를 했다. 짧은 치마에 가슴을 훤히 드러낸 그녀는, 모성보다는 색정을 일으키는 차림새였다.
소파에 앉아 보란 듯 모유를 수유시키는 며느리.
그는 점점 호흡이 가빠지는 것을 느꼈다.
이 며느리는 위험하다, 본능이 경고했다.
"걱정이에요, 아버님."
민망함에 물러날까 하는데 며느리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무엇이 말이냐?"
"아범도 없는데 자꾸 가슴이 아리네요. 제가 젖몸살이 유난히 심한편이라···."
"허어."
"누가 좀 주물러 줬으면 좋겠는데···."
노골적인 유혹에 할 말을 잃었다.
자식이 함께 있을 적에도 교묘히 가슴골을 내비친다든가, 앞서 걸으며 살 오른 엉덩이를 살랑살랑 흔들 때가 있었다.
그것이 자신의 오해이며, 착각이라고 여겼다. 삿된 생각을 떨치기 위해 매일 스스로의 부덕함과 싸워야 했다.
그러나 그제야 진실을 마주했다.
참하게 생긴 이 며느리의 본색이, 시아버지마저 유혹하는 타고난 색녀였다는 걸.
결국, 일은 벌어지고야 말았다.
파국의 싹이 움을 틔웠다.
불행한 가정엔 저마다 다른 이유가 있다지만, 이 집안의 불행은 너무나 퇴폐적이고, 음란하며, 차마 입에 담지도 못할 수준의 추문이었다.
시아버지와 간통한 며느리.
아들을 시기하는 아버지.
그 사실도 모른 채 몰래 바람을 피워대는 남편.
부족함 없이 행복할 것 같은 이 집안의 실상은, 그야말로 불행으로 가득 찬 소굴이 되었다.
***
"이리 오려무나."
휠체어에 앉은 최 회장이 자신을 가까이 부르자 선희는 애써 떨떠름한 표정을 숨겼다.
‘다 늙어서 추태는. 이젠 서지도 않는 늙은이가···.’
최 회장과 비밀스러운 관계를 맺은 것도 벌써 이십 년이 훌쩍 넘었다. 당시 최 회장은 나이 들긴 했지만, 무척이나 건강한 사내였다. 아침마다 조깅을 즐겼고, 테니스가 취미일 만큼 체력도 좋았다.
아이를 밴 뒤로 조금씩 시들해지는 남편.
젊고 왕성했으며, 늘 갈증을 느끼던 그녀.
젖먹이 덕에 바람을 피우기도 녹록잖은 그 때, 가장 가까운 곳에 자신의 욕구를 채워줄 또 다른 남자의 존재를 깨달았다.
대범하게도 그녀는, 시아버지마저 유혹해 버렸다.
‘아직 유산 정리가 안 끝났으니 꾹 참아야지.’
"몸은 좀 어떠세요?"
속마음을 감춘 그녀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최 회장에게 물었다.
"여전히 좋지 않구나. 갈 때 됐으니 갈 준비해야겠지."
"아이참, 아버님 그런 말씀 마셔요."
참으로 가증스러운 여자였다.
마음에 없는 소리를 너무도 천연덕스럽게 해댔다.
타고난 미모에, 고혹적인 목소리가 그녀의 가식에 신뢰를 보탰다. 연기자가 되었으면 필시 대성했으리라.
"방금 전 김 변하고 얘기를 나눴는데, 지분 때문에 복잡한 상황이라고 하는구나."
"아버님, 지난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조금 서두르셔야 해요. 요새는 전문 경영인 체제도 좋다고들 하잖아요. 꼭 소유자가 경영을 맡을 필요는 없지 않겠어요?"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유류분청구소송에도 대비해야 하고···. 실수했다간 멀쩡한 회사가 갈기갈기 찢겨 나갈 수도 있어."
정선희는 최 회장이 지나치게 신중하다고 생각했다. 그 신중함이 지금의 기업을 일군 비결이지만, 유산 상속 문제가 지지부진해지자 답답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이렇게 미적대다 갑자기 죽어버리면 지금껏 세운 계획이 수포가 되고 말 것이다.
정선희가 입술을 깨물었다. 더 압박을 주어야 한다.
"휴-, 실은 민서도 최근 들어 살짝 흔들리는 것 같고···."
"정비서가 왜?"
"모르겠어요. 꼴에 죄책감 느끼는지 관두고 싶어 하더라고요."
"고얀 것. 시궁창에서 건져 줬으면 밥값을 해야지···. 내 따로 불러 단단히 일러줘야 겠다."
"그러게 말이에요. 요즘 애들은 가끔 은혜를 잊어버리는 게 문제에요. 참, 근데 도훈 군은 왜 부르신 거예요? 혹시 그 일을 맡길 적임자로?"
최 회장은 며느리의 말에 살짝 놀랐다.
가만 보면 맹하니 있는 것 같으면서도 누구보다 눈치가 빠르고, 똑똑한 여자였다. 가끔 자신의 속내를 훤히 들여다보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었다.
"처음엔 그럴 생각까진 없었는데, 직접 만나보니 탈이 썩 괜찮더구나. 생판 모르는 사람을 구해 쓰는 것보다야, 자연스럽게 인연이 닿은 사람이 모양새가 좋겠지. 근데 어찌 알았느냐?"
"왠지 그런 것 같더라고요. 김 기사를 굳이 저에게 붙이고 정비서를 직접 보내신 부분도 그렇고···."
과연 기민한 여자다. 최 회장은 속으로 감탄했다.
손녀를 소개한다는 것이 그를 옭아맬 명분에 불과하다는 것을 사소한 단서만으로 간파해 냈다.
"질투는 인간이 가진 가장 강렬한 감정이지. 그것만큼 사내의 판단력을 흐트러트리는 것은 없거든."
"후후, 그런가요?"
최 회장과 정선희가 마주 웃었다.
그러나 전혀 다른 의미의 웃음이었다.
최 회장은 알맞은 시기에 적당한 배역이 등장한 것을 기뻐했으며, 정선희는 최 회장이 내뱉은 대사가 지독하게 모순된다 여겼다.
‘질투만큼 사내의 판단력을 흐트러트리는 감정이 없다고? 그 말을 가장 들어야 할 사람은 최 회장, 바로 당신이 아닐까?’
최 회장이 선희의 가냘픈 허리를 휘감았다.
"그나저나 다리를 다치고 부턴 제법 신경이 쓰이는지 이곳이 도통 반응이 없구나. 오랜만에 세워 주겠니?"
최 회장이 능글맞게 자신의 아랫도리를 가리켰다.
선희는 역겨운 기분을 애써 물리치고 대답했다.
"호호, 아버님도 참···. 의사께서 무리하지 말라면서요. 게다가 조금 있으면 아범도 올 시간이에요."
‘빌어먹을 영감탱이 같으니. 저번에도 한 시간 내도록 빨아도 미동도 안 하던 늙은 잦이를 어디서 뻔뻔하게 들이밀려고?’
"아아···. 내 너를 안아주지 못해 미안하구나. 넌 아직도 젊은 날 모습 그대로인데···."
"아니에요, 아버님. 전 아버님하고 같이 있기만 해도 이렇게 젖어버리는 걸요."
정선희가 최 회장의 쭈글거리는 손을 끌어 자신의 치마 속으로 집어넣었다. 그러자 아까 도훈을 생각하면서 흠뻑 젖어 있던 팬티가 그대로 손끝에 닿았다.
촉촉해진 팬티를 느낀 최 회장의 얼굴에 흡족한 미소가 떠올랐다.
"오오! 어느새 이렇게나···. 너는 내가 그리도 좋더냐?"
"전 항상 아버님뿐이에요."
"참으로 후회스럽구나. 아범이 너를 데려온 날 결혼을 반대했어야 하는 건데."
"피-. 그래 놓고선 아버님께서 재가하시려고요?"
"그렇지. 그때 그랬으면 얼마나 좋았겠니. 지금처럼 복잡해질 필요도 없고."
"이십 년을 넘게 기다렸는데, 요 잠깐을 못 기다릴까요. 미애도 이제 성인이 되었으니 법적으로 상속인이 되어도 문제없어요. 기왕이면 못난 아들보다, 똑똑한 딸이 낫죠."
"거참, 시누이를 낳은 며느리라···. 호적 참."
"너무 복잡하게 생각 마요. 호적관계는 아범이랑 갈라서면 자연히 정리될 테니. 민서가 조금만 더 분발하길 바라야죠."
두 사람이 경악스러운 가족사를 지껄이는데 갑자기 서재 문이 쿵- 하고 울렸다. 그것은 노크라기보단 보디체크에 가까운 울림이었다.
***
쿵-!
‘아뿔싸! 문이 잠겨 있었잖아?’
서재 문을 밀고 들어가려던 도훈은 굳건히 잠긴 문에 당황하고 말았다. 실수를 가장해 자연스럽게 진입하려던 계획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 안에서 신경질적인 최 회장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밖에 누구냐!"
‘제기랄! 이런 낭패가. 업그레이드 된 정보창을 써보지도 못하고···.’
"죄, 죄송합니다. 이도훈입니다. 길을 헤매다가 실수로···."
"아, 도훈 군이로군! 잠시 기다리게, 내 중요한 서류를 보고 있느라 문을 잠가 놨다네."
최 회장이 정선희에게 눈짓을 보냈다.
며느리와 단둘이 있으면서 문을 잠갔다는 사실은 불필요한 오해를 부를 수 있다. 눈치 빠른 선희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야외 테라스로 연결된 베란다로 이동했다. 흡연을 핑계로 만들어 놓은 공간이 사실상 두 사람에겐 비상구나 마찬가지였던 것.
선희는 밖으로 빠져나가면서도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나저나 도훈 군이 어디 있다 저기서 나온 거지? 혹시 우리 대화를 엿들은 것은 아니겠지?’
물론 선희는 자신의 걱정이 기우라는 것을 알았다.
매사 꼼꼼한 성격이던 회장은 두 사람의 비밀 공간인 서재의 방음 수준을 보통의 공간보다 훨씬 높은 수준으로 설정했다. 아마도 이 집에서 씨어터 룸을 제외하고선 서재 만한 공간이 없을 것이다.
‘가만, 씨어터 룸?’
최 회장에게 붙잡히는 바람에 희애가 있는 시어터룸을 체크하는 것을 깜빡한 선희는 정원을 통해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갔다.
거실에서 청소를 하던 가정부가 밖에서 들어오는 선희를 보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어머, 사모님 어떻게 밖에서 들어오세요?"
"잠시 답답해서 바람 좀 쐬고 왔어요."
"아···. 아까 맡기신 빨래는 건조기에 넣어 뒀어요. 이제 30분이면 다 마를 거에요."
"그래요. 수고가 많아요."
"네."
서재로 향하는 선희의 뒷모습을 보고 가정부는 연신 자신의 머리를 긁적였다.
"이상하네···. 계속 여길 청소하고 있었는데 언제 나가셨담?"
저택을 한 바퀴 빙 둘러 다시 서재로 돌아왔지만, 도훈의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안에서 조그맣게 대화 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보아 둘이 대화 중인 것 같았다.
‘일단 희애부터 만나봐야지.’
선희가 서재 옆 씨어터 룸으로 들어가려는데 마침 안에 있던 희애가 칫솔을 물고 밖으로 나오다 그녀와 마주쳤다.
"희애야."
"음? 엄마가 여긴 웬일이야?"
희애가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선희는 살짝 문 열린 틈으로 씨어터룸을 확인했다.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정돈된 모습엔 어떤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괜한 오해였나?’
"혹시 도훈 군 못 봤니?"
"도훈 군? 아, 미애 새 과외 선생님? 글쎄? 엄마랑 있는 거 아니었어?"
선희의 성격을 빼닮은 희애는, 연기력 역시 수준급이었다. 한동안 치밀한 눈치싸움이 전개되었지만 서로 워낙 감정을 잘 숨기는 타입이라 어떤 소득도 얻을 수 없었다.
‘쳇, 눈치 빠르긴. 이빨 닦기 전에 싹 다 치워놓길 다행이야. 애널 때문에 혹시 이물질이 튀었나 정리를 먼저 했더니.’
‘뭔가 숨기고 있는 게 분명해. 갑자기 이빨을 닦는 것도 그렇고.’
"근데 웬 양치질이니? 아까 밥 먹고 하지 않았어?"
"그냥 입이 좀 텁텁해서. 양치 두 번 하면 안 되는 거였어?"
"뭐 그런건 아니지만···.
"엄마, 나 입 좀 헹굴게. 이 치약 너무 매워."
"그러렴."
화장실로 향하던 희애가 뭔가 생각난 것처럼 선희를 돌아보았다.
"아, 어쩌면 담배 피우러 나가지 않았을까?"
"응?"
"아까 보니 상당히 골초 같더라고. 나도 영국 있을 땐 좀 피웠었잖아. 딱 보면 알아."
"···그러려나?"
등 돌린 희애를 바라보는 선희의 얼굴이 딱딱히 굳었다.
그녀의 원피스 등 지퍼가 끝까지 올라가지 못한 것을 목격한 것이었다.
‘이, 이것들이!’
질투에 휩싸인 선희의 표정은, 지옥에서 올라온 수라야차를 방불케 했다.
확실히, 최 회장 말이 옳았다.
질투는 인간이 가진 가장 강렬한 감정이다.
< 320. 애자매-20-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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