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304화 (284/2,000)

< 286. 오빠랑 MT갈래?-26- >

‘왕따’란 보통 대상이 집단으로부터 따돌림 당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드물게도 본인 스스로 고립을 자처하는 경우도 있다. 대체로 자의식이 지나치게 강하거나, ‘난 고귀한 존재라 너희 랑은 상종 안 해’ 따위의 마인드를 지닌 이들이 그렇다.

예술가적 기질이 다분한 미술 과엔 후자의 사례가 가끔 있었다. 학회장 김영희는 어쩌면 송이든이 후자의 경우가 아닐까 판단했다.

‘휴학한 것도 우리 과가 성에 안 차서 였을까?’

휴학 후 반수.

보험을 들어두고 수능을 한 번 더 보는, 주로 학벌 콤플렉스가 심한 이들이 선택하는 방법. 그녀가 한 번 휴학계를 냈다가 취소한 전력을 알고 있던 영희는, 분명 이든이 그런 시도를 하다 포기했을 것으로 생각했다.

"이든이 넌 세부전공은 뭐니?"

"세부 전공요?"

"어. 난 조소야."

"전 ···서양화에요."

"혹시 예고 나왔니?"

"그건 왜요?"

"궁금해서. 모교 후배일 수도 있으니까."

예술고는 과학고나 체육고만큼 고등학교 수가 적다. 따라서 미술과에 진학한 학생 중엔 고등학교 선후배 사이가 유독 많았다. 영희의 질문에 한지연은 살짝 긴장했다.

‘날 의심하는 건가? 송이든의 출신고가 어디였는지 까먹었는데···.’

학적사항이 담긴 프로필을 받긴 했지만, 따로 외우진 않았다. 설마하니 고등학교까지 물어볼 거라곤 예상 못 한 탓이다.

‘제길, 여기서 실수했다간 곤란한데···.’

지연은 질문을 통해 질문을 벗어나는 방법을 택했다.

"그러는 학회장님은 무슨 고 출신이세요?"

"난 선희 예고."

"어머, 거기 오너원 센터 믹키믹키 나온 학교 아니에요?"

"맞아. 우리 학교 후배야. 재학생 때부터 아이돌 하겠다고 설치더니 결국 떴더라니깐?"

"우앙! 신기하다. 혹시 믹키믹키랑 친하세요?"

"아니. 뭐···. 이미 고1 때부터 연습생 한다고 제대로 학교를 안 다녔거든. 너 믹키믹키 좋아하니?"

"당연하죠! 얼마나 잘 생겼는데요!"

"근데 걔 얼굴 칼 댄 거야. 원래 콧대가 그렇게 높진 않았거든. 눈도 했어."

"진짜요? 연예인들이야 뭐 어쩔 수 없죠. 혹시 성격은 어때요?"

"글쎄, 성격은 다른 친구들한테 들은 거라 정확하진 않지만, 은근 자뻑이 심하다며···."

두 사람은 요새 핫한 아이돌 그룹 오너원을 주제로 떠들었다. 한참을 떠들다 갑자기 지연이 핸드폰 메시지를 확인하더니 깜짝 놀란 표정으로 양해를 구했다.

"언니, 저 누가 찾아와서 그런데 잠깐 갔다 와도 될까요?"

"여기로?"

"네. 다른 과 선밴데 그쪽도 우리랑 같이 MT 왔나 봐요."

"무용과?"

"아뇨 체육교육과요."

"오, 남자친구?"

지연이 배시시 웃으며 말꼬릴 흐렸다.

"아니 뭐, 아직은···."

"후후! 썸타나 보네? 잘 해봐. 파이팅!"

"넵!"

지연이 후다닥 뛰어갔다. 그녀의 힘찬 뛴 걸음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영희가 불쑥 뭔가 생각난 듯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고 보니까 고등학교를 물어봤는데 대답을 못 들은 것 같은데?’

점점 한지연의 정체가 궁금해지는 김영희였다.

***

미술과 텐트촌에 도착한 도훈은 인근에 설치된 벤치에 앉았다. 지연은 그를 발견하고는 주인 만난 강아지처럼 반가운 얼굴로 반겼다.

"오빠아!~"

활기찬 지연의 모습에 도훈이 속으로 생각했다.

‘나보다 2살이나 많으면서 꼬박꼬박 오빠 소리는···. 그나저나 동안은 진짜 동안이구나. 21살이라고 하는데도 위화감이 전혀 없어.’

"어인 일로 직접 행차를?"

"잠깐 여기 앉아봐."

지연이 도훈 옆에 바짝 붙어 앉자, 도훈이 엉덩이를 움직여 간격을 벌렸다. 그 모습에 지연이 삐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쳇, 비싸게 굴기는."

"보는 눈이 많잖아. 얼굴 팔리기 싫다."

도훈의 말처럼 미술과 여학생들이 벤치에 앉은 도훈을 쳐다보면서 삼삼오오 수군거리고 있었다. 여초인 미술과에 도훈과 같은 훈남의 방문은 그만큼 놀라운 사건이었다.

"저 사람 송이든 남친이야?"

"쟤 아싼 줄 알았더니 의외로 인싸였구나?"

"솔직히 얼굴은 제법 예쁘잖아."

"저런 인물이 왜 1학년 땐 잘 안 보였을까?"

"학교생활 전혀 안 했다더라고. 들리는 소문에 반수 한다고 휴학 했다 포기하고 3월 초에 복학했다고 하던데···."

"그래?"

지연은 자신을 향한 시선이 불쾌한지 인상을 콱 찌푸리면서 소리쳤다.

"거기! 다 들리거든요?"

"아앗, 미안."

지연의 호통에 구경하던 여학생들이 후다닥 물러나자 도훈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너도 어지간하구나. 좋은 말로 해도 될 걸."

"기분 나쁘게 수군거리잖아요. 할 말 있으면 직접 와서 하든지. 비겁하게···. 그나저나 여긴 무슨 일이에요?"

"계속 존댓말 할 거야 근데?"

"보는 눈이 많으니 조심하랄 땐 언제고?"

"뭐, 편한 대로 해. 다름이 아니라 너희 과랑 우리 과 저녁에 단체미팅 좀 주선할 수 있어?"

"으잉?"

뜬금없는 도훈의 제안에 한지연이 뻥 진 표정이 되었다. 겨우 미술과에 녹아드는 중인데 갑자기 타과랑 단체미팅 주선이라니···.

"제가요? 단체 미팅을요?"

"응. 재밌을 거 같지 않아? 너네 과는 여자가 많고 우리 과는 남자가 많으니 적절할 것 같아서."

"애들이 하겠어요? 이렇게 갑작스러우면."

"물어봐 줄 순 있잖아. 어차피 심심풀이로 하는 건데."

지연이 다리를 한쪽으로 꼬며 도훈을 곁눈질했다.

‘대체 무슨 꿍꿍이지? 밑도 끝도 없이 이런 제안을 할 사람은 아닌데? 설마?’

"오빠도 혹시 미팅 나가요?"

"주선자니까, 일단은."

‘그거네!’

"우리 과에 괜찮은 얘 있으면 자빠뜨리려고?"

그녀는 도훈이 난봉꾼임을 익히 알고 있었다. 지난번 병원에서도 자신과 관계하는 중 다른 여자랑 통화하면서 실시간으로 음성도 들려주지 않았던가?

도훈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난 그런 거 관심 없어. 다만 전혀 일면식도 없는 상황에 주선자가 빠지면 모양새가 우습잖아."

"그럼 왜 하는 건데요? 단체미팅 한다고 오빠에게 무슨 이득이 있죠?"

이득. 바로 그것이었다.

도훈이 소개팅을 주선하는 이유.

‘···남자들을 최대한 줄여야 하거든.’

주지육림은 동시에 여자 12명과 관계해야 하는 고난도 업적.

감시자들을 한 명이라도 줄여야 업적 달성이 수월하다.

단체미팅을 통해 말 많은 태영이나 불필요한 인원들을 보내버리면, 그만큼 여유롭게 동선을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이유를 솔직히 밝히기니 곤란했다.

"···너랑 따로 만나기 위해서지."

"네?"

"오늘 밤 너희 텐트로 오라며. 밤중에 갑자기 사라지면 괜히 의심받을 지도 몰라. 나도 핑계가 있어야 할 거 아니야?"

"아하!"

지연은 순진하게도 도훈의 말에 속아 넘어갔다.

"그러니까, 미팅 열어가지고 주선자 자격으로 참여한 다음···."

"적당히 분위기 봐서 우리만 빠지자는 거지. 어때? 내 아이디어가?"

"그럴싸한데요?"

‘흐흐. 애도 머리는 좋은 것 같더니 은근 허당끼가 있단 말이지? 바로 속아 넘어가네?’

"그러니 1학년 위주로 미팅 참여할 사람 좀 확보해봐. 우리가 너희 인원에 맞출게."

"2학년은 안 돼요? 아까 텐트 만들 때 동기들 호구조사 해보니 2학년에도 솔로 많던데."

"2학년?"

태영이 부탁한 숫자는 또래 1학년 다섯 이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꼭 과팅을 1학년에 국한할 필욘 없었다.

‘잘하면 우선이나 2학년 귀찮은 애들 몇 명 더 보내버릴 수 있겠는데?’

"오케이. 그럼 학년 구분 없이 하고 싶은 사람들 최대한 끌어 모아봐."

"근데 애들이 부끄러움이 많아가지고 하려고 할까요?"

"나도 온다 그래."

"네?"

"나도 미팅 참여한다 하라고."

"아앗!"

도훈은 미남계를 펼칠 요량이었다.

전화로 연락해도 충분한 것을 직접 방문한 것도 자신의 외모를 어필하기 위함. 그의 생각대로 지나가던 미술과 여학생들은 도훈의 훈훈한 외모를 보고 자기들끼리 쑥덕거리고 지나갔다.

"조화 가운데 하나의 생화만 있어도 꿀벌은 모여드는 법이니까."

자신을 생화에 비유하는 도훈의 오만한 선언에 지연이 콧방귀를 꼈다.

"그러니까 오빠가 체육과 에이스라는 소리에요? 하-! 너무 자신감 넘치시는 거 아닌가?"

"왜? 내가 꿀릴 것 같아?"

"아니 뭐 그런 건 아닌데···. 세상 모든 여자가 오빠를 좋아할 거라 착각하는 건 너무 건방진 생각이 아닐까요?"

"그건 네 말이 맞아. 하지만 이거 하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

"뭐요?"

"나에게 충분한 시간만 주어진다면 세상 어떤 여자든 꼬실 수 있다는 거."

"하-! 참나···."

‘저런 허무맹랑한 소릴 뻔뻔하게 하는 사람이었다니···. 근데 왜 그럴싸게 들릴까?’

지연은 다시 한 번 도훈의 얼굴을 꼼꼼히 살폈다.

서양인처럼 오뚝 솟은 코.

가지런하고 새하얀 치열.

강인해 보이는 턱선과, 쌍꺼풀 없이 커다란 눈.

영화배우처럼 눈에 띄게 잘생긴 얼굴은 아니지만, 요샛말로 훈남이라 불리는 준수한 외모다.

그러나 무엇보다 도훈을 빛나게 하는 것은 모델처럼 탄탄한 몸매였다. 태평양처럼 넓은 어깨는 늘씬한 허리 덕에 더욱 부각 되었고, 작은 얼굴에 큰 키로 비율이 좋아 아무 옷이나 걸쳐도 옷맵시가 남달랐다.

그리고 본인은 이미 겪어 알지만, 그의 절륜한 섹스킬.

다른 건 몰라도, 그거 하나만큼은 진짜였다.

서양인이 부럽지 않은 큼직한(?) 대물.

지치지 않는 정력.

수많은 체위를 자유자재로 구사할뿐더러 속도와 리듬감, 마무리까지 손색이 없다. 그의 색계에 당하는 바람에 자신도 조직을 배신하고 도훈에게 붙지 않았던가?

어쩌면 도훈의 진짜 매력은 거기에 있었다.

한 번 맛보면 헤어나올 수 없는 마성의 사내.

문득 병원에서의 짜릿한 추억이 떠오르자, 지연은 자기도 모르게 다리를 움츠렸다. 그 당시 일만 생각하면 밑에 찌릿찌릿해졌다.

‘하아···. 오늘 밤 한 번 더 도훈이한테 안길 수 있다면···.’

도훈은 그녀의 속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조용히 속삭였다.

"좌우간 미팅이 성사되어야, 우리가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어. 무슨 뜻인 줄 알지?"

"···알겠어요. 최선을 다해 볼게요."

"그래. 그럼 저녁 먹고 추진하는 것으로. 여자들보고 오라 하긴 뭐하니까 내가 우리 과 남자애들 데리고 이쪽으로 올게."

"네."

미팅주선을 마친 도훈은 시계를 힐끔 보더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다리가 긴 탓에 앉은 키는 작은 편이었다. 따라서 의자에 앉은 상태론 키를 가늠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일어서는 순간 185의 큰 키 덕에 멀리서도 훤칠한 키가 눈에 들어왔다.

그를 먼발치서 훔쳐보던 미술과 여학생들은 생각 외로 큰 키에 깜짝 놀라며 시조새처럼 꺅꺅댔다.

도훈은 그쪽을 향해 꾸벅 인사하고는, 체육과 텐트로 되돌아갔다. 그가 사라지자 한지연을 향해 미술과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누구야 저사람?"

"설마 남친?"

"우아, 엄청 훈남이던데?"

"이든이 너 재주도 좋다?"

쏟아지는 질문공세에 지연이 관자놀이를 지긋이 눌렀다. 도훈의 말대로 미술과 여학생들은 잠깐의 등장만으로 그에게 완전히 매료되어 버렸다.

‘하아. 이 자식은 무슨 페로몬이라도 뿌리고 다니는 건가?’

호들갑을 떠는 미술과 여학생들을 진정시키며 지연이 차분히 입을 열었다.

"남친 아니고, 남사친. 체교과 친한 오빤 데 저녁에 우리 과랑 과팅 제안하러 왔데요."

"우리 과랑 체육과랑?"

"과팅?"

"나 할래!"

"체육과 남자들 다 저렇게 멋있는 거야?"

"근데 넌 저런 훈남 오빠 어떻게 알게 됐어?"

한마디를 꺼내면 대여섯가지 질문이 동시에 쏟아졌다.

지연이 난감한 표정으로 차근차근 답변했다.

"같이 교양수업 듣다 친해진 오빤데···."

도훈의 계획대로 과팅 멤버 모집은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

저녁 식사 전, 한바탕 흙먼지를 뒤집어쓴 1학년 학생들이 샤워장으로 모여들었다. 남학생들은 대충 발만 씻고 나갔지만, 여학생들은 예외 없이 세면도구를 잔뜩 챙겨왔다.

MT를 빡세게 받은 학년은 주로 1학년이었기 때문에, 여자 샤워장엔 1학년 여학생들뿐이었다. 본부 텐트에 누워 쉬는 강경희를 제외하곤 모든 1학년 여학생들이 희뿌연 수증기 속에서 열심히 몸을 씻었다.

그중 유난히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여학생이 있었다.

그녀느 바로 이연두.

본래 레즈비언이었다가, 도훈의 공략으로 바이섹슈얼에 눈을 뜬 여성이다.

하지만 천성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고, 여자들의 나신에 자기도 모르게 반응하고 있었다.

‘희주 쟤는 듣던 데로 몸매가 후덜덜하네.’

1학년 여자 중 단연 으뜸은 양희주.

얼굴을 빻았어도, 몸매만큼은 군계일학이라고 할 만큼 핫한 바디의 소유자 희주는, 당당하게 가슴을 내밀고 몸에 비누 거품을 묻히는 중이었다. 마른 몸에 C컵 가슴. 거기다 커다란 골반은 아시아인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어 있었다.

‘근데 쟤는 너무 걸레 같은 이미지라 영···. 오, 의외로 정음이도 상당하네?’

겉보기엔 잘 티가 안 나던 육정음 역시 육감적인 몸매를 자랑했다. 꽉 찬 B컵 가슴은 매끈하게 빠진 허리와 맞물리며 실제보다 훨씬 커 보였다. 특히 운동으로 다져진 늘씬한 각선미가 우아한 자태를 뽐냈다.

연두의 노골적인 시선을 의식한 정음이 민망해하며 몸을 돌렸다.

"너 어딜 보니?"

"으응, 아니 내가 비누를 깜빡했지 뭐야? 정음이 너 혹시 비누 좀 빌려줄 수 있어?"

"응. 여기."

정음이 비누를 연두에게 건넸다.

그러나 연두는 일부러 미끄러진 척 비누를 바닥으로 흘렸다.

"이크, 비누 좀 주워줄 수 있어?"

"응."

정음이 허리를 숙이며 자기 쪽으로 떨어진 비누를 줍기 위해 허리를 숙였다. 그러자 탄탄한 엉덩이가 불룩 튀어나오며 정음의 뒷봊이가 속살을 드러냈다.

‘오호라, 핑보? 얼굴도 예쁜 얘가 거기도 예쁘잖아? 확 덮쳐 버려?’

연두가 허리를 숙인 정음을 향해 다가가서, 누군가 그녀의 어깨를 붙들었다. 뒤를 돌아보니 절친 나연이었다.

나연이 말없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연두, 그러면 못 써.’

< 286. 오빠랑 MT갈래?-26- > 끝

ⓒ 성난불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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