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4. 오빠랑 MT갈래?-14- >
45인승 관광버스에 오르자 이미 자리가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앞좌석에 앉아있던 성수가 나를 발견하더니 솥뚜껑처럼 큰 손을 쳐들었다.
"여어, 이쪽."
그러나 성수는 내가 자리에 앉기도 전 몸을 일으키더니 다시 나를 차 밖으로 내몰았다. 녀석의 우악스러운 덩치에 밀려 나는 속절없이 끌려 나가야 했다. 무슨 황소처럼 힘만 세 가지고는.
"어디 가게요?"
"야, 가는 데 거의 2시간 걸린다더라. 중간에 쉬지도 않고. 출발하기 전에 니코틴 좀 충전하자고."
"아···,네."
그러고 보면 성수도 굉장한 골초 같다. 우린 버스에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나와 담배를 입에 물었다. 연기를 후- 내뱉은 성수가 나를 꾸중했다.
"인마, 넌 교관이 되 가지고 출발 5분 전에 도착하면 어떡해? 늦잠 잤지?"
"아니에요. 도착은 일찍 했는데 오다가 누굴 좀 만나느라고요."
"누구?"
"미술과 아는 애요. 이번에 저희랑 같은 데로 MT 간다던데."
"여자?"
"네."
"도훈이 네가 미술과 여자애를 어떻게 알고?"
"교양수업 때 친해졌어요."
성수는 흥미가 동한 듯 호기심을 보였다.
"오, 예뻐?"
"왜 그래요, 형? 여친도 있으신 분이."
"아니 나 말고, 네가 없잖아. 혹시 작업 중이냐? 형이 좀 밀어줄까?"
왠지 성수가 밀어준다니까 진짜 얼티밋 태클로 밀쳐 버릴 것 같다. 저 인간 불도져 같으니라고.
"에이, 아니에요. 그런 거."
내가 사양하는데도 성수는 상당히 적극적이었다.
"언제까지 혼자 지낼 건데? 과씨씨가 싫으면 다른 과라도 얼른 만나던가."
남의 일에 웬 오지랖이람?
내가 능력이 없어 못 만나나? 더 만나려고 안 사귀는 거지.
"그런 건 제가 알아서 할게요."
여자도 많아 골치 아파 죽겠구만 무슨.
"그게 아니라···. 쩝, 아니다."
"왜 그러는데요?"
성수가 갑자기 말꼬릴 흐리자 괜시리 궁금증이 들었다. 그는 한동안 담배를 뻐끔거리더니 불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도훈이 네가 아무도 안 사귀니까 괜히 학과에 이상한 소문이 떠도는 것 같아서."
"무슨 소문요?"
"그냥··· 뒷담화하기 좋아하는 애들이 헛소리 하고 다니나 보더라고."
"그러니까 그게 뭔데요?"
대충은 짐작 갔지만, 아무것도 모른 척 성수를 채근했다. 성수가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네가 과 여자후배들 이리저리 찝쩍거린데던가? 그 왜 어장관리 하는 것처럼."
성수는 내가 기분 나빠할 것을 염려했는지 거듭 헛소문임을 강조했다.
"원래 사람들 모이면 남 흉보는 거 좋아하잖아. 네가 이해해라. 이 자식들은 괜히 잘 알지도 못하면서 사람 기분 나쁘게."
"괜찮아요. 그딴 유언비어 신경 안 쓰니까."
"그래. 신경 쓰지 마. 도훈이 니가 중간에 복학해서 아직 잘 모르기도 하고, 여자들 사이에 인기도 많으니까 괜히 질투하는 거 같아. 내가 그 소리 듣자마자 열 받아가지고 어떤 새끼가 그딴 헛소문 냈냐고 따지니까, 다들 어디서 들었다고만 하더라고. 하여
간 이 자식들은 출처도 불분명한 소문에 혹해 가지고는···."
어떤 새끼가 아니라 어떤 년인데 내가 이미 처단했으니 염려 마시고. 그나저나 언제나 내편 들어주는 성수의 마음씀씀이가 고맙기 그지없다. 착한 녀석 같으니.
"어쨌든 고마워요, 형. 저 신경 써 줘서."
"고맙긴 인마. MT 때 3학년 살살 굴려달라고 로비하는 거야."
"아무리 그려서도 얄짤 없거든요?"
"어쭈, 후환이 두렵지 않다 이거냐? MT 길어봐야 원박투데이다. 졸업까진 구만리 남았고."
한참 성수와 대화를 나누는 데 익숙한 승용차 한 대가 우리 앞에 섰다. 차량 윈도우가 스륵 내려오더니 선글라스를 쓴 조교 강민주가 농을 건넸다.
"거기 담배 피는 불량학생들. 출발 안 할 거니?"
"앗, 조교 선생님! 지금 출발하세요?"
성수가 조폭처럼 90도로 폴더 인사를 했다. 항상 느끼지만 성수는 조교에게 너무 쩔쩔매는 것 같다.
나는 민주를 무시하고 슬쩍 차 안을 들여다보았다. 뒷자리엔 나이 지긋한 교수 두 사람이 점잔 빼고 앉아있었다. MT 때 교수도 함께 가는 거였나?
"늦장 부리지 말고 얼른 출발하렴. 주말이라 나가는 길 좀 막힐 거야."
"넵."
"도훈이 넌 대답 안 하니?"
굽신거리는 성수와 달리 내가 뻣뻣하게 서 있자, 민주가 괜히 꼬투릴 잡았다. 이게 교수 태웠다고 기어오르는 건가? 나는 마지못한 척 대답했다.
"···네. 지금 출발할게요."
"그래. 조심히 와. 가서 보자."
민주가 나를 향해 씽긋 웃었다.
니가 거기 가서도 웃을 수 있나 보자고. 앙큼한 계집애 같으니.
***
도훈은 비좁은 자리에 몸을 비틀었다. 그러나 아무리 몸을 뒤척여도 기절하듯 잠들어 버린 성수의 몸은 바윗덩어리처럼 꿈쩍 하지 않았다.
‘어유, 덩치는 무슨 산만해가지고···.’
버스에 오른 도훈은 부회장 성수 옆에 앉았다.
최근 학과에 떠도는 소문 덕에 여자애랑 같이 있다간 괜히 꼬투리 잡힐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었다. 통로 건너 좌석엔 2학년 과대인 우선과 부과대가 앉아 MT계획을 살피는 중이었다.
"도착하자마자 텐트부터 쳐야겠지? 짐 놔두려면."
"짐은 일단 텐트촌 옆에 교수님 숙소에 넣어두는 게 어때? 아직 조 편성도 안 끝났잖아."
"참, 도훈이 형. 텐트 편성은 어떻게 됐어요? 형이 MT조랑 같이 짜신다고 해서 손 안 댔는데."
"아, 그거. 메모장에 적어놨어. 잠시만."
도훈이 미리 준비한 조 편성을 핸드폰 화면에 띄워 보였다.
1학년 6개 조.
2학년 4개 조.
3학년 3개 조.
4학년 2개 조.
편성을 훑어보던 우선이 의문점을 제기했다.
"2,3학년들이 다들 큰 텐트 들어가네요? 차라리 1학년 애들을 한 데 모으는 게 낫지 않겠어요?"
텐트의 크기가 각기 달랐기 때문에 누군가는 2,3인용 텐트를, 누군가는 8인용 텐트에 들어가야 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작은 텐트 대부분은 1학년들 차지였다.
"그게 숫자가 좀 애매하더라고. 1학년이 가장 많이 참석하고 4학년이 가장 적으니."
MT특성상 학년이 올라갈수록 참석률은 저조할 수밖에 없다. 특히 사범대 같은 경우 3학년쯤 되면 임용 준비다 뭐다 해서 절반도 참여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학년을 섞어 넣자니 그것도 좀 애매할 것 같고."
"하긴 그렇네요. 아무래도 후배들도 선배랑 같이 자는 건 불편할 테니까."
단순한 성격의 우선이 고개를 끄덕이며 쉽게 납득했다. 하지만 도훈의 조 편성은 자세히 들여 볼수록 의문점이 한 가득이었다.
일단 2인용 텐트는 대부분 1학년 여학생들 위주로 배정되었다.
1학년 A텐트(2인용) - 이효민, 양희주
1학년 B텐트(2인용) - 이나연, 이연두
1학년 C텐트(2인용) - 박서현, 육정음
1학년 D텐트(2인용) - 강경희, 김희수
그밖에 2인용 텐트가 배정된 곳은 학년 통틀어 여학생이 둘밖에 없는 2학년과 격려차 따라온 4학년 뿐이었다.
2학년 A텐트(2인용) - 이자영, 우현미
4학년 A텐트(2인용) - 오수정, 김가희
2학년과 4학년은 여자가 둘 뿐이니 그렇다 쳐도, 1학년들을 굳이 뿔뿔이 흩어놓은 이유는 순전히 도훈이 일을 벌이기 수월하기 위한 목적.
우선은 그런가보다 하고 대충 넘어갔지만 옆에 앉아있던 2학년 부과대가 편성표를 보고 딴지를 걸었다.
"형, 근데 이거 너무 여자애들 편의만 봐주시는 거 아니에요? 남자들은 죄다 4인용 아님 8인용이고 여자애들만 2인용이라니···. 저도 사람 적은 편이 좋은데."
"그건 일부러 그렇게 한 거야."
"네? 일부러요?"
도훈이 뻔뻔하게 변명했다.
"남자들은 어차피 저녁에 안 잘 거잖아."
"그죠. 올 만인데 달려야죠."
"그래서 텐트 좁으면 모이기 불편할까봐 일부러 큰 데로 배치한 거라고."
"그렇구나."
"그리고 어차피 1학년 여자애들은 금방 들어가 잘 게 뻔하니까 2인용으로 준거고."
"아, 전 그것도 모르고···. 생각해보니 이게 최선이네요."
"그치?"
계획대로 일이 풀린 도훈이 씩 웃었다.
앞좌석에서 2학년 집행부들이 한참 MT관련 회의를 나누고 있을 때 버스 뒷자리에 나란히 앉은 1학년 남학생들은 신나게 작당 모의를 하는 중이었다.
"야, 우리 저녁에 헌팅이나 갈래?"
"웬 뜬금없는 헌팅?"
대화의 주도자는 1학년 마당발로 통하는 태영.
그가 침을 튀겨가며 좌우에 자리한 동기들에게 설명했다.
"아까 버스 탈 때 봤지? 우리 가는 캠핑장에 미술과랑 무용과 애들도 가는 거?"
"진짜?"
"기남이 넌 눈 뜬 장님이냐? 대체 뭘 보고 다니는데? 맨날 혼잣말 하면서 중얼중얼하기만 하고."
태영이 항상 얼이 빠져있는 동기 성기남을 일축하더니 다시 설명을 이었다.
"내가 미술과랑 무용과 애들 버스 타는 거 쭉 지켜봤거든. 진짜 거긴 완전 꽃밭이야 꽃밭. 여자애들이 9할이 넘더라니까?"
"오!"
"솔직히 걔네들도 기껏 MT 왔는데 재미없게 여자들끼리 수다 떨고 싶겠냐? 100퍼 남자들이랑 술 먹고 싶어 하지. 이빨만 잘 털면 금방 넘어 올 걸?"
태영의 제안에 솔깃한 남자애들이 흥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디나 비관적인 성격은 있기 마련.
"잠깐. 태영아 다 좋은데 무용과 애들 눈 높기로 유명하던데 우리 정도로 먹히긴 할까? 무용과는커녕 미술과도 힘들어 보이는데···."
현실적인 제환의 의견에 들떠있던 분위기가 찬 물을 끼얹은 듯 암울해졌다. 엄밀히 따져 체육과 1학년 남자 중엔 인물 좋은 사람이 한명도 없었다. 오죽하면 같은 과 여자동기들도 남자 동기에게 무관심했다. 물론 이렇게까지 된 배경엔 도훈의 8선녀 공략
이라는 대업이 결정적이었지만.
한참 달궈놓았던 분위기가 다시 가라앉자 태영이 극단의 비책을 제시했다.
"그러니까 얼굴 마담이 필요하다 이거지?"
"그렇지."
"도훈이 형이면 어때?"
"도훈이형?"
"오, 체육과 에이스!"
"도훈이 형 와꾸면 충분하지."
"도훈이형 정도면 여자애들이 먼저 헌팅걸지도?"
잠자코 듣고 있던 제환이 다시 딴지를 걸었다.
"근데 형한테는 의견 물어봤고?"
"음, 아직."
"그럼 확정도 아닌거네."
하지만 태영은 평소 친분이라면 도훈이 충분히 도와줄 것이라 믿었다.
"야. 나만 믿어. 내가 어떻게든 도훈이형 꼬드겨가지고 헌팅 참가 시킬 테니까."
"난 됐다. 그냥 잠이나 잘란다."
"그럼 제환이 넌 빠지고. 또 빠질 사람?"
"나도 안 될 거라고 봐."
"헌팅은 무슨··· 그냥 술이나 먹을래."
태영은 자진 포기하는 친구들을 또렷이 머릿속에 담았다.
‘하여간 의리 없는 새끼들 두고 보자. 도훈이형 한다고 껴달라고 하면 절대로 안 껴줘야지.’
태영은 버스 맨 앞좌석에 앉은 도훈의 뒤통수를 간절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
‘왜케 귀가 간지럽지? 누가 또 내 흉보나?’
손가락으로 귀를 후비적대는 데 핸드폰이 부르르 울렸다.
‘희주?’
깨톡을 보낸 주인공은 버스 어딘가에 앉아있는 희주였다.
-희주 : 오라방, 나 심심한데 뭐하심.
-도훈 : 보면 몰라? 부회장님 옆에서 부대끼고 있지. 앉자마자 잠들어가지고 무거운데 치우지도 못해.
-희주 : 나도 옆에 잠들었는데···. 오빠 내가 재밌는거 보내줄까?
-도훈 : 응?
잠시 후 희주에게서 한통의 사진이 도착했다.
헉! 이거 설마?
긴가민가했는데 사진은 바로 희주의 젖가슴이었다.
그것도 상의를 들춰 위에서 아래로 내려찍은 사진.
-희주 : 어때? 내 속옷. 지금 찍은 거야.
-도훈 : 미쳤어? 누가 보면 어쩌려고?
-희주 : 옆에 잔다니까? 뒤에 1학년 남자애들 빼곤 여긴 다 자.
-도훈 : 사진 찍으면 소리 나잖아.
-희주 : 내꺼 무음모드 되걸랑. ㅎㅎ 오라방만 안들키게 보면 돼.
나는 혹시나 누가 볼새랴 핸드폰을 내 쪽으로 돌렸다. 그때 또 다시 사진이 날아왔다. 이번엔 브라를 들춰 젖꼭지가 훤히 드러나 있었다.
-희주 : 어때? 내 꼭지 예뽀?
어휴- 누가 색녀아니랄까봐 대담하긴.
처음엔 조금 당황했으나 희주의 아름다운 가슴을 보자 슬슬 대물에 반응이 왔다. 마치 누군가 도촬을 해서 보내주는 사진 같았다.
-도훈 : 확 빨아버리고 싶네.
-희주 : 힝T_T 나도 오빠가 빨아주면 좋겠다.
-도훈 : 가서 실컷 빨아줄게.
-희주 : 정말?
-도훈 : 당연하지.
-희주 : 오빠. 10초뒤에 살짝 뒤 돌아봐.
이게 또 무슨 짓을 하려고.
하지만 이미 희주의 빨통에 꽂힌 나는 그녀가 시키는대로 자연스럽게 통로 쪽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허어어억-!
저 미친년 지금 웃통 깐 거야?
내가 앉은 자리로부터 정확히 4번째 줄 뒤에 있던 희주가 느닷없이 상의를 훌렁 끌어 올려 젖가슴을 만천하에 드러내고 있었다. 그녀는 심지어 내가 쳐다보자 몸통을 좌우로 흔들기 까지 했다.
나는 화들짝 놀라 얼른 다시 앞을 쳐다보고 메시지를 날렸다.
-도훈 : 니가 드디어 돌았구나!
-희주 : 여기 다 자고 있다니까?
-도훈 : 안자는 애들도 있잖아. 누가 보면 어쩌려고 그래?
-희주 : 누가 보긴? 오빠만 봤는데 뭘.
-도훈 : 어휴. 내가 진짜 너 때문에 떨려 죽겠다.
-희주 : 꼴렸지?
꼴리냐고?
나는 문득 다리 사이를 쳐다보았다. 바지 위가 살짝 올라간 게 대물이 반응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희주에게 솔직히 대답했다간 무슨 짓을 할지 몰라 거짓말 했다.
-도훈 : 아니 미동도 없어.
-희주 : 그렇단 말이지?
희주가 잠시 후 또 사진을 보내왔다.
허거덕!
이번엔 치마를 벌리고 팬티 가운데를 적나라게 드러낸 봊이 사진이었다.
"도훈이 너 지금 뭐보냐?"
그때 자고 있던 성수가 깨어나 내 핸드폰 화면을 쳐다보며 물었다.
< 274. 오빠랑 MT갈래?-14- > 끝
ⓒ 성난불기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