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287화 (267/2,000)

< 269. 오빠랑 MT갈래?-9- >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현미가 흠칫 놀랐다.

이렇게 훅 들어 올 줄은 몰랐지?

"네? 제가 뭘요?"

예상대로 현미는 딴청을 부렸다.

"내가 최근에 소문을 들었거든. 네가 나 흉보고 다닌다고."

사기꾼의 전형처럼 현미는 처음엔 모르는 척을, 두 번째로 부인을 시작했다.

"네? 누가 그래요?"

두 눈을 부릅뜨며 대드는 모양새가 뻔뻔하기 짝이 없다.

여기서 잘못을 시인하고 진심으로 사과했다면 좋은 말로 타이르고 넘어갈 의향도 있었다. 하지만 현미는 내가 준 마지막 기회마저 날려 버렸다.

이제부터 나에게 자비를 바라지 마라.

"네? 말해보세요. 누가 그런 허튼 소문을 냈는데요?"

"알려주면 어쩌려고?"

"가서 따져야죠. 왜 남을 근거 없이 모함하냐고!"

"그래서?"

"정식으로 사과를 받아낼 거예요."

"사과? 그건 어떻게 받을 건데?"

연속되는 질문에 현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갑자기 그런 물음을 던지는지 의아해 보는 모습이었다.

"음···, 제 앞에 무릎이라도 꿇려야 직성이 풀릴 것 같은데요?"

"그래?"

대답을 들은 나는 감정을 배제한 차가운 톤으로 현미에게 또박또박 말했다.

"그럼 너 내 앞에 꿇어야 겠네."

"네?"

"방금 네 입으로 그랬잖아. 남을 모함한 사람은 정식으로 무릎 꿇고 사과해야 한다며?"

"아, 아니 오빠··· 그게 무슨···."

"우현미. 니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나 보기보다 좋은 사람 아냐. 특히 빚진 건 꼭 돌려주고 마는 성격이지."

"자꾸 제가 오빠 호박씨 깠다고 그러시는데, 증거 있어요? 확실한 증거 가지고 그러는 거냐고요!"

궁지에 몰린 현미가 전략을 바꾸더니 바락바락 대들었다.

이제 와 내가 누구를 거명하건 오리발 내밀 심산이겠지.

뒷담화 깐 거 녹음이라도 했냐면서.

하지만 넌 사람 잘못 골랐다.

"증거?"

"오빠가 지금 아무 증거도 없이 저 몰아세우고 계시잖아요. 저 억울해요, 진짜."

"···너 정말 말로는 안 될 아이구나?"

나는 빠르게 손을 뻗어 그녀의 손에 들린 스마트폰을 낚아챘다. 전광석화 같은 속도는 나조차도 흠칫할 정도. 아마 한지연에게 흡수한 유도능력의 깃 잡아채기 기술이 응용된 동작 같았다.

한편 엉겁결에 핸드폰을 빼앗기고 만 현미는 빼액- 소릴 질렀다.

"무, 무슨 짓이에요! 그거 보기만 해요? 확 사생활 침해로 고소해 버릴 테니까!"

"안 봐."

"네?"

"안 봐도 다 알거든. 그러니 사생활 침해 운운할 필요 없어."

나는 아까부터 테두리 주변이 하얗게 빛나고 있던 스마트폰의 기억을 읽어 들였다. 싸이코메트리 스킬을 발동한 것이었다.

순식간에 현미가 메갈워드 싸이트에 접속해 남긴 수십개의 게시글과 수백개의 댓글이 해일처럼 밀려 들어왔다.

‘우윽- 미친, 더럽게 많이도 싸질러 났네.’

내가 뒤진 정보의 양은 각 잡고 정독해도 한 시간을 족히 넘을 분량이었지만, 영상기억의 특성상 찰나의 순간 스캔이 종료되었다. 더욱이 지난번 강화된 옵션 덕분인지 어마어마한 양의 정보가 유입되고도 어지럼증은 거의 없었다.

싸이코메트리 영상을 통해 그녀의 행적을 샅샅히 파악한 나는 기억을 더듬는 척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삼 주 전 목요일 13시. 언냐들, 접때 말한 갓치남 여자 후배 데리고 점심 먹으러 간다는 글, 메갈워드에 올린 적 있지?"

"어어?"

"내용도 읊어드려? 좆도 작아 보이는 새끼가 예쁜애는 좆나게 밝혀요. 블라블라. 여기 아예 국성대 체교과라고 명시를 해놨네."

"그, 그걸 어떻게!"

"그리고 이어 사흘 뒤 새벽 2시. 우리 과에 키만 멀대같이 큰 새끼 분명 고자가 확실함. 이것도 네가 쓴 글이지?"

"오, 오빠···."

현미의 얼굴이 당혹감으로 얼룩졌다. 설마 익명의 아이디로 남긴 글을 정확히 찾아낼 줄을 꿈에도 몰랐다는 표정이다.

"달리기도 열나 빠르고 배구도 잘하던데 꼭 저렇게 운동만 하던 새끼들이 본능에 충실하단 말이지. 한남 새끼충 잘도 까고 다니겠네, 블라블라. 와,  역겨워서 도저히 못 읽겠더라. 여기서 말하는 멀대가 나 말하는 거 맞지?"

"아, 아니에요. 그건···."

"그래? 아예 내 이름 밝힌 적도 있던데? 2931번 게시글에 ‘이도x 한남충 새끼 시크한 척 똥 폼 잡을 때마다 패죽여버리고 싶음.’ 댓글 달고, 그 바로 아래다는 이x훈이라고 또 써놨더라? 바보가 아닌 이상 내 이름을 다 알지 않겠어? 어? 이렇게 공개적인 게

시판에 다른 사람 실명 거론해도 되는 거야?"

"오, 오빠가 어떻게 그걸···."

나는 얼이 빠져있던 현미의 머리를 툭툭 노크했다.

매우 건방진 자세로.

"니가 나에 대해 한 가지 모르는 사실이 있어. 내가 고등학교 시절 이미 미국 NASA까지 해킹했던 컴퓨터 천재였다는 걸 말이야."

"헉!"

현미의 낯빛이 마침내 사색으로 물들었다.

"아까 뭐라고 그랬지? 사생활 침해? 너 형법 좀 아는 거 같은데, 이거 내가 명예훼손으로 걸어도 충분할 것 같지 않냐? 어떻게 생각해? 우현미 씨."

현미는 게시글의 구체적인 시간과 내용까지 들먹이자 내 거짓말을 완전히 수긍하는 눈치였다.

정말이지 바보가 따로 없다.

조금만 생각해도 고등학교 때 나사를 침투하던 천재 해커가 뭣하러 국성대 체육교육과 같은데 진학했는지 의심부터 해야 하지 않나? 대체 머리는 뭐하러 달고 다니는지 모르겠군.

"핸드폰은 혹시나 증거 인멸할까봐 빼앗았던 거야. 하긴 그래도 상관없겠네. IP 체증까지 끝내고, 화면도 싹 캡쳐해 놨으니까. 거기서 지워도 원본은 서버에 남아있는 거 알지?"

"오, 오빠···."

현미가 사시나무처럼 몸을 떨었다.

혹시 자궁 떠는 거니?

아직도 제대로 된 협박은 시작도 안 했는데 말이야.

나는 으름장을 놓듯 말했다.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 70조.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공공연하게 거짓의 사실을 드러내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

"흐윽."

"7년 이하의 징역!"

"오, 오빠!"

"10년 이하의 자격 정지!"

"제, 제발."

"또는 5천 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 이런 조항을 알고는 있는 거지?"

오늘 오전에 미리 외워둔 법률 조항을 들먹이며 현미를 핀치로 내몰았다. 그녀는 연거푸 펀치를 맞은 것처럼 휘청거렸다.

마지막 결정타.

"아참, 벌금형부터는 전과 기록이 남아서 공무원 지원 결격 사윤 거 알지? 우리 현미 이제 교사 되긴 그른 것 같은데?"

"히끄으으윽, 오, 오빠 한 번만 살려주세요!"

결국 현미가 울음을 터뜨렸다.

사실 법률에 대한 부분은 나 역시 검색을 통해 주워들은 수준이다.

아마 사이버 공간의 비방이 명예훼손에 걸린다손 치더라도 약식기소 정도로 그칠 것이고, 기소유예 처분이 나오게 될  경우 전과가 남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초범인 것을 정상 참작해주니까.

그러나 그녀의 중상모략에 너무나 화가 났기 때문에 이렇게라도 겁을 주고 싶었다.

"흐어엉! 오빠 제가 전부 다 잘못했어요. 정말 죄송해요."

"여기서 매달리지 마라. 사람들 쳐다보니까."

"한 번만, 딱 한 번만 봐주세요. 다신 그런 짓 안 할게요."

"아이고, 이거 왜 이러시나? 메갈워드 85LV. 한남충박멸님. 그런건 법정가서 따지시고요."

"제, 제발요. 오빠 뭐든 시키는 대로 할게요. 이번 한 번만 눈감아 주세요."

현미는 필사적이었다.

벌금형보다는 이로 인해 임용 자격이 박탈될 것을 두려워하는 눈치였다. 자신의 앞길이 막힌다는 데 겁먹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 하여간 이런 입만 산 키보드워리어 같으니라고. 인생은 실전이라는 걸 꼭 큰일을 겪어봐야 아는 애들이 많다.

나는 그쯤에서 눈을 게슴츠레 뜨고 현미를 쳐다보았다.

"···시키는 데로 뭐든지라고?"

"네, 네 뭐든요. 무릎 꿇으라면 꿇을게요. 여기서."

현미가 갑자기 바닥에 무릎을 꿇으려고 하자 내가 제지했다.

"사람들 다 쳐다보게 뭐 하는 거야? 그만둬."

"하윽, 이렇게라도 진심을 다해 사과를···."

"아니. 사과받는 방법은 내가 정해."

"네, 네. 알겠어요 오빠."

현미는 어느새 고분고분한 양이 되었다. 바락바락 대들던 아까의 건방진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이렇게 깨갱할 거면서 무슨 배짱으로 남의 험담을 하고 다녔나 싶어 실소가 나왔다.

나는 유유히 카트를 밀며 현미에게 말했다.

"일단 장보기부터 끝내고 얘기하자. 폰은 그때 돌려주지."

"···네."

죽을상이 된 현미와 달리 나는 여유롭게 장보기를 이어갔다.

어떤 처분이 내려질지 모르는 현미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내 옆을 졸졸 붙어 다녔다. 슬쩍 골탕 좀 먹여볼까?

나는 조용히 식재료를 고르고 있는 현미 뒤로 다가가 속삭였다.

"근데 너 취향 되게 특이하더라?"

"예, 예?"

"해킹하다 보니 외국 포르노 사이트 검색 기록도 다 보이더라고."

"아, 아···!"

그것은 예상 밖의 수확이었다.

스마트폰을 끼고 사는 현미는, 컴퓨터로 야동을 보지 않고 핸드폰을 통해 욕구를 해결하곤 했던 것. 그래서 아까 싸이코메트리로 그녀의 낯뜨거운 모습까지 보게 되었던 것.

현미가 얼굴이 새빨개져 고개를 떨구자, 나는 일부러 들으라는 식으로 지껄였다.

"대물이 그렇게 좋든? 검색창에 Huge dick이니 Big dick만 줄기차게 검색했던데?"

"아, 아니에요."

"왜 네가 자주 가는 싸이트 이용자들, 갓양남이라고 칭송하면서 대물 노래를 부르더만 아주?"

"전 그, 그냥··· 호기심에."

"호기심?"

"거기에 막 서양남 썰 같은 게 많이 올라오길래···."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실제 경험이라곤 쥐뿔도 없는 처녀 주제에 무슨 내뇌 망상에 찌들어서는.

"그래서 한국 남자 무시했던 거야? 실 좆? 6.9Cm? 다 거기서 퍼뜨린 말이지?"

"아, 아니에요. 그건 통계적으로."

"통계 같은 소리 하네. 한국인이 아시아인 중에선 제일 크다는 건 과학적인 사실인데 어디서 왜곡과 날조 질이야? 출처도 불분명한 데이터를 실제로 믿었던 거야?"

"저, 저는 그냥 언냐들이 하는 얘기를···."

"바로 그게 문제라는 거야! 어디서 되지도 않는 유언비어를 확대 재생산해 한국 남자들 싸잡아 까고, 인종도 다른 서양남하고 비교해 무시하기나 하고. 그렇게 같은 동포 혐오해서 니들이 얻는 게 뭔데?"

"······."

"솔직히 남자들은 뭐 할 말 없는 줄 알아? 한국 여자 세계적으로 가슴 작지, 화장 지우면 남자랑 구분도 잘 안가지. 성형은 또 어찌나 해대는지 2세 나오면 친차 확인까지 해야 될 판이라니까?"

"으윽."

"아무리 그래도! 남자들은 대놓고 불평불만 안 하잖아. 어차피 다 같이 어울려 살아야 할 사람들이니까! 평생 안 보고 무시하고 끝날 사람이 아니라고!"

"죄, 죄송해요. 제가 너무 편협했어요."

"인터넷 커뮤니티에 인생 걸지 마라. SNS질도 작작하고. 니가 두 발 딛고 살아갈 곳은, 니가 평생을 어울려야 할 사람들은 사이버 상에 있지 않아. 바로 여기 니 앞에 있는 나 같은 사람들이라고."

"···네."

한바탕 퍼부었더니 기분이 좀 풀렸다.

이 정도면 정신 바짝 차렸겠지?

그때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던 현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도훈 오빠."

"왜? 더 할 말 있어?"

"제가 한 짓은 정말 잘못했어요. 하지만 처음부터 오빠를 음해하거나 비방하려는 건 아니었어요."

나는 카트를 멈춰 세우고 팔짱을 꼈다.

"그럼?"

"이 상황에서 이런 말은 그렇지만···. 저 오빠 많이 좋아했어요."

그건 이미 알고 있었다. 애정이 애증으로 바뀌면서 증오도 커졌다는 걸. 하지만 나는 의외라는 듯 되물었다.

"날 좋아했다고?"

"네. 그래서 오빠한테 잘 보이려고 무진 노력했어요. 하지만 오빠는 절 쳐다보지도 않더라고요."

당연하지.

예쁜 애들 상대하기도 벅찬데 이렇게 평범한 현미가 눈에 들어올 리 만무하다. 눈앞에 뷔페가 펼쳐져도 손이 많이 가는 음식과 손도 안 타는 음식이 구분되지 않는가?

"비참했어요. 제가 조금만 예뻤더라면, 아니 자영이나 희주처럼 몸매라도 볼만했으면···. 오빠가 저에게 조금은 관심은 보이지 않았을까. 학번은 달라도 같은 학년이라 졸업할 때까지 함께 볼 텐데, 오빠는 나를 완전히 없는 사람 취급하고···."

"그건 자영이한테도 마찬가지였어."

"알아요. 오빤 예쁜애들만 좋아하시니까요."

"······."

"그게 분했어요. 그래서 원망스러웠어요. 나쁜 소문을 내면 나한테 조금이라도 관심 보이지 않을까, 내가 누군지 궁금 해 하지 않을까···. 그렇게라도 친해질 수 있지 않을까."

흐음. 그렇게 된 것이로군.

엄벌을 줄까 했는데, 갑자기 현미의 진심을 듣자 조금은 마음이 약해졌다. 환생하기 전의 이정우와 그녀의 처지가 오버랩 되었던 것이다.

160도 안 되는 작은 키.

볼품없는 외모.

그나마 타고난 머리 덕에 최고의 대학을 나와 직업적으로는 성공을 거두었지만, 결국 남편에 만족 못한 아내의 바람으로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던 나.

처음부터 잘난 이도훈이 아닌, 못난 이정우의 삶을 살았기에 나는 그녀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공감할 수 있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네 행동이 정당화될 순 없는 거야. 어떻게 좋아하는 사람한테 그런 짓을 해? 인터넷 커뮤니티에도 쪽이란 쪽은 다 팔리게 하고."

"그건 정말로 죄송해요. 제 생각이 짧았어요. 그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는데 저도 모르게 거기서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 없는 말을 지어냈어요. 절 어떻게 벌하셔도 달게 받을게요. 하지만 제 말은 진심이에요."

하-, 나 이것 참.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진심으로 사과를 하는 현미의 모습에 조금 화가 누그러졌다. 이래서 여자의 눈물이 최고의 무기라고 했구나.

나는 울먹이는 현미를 다독였다.

"알았으니까 그만 울어. 너땜에 창피해 죽겠다."

"흑흑, 죄송해요."

"한 가지만 묻자. 대체 내가 왜 좋은 건데?"

무슨 생각을 떠올리는지 현미의 얼굴이 발그레해졌다.

그녀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애들이··· 오, 오빠가 그렇게 대물이라길래···."

띠링! 그 순간 스마트워치가 부르르 진동을 시작했다.

< 269. 오빠랑 MT갈래?-9- > 끝

ⓒ 성난불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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