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8. 오빠랑 MT갈래?-8- >
내가 어렴풋이 기억하는 우현미는 지극히 평범한 외모다.
못생겼다곤 하긴 박하고, 예쁘다기엔 다소 부족한.
그러나 프로필 사진 속의 우현미는 엄청난 미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쌍꺼풀진 눈은 유난히 커다랗고, 피부는 잡티 하나 없이 뽀얗다. 도톰한 입술과 오뚝한 콧날은 연예인이 사진을 대신 올려놓은 게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 하지만 이목구비는 분명 현미
본인의 것이었다.
"대관절 원판이 남아있질 않구만. 얼마나 사진을 고쳐먹은 거야?"
나는 화면을 슬라이드 하며 다른 사진 역시 확인했다. 그녀의 앨범 속 사진 대부분이 한땀 한땀 장인의 손길을 거친 작품이었다. 게다가 얼굴만 보정 한 게 아니었다.
"가슴에 패드를 얼마나 끼워 넣길래 이렇게 글래머러스하게 나왔담? 다리 길이는 무슨 러시안 팔등신 저리 가라네?"
사진 속 몸매 역시 1학년 중 원탑이라는 희주와 쌍벽을 이루었다.
[우현미 양이 이렇게 몸매가 좋았던가요?]
"좋기는 개뿔. 죄다 주작이지. 포토샵으로 비율 늘리고 피부도 완전 갈아엎었잖아."
[정말요?]
"여기 봐. 허벅지 부분."
나는 사진을 확대에 로시에게 보였다.
[허벅지가 왜요?]
"허벅지가 아니라 그 옆에 봐봐. 벤치 등받이 간격이 이상하잖아."
[오, 과연 다른 곳과 달리 두 배쯤 넓어 보이는군요.]
"나름 교묘하게 위장했지만, 주변 사물도 같이 늘어나는 걸 지우진 못한 거지. 다른 사진도 마찬가지야. 확대해 보면 가슴도 커 보이려고 왜곡시킨 흔적이 남아있어."
[대체 왜 저러는 걸까요? 실물을 모르는 사이도 아니잖습니까?]
"열등감이지."
[열등감요?]
"그래 열등감."
나는 현미의 상태를 한마디로 진단했다.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를 이겨내지 못한 전형적인 열등감 덩어리. 어쩌면 나에게 보이는 공격적인 성향 역시 그로 인해 기인한 것일지도 모른다.
"조작된 사진만 봐도 알겠어. 예뻐지고 싶은 욕망은 강하지만 그럴 수 없는 현실을 이런 과도한 뽀샵으로 드러내는 거랄까?"
[그렇다고 몹시 못난 얼굴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게 더 문제야."
[네?]
"얼굴이 쉣더 퍽이면 애초에 기대를 접거든. 공부를 열심히 해서 능력을 갖춘다거나, 내면을 가꿔 훌륭한 인성을 기르겠지. 똑똑하거나 착한 것도 나름대로 매력이 될 순 있으니까."
[오호.]
"근데 얘는 애매하게 못생겼단 말이지. 그니까 더 아등바등하는 거야. 자기도 쪼금만 고치면 사진처럼 예뻐질 수 있는데, 조금만 더 가슴이 크고 다리가 길었으면 이렇게 모델 같아질 수 있는데 하고 말이야. 그 미련이 결국 열등감으로 변해 타인에 대한 공
격성으로 투사되는 거지."
[굉장한 분석력이시군요. 혹시 심리학을 전공하셨던가요?]
"심리학은 무슨? 그냥 책 몇권 읽었을 뿐. 근데 이건 뭐지?"
사진첩 댓글 사이로 우현미가 직접 남긴 글귀가 보였다.
-어맛! 언냐들 나 자궁 떨리긔.
"무슨 개 병신같은 말투람?"
[혹시 유행어가 아닐까요?]
"왠지 특정 커뮤니티에서 주로 사용되는 은어 같은데···."
나는 그녀의 성향을 확인하기 위해 인터넷을 뒤져 해당 말투를 쳐보았다. 내용을 수집하자 최종적인 출처가 하나로 집결되었다.
"메갈 워드라···."
[연관 검색어로 여성 우월주의, 패미니즘, 남성 혐오등의 키워드가 보이는군요.]
"대충 뭔지 알겠다. 요새 뭐 한남충이니 애비콘뭐니 떠들면서 낳아준 아버지나 가족까지도 싸잡아 욕하는 무리가 있다는 데, 현미가 거기서 활동하는 멤버인가 보군."
[주인님 말씀처럼 외모에 대한 지나친 콤플렉스가 남성에 대한 공격성으로 발전된 행태로군요.]
"한데 아직도 잘 이해가 안 된단 말이지?"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뭐가 말입니까?]
"내가 자기한테 밉보인 게 있나?"
현미의 정보를 어느 정도 파악한 나는 최종적인 의문에 도달했다. 왜 하필 나란 말인가? 하고 많은 남자들 중에.
솔직히 말해 오늘 일이 있기 전까지 난 현미의 존재 자체도 몰랐다. 이름을 듣고도 한참 만에야 얼굴을 떠올릴 만큼 접점이 없는 인물이었다.
서로 간에 대화도 없었고, 그러니 딱히 척질 일도 하지 않았다. 그런 그녀가 나에게 날 선 발톱을 들이민다는 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밤도 늦었는데 내일 직접 보고 확인해 보시는 게···.]
"그래, 그게 좋겠다. 하여간 이유 없이 날 음해한 거라면 절대로 가만두지 않을 거야. 난 당하고는 못 살거든."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럼 안녕히 주무시길.]
나는 분한 마음에 한참을 뒤척이다 잠이 들었다. 중상모략을 당하는 것이 이토록 피가 끓는 일임을 처음으로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
다음날.
전공 수업에 들어간 도훈이 남몰래 현미를 훔쳐보았다.
‘역시 어젯밤 사진과는 전혀 다른 인물이군.’
피부는 까슬까슬하고 몸매는 밋밋하기 짝이 없다. 딱히 스타일이 좋은 편도 아니고, 그렇다고 밝고 긍정적인 성격도 아니다.
2학년 동기 중 유일한 여자인 이자영과 붙어 다니는 데, 쉬는 시간에 남자애들과 어울리는 자영과는 달리 혼자 구석에 앉아 폐인처럼 스마트폰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도훈이 그 모습을 보고 추측했다.
‘또 그 혐오 싸이트 들어가 남자들 흉이나 보고 있나 보네. 로시, 정보창 준비해.’
[우현미 양에게 말이죠?]
‘그래. 스킬 아깝지만 나를 왜 음해했는지 파악하려면 어쩔 수 없지.’
"현미야."
"오, 오빠?"
현미가 보고 있던 스마트폰을 후다닥 바탕화면으로 전환했다. 쉬는 시간 그녀에게 말 걸 남학생이 있을 거라곤 예상 못 했던 그녀는, 메갈워드에 올리려던 게시글이 날아갔을까 봐 아쉬움을 금치 못했다.
‘아씨, 뭐야? 도훈 오빠 난데없이? 진짜 도움 1도 안 되네.’
"너 오늘 장 보러 가지?"
"장이라뇨?"
"내일 MT말야. 자영이랑 민식이랑 같이 장보러 가기로 했다며?"
"아··· MT. 네, 맞아요. 근데 왜요?"
"아까 우선이한테 얘기했는데, 나도 도와주려고."
"오빠가요?"
"어, 조교하나 맡았다고 MT에 대해 아무 준비 안 하려니까 뻘쭘하더라고. 다른 애들은 가서 놀 프로그램 짜고, 캠핑 장비 대여하고, 차량도 예약하고 다들 열심히라 민망하기도 하고."
"아···."
"아무튼, 나중에 수업 마치고 같이 가자."
"네."
현미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도훈이 다시 자리로 돌아가자 로시가 말했다.
[디스플레이에 우현미 양의 정보창 띄웠습니다. 그런데 결과가 좀···.]
‘내가 직접 볼게.’
도훈이 스마트 워치를 확인했다.
-----------------------------
성명 : 우현미 (처녀)
나이 : 21
호감도 : 72/100
개방성 : C
성감대 : 등허리, 귀 뒤, 클리토리스
*애무 포인트 : 그녀는 모욕적인 표현에 흥분을 느낍니다.
성욕지수 : 중간
공략팁
*그녀는 짝사랑하던 선배의 지나친 무관심에 잔뜩 골이 난 상태입니다. 받아들여지지 못한 애정이 상대에 대한 애증으로 변했습니다.
-호감도를 상승시키기 위해 다음의 멘트를 추천합니다.
-추천 멘트 : "근데 현미 너 자세히 보니까 은근히 예쁜 얼굴이네?"
------------------------------
[허-! 애증이라니···. 우현미양이 왜 주인님에 대한 유언비어를 퍼뜨렸는지 이제 알겠군요.]
‘참나, 한마디로 내가 자기 안 좋아해서 저러는 거란 말야?’
[결론은 그렇습니다. 정상적인 반응은 아닌 것 같지만.]
‘절대로 정상 아니지. 좋아하는 사람에게 그럴 순 없는 거야. 쟤는 단단히 삐뚤어졌어. 외모보다 마음씨가 더 고약하군.’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관계를 개선하지 않고선 계속 악소문을 퍼뜨리고 다닐 것 같은데요.]
‘어쩌긴? 단단히 혼쭐을 내야지. 어려서 잘못은 부모 책임이야. 애를 잘못 길렀으니 부모가 대신 욕을 먹어도 싸. 하지만 스무 살 넘어서 잘못하면 온전히 자기 탓이야. 책임도 자기가 지는 거고.’
현미의 뒤통수를 보며 도훈이 부득 이를 갈았다.
***
"죄송해요, 형. 차가 좀 좁죠?"
"아니야. 그래도 차가 있는 것만도 어디냐?"
말은 그렇게 했지만 민식의 마티즈는 도훈에겐 너무 좁았다. 마음 같아선 보조석 의자를 확 재끼고 싶었지만, 뒤에 앉은 여학생들 때문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맞아. 민식이 니 차 덕에 편하게 장 볼 수 있는 거잖아."
뒷자리에 앉은 자영도 도훈을 거들었다.
MT 장보기를 담당한 넷은 민식의 경차를 타고 마트로 향하는 길.
다들 차가 좁아 뻘쭘해 하는 민식이를 격려하는 데 현미는 아까부터 뭐가 불만인지 입술이 툭 튀어나온 채 스마트폰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쟤는 왜 또 저렇게 똥 씹은 표정이람?’
[차가 별로 마음에 안 드나 보죠.]
‘얼씨구 지랄도 가지가지네. 차도 없는 뚜벅이 주제에 태워주는 것도 감사 못 할망정.’
도훈의 말처럼 실제로 현미는 메갈워드에 다음의 글을 남기는 중이었다.
id : 한남충박멸
제목 : 낼 MT 장 보러 가는 길.
내용 : 언냐들 마티즈에 4명 타본 적 있으심? 진심 좁아 터짐. 이것도 차라고 유세 떠는데 어이 털릴 뻔.
글을 올리고 새로 고침을 누르자 댓글이 실시간으로 달렸다.
갓치녀 ? 헐, 마티즈가 차면 파리도 새임.
엉뽕조아 ? 그딴 차 얻어 탈 바엔 내려서 택시 탐.
갓치녀 ? 고작 마티즈 몰면서 유세를? 하여간 한남 새끼들은 바퀴 4개 달림 다 같은 찬 줄 알지. 마트가서 카트 라이더나 하라고 하셈 ㅋㅋㅋ
한남충박멸 ? 앞자리에 덩치 큰 한남 때문에 더 좁아 죽겠음. 다리가 길면 얼마나 길다고 뒤로 쭉 빼 가지고.
재기재기해 ? 울 언냐 어케···. 하여간 살만 뛰룩뛰룩 찐 파오후 한남충 때문에 우리 가냘픈 여시들만 고생한다니까? 오늘도 지하철 쩍벌남 새끼 한 놈 때문에 서서 간 거 생각하면. 으! 아직도 자궁이 부들부들함.
댓글을 읽던 현미는 자기도 모르게 반박 글을 적었다.
한남충박멸 ? 파오후는 아님, 몸매는 ㅆㅅㅌㅊ임.
180미만루져 ? ㄹㅇ? 언냐가 실제로 봄?
한남충박멸 ? 아니 들음, 과 동기한테. 새터 때 장기자랑 한다고 상의탈의 하는 데 가운데 빨래판이!
갓치녀 ? 언냐, 그 빨래 내가 돌림 안 됌?
재기재기해 ? 한남충이 복근이 있을 리가 없는데? 혼혈임?
한남충박멸 ? 토종 한국인임.
재기재기해 ? 그럼 볼 것도 없음. 약 빨아서 만든 몸임. 울PT관장님이 그러는데 스테로이드 부작용으로 나중에 유방나온다고 함.
180미만루져 ? 헐, 유방충 극혐. 상상했는데 토쏠림.
OO ? 한남충들은 어차피 갓양남한테 안 됌. 보나마나 실좆에 휴지심 허벌창임. 이거 반박불가.
‘도훈 오빠가 실좆? 그건 아니라던데···.’
현미는 반박 글을 쓰려다 머뭇거렸다. 자꾸 도훈을 옹호하는 발언을 하는 것 같아 어딘지 눈치가 보였던 것이다.
이곳에서 찬양하는 남자는 오로지 서양 대물남 뿐.
한국 남자에 대한 칭찬이나 옹호는 공공의 적으로 몰려 부랄털기(신상털기) 당하기 십상이다.
현미는 "들리는 소문으로는 대물이라는 데 직접 확인까진 못 함" 이라는 글을 지우고 다시 글을 썼다.
한남충박멸 ? ㅇㅇ. 척 봐도 다리 가는 게 부실하게 생겼음.
"현미는 뭘 그렇게 열심히 쓰고 있어?"
보조석에 앉은 도훈의 갑작스러운 물음에 화들짝 놀란 현미가 급히 핸드폰을 감추었다.
"그, 그냥 네이버 기사요."
"기사 보는데 무슨 글을 써?"
"아···. 댓글 달았어요. 취, 취미라서."
현미는 둘러댄 변명이 마뜩잖은지 속으로 한탄했다.
‘어으, 이 병신아. 댓글 다는 게 취미라니 무슨 헛소리 하는 거야?’
현미는 도훈과 좁은 공간에 함께 있기는 처음이었다. 수업을 들을 때도 눈 길 한번 안주던 그가 차량 시트를 사이에 두고 근접해 있다.
자신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는 도훈을 흉보고 다녔지만, 막상 그가 앞에 서자 가슴이 뛰는 자신의 모습이 너무도 부끄럽고 창피했다.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는 그가, 왜 이렇게 멀어 보이는 것일까?
"그렇구나. 나도 가끔 기사 보는 것보다 댓글이 더 재밌더라."
"네···."
"오빠, 이번에 조교 하신다면서요? 빡세게 굴릴 거예요?"
"글쎄 후배들 하는 거 봐서?"
"3학년들 좀 제대로 굴려주세요. 원래 오빠가 더 선배잖아요."
갑작스레 끼어든 자영 때문에 둘만의 대화가 끊긴 현미가 자영을 속으로 잘근잘근 씹었다.
‘썅년. 하여간 도움이 안 돼.’
하지만 그보다는 평소엔 맨날 뒷담화만 까고 다니다가 막상 그의 앞에 서자 한없이 쪼그라드는 자신의 모습이 더욱 실망스러웠다.
‘미워할 거면 확실히 미워하지 이게 뭐야. 줏대 없이.’
***
"장볼게 많으니까 두 팀으로 나누자."
"어떻게요?"
"일단 카트를 밀어야 하니 남남여여 짝을 나눠야 겠지?"
나는 옆에 있는 현미를 보고 말했다.
"내가 현미가 같이 식사할 거 고를 게. 너희 둘은 술이랑 안주 좀 챙겨줄래?"
"네. 그렇게 할게요."
"그럼 장 다 보고 합류하는 걸로."
"네."
민식과 자영이 카트를 끌고 사라지자 나는 어색한 표정으로 서 있는 현미를 향해 씽긋 웃으며 말했다.
"가자, 현미야 우리도."
"네···."
현미는 둘 만 남게 된 상황이 뻠쭘한 지 자꾸 시선을 피하며 핸드폰만 쳐다봤다. 식단표에 적은 대로 재료를 집다가 문득 생각난 것처럼 현미에게 물었다.
"현미야, 너 나한테 왜 그랬어?"
< 268. 오빠랑 MT갈래?-8- > 끝
ⓒ 성난불기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