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268화 (248/2,000)

< 250. 좋은x, 나쁜x, 이상한x.-25- >

‘호감도는 또 왜 저래? 89? 언제 또 저렇게 올라간 거야?’

분명 이전에 답사 끝나고 확인했을 땐 60대 언저리였다. 스킬 강화로 60부터 전체 정보가 공개된다는 사실에 신기해했으므로, 분명 70은 넘지 않았다고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오히려 며칠 안 보는 사이 호감도는 90 가까이 올라 있었다.

대체 왜?

[확실히 보기 드문 현상이군요. 대게 남자의 바람기를 알고나면 호감도가 떨어지는 게 정상인데요.]

‘나도 그게 의문이야. 게다가 한동안은 몇 번 보지도 않았잖아? 별다른 썸씽도 없었고. 어떻게 그사이 호감도가 이 정도까지 오를 수 있지?’

[어쩌면 강한 소유욕에서 비롯된 감정일지도···.]

로시가 추측을 던졌다.

‘소유욕이라고?’

[네. 공략 팁 설명에 따르면 그녀는 스토커 기질이 다분한 성향입니다. 남자를 독점하고 싶어 하는 질투의 화신이랄까요?]

‘오호, 계속 말해봐.’

[그런데 평소 호감을 갖고 있던 주인님의 남다른 비밀을 알게 되면서, 특유의 질투심이 폭발해 버린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요조숙녀인 줄 알았더니 나만 안주고 다 주는 년인 걸 깨달았을 때 느끼는 그런 감정인건가?’

[글쎄요, 그거랑은 좀 다른 것 같은데요.]

‘아무튼, 요약하면 집착력 쩌는 박서현이 나를 자기 걸로 만들고 싶은 마음이 강해지면서 절로 호감도가 끌어 올랐단 소리군?’

[그런 것으로 추측됩니다.]

이건 지뢰다.

그것도 발목 지뢰가 아니라 탱크도 전복시킨다는 대전차 지뢰.

내 바람기를 알고 질투심만으로 호감도가 89까지 올라버린 여자다. 괜히 잘못 먹었다간 탈 날 게 불 보듯 뻔했다.

‘울 엄마가 어렸을 때 아무거나 집어 먹지 말랬는데, 딱 이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었군.’

바람둥이가 절대로 피해야 할 3대 금녀가 있다.

첫째, 문란하다 못해 아무에게나 쉽게 벌려주는 자동문 같은 여자다. 먹기 쉬우니 좋은 거 아니냐고? 아니지, 허들이 낮으면 개나 소나 다 뛰어넘는다. 그 개나 소가 병에 걸리지 않았을 거란 보장은 없다. 따라서 대체로 몸에 성병을 달고 다닐 가능성이 크

다. 재수 없게 에이즈라도 옮는다면, 좆 한번 잘못 놀린 죄로 인생하직 하는 거다.

둘째는 트랜스 젠더다. 예쁘장해서 괜히 눕혔다가 결정적인 순간 당신은 이런 말을 듣게 될지도 모른다. "죄송해요, 제가 돈이 부족해서 위엔 했는데 아래는 미처 못했어요. 그래도 빠는 건 잘하니까 입으로 해드릴게요." 얼굴은 천상 여자인데 밑에 달린 게

자기보다 실한 모습을 보게 된다면, 자괴감에 죽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내상도 막심하다.

마지막으로 피해야 할 여자는 바로 박서현 같은 집착녀다.

연인이 되면 어느 정도 질투와 집착은 당연하겠지만, 섹파로 만났는데 쿨하지 못하면 그것만큼 또 피곤한 게 없다. 마누라라도 되는 냥 사사건건 간섭하고, 다른 여자를 만나는 걸 들키는 날엔 칼부림이 날지 모른다. 평생 스토킹에 고통받다 끝내 미저리

찍고 가는 거다.

‘기껏 대물로 태어나서 발목 잡힐 순 없지.’

서현의 본심을 알게 된 나는 어떻게든 호감도를 떨어뜨려야겠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아쉽긴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 세상 모든 여자를 먹을 순 없다. 설사 그것이 공략과 관련이 깊더라도.

"좋아. 기왕 들켰으니 솔직히 다 말할 게. 네가 추측한 게 맞아. 나 바람둥이야."

"역시···. 그럴 것 같았어요."

"그리고 앞으로도 한 여자에 정착하기는 어려울 거야."

"왜요?"

서현의 표정이 진지하게 바뀌었다. 그녀는 다른 여자를 만나지만 않으면 오늘 당장이라도 나에게 주겠다는 마음가짐이었으므로, 방금은 선언이 무척 충격적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너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 알지?"

"네."

"그 사람 섹스 중독이잖아. 정신과 감정을 받아 본 건 아니지만, 나 역시 비슷한 증상 같아."

"오빠도 아무 여자나 보면 막 자빠뜨리고 싶어요?"

"조금은?"

"그럼 저는요?"

"너?"

"그때 답사 끝나고 커피숍에서 만난 날. 나 따먹으려고 했던 거 아니에요?"

"그거야 모르지. 니가 주면 먹었겠지만, 안주면 어쩔 수 없는 거니까. 난 강제로 여잘 덮치는 타입은 아니야."

"흐음."

서현이 생각에 빠진 듯 팔짱을 끼고 나를 쳐다보았다.

지금쯤 꾀나 복잡한 심경일 것이다.

커피를 홀짝거린 서현이 다시 입을 열었다.

"지금도 저 먹고 싶어요?"

[주인님, 대답 잘하셔야 합니다. 유혹에 넘어가시면 큰 일 납니다.]

‘나도 알아. 아쉽지만 서현이는 여기서 손절 한다.’

"아니."

"이유는요?"

"네가 날 알아버렸잖아. 한 여자에 정착 못 하고, 여러 여잘 동시에 여럿 만나고···."

"그래도 상관없다면요?"

"아니. 이젠 내가 상관있거든."

"그게 무슨 말이에요?"

"까놓고 말할 게. 난 쿨한 사람이 좋아. 쉽게 말해서 엔조이 할 수 있는 여자를 찾는다고. 넌 그래 줄 수 있어?"

"아뇨? 전 제 남자가 다른 여자랑 바람 피면 둘 다 칼로 찔러 죽여 버릴 거예요."

‘여, 역시···.’

"그래서 힘들다는 거야. 넌 쿨하지 못하고, 난 쿨한 사람을 찾으니까. 그걸 몰랐으면 모를까, 이미 다 아는 상황에서 어떻게 합의점을 찾겠어?"

"혹시 제가 마음에 안 드는 건 아니에요?"

"서현이 네가 어때서?"

"전 희주보다 몸매도 안 좋고, 정음이나 연두처럼 예쁜 것도 아니잖아요. 그렇다고 막 색기가 넘치는 타입도 아니고."

"그런 게 무슨 상관이야? 너도 충분히 귀여워. 얼굴도 예쁘고."

"그래도 안 먹을 거죠?"

"아까도 말했지만 이건 그런 문제가 아니야."

"오빤 알면 알수록 나쁜 사람이군요."

"미안···. 이런 놈이라."

나는 자책하듯 고개를 떨구었다. 평행선을 달리던 대화도 어느덧 결론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때 서현이 나를 씹어먹을 듯 노려보며 또박또박 말했다.

"···그러니까 더 갖고 싶어지잖아요."

"뭐, 뭐라고?"

예상외의 대답에 나도 모르게 당황하고 말았다. 호감도를 떨어뜨리려고 모든 걸 솔직하게 오픈했는데도 서현의 눈은 더욱 호전적으로 불타고 있었다.

아차, 그녀의 집착을 너무 간과했구나!

"뺏고 싶어요. 다른 여자 말고 나만 보도록."

"서현아 그건···."

"오빠가 바람둥이건 난봉꾼이건 난 상관없어. 그만큼 매력이 있으니까 다른 여자들도 달려드는 거겠죠."

대체 뭘 어쩌려는 걸까?

서현의 생각을 예측하기 힘들었다.

그녀는 청개구리처럼 예상과 정반대로 행동했다.

"알겠어요. 오빠 마음 알았으니까 오늘은 그만 일어나 볼게요."

"서현아."

"염려 마요. 오빠가 걱정하는 일은 없을 테니까. 나도 그렇게 치사한 사람은 아니에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추문으로 얼룩지는 거 내가 보고 싶지 않으니까."

"아, 아니···."

"오빠와 내 생각이 많이 다르다는 건 알겠어요. 이해해요. 오빤 치료 못 할 병에 걸린 사람이니까. 내가 반드시 고쳐줄 거예요."

"······."

"커피 잘 마셨어요. 도훈 오빠."

서현이 꾸벅 고개를 숙이더니 두툼한 교재를 옆구리에 끼고 커피숍을 빠져나갔다. 갑작스러운 서현의 퇴장에 나는 한동안 멍하니 그녀의 뒷모습만 쳐다보아야 했다.

[과연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군요. 서현양을 정리하는 것은 생각외로 오래 걸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집착이 무섭긴 무섭군. 자기 혼자 좋아하고, 질투하다, 알아서 불타오르다니···.대체 나보고 어쩌라는 건지.’

[그래도 금일의 담판은 잘 마무리하신 것 같습니다. 최소한 지금의 서현양은 주인님을 골탕 먹일 생각은 전혀 없는 것 같으니까요.]

‘그건 그나마 다행인데, 어쩌면 앞으로가 더 피곤해질지도 모르겠어. 쟤는 도무지 속마음을 읽을 수가 없다니까?’

[아이템이 있지 않습니까?]

‘내 귀에 도청장치? 그것도 한두 번이지. 기껏 벌어둔 포인트를 서현이 속 마음 읽느라 다 날릴 순 없잖아.’

[하긴···. 그것도 그렇군요.]

‘흠. 그나저나 시간도 애매하게 남아버렸는데 뭘 하면 좋지? 커피값도 아까운데 여기서 공부나 할까?’

[그것도 좋은 생각입니다.]

나는 커피숍에 앉아 책을 꺼내 들었다.

***

-민주 : 오늘 저녁 10시에 콜 박스 사거리 괜찮지?

-지희 : 응. 근데 도훈이는 너랑 셋이서 보는 걸로 알텐데?

-민주 : 일단 같이 만났다 적당한 핑계 대서 빠질 게. 교수님이 메일로 일 시켰다고 하지 뭐.

-지희 : 그래, 그거 좋겠다.

-민주 : 너 근데 진짜로 도훈이 왜 다시 만나려는 거야? 토끼라고 동네방네 소문낼 땐 언제고?

-지희 : 그냥, 감이 좋았어.

-민주 : 감?

-지희 : 응. 왠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더라고. 예전엔 키만 멀대같이 컸지. 숫기 같은 게 전혀 없었거든. 근데 저번에 우연히 만났는데 완전히 사내새끼 다 됐더라니까?

-민주 : 그래서 다시 자빠뜨리게?

-지희 : 그건 뭐 상황 봐서. ㅎㅎ 근데 너 왜 자꾸 물어? 니가 혹시 도훈이한테 관심 있는 거 아냐?

-민주 : 무슨 소리야? 나 체육과 조교야. 넌 너네 학교 학생들하고 하고 싶든?

-지희 : 미쳤니? 애들하고 왜 해? 내가 아무리 동정남을 좋아한데도 가릴 건 가리는 사람이야. 덜 익은 풋고추 먹었다 전자발찌 찰 일 있어? 저번에 초등학생 꼬신 여선생 징역 5년에 평생 전자발찌 찬다더라. 으!

-민주 : 거봐. 나도 마찬가지야. 너가 학생하고 안 하듯, 나도 학생이랑은 생각 없어.

-지희 : 오키오키! 알겠어 나중에 보자. 그럼 난 야자 들어간다.

지희와 깨톡을 주고받은 민주가 거칠게 폰을 집어 던졌다.

쇼파까지 날아간 폰은 통통 튕기다가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화가 풀리지 않는지 민주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송지희 이 썅년. 꼭 그렇게 다 가져갔어야만 했냐!"

그녀는 오늘 밤 도훈과 지희 사이의 오작교가 될 자신의 운명을 한탄했다. 도훈이 적극적으로 원해 이루어진 것이긴 하지만, 이번만큼은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차라리 발가벗고 스트리킹을 하라던가, 남자 화장실에 숨어 들어가 자위를 하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그런데 하필 절친인 송지희와 도훈을 엮어주는 역할이라니···.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친구에게 도훈을 빌려준다는 게 영 마뜩 찮았다.

‘하여간 그 년도 욕심쟁이라니까.’

강민주와 송지희.

두 사람은 재학시절부터 죽이 맞는 단짝이었다.

유난히 색을 밝히던 두 사람은 서로의 확고한 취향 차이로 인해 나이트나 클럽을 갈 때 서로 남자 문제로 다투는 경우는 전혀 없었다.

쉽게 말해 민주는 물건이 실하고 섹스를 잘할 것 같은 남자를 좋아했고, 지희는 경험없는 동정남을 밝혔다. 따라서 민주가 만나는 남자들은 주로 마초적인 성향에 주로 등 빨이 좋은 편이었고, 지희는 미소년처럼 뽀얗고 순진한 남자들 위주였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취향도 조금씩 변하기 마련.

민주는 여전히 대물을 좋아했지만, 기왕이면 자신을 함부로 다뤄주는 극S를 더 선호했다. 그녀가 도훈에게 헤어나오지 못하는 이유는 도훈이 엄청난 대물이면서 동시에 지독한 사디스트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녀는 도훈이 자신에게만 그렇게 돌변한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지만.

민주는 지희와 발가벗고 뒹구는 도훈의 모습을 떠올리자 갑자기 몸이 후끈 달아올랐다. 어째서 자신의 것을 빼앗기는 장면에 그렇게 흥분되는지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었다.

반면 지희의 경우 여전히 선이 가는 미소년 동정남 취향이긴 했지만, 나이가 들면서 자신을 만족하게 해줄 남자가 하나 있었음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동정을 정복하는 기쁨도 좋지만, 허구헌날 번갯불에 콩 구워 먹는 듯한 섹스가 슬슬 물린 것이다.

그러다 우연히 만나게 된 도훈.

그는 과거의 숫기없던 시절과는 전혀 달랐다.

남자들은 군대를 다녀오고서야 어른이 된다든데, 전역한 도훈은 어느새 완연한 숫컷이 되어 있었다. 남자를 자주 만나다 보니 그쪽으로 예민해진 촉이 도훈의 실체를 어렴풋이 깨달았다.

야간 자율학습 감독을 하면서도 지희는 오늘 밤 만나게 될 도훈의 대물을 상상하며 흥분에 젖어들었다.

‘누나가 아다 때 준 우리 꼬맹이, 얼마나 잘 익었는지 한 번 맛 좀 봐볼까?’

두 사람의 상상 속에서 실컷 따먹히는 도훈은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커피숍에서 공부에 몰두해 있었다. 그는 갑자기 귀가 가려워 손가락으로 귓구멍을 후비며 중얼거렸다.

"누가 또 뒤에서 내 얘기하나? 왜케 귀가 간지럽지?"

***

커피숍에서 가볍게 빵을 주문해 저녁을 때웠다. 처음에는 독서실만 못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은근히 커피도 마시고 간식도 먹으면서 하는 공부가 괜찮은 것 같았다.

‘이래서 사람들이 까페에서 공부하나 보군. 기분도 전화되고, 은근 집중도 잘 되는데?’

[그거야 주인님이 어디서나 집중할 수 있는 성격이라서 그렇죠. 그나저나 슬슬 약속장소로 나가봐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러게. 민주가 아까 데려다준다고 연락 왔던데···.’

역시 양반은 아니군.

때마침 민주에게서 전화가 들어왔다.

-주인님 어디세요?

"어. 나 학교 까페에 있어. 혼자 공부하는 중이야."

-아···. 그럼 사범대 2관 주차장으로 오실래요? 제가 태우러가기엔 모양새가 좀···.

"그래. 바로 갈게."

짐을 챙겨 민주를 만나러 갔다. 민주는 차에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운전석 쪽 문을 열고는 민주에게 말했다.

"내려. 내가 운전할게."

"주, 주인님께서요?"

"응. 니가 해줄 일이 있거든."

나는 민주를 향해 사악하게 웃었다.

< 250. 좋은x, 나쁜x, 이상한x.-25- > 끝

ⓒ 성난불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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