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253화 (233/2,000)

< 235. 좋은x, 나쁜x, 이상한x.-10- >

따지고 보면 다음 미션은 굉장히 난도가 높은 편이다.

지정된 시간은 새벽 2시-5시 사이.

장소 또한 병동 내로 제한되어 있다.

안면만 겨우 있는 간호사를, 그것도 자신이 일하는 병원에서 공략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어째 헬스 트레이너 미션하고도 비슷한 것 같기도···.’

장소과 제한됐던 대표적인 미션은, ‘헬스녀를 공략하라’ 미션이었다.

당시도 송미나가 일하는 헬스장에서 자빠뜨려야 한다는 전제 때문에, 도훈은 상당한 시간 공을 들여야 했다. 거의 두어달을 끌면서 안면을 익혔고, 회식 술자리의 도움을 받은 것도 한몫했다.

‘거기다 그땐 아무도 없는 빈 헬스장이었고.’

그땐 장소만 제한되었기 때문에, 둘밖에 없는 빈 헬스장에서 거사를 치룰 수 있었다. 영업이 끝난 헬스장이 커다란 밀실이나 마찬가지였던 셈.

하지만 이번 야근병동 미션은 새벽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깨어있는 곳이다. 더구나 공략 당사자는 한창 근무 중인 상황.

간호사 박지애가 일전 희원 보살처럼 음기가 강하고 특별히 굶주린 처지가 아니라면, 당일 현장에서 자빠뜨리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도훈이 이런저런 제한 조건을 떠올릴수록 난처함이 더해갔다.

‘와, 미션 임파서블인데 이건.’

[네?]

‘확률이 너무 낮다고. 무슨 미션이 이렇게 빡세? 보상이 뭐였지?’

[성공 보상은 500포인트와 응급 처방 킷 두가지입니다. 응급 처방 킷은 신체 손상률 20% 미만의 부상에 대해 즉각적인 회복을 시켜주는 소모성 아이템이구요.]

‘쉽게 말하면 힐링 포션같은 건가?’

[다른 시스템에선 포션의 형태로 존재할 수도 있겠군요. 외형은 시대배경을 따라가기 마련이니까요.]

‘내가 무슨 목숨 걸고 싸우는 전사도 아니고···. 그닥 필요한 아이템도 아닌 것 같은데 난이도가 이렇게 높은 이유를 모르겠군.’

[물론 당장 요긴하지 않을 수는 있습니다만, 값어치 있는 아이템인건 분명합니다. 또 미션의 난이도가 꼭 보상으로만 결정되는 것도 아니고요.]

‘아니라고?’

이제껏 미션과 보상은 정비례관계였다.

미션의 난도가 올라갈수록 보상 또한 커지는 식.

[야근 병동 미션이 어려운 이유는 주인님의 플레이어 레벨과도 관련 있습니다.]

‘내 레벨?’

[네. 일전에 말씀 드렸듯이 주인님의 경험치가 쌓여갈수록 미션의 난이도는 점진적으로 상승합니다. 가령 예를 들어 어느 날 주인님이 판타지 세상에 떨어졌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처음에는 최하급 몬스터인 슬라임만 잡아도 퀘스트 보상이 따라오겠죠. 하

지만 점차 요구하는 몬스터의 난이도는 올라가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플레이어 시스템에선 미션의 난이도가 레벨링과 연동되기 때문입니다.]

‘오호···. 그렇담 이제 하수2레벨까지 올랐으니 다음 번 주어지는 미션은 더 어려울 수도 있다는 건가?’

[그렇죠. 어쩌면 미션을 실패하는 일도 생길수도···.]

‘실패라고?’

[게임을 떠올려 보십시오. 언제나 이기는 게임이란 게 존재할 수 있을까요? 현재까진 미션 성공률이 100%에 이르지만, 점점 성공률은 감소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 야근 병동 미션이, 실패하는 최초의 미션이 될지도 모르겠군요.]

‘흐음, 실패는 꿈에도 생각 안 해봤는데···.’

로시가 들려 준 얘기에 도훈의 머릿속이 더욱 복잡해졌다.

따지고 보면 구구절절 옳은 이야기다.

미션 수락을 거부하거나 실패한다고 패널티가 주어지진 않는다. 그 말인즉슨 미션이라는 것이 실패를 염두해 두고 설계된 시스템이란 소리다.

미션이 지금껏 성공을 거듭 할 수 있었던 것도, 단순히 플레이어 레벨이 낮았기 때문일지도···.

실제 가장 최근에 있었던 ‘미망인을 공략하라.’ 미션조차 두 스님과의 기연이 아니었다면 심각한 내상을 입고 실패했을 테니까. 고심하던 도훈은 이불을 그대로 이불을 뒤집어썼다.

‘에이, 잠이나 잘래. 상대에 대한 정보도 부족한 마당에 고민한다고 뾰족한 수가 나오지도 않을 것 같고. 일단 내일은 닥치는 대로 스킬을 퍼부어 보는 수밖에···.’

[그게 최선일지도 모르겠네요. 설혹 실패한데도 너무 스트레스 받진 마십시오. 때론 시련이 더 큰 성장을 주기도 하는 법이니까.]

‘그래. 최선을 다하고 좋은 결과를 기다려 봐야지.’

[그럼 안녕히 주무시길.]

도훈은 복잡한 생각을 떨쳐내고 잠에 빠져들었다.

***

다음날 수업은 정신없이 지나갔다.

도훈은 모든 신경을 저녁에 있을 미션에 집중했다.

쓸데없이 기운을 빼지 않기 위해 문어다리 어플로 최대한 여자들의 동선을 피해 다녔고, 스킬 또한 쿨 타임을 풀로 채우며 아꼈다.

특히 이번 미션에서 가장 요긴한 스킬로 ‘싸이코메트리’와 ‘이지선다’ 꼽았다.

‘잘 모르는 상대를 공략하기 위해선 싸이코메트리가 최고지. 정보창이 현 상태를 조명한다면, 싸이코메트리는 과거를 들추어 주니까. 또 이지 선다는 실패에 대한 부담을 줄일 수도 있고.’

도훈은 두 스킬을 최대한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또한 필요하다면 아이템 구매도 아끼지 않을 생각이었다.

‘어차피 미션에 성공하면 500포인트가 들어 올 거야. 추가로 아이템까지 얻게 되니 투자할 가치는 있겠어.’

그렇게 미션을 생각하며 대비책을 구상하는데 강민주에게서 전화가 왔다.

-주인님 내일 저녁 시간 괜찮으세요?

"내일?"

-네, 시간되면 같이 저녁 한 끼 하게요. 지희도 같이 보고.

‘민주가 지희랑 약속을 잡은 모양이군.’

[슬슬 복수의 시간이 다가오는 군요.]

‘일단 그것도 중요하긴 한데 오늘은 미션에만 집중해야지. 내일일은 내일 생각하기로 하고.’

"그래, 수고했어. 내일 몇 시에 어디서 볼 건지 문자 남겨놔. 나 지금 독서실이니까."

-알겠어요. 주인님.

잠시 밖으로 나와 통화를 마치는데 누군가 뒤에서 말을 걸어왔다.

"오빠? 여기서 뭐해요?"

"어라 너는?"

독서실 밖 휴게실에서 만난 사람은 서현이었다.

‘얘가 여긴 웬일이지? 분명 두 시간 전까진 동선상에 겹치지 않을 것 같아 보였는데···.’

[충돌 경보가 아닌 이상 실시간 소재파악이 어려운 점은 있습니다. 아마도 공부를 하러 온 게 아닐까요?]

‘1학년이 수업 마치고 도서관에 공부를 하러 왔다고? 그게 말이 돼나?’

도훈은 의아한 표정으로 서현을 살폈다.

그녀의 손에는 두꺼운 전공서적이 들려있었다.

‘아, 쟤 과 수석이라고 했지? 그러면 납득이 가네.’

"다음 주에 쪽지 시험이 있대서 공부하러 왔어요. 오빠 여기서 공부하세요?"

"응, 뭐 시간 될 때 가끔···."

"엄청 열심히구나. 대단해요."

"학생이 공부하는 게 뭐 별거라고. 자린 잡았니?"

"아뇨. 방금와서요. 근데 내일 무슨 약속 있으세요?"

서현이 천연덕스럽게 물어왔다. 우연히 통화 마지막 내용을 엿들은 모양이었다.

"아는 친구 좀 만나려고."

"아, 친구였구나···. 전 되게 명령조로 말씀하셔서 후배랑 통화하는 줄 알았어요."

도훈은 왠지 취조당하는 느낌이 들었지만 기분 탓이거니 했다. 서현이 자신을 감시할 이유도 없거니와, 그녀에게 스킬을 쓸 여유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조용히 도서관에서 공부하다 병원으로 이동하려고 했더니만···.’

계획이 살짝 틀어진 감은 있었지만, 큰 문제는 아니었다.

도서관에서 학과 후배를 만난 것 정도는 일상적인 일이니까.

"그래 아무튼 공부 열심히 해서 보기 좋네."

"히히. 그럼 열심히 하는 후배 음료수나 한 잔 사주세요."

"음료수?"

"네. 저기 자판기에서."

"그래 뭐. 음료수 정도야."

도훈은 오늘따라 유난히 친근하게 구는 서현이 낯설었다.

‘그닥 붙임성 있는 성격 같진 않더니만···. 애도 친해지면 잘 들러붙는 스타일인가 보군.’

도훈은 잠시 머리도 식힐 겸 휴게실 앉아 음료를 뽑았다.

"뭐 마실래?"

"음, 전 복분자요."

서현은 특이하게도 복분자 음료를 골랐다.

‘얘가 복분자 뜻은 알고 마시는 걸까?’

도훈은 속으로 피식 웃으며 복분자 음료수를 뽑아주었다. 두 사람은 잠시 휴게실 의자에 앉아 담소를 나누었다.

"취향이 특이하네. 요새 애들은 커피 좋아하던데."

"그래요? 전 이런 게 좋던데. 석류나 매실 같은. 왠지 마시면 몸에 좋을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 요강을 뒤집을 힘이 솟겠지. 크크.’

도훈이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는데 서현이 뜬금없이 자신이 마시던 음료를 건넸다.

"오빠도 한번 마셔 보실래요?"

"어?"

"이거 마시면 진짜 기운이 나더라고요."

‘얘가 일부러 이러나?’

도훈은 점점 의심스러운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마치 알고서 장난을 치는 듯한 느낌이 든 것이다.

‘하긴 생각해보니 서현이도 생긴 거랑 다르게 발랑 까졌었지? 처녀도 아니고 말이야.’

"아냐 됐어. 난 커피나 마실래."

"흠, 힘 쓸 일 많으실 것 같은데···."

"···뭐라고?"

"아니에요, 아무것도. 아무튼 음료수 고마워요 선배. 그럼 전 공부하러 가볼게요."

서현이 꾸벅 인사를 마치더니 쪼르르 도서관으로 사라졌다.  도훈은 그녀의 뒷모습을 쳐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뭐지? 마지막 농담은 좀 과한 거 아냐?’

[확실히 그렇군요. 혹시 짚이는 데가 있으십니까?]

‘글쎄. 서현이가 보는 것처럼 마냥 순진한 성격은 아닌 건 알지만···. 저렇게 대놓고 도발할 줄은 몰랐네.’

[일단 요주의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봐도 고의적인 접근처럼 보였거든요.]

‘아···. 스킬로 확인 해보고 싶긴 한데 오늘은 자중해야 하니.’

도훈은 찝찝한 마음을 뒤로하고 시계를 확인했다.

어느덧 슬슬 병원으로 이동해야 할 시간이었다.

‘일단 오늘 목표에만 집중하자.’

[넵.]

한편 도훈을 도발한 서현은 자리에 앉아 메모지에 뭔가를 적기 시작했다.

-수업 끝나고 주로 독서실에 들름.

-창가가 보이는 130번에서 150번 좌석을 선호함.

-내일도 여자와 약속이 있음.

정리를 끝낸 서현은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혼자 키득거렸다.

‘히히. 마치 이러니까 연예인 사생 팬 된 기분인데? 아까 당황하는 표정 보니 골리는 재미가 있겠어. 이도훈. 넌 이제 내 손아귀에 갇힌거야.’

그녀의 표정을 누군가 봤다면 전형적인 스토커의 얼굴이라 부를 수 있었을 것이다.

***

간호사의 3교대 근무는 데이, 이브닝, 나이트를 말한다.

그중 나이트의 근무시간은 22:00부터 다음날 06:00시.

인수인계를 고려, 1~2시간 전에 출근하는 보통이기 때문에 나는 가볍게 끼니를 때운 뒤 저녁 8시부터 병원 앞에서 죽치고 있었다. 연락처를 받긴 했지만 무턱대고 전화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나 언제 출근할지도 모르는 사람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은 무척이나 지루한 일이었다. 발치에는 피다 버린 담배 꽁초만 수북이 쌓여갔다.

‘젠장. 이럴줄 알았음 그때 정보 창으로 들여다볼걸. 정보창에 띄운 뒤 문어다리 어플을 이용하면 동선을 확인할 수 있는데 말이야.’

[어쩔 수 없죠. 그땐 일이 이렇게 될 것은 예상 못했으니까요.]

‘미래를 내다보는 방법은 같은 건 없는 건가?’

[있습니다.]

‘엉? 진짜로?’

[네. 스킬로도 존재하고 아이템을 이용하기도 하죠.]

‘헐. 그럼 예언자들이 모두 플레이어 였단 말이야? 노스트라다무스같은···’

[노스트라다무스는 맞습니다. 그는 삼지안(三只眼)이라 불리는 미래를 보는 눈을 스킬로 부여받은 플레이어였습니다. 그 스킬을 이용해 많은 것들을 예측했죠. 물론 말년에 이르러선 능력을 많이 상실했지만요. 하지만 나머지는 사기꾼이 가능성이 더 큽니

다.]

‘왜?’

[예언 능력이 스킬로 존재할 경우 쿨타임은 길어도 사용하는데 부담은 없습니다. 하지만 아이템은 말도 안되게 비싸거든요. 시스템에 부담을 많이 주는 물건일수록 그 값어치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높아집니다.]

‘하긴 그렇겠지. 미래를 미리 아는 것만큼 위험한 능력은 없으니.’

한창 로시와 쓸데없는 잡담을 나누고 있는데 마침 반대편에서 눈에 익은 여자가 걸어왔다. 커다란 가슴을 출렁이며 걸어오는 박지애였다.

‘캬-. 진짜 최강의 씬스틸러네. 안쳐다 볼 수가 없게 만들어.’

[주인님, 침 그만 흘리시고 어서 작업 시작하시죠.]

‘그래야지. 30분을 기다렸는데···.’

나의 전략은 지애를 우연히 만나는 것처럼 위장하는 것이었다. 또한 지금 정보창을 쓰면 공략 시간대인 새벽 2-5시 사이에 한 번 더 쓸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어? 그때 그 간호사분?"

"누구? 아! 안녕하세요! 오랜만이네요."

나를 본 지애가 반갑게 웃었다. 언제 보아도 사람 좋은 인상이다. 천성이 무척 착한 여자같다.

"그때 환자분한테 연락을 받으셨어요?"

"네? 아뇨 별 다른 연락은···."

"정말요? 이상하다, 꼭 사례한다고 연락처 달라고 하더니···. 아, 회장님이 그날 급한 일로 변호사가 찾아왔었어요. 유산 상속 뭐 그런 문제 같던데 어쩌면 그 일로 정신이 없으셨을 수도 있겠네요."

"그분이 회장님이셨어요?"

"네. 건강 문제로 일선에선 물러나시긴 했는데···. 아, 죄송해요. 원래 환자 정보는 말하면 안 되는 건데 전 연락을 받은 줄 알고."

"아니에요. 괜찮아요. 꼭 사례 받으려고 한 것도 아닌데요 뭘."

"근데 여긴 어쩐 일로 오셨어요?"

"아···. 아는 동생 병문안 왔어요."

나는 대화를 나누며 로시에게 명령해 정보창을 띄웠다.

< 235. 좋은x, 나쁜x, 이상한x.-10- > 끝

ⓒ 성난불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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