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9. 깊은 밤, 달은 지고-17- >
***
"김 보살은 집에 안갈텨?"
"네, 오늘 밤엔 절 좀 드리고 갈까 해서요."
"참말로 지극 정성이네 그랴."
"먼저들 내려가셔요. 밤길 조심하시고요."
"우덜같은 쭈그렁 할망구가 뭐시 무서울 게 있겄능가. 그라믄 먼저 갈랑께 공양 잘하고 오드라고 잉."
뒷정리를 끝낸 불목하니들이 절간을 떠나자 홀로 남게 된 희원은 간만에 기지개를 켰다.
"하아, 설거지를 너무 오래 했나? 몸이 찌뿌둥하네."
양 팔꿈치를 손바닥으로 감싼 체 머리 위로 쳐들자 가슴이 불룩 튀어나왔다. 봉긋한 실루엣은 20대 때보단 처지긴 했지만, 여전히 매력적이었다.
한껏 기지개를 켠 희원은 고된 노동으로 어깨가 결렸는지 자기 손을 들어 반대쪽 어깨를 토닥였다.
발우 공양에 쓰이는 식기는 스스로 씻는다지만, 그것을 제하더라도 설거짓거린 차고 넘쳤다. 한 시간을 넘도록 쪼그려 앉아 그릇을 씻었으니 온몸이 쑤시는 건 당연한 결과. 제 손으로 힘겹게 어깨를 주무르던 희원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누가 시원하게 안마나 해줬으면 좋으련만···."
"어깨 주물러 드려요?"
"어머나!"
불쑥 들려온 사내 목소리에 희원이 화들짝 놀랐다.
절간의 주방이라 불리는 후원은, 스님들도 드나들기를 꺼려하는 금남의 공간. 희원이 뒤를 돌아보니 어느새 다가온 도훈이 서 있었다.
"도훈 학생?"
"네."
"여, 여긴 어쩐 일로?"
예상치 못한 방문에 희원이 자기도 모르게 말을 더듬거렸다. 두 볼은 수줍은 많은 소녀의 그것처럼 발그레해졌다.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다급히 정리하는 모습에선, 좋아하는 남자에게 잘 보이고 싶어 하는 심리가 엿보였다.
‘내, 내가 왜 이렇담? 저 총각이 대체 뭐라고···.’
"혹시 커피 좀 얻을 수 있을까 해서요. 절에 자판기가 없다는 걸 깜빡했지 뭐에요? 이럴 줄 알았음 템플 스테이 오기 전에 사 들고 올걸."
"커피? 커피는 여기도 없는데 어쩐다···."
차는 많았지만, 커피는 없었다. 스님들이 즐겨 마시지 않는 종류였기 때문이었다. 고심하던 희원이 갑자기 뭔가 떠오른 듯 말했다.
"아! 그렇지. 여기 일하시러 오는 할머니들이 식후에 타 먹는 믹스커피가 있는데 그거라도 타줄까?"
"정말요? 그래 주시면 고맙죠. 지금 엄청 땡기거든요."
"금방 물 올릴 테니 잠시만."
희원이 서둘러 찻주전자에 물을 올렸다. 도훈은 돌아선 그녀의 뒤태를 훔쳐보며 군침을 삼켰다.
‘저 보살님은 얼굴도 얼굴인데, 몸매가 더 예술이란 말이지? 바짝 힙업 된 엉덩이 좀 봐? 20살 처녀라고 해도 믿겠다.’
[너무 노골적으로 쳐다보시는군요, 주인님. 자중하시죠.]
‘그, 그랬냐?’
"참, 커피 물 끓는 동안 제가 어깨라도 주물러드릴까요? 아까 보니 많이 불편해하시던데."
"괘, 괜찮아. 그냥 혼잣말한 거야."
"사양 마세요. 맛있는 저녁도 해주시고, 이렇게 커피까지 얻어먹는 데 사람이 염치가 있어야죠."
"그래도 남사스럽게···."
"에이, 뭘 그런 거 가지고. 아까 큰 스님도 제가 해드리니까 엄청 좋아하시더라고요. 그리고 저 안마 잘해요."
"그, 그래?"
"잠시만 이쪽에 앉아보세요."
도훈이 주방에 있던 조그만 의자를 가리켰다.
거듭되는 권유에 희원이 마지못한 척 의자에 앉았다.
"그럼 잠깐만···."
도훈은 다소곳이 의자에 앉은 희원을 보며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흐흐, 뭐니 뭐니해도 남녀가 가까워지는 덴 살 맞대는 게 최고지. 적당히 자극 좀 줘 볼까?’
어깨에 손을 얹어 힘을 주어 주무르자, 희원이 금방 앓는 소리를 냈다.
"아, 아야. 살살."
"어깨가 생각보다 많이 뭉치셨네요?"
"주말엔 어쩔 수 없어. 외부 손님들이 많이 오는 날이라."
"손으로 주물러선 턱도 없겠어요. 잠깐만 팔꿈치로 누를게요."
도훈이 팔꿈치를 수직으로 세워 어깨 위로 올리더니 지긋이 원을 그리듯 눌렀다. 짜르르한 통증과 함께 시원한 감각이 밀려오자 희원은 자기도 모르게 입에서 신음 비슷한 소릴 냈다.
"아, 아앙."
"아프세요?"
"아, 아니 시원해서 그래."
"다행이네요."
팔꿈치로 어깨를 누르는 동작은 어쩔 수 없이 몸을 밀착시켜야 했다. 도훈의 탄탄한 가슴이 등판에 바짝 붙자 이를 의식한 희원이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하아···. 몸이 자꾸 닿으니까 야릇한 생각이···.’
"흐읏."
"평소 마사지 좀 받으셔야겠어요. 워낙 근육이 뭉쳐있어서 쉽게 풀리질 않네요."
"그러니?"
"뒷덜미랑 양쪽 어깨가 딱딱히 뭉쳐있어요. 손을 좀 넣어도 될까요?"
"으, 응? 뭐라고?"
"아니 어깻죽지를 손으로 잡아 눌러야 할 것 같은데 옷 때문에 걸리적거려서요."
"아, 아니 그래도 그건···."
같은 마사지라도 옷 위로 주무르는 것과 맨살이 직접 닿는 것엔 큰 차이가 있었다. 그러나 도훈이 원체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통에 희원은 자신이 너무 유난을 떠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도훈 학생은 순수한 마음으로 날 위해주는데 내가 너무 안 좋은 생각을 품고 있는 걸까? 호의를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니까.’
"그게 편할 것 같음, 그렇게 하렴."
"네."
도훈은 이제 목덜미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그리곤 과감한 동작으로 어깨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예상은 했지만 젊은 총각의 맨살이 직접 피부에 닿는 느낌은 너무나 자극적. 호흡이 가빠지더니 싶더니, 잠시 후 허벅지 깊은 곳에서 간질거리는 반응이 왔다.
‘서, 설마···.’
그것은 참으로 오랜만에 느껴 본 감각이었다.
정절을 지키려 스스로 봉인한 기관의 뜬금없는 반응에 희원은 자기도 모르게 허벅지를 오므렸다.
‘흐읏, 내가 오늘 왜 이러지 정말?’
따지고 보면 단순한 안마일 뿐이다.
비슷한 또래도 아니고 한참 어린 대학생이 감사의 의미로 해주는.
다만 그녀가 마음속으로 도훈을 어엿한 사내로 인식하고 있다는 게 문제였다.
‘하필 그걸 봐 가지곤···.’
그녀는 우연히 도훈의 양물을 목격한 탓으로 돌렸다.
보통 사람의 두 배는 큼직한 도훈의 대물이 그녀의 매말랐던 가슴에 불을 지폈다. 듬직한 몸에 어울리는 거대한 대물은 경험 있는 여자라면 누구라도 궁금할 법한 충격적인 크기였다. 희원이 슬슬 몸을 비트는 것을 본 도훈이 뒤에서 음흉한 미소를 지었
다.
‘흐흐. 예상대로 예민한 타입이구나. 맨살이 닿기만 했는데 금세 뜨거워지는 여자라니. 거기가 벌렁벌렁 하나 보지?’
[조심하십시오. 곁 불을 쬐다 화상 입는 다 했습니다.]
‘로시, 너 아까부터 겁주는데 그래 봐야 잦이 박으면 꼼짝 못 하는 건 매한가지라고.’
[그래도 방심은 금물입니다. 영상으로 보시지 않았습니까? 남자의 정을 빼앗는 데 타고난, 한마디로 요물 같은 여인입니다. 각오를 단단히 하셔야 할 겁니다.]
‘흥. 명기인 육정음도, 잦이분쇄기 송미나도 끝내 쓰러뜨렸어. 제아무리 남편 잡아먹는 보살이라 한들 대물 앞에선 어림없지.’
도훈의 손은 이제 슬금슬금 윗가슴을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쇄골에 붙은 근조직을 풀어준다는 명분이었다.
"이쪽이 특히 많이 뭉치셨네요."
꾹꾹-
"아···."
마사지하는 부위가 살짝 미묘하다는 것을 눈치챘지만, 희원은 도훈이 민망할까 봐 잠자코 있었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윗가슴을 어루만지는 통에 자기도 모르게 젖꼭지가 단단해졌다. 실로 오랜만에 맞이하는 남자의 손길은 그녀를 점점 흥분상태로 몰아갔
다. 게다가 늦은 시각, 누구도 찾지 않는 후원에 단둘이 있다는 점이 더욱 흥분을 배가시켰다.
‘하아···, 이게 무슨 주책이람. 이러다간 정말 흠뻑 젖어버리고 말 텐데.’
축축해지는 팬티의 낯선 감각이 그녀의 정신을 환기시켰다.
때마침 물 주전자가 끓기 시작하면서 마개 사이로 삐- 하는 신호음이 들려왔다. 희원은 잽싸게 몸을 빼며 안마를 중단했다.
"도훈 학생. 이 정도면 충분해. 고마워."
"어? 아직 뭉친 곳이 많은데···."
"괜찮아. 도훈 학생도 피곤하니까."
더 이상 살을 맞댔다간 사달이 날 것 같단 예감에 희원이 먼저 물러섰다. 아무리 몸이 달았기로서니 아직 대학생에 불과한 그에게 주책 맞은 모습을 보일 순 없었다. 이는 그녀가 10년간 지켜온 절개를 깨뜨리는 행위자, 죽은 남편의 의리를 저버리는 일이
기도 했다.
‘몸이 하자는 데로 따를 순 없어. 마음 단단히 먹어야 해.’
그녀를 흥분시키려던 도훈은 결정적인 순간에 몸을 빼는 희원의 모습에 안타까워했다.
‘쳇. 조금만 더 애무했으면 넘어갔을 것 같은데···.’
[확실히 호락호락하지 않는군요. 오랜 세월 불경 공부를 통해 수양을 많이 한 모양입니다.]
‘이럴 거면 아까 방에 들어와서 거긴 왜 훔쳐봤데?’
[자는데 몰래 훔쳐보는 거랑, 맨 정신으로 정을 주고받는 차이랄까요?]
‘이상해. 호감도는 충분한 느낌인데, 여전히 모자란 걸까?’
[사람에 따라서 호감도 80을 넘어도 공략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주로 종교적인 신념이나 가치관에 따라 혼전순결을 지키는 부류들이 그렇죠.]
‘그럼 희원도 그런 케이스라는 거야? 처녀가 아닌데도?’
[그녀의 경우 혼전순결이라기보다 정절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가 강해서겠죠. 순간의 유혹으로 흔들긴 쉽지 않은 상대입니다.]
‘흠, 그렇다고 술을 맥일 수도 없는 노릇이고.’
[정보창 맨트가 있지 않습니까? 호감도를 더 높여 보십시오.]
‘멘트가 뭐였더라?’
[언제까지 남편만 그리워할 거예요, 입니다.]
‘결국, 죽은 남편에 대한 부채의식을 덜어내는 게 포인트구나. 멘트가 너무 직접적이라 맥락 없이 던졌다간 오히려 역효과가 날 거야. 좀 더 분위기를 몰고 가야겠어. 일단 장소부터 옮기자.’
호감도 증진이나 단순한 애무로는 희원을 자빠뜨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도훈이 작전을 변경했다.
"커피 잘 마실게요. 감사합니다."
"아니야. 내가 더 고맙지. 안마도 해줬는데."
"참, 천 배 올리는 건 언제 하실 거에요?"
"여기 정리 끝나는 대로. 도훈 학생도 108배 올린다지 않았어?"
"네. 근데 바람 좀 쐬다가 하려고요. 야경도 한 컷 찍어야 하고."
"야경? 이 시간에?"
"리포트 표지로 쓸 전경 사진이 필요해서요. 낮에 암자 위로 올라가 찍어두긴 했는데, 연등 켜놓은 모습을 보니 야경이 더 멋있을 것 같아요. 혹시 가는 길 좀 알려주실래요? 제가 밤눈이 좀 어두운 편이라."
"내가?"
"네. 부탁드려요."
암자에 오르는 길은 도중에 조명이 없어 길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발을 헛디딜 수 있었다. 비탈이 험한 곳이라 까딱 굴러떨어졌다간 큰 사고로 이어질 것이다.
‘마음씨 착한 도훈 학생이 다쳐선 곤란하니까···.’
"그래, 그럼."
두 사람은 잠시 후 절 뒤편 비탈을 오르기 시작했다.
***
암자까지 오르는 길은 쉬지 않고 가면 10분 이상 올라야 했다. 핸드폰 후레쉬로 어둠을 밝히며 걷는데, 조명이 모자란 탓에 자연스레 바짝 붙어 갈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고요한 가운데 이따금 들리는 올빼미 소리가 정적을 깨뜨렸다. 그때마다 희원이 몸을 움찔거리며 도훈의 팔꿈치에 가슴을 부딪쳐 왔다. 물컹거리는 감각에 도훈의 물건에도 조금씩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흐흐, 가슴 탄력 죽이고.’
"엄마야!"
별안간 두 사람의 눈앞에 휙 뭔가 스쳐가자 희원이 까무러치며 비명을 질렀다. 도훈이 후레쉬를 비추니 조그만 산짐승이 이었다.
"다람쥐네요. 근데 보살님 되게 겁이 많으시네?"
"으,응, 어렸을 때부터 깜짝깜짝 잘 놀라는 편이야."
"그러고 보면 보살님은 어렸을 때 엄청 미인이셨을 거 같아요."
"어머 얘가 별소리를."
"지금도 미인이시잖아요."
"민망하니까 그런 말 마."
희원이 만류했지만 도훈은 일부러 들으라는 식으로 계속 떠들었다.
"아니에요. 저 진짜 보살님 처음 봤을 때 아가씬 줄 알았잖아요."
"어휴, 얘가 자꾸. 나 결혼도 했던 아줌마라니까?"
"전혀 그렇게 안 보여요."
"그렇게 봐주면야 고맙지만···."
희원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겨우 하룻밤 만에 끝나버린 결혼 생활.
알콩달콩 살을 맞대고 살아보지도 못하고, 평생의 한을 남긴 체 남편은 떠나버렸다.
남편의 죽음을 자책하며 10년 동안 명복을 빌어왔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일찍 죽은 남편이 원망스럽게 느껴졌다.
남편이 조금만 건강했더라면.
남편의 나이가 조금만 더 젊었더라면.
하필 이름도 똑같은 도훈이 옆에 붙어 있으니 그런 생각이 더 했다. 남편이 도훈처럼 어리고 건장한 남성이었다면 결코 그런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 같았다.
‘남편이 이 아이처럼 크고 단단한···. 앗, 내가 또 망측한 생각을···.’
깊은 밤 산길을 단둘이 걸어서였을까?
아니면 아까 어깨를 주물러 줄 때 여운이 남아서였을까?
불쑥 치솟는 음기에 희원의 몸이 다시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코앞에서 보았던 그의 커다란 양물이 두 눈에 아른거리는 것 같았다.
살짝 흥분한 희원이 도훈을 향해 물었다.
"도훈 군은 학교에서 인기 많지?"
"제가요?"
"응, 키도 훤칠하고 얼굴도 잘생겼으니까. 여자애들 많이 따를 것 같아."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근데 인기 그닥이예요."
"정말? 전혀 그렇게 안 보이는데?"
"제가 워낙 운동만 좋아해서 그럴지도."
"운동하는 남자가 어때서? 건강하고 힘도 세고···."
‘그리고 밤일도 잘할 거고.’
희원이 애써 뒷말을 삼켰다.
"조금 무식해 보이나 봐요."
도훈의 푸념에 희원이 혀를 끌끌 찼다.
"쯧쯧. 여자애들이 아직 어려서 남자 볼 줄을 모르네."
< 219. 깊은 밤, 달은 지고-17- > 끝
ⓒ 성난불기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