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5. 깊은 밤, 달은 지고-3- >
주지승의 법명은 혜공.
오랜 수행 끝에 남다른 안목을 갖추게 된 노승에게는, 사람의 진면목을 단숨에 간파해내는 용한 재주가 있었다. 그는 도훈을 보자마자 그에게서 풍겨 나오는 이색적인 기운을 알아차렸다.
‘···범상치 않은 기운이로다. 약관을 겨우 넘긴 청년에게 어찌 이런 강렬한 기운이 뿜어져 나온단 말인가?’
"우연히 책에서 본 내용을 떠들었을 뿐입니다. 주지 스님께서 계시는 줄 알았으면 말을 삼갔을 텐데···. 부끄럽습니다."
겸양을 표하는 도훈의 모습에 혜공은 더욱 호기심이 피어났다. 겉모습 너머 내면을 꿰뚫는 통찰력의 소유자인 노승에게, 도훈이란 존재는 신비함 그 자체였다.
‘기이하구나. 이건 마치 노회한 영혼이 젊은 몸뚱이에 붙들려 있는 형국이지 않은가? 참으로 귀신이 곡할 노릇이로고.’
자신을 뚫어지라 쳐다보는 주지승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는지 도훈이 살짝 눈을 내리깔았다.
‘뭐지? 왜 저렇게 쳐다보는 데? 혹시 뭔가 눈치챈 건가?’
[아무래도 신통한 도력을 갖춘 스님 같습니다. 단숨에 주인님의 남다른 점을 간파했군요.]
‘도력? 진짜로 그런 게 있어?’
[당장 주인님께서 스킬을 사용하시면서 도력의 진위를 부정하십니까?]
‘나야 플레이어니까 그렇다지만서도.’
[분명 스킬은 플레이어에게만 허락된 신의 권능이 맞습니다. 하지만 평범한 인간이라 할지라도 오랜 수련을 통해 스킬과 유사한 능력을 갖추는 것이 가능합니다.]
‘그게 정말이야?’
[실제로도 수많은 기인이사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지 않습니까? 그들이 모두 플레이어였던 것은 아니니까요.]
‘하긴, 세상엔 별의별 사람이 다 있긴 하다만은···.’
[제 판단에 저 노승은 아무래도 신안(神眼)의 특성을 개화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신안이라니?’
[인외의 것을 볼 줄 아는 독특한 눈을 의미합니다. 대체로 신기가 영험한 무당들에게 주로 보이는 특성이죠.]
‘헐, 그럼 내 정체를 알 수도 있다는 뜻이야?’
[눈치를 봐선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만···. 일단은 몸을 사리는 편이 좋을 것 같네요.]
그러나 도훈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농대생 주찬이 주지스님에게 아는 체를 하는 것이었다.
"스님, 저 기억하시죠? 작년 석가탄신일 때 어머니랑 한번 인사드렸었는데···."
"알다마다. 자당께서는 별고 없으시고?"
"항상 정정하시죠."
"그래, 여긴 어인 일로?"
"대학 친구들하고 템플 스테이 왔어요. 과제도 할 겸 해서요. 아까 법현 스님은 뵙고 왔는데, 주지 스님껜 미처 인사를 못 올렸네요. 죄송해요."
"아니네. 종단에 출타했다가 이제 막 돌아오는 길일세. 참, 여기 서서 이럴 게 아니라 안으로 들어가세나. 차라도 한 잔 대접해야겠구먼."
"정말요? 감사합니다."
"친구분들께서도 같이하지."
"고맙습니다."
다들 주지 스님의 차 대접을 환영하는 분위기였지만, 도훈은 찝찝한 기분에 슬며시 입술을 깨물었다.
‘에이씨, 저 자식은 괜히 오지랖만 넓어서.’
그러나 다른 사람도 아닌, 이 절 주인의 환대를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 도훈이 똥씹을 표정으로 뒤따랐다.
***
"불교 미술이라고?"
"네. 교수님이 꼭 눈으로 직접 둘러보고 사진도 찍어 오라고 해서요."
"허허, 서울 근교에도 좋은 절이 많을 텐데···. 누추한 곳까지 힘들게 찾아왔구먼, 그려."
"아니에요. 이 절이 얼마나 좋은데요."
"맞아요. 아까 사진 찍으려고 둘러보는 데 정말 예뻤어요."
"와타시모 소우 오모이마스(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앗, 쓰미마셍. 제가 한국말이 서툴러요."
"하하. 괘념치 마시오. 한데 이 처자는···."
"료코라고 일본 교환 학생이에요."
"와따시와 료코 데스."
"아, 료코상 이로군. 불가에선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하지.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다른 분도 소개를 받으면 좋겠군."
"제가 해드릴게요. 저쪽은 체육교육과 학생들인데 순서대로 태영이, 정음이, 그리고 도훈이라고 해요."
주찬의 소개를 받은 체육과 학생들이 하나둘 꾸벅 고개를 숙이며 예를 표했다. 혜공은 마지막으로 소개받은 도훈에게 좀 더 긴 시간 시선을 머물렀다. 도훈의 혜공의 집요한 눈빛이 영 거북스러웠다.
"참, 내가 차를 대접한다고 해놓고선 손을 놓고 있었구먼. 법륜 밖에 있는가? 여기 차하고 다과 좀 챙겨주게나."
"네. 그러잖아도 후원에 전달했습니다."
혜공은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다 잠자코 앉아있는 도훈에게 물었다.
"아까 보니 도훈 학생은 불교에 대한 지식이 참으로 해박하시던데···."
"아닙니다. 그저 책 몇 줄 읽은 게 전분 걸요."
"허허, 운동도 열심히 하고 독서도 게을리하지 않으니 장차 훌륭한 선생이 되시겠소."
"덕담 감사합니다."
도훈은 자꾸 자신에게 관심을 내비치는 혜공이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귀한 손님을 모신다는 상사당(上舍堂
‘거참, 신안인가 뭔가를 가지고 있다고 하니까 괜히 쳐다만 봐도 불안하네. 내 위업에 방해나 안 되면 좋겠는데···.’
그때 상사당 문이 열리며 누군가 커다란 쟁반을 들고 왔다. 나무 쟁반 위에는 다기 세트와 간식이 든 접시가 담겨 있었다. 도훈이 보니 스님이 아니라 일전에 짐을 들어준 예쁜 공양주였다. 의외의 방문에 혜공이 놀라 물었다.
"어찌 행자님께서 직접···."
"법륜스님께 급한 통화가 걸려와서요."
"허허, 매번 공양하기도 바쁘실 텐데 송구하외다."
"괜찮습니다. 주지 스님."
희원은 주지와 함께 있는 대학생들에게 차를 따라주었다.
공손한 무릎 자세로 다관을 들어 다기에 찻물을 붓는 동작에선 우아함마저 느껴졌다. 미인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태영은, 저도 모르게 입을 헤 벌리고선 희원의 미모에 눈을 떼지 못했다.
‘헐! 시골 절간에 저렇게 예쁜 아줌마가 있었다니··· 처녀라고 해도 믿겠네.’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차를 받아 든 료코 역시 꾸벅 인사했다. 갑자기 튀어나온 일본말에도 희원이 당황하지 않고 말을 받았다.
"도-이따시마시떼(별말씀을)"
"엇, 일본어를 할 줄 아시네요?"
"학창시절 잠시 배웠습니다."
"혹시 여자 스님?"
보살이란 개념이 전무한 료코가 희원을 향해 물었다.
그러자 주지승이 대신 답했다.
"보살님은 스님이 아닐세. 우리 절에 공양을 해주시는 귀하신 손님이라네."
"손님은요. 그런데 학생들과 함께라 그런지 주지 스님께서 오늘 유독 기분이 좋아 보이네요."
"허허, 그러한가? 내가 젊은 사람의 좋은 기운을 받나 보오."
이윽고 도훈의 차례.
도훈의 다기에 찻물을 따르는 희원의 손이 살짝 떨려왔다. 그의 얼굴을 보자 아까 전 바위에 숨어서 보았던 대물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아···. 건실한 청년을 여기서 또 보네.’
도훈은 도훈대로 예쁜 보살을 다시 만나자 불쑥 음심이 솟구쳤다.
‘역시 미시는 미시만의 매력이 있단 말이지? 저 나이면 여자로서 물이 가장 오를 때기도 하고.’
도훈이 삿된 생각을 품는데 갑자기 로시가 말했다.
[주인님! 미션이 발동되었습니다!]
‘얼레? 여기서?’
[저도 어처구니가 없네요. 아무리 그래도 신성한 절에서 무슨···.]
‘이상하네? 왜 아까 봤을 땐 미션이 발동되지 않았지?’
[그거야 저도 모르죠. 주인님이 인식 못하는 사이 미션 조건이 성립했을지도. 아무튼 이번 미션은 ‘미망인을 공략하라.’입니다. 미션에 성공하면 특전으로 ‘음양보합술’ 스킬을 배울 수 있습니다.]
‘미망인? 아, 저분이 미망인이었구나.’
[미션 명을 봐선 그렇군요.]
‘그리고 특전으로 음양보합술? 어째 무공 이름 같다?’
[저도 이 스킬이 특전으로 뜰 줄 예상 못 했습니다. ‘음양보합술’은 방중술의 일종으로 양기를 보전하는 기술입니다. 주인님께서 언급하신 무공과 비슷한 종류라고 보시면 됩니다.]
‘진짜 무공이라고?’
[음···, 그러니까 일종의 성장형 스킬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교합의 횟수가 누적될수록 경험치가 쌓이면서 스킬의 위력이 증대되는 식이거든요. 최대 10성에 이르면 소모한 정력의 절반까지 돌려받게 됩니다.]
‘오호라. 정력 강화술의 일종인가?’
[강화라기보단···. 보존술에 가깝겠군요.]
‘아무튼 대박인데? 근데 어째서 위업도 아닌 미션에 이 정도 보상이 뜨는 거지?’
[아마 저 여인에게 기구한 사연이 있는 모양입니다. 또 예상하셨겠지만 제한 조건 또한 만만치 않습니다.]
‘그럼 그렇지, 제한 조건이 뭔데?’
[오늘 자정까지, 옥외 정사를 펼치셔야 합니다.]
‘헐! 처음 본 아줌마를 오늘 밤 안으로? 그것도 야외에서?’
[하나 더 있습니다. 최소 한 시간 넘게 방사를 참으셔야 하고요.]
‘제한 조건이 두 개나 있다고?’
[네. 왠지 쉽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네요.]
‘한 시간 정도면 어떻게든 버텨볼 수 있을지도. 정음이나 미나처럼 타고난 명기만 아니라면야.’
[미션 수락까지 1:34초 남았습니다.]
‘고민할 게 뭐 있어? 당근 콜이지!’
조건이 다소 까다롭긴 했지만, 실패해도 전혀 손해 볼 건 없다는 점이 도훈을 안심시켰다.
[미션이 수락되었습니다. 디스플레이 창을 터치하시면 미션의 상세 내용이 표시됩니다.]
-미망인을 공략하라!-
*공양주를 하는 미망인을 공략하는 미션입니다.
*성공 보상으로 '음양보합술' 스킬이 주어집니다.
*제한 조건으로 미션 수행이 오늘 밤 자정, 옥외로 고정됩니다.
*제한 조건으로 ‘삽입 후 한 시간 방사 금지’가 설정됩니다.
*남은 시간 : 8:21분
도훈이 미션을 확인하며 스마트 워치를 만지작거리는데 혜공이 덥석 그의 손목을 잡았다.
"오호라, 이건 처음 보는 물건이로군요."
***
"오호라, 이건 처음 보는 물건이로군요."
‘아니, 이 땡중 새끼가?’
손목을 빼려 했으나 혈도를 제압당한 것처럼 옴짝달싹 할 수 없었다. 어찌 된 영문인지 알 수 없지만, 근력의 우위를 무시하는 괴이한 상황이었다.
‘이, 이거 뭐이래? 노인네가 힘이 장사네?’
[···예상대로 도력이 만만치 않은 고승이군요. 교묘한 방법으로 금나수를 쓰고 있습니다.]
‘금나···, 뭐라고?’
주지승은 한참 동안 내 시계를 쳐다보더니 말했다.
"허허, 미안하외다. 나이가 드니 새로운 물건에 관심이 많아 져서 원."
"···그냥 스마트 워치에요. 전자시계요."
시큰거리는 손목을 매만지며 대답했다.
다행히 신안으로도 스마트 워치의 편광 필터는 눈치채지 못한 듯하다. 그나저나 어떻게 이 물건의 정체를 의심한 걸까?
"실례가 아니 된다면 내가 직접 우리 절을 소개해 주고 싶소만···."
"주지 스님께서요?"
"저희야 감사하죠."
다들 반기는 분위기에 혼자 초를 칠 수 없어 잠자코 있었다. 주지승의 호의가 나에 대한 궁금증 해소의 일환처럼 보이는 것은 기분 탓일까?
‘왠지 감시당하는 기분인데 이건.’
[제가 봐도 그렇습니다. 이래선 미션은커녕 위업이나 가능할지 모르겠군요.]
‘저 땡중 자식은 왜 저렇게 나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 거야?’
[신안을 통해 주인님의 비범함을 눈치챘기 때문이겠죠. 하지만 성물(聖物)을 눈앞에서 보고도 분간하지 못한 것으로 봐선, 그의 능력이 대단한 수준까진 이르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평범한 인간치고는 이 정도도 엄청난 성취이긴 합니다만.]
‘이런 곳까지 와서 훼방꾼을 만날 줄이야. 이거 참 귀찮게 됐네.’
태영과 주찬 정도만 견제하면 될 것이라고 여기던 내게 주지승 혜공의 등장은 암초나 마찬가지. 어떻게든 그의 의심을 종식 시키는 게 첫 번째 과제겠군.
차를 마저 따른 공양주는 접시에 담겨 있던 부침개를 내밀었다.
"출출하실 텐데 이것도 드셔보셔요."
"감사합니다."
"오이시!"
"역시 절 음식은 맛있네."
"이 녹두전 보살님께서 직접 만드신 건가요?"
나의 물음에 보살이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음식 솜씨가 정말 좋으세요."
"입맛에 맞으시다니 다행이네요."
기품 넘치는 모습이 절로 호감이 갔다. 저렇게 수려한 외모를 가진 사람이 어쩌다 절에서 음식이나 하는 처지가 되었을까?
궁금증이 치민 나는 주지승의 감시의 피해 정보창 스킬을 펼쳤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 상대를 알아야 공략법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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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 김희원 (비 처녀)
나이 : 36
호감도 : 70/100
개방성 : D
성감대 : 가슴, 겨드랑이, 목덜미
*애무 포인트 : 그녀는 땀에 젖은 겨드랑이 핥아주는 것을 좋아합니다.
성욕지수 : 매우 높음.
공략팁
*위 대상을 공략하시면 ‘미망인을 공략하라' 미션을 달성하실 수 있습니다.
-그녀는 10년 전 세상을 떠난 남편과 이름이 같은 당신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녀는 넘치는 음욕을 자제하느라 무척 곤란한 처지입니다. 굳건한 댐을 허물 수 있다면 홍수가 범람할 것입니다.
-추천멘트 : "언제까지 남편만 그리워 할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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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방금 또 사이한 기운이···?’
겉으론 인자하게 웃고 있지만 혜공의 눈 속엔 불꽃이 번뜩였다.
‘분명 뭔가 수작을 부린 것 같은데···.’
처음 알 수 없는 기운을 감지한 것은 도훈이 손목에 찬 시계를 들여다볼 때였다. 그 시계에 모종의 비밀이 담겨 있다고 확신한 혜공은 무례를 무릅쓰고 도훈에게 금나수까지 펼쳤다.
그가 젊은 시절 익힌 불문의 비기에 건장한 청년은 꼼짝을 못했다. 그러나 아무리 신안을 통해 봐도 평범한 시계일 뿐이었다.
혜공의 미간이 좁아져 들어갔다.
< 205. 깊은 밤, 달은 지고-3- > 끝
ⓒ 성난불기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