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222화 (202/2,000)

< 204. 깊은 밤, 달은 지고-2- >

희원은 몰래 경내를 빠져나와 암자에 올랐다.

암자의 위치는 비탈이 험해 관광객들의 발길이 뜸한 곳이었다. 이따금 머릿속이 복잡해질 때면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해 희원이 자주 찾는 곳이기도 했다.

수심 깃든 얼굴이 찡그려지며 그녀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쏟아져 나왔다.

‘···도훈씨. 오늘따라 당신이 무척 보고 싶어요.’

그녀는 10년 전 불행히 세상을 떠난 남편을 떠올렸다.

남편은 좋은 사람이었다.

훌륭한 인품을 가지고 있었고, 인물 또한 빠지지 않았다.

촉망받는 설치 미술가로 뮤지컬이나 연극판에선 섭외 1순위에 뽑힐 만큼 능력도 인정받았다.

신인 연극배우 희원과는 첫눈에 사랑에 빠졌다.

3년 반의 열에 끝에 많은 사람의 축복과 부러움을 받으며 결혼에 이르렀다. 14살이라는 나이 차는 그들의 뜨거운 사랑 앞에 걸림돌이 되지 못했다.

고대하던 첫날 밤.

고집스러울 정도로 혼전 순결을 지켜주던 남편과의 교합은 그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었다.

선천적으로 심장이 약한 남편이 관계 중 복상사(腹上死)를 당하고 만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복하사였다. 그녀가 기승위(말타기 체위)를 하던 중 숨을 거두었으니 말이다.

사인은 급성심근경색에 의한 심장마비.

허무하게 사랑하던 남편을 떠나보내고 스물여섯 나이에 청상과부가 된 희원은, 한때 자살을 결심할 만큼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결국, 보다 못한 가족의 권유로 절에 다니기 시작했다. 마음을 다잡기 위해 공양주 노릇도 자처했다. 절에 다니는 동안 그녀의 상처받은 마음은 조금씩 아물어 갔다. 늦은 나이에 불경을 접했지만, 부처님 말씀을 한 구절 한 구절을 되새기다 보면 적잖은 위

안이 되었다. 남편에 대한 미안함과 사무친 그리움도 서서히 희석되어 갔다.

하지만 지금도 그 소리만 들으면 경기를 일으킬 만큼 손발이 떨려와 두근대는 심장을 주체할 수 없었다.

바로 남편 잡아먹은 년이라는 말.

그 말을 처음 들은 건 경황없이 치르던 남편의 장례식장에서였다. 3일 장의 마지막 날, 발인을 하는데 입관식에서 분을 참지 못한 시어머니가 끝내 입에 담지 못할 악담을 퍼부었다.

"어디서 저런 근본도 없는 갈보 년이 기어들어 와 지 남편을 잡아먹어, 잡아먹기를!"

시어머니는 처음부터 그녀를 탐탁지 않아 했다. 학벌 좋고 능력 있는 남편에 비해, 얼굴만 반반할 뿐 가진 것은 쥐뿔도 없던 그녀를 노골적으로 무시했다. 어린 그녀가 집안 재산을 노리고 의도적으로 접근했다고 여겼다.

그 와중에 신혼 첫날밤 아들이 복상사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으니, 시어머니가 울분에 찬 것도 이해 못 할 일은 아니었다.

장례식에서 머리채를 쥐어뜯기며 들었던 욕설과 저주는 평생 그녀의 트라우마로 남았다. 그 뒤로 희원 그 말만 들으면 눈앞이 캄캄해지고,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며 속이 한바탕 뒤집히고 마는 것이다.

정말로 자기 음기가 가득해 남편이 못 견뎠던 것일까?

사후 발기로 딱딱해진 남편의 그것을 흥분으로 착각한 희원은, 남편이 숨을 거둔지도 모른 체 요분질을 계속했다. 한참 뒤에야 남편의 복상사를 깨달은 희원에겐 악몽과도 같은 순간이었다.

‘도훈씨는 내가 죽인 거야. 시어머님 말이 아주 틀린 것도 아냐.’

다시금 가슴 속이 답답해졌다.

밑바닥에 잠들어 있던 죄의식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와 그녀를 괴롭혔다. 쾌락에 눈이 멀어 남편이 죽은 줄도 모르고 엉덩이를 들썩거리는 장면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도훈이 형 저 위에 암자도 한 컷 찍을까요?"

그때 밑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도훈씨?’

죽은 남편의 이름을 듣는 순간 희원은 벼락을 맞은 사람처럼 몸을 떨었다.

‘방금 분명 도훈 씨라고 했어?’

본인이 잘못 들었나 싶어 귀를 쫑긋하는데 이번엔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리가 가까워지는지 아까보다 또렷한 음색이었다.

"그것도 괜찮지. 건축양식 같은 것도 종교미술에 표현 방식이 되니까."

두 사람의 점점 목소리가 가까워지자 암자 한 켠에 기대어 서 있던 희원이 몸 둘 바를 모르고 허둥지둥했다. 밥 짓다 말고 청승맞게 암자로 숨어든 스스로가 창피하기도 했지만, 우연히 남편과 동명이인인 사람을 마주치는 상황이 무척 공교로웠기 때문이

었다.

‘저 바위 뒤에 숨어야겠다.’

희원은 암자 옆에 있는 커다란 암석에 몸을 숨겼다. 그때 비탈을 올라오던 두 사람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

‘저 청년은···?’

둘 중 키가 훤칠한 청년은 낯이 익었다.

아까 전 자신의 짐을 들어준 친절한 학생이었다.

"형 근데 얼핏 봐서는 그냥 한옥 건물처럼 보이는데요."

"그러면 뒤편 산 정상이 배경으로 나오게 멀리서 찍어봐. 그럼 암자 같지 나오지 않을까?"

"아하! 역시 도훈이 형은 머리가 좋단 말이야?"

‘아, 저 청년의 이름이 도훈이구나. 어쩜 죽은 우리 남편과 이름이 똑같담.’

바위 뒤에 숨어 도훈을 관찰하고 있던 희원은 신기한 마음에 도훈의 생김새를 눈여겨보았다. 서글서글한 인상에 잘 빠진 몸매가 보기만 해도 훈훈한 인상. 처음 짐을 들어줄 때는 경황이 없어 몰랐는데 상당한 미남이었다.

‘잘생겼네. 우리 남편과는 분위기가 많이 다르지만.’

희원의 남편 역시 미남이었다.

결혼 당시 나이가 마흔이었지만, 워낙 동안이라 처음 본 사람들은 대부분 30대 초중반으로 보았다. 다만 선천적으로 심장이 약해 안색이 창백한 것과 입이 짧은 탓에 음식을 가려 다소 마른 것이 흠이었다.

그에 반해 도훈은 대장부처럼 튼실한 육체를 가지고 있었다.

어깨는 태평양처럼 넓었고, 잘 발달 된 흉근은 행자들이 입는 법복으로 가려지지 않았다.

‘···튼실한 총각이구나, 무척이나.’

도훈의 외모에 감탄하던 희원은, 불쑥 자신이 처음 본 청년을 죽은 남편과 비교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내가 지금 뭐하는 짓이람? 공양드리러 와서 몰래 숨어 남자나 훔쳐보고···.’

남편이 죽은 뒤론 일절 다른 남자를 만나지 않았다.

사별한 지 3년이 지나고 주변에선 아직 나이도 어리고 앞날 창창하니 새 출발을 해보라 권유했지만, 그녀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이는 사랑했던 남편에 대한 배신이라고 여겼다.

다른 남자를 만나게 된다면 음기가 강한 여자임을 스스로 증명하는 꼴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남편에 대한 의리와 고고한 자존심으로 20대가 훌쩍 지나버리자, 슬슬 주변에서도 재혼에 대한 권유를 중단하게 되었다.

하지만 희원도 결국엔 살 거죽을 가진 사람.

아무리 수양을 쌓고, 마음을 다잡아도 이따금 치밀어오는 성욕에 깜짝깜짝 놀라기 일수였다. 특히 30대 초반을 지나 중반에 이른 최근 들어선, 점점 그러한 생각이 격해지고 있었다.

산 입에 거미줄 치는 것도 옛말이라고 하지만 자신은 정말로 거미줄을 치고 있었다.

그것도 다른 것도 아닌, 스스로가 만든 감옥 때문에.

희원은 잘못된 행동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도훈을 훔쳐보기를 멈출 수 없었다. 딴에는 대학생들이 사진을 마저 찍고 내려가면 얼른 밥 지으러 돌아가야 한다는 명분을 내걸었지만, 그러면서도 계속 도훈의 잘생긴 얼굴에만 시선이 머물렀다.

"도훈이 형 이제 슬슬 내려가서 애들하고 합류할까요?"

"음, 태영이 너 먼저 가. 난 좀 바람 좀 쐬다 갈게."

"바람요? 아, 담배?"

"어, 절 안에선 도저히 못 피겠더라. 불경스러워서. 여기서 한 대만 피우다 갈게."

"그래요 그럼. 전 오늘 찍사라서 먼저 움직일게요."

"그래."

태영이 내려가자 도훈이 그의 뒷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틀린 말은 아니네. 가영이 동영상 보고 찍 쌌을 테니까."

혼잣말을 내뱉고 무엇이 그리 웃긴지 키득거리던 도훈은 이내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들었다. 템플 스테이는 다 좋은데 경내 금연이라는 것이 굉장한 페널티였다.

"무슨 금연 체험 교실 온 것도 아니고 말이지."

경치 좋은 곳에 올라 담배를 꼬나물고 있으니 머리가 핑 돌면서 기분이 나른해졌다. 운전하느라 거의 3시간 만에 들어간 니코틴이 긴장을 풀면서 엉뚱한 생각이 들게 했다.

‘오줌마려운데 노상방뇨나 해볼까?’

주변을 두리번거리자 옆에 커다란 바위가 눈에 들어왔다.

‘옳지. 저기면 안 보이겠지?’

도훈은 서둘러 바위 곁으로 다가갔다. 그곳은 희원이 두 사람의 눈을 피해 숨어있는 곳이었다.

희원은 도훈이 갑자기 다가오는 것을 깨닫고 다급히 고개를 수그렸다. 이제 와 불쑥 나가기도, 그렇다고 계속 모르는 척 숨어있기도 난처한 상황.

‘아···. 하필 저 총각이 왜 이쪽으로.’

부디 도훈이 바위 뒤에 숨은 자신을 눈치채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천만다행인지 도훈은 그녀를 발견하지 못했다. 바짝 웅크린 까닭에 바위에 몸이 가렸다. 그러나 그녀의 위치에선 도훈의 옆 모습이 보이는 각도였다. 아슬아슬한 사각지대.

희원이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꿀꺽 침을 삼키는데, 갑자기 도훈이 지퍼를 내렸다.

‘에그머니나! 지금 뭐하는···.’

도훈이 노상방뇨를 한다는 것을 깨달은 희원이 다급히 눈을 감았다. 밑에 해우소를 두고 굳이 여기서 볼일을 보는 도훈의 경박함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저 총각 괜찮게 봤더니만···.’

쏴아아아-!

눈을 감고 있는 그녀에게 폭포수 같은 물소리가 들렸다.

엄청난 오줌발 소리에 희원이 자기도 모르게 눈을 떴다.

그리고 보고야 말았다.

노발기 상태에서도 우람한 도훈의 물건을!

‘허걱! 저, 저게 다 뭐람?’

근 10년 만에 남성의 물건을 코앞에서 목도한 희원이 입술을 틀어막았다. 그렇지 않고선 비명이 터져 나올 것 같은 굉장한 크기였다.

‘저, 저렇게 큰 사람이···.’

처녀적 남자 경험이 아주 없진 않았으므로 남성의 성기가 발기 전과 후가 다르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노발기 상태로도 물건의 묵직함은 충분히 전해져왔다.

용변을 마친 도훈이 부르르 몸을 떨더니 손가락으로 대물을 튕겨댔다. 요도 끝에 묻은 잔뇨를 털어내는 과정이었다.

탁탁-

딱밤을 때리는 듯한 리드미컬한 손동작에 도훈의 대물이 춤을 췄다. 그 오묘한 흔들림에 희원의 동공이 두 배로 확장되었다.

‘세상에!’

"아, 얼른 내려가야겠다."

용변을 마친 도훈이 서둘러 암자를 내려가자 그제야 참아왔던 숨을 몰아쉬며 희원이 몸을 일으켰다.

‘후-. 들켰으면 곤혹스러울 뻔했네.’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희원은 방금까지 눈앞에 덜렁거리던 대물이 떠올라 얼굴을 붉혔다. 오랜만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생전 처음 보는 거대한 사이즈에 압도당했다는 말이 정확했다.

‘···죽은 남편보다 훨씬 컸어. 게다가 몸도 튼튼하고.’

건강한 남자에 대한 무의식적인 집착이 그녀를 사로잡았다.

만약 남편이 도훈처럼 건장한 사내였다면, 복상사 당할 일도 없었을 텐데···.

갑자기 회한이 밀려왔다. 자신이 이토록 불행해진 것은, 병약한 남편 때문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싹트는 희원이었다.

***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탱화, 부도, 석탑까지 다 기록하고 사진 찍었어요. 이러다 저희 조 A+뜨는 거 아니에요?"

값비싼 DSLR 카메라를 목에 건 태영이 호들갑을 떨었다.

"재료가 아무리 좋아도 완성을 잘 시켜야지. 일단 서현이한테 사진 보내주고 노트에 적은 것도 같이 찍어 보내줘. 내일 도착하는 데로 나랑 마무리 할 테니까."

"네."

"이걸로 바로 핸드폰으로 보낼 수 있어?"

"그건 아니고 내 폰이랑 블루투스 연결해서 다시 보내는 방식이야."

"이야 카메라 디게 좋은 거 쓴다, 너?

"엣헴. 이래 봬도 내가 기계엔 돈을 아끼지 않는 편이거든."

사람들의 관심에 태영이 모처럼 유세를 떨었다.

그때 로코가 법당 가운데 세워진 커다란 구조물을 가리키며 물었다.

"태영 사마, 근데 왜 신사문이 절 한가운데 세워져 있스무니까?"

"응? 신사문이 뭐야?"

"그 일본 신사 앞에 세워진 그거 말하나 본데?"

"하이! 일본말로 도리이라고 합니다."

그때 잠자코 듣고 있던 도훈이 말했다.

"료코. 저건 신사문이 아니고 괘불 걸이라고 하는 거야."

"괘불요?"

"응. 괘불(掛佛)이 뭐냐면 커다랗게 그린 부처님 그림이야. 주로 야외에서 열리는 불교 의식에 사용하지."

"오호."

"선배 그런 것도 아세요?"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전생에 많은 책을 읽은 탓에 잡지식이 풍부했던 도훈이 내친김에 덧붙였다.

"보통 불경을 읽는 법연을 법회석중(法會席中)이라고 부르거든. 그런데 하도 많은 사람이 몰려드니까 야외에 단을 설치하고 저렇게 큰 괘불 같은 것을 이용해 설법을 펼친 거야. 거기서 파생된 말이 바로 야단법석(野壇法席). 문자 그대로 야외에 단을 설치해 불법을 편다는 뜻이지."

"아, 그 말이 그 말이었어요?"

"응. 워낙에 많은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질서가 없고 어수선했거든."

"우아, 도훈이 형 엄청 똑똑하다."

"선배, 다시 봤어요."

"무슨 말인지는 잘 모르지만 아리가또네."

"쩝, 체육교육과라더만 아는 것도 많네."

도훈의 뛰어난 잡학에 대부분은 찬사를, 일부는 질투를 하는 와중에 누군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시주께선 참으로 불교에 조예가 깊으시군요, 그려."

"앗, 주지 스님."

주지 스님을 알아본 주찬이 황급히 인사를 하자, 나머지 일행도 따라서 고개를 숙였다. 합장으로 답례를 대신한 주지 스님이 도훈을 찬찬히 살피더니 눈에 이채를 드러냈다.

‘호오, 참으로 기묘한 젊은이로다.’

< 204. 깊은 밤, 달은 지고-2- > 끝

ⓒ 성난불기둥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