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7. 하수 탈출-11- >
***
"야! 너 이 새끼! 거기서! 잡히면 뒤진다!"
나는 극도로 흥분한 상태였다.
처음엔 나연이 헛것을 보았을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이 들었던 게 사실이다. 누구나 밤눈에 착시하는 때는 있는 법이니까. 하지만 정말로 누군가가 달아나는 모습을 보자 머리에 피가 거꾸로 솟았다.
‘발바리다!’
대학가 원룸촌, 그것도 여학생 혼자 사는 집만 노린다는 강간범의 이야기가 뇌리를 스쳤다. 아마도 놈은 나연이 재빨리 발견하지 못했다면 이 집을 침입했을 것이다. 그리고 혼자 사는 나연에게 몹쓸 짓을 했겠지.
"경찰에 신고해! 내가 저놈 잡아 올 테니까!"
나는 특별히 정의감이 넘치는 사람은 아니다. 전생에서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
그렇다고 불의에 눈감을 정도로 무딘 사람도 아니다. 소매치기를 보면 발이라도 걸어 넘어뜨리고 싶고, 껄렁한 양아치들이 아가씨를 괴롭히면 뭐라 한소리 내뱉을 정도는 된다. 하물며 과 후배인 나연을 해코지하려 했던 놈이라면 더 말할 필요가 있을까?
내가 무작정 뛰쳐나가려고 하는데 나연이 나를 붙잡았다.
"가지 마요 오빠."
"경찰에 신고부터 하라니까? 저런 새끼는 잡아서 본때를 보여줘야 해. 다리 다친 것 같으니 지금 쫓아가면 잡을 수 있어."
"제발 가지 말라니까요. 오빠 없으면 더 무섭단 말이에요."
나연은 두려움에 손까지 바들바들 떨었다. 잔뜩 겁먹은 그녀의 얼굴을 보자 나 역시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미녀의 애원은 발목지뢰보다 무섭다더니···. 이것 참.
"나연아 무슨 일이야! 도둑이라니? 너 괜찮니?"
뒤늦게 방에서 나온 연두가 핏기없이 새하얘진 나연의 얼굴을 보고 놀라 물었다.
"도, 도둑이 저쪽 창가에서."
"도둑이라고? 어머, 얘 손 떠는 것 좀 봐. 어쩜 좋아."
"일단 불부터 켜자."
거실 현광등을 켜자, 어둡던 집 안이 다시 환해졌다. 밝은 빛을 보자 나연이 긴장이 풀렸는지 그대로 바닥으로 주저앉아 버렸다. 연두가 그녈 감싸며 토닥였다.
"많이 놀랐나 보네. 이제 괜찮아. 우리가 있잖아."
"오빠 제발 쫓아가지 마요. 알았죠?"
나는 울먹이는 나연의 청을 거절할 수 없었다.
"···알았어. 그냥 있을게."
"파출소에 신고할까요?"
연두의 물음에 내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내일 날 밝으면 하자. 지금 경찰들 출동해봐야 잠만 설칠 거야. 어차피 이미 달아난 것 같은데 피곤할 필요까진 없지."
"그것도 그렇네요."
시간이 지나자 나연은 조금 진정 된 기색이었다. 연두의 적극적인 위로가 많은 힘이 된 것 같았다. 소파에 앉아 서로 손을 맞잡은 두 사람은 사이좋은 자매처럼 보였다.
‘별일이 다 있네. 야밤에 도둑이라니···. 살면서 직접 보긴 또 처음이다.’
[그러게 말입니다. 주인님께서 오늘 여기서 묶으신 게 천만다행이었군요.]
‘결과적으론 그렇게 됐네.’
[그나저나 괜찮으십니까?]
‘뭐?’
[업적 말입니다. 하다가 중단되어 버렸잖습니까?]
‘어엇!’
그제야 나연의 비명에 놀라 연두와 하다말고 뛰쳐나왔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어찌나 황망했던지 잠결에 옷을 대충 걸치느라 상의를 뒤집어 입은 것도 이제 알았다.
[연두 양과 진행하던 업적 ‘남자 맛 좀 보여 드려?’는 아쉽게도 실패입니다.]
‘잠깐. 삽입하고 할 것 다 했는데 마지막에 못 쌌다고 완전히 나가리라고?’
[네. 업적의 달성은 삽입 여부가 아니라 절정에 도달했는가를 기준으로 합니다. 주인님이 방사 직전 행위를 중단했기 때문에 당연히 업적은 실패고요.]
‘쩝-, 그야말로 허공에 좆질한 셈이네.’
마라톤 풀코스를 40KM 즈음에서 중단하면 딱 이런 기분일 거다. 업적달성을 코앞에 두고 포기한 것이 이렇게 뼈아픈 결과를 가져올 줄이야···.
나는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그때 나연이 의외의 제안을 건넸다.
"오빠. 저 너무 무서워서 그런데 오늘 밤 제 옆에서 주무시면 안 될까요?
"어?"
"물론 연두도 같이요. 아까 그 사람 직접 보고 나니까 너무 겁이 나서요."
"그래요, 오빠. 오늘만 같이 자요. 오빠가 옆에 있으면 나연이도 한결 마음이 놓일 거예요."
"그, 그럴까?"
나연의 제안과 연두의 제창으로 얼결에 3인 합방이 성사되었다. 이런 걸 소 뒷걸음질 치다 쥐 잡는 격이라던가?
기회는 아직 남아있다.
"저희 두 사람은 침대에서 잘게요. 오빠가 밑에서 주무셔야 하는데 괜찮겠어요?"
"상관없어. 난 우리 집에서도 바닥에서 자."
큰 방 침대는 둘이 누워도 충분한 사이즈였다. 혼자 사는 집에 이렇게 큰 침대를 넣어 준 걸 보면, 나연의 부모님도 딸 사랑이 유난한 분들이 틀림없다. 하긴, 자취방을 쓰리 룸으로 얻은 것만 봐도 뭐···.
나는 작은 방에서 두 사람이 깔고 자던 라텍스 매트리스를 가져와 밑에 깔았다. 베개를 베고 눕는데 침대 위에서 두 사람이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화장실 가다 발견한 거야? 그 도둑?"
"응."
"헐, 엄청 놀랐겠데. 진짜 웬일이라니."
"근데 연두 넌 왜 아까 도훈 오빠 방에서 나왔어?"
"아···. 그게···. 내가 잠결에 방을 잘못 들었지 뭐야? 도훈 오빠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자는 바람에 넌 줄로 착각했어."
"그 방엔 침대가 있었는데?"
"그, 그러게 말이야. 피곤해서 정신없이 쓰러져 버렸나 봐."
"그랬구나···."
나연의 목소리는 어딘가 착잡하게 들렸다. 연두는 모르지만, 나연은 우리가 한 짓을 알고 있다. 친구의 대답이 얼마나 가소롭게 느껴졌을까?
연두도 뒤가 켕겼는지 가만있던 나를 찾았다.
"도훈 오빠, 저 옆에서 자는 거 알고 계셨어요?"
나는 대답을 피했다.
나연에게 뻔히 들통 날 거짓말은 하고 싶지 않았다.
"······."
"오빠, 저 옆에 자는 줄 알았냐니까요?"
"······."
"응? 벌써 잠들었나? 오빠 깨워서 확인해 볼래?"
"아니야. 굳이 그럴 것까진."
나연의 목소리는 여전히 힘이 없었다.
그것이 야밤에 도둑을 맞닥뜨린 후유증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마지막까지 자신을 속이는 연두에 실망감 때문인지는 확실치 않았다.
그나저나 나연이가 얼른 잠들어야 연두랑 하던 걸 마저 할 텐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눈꺼풀이 조금씩 무거워졌다. 배구 경기의 피로, 마유미와 한 판, 아까 마셨던 술기운이 동시에 밀어닥쳤다. 몸이 순식간에 천근처럼 무거워진다.
‘잠들면 안 되는데···. 연두랑 아직···.’
졸음을 쫓기 위해 애를 썼지만, 밀려오는 피로 앞에선 역부족이었다. 그렇게 나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
"···오빠."
자는 시늉을 하다 진짜로 잠들어 버린 도훈 옆에서 누군가 속삭였다.
"도훈 오빠, 일어나 보세요."
계속되는 호명에 도훈이 겨우 잠을 깨어났다.
분명 혼자 자고 있었는데 지금은 누군가 옆에 누워있었다.
"누구···. 어? 너는."
"저에요."
도훈을 깨운 사람은 연두가 아니었다.
"나연이?"
"네."
"왜 침대에서 내려와 있어?"
"잠이 잘 안 와서요."
도훈이 힐끔 침대 위를 쳐다보니 연두 혼자 곤히 잠들어 있었다.
‘로시. 내가 잠든 지 얼마나 됐지?’
[약 세 시간 지났습니다.]
‘세 시간씩이나?’
창밖을 바라보니 어슴푸레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많이 피곤하셨던 모양입니다. 쿨쿨 주무시더라고요.]
‘나연이는 왜 내 옆에 있는데?’
[그녀는 한참 연두 양과 얘기를 나눴습니다. 아마 추측건대 연두 양이 잠이 들 때까지 억지로 버틴 것 같습니다. 연두 양도 최대한 버티다가 보시다시피 쓰러져 버렸고요.]
‘억지로 버티다니? 왜 그랬지?’
그 대답은 나연이 직접 했다.
"오빠···. 저 아까 다 봤어요."
"뭐, 뭘?"
"오빠랑 연두랑 하는 거."
"!"
그녀가 봤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급작스럽게 밝힐 줄은 몰랐다. 도훈은 뭐라 할 말이 없어 잠자코 있었다.
"혹시 연두 좋아하세요?"
"아니."
"그런데 왜."
"변명 같겠지만, 연두가 먼저 덮쳤어."
"연두가요?"
"응. 자고 있는데 내 바지를 벗기더니···."
"그리고요?"
"내 거길 막···."
"거길 어떻게요?"
나연은 평소답지 않게 상당히 대범했다. 말하긴 민망한 것을 자꾸 물어왔다.
"아무튼, 너무 심하게 자극하는 바람에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어. 나를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남자는 원래···."
"알아요. 어떤 남자라도 참을 수 없었겠죠."
나연은 모든 걸 이해할 수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조금씩 도훈에게 몸을 기대왔다. 향긋한 살 냄새가 훅 퍼지며 도훈의 후각을 자극했다.
‘애 갑자기 왜 이러지?’
[쿨 타임 찼습니다, 주인님.]
‘그래, 정보창!’
[띄웠습니다.]
"근데 지금 몇 시나 됐지?"
도훈은 시계를 보는 척 나연의 정보창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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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 이나연 (처녀)
나이 : 20
호감도 : 84/100
개방성 : B
성감대 : 클리토리스, 목덜미, 발가락.
*애무 포인트 : 그녀는 발가락을 부드럽게 빨아주는 것을 좋아합니다.
성욕지수 : 약간 높음.
공략팁
*그녀는 단짝에게 좋아하는 남자를 빼앗긴 것에 분개하고 있습니다. 질투와 애증이 뒤섞인 복잡한 상황입니다.
-호감도를 상승시키기 위해 다음의 멘트를 추천합니다.
-추천 멘트 : "나 사실 연두 말고 너랑 자고 싶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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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그것 때문이군!’
[네? 뭐가 말입니까?]
‘나연이는 연두와 무척 친한 사이였어. 그런데 연두가 나랑 자는 모습을 보고 친구에 대한 배신감과 질투로 조급해 져버린 거야. 자칫 연두에게 나를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든거지.’
[그게 지금의 행동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여자들은 그런 게 있어. 예를 들어 남자는 자기 여자가 바람피우면 도저히 용서가 안 되거든. 다른 놈 잦이가 들락거린 구멍엔 두 번 다시 넣고 싶지 않다는 거지.’
[그런데요?]
‘근데 여자는 또 달라. 남자가 바람을 피우면 물론 싫겠지만, 의외로 육체적인 바람에 대해선 생각보다 관대하단 말이지? 몸보다 마음이랄까?’
[그게 나연 양의 심리변화와 어떤 관련이 있다는 말씀인지···.]
‘나연이는 지금 확인받고 싶은 거야. 연두와 있었던 일은 고의가 아니었다. 오히려 내 쪽에서 당한 거다. 사실 나는 너를 안고 싶었다. 뭐 이런.’
[호오, 주인님께서 심리학에 정통하신 줄은 몰랐군요.]
‘심리학 같은 거창한 것까진 아니고, 여자들 심리는 조금 알지. 나이를 헛먹지는 않았으니까.’
"벌써 6시 다 됐네."
"그러게요. 조금 있으면 해 뜨겠어요."
"이제 괜찮지? 아까 놀란 건."
"네. 오빠가 옆에 있으니까 겁 하나도 안 나요."
나연은 그렇게 말하고 도훈에게 바짝 몸을 붙였다. 속옷을 안 받쳐입은 그녀의 가슴이 도훈의 팔에 닿고, 허벅지를 타고 매끈한 다리가 올라갔다.
"고마워요. 오빠가 같이 있어 주니 엄청 든든해요."
도훈은 고의로 몸을 밀착시키는 나연의 행동을 보고 타이밍을 쟀다.
"나 사실은···."
"네?"
"연두 말고 너랑 자고 싶었어."
"···거짓말."
"진짜야. 내가 왜 여길 따라왔겠어?"
"핸드폰 충전한다면서요. 깨톡 택시 부른다고."
"그건 핑계지."
"설마···."
"그래. 너랑 같이 있고 싶었어."
"연두는요?"
"연두는 알아서 잘 줄 알았지. 나 근데 걔가 그렇게 들이댈 거란 상상도 못 했어."
"연두가 조금 특이한 데가 있어요. 스킨십도 엄청 좋아하고. 오빠를 좋아하는 게 아닐까요?"
"아닐걸."
"어떻게 그렇게 확신해요?"
‘걔는 너를 좋아하거든.’
"실은 아까 연두에게 물었었어. 나한테 왜 그런 짓을 했느냐고."
"그러니까 뭐래요?"
"내 거 한 번만 보고 싶었데."
"뭘요? 설마···."
"응. 다른 사람이 내 물건 크다고 하니까 궁금했나 봐. 그래서 보고 싶었데. 보려고만 했는데 또 보니까 빨고 싶고···."
"흠."
"말렸어야 했는데 이미 잔뜩 커져서 어쩔 수가 없었어."
"이상해요."
"뭐가?"
"난 아무렇게나 여자랑 자는 남자 정말 싫어하는데···."
"응?"
"근데 오빤 미워할 수가 없어."
나연은 그렇게 말하며 도훈에게 입술을 맞부딪혔다. 도훈은 부드럽게 그녀에게 입맞춤했다. 키스가 끝나자 나연은 민망한 듯 도훈의 가슴에 푹 안겼다.
"아···. 키스해 버렸다."
"처음이야?"
"처음은···. 아니지만."
"근데?"
"이렇게 남자랑 안고 있긴 처음이에요."
"너 심장 엄청 빨리 뛰고 있어."
"겁나서요."
"무서워?"
"연두가 혹시 깰까 봐."
"뭐 어때? 너도 나랑 연두랑 하는 거 봤다면서?"
"전 부끄러워요."
"더 스릴 있지 않을까?"
도훈은 나연을 바닥에 눕히고 다시 입맞춤했다.
처음의 키스가 살포시 입술을 부딪치는 정도였다면, 두 번째 키스는 훨씬 뜨겁고 촉촉했다. 혀가 뒤섞이고, 손은 가슴을 주물렀다.
"하아···. 오, 오빠."
"너 나랑 하고 싶지."
"···네."
"해줄까?"
"저 근데 진짜 처음이라···."
"괜찮아. 그냥 가만히 있으면 돼. 대신 연두 깰지도 모르니까 절대 소리 내지 말고. 알았지?"
"···알겠어요."
도훈은 서서히 나연의 상의를 벗겨냈다. 유난히 새하얀 나연의 속살이 창가로 스며오는 아침 햇살에 반짝였다.
"가슴 엄청 귀엽다."
나연은 부끄러운지 고개를 돌리며 두 팔로 가슴을 가렸다.
"부끄러워요."
"아니 진짜야."
"좀 작지 않아요?"
실제로 나연의 가슴은 A컵이었다. 그러나 절벽 같은 A가 아니라 나름 오밀조밀 모양이 잡혀있는 꽉 찬 A였다.
"체조할 땐 작아서 편했는데 운동 그만두고 나니까 작은 게 콤플렉스에요."
"아니야. 작아도 충분히 귀여워. 이렇게 빨아주고 싶을 정도로."
도훈은 나연의 두 팔을 치워내며 가슴을 한입에 삼켰다.
< 187. 하수 탈출-11- > 끝
ⓒ 성난불기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