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2. 낭만의 캠퍼스-41- >
‘이건 좀 노골적이지 않나?’
도훈은 머리가 나빠졌을 뿐 눈치 없는 바보는 아니었다.
30대 중반에 이른 손 교수의 행동이, 어린 자신을 우습게 여기고 장난치는 것이라는 건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나를 너무 순진하게 보는 모양이군. 어디 그럼 장단 한 번 맞춰줘 볼까?’
"저기, 교수님 치마가 좀···."
도훈이 민망한 듯 고개를 돌리자 손 교수는 전혀 몰랐다는 것처럼 시치미를 뗐다.
"응? 치마라니? 어머, 내 정신 좀 봐!"
은주는 꼰 다리를 바로 하더니 옆에 있던 쿠션을 들어 치마 위에 얹었다. 그녀는 실수를 위장하며 태연하게 말했다.
"내가 연구실이라고 너무 편하게 앉았나 보네, 미안해."
"아, 아니에요."
도훈은 일부러 숨을 참고 얼굴에 힘을 빡 주었다. 그러자 순간 머리로 피가 쏠리며 낯빛이 시뻘게졌다. 그 모습을 본 은주가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웃었다.
"호호. 지금 얼굴 빨개진 거니? 귀엽다, 애."
"아, 아니 그게 좀 당황스러워서요···."
"너 진짜로 순진하구나? 무슨 남자애가 이런 거 가지고 그래? 속옷 좀 본 게 어때서."
"그, 그런가요?"
‘무슨 헛소리야 저게? 다 큰 여자가 일부러 팬티 노출하는 게 정상이야 그럼? 누굴 진짜로 바보로 아나. 허, 참.’
하지만 도훈은 속마음과는 달리 수줍음 많은 학생처럼 고개를 푹 숙일 뿐이었다. 그의 순진한 연기로 홀딱 넘어간 은주는 상체를 기울이며 과감하게 들이대기 시작했다. 영락없이 나이 든 노처녀가 순진한 대학생을 희롱하는 모양새다.
"도훈 학생은 여자 친구는 없어?"
"네. 군대 갔다가 이번 학기에 복학했거든요."
"아하 그래서···. 그럼 아직 여자 한 번도 못 사귀어 본 거야?"
[주인님, 너무 사적인 질문 아닙니까?]
‘놔둬 봐. 어디까지 가나 한 번 보게.’
"아뇨, 군대 가기 전에 잠깐 만났었어요."
"군대 가기 전이면 스무 살?"
"네."
"훗-. 생각보다 어리네."
"예?"
"아니 몸도 그렇게 좋으면서···."
손 교수가 넌지시 운을 띄웠지만, 도훈은 못 알아듣는 척 딴청을 피웠다.
"하하. 제가 워낙에 운동을 좋아하거든요."
"운동? 나도 운동 좋아해. 저기."
손 교수가 구석에 세워 둔 싸이클 머신을 가리켰다. 창가 아래 비치된 운동 기구는 첫눈에 보기에도 값비싼 보였다.
"교수님 싸이클 좋아하시나 봐요?"
"응. 예전엔 스피닝도 배우고 했는데, 운동할 시간이 안 돼서 가끔 연구실에서 탈까 하고 가져다 놨어. 나도 나이 드니까 점점 살이 붙더라고."
"살이요?"
"뭐, 필요한데 살이 붙는 게 꼭 나쁜 건 아니지만···."
대화가 거듭될수록 은주는 점점 과감해졌다.
‘애가 아직 여자 맛을 못 봐서 그런가? 생긴 거랑 다르게 되게 숫기 없네? 한 번 본격적으로 유혹해 봐?’
은주는 테이블에 커피잔을 내려놓는 척 슬쩍 허리를 숙였다. 그러자 V넥으로 파인 원피스 상의가 흘러내리며 가슴골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가운데로 예쁘게 모인 가슴은 안쪽에 그림자가 드리울 만큼 깊은 골짜기를 이루고 있었다.
그녀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하던 도훈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것 봐라? 이젠 아주 대놓고 끼를 부리네? 하여간 어린애 한 번 어떻게 해보려는 꿍꿍이 하고는···.’
도훈은 은주의 노골적인 도발에 실소가 나올 뻔했지만, 당장은 순진한 대학생을 연기 하고 있었으므로 부끄러운 척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는 입안이 바짝 마른 것처럼 급하게 커피를 들이켰다.
"앗, 뜨거!"
그러나 막 내린 커피는 너무나 뜨거웠다. 입안을 데인 그는 화들짝 놀라며 바지에 커피를 쏟고 말았다.
"으아앗!"
허벅지 가득 커피 물이 쏟아지자 그는 벌떡 일어나 옷을 털었다.
[오오, 엄청난 연기력이군요! 저도 감쪽같이 속을 뻔했습니다.]
'야, 진짜로 혀 댔다고.'
[예? 연기가 아니시라고요?]
'에이씨, 뜨거우면 뜨겁다고 말이라도 해주든가.'
[······.]
"이를 어째! 괜찮니?"
"괘, 괜찮아요. 바지에 조금 흘린 것뿐이에요."
"하나도 안 괜찮아 보여. 잠깐만 있어 봐."
은주가 물티슈를 잔뜩 뽑아 왔다. 그리고는 굳이 도훈의 바지춤을 꾹꾹 눌러 자국을 닦아냈다.
"제가 해도 되는데···."
"가만있어. 얼른 안 닦으면 얼룩질 거야. 너 근데 주머니에 뭘 넣고 다니는···."
도훈의 바지춤을 훔치던 은주는 물컹하고 눌리는 물건의 정체를 인식하고는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이거 설마?'
도훈이 뻘쭘한 표정으로 은주의 물티슈를 빼앗듯 가로챘다.
"제, 제가 닦을게요."
"···응."
'세상에나! 이 녀석 완전 대물이잖아?'
얼룩을 모두 닦아낸 도훈은 은주의 시선이 여전히 자신의 사타구니 사이에 머물러 있는 것을 의식했다.
‘얼씨구? 아주 넋이 나갔구먼···. 대물 처음 봐?’
"저기··· 왜 그렇게 보세요? 아직 묻었나요?"
"아, 아냐. 그냥 물 자국인가 봐."
"근데 아까 어디까지 얘기하셨죠?"
"아, 그래. 여자 친구. 이제 복학도 했으니 여자도 사귀고 그러라고. 네 나이 땐 연애 많이 해보는 게 좋거든. 정신적으로 성숙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고."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군대 가기 전에 잠깐 만난 거면 아직 총각 딱지 못 뗐을지도? 쯧쯧, 저런 대물이 여태 주인이 없다니.’
은주는 먹음직스러운 음식을 보는 것처럼 도훈을 쳐다보았다.
할 수만 있다면 하나부터 열까지 모조리 가르쳐(?) 주고 싶은 심정. 혈기왕성한 젊은 몸뚱이가 그토록 탐이 나긴 처음이었다.
‘아깝다, 아까워. 교수랑 학생 사이만 아니었어도 확 자빠뜨려 버리는 건데···.’
은주는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떠올리며 겨우 들뜬 마음을 진정시켰다. 학생을 대상으로 성욕을 품는 것은 교수로서의 양심이 허락지 않았다.
"참, 답사에 관해 물어볼 거 있다면서?"
"네. 저희 조가 전남에 있는 사찰에 가기로 했는데요···."
도훈은 답사기를 작성하는 대략적인 아우트 라인에 관해 물었다. 일반적인 견문록 방식으로 하는 게 좋을지, 아니면 보고서 형식을 띠고 미술 작품을 소개를 하는 방식이 좋을지 등등.
"음, 굳이 형식에 구애받을 필욘 없어. 난 딱딱한 보고서보다 자유로운 서술 방식을 선호하거든."
"아, 교수님은 딱딱한 거 싫어하시나 봐요?"
"···응?"
도훈이 타이밍에 맞춰 슬쩍 다리를 벌렸다. 그러자 사타구니 부근에 볼록 돋아나온 물건이 모습을 드러냈다. 워낙 사이즈가 크다 보니 바지 안쪽 봉제선을 따라 대물의 형태가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었다.
‘헉! 저건 또 왜 저런담? 아까 내가 만졌다고 커진 거야?’
도훈의 도발에 이번엔 은주의 얼굴이 빨개졌다. 특히 "딱딱한 거"라는 멘트와 함께 타이밍 좋게 발기된 물건을 내비치는 통에 은주의 심장은 미친 듯이 쿵쾅거렸다.
"음, 딱딱해도 괜찮을 것 같기도···."
"다행이다. 제가 좀 딱딱한 편이거든요."
"응? 뭐, 뭐가?"
"행정병을 하다 와서 그런지 글 쓰는 게 아직도 군인 같아요. 군대 보고서같이."
"아, 그 소리구나. 난 또···."
은주는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왠지 도훈에게 농락당하는 기분이었지만, 순진해 빠진 도훈이 고의로 그럴 것이라곤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
그때 도훈이 일어섰다.
"교수님, 제가 전공이 전공이다 보니 운동 기구에 관심이 많아 그러는데 저거 한 번 구경해봐도 될까요?"
"뭐 싸이클? 그러렴."
"고맙습니다."
도훈이 싸이클 머신을 보려고 한 것은 다름이 아니었다. 굳이 연구실까지 무거운 기계를 가져다 놓은 것을 보고 그녀가 무척 아끼는 물건이겠거니 짐작했기 때문이었다.
‘어디 녀석의 기억을 한 번 들춰볼까?’
도훈이 싸이클의 손잡이를 잡으며 싸이코 메트리 스킬을 발동시켰다.
***
"하아···."
창가 밖이 어두운 것으로 보아 저녁 시간 같았다. 연구실에 홀로 남은 손은주는 싸이클에 올라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흐응. 조, 좋아."
도훈은 싸이클에 남겨진 장면을 더듬다 뭔가 위화감을 느꼈다. 페달 위에 얹어진 손은주의 발이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던 것이다.
‘뭔가 이상한데? 운동을 안 할 거면 뭐하러 올라가 있담? 저 소리는 또 뭐고?’
도훈이 정신을 집중하자 손은주의 움직임이 클로즈업 되었다. 유심히 보니 그녀의 허리가 앞뒤로 빠르게 들썩이고 있었다.
‘세상에! 안장에 거길 비비고 있잖아?’
그녀의 움직임이 빨라질수록 신음도 덩달아 격렬해졌다.
"흐앗, 흐아앗."
치마를 걷어 올린 채 팬티째 그곳을 비벼대는 은주는 음탕하기 짝이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닌 듯 안장 끝의 뾰족한 코에 아슬아슬 걸터앉은 그녀는 온몸을 무게를 그곳에 실어 내리누르기를 반복했다.
"하아···. 미치겠네 진짜. 누가 나 좀 시원하게 뚫어줬으면."
영상은 그렇게 끝났다. 싸이코메트리를 통해 손 교수의 은밀한 비밀을 알게 된 도훈은 속으로 씩 웃었다.
‘나참, 운동 기구가 아니라 자위 기구를 가져다 놓은 거였어? 생각 이상으로 음욕을 주체 못 하는 타입이군. 공략이 그리 오래 걸리진 않겠어.’
도훈은 손 교수를 골탕 먹이려는 생각에 안장을 쓱 손바닥으로 더듬고는 물었다.
"근데 교수님 안장에 뭐가 묻어 있는 것 같은데요?"
은주가 도둑질하다 들킨 사람마냥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어?!"
"이게 물인가? 좀 끈적거리는 게 물은 아닌 것 같은데···."
"뭐, 뭐가 묻었다고 그래? 청소 아주머니께서 청소하다 뭘 흘린 거겠지."
"그렇죠?"
그때 연구실로 전화벨이 울렸다.
손은주는 도훈의 질문을 회피하려는 것처럼 급하게 수화기를 들었다.
"어, 문 조교. 나 지금 연구실."
그녀는 뭔가 중요한 전화를 받는 듯 진지한 얼굴로 통화를 마치더니 도훈에게 말했다.
"미안해, 도훈군. 중요한 학회 문제로 학장님이 잠깐 보자 그러시네."
"넵, 바쁘신데 시간 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아냐. 궁금한 거 있으면 언제든 와. 심심하면 차 마시러 와도 좋고."
"정말 그래도 되요?"
"물론이지. 도훈 군 같은 학생이라면 언제든 환영이야. 아까보니 수업 열심히 듣더라."
"감사합니다. 그럼 종종 들를게요."
"그래."
도훈은 꾸벅 인사를 마치고 연구실을 나섰다. 비록 미션을 완수하진 못했지만, 손 교수와 개인적인 친분을 쌓는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자평했다.
‘그녀의 비밀스러운 자위도 엿보고 말이지. 후후.’
***
연구실을 나온 도훈은 배구 연습 경기까지 남은 시간을 때우기 위해 대학 본부로 향했다. 본부 앞 벚꽃길에서 동아리 홍보 행사를 한다는 것을 떠올린 것이다.
‘심심한데 무슨 동아리 있는지 구경이나 가볼까?’
"타겟, 예술대 건물에서 나와 이동 중. 경로를 봐선 대학 본부 쪽인 것 같습니다."
먼 거리에서 그를 미행하던 한지연이 초소형 무전기에 대고 속삭였다.
-별다른 특이사항은?
"손은주 교수의 연구실에 들어가는 것까지 확인했습니다. 안에서 무슨 얘기를 나누었는지는 알 수 없고요."
-뭔가 수상한데? 체육교육과 학생이 무슨 연유로 예술대 교수를 방문했을까?
"손 교수의 교양수업을 듣고 있긴 합니다만···."
-알았어. 계속 미행해. 우린 손 교수와 커넥션에 대해 좀 더 파악해 보지.
"대리님."
-야, 한지연. 내가 임무 중엔 직책으로 부르지 말랬지.
"알겠다. 뻐꾸기."
-듣고 있다.
"타겟과의 연결고리가 너무 부족한 것 같지 않습니까?"
-무슨 소리야?
"이런 식의 미행은 수박 겉핥기라고요. 누굴 만나 무슨 얘길 나누는지 확인할 길이 없는데 계속 따라만 다니는 게 소득이 있을까요?"
-낸들 어떡해? 팀장님이···
"뻐꾸기. 임무 중엔 직책 부르지 말라던 사람이 누구였죠?
-흠흠, 정정한다. 부엉이가 이르길 접촉을 최대한 자제하라지 않았나?
"어차피 노출이 안 된 것도 아닌데, 적극적으로 관계 형성을 하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습니다. 어제 부엉이도 긍정적으로 검토해 본다고 했고요."
-그럼 어쩔 생각인데? 교양수업 맞추는 것은 두 과목까지가 한계야. 단과도 다른데 모든 수업이 우연히 똑같다면 뭔가 이상하다고 여기지 않겠어?
한지연은 도훈의 행선지를 파악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수업은 그렇겠죠. 하지만 동아리라면 어떨까요?"
-동아리?
"네. 타겟이 지금 동아리 홍보하는 곳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같은 동아리에 소속돼 놈을 감시한다?
"현재로썬 가장 자연스러운 접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오케이. 할 수 있으면 해봐, 올빼미.
"라져 뎃. 뻐꾸기."
교신을 마친 지연은 동아리 홍보 부스를 방문 중인 도훈에게 다가갔다.
"어? 도훈이 안녕?"
"넌 송이든?"
"응. 여기서 뭐 해?"
"시간이 좀 남아서 잠시 구경 중이야. 넌 수업 끝났어?"
"어. 오늘은 실기가 일찍 끝났어. 동아리 들려고?"
"그냥 뭐 있는지 보고 괜찮으면."
"잘됐다. 나도 동아리 하나 들까 했는데. 같이 구경 할까?"
도훈은 친한 척 다가서는 지연을 경계했다.
‘뭐지? 이젠 아주 대놓고 접근하네? 내내 숨어서 따라다니더니.’
사실 그는 진작부터 지연의 존재를 눈치채고 있었다.
그녀의 임무가 자신의 감시라는 알기 때문에, 어딘가로 이동할 때마다 선글라스를 쓰고 따라붙는 여대생의 존재가 눈에 띌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뭐지? 혹시 나랑 같은 동아리에 들기라도 할 셈인가?’
지연의 의중을 파악한 도훈은 왠지 그녀를 골탕먹이고 싶어졌다.
< 172. 낭만의 캠퍼스-41- > 끝
ⓒ 성난불기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