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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79화 (159/2,000)

< 161. 낭만의 캠퍼스-30- >

'아, 술 좀 그만 마셔야지. 이게 무슨 주책이람?'

겨우 정신을 차린 미나는 단둘이 계속 있다간 기분이 이상해 질것 같아 서둘러 가게로 향했다. 그러나 이미 올라온 술기운에 자기도 모르게 몸을 휘청 이고 말았다.

"어머나."

"조심해요."

도훈이 흐트러진 그녀를 부축했다.

팔짱을 끼듯 겨드랑이 사이로 파고든 도훈의 손이 그녀의 옆 가슴에 문질러진다.

'앗, 닿았어.'

그러나 정작 도훈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이었다.

"취하셨나 봐요."

"네. 너무 빨리 달렸네요."

도훈은 부축을 핑계삼아 계속 팔짱을 꼈다. 걸을 때마다 가슴이 손등에 스쳤다. 낯선 손길에 미나는 조금씩 흥분이 끌어 올랐다. 분명 혼자 걸을 수도 있었지만 도훈이 붙어있는 게 싫지 않았다. 도훈은 그녀의 반응을 긍정적인 싸인으로 받아들였다.

때마침 로시가 말을 걸었다.

[주인님, 정보창 스킬이 활성화 되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최근 확인한 미나의 호감도 수치는 63.

만약 70을 넘지 않았다면 정보창을 열더라도 개방성이나 성감대, 성욕지수가 공개되지 않는다. 제한된 정보만 가지곤 오늘밤의 거사는 불가.

도훈은 선택의 기로에 섰다.

'미나의 호감도가 다른 사람에 비해 더디게 올랐던 이유는 남자친구의 존재 때문이었을 거야.‘

도덕적 결벽이 심한 사람은 외부의 유혹에 쉽게 휘둘리지 않는다.

허나 남자친구와 헤어진 지금, 그녀를 감싸던 단단한 방어막은 허물어졌다.

당장은 누구를 만나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상태.

아마 여기서 시간이 좀 더 흐르면 또 다른 남자를 만나는 데 피로감을 느끼거나, 이전 보다 더욱 신중하게 행동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지금이야 말로 철벽의 미나가 취약점을 드러낸 타이밍.

면도날처럼 날선 감각이 도훈의 선택을 종요했다.

'떡 각 나왔다. 정보창 실행 시켜.'

[넵. 디스플레이에 띄웠습니다.]

도훈이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스마트워치를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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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 송미나 (비 처녀)

나이 : 24

호감도 : 71/100

개방성 : 중하

성감대 : 입술, 젖꼭지, 밑 가슴 접힘 부위.

*애무 포인트 : 그녀는 이빨로 젖꼭지를 잘게 깨무는 걸 좋아합니다.

성욕지수 : 중상

공략팁

*그녀는 오래 사귀던 남자친구와 실연으로 방황하고 있습니다. 원나잇을 원한다면 지금이 최적기!

-호감도를 상승시키기 위해 다음의 행동을 추천합니다.

-추천 멘트 : "헬스장에서 해보고 싶은 적은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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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상대로였다.

미나의 호감도는 모든 정보창이 열리는 70선을 간신히 넘어 있었다.

만약 남자친구와 헤어지지 않았더라면 여전히 60 언저리를 머물렀을 것이다.

[주인님의 통찰력은 명불허전이군요! 드디어 모든 정보가 개방되었습니다.]

'가만 성감대 밑에 생긴 <애무 포인트>는 뭐야? 처음 보는 것 같은데?'

[맞습니다. 정보창 스킬을 자주 사용하면서 생긴 추가 기능입니다. 단순히 성감대만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성감대를 최대한으로 활용할 수 있는 팁을 제공해 준달까요?]

'오오. 혹시 이게 전에 말했던 스킬 강화?'

[네. 1.2 패치입니다.]

'1.1이 아니고 왜 1.2?'

[첫 번째 옵션은 처녀 감별사로 직접 개방 하셨잖습니까?]

'아아. 그래서.'

불쑥 정보창 스킬에 숨겨진 옵션이 생각 이상으로 많을 것 같다는 추측이 들었다.

'로시. 그럼 이 스킬은 완전체가 아닌 거야?'

[맞습니다. 비유하자면 초보자 모드로 설정되어 있달 까요? 모든 히든 옵션이 개방되면 정보창은 그 어떤 스킬보다 무시무시한 성능을 발휘합니다.]

'어째서 시작부터 온전한 스킬을 주지 않는 거지?'

[상대의 스텟을 열람하는 기능은 사실 ‘아카식 레코드’라 불리는 관리자 모드에서 파생되었습니다. 개발자들은 이 스킬이 세상의 질서를 교란시킬 것을 우려했고, 이에 상당수의 옵션을 봉인해 둔 상태입니다. 다만 스킬을 사용량에 따라 옵션을 개방시킨 이유는, 그만큼 플레이어의 칭호에 따른 책임감을 믿기 때문이고요.]

'하-. 왠지 사기당한 기분인데? 혹시 모든 스킬이 이런 식인가?‘

[거의 그렇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포인트를 이용한 스킬 레벨업은 단순히 쿨타임만 줄여줄 뿐. 결국 많이 사용할수록 스킬이 강화되는 방식입니다. 지난 번 주인님께서 말씀하신 용불용설과 비슷한 원리랄까요?]

쓰면 쓸수록 스킬은 강화된다.

사용하지 않는 스킬은 진화를 멈춘다.

일단은 알겠다.

물어보고 싶은 것은 많지만 지금은 미나를 공략해야 할 시간이다.

흔들리는 그녀를 완벽히 자빠뜨릴 비장의 한수가 절실하다.

하지만 정보창의 추천 멘트는 지나치게 노골적이었다.

앞뒤 가리지 않고 꺼냈다간 뺨맞기 딱 좋은 작업 멘트.

어떻게 해야 저 말을 이끌어 낼 수 있을까?

고깃집이 이제 코 앞이다.

얼른 그녀의 발길을 돌려야 한다.

"참, 편의점에서 컨디션 사간다지 않았나요?"

"아, 맞다."

"들렀다가요 우리. 빈손으로 가면 괜히 오해 살지도 모르니."

"그러려나···."

나는 망설이는 미나를 억지로 돌려세웠다.

우유부단한 성격일수록 적극적으로 리드할 필요가 있다.

결국 그녀는 아슬아슬한 타이밍에 다시 발길을 돌렸다.

"남자 친구 일은 안됐어요."

편의점으로 향하면 넌지시 전남친 얘기를 꺼내본다.

그녀의 어두워진 표정을 보니 아직 실연의 아픔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냥 인연이 아니었나 보죠."

"혹시 지난 번 그 일 때문?"

미나가 담배 피우던 장면을 목격하던 날, 우연찮게 통화를 엿듣게 되었다.

지방 출장이 잦은 남친과 평소 술자리를 즐겨하는 그녀 사이의 갈등.

"그쵸. 절 못 믿겠다나 뭐래나."

놈은 바보가 틀림없다.

미나는 내가 아는 어떤 여자보다 철벽같은 수비를 자랑했다.

나에 대한 호감도가 가장 낮게 오른 것만 봐도 그녀의 정조관념이 얼마나 뛰어난 지 알 수 있엇다.

물론 그 남자 마음도 어느 정도 이해는 된다.

미나가 어지간해야 말이지. 섹시 다이너마이트라고 불릴 만큼 온 몸이 흉기(?)에 가까운 그녀.

그런 미나가 아무리 방어막을 친다 한들, 남자 친구 입장에선 매번 불안감에 떨었을 것이다. 품에 넣고 감시해도 시원찮은 마당에, 지방 나가있는데 밤늦게 남자들과 술자리라니.

두 남녀는 끝내 결별의 길에 들어섰다.

남자친구도 나름의 이유가 있다지만, 미나 역시 억울할 만 한 상황.

난 그녀의 편을 들었다.

"미나 씨를 못 믿는다니, 그 분도 정말 바보네요."

"제 말이요! 그 사람은 남녀가 술자리만 벌이면 무슨 일이 날 것처럼 걱정한다니까요? 계속 전화하고 톡 보내고 영통하자 그러고. 아주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었어요. 저희 엄마도 그렇게는 안 하는데."

"집착이 심했네요. 계속 만났으면 오늘 같은 술자리도 못 가게 했으려나?"

"그렇죠. 제 딴엔 회식도 일의 연장이라고 생각하는데, 그이는 전혀 이해 못 했죠."

"흠. 그렇다고 너무 안 좋게 보진 마세요. 서로의 생각이 다른 것 뿐. 누구 하나 틀렸다고 할 수 없는 문제니까"

슬며시 전 남친의 입장을 변호해 본다. 물론 내가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사람이란 걸 보여주기 위한 쇼맨십일 뿐이다. 이로인해 나는 믿음직한 조언자로 인식될 것이다.

"그래도 그 말은 좀 심했네요. 여자 친구 못 믿으면 대체 누굴 믿어요?"

"그쵸? 이제껏 참아온 게 억울할 지경이라니까요?"

"참다뇨? 뭘?"

술 취한 미나가 말실수를 했다.

"아, 아니에요. 그냥 별 뜻 없이 한 말이에요."

아니. 빈말이 아니다..

그녀는 술김에 실언을 했고, 나는 이제 그 빈틈을 하에에나처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질 작정이다.

"혹시 유혹에 흔들린 적도 있었어요?"

"아, 음···. 꼭 그런건 아니지만."

"뭐 어때요. 이제 사귀는 사이도 아닌데. 솔직하게 말해봐요."

나는 교묘하게 그녀를 부추겼다.

너를 억압하던 남자친구는 이제 없다.

도덕적인 굴레는 사라졌다.

내 말이 효과가 있었는지 그녀가 허심탄회하게 입을 열었다.

"맹세코 흔들린 적은 단 한 번도 없어요. 저는 남사친들한테 철저하게 선을 긋는 편이거든요."

"충분히 그러실 것 같아요."

"근데 결국 이렇게 되고 나니 너무 억울한 거 있죠? 나는 어느 누가 들이대더라도 한번도 응한 적 없었는데, 마치 진짜로 그런 일을 벌인 사람처럼 의심해 버리니까."

"흠, 정말 그렇겠다. 하기나 했으면 억울하진 않지."

"뭐, 뭐를요?"

"아니 그거 있잖아요."

말꼬리를 흐리며 딴청을 피웠다.

그녀는 대화 내용이 뻘쭘했는지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도훈씬 의외로 대범하구나."

"제가요? 성인끼리 할 수도 있는 말 아닌가? 저 누나랑 한 살 차이에요. 한살이면 친구나 마찬가지지."

"아, 그랬죠. 제가 너무 도훈 씨를 어리게 생각했나 봐요."

미나가 조금은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대학생과 직장인이라는 범주에 넣고 보면 그녀와 나 사이에는 커다란 격차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실상은 한 살 차이밖에 안 나는 다 큰 남녀.

당장 둘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져도 아무렇지도 않을 나이임을 강조했다.

"저도 뭐 여자 안 사겨 본 것도 아니고요."

"도훈 씬 마지막으로 언제 사겼어요?"

"2년 전에요. 저 군대가서 차였어요."

"헐. 속상했겠다."

"아니에요. 덕분에 여자 보는 눈도 많이 달라졌으니까."

"달라져요? 어떻게?"

"예전에는 사람만 좋으면 다 좋을 줄 알았거든요."

"그럼 또 다른게 있나요?"

"글쎄요. 이런 말까지 하긴 민망한데···."

"해봐요. 다 큰 성인끼리 못 할말도 있나요?"

미나가 베시시 웃으며 말했다. 딴에는 내 대사를 되돌리는 위트를 발휘한 것이지만, 상대를 잘 못 골라도 한참 잘못 골랐다.

"속궁합요."

"네, 네??"

"못 들었어요? 속궁합요."

그녀는 의외의 대답이라는 듯 눈에 띄게 당황했다.

민망해 하는 그녀의 모습이 무척 귀여웠다.

"봐요. 말 해보라면서 진짜로 말하니까 사람 무안하게."

"아, 아니에요. 맞아요. 중요하죠. 그것도 하하."

미나가 땀이 나는지 손부채를 부쳤다.

‘좋아, 기왕 포문 연거 화끈하게 가보자.’

"역시 누나도 그렇게 생각하죠?"

"으, 응?"

호칭이 순식간에 누나로 변경되었다.

그것은 트레이너와 회원이라는 장벽을 허뭄과 동시에 사적인 관계임을 명시적으로 드러내는 의도적인 변경이었다.

"저도 솔직히 남들이 하는 얘기 귓등으로 들었거든요. 사랑만 있으면 되지, 그딴 게 뭔 필요냐. 하지만 막상 사겨보니까 또 그게 아니더라구요."

"으, 음. 그럴지도."

"사실 제가 좀 큰 편이거든요."

"어, 어? 음. 그, 그래?"

나는 미나가 부끄러워하건 말건 계속 밀어 붙였다.

"그것 때문에 속궁합이 좀 맞았어요. 전 여친이 너무 못 받아줘서."

"그, 그럴 수도 있겠다."

"누나 근데 왜 그렇게 부끄러워해요?"

"아, 아니 나는 그냥··· 그런 얘기를 다른 사람이랑 해본 적이 별로 없어서."

"의외로 보수적이네, 이 누나."

"아니야. 그냥 민망해서 그랬어."

"하하. 근데 저 뭐하나 물어봐도 돼요?"

"뭔데?"

"전 남친이랑은 속궁합 잘 맞았어요?"

"윽! 그걸 왜 물어?"

"아니 제 친구가 저번에 그러더라구요. 남녀가 맨날 싸우다가도 그게 너무 잘 맞으면 절대 못 헤어진다며."

"정말?"

"네. 이런 사례도 있었데요."

나는 어디선가 들은 썰을 그녀에게 풀었다.

한 커플이 있었단다.

남자는 씻는 걸 너무 귀찮아했다. 여자가 몇 번이고 씻으라고 했지만, 남자는 듣는 시늉도 하지 않았다. 어느 날 해어지자는 말을 하기 위해 찾아간 그날 밤, 두 남녀는 얼결에 또 뒤엉키고 말았다.

그러나 그게(?) 너무 잘 맞아 여자는 도저히 남자를 떠날 수가 없었다.

등판을 긁자 손톱 밑으로 까만 땟가루로 끼일 정도였지만, 그것을 감내할 만큼 남자가 좋아 헤어날 수가 없었다는.

"으윽. 너무 더러워."

"더럽죠. 하지만 놀랍지 않아요? 그렇게 더러운데도 남자한테 벗어나지 못하는 거 보면."

"그게 정말 그렇게 좋을까?"

"누난 그럼 안 좋아요?"

***

"누난 그럼 안 좋아요?"

미나는 곰곰이 생각했다. 전 남친도 물건이 작진 않았다.

그러나 한 번도 섹스가 만족스러웠던 적은 없었다.

크기가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는 지속시간.

곰곰이 생각해보면 처음으로 처녀를 때던 날부터 지금껏 만났던 남자들은 그녀 앞에서 5분을 넘기지 못했다. 남자친구들이 그녀와 자고 나면 한결 같이 하는 얘기가 있었다.

-니꺼 너무 조여. 도저히 못 버티겠어.

처음에는 토끼들의 비겁한 변명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첫 남자도, 둘째 남친도, 그리고 지금의 남친도 모두 똑같았다.

좋긴 좋은데, 너무 세게 조여서 버티기가 힘들다며.

직전 남친이 그나마 오래 버티는 축이었다.

적어도 넣자마자 싸진 않았으니까.

그래서 미나는 친구들이 가끔하는 오르가즘에 대한 이야기가 상상에서나 존재하는 건줄 알았다. 뭘 느껴보기도 전에 제 풀에 지쳐 떨어져 나가는 남친들을 볼 때면 자신과 속궁합이 맞는 사람을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려울 것 같았다.

"누나? 무슨 생각해요?"

한참 다른 생각에 빠져 있는데 도훈이 상념을 깨뜨렸다.

"아, 아니야. 아무것도."

"에이, 그게 아닌데? 혹시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거 아니에요?"

< 161. 낭만의 캠퍼스-30- > 끝

ⓒ 성난불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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