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2- 낭만의 캠퍼스-11- >
***
도서관에서 후다닥 섹스를 끝마치고 나니 어느덧 정음의 수업시간이 가까워졌다. 나는 아쉬워하는 정음을 배웅한 뒤 다시 열람실로 향했다.
[여기서 볼일은 다 끝나신 것 아니었습니까?]
‘뭔 소리야? 진짜 책 빌리러 온 거래도?’
[호오, 오랜만에 학구적인 모습이군요.]
오랜만이라···.
뭐 틀린 지적은 아니다.
환생 후 읽은 책이라곤 편의점 알바 당시 틈나는 대로 읽던 잡스의 자서전이 달랑.
하지만 이정우로 살 당시의 나는 굉장한 독서광이었다.
나이가 들고 직장에서의 직위가 높아지면서 점점 독서 시간은 줄었지만, 그래도 한 달에 사들이는 책만 대여섯 권이 넘었다.
[설마 그 책을 다 읽었다는 소린가요?]
‘아니지. 사람들이 착각하는 게 있는데, 책은 샀다고 해서 다 읽는 게 아니야.’
[그럼요?]
‘산 책 중 읽고 싶은 걸 고르는 거지.’
[아하!]
‘그래도 일단은 사야 해. 적어도 사지 않은 책은, 읽을 일도 없는 거거든.’
이것은 나의 지론이다.
마치 로또 복권과도 같은 것인데, 한 장이라도 구매한 사람에겐 일말의 희망이라도 있지만, 아무것도 사지 않은 사람에겐 절대로 기회가 오지 않는다는 주의.
나는 장서 사이를 거닐며 정숙한 분위기에 빠져들었다.
오래된 책에서 나는 특유의 책 냄새.
조용한 가운데 어디선가 들려오는 사각거리는 책 넘기는 소리.
오로지 도서관에서만 느낄 수 있는 고요하고 진지한 풍경.
생전에 나는 이 느낌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오늘은 어떤 책과 만날까 두근대는 마음으로 책장 사이를 오가다 보면, 우연히 스쳐 가는 옛 연인처럼 눈에 익숙한 제목들.
추억을 곱씹으며 책을 꺼내 든다.
책은 시간을 두고 읽으면 처음과는 다르게 다가온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것.
당시엔 무시했지만, 이제는 공감하게 되는 것들.
책은 여전히 그대로인데, 내가 변했다.
그 변화는 성장일까 퇴보일까?
나는 한 걸음이라도 나아가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여전히 갈 길을 못 찾고 방황하는 것일까?
책에서 답을 찾고, 책에 길을 묻던 젊은 시절.
불쑥 20년 전 책에 빠져 살던 대학생 이정우로 되돌아간 느낌이다.
대물 이도훈이 아닌 진정한 나.
나는 이렇게나 지적 갈증에 허덕이던 사람이었는데···.
"···저기요?"
오랜만에 추억에 잠겨있는데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상념이 깨어지며 다시 일상으로 복귀한다.
이정우에서, 또 다시 이도훈으로.
"네?"
"죄송한데 맨 윗줄에 저 책 좀 꺼내 주실 수 있을까요? 제가 손이 안닿아서요."
말을 건 사람은 처음 보는 여학생이었다.
꾸미지 않은 수수한 얼굴.
총기 넘치는 눈빛.
제법 똘똘한 인상이다.
"무슨 책요?"
"갈색 하드커버요. 네, 그거."
여학생의 키는 무척 작았다. 160도 안돼 보인다.
팔을 쭉 뻗어 책을 꺼내며 무심코 질문을 던졌다.
"신입생?"
"네? 아뇨. 저 3학년인데···."
"아, 실례했네요. 너무 어려 보이서···."
"괜찮아요. 워낙 키가 작아서 그런 소리 자주 들어요."
책을 건네자 여학생이 고개를 꾸벅 숙여 감사를 표했다.
"고맙습니다. 찾는 책이 너무 높은 곳에 있어 가지고요."
"별말씀을. 근데 진짜 3학년이세요?"
"네."
"절대 그렇게까진 안 보이는데···."
"그거 칭찬이죠? 고마워요."
나는 유심히 그녀를 살폈다.
조그만 키에 비해 아담한 체형.
하지만 무엇보다 내 이목을 잡아끄는 건 그녀가 빌린 책의 제목이었다.
[점자 읽기의 이해]
‘점자? 그 시각장애인들이 읽는다는 엠보싱 처리된 책 말인가?’
"근데 이 책을 왜? 점자 볼 일은 없을 것 같은데···."
"아, 제가 실은 사회복지학과거든요. 이번 학기에 시각장애인 복지시설로 자원봉사 가는데, 그전에 미리 읽어둘까 해서요."
그녀의 설명을 듣는데 불쑥 머릿속으로 관련 위업이 하나 떠올랐다.
48. 당신이 궁금해요. (전맹 급 시각장애를 갖춘 여성의 호감도를 100까지 끌어 올릴 시 달성.)
‘가만, 시각장애인 시설이면···.’
[주인님, 때마침 행운이 따라 주는군요. 48번 업적을 달성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오케이. 이해했어. 일단 얘를 다리로 활용하란 소리지?’
나는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 조그만 여학생에게 물었다.
"저기요."
"네?"
그녀가 깜찍한 표정으로 돌아선다.
아무리 봐도 엄마 화장품을 훔쳐 꾸민 중딩같은 느낌이다.
"혹시 시간 되시면 뭐 좀 여쭐 수 있을까요?"
"무슨···."
"그 자원봉사 말예요. 저도 요새 관심이 있어서···."
마음에도 없는 소리. 나는 자원봉사 따윈 별 흥미 없다.
과거 이정우 시절에도 회사차원의 불우이웃 돕기 성금 정도만 했다.
"정말요?"
"네."
여학생이 반색하며 말했다.
"여기서 얘기하긴 그러니까 1층 로비로 같이 가실래요?"
"그러죠."
나는 아무 책이나 대충 뽑아 든 뒤 1층 데스크로 향했다.
우린 각자의 도서를 대출하고 로비의 소파에 걸터앉았다.
옛 되보이는 여대생이 말했다.
"전 사회복지학과 15학번 유정화라고 해요. 그쪽은···."
"전 체육교육과 14요. 이도훈."
"아, 오빠시구나."
"군대 갔다 복학해서 학년은 이제 2학년이에요."
"그래도 오빠는 오빠죠."
정화는 생각보다 붙임성이 좋은것 같았다. 선한 눈매를 가진 사람들 대부분 그러하듯 인간에 대한 호의가 느껴지는 시선이다. 착한 사람이군.
"정말 자원봉사 생각 있으세요?"
"네. 혼자만 잘살면 무슨 재민가요. 서로 돕고 살아야지."
마침 내가 빌린 책의 제목이었다.
정화는 내가 들고 있던 책의 제목을 힐끔거리더니 풋- 웃음을 터뜨렸다.
"호호. 재밌으신 분이네요. 자원봉사는 매주 토요일 오전에 있어요. 여기서 멀지 않은 곳인데, 시각장애인을 대상으로 맹인 안내견 지원이나 점자 교육 등을 해주는 센터에요. 봉사자들은 시설일을 보조하고."
"매주 토요일, 네."
"부담 갖지 말고 시간 되면 한 번 와보세요. 제 연락처 드릴까요?"
"그래요."
정화에게 폰을 건네자 그녀가 자기 번호를 찍었다. 조그만 몸집만큼 손가락도 오밀조밀 앙증맞다. 저런 애랑 하면 초등학생이랑 하는 기분이려나? 진정한 합법 로리가 여기 있었군. 품안에 넣으면 인형을 껴안는 기분이리라. 섹스돌같은?
"근데 키 엄청 크시네요. 발받침도 없이 손을 뻗어 잡다니. 운동하셔서 그런가요?"
"키만 큰게 아니고 자지도 커요."
물론 그 말을 덧붙이진 않았다. 속으로만 생각했다.
"암튼 다음에 시간되시면 꼭 연락 주세요."
"그래요."
"전 그럼 다음 수업이 있어서···."
"네."
정화와 헤어진 뒤 다시 사범대로 향했다.
‘업적을 위한 징검다리라지만 한 번 쯤 찔러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유정화 양 말입니까? 주인님께 저런 로리 취향이 있는 줄은 몰랐군요.]
‘왜? 색다르잖아.’
[흠, 마유미 양과 콤비를 이루면 볼만은 하겠네요.]
180에 가까운 마유미. 160이 안되는 유정화.
거인과 난쟁이 콜라보인가? 상상하니 웃기긴 하네.
‘그나저나 캠퍼스 오니까 공략할 여자가 너무 늘어 버렸는데? 당장 1학년 수석 입학생인 서현이나, 일본 교환학생 료코, 게다가 사회복지학과 합법로리 유정화까지. 아참, 미션으로 제시된 손교수도 있지?'
[피할 수 없으면 즐기십시오. 이미 충분히 즐기고 계신 것 같지만.]
‘그래. 이게 다 업적을 위한 거니까.’
나는 사범대로 향하며 마주치는 여대생들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젊음.
싱그러움.
봄기운에 취한 풋풋한 처녀들.
대물로 다시 태어난 나에게 대학은 그야말로 천국이나 마찬가지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낭만에 가득찬 캠퍼스에서 인생 한 번 제대로 즐겨봐야지.
***
체육교육과 조교 강민주는 도훈을 만난다는 생각에 아침부터 들떠 있었다.
‘아아, 오늘이 드디어 주인님을 만나는 날이구나···.’
그녀는 새터 이후 시작된 도훈 앓이에 최근 며칠간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눈을 감으면 그의 거대한 대물이 눈앞을 아른거렸다. 하지만 몇 번의 걸친 자기 위로도 그녀를 만족시킬 순 없었다. 이미 고기 맛을 본 스님에게 밍밍한 산채 음식은 풀대기에 불과한 것처럼, 도훈의 대물맛을 본 그녀에게 다른 것은 장난감에 불과했다.
하지만 도훈이 학교에서는 조심스럽게 행동하라고 신신당부를 했기에 무턱대고 연락할 수 없었다. 괜히 도훈의 화를 돋구었다간 그에게서 미움을 살지 몰랐다.
"도훈인 언제 온다니?"
민주는 결국 애꿎은 성수만 채근했다.
성수는 부회장이라는 명목으로 집행부들과 함께 음식준비에 한창인 상황.
마유미의 배구대표 합숙훈련이 이번 주까지 이어지면서, 개강총회 행사를 대리로 주관하게 된 성수는 오후부터 정신없이 일해야 했다.
그는 강의실에 걸린 벽걸이 시계를 쳐다보며 대답했다.
"도훈이요? 수업 끝나는 대로 오랬으니 이제 곧 오지 않을까요?"
"수업 끝난 지가 언젠데? 걔 오늘 56교시밖에 없던데?"
조급해진 민주는 말을 꺼낸 뒤 아차 싶은 마음에 황급히 덧붙였다.
"아니 개강 첫 주에 정정하는 학생들이 많아서 미리 애들 시간표 뽑아 놨더니 그렇게 돼 있더라고."
"아···. 그래요?"
고무장갑을 낀 체 파전 반죽을 주무르던 성수가 머리를 갸웃했다.
‘조교샘은 기억력도 좋네. 우리 과 학부생 60명도 넘는데 어떻게 한명 한명 시간표를 다 기억하는 거지?’
"흠, 이놈이 어디로 샜지? 점심까지 먹여놨더니 의리 없게···. 야 정우선."
옆에서 계란물을 풀고 있던 2학년 과대 정우선이 곧바로 대답했다.
언제나 처럼 군기가 바짝 든 표정이다.
"넵. 부회장님."
"너 이도훈 연락처 알지?"
"도훈이 형요? 폰에 저장해 뒀을 겁니다."
"얼른 전화 해봐. 지금 어디냐고. 나 고무장갑 끼고 있어서 하기 힘들어."
"잠시만요, 저도 지금 손에 뭐가 묻어 가지고···."
두 사람의 부산한 움직임에 참다 못한 조교 강민주가 폰을 꺼내 들었다.
"됐어. 둘다 바쁜 것 같으니 내가 할게."
"그러실래요?"
"감사합니다."
"일손도 많이 부족해 보이는데 부를 수 있으면 한 명이라도 더 불러야지."
"3학년들 전공수업이 아직도 안 끝나서요. 그러게 김교수님은 왜 개강 첫날부터 풀타임을 뛰시는 지 원."
집행부의 상당수는 3학년.
그러나 개강총회를 준비 해야 할 3학년 대부분은, 쉬는 시간도 없는 연강으로 유명한 체육과 김장군 교수의 수업에 발이 묶여 있었다.
6시에 시작되는 개강총회에 맞추려면 1시간 가지곤 빠듯한 상황. 때문에 성수는 수업이 없는 2학년 몇몇과 함께 안주 준비에 고군분투 중이었다.
민주는 학생들 눈치를 살피며 강의실 복도로 나가 도훈에게 통화버튼을 눌렀다.
'명분이 확실하니까 뭐라고 못하겠지?'
까마득한 후배 눈치나 보는 자신이 한심했지만, 도훈의 심기를 거스르고 싶지 않았다.
그는 거역할 수 없는 자신의 주인이었으니까.
통화 수신음이 울리는데 벌써부터 아랫도리가 부들거렸다.
'어맛. 나 지금 자궁떨리는 거야?'
-여보세요?
"응, 도훈학생. 성수가 개강총회 준비 도와준다고 했다는데 아직 안왔길레..."
-도서관 들렀다 오느라고요.
"도서관?"
-네. 책 좀 빌리러.
"아···."
-혹시 지금 혼자 있어요?
"네."
순간 도훈의 목소리가 얼음장처럼 차갑게 바뀌었다.
-내가 학교에서는 따로 연락하지 말래지 않았나? 왜 내 말을 안듣지?"
"아, 아니에요. 일부러 그런게 아니라 서, 성수가."
-성수 형 핑계 대지 말고. 형이 대주라면 대줄거야?
"서, 설마요. 저, 전 온전히 주인님의 것인데."
-말만 그렇게 하지 말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 할 거 아니야!
예상대로였다.
도훈은 연락을 했다는 이유로 거칠게 강민주를 몰아부쳣다.
민주는 버럭 화를 내는 도훈의 태도에 전전긍긍했다.
수화기를 두손으로 받쳐든 공손한 자세로 머리를 조아렸다.
"죄송해요, 주인님. 제가 생각이 짧았어요."
-잘못한 건 알어?
"네. 모두 제 잘못이에요. 모자란 민주를 용서해 주세요."
-흠. 이번은 처음이니 넘어가지. 하지만 혼을 좀 나야겠어.
"네, 주인님."
-지금 당장 화장실로 달려가.
"화장실요?"
-두번 말하게 하지마. 한 번 만 더 되물었다간 다신 안 따 준다.
"네, 넵!"
민주는 미친 사람처럼 여자 화장실로 뛰었다. 누가 보면 큰일이라도 난 사람처럼 허겁지겁이었다.
"화, 화장실이에요."
-아무칸에나 들어가.
"네."
민주는 맨 마지막 칸에 들어가 문을 잠궜다.
"들어왔어요."
-팬티 내려.
주륵-
팬티를 내리란 한마디에 급격하게 애액이 흘러나왔다.
도훈의 목소리엔 거역할 수 없는 마법같은 힘이 있었다.
"내, 내렸어요."
-휴지통에 버려.
"버렸어요."
-그대로 변기 커버 내리고 앉아.
민주는 잔뜩 흥분한 상태로 변기위에 앉았다.
어째서 시키는 데로만 하는데도 이런 기분이 드는지 스스로를 이해할 수 없었다.
-치마 걷어.
"올렸어요."
-가랭이 벌린 다음 칸막이에 발바닥이 닫게 버텨.
민주는 부끄러운 표정으로 두 다리를 활짝 펼쳤다.
평소 요가로 유연성을 길렀기 때문에 무리없이 가능한 동작.
나이도 어리고, 학부생에 불과한 도훈에게, 선배이자 조교인 자신이 쩔쩔맨다는 사실이 수치심과 함께 진한 배덕감을 선사했다.
"버, 벌렸어요."
-말로만 그런지 실제로 그런지 어떻게 알아? 사진 찍어.
"사, 사진요?"
-두번 말하게 하지 말랬지?
"찌, 찍을 게요. 주인님. 지금 바로 찍어서 보낼게요."
-통화 끊지 말고 바로 찍어. 30초안에 문자로 보내. 시간 잰다.
"네, 네!"
민주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카메라 어플을 실행시켰다.
혹시나 밖으로 소리가 들릴까 귀를 기울이자 여학생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헉, 어쩌지? 화장실에서 카메라 소리가 나면 의심받을텐데···.'
민주가 갈팡질팡 머뭇거리는 사이 도훈의 차가운 목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조그맣게 흘러나왔다.
-···14,13,12···. 시간 잘간다?
'안돼. 주인님의 말을 듣지 않으면 다신 나를 거들떠도 안볼거야. 어쩔 수 없어 지금은.'
결국 민주는 셀카모드로 바꿔 밑을 찍었다.
찰칵-
화장실에서 카메라가 소리가 들리자 밖에 있던 여학생들 사이에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방금 그거 카메라 소리 아냐? 설마 변탠가?"
"꺄악- 신고해야 되는거 아니니?"
"여기서 소리 난 것 같은데? 저기요! 지금 뭘 찍은 거에요?"
쿵쿵-!
밖에 있는 여학생들이 성난 목소리로 문을 두들겼다.
좌변기에 앉아 활짝 다리를 벌리고 앉은 민주는 금방이라도 울것같은 표정이 되었다.
< 142- 낭만의 캠퍼스-11- > 끝
ⓒ 성난불기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