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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56화 (136/2,000)

< 138. 낭만의 캠퍼스-7- >

닭은 영계가 맛있다.

여자도 어릴수록 좋다.

그렇다고 모든 닭요리에 영계만 쓰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노계를 이용하는 때도 있다.

퍽퍽하고 질긴 살이 어울리는 레서피가 있는 것처럼, 성숙한 여자도 나름의 맛이 있는 법.

손은주 교수는 닭으로 치면 노계였다.

그러나 어린 여자들은 결코 가질 수 없는 성숙미를 가지고 있었다.

나이답지 않게 탱탱한 피부.

관리가 잘 된 굴곡진 몸매.

진한 화장에 검은색 뿔 태 안경은 묘하게 선정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뇌마저 섹시한 느낌이랄까?

‘무척 젊어 보이는데 진짜 교수려나?’

마치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하듯 손은주가 말했다.

"간혹 학기 끝나면 평가에 불만을 품고 이의 제기하는 학생들 있던데, 난 강사가 아니라서 강의 평가 점수로 협박해도 눈 하나 깜빡 안 해요. 그러니 대충해서 점수 받으려는 학생들 있으면 중간에 드롭하지 말고 이번 주 정정 기간 내에 수업 바꾸는 것을 추천해 드리죠."

손 교수의 으름장에 나이가 들어 보이는 4학년 학생들 몇이 질린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은 민망한 듯 꾸벅 고개를 숙이더니 그대로 강의실을 나가버렸다.

잠시 어수선한 분위기가 지나고 손 교수가 말했다.

"얼추 정리된 것 같군요. 남은 사람들은 이제 포기하기 없기? 자, 출석 부를게요."

손 교수는 나긋나긋한 톤으로 학생들을 하나씩 호명하기 시작했다. 진한 루즈를 바른 입술이 오물거릴 때마다 저 입술에 다른 걸 밀어 넣고 싶은 충동이 밀려왔다.

"···정태영."

"옙."

"어딨죠?"

"여깄습니다."

"오늘은 첫날이니까 출석 부르면 다들 손 한 번씩만 들어 주시겠어요? 얼굴 좀 익히게."

"넵."

손 교수는 이름과 얼굴을 하나하나 매칭 해 가며 아이컨택했다. 교수의 눈빛은 무척이나 강렬해 제대로 시선을 마주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드디어 내 차례.

"이도훈."

"여깄습니다."

"흐음··· 도훈 학생은 혹시 운동분가요?"

"네?"

"아니 몸이 꽤 좋아 보여서···."

그녀의 뿔 태 안경 너머로 눈빛이 반짝였다.

"운동부는 아니고 체육교육과입니다."

"아···. 체육교육과. 이 클라스엔 유독 사범대 학생들이 많군요. 아까 보니 영어교육과 학생들도 제법 있는 것 같던데."

‘영어교육? 작년 트레블을 이루었다는 그놈들이군.’

출석을 모두 부른 손 교수가 좌중을 둘러보며 말했다.

"이제 끝났군요. 한 가지 약속하죠. 다음 시간까지 제가 학생들 이름 전부 외워 올게요. 한 명이라도 틀리면 전원에게 아메리카노 한 잔씩 사는 거로."

"와아아!"

교수의 도발적인 발언에 강의실에 떠나갈 듯 함성이 울려 퍼졌다. 50명이 넘어 보이는 학생을 빠짐없이 외운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교수는 알 듯 모를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하지만 일방적인 내기는 재미없죠. 만약 제가 다 외운다면 이번 학기 내내 여러분이 돌아가면서 저한테 커피 사기? 콜?"

"좋아요!"

"교수님 전 더블샷으로 부탁드립니다!"

"커피 못 마시는데 아이스티로 바꿔도 되나요?"

"흐음, 얼마든지. 대신 하나만 기억하세요. 전 단 한 번도 커피를 산 적 없다는 걸."

***

손은주는 서울대 미술대학에서 학사와 석사학위를 받고 뉴욕의 School of Visual Arts의 MFA 과정에서 인터랙티브 멀티미디어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재원이었다.

산업디자인, 인터페이스디자인, 컴퓨터 아트에 관한 다수의 작품을 발표하였으며 미국 매크로미디어 사의 피플스 초이스 어워드, 커뮤니케이션 아츠, 체코의 브루노 비엔날레 등에서 수상하기도 했다.

화려한 이력과 실적으로 불과 서른여섯의 나이에 국내 유수 사립대 부교수까지 올랐지만 아직까지 미혼.

대게 한국에서는 공부를 많이 할수록 여성의 결혼 연령이 높아지는데, 손 교수 역시 고학력 미혼 여성의 대표적인 케이스였다.

쉽게 말해 노처녀라는 의미.

뛰어난 외모에 비해 남자가 쉽게 붙지 않는 것을 두고 지인들은 그녀에게 이렇게 충고했다.

-여자가 너무 똑똑하게 굴면 남자들이 싫어해.

-조금은 미련해 보이는 것도 좋은 전략이야.

-남자들은 자기보다 잘난 여자 부담스러워 한다니까?

하지만 사람을 한 번 보면 절대로 잊지 않을 만큼 뛰어난 두뇌를 가지고 있던 손 교수의 눈에, 어지간한 남자들이 성에 찰 리 만무했다. 차라리 평생을 혼자 늙어 죽는 일이 있어도 밑지는 결혼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여잔 나이가 들수록 성욕이 되레 강해진다든가?

최근 손은주는 밤이 깊어지면 잠을 못 이룰 만큼 음기가 치밀곤 했다. 옛 애인을 떠올리거나, 혼자서 음란한 소설을 보며 자위를 해야 겨우 잠들 정도.

지친 표정으로 젖은 곳을 닦을 때마다 손은주는 생각했다.

‘얼른 남자를 하나 구하든가 해야지···. 칫.’

그러나 교수라는 신분과 주변의 눈치 때문에 마냥 자유로울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원망할 뿐. 언제나 허전함을 달래는 것은 혼자의 몫이었다.

그런 손은주가 도훈을 보는 순간 야릇한 생각을 떠올린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이도훈."

"여깄습니다."

‘와, 어린애가 뭐 저리 잘 빠졌데? 벗겨놓으면 완전 예술이겠는데?’

자기도 모르게 그런 질문이 나와 버렸다.

"흐음··· 도훈 학생은 혹시 운동분가요?"

"네?"

"아니 몸이 꽤 좋아 보여서···."

‘어머, 내가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람. 주책 맞게.’

손은주는 자신의 말실수를 깨닫고 얼른 화재를 돌렸다. 하지만 첫 수업 내내 도훈에게 눈길이 가는 것은 억제할 수 없었다.

‘신입생은 아닌 것 같고···. 끽해야 스물 두세살로 보이는데 어쩜 저런 눈빛이람?’

도훈에게 알 수 없는 기운을 느낀 것은 그녀가 굉장히 예민한 여자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여자를 많이 섭렵한 도훈에게선 바람둥이 특유의 아우라가 뿜어지고 있었다.

흔히들 색기라고도 불리는 오묘한 기운.

"···종교는 미술의 역사라 불리만큼 오래되었죠. 불교의 탱화라든가, 기독교의 벽화 등이 대표적으로···."

손은주는 첫 수업부터 열띤 강의를 하다 잠시 쉬는 시간을 가졌다.

"자, 그럼 10분간 휴식하겠어요. 혹시 질문 있는 사람은 앞으로 나오도록 하세요."

빔프로젝터를 켜느라 어두워진 강의실에서 누군가 뚜벅뚜벅 걸어 나왔다. 실제로 쉬는 시간 질문을 하는 경우는 드물었기 때문에 손 교수는 모처럼 기쁜 마음이었다.

‘이번 학기도 열심인 학생이 있구나.’

키가 훤칠해 보이는 학생의 얼굴이 드러나자 손 교수는 자기도 모르게 헛숨을 들이켰다. 그는 바로 그녀가 수업 중 눈여겨보던 이도훈이었다.

"교수님. 저기 아까 말씀하신 불교 그림 말인데요···."

스프링 노트를 펼쳐 보이며 본인의 필기를 짚는 도훈의 손가락은 무척 도톰하고 길었다.

‘얘는 어쩜 손가락도 이렇게 굵담.’

"음, 불상 뒷벽에 거는 것을 후불탱화라고 해. 티벳의 탕카에서 유래된 말인데, 우리나라에 언제 들어왔는지 확실하진 않지만 현존하는 탱화의 대부분이 고려 시대 이후 작품으로 알려져 있어."

"그렇구나. 감사합니다."

"학생 이름이 이···도훈군. 맞지?"

"벌써 제 이름 외우셨어요?"

"호호. 커피 산 적 한 번도 없다니까 그러네."

도훈은 손 교수의 목소리에서 어딘가 끈적함을 느꼈다. 그것은 여자를 많이 상대해본 남자들이 느낄 수 있는 일종의 끼부림 같은 것이었다.

‘뭐지? 설마 이 여자 나한테 관심 있는 건가?’

[주인님. 미션이 발동되었습니다!]

‘어라? 아침에 있었는데 또?’

[놀라운 일이군요. 확실히 대학에 오니 미션의 출현 빈도가 높아지는 것 같습니다. 장소의 변화가 영향을 주는 것일까요?]

‘어쨌든 계속해봐.’

[이번 미션은 ‘여교수를 공략하라’입니다. 미션을 성공하면 보상으로 ‘만능 만년필’ 아이템이 제공됩니다.]

‘아이템?’

[네. 해당 아이템은 비문과 오타를 자동으로 고쳐줄 뿐 아니라, 문장을 최대한 매끄럽게 다듬어 주는 교정교열 기능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잉? 그걸 어디다 쓰지?’

[왠지 글 쓰는 직업군에 요긴한 아이템 같군요.]

‘음, 리포트 작성이나 주관식 시험을 볼 때 도움이 될 수 있겠군. 나중에 논술 볼 때도 좋고.’

[응용방법이야 사용하기 나름이지요. 어쨌든 괜찮은 아이템인 것은 확실합니다.]

‘좋아. 아이템이 걸려 있는 걸 보면 제한 조건이 호락호락하진 않을 것 같은데···.’

[이제 제법 눈치가 빠르시군요. 이번 미션은 장소 한정 옵션이 걸려 있습니다. 바로 교수 연구실.]

‘연구실? 기간은?’

[미션의 제한 시간은 2개월입니다.]

‘2개월 안에 교수 연구실···. 손교수가 어린애 취향이 아니라는 게 마음에 걸리는군.’

[주인님 실제 나이가 적은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미션 수락까지 2:44 남았습니다.]

‘오케이. 미션 아니었더라도 한 번쯤 공략해보고 싶은 상대였어. 수락한다.’

[점점 과감해지시는군요. 훌륭한 태도입니다. 이번 미션이 수락되었습니다. 디스플레이를 참조 바랍니다.]

-여교수를 공략하라!-

*해당 대학에 재직 중인 여교수를 공략하는 미션입니다.

*성공 보상으로 '만능 만년필.' 아이템이 제공됩니다.

*제한 조건으로 미션 수행 장소가 ‘교수 연구실’으로 고정됩니다.

*제시된 시간을 초과하면 자동으로 미션이 소거됩니다.

*남은 시간 : 2 Month

"못 보던 제품이네?"

도훈이 미션 확인 차 스마트 워치를 보는데 손 교수가 물었다.

"그냥 스마트 워치에요."

"그런 것도 있었나? 아, 이번에 산업디자인과 교수하고 산학 협력으로 스마트 워치 외장 디자인 의뢰를 받았거든. 혹시 잠시 보여줄 수 있을까?"

‘헉. 로시 이거 보여줘도 되려나?’

[어차피 보통 사람에겐 평범한 시계로 보일 겁니다. 괜찮습니다.]

도훈이 손목을 내밀자 손 교수가 신중한 눈으로 스마트 워치의 외관을 살폈다.

"흐음, 신기한데? 혹시 재질이 뭐야? 크롬 같기도 하고···."

"자, 잘 모르겠어요."

"그래? 이음새가 전혀 안 보이네? 이건 어떻게 차?"

손 교수는 처음 보는 스마트 워치 디자인에 강한 흥미를 보였다. 산업디자인으로 학위를 받았기 때문에 지구 상에 없는 물건에 대해 호기심을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로시, 이거 풀어줘도 돼?’

[푼다고 큰 문제는 안 되지만···. 싱크가 해제될 경우 재동기화를 해야 합니다. 처음 사용자 등록 때와 달리 기록이 누적되어 있기때문에 동기화 시간도 오래 걸리구요. 그 사이엔 저와 커뮤니케이션이 불가합니다.]

‘아씨, 그건 좀 별론데···.’

도훈이 머뭇거리는 사이 구원군이 나타났다.

바로 정음이었다.

"도훈 선배. 얘들 나가서 음료수 뽑아 온다는데 어떤 걸로 드실래요?"

도훈은 상황을 모면하고 싶었으므로 정음의 등장을 반겼다.

"엇, 나도 같이 갈게. 교수님 혹시 커피 좋아하시면 하나 뽑아 드릴까요?"

"음, 그래 주면 고맙지. 이쪽 학생은 정음이 맞지? 육정음?"

"안녕하세요. 이름 벌써 외우셨네요?"

"응. 성씨가 워낙 특이해서. 얼굴도 귀엽고."

"앗, 감사합니다."

손 교수는 정음의 위아래를 빠르게 스캔했다.

다년간의 운동으로 다져진 늘씬한 몸매, 눈에 띄게 예쁜 얼굴.

‘흠, 혹시 얘가 도훈이 여자 친구인가? 선배라고 부르는 걸 봐선 단순히 같은 과 선후배 같기도 하고···.’

그러다 문득 자신이 정음을 의식한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손 교수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미쳤어.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어린애 앞에 두고.’

"아무튼 질문 받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교수님."

"아니야. 언제든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도 괜찮아."

"넵."

도훈은 정음과 함께 강의실 밖의 자판기로 나갔다. 미리 나가 있던 서현과 태영이 자판기에 천원짜릴 밀어 넣느라 낑낑대는 중이었다.

"아씨, 더럽게 안 들어가네."

"지폐를 빳빳이 펴서 해야지."

"그래도 안 되잖아. 왜 돈을 줘도 먹질 못하니?"

태영은 거듭된 실패로 잔뜩 짜증을 내자 정음이 그에게서 돈을 뺏어 들었다.

"줘 봐. 내가 해 볼게."

정음이 천천히 지폐를 밀어 넣자 자판기는 언제 그랬냐는 것처럼 돈을 삼켰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태영이 푸념하듯 말했다.

"헐! 이놈의 자판기 사람 차별하는 것 좀 봐? 여자가 주는 것만 받잖아? 아! 부족했던 것인가, 자궁이!"

"넌 또 뭔 헛소리야? 이상한 말 좀 쓰지 마."

"그래. 단톡방에서도 자꾸 알수 없는 드립이나 날리고."

"미, 미안."

서현과 정음이 같이 따지고 들자 태영이 한발 물러섰다.

도훈이 그를 위로하듯이 말했다.

"이 음료수 태영이가 사는 건가? 내가 뽑아주려고 했는데···. 잘 먹을 게 태영아."

"아니에요. 아까 형도 저 커피 사주셨잖아요."

여학생들은 도훈의 자상한 태도에 더욱 매료되었다. 태영이 헛발질을 할수록 오히려 도훈의 존재만 두드러지는 셈이었다.

[역시 주인님은 남의 허물을 이용해 자신을 돋보일 줄 아시는군요.]

‘원래 사회생활이란게 그렇지. 태영이 쟤는 가만있으면 중간이라도 갈 텐데 가만있질 못하네.’

[역시 관록인 것입니까?]

‘흐흐. 내가 산전수전 다 겪은 40대 아재인데 어린애들 하나 휘어잡지 못할까 봐.’

"커피 하나 더 뽑을 수 있을까?"

"교수님 드리시게요?"

"응. 아까 질문하는 길에 커피 한 잔 사드리기로 했거든. 사람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잘 보여서 나쁠 건 없잖아?"

"선배, 근데 엄청 수업 열심히 들으시더라. 다시 봤어요."

"하하. 후배들도 있는데 선배가 모범을 보여야지."

"역시. 선배, 멋있으세요."

서현이 선망 어린 눈으로 도훈을 바라보았다.

그런 동기를 바라보는 정음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 138. 낭만의 캠퍼스-7- > 끝

ⓒ 성난불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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